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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검인 1권(1화)
서장 ― 마음
사람의 마음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느낀다.
마음의 창이라는 눈을 보고, 심정을 토해내는 입을 보고, 말보다 많은 정보를 보낸다는 몸짓을 보아도 사람의 마음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믿음을 보이고, 배신을 당하고, 신뢰를 받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
말과 다른 마음을, 행동과 다른 마음을, 눈과 다른 마음을, 그 사람의 심층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혹자는 그리 좋지 않다 말할 것이다. 혹자는 부러워할 것이다. 혹자는 소원으로라도 바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분명 마음이 마모되어 있을 것이라고.
1장 ― 타심통(1)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한 다섯 세가를 뽑으라면 누구라도 쉽게 열거할 수 있으리라. 안휘의 남궁세가, 하북의 팽가, 절강의 모용세가, 사천의 당가, 그리고 산동의 유가. 이렇게 다섯을 한데 묶어 오대세가라고 부른다.
그중 특이 사항을 말하자면 산동의 유가는 오대세가에 포함된 지 십 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파무림은 구대문파와 사대세가가 대표였다. 하지만 산동유가의 세력이 이십 년 전부터 점차 커져 결국 사대세가의 제일이라는 남궁세가를 위협할 정도가 되자 사대세가는 오대세가가 되었다.
“산동유가의 조력자는 배신하지 않고, 마치 가족처럼 지낸다. 그들을 견제한 다른 문파의 공격은 있었어도 그들과 관계된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산동유가는 신생 세력이 으레 겪는 권력 암투를 겪은 적이 없어 자신의 세력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건 어찌 된 일인가. 그에 관한 소문이 있는데, 산동유가 가주의 딸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한다.”
진철은 손에 든 양피지를 몇 번이고 훑어보며 읊었다. 호남 무림성(武林城), 무림맹의 근거지를 이르는 말이다. 온갖 정도 문파가 모여 이루어진 무림맹의 근거지에서 이런 정보를 읊는 사람은 몇 없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무림성 사람들의 ‘이 사람도 허황된 소문을 듣고 왔구만’ 하는 생각이 얼굴에 드러날 뿐이다.
“그리고 오늘 이곳 무림성에서 산동유가 가주의 딸의 호위무사를 뽑는다고 한다.”
길거리 담벼락, 게시판, 객잔 등 눈에 띄는 곳에는 모두 붙여져 있는 벽보다. 산동유가 장중보옥의 호위무사를 뽑는다. 오대세가의 신진세력이니 돈이야 섭섭지 않게 챙겨줄 것이고, 어린 딸이니 호위를 하는 도중 연분이 날 수도 있다. 현재 수많은 희망과 망상을 가진 무림인들이 이곳 호남에 모여드는 추세였다.
“이보게.”
진철은 바로 옆을 지나가던 점소이를 붙잡았다.
“네, 왜 그러십니까?”
바쁜 와중이니 신경질이 날 수도 있건만, 똘망똘망한 점소이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칼을 수중에서 놓지 않는 무림인이다. 자신만의 도를 가지고 사람을 재단하여 그에 따른 처분을 내리는, 어떻게 보면 부패한 고관대작보다도 무서운 상대. 이 정도 무례에 조금이라도 불쾌한 표정을 내보였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무림맹은 건물에서 나가 길을 따라 쭉 걸으면 보이는 건물인가?”
“예, 그렇습니다. 저, 혹시 손님도 산동유가 장중보옥의 호위무사가 되려 하시는 겁니까?”
“그건 왜 물어보지?”
“실례되는 말씀이옵니다만, 참가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어차피 오대세가의 호위무사이니 자기들이 짜고 치는 것이겠지요. 신진 고수의 출현을 위해 이보다 더욱 좋은 자리도 있습니까? 분명 아무런 뒷배경도 없는 평범한 무림인은 창피만 당하다 돌아올 겁니다.”
정파의 대표인 오대세가를 이리 믿지 못하는가, 진철이 눈살을 찌푸리자 그것을 오해한 점소이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무림인 몇을 보았다고 그만 주제넘은 말을 했습니다. 제게는 한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고, 투병 중이신 노모가 있습니다. 사정을 보아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게 무슨 일인가. 고개를 들게. 뭔가 오해가 있던 것 같네만, 나는 그대의 충고를 허투루 들을 생각이 없다네.”
소면 먹은 셈을 치를 돈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진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손님?”
점소이가 의문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대로 도망갈 생각도 없네.”
“자, 다음.”
무림맹은 무척이나 거대하다. 온갖 무림 세력이 하나로 결집된 최대 규모의 세력이니 당연한 일이랄까. 이곳저곳에서 기부하는 돈과 무림맹의 구성원이 그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내놓는 돈이 맞물리니 그것이 그대로 외형에 투자되었다. 담장만 해도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고, 그 부지는 십 장 높이로 뛰어오른다 해도 다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대문 또한 마찬가지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컸다. 그러나 그 대문의 크기조차 무시할 만한 인파가 지금 무림맹에 몰려 있었다.
“다음!”
“아.”
뒤에서 누군가가 툭 밀어준 후에야 진철은 자신을 부르는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에 맞춰 온다고 몇 날 며칠 잠을 자지 않아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누군가가 부르는 것을 듣지 못할 때까지 정신을 놓고 있다니, 긴장이 너무 풀린 것 같았다. 정도무림의 성지인 무림맹, 그 이름을 믿어서였다.
“이름이랑 나이, 출신, 별호를 대시오.”
혹여나 있을 불상사를 대비해 문지기 두 명이 문의 좌우에 서고, 사무관 둘이 그들의 바로 옆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사무관의 앞에 서자 문지기의 날카로운 시선이 진철의 온몸을 순식간에 훑었다. 그리고 그대로 눈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관찰했다.
사실 문지기란 자리는 간과하기 쉽지만 보통 한 문파나 세가에서 믿음 가는 실력자를 배치하기 마련이다. 가장 앞서 사람들을 만나고, 가장 앞에서 문파나 세가의 적을 막는다. 그래서인지 무림맹의 문지기는 진철이 보기에도 무시하기 힘들 만큼 빼어난 실력자였다. 하지만 싸울 것도 아니니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이름 진철, 나이 스물다섯, 호북 출신, 별호는 없소이다.”
“방문 목적은?”
“호위무사를 뽑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요.”
“……별호도 없는 인간이?”
“모두가 참가할 수 있다 하지 않았소?”
진철의 대답에 사무관이 혀를 차며 종이를 찢어 입장권을 건넸다.
“여기 있소. 젊은 친구가 꿈은 크군. 하지만 그럴 바에야 고향에 가서 무관이나 차리는 것이 좋을 걸세.”
조롱의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사무관은 진철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철과 마찬가지로 별 실력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벌써 백여 명은 찾아왔다. 일류 고수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혹여나 싶은 마음에 일확천금의 꿈을 가지고 대회에 참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실력자를 상대로 기적은 없다. 오히려 대회에서 있을 비무에서 무림인의 생명을 다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뿐이다.
“충고 감사하오. 그럼.”
그러나 진철은 주눅 들지 않고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점소이에게 들은 말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도망치거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거기에 바늘구멍만 한 틈을 뚫고 뽑힐 자신도 있었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 진짜라면, 어차피 거르는 방법은 간단하겠지.”
타심통(他心通)이 있다 하면 측근을 두는 방법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간단하다.
마음을 읽으면 된다.
상대방에게 불순한 마음은 없는지, 신뢰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지 등 모든 기득권자들이 하는 고민을 단숨에 타파할 수 있다. 실력이야 고수들의 눈썰미를 믿고, 그래도 판단 못할 만한 사람은 짧은 비무를 하면 될 일이다. 사람 하나를 뽑는 데 일 년 가까이의 시간을 소비하는 다른 세가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간단한 형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간단히 생각한 것 같았다.
“시간도 되었으니 첫 시험을 시작하겠다.”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커다란 공터였다. 일정 숫자의 사람들이 각 장소에 모인 가운데, 진철이 간 곳에는 전형적인 문사 차림의 중년인이 있었다.
철담필(鐵膽筆) 위문이라는 자다. 한때 장강 이남에서 황실 학사가 될 수도 있는 전도유망한 기재라 불렸으나 어느 순간 무공에 발을 들여 한 자루 붓으로 절정에 이른 입지전적인 무인. 잘 기른 수염을 훑어 내린 위문은 사람보다 커다란 바위에 손을 대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시험은 이 바위를 들어 올릴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겠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도 좋으니 바위를 들어라. 아무나 참가해도 된다고 하였으니 어중이떠중이들도 많이 모였을 터, 이 중에서 일정 실력 이상의 사람들만을 가려내겠다.”
사람 키보다도 더한 높이에 건장한 장정 다섯이 모여 손을 잡아야 겨우 둘러쌀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바위. 별호 하나 없는 진철 또한 참가할 수 있을 만큼 모두가 참가 가능하다는 대회였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수만도 백여 명이 넘었다. 모두 세면 기백은 되리라. 마음을 읽는 것도 한계가 있을 터이니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했다.
“에휴, 이 실력에 저걸 어떻게 들까?”
보는 것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무게의 바위가 공터 여기저기에 수십 개나 되었다. 몇몇 무인들이 단숨에 인상을 찡그리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위문이 말한 어중이떠중이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진철은 가늠되는 그 무게보다도 그것을 찾기 위해 쓰여졌을 노동력이 더욱 놀라웠다.
“시작하겠다. 첫 번째 무인은 나오도록.”
“음.”
근육질의 무인이 처음으로 나섰다. 눈에 밝은 정광이 보이지는 않으나 온몸이 탄탄하니 외공만을 배운 자였다. 힘에 자신이 있다는 듯 당당하게 나와 근육을 부풀리니 상체의 옷가지가 단숨에 터져 나갔다.
“……쯧, 시작하도록.”
잘 들리지 않게 혀를 찬 위문.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은 개인적인 감상일 뿐, 공적인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되었다. 시작하라 하자 무인이 바위를 잡고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리려 노력했다.
“끄으응.”
그그그!
그러나 바위는 덜덜 떨릴 뿐, 일정 높이 이상 올라가질 않았다. 힘이 부족했다. 그리고 기교도 부족했다. 오로지 무식하게 힘에만 의존하여 들려 하니 부족할 따름이었다. 저 정도 크기라면 내공의 고수라 할지라도 어지간해서는 들기 힘들다. 역발산기개세라는 항우라 할지라도 들 수 있을까? 첫 번째 무인은 당연히 실패였다.
“젠장!”
“바위를 들지 못한 자는 탈락이니 들어온 길을 따라 나가면 된다. 자, 다음.”
냉정한 말에 분통을 터뜨리던 무인이 길을 따라 나갔다. 연이어 나서는 무인. 이번엔 꽤나 유명한 무인인 듯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무당의 속가제자 장무군이라 합니다.”
구파일방, 정도의 대변자이자 무림맹의 중추이다. 오대세가가 씨족 중심의 폐쇄성과 긴밀함으로 세를 불렸다 하지만, 전통과 협의의 구파일방을 상대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북숭소림, 남존무당이라 하여 무당과 소림은 다른 구파일방과 비교해도 그 수준이 달랐다. 특히나 무당파는 인원이 적어 속가제자의 수 또한 적으니 속가제자라 하더라도 실력이 남달랐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이 바위를 들어 보라 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문을 배우다 무에 입성한, 특이한 무인이다. 위문에게 있어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니 하는 뒷배경은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조롱하는 느낌까지 드는 단호한 말에 장무군이 눈썹을 꿈틀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흡!”
무당 태극권의 실전 구결에는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이라는 구결이 있다. 태극권은 민초들의 심신을 단련시키기 위해 잘 알려져 있으니 그 구결 또한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그 구결을 이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당의 진수가 면장(綿掌)과 전사(轉絲), 사량발천근이라 불릴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장무군은 그 까다롭다는 사량발천근의 구결을 살짝 응용하여 바위를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정심한 정파의 심법은 나이가 들수록 내력이 강해지는 특징이 있으니, 저 나이에 내공의 힘만으로 저 크기의 바위를 들어 올리기는 요원했다. 그럼에도 쉬이 바위를 들어 올리는 뛰어난 기교. 과연 무당의 속가제자가 될 자격이 있었다.
“어떠신지요. 통과입니까?”
온몸이 가려질 크기의 바위를 허리 위로 든 채 장무군이 물었다. 당연히 합격일 것이라는 자신감이 깃든 말투였다.
“시험은…….”
위문은 말을 할 듯 말 듯 뜸을 들이다 순간 발을 내쳤다. 방심한 사이 직접적으로 들어온 공격이다. 무릎 뒤쪽과 허벅지를 연타당한 장무군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손에서 놓친 바위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불합격이다. 태극권의 기본은 마보. 겨우 이 정도로 중심이 흔들리다니, 무엇을 배운 것인지 모르겠다. 산으로 돌아가라. 하산하였다면 홀로 다시 배워라.”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분명 바위를 들면 통과라고 하였잖습니까!”
장무군이 항의했다. 당연한 일이다. 바위를 들면 된다고 하였고, 바위를 들었으니 통과다. 그러나 위문은 냉담했다.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어중이떠중이들을 골라내겠다고 또한 말했다. 바위를 들었으나 실력이 부족하면 떨어져야지. 안 그런가?”
“크윽……!”
시험에서의 판단은 시험관이 할 일이다. 거기에 틀린 말도 아니니 장무군은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자, 다음.”
처음과 비교하여 훌쩍 난이도가 높아진 시험은 결국 서른 명 중 두 명만을 남게 만들었다. 마지막인 진철의 앞 번호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방만하게 풀어헤친 옷, 거칠게 다듬은 머리카락, 정련되지 않은 야성적인 기운. 돈을 받고 전장을 헤친다는 낭인(狼人)이었다.
“이봐, 위문이라고 했던가?”
껄렁껄렁한 태도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만만치 않았다. 거리낌 없이 내보이는 살기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지경. 어느새 한 자루 철필을 꺼내 든 위문의 앞에서 낭인은 박도를 빼 들고 말했다.
“낭인은 몸이 재산이다. 건드렸다간 그 자리에서 죽을 줄 알아라.”
무림맹의 일원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도 위문은 무공 수위가 절정을 넘은 실력자였다. 한 성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고수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런 태도. 전형적인 싫은 사람의 상인지라 위문이 눈에 드러날 정도로 얼굴을 찡그렸다.
“시작해라.”
“웃차.”
바위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위문은 그의 발을 차려 하다가 도중에 멈추었다. 아까의 겁박 때문이 아니었다. 이자가 실력이 있다는 것은 위문 자신이 안다. 분명 자신과 생사결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리라. 이런 일로 일부러 신경을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통과다. 통과한 사람은 응접실로 가라.”
“응접실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공터의 출구 쪽에 있는 자가 안내해 줄 것이다. 자, 다음.”
낭인이 떠나고 드디어 진철의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