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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검인 1권(2화)
1장 ― 타심통(2)
“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딱히 특이한 점을 찾지 못할 만한 자였다. 옷차림도 평범하고, 외공의 고수라기엔 호리호리하며, 내공의 고수라기엔 태양혈이 그다지 불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설상의 반로환동이라든가 반박귀진의 경지일 리는 없었다.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니까. 위문은 그저 지금까지 봐 왔던 어중이떠중이들과 마찬가지라 판단했다.
“그래, 들기만 하면 된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처음에 말했을 터다.”
“그럼 되었소. 시작하겠소.”
위문은 팔짱을 끼고 응접실로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어차피 탈락할 거, 발을 놀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다.
“흡!”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다리를 들고 내린다. 그저 그것만이라면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공이 실리고, 전사(轉絲)가 깃든다면 그것은 발을 구른다 하지 않고 진각이라 부른다.
쿵!
거력을 담아 땅을 짓밟자 지표면이 거미줄처럼 쩌저적 갈라졌다. 이어서 무언가가 잡아당긴 것처럼 거대한 바위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진철의 머리 위로 떠오른 바위. 진철은 마치 곡예를 하듯 발을 일자로 뻗어 발바닥에 바위를 올렸다. 곧게 펴진 신체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으니, 몸의 중심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지금 다리를 차봐야 조금의 흔들림도 없으리라.
“다리를 쓰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이었다. 다리가 팔보다 몇 배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하나 다리는 본래 버티기 위해 단련하지 무언가를 들어 올리기 위해 단련하지 않는다.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손보다 몇 배의 힘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을 진각으로 대체하였다. 전혀 생각도 못한 발상이었다.
“손보다는 다리를 위주로 단련했소. 거기에 이렇게 하면 방해가 들어올 수도 없지 않소?”
“으음…….”
확실히 그랬다. 통과를 못할 거라 생각해 아예 신경을 안 쓰기도 했지만, 진각의 여파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사이에 방해를 하려면 처음부터 전력으로 싸울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좋은 판단이었다.
“재밌는 녀석이로군. 별호는 있는가?”
“없소. 강호에 나온 지는 얼마 안 돼서.”
“구파처럼 산간 벽두에서 훈련했나?”
“그건 아니고, 조금 사정이 있어서…….”
뒷머리를 긁으며 되는대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아까 전의 모습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평범한 한량이 변명이나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특이하니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위문이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뭐, 거기까지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겠지. 응접실은 저쪽이다. 안내를 따라가라.”
“알겠소.”
바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진철은 응접실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진철이 대회의 마지막 통과자였기에 공터에 남은 것은 시험관들뿐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모두 응접실로 사라지고 시험관들이 모였다.
“위문, 얼마나 통과시켰는가?”
두 자루 검을 허리에 찬 노인이었다. 기문쌍검(奇紋雙劍) 문겸익이란 자다. 유가가 있는 산동성을 넘어 팽가가 있는 하북, 소림사가 있는 하남에까지 그 위명을 떨친 절세고수였다.
오대세가는 물론 구파의 근거지에까지 이름을 떨칠 정도이니 실력에 있어서는 의심할 바 없는 강자다. 그 위명을 들은 전 무림맹주가 직접 만나 초청하여 무림맹 제일의 단체인 숭검단(崇劍團)의 단주로 임명하기까지 하였다. 이름을 떨친 연대나 나이로 치자면 전대 고수이나 아직도 일선에서 몸을 움직일 정도로 활동적이기까지 한 특이한 인물이었다.
“두 명입니다.”
그렇기에 문사 출신이라 무림인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위문조차 그를 대할 때는 깍듯한 예를 차렸다.
“내가 있는 쪽은 하나네. 그럼 통과한 사람이라 해 봐야 열다섯인가.”
“예상한 숫자보다 오히려 많은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런가?”
기백 명 중에서 시험에 통과한 자들이 합쳐서 열다섯. 바위를 들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가 얼마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한 성에서 공인된 일류 고수는 백여 명이 넘었다. 공인되지 않은 실력자 또한 있으니 구주강호에서 실력자가 적을 일은 정말 드물었다.
결국 몇 명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수가 돈이 부족할 일은 드물다. 그저 이름을 대고 어느 문파에든지 식객으로만 들어간다면 평생을 놀고먹을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진짜 실력자가 자신의 이름을 날릴 생각을 하지, 겨우 호위무사를 뽑는 대회에 참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신진 고수, 혹은 사정이 있는 고수가 열다섯이라면 위문의 말대로 생각보다 많은 편이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누가 호위무사가 될 것 같은가?”
“무공만 강해서는 아니 되겠지요. 일반적인 호위무사를 뽑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겠지.”
무거운 표정이다. 도대체 일반적인 호위무사를 뽑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평범한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믿는 사람만 믿겠지. 그러나 못 믿으면 그것으로 끝이겠지.”
“마음을 읽는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요? 무림성의 사람들은 헛소리라 치부하고 있고,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저희들도 산동유가에서 퍼뜨린 헛소문이라 생각하였으니.”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지. 자네는 마음을 읽는 능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주입니다.”
묻는 말이 끝나자마자 위문은 즉답했다. 조금의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다.
“가주의 딸임에도 저 어린 나이에 호위무사를 뽑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산동유가에서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저라면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였을 겁니다.”
“허허,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자네가 그런 소리인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는 문사였습니다. 무림인과는 다르게 머리와 말로 겨루는 사람들답게 고관대작들의 추악한 생각을, 앞에서는 청렴결백을 말하고 뒤에서는 어두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조차 나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단언하건대, 저라면 못합니다.”
“그런가.”
문겸익이 고개를 돌려 응접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표정에 드러난 걱정스러움, 타심통을 가진 소녀를 잘 알기에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표정이었다.
“불쌍한 아이다. 이번 대회에서 부디 마음을 거리낌 없이 내보일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만.”
“그러기 위해 시작한 대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진해서 시험관을 자청한 저희이고요.”
“그래, 바란다면 좋은 일이 있겠지.”
그러나 왠지 모를 불안한 심정에 문겸익의 표정에선 걱정이 떠나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