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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검인 1권(3화)
1장 ― 타심통(3)
응접실은 한눈에 보기에도 컸다. 크기로 보자면 응접실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별채라고 부르는 쪽이 옳았다. 그러나 그렇게 큰 응접실이라도 고수들 열댓 명이 모이니 빈 공간 하나 없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각자가 강하고 개성이 돋보인다. 눈을 감았지만 주변을 경계하는 자가 있고, 대놓고 주변을 훑으며 상대방을 관찰하는 자도 있고,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무인도 있었다. 진철은 주변을 슥 훑어보더니 남은 자리에 앉았다. 아까 보았던 낭인의 옆자리였다.
“처음 뵙겠소. 잘 부탁드리오.”
조용히 있는 것보다는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진철은 그렇게 운을 띄웠다. 응접실의 무인들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어차피 경쟁자들, 대회가 끝나고 친목을 다지는 것은 인맥을 쌓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지만, 지금부터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너, 이름이 뭐냐?”
낭인 또한 마찬가지인 생각인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철이라 하오. 그쪽은 어떻게 되시오?”
“단세명이다.”
“단철호도(斷鐵虎刀) 단세명?”
어느 무인인가가 놀랐는지 자기도 모르게 반문했다. 단철호도 단세명, 십 세라는 어린 나이에 낭인이 되어 문파 간의 싸움과 전쟁터를 전전한 무인이다. 나이가 어느덧 서른. 이십여 년을 전쟁터에서 살아남았으니, 그 운과 실력은 가히 일절에 이르렀다 할 수 있었다. 오 년 전, 그를 낭인이라 무시하던 대부문 오십여 명이 하룻밤 만에 몰살당한 후 그는 낭인왕(狼人王)에 근접한 무인이라 불리었다. 구파의 장로급 무위, 거물 중의 거물인 것이다.
“유명하신가 보오?”
그러나 진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였다.
“유명하긴 하지. 죽인 놈만도 천여 명이 넘으니까.”
천인살(千人殺). 순수한 무인으로서는 이루기 힘든 업적이다. 문파 간의 대전이라 해봐야 백여 명 정도의 세력이 서로 싸우는 정도였다. 그리고 정도의 무인들은 보통 목숨까지 빼앗는 일이 드물었다. 많이 죽여 봐야 백 명. 그리고 그 정도를 죽인 무인은 두려움을 담아 보통 악적이나 마두라 불린다. 무림공적이 되지 않고 천인살을 이루었으니 유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오, 과연 보이는 것만큼 많이 죽였소이다. 그러니 그렇게 살기가 깊지.”
“……네놈이 지금 죽고 싶은 게로구나.”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하니 호랑이가 위협하는 것 같았다. 과연 호랑이라는 이름이 별호에 붙을 만도 했다. 진철은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소? 산동유가 장중보옥의 호위무사가 된다면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 나오오. 그리될 것인데 그대와 싸우다 개죽음을 당할 이유가 없지 않소이까?”
“그렇다면 조용히 있어. 손이 미끄러져 내 도가 네놈의 목으로 날아갈 수 있으니까.”
등에 비껴 멘 박도를 슬며시 꺼내니 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볕에 빛이 반사됐다. 시리도록 차가운 도광. 동시에 살기가 슬며시 치밀어 오르니 단숨에 응접실 내부의 공기가 고조되었다.
“그렇다면이라…… 그대는 그다지 호위무사 자리에 흥미가 없나 보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단숨에 싸움이 날 분위기였다. 그러나 진철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무슨 소리냐?”
“산동유가 장중보옥의 호위무사가 되기 위해 출전한 대회요. 본인이 되겠다고 했는데, 그대는 그렇다면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말꼬리를 잡는 것 같아 뭐하지만, 그다지 호위무사에 흥미가 없다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이오.”
“계집애처럼 따지지 마라. 말실수를 한 것뿐이니.”
“실수라기엔 처한 상황이 남다르오. 설마하니 단철호도라는 분께서 심심풀이로 호위무사에 지원했을 리는 없겠고, 만일 그렇다 한다면 호위를 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지 않을 것이니 산동유가에도 폐가 되고 그대의 명성에도 금이 가게 되지. 본인은 대협을 걱정해 주는 것이오.”
“내 걱정을 하기 전에 네 걱정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한마디만 더 하라. 내 네놈의 혀를 뽑아주도록 하마.”
“태도로 보아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구려. 그렇다면 혹시 타심통을 가졌다는 말에 혹해 오신 건 아니오? 다른 분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산동유가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무명이진 않은 것 같은데, 타심통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것은 아니시오?”
“……마지막 경고다. 그 입 다물라.”
“마음을 읽히고 싶다니, 어린애에게 도대체 무슨 짐을 지우려는 속셈이시오?”
“네 이놈─!!”
단세명이 박도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려쳤다. 깔끔한 궤적에 아름다운 호선은 파고들어 갈 조금의 빈틈조차 없으니, 과연 절정고수라 할 만했다.
“장난이 지나치시오.”
진철은 비웃듯이 한쪽 입꼬리를 들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발을 내쳤다. 넓은 도신의 옆면을 내쳤지만, 궤도를 조금 바꾼 것에 불과했다. 언월도의 손잡이를 짧게 한 것이 박도다. 무게가 심히 무거워 내려칠 때의 위력은 상대의 병장기조차 두 동강 낼 수 있다. 그러한 무기에 내공이 깃드니 힘으로 대응하기는 미련한 짓이었다.
콰앙!
진철의 바로 앞에서 폭탄이 터진 듯 바닥재가 비산했다. 그 하나하나에도 경력의 잔해가 깃들어 있으니, 암기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진철은 움직이지 않던 손을 빠르게 움직여 잔해를 하나하나 쳐 냈다. 그 순간을 틈타 단세명의 박도가 목을 노리고 짓쳐 왔다. 단세명의 독문 무공인 호아도법(虎牙刀法) 반산세(攀山勢)다.
“그만하시오!”
박도를 막아선 것은 한 자루 검이었다. 기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여 날카롭게 맥을 잘라내는 일수. 경력을 해소하고 연이어 도첨과 검첨을 정확히 맞대 슬며시 밀어냈다. 힘을 잃은 박도는 휘어 버린 채 허공을 베었다.
“정도무림의 긍지인 무림맹에서 이 무슨 소란이오! 더 이상의 무례를 범하지 마시오!”
홍매화가 새겨진 도복에 험한 산자락을 닮은 굳건한 기세. 바늘 한 치의 틈이라도 꿰뚫을 것 같은 정교함과 예리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검술. 오악 화산에 자리 잡은 구파, 화산파 무인의 특징이었다.
“화산……!”
칼부림으로 먹고사는 낭인이지만 무림에 속한 이상 구파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단세명이 이를 뿌드득 갈며 화산파 무인과 진철을 찢어발길 듯 노려보았다.
“화산파 일대제자 청명이라 하오.”
절정고수의 살기 어린 눈빛은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오금이 저려 주저앉을 정도로 매서웠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도 굴하지 않고 예의를 차리니, 험하기로 소문난 화산의 무인다웠다. 영험한 산에 자리 잡으니 무인조차 그 산을 닮아 가는가, 풍파에 깎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한 자루 검을 닮았다.
“두 대협 모두 진정하시오. 곧 산동유가의 사람이 올 것이오. 그러한데 이런 추태를 부려도 되겠소이까?”
“맞네. 모름지기 사내라면 호한을 보고 가슴이 끓어오르기 마련. 그러나 그 두근거림이 칼부림으로 이어진다면 저잣거리 시정잡배보다 못하게 되는 법이지.”
청명의 말에 이어서 나서는 자는 커다란 덩치에 각지고 남자답게 생긴 남자였다. 황권, 신령하기로 이름 높은 황산(黃山)에서 태어나 무명을 높인 황산대협(黃山大俠)이었다. 적수공권에 능한 무인으로서, 약관의 나이에 당시 음적으로 유명하여 구파인 종남파의 추적조차 따돌렸던 음살간마(淫殺奸魔)를 일수에 죽인 절정고수였다.
“……실례를 저질렀소. 본래 시비를 걸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살아온 환경이 그래서인지 말투가 참으로 듣기 안 좋소. 용서해 주시오.”
진철이 어디 시비를 걸지 않으려던 것인가. 사람의 말투가 아무리 신랄할지라도 마음먹고 그러지 않으면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사과한다면 화산파의 무인과 대협이 바라보는데 받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단세명은 이를 뿌드득 갈고는 고개를 팩 돌려 버렸다.
“두 대협께도 실례가 많았소.”
고개 돌린 단세명을 얼마간 바라보던 진철은 곧 신경을 끄고 두 무인에게 포권을 취했다.
“그렇게 본인에게 사과까지 할 정도는 아니오. 다만, 실례했다 생각하면 앞으로는 자중해 주었으면 좋겠소. 산동유가를 포함한 오대세가는 구파와는 다르게 실리를 추구하는 속가의 무리요. 실익은 명예가 전제되었을 때 존경을 받는 것이므로 그 명예를 실추시켰다가는 어떤 피해를 받을지 모르니 유념해 주었으면 좋겠소.”
“감사하오.”
상대방의 체면을 생각해 주고 미래를 걱정해 준다. 자신에게 돌아갈 이익이 없지만 한 점 사심 없이 읊는 마음이었다. 협을 중시하는 구파, 도를 배우는 도가의 문하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심성이 바른 자였다.
“그런데 소협은 소문을 믿고 있는가?”
황권이 물었다.
“소문이라니?”
“산동유가의 장중보옥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소문이 있지 않나. 타심통을 가진 아이라니, 소림의 최고승조차도 남의 마음은 꿰뚫지 못하지. 그런데도 소협은 그것이 가능하다 생각하시는지 묻는 것이네.”
“가능하지 않을 일이 있소?”
진철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답했다.
“내 남의 생각을 추측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남의 마음을 읽는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네. 유가의 성장이 너무도 급작스러우니 사람들이 지레짐작한 것이겠지. 아니면 배후세력의 비호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유가의 자작극이거나.”
“너무 과한 짐작 아니오?”
“타심통이 과한 소문이겠지. 사람의 마음을 알다니, 웃기지도 않는 얘기네. 믿음이란 보지 않아도 드러나는 법, 눈썰미가 뛰어난 것이겠지.”
결코 믿지 않는 황권과 믿는 듯 아닌 듯 확답을 하지 않는 진철. 잠시 눈을 마주하던 진철은 짝, 하고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겠소? 청명 대협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나이가 마음에 걸리오.”
도사로서 도를 닦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소문의 대상이 너무 어렸다. 청명은 조심스레 부정의 답을 내놓았다.
“그럼 단세명 대협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간이 부은 것인지, 질리지도 않고 진철은 단세명에게 물었다. 자신에게 물을 줄 몰랐던 단세명은 이제는 기도 차지 않는지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답했다.
“믿기는 한다.”
“그럼 다른 분들은 어떻소?”
“믿어요.”
나선 것은 여인이었다. 청색 궁장, 단아한 생김새이나 풍만한 굴곡이 여성의 매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호접여희(胡蝶麗姬) 모예단이었다. 신강 마교(魔敎)와 대치한 곤륜파(崑崙派)가 자리 잡은 청해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 신비 문파의 제자가 되어 하산한 후 사천에서 활동했다. 그 이름을 높인 것은 당문에서의 사건, 가주의 조카로 변장하고 당문의 기밀을 유출시키던 마인을 처치한 일에서였다. 그 후로 당문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사천에서 정파인이라 속이고 활동하던 많은 마인들을 죽여 이름을 드높였다.
“믿는 사람 셋에 믿지 않는 사람 둘. 의외의 결과이지 않소?”
어깨를 으쓱하며 진철이 말했다.
“……그만. 됐으니 이만 앉게. 유가의 사람이 오고 있으니.”
평범한 사람은 바깥의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방음이 잘되어 있는 응접실이었다. 그러나 황권쯤 되는 고수가 방음 구조로 인해 소리를 듣지 못할 이유가 없다. 황권의 말에 응접실 안의 모두가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군보를 하듯 딱딱 맞아떨어지는 발걸음 소리, 작고 일정하니 같은 무공을 배운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땅을 밟는 소리가 미약하고 가끔씩 통통 튀는 듯했다. 무공을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진철과 청명, 황권이 자리에 앉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응접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염소수염의 중년인과 호위로 보이는 셋, 그리고 그 틈에 자리 잡은 한 명의 여아가 보였다.
“기다리게 하여 미안합니다. 산동유가의 장로인 유정군이라 합니다. 이쪽은 유가의 무력 부대인 월영대(月影隊)의 부대주들, 그리고 이 아이가 유가의 장중보옥 유선영입니다.”
한 명, 한 명 소개해 주는 유정군. 월영대 부대주들의 엄정한 기도에 감탄한 사람들의 시선이 유선영에게 이르러서는 각자 의미심장한 빛을 발했다.
일단 어렸다. 십 세조차 되지 못한, 어린 모습. 앙증맞은 키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크면 미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해 주었다. 하지만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진철은 유심히 바라보다 눈치챘다.
‘눈이 죽어 있어.’
총기가 반짝이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눈동자가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한 줌의 움직임도 없이 죽어 있었다. 썩어 있다고 해도 부정하지 못할 만큼, 낯선 자들에 대한 경계심은커녕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동자였다.
“두 번째 시험이자 마지막 시험이 될 수도 있는 시험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갔다. 진철을 포함한 열다섯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 유정군이 커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마음을 보이십시오.”
응접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정신을 수습하고 먼저 나선 것은 황권이었다.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오, 아니면 무슨 일이 있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대쪽 같은 기상을 보이라는 것이오? 마음을 보이라니,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소.”
“소문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타심통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 사람으로서 어찌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단 말이오!”
“믿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당연한 말을! 내 달마(達磨) 신승(神僧)과 삼풍(三豊) 진인(眞人)께서 살아 돌아오셨다면 믿겠소! 그러나 이리 어린 꼬마 아이가 타심통이라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소!”
황권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에 눈동자만을 굴려 이리저리 유선영을 관찰하던 진철이 나섰다.
“그렇게 반발하시니 묻겠소. 황산대협께서는 어찌 이 대회에 참가하셨소? 혹시 산동유가의 이름을 깎아내리기 위해 온 것은 아니시오?”
어찌 보면 모두가 궁금했던 부분이나 황산대협―대협이라는 그 이름 때문에 묻지 못했던 부분이다―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무런 은원 관계도 없는 산동유가의 이름을 깎기 위해 왔을 리가 없기에 묻지 못했다. 그러나 진철은 궁금한 것은 곧바로 물어보고,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는 성격이다. 겁도 없이 물어본 질문에 황권은 예상대로 화를 내듯 언성을 높였다.
“그럴 리가 없지 않는가! 본인은 그저 많은 이들의 불만을 대표하러 나왔을 뿐이다!”
“불만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황당하다는 유정군의 태도.
“산동유가의 조력자는 배신하지 않고 마치 가족처럼 지낸다. 견제한 다른 문파의 공격은 있었어도 관계된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산동유가는 신생 세력이 으레 겪는 권력 암투를 겪은 적이 없어 자신의 세력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건 어찌 된 일인가. 그에 관한 소문이 있는데, 산동유가 가주의 딸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한다.”
“그건 강호에서 본 가에 대해 평가한 말이 아닙니까?”
“소문이오. 본인은 믿지 않지만, 많은 이들이 믿는 말이기도 하지. 사람의 마음은 본디 자신만의 것이고, 불가촉이자 불가해의 것이어야 하오. 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았소. 본인이 아는 사람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다니던 사람부터 한 가문과 문파의 대표들까지. 그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아시오?”
“모릅니다.”
“두려워했소.”
황권은 딱 잘라 말했다.
“자신의 생각이 들킬까 봐,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방이 알아 버릴까 두려워했소. 자신을 감싸던 옷가지가 전부 벗겨져 버릴까 무서워했소. 도가나 불가도 아니요, 유가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속가이기에 조금이라도 남에게 피해가 가는 일에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생각하오. 이래도 본인이 오지 않을 이유가 있소?”
“으음…….”
그저 남을 생각해서 왔다. 거대 가문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서 왔다. 강자의 위치에 선 자들에게 약자의 위치에 선 자들의 입장을 말하고자 왔다. 순간,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유정군이 침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