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화


프롤로그



신성력 825년.
유베리아 대륙 최초의 통일 제국 카발리아가 멸망하면서 대륙은 혼란기로 접어든다. 그러나 그 혼란스럽던 시대는 5개의 나라가 생기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그 다섯 곳의 나라 중에서도 대륙 중부 사라스 제국은 자신의 최정예 부대를 이끌고 카발리아 제국의 수도로 제일 먼저 진격해 들어간 명장 루시우스에 의해 건국되었다.
사라스 제국의 수도는 옛 카발리아 제국의 수도인 루펜이다.
루펜은 옛 명성에 걸맞게 대륙 최고의 도시로 인구 200만에 문학과 예술 등에서 여전히 세상을 리드했다.
대륙의 젖줄이라 부르는 네일 강과 파나스 만을 잇는 대운하와 말을 타고 일주일을 달려도 그 끝을 볼 수 없다는 중앙 대평원은 사라스 제국에 풍요와 부를 가져다주었다.
사라스 제국 주위의 동맹국으로는 동으로 신성 무라만 제국, 서로는 로마네스 왕국이 있었고, 적대국으로 북쪽의 갈리아 제국과 남쪽의 투스칸 왕국이 있었다.
사라스 제국은 신성력 923년부터 신성 무라만 제국과 로마네스 왕국과 함께 3국 동맹을 맺고 줄곧 유베리아 대륙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렇게 번창하던 사라스 제국에 문제가 생긴 것은 정확히 3국 동맹을 맺은 지 200년이 지난 뒤였다.
신성력 1123년, 11대 황제 레기우스 2세가 통치하던 사라스 제국은 황제가 급작스럽게 죽으면서 어린 황제가 즉위하고, 황제의 모후와 그 외척들이 발호하면서 중앙의 권력이 점차 약화되었다.
이 틈에 지방의 제후들이 영향력을 키우면서 사라스 제국에서 황제의 영향력과 중앙 정부의 힘은 점점 더 약해졌다.
사라스 제국은 중앙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 영지를 10명의 제후가 각기 통치했다.
제후란 지방 영지의 영주들의 우두머리를 일컬었다. 사라스 제국에서 그들은 작은 왕국의 국왕에 버금가는 권력자였다.
그 10대 제후 중 레오팔트 공작의 영지는 제국 북서쪽에 위치했다. 그의 영지는 갈리아 제국과 로마네스 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제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 레오팔트 공작령에는 다시 12곳의 영지가 있었고, 그 영지들 중 한 곳인 루멘스에는 악명 높은 영주가 한 명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루버딘 R 크루거로 작위는 백작이었다.
루멘스 영지민들은 그를 데라도스(유베리아 대륙 유일신인 오딘의 다섯 아들 중 하나로 파멸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의 개라고 불렀다.
데라도스의 개는 만나는 모든 생명체로부터 목숨을 빼았았다. 녀석은 죽음밖에 모르는 잔인한 존재였다.
크루거가 그런 데라도스의 개로 불린 것은 루멘스 영지의 영주인 그에게 잡혀 가서 살아 돌아온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루거는 영지민들에게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했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노역에 동원시켰으며,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세금을 미리 거두기까지 했다.
거기에 더해 죽은 자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해서 그 가족에게 대신 세금을 부과시켰다.
이를 어길 경우 크루거는 전후 사정 따지지 않고 바로 잡아다가 공개적으로 처형시켰다.
각 영지성의 성문 앞에는 흔히 교수대나 교수대를 대신할 큰 나무가 있었다. 보통 영주들은 이곳에서 살인, 방화, 도둑질, 유괴 등 영지 내의 평화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 교수형에 처하거나 손발을 자르는 다소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그러나 루멘스 영지의 영지성에는 그 자리에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크루거가 원래 성문 옆에 있던 영지의 상징과 같았던 큰 고목나무를 자르고, 그 자리에 단두대와 재판대를 설치한 것이다.
단두대 바로 옆에는 영주의 재판장이 마련되었다. 즉 영주의 재판장이 곧 처형장이었던 것이다.
다른 곳의 영주들은 영지민들 앞에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 몇 명만 죽이는데 비해, 크루거는 그런 것 없이 재판 직후 바로 처형시켰다.
사람을 벌레 죽이 듯 너무나도 쉽게 죽이는 크루거를 보고 영지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루멘스 영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재판이 있었고, 영주인 크루거의 재판에서 판결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탕탕!
“사형! 목을 베라.”
“사, 살려 주… 컥!”
뎅강!
데구르르.
이런 루멘스 영지는 하루도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1. 악질 영주 크루거



농노는 영주의 땅에서 살면서 그 땅에서 생산한 모든 것을 영주에게 바쳐야 했다.
그들은 토지에 결속되어 이동의 자유가 없었으며, 영주를 위해 정규적으로 무상 노동을 제공해야 했다.
또한 그들은 영주에게 수많은 굴욕적인 공납을 부담해야 했으며, 영주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경작할 수 있는 토지를 배급받았던 점에서 노예들보다는 훨씬 형편이 나았다. 그해 자연재해가 없이 풍작이 될 때는 약간의 이익도 있었다.
영주는 농노를 상대로 마음대로 공납을 거둘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놓고 거뒀다가 낭패를 볼 때도 종종 있었다.
영주에 대한 농노들의 운명은 비록 지극히 가혹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영주의 자의에 전적으로 예속된 존재는 아니었다. 해서 간혹 농노들은 영지 내에 폭동을 일으켰다.
그 폭동으로 인해 영주들은 쥐도 궁지에 내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농노들이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게 눈치껏 배려를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전해 해당되지 않는 영지가 있었다. 바로 루멘스 영지였다. 루멘스 영지의 영주인 크루거에게 농노는 그의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노예의 눈치를 보는 주인은 없었다. 크루거는 철저히 영지민들을 착취하고 억압했다.
해가 뜨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 크루거는 여느 때와 같이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영주관 밖으로 나섰다.
“비켜라! 영주님께서 행차하신다!”
영주관에서 성문까지 이어진 중앙의 큰 길로 50여 기의 기마가 움직였다. 그 길은 전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았으며 수시로 길가로 양과 소, 말, 닭 등이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때문에 영주의 행차 앞에는 두세 명의 병사들이 말에서 내린 후, 말을 끌고 앞서 걸어가며 행렬이 막히는 일이 없게 길을 열었다.
“어이, 저리 가! 그거 빨리 치워!”
웬만하면 보기 싫어서라도 포장을 할 만도 하겠건만, 크루거는 그 돈도 아깝다며 그대로 내버려 두게 했다. 길 주위로는 특히 악취가 심했다.
“빌어먹을 돼지 새끼들, 저것들 거리에 내놓지 말랬잖아?”
고약한 악취를 맡은 크루거가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속이 매슥거릴 정도의 지독한 냄새로 거리를 더럽힌 일등 공신은 단연 돼지였다.
녀석들은 아무렇게나 거리에 배설을 하고 썩은 음식들을 주워 먹고 다녔다. 그러니 냄새가 나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할 일이었다.
그때 집집마다 내놓은 쓰레기들과 그 아래 하수구에서 기가 막힌 냄새가 솔솔 풍겨 왔다. 그 냄새의 정체마저 잘 아는 듯 크루거가 재차 소리쳤다.
“쓰레기들 밖에 내놓지 말랬지?”
얼굴이 험상궂게 변한 크루거를 보고 그 옆의 총관인 게르만은 움찔거리며 감히 말대답도 못했다.
가축들에 이어서 악취의 주범은 길가에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에서 내놓은 쓰레기들과 그 아래 하수구의 오물들이었다.
영지성 주위 마을에는 공동 우물이 몇 개 되지 않아 물 공급 문제도 심각했으며, 하수도도 얕고 좁은 도랑밖에 없었다. 그러니 악취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총관 게르만도 다방면으로 노력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긴 한정된 공간에서 계속 나오는 오물들이 숨긴다고 숨겨질 리 없었던 것이다. 결국 오물은 썩고 악취를 풍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는 크루거가 성 밖으로 나설 때마다 총관은 이 문제로 매번 욕을 얻어먹었다. 총관 게르만은 올해 32살이었는데, 크루거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머리가 다 빠져서 50대 중반의 늙은이로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어째든 성 밖 마을을 벗어나기만 하면 냄새는 사라졌기 때문에 게르만은 그때까지 죽을죄를 지었다며 크루거에게 계속 머리를 굽실댔다.
그렇게 영주의 행렬이 막 성 밖을 벗어났을 때였다. 크루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뜸 물었다.
“오늘은 어디 마을이야?”
크루거는 정기적으로 걷는 세금 이외에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불시에도 세금을 거둬들였다. 이 때문에 루멘스 영지에 속한 마을의 관리들도 죽을 노릇이었다.
보통 영주들은 영지성에서 관리들을 통해서 세금을 거둬들인다. 해서 중간의 관리들은 부과된 세액보다 좀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 그 돈을 착복했다.
그런데 크루거는 그 착복한 관리들의 돈까지 순회공연 다니듯이 이 마을 저 마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며 다 뺏아 갔다. 그러니 마을 관리들의 불만도 영지민들 못지않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고생하는 것은 루멘스 영지의 영지민들이었다.
마을 관리들이야 어차피 악질 영주 크루거를 핑계로 자기들에게 필요한 만큼 영지민들에게서 무슨 수를 쓰든 착취해 내면 그만이니 말이다.
크루거의 말에 총관 게르만이 크루거의 마을 순회 일정표가 적힌 장부를 꺼내서 살핀 후, 서둘러 대답했다.
“오늘 갈 곳은 농노들의 밀집촌입니다.”
“그래? 오늘은 어제처럼 실망스럽진 않겠군.”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크루거가 인상을 폈다.
어제 방문한 마을에서 쿠루거는 고작 10골드밖에 뜯어내지 못했다. 대신 세금을 안 낸 쳐 죽일 놈들을 잡아 영지성에 끌고 갔다. 놈들은 며칠 내로 재판 후 처형시킬 생각이었다.
크루거는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침 식사 때 그에게 있어 유일한 핏줄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여동생 리엔이 한 말 때문이었다.

“오빠. 제발 이제 그만해요. 이 정도면 가문도 일으켰고. 그러니 이제 제발 옛일은 모두 잊고 예전의 착한 오빠로 돌아와 줘요.”

‘착한 오빠? 흥! 그렇게 당하고도 너는 여전히 어리석구나. 착해선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착한 건 죄악이야. 죄악!’
크루거는 착하기만 했었던 아버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사람 좋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겐 이용해 먹기 좋은 멍청이란 소리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났었던 크루거의 부친은 믿었던 친구와 가신들의 배신으로, 가문이 풍비박산 나고 그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지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크루거는 그야말로 처절하게 살아왔다. 어째든 지금 그는 다시 가문을 일으켜 세웠고, 가족을 되찾았다. 그런데 여동생은 그를 예전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 누구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난 더 강해지고 더 성공해야 만한다.’
크루거는 이를 악다물고 말고삐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서둘러라. 이렇게 굼벵이처럼 움직였다가 오늘 중에 성으로 돌아가겠나?”
쿠루거의 외침에 행렬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졌다.
농노들의 밀집촌까지는 도보로 한나절 거리였다. 하지만 말로 이동하면 세 시간이면 넉넉 잡아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루거는 영지 다른 곳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았지만 기사들과 병사들의 무장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돈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말을 좋아했던 그는 인근 영지에서 가장 많은 말을 소유한 영주로 유명했다.
“앞으로 전투는 기병에 의해 승패가 좌우될 것이다.”
크루거는 악질 영주로 유명했지만 기사로써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제후인 레오팔트 공작의 신임을 받아 공작령 12곳의 영지 중 한 곳의 영주가 된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크루거는 수차례 전쟁에서 기막힌 전략과 목숨을 도외시한 불굴의 투지와 지휘 능력으로 불리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냈다. 그런 빛나는 전공들을 세운 크루거를 레오팔트 공작은 자신의 측근으로 삼고 영지를 하사했다.
크루거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계속 제후인 레오팔트 공작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지 잘 알았다.
사라스 제국의 10대 제후 중 한 명인 레오팔트 공작은 갈리아 제국과 로마네스 왕국으로부터 국경 지대를 지키는 것 이외에 국내에도 적이 많았다. 때문에 내부에서도 매년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크루거는 그런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항상 제일선에서 싸웠다. 그리고 레오팔트 공작에게 매번 승리를 안겨 주었다. 그러니 어찌 레오팔트 공작이 크루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레오팔트 공작의 신임을 계속 받기 위해서 크루거는 항상 위험한 전장에 나가야 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기사로써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휘하 기사들과 병사들에게도 강도 높게 군사 훈련을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