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5화
웨슬러는 오우거 한 마리 때문에 자신들이 세리아 마을을 탈출하는데 영향을 입는 것이 아닐지 전전긍긍했다.
이대로 며칠 혹은 몇 십 일도 더 오우거 때문에 발이 묶인다면 그사이 총관 더스틴이 어떻게 마음을 바꿔 먹을지 몰랐다.
산적들이 거의 마을 회관에 갇힌 채 꼼짝도 못하고 있을 때 그룬족 사냥꾼 하나가 마을 회관으로 뛰어왔다.
쾅쾅!
“문 여시오.”
산적들은 창문을 통해 그룬족 사냥꾼임을 확인하고 나서 마을 회관의 문을 열었다. 그룬족 사냥꾼은 마을 회관 안으로 들어서자 곧장 비상종이 설치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것을 보고 웨슬러가 물었다.
“오우거는 잡았나?”
“그렇소. 당신들 대장이 죽였소.”
그렇게 말한 후 그룬족 사냥꾼은 위층에 올라가서 비상종을 울렸다.
땡땡땡땡!
비상종은 오우거가 제거되었음을 마을 전역에 알렸다.
“우리 대장?”
“무슨 대장?”
그때 아래층에 모인 산적들은 비상종을 울리기 위해 위층에 올라간 그룬족 사냥꾼이 남긴 말 때문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종을 다 울리고 난 그룬족 사냥꾼이 아래로 내려오자 웨슬러가 다시 물었다.
“우리 대장이 오우거를 잡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웨슬러의 물음에 그룬족 사냥꾼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당신들이 모시는 그 관리 말이요. 정말 대단했소. 혼자서 오우거를 죽이다니 말이요.”
그룬족 사냥꾼의 말에 웨슬러와 산적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그룬족 사냥꾼은 너무 노골적으로 놀라는 영지 병사들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들은 영지 관리의 수하들이 아니요? 그런 당신들 대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단 말이요?”
확실히 혼자 오우거를 죽였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었다. 보통 이럴 경우 사람들은 그를 오우거 슬레이어라고 칭찬하며 최고의 용사로 인정했다.
“말한 그대로요. 당신들 대장이 혼자서 오우거를 죽였소. 자세한 건 당신들 대장에게 직접 물어보시오.”
그렇게 만한 후 그룬족 사냥꾼은 마을 회관을 빠져나갔다.
“이,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 멍청이가 오우거를 죽여?”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자가 그동안 자신의 실력을 숨겨 온 거라면…….”
산적들 사이에 갖은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특히 웨슬러의 얼굴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부상이 심각한 벤자민을 들고 한걸음에 자신의 집으로 달려간 부르스는 벤자민을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먼저 상처 부위에 지혈제를 뿌려 지혈부터 시켰다.
체내에서 피가 많이 빠져나간 듯 벤자민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추위를 느끼는지 몸을 심하게 떨었다.
부르스는 가슴의 상처 부위를 제외하고 나머지 몸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집안 벽난로에 장작을 넣어 집안 온도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이 문제로군.”
부르스는 걱정스런 눈으로 벤자민을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똥배짱으로 그런 무모한 짓을…….”
그룬족도 전사들이나 사냥꾼들이 아니면 혼자서 오우거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위험한 몬스터가 오우거였다. 그런 오우거를 영지 관리가 혼자서 상대했다니 부르스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살려 놓고 보자.”
부르스는 상처 부위가 지혈이 되자 마취 성분이 든 약제를 상처 주위에 다시 뿌렸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찢겨져 있는 벤자민의 가슴 부위 상처들을 촘촘히 봉합하기 시작했다. 봉합이 끝나자 상처 주위를 깨끗이 소독한 뒤 붕대로 벤자민의 가슴을 감았다.
“오늘 밤이 문제로군.”
과도한 출혈과 상처로 인한 몸의 열이 문제였다. 그 두 가지 난제를 넘기지 못하면 벤자민은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컸다.
부르스는 일단 피를 만들어 내는데 특효약을 부르스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물을 먹이고 찬물에 수건을 적셔서 끓어오르는 몸의 열을 식혀 주었다. 크루거는 밤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다.
물론 제일 먼저 고통이 그의 뇌리를 엄습했다. 하지만 크루거에게 이런 고통은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었다.
수많은 전장에서 크루거는 죽을 고비를 수십 번도 더 넘기면서, 그중 죽기 직전까지 부상을 당한 적도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크루거는 그 고통을 견뎌 내고 살아났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아프고 열이 펄펄 났지만 크루거는 반드시 살아날 자신이 있었다. 크루거는 부상당할 때마다 자신의 몸을 빠르게 쾌유시킨 자신의 마나 수련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크루거가 익힌 마나 수련법은 조금 독특했다. 검술을 익히는 기사들의 마나 수련법은 대개 심장 아래에 마나 홀을 만들었다.
그러나 크루거가 익힌 마나 수련법은 심장이 아닌 배꼽 밑으로 엄지손가락 정도 아래에 마나 홀이 생성되었다.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올리고 앉아서 수련하는 이 마나 수련법은 크루거를 젊은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오르게 만들어 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크루거는 이 마나 수련법을 반백의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그마한 체구의 한 노인에게서 전수받았다.
그 노인은 크루거가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 주자 그것에 감격해서 당시 막 수련 기사가 되었던 크루거에게 자신의 마나 수련법을 알려 준 것이다.
당시 크루거는 부친을 닮아서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착했다. 그런 크루거에게 그 노인은 자신의 마나 수련법과 자신의 검술까지 아낌없이 전수했다.
그렇게 마나 수련법과 검술을 전수한 후, 그 노인은 죽었고 크루거는 직접 그 노인의 시신을 수습했다.
‘사부님!’
크루거가 자신의 부모와 여동생 리엔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노인은 자신을 사부라고 부르라고만 했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누군지 크루거에게 밝히지 않았다.
“허허허. 내 이름을 알아서 뭐하겠느냐? 사람은 이렇게 빈손으로 왔다가 또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죽기 직전 사부가 크루거에게 한 말이었다. 크루거의 사부가 남긴 마나 수련법에는 요상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바로 마나로 부상당한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다.
그 요상법은 죽어 가던 크루거의 목숨을 수십 번도 더 살려 냈다. 크루거는 이번에도 그 요상법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크루거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배꼽 아래 마나 홀을 만드는 일이었다.
‘잘됐다. 어차피 다시 검술을 익히려면 필요했던 마나 홀이 아니던가? 이번 기회에 만드는 것도 좋겠지.’
크루거의 마나 수련법에는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통증이 심했지만 크루거는 호흡을 고르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대기의 마나를 체내로 흡입시켰다.
공기 속에 포함되어 있던 마나들이 순조롭게 크루거의 입과 코, 그의 피부를 통해 체내로 유입되었다.
‘됐다.’
그 마나는 그의 마나 수련법에 따라서 배꼽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체내로 유입된 마나가 방향을 바꿔서 심장으로 흘러갔다.
‘뭐야?’
크루거는 깜짝 놀랐다. 그의 마나 수련법대로라면 마나는 배꼽 아래쪽으로 가서 그곳에 마나 홀을 생성시켜야 옳았다. 그런데 그가 유입시킨 마나들은 죄다 심장 쪽으로 몰려갔다.
잠시 후 크루거는 왜 마나들이 심장 쪽으로 몰려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맙소사. 마나 홀이라니!’
그랬다. 벤자민의 심장에 마나 홀이 있었던 것이다.
‘벤자민. 이놈은 대체…….’
심장에 마나 홀이 있다는 것은 벤자민이 마나 수련법을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벤자민은 마법사이거나 검술을 익힌 기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기사인 크루거는 벤자민이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기사라면 이런 저질 체력을 가졌을 리 없지. 게다가 팔다리에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그렇다면 역시 이놈은 마법사였던가? 빌어먹을. 어떻게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순간 크루거는 절망했다.
마법에 사용되는 마나와 검술에 사용되는 마나는 달랐다. 처음에는 같은 마나지만 마나 수련법에 따라 마나 홀에서 정제된 마나는 그 특성이 변했다.
때문에 마법을 익혔던 자가 다시 검술을 익힌다거나 검술을 익힌 자가 마법을 익히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했다.
물론 익히려 든다면 마법사가 검술을 익히고 검술을 익힌 자가 마법을 배우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 익힌 마법과 검술에서 그들은 마나 홀에서 생성된 응축된 마나, 즉, 마법력과 검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흔히들 마법사들이 마나 홀에서 끌어내 사용하는 응축된 마나를 마법력, 검술을 익힌 자가 마나 홀에서 사용하는 응축 된 마나를 검력이라 불렀다.
마법력과 검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은 마법사나 검술을 익힌 자로써 마나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마나를 활용하지 못하는 마법사와 검술을 익힌 자는 더 이상 마법사와 기사나 검사로 불릴 수 없었다.
크루거는 벤자민이 마법사이기 때문에 마법력은 사용할 수 있어도 검력을 사용할 수는 없게 되었다. 결국 소드 마스터였던 크루거의 예전 능력이 고스란히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니 크루거가 절망할 만도 했다.
‘그런데 무슨 마나가 이렇게 많아?’
크게 낙심하고 있던 크루거는 벤자민의 심장 아래 마나 홀로 유입되어 들어간 마나가 반응을 보이면서 벤자민의 마나 홀의 마나량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마나 홀 속의 마나량은 많은데 비해 마나 홀에서 체내로 나오는 마법력은 너무 적었다.
즉, 깔때기처럼 들어가는 마나량은 많은데 나오는 마나량은 일정하고 적다는 소리였다. 그 말은 벤자민이 제대로 된 마법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크루거는 자신의 특이한 마나 수련법을 통해서 자세히 자신의 신체를 계속해서 관찰해 왔다. 그런 통찰력은 실제 크루거가 소드 마스터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크루거는 이제 자신의 몸이 된 벤자민의 몸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 결과 크루거는 벤자민이 마법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 조건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그의 마나 홀은 마법력이 아닌 검력에 더 적합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마법에 적합한 마나 홀로 만들어진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나 홀을 없애 버리고 다시 새로운 마나 홀을 만들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심장 아래 마나 홀은 평생 한 번밖에 만들 수 없었다.
결국 마법력을 사용하는 마나 홀로 크루거는 남은 삶을 살아가야 했다. 문제는 그 마법력의 양은 많은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양은 너무 적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제대로 된 마법은 사용하지도 못할 터였다.
‘허어. 어떻게 이런 몸에 나를…….’
크루거는 하늘을 원망했다. 그때 크루거의 심장 아래에서 마나 홀에서 꾸준히 마법력이 체내로 흘러나왔다. 비록 그 양은 적었지만 말이다.
벤자민이 부상을 입고 출혈이 심해 심장으로 유입되는 피의 양이 적어지자 그의 몸에서 위험을 느끼고 반응을 하는 모양이었다. 특히 마나 홀에서 나온 마법력의 경우 기력이 떨어진 벤자민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적어도 벤자민이 죽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부르스가 지혈도 잘 시켰고 상처도 잘 봉합한 상태였다. 벤자민의 마나 홀에서 나온 마법력이 그의 몸을 보호하는 한, 벤자민은 곧 회복될 터였다.
문제는 회복이 된 벤자민으로 계속 살아야 하는 크루거였다. 크루거는 벤자민의 몸에 마나 홀을 만들고 검술을 익혀서 예전의 자신의 힘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소드 마스터였던 크루거가 다시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시간과 노력,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됐다. 크루거는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켜서 다시 소드 마스터가 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그런 생각이 벤자민이 마법사임이 밝혀지면서 산산이 깨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크루거는 그리 쉽게 자신의 생각을 접을 인간은 아니었다.
‘내게 불가능은 없어. 나는 반드시 예전의 힘을 되찾고 말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둬도 죽지 않을 것은 알지만 크루거는 좀 더 빨리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서 천천히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그때 마나 홀에서 나온 마법력의 움직임을 살피던 크루거의 뇌리에 궁금증이 일었다.
‘몸에 꼭 마나 홀이 하나일 필요는 없지 않나?’
크루거는 자신의 배꼽 아래 마나 홀을 하나 더 만들어 보는 것을 생각했다. 물론 그 마나 홀은 마법력이 아닌 검력을 사용하는 마나 홀로 말이다.
심장에는 어차피 하나의 마나 홀밖에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신체 다른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 당시 마법사나 검술을 익히는 사람들은 신체에서 오직 한 곳, 심장에서만 마나 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루거는 심장이 아닌 배꼽 아래에 마나 홀을 만든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이런 생각 자체는 크루거가 아니면 감히 누구도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해 보자.’
크루거는 심장의 마나 홀 이외에 배꼽 아래 마나 홀을 하나 더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가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심장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마법력 때문이었다. 크루거는 바로 그 마법력을 이용해서 배꼽 아래 마나 홀을 하나 더 만들 생각이었다.
위험하지만 예전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 도전이기도 했다. 크루거의 생명을 건 첫 모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위키드 로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