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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오우거는 자신이 상대했던 덩치 큰 인간들보다 작고 가녀린 인간들을 보고 흉성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꿔어어!
여자들은 일단 들고 있던 산딸기 바구니를 오우거에게 던지고는 도망을 쳤다. 오우거는 한 손으로 여자들이 내던진 산딸기 바구니를 쳐 내고 여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날렵한 오우거는 단숨에 여자들의 등 뒤로 떨어져 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퍽!
풀숲에서 돌멩이가 날아와 오우거의 한쪽 눈에 맞았다.
캬아아악!
다른 곳도 아니고 녀석의 신체에서 가장 약한 부위인 눈을 맞은 오우거는 괴성을 터트리며 한쪽 눈을 감싸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사이 여자들은 오우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크르르르!
잔뜩 화가 난 듯 오우거는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오우거를 향해 돌멩이를 던진 것은 크루거였다. 예전의 크루거였으면 벌써 현장에 도착했을 텐데 저질 체력의 벤자민의 몸으로는 제때 여자들을 구할 수 없었다.
크루거는 오로지 돈과 출세밖에 모르는 악질 영주였지만 그도 기사였다. 적어도 몬스터에게 사람이 잡혀 먹히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 볼 정도는 아니었다.
크루거는 겁도 없이 돌멩이를 주워 들고 오우거를 향해 던졌다. 녀석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쏠리게 만들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재수로 그가 던진 돌이 오우거의 한쪽 눈을 맞혔다. 그 덕분에 두 여자는 무사히 오우거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우거가 풀숲에 숨어 있던 크루거를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꿔어어!
괴성과 함께 오우거의 날카로운 발톱이 다가와 바람 소리도 없이 크루거의 가슴을 할퀴었다. 크루거는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벤자민의 몸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스팟!
피가 튀었다. 튀어 오른 그의 시뻘건 피가 그의 눈에도 보였다.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크루거는 운 좋게 뒤로 넘어지는 것은 면했다.
“크윽!”
뒤늦게 그의 입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가슴은 살갗이 찢어진 정도가 아니라 근육까지 찢어져서 흘러내리는 피가 더 검고 더 농밀했다.
‘진짜 아프다.’
너무 아프다 보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덕분에 벤자민의 감각들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세리아 마을에 가면 마을 사람들에게 위엄 있게 보이려고 오는 도중에 구입한 장검이 운 좋게 그의 허리에 차여 있었다.
차앙!
크루거는 망설일 것 없이 바로 검을 뽑았다. 크루거가 검을 뽑아 들자 오우거도 경계하며 바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았다.
크루거는 검을 치켜들고 오우거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의 몸이 덜덜 떨고 있었다. 크루거는 오우거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지만 그의 몸의 주인인 벤자민은 달랐다.
시뻘겋게 핏줄이 돋아난 녀석의 살의에 찬 둥근 눈알과 송곳니를 드러낸 채 끈적거리는 타액을 송곳니 사이로 흘리며 그르렁 대는 녀석의 모습에 벤자민의 몸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약해 빠져서는.’
크루거는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오우거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의 그라면 단칼에 오우거를 토막 내 버렸을 텐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내가 미쳤지.’
크루거는 겁도 없이 오우거를 자극시킨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후회해 본들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10. 돌아온 크루거Ⅱ



크루거의 부상은 심각했다. 때문에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지금의 상태로 크루거가 오우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놈이 죽든 내가 죽든 결판을 내야 한다.’
크루거는 최선의 방어는 바로 공격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녀석이 도망가지 않는 한 둘 중 하나는 이 자리에서 죽어야 결판이 날 일이었다.
하지만 시퍼렇게 살기와 증오로 번들거리는 오우거의 눈을 보니 애당초 녀석이 도망칠 일은 없을 듯 보였다.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싸움이었다.
크루거는 수많은 전투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웠고 결국 그가 이겼다. 그런 최강의 기사였던 그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에 맞아 죽었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크루거는 손에 쥔 검을 살짝 흔들어 보았다. 벤자민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한 것이다. 저질 체력만큼이나 벤자민의 힘은 보잘것없었다.
‘이 정도 힘으로 녀석을 두꺼운 가죽을 벨 수는 없다. 그렇다면…….’
베어서 상처를 낼 수 없다면 찔러 넣는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크루거가 검을 뽑자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크루거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진한 피를 보고 녀석의 눈이 점점 더 흉성을 띠어 갔다.
더 이상 피를 흘리면 크루거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크루거가 먼저 움직였다.
파팟!
크루거가 오우거의 무서운 눈빛을 피해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크루거의 검이 오우거의 배를 찌름과 동시에 오우거의 주먹이 크루거의 갈비뼈를 으스러트렸다.
크루거의 기습에 녀석은 적이 놀란 듯 주먹에 제대로 힘을 싣지 못했다. 만약 녀석이 힘껏 휘두른 주먹이었다면 크루거는 갈비뼈가 박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쪽 중요한 장기들까지 터져 나가 즉사를 면치 못했을 터였다.
크루거는 이를 악물고 고통으로 몸을 뒤틀면서도 검을 찔러 넣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쿠욱!
오우거의 가죽이 질기다 해도 검 끝에 힘을 싣고 크루거가 온 힘을 다해 찔러 넣자 결국 가죽이 뚫리고 살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크루거는 오우거의 커다란 손이 그의 머리를 잡아채기 전에 검에서 손을 뗐다. 그때 예상대로 오우거의 두 손이 그의 머리를 잡아채려 했고 크루거는 그대로 몸을 뒤로 눕혔다.
아슬아슬하게 크루거는 오우거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뒤로 몸을 눕힌 크루거가 공중에서 발을 들어서 오우거의 배에 박혀 있던 검을 힘껏 밟으며 몸을 뒤로 날렸다. 놀라운 임기응변이었다.
푸욱!
그러자 배에 박혔던 검이 살을 뚫고 오우거의 장기까지 파고들어 갔다. 그 충격에 오우거가 흠칫했다.
털썩!
“큭!”
그사이 바닥에 등부터 떨어진 크루거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 나왔다. 등보다 가슴 쪽 상처가 더 아팠다.
휘익!
그러나 잠시 뒤 오우거의 거대한 주먹이 바닥에 쓰러진 크루거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헉!”
크루거는 몸을 굴려서 오우거의 주먹을 피했다.
쿵!
녀석의 주먹이 맨땅을 때렸다. 몸을 구를 때 가슴에 통증이 몰려왔다. 크루거는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 대신 혀를 깨물었다. 그러자 입안에 피가 비릿하니 올라왔다.
그 피를 입안 가득 머금으며 크루거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녀석이 배에 박힌 검을 뽑아냈다. 그러자 녀석의 배에서 피가 품어져 나왔다. 피를 본 녀석은 더 흉흉하게 괴성을 내지르며 크루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꿔어어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오우거를 향해 크루거는 입에 머금고 있던 피를 내뿜었다. 그 피는 오우거의 눈으로 날아갔다. 피가 눈에 들어가자 오우거는 마구잡이로 팔을 휘두르고 발을 차대면서 발광을 해 댔다.
그사이 크루거는 오우거가 내던진 검을 찾으러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 소리가 오우거의 귀에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오우거가 그 육중한 몸을 날렸다. 그러자 크루거도 몸을 날려서 검을 잡았다. 그때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오우거가 크루거의 몸 위를 덮쳤다. 크루거는 재빨리 검을 들어 자신의 몸 위를 덮쳐 오는 오우거의 가슴에 겨눴다.
그리고 육중한 오우거의 몸과 같이 검을 내렸다. 몸을 비틀어 공간을 만든 크루거는 그대로 검자루를 땅에 대었고 오우거는 그대로 크루거의 몸을 덮었다.
푸욱!
그때 땅에 닿은 검은 그대로 오우거의 심장을 꿰뚫었다. 제아무리 오우거라도 심장이 뚫리고 살 수는 없었다. 몇 번 몸을 꿈틀대던 오우거가 이내 잠잠해졌다.
“흐흐흐. 까불고 있어.”
그 말을 하고 나서 크루거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오우거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그때 머리가 어지러워지더니 그는 이내 의식을 잃었다.
잠시 후 두 여자가 그룬족 사냥꾼들을 데리고 그 자리에 나타났다.
“저기예요.”
그들 중에는 테베스와 부르스도 있었다. 그들이 현장에 도착하자 오우거가 엎어져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룬족 사냥꾼들이 조심스럽게 오우거에게 접근해서 녀석을 뒤집자 그 아래 영지 관리인 벤자민이 나타났다.
그런데 오우거의 가슴에 벤자민의 검이 박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테베스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허어! 허, 그 참!”
그룬족 사냥꾼들 역시 어이없다는 눈으로 벤자민을 쳐다보았다. 그때 벤자민의 가슴이 피투성인 것을 본 부르스가 벤자민을 끌어내서 그 상처를 살폈다.
“휴우. 다행히 장기는 상하지 않았군. 이대로 두면 위험하니 일단 제 집으로 데려가겠습니다.”
부르스는 벤자민을 챙겨들고 자신의 집으로 내달렸다. 그때 두 여자가 촌장인 테베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누군가 우릴 구하기 위해 돌멩이를 던졌어요. 아마도 저 영지 관리가 그런 것 같아요.”
“영지 관리가 저희 목숨을 구해 주었어요.”
두 여자의 말에 테베스가 알았다며 그 여자들을 마을로 돌려보냈다.
“벤자민이라?”
테베스의 얼굴이 살짝 미소가 어렸다.
“이번엔 제법 괜찮은 영지 관리가 온 것 같군.”
만족스러워하는 테베스를 보며 다른 그룬족 사냥꾼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웨슬러와 산적들은 세리아 마을 사람들이 어서 오우거를 잡기를 기다렸다. 오우거가 마을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들은 등골이 다 오싹했다.
그만큼 보통 사람들에게 오우거란 몬스터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웨슬러나 산적들도 어릴 적에 어른들에게 울면 오우거가 잡아간다는 말을 듣고 성장했다. 그렇다 보니 아이 때부터 오우거는 가장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어 어른이 되어도 그 무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잡았을까요?”
회관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산적 하나가 프레드에게 불쑥 물었다. 그러자 프레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잡았으면 연락이 왔겠지. 비상종은 여기 마을 회관에만 설치되어 있잖아.”
오우거를 잡거나 죽였으면 그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제일 먼저 그 소식을 마을 회관에 알렸을 터였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은 아직 오우거를 잡거나 제거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