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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라 하니는 당황한 채로 달려오는 자동차를 쳐다만 보았다. 자동차의 속력으로 봐서 심하게 급커브를 돌다가는 길 한쪽에 세워놓은 하니의 오토바이와 충돌할 게 뻔했다.
“아악!”
그 무시무시한 속력 그대로 자동차가 하니의 눈앞에서 급커브를 돌자 하니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음과 동시에 하니의 귀에 ‘쿵’ 하고 어딘가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텀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거 맞아?’
무시무시한 공포로 인해 하니의 심장이 아직도 터져 나갈 것처럼 두근거렸다. 이렇게 죽는 건가 싶을 정도의 공포였다.
그 공포에 직면하는 순간, 이십육 년 동안 살아온 발자취가 마치 슬라이드 영상처럼 빠르게 편집되어 하니의 감은 두 눈 사이로 펼쳐졌다.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스스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였다.
하니는 눈을 떴다. 무사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하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쳐다보는데 조금 전까지 자신을 집어삼킬 것처럼 달려오던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황으로 봐서 그 정도 속력에 하니의 오토바이와 부딪치지 않았다면 물에 빠진 게 분명했다.
하니의 예상대로 보수하지 않은 가드레일의 옆 부분이 심하게 부서져 있었고 자동차의 파편이 콘크리트 바닥 위에 흩어져 있었다.
하니가 달려가 자동차가 추락한 바다를 쳐다보자 하니를 위협하며 달려오던 그 자동차가 바다에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하니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곧바로 119에 신고를 했다.
구조대가 도착할 시간이면 이미 남자는 익사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지금 당장 자동차에 갇혀 있는 저 남자를 구해야만 했다.
하니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바다를 향해 힘차게 몸을 던졌다. 6월 초순의 바닷물은 제법 차가웠다. 자동차의 속력 때문인지 자동차는 보기보다 도로에서 제법 멀리까지 날아가 있었다.
하니가 자동차까지 헤엄을 쳐 도착하자 조금씩 가라앉던 자동차가 거의 물속에 잠긴 상태였고 자동차 실내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하니가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물속으로 잠수를 했다. 남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운전석 쪽의 문을 여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하니가 손잡이를 잡고 당겨보았지만 가드레일에 부딪치면서 그 충격에 문의 형태가 변형되었는지 좀처럼 문이 열리지가 않았다.
하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을 부서뜨릴 만한 것을 찾아보았지만 그것 역시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헉, 헉!”
그리고 다시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하니의 행동과 생각에 한 남자가 살아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 생각에 하니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꼭 그래야만 했다. 그건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하니의 각오였다. 그리고 그녀만의 트라우마. 그래서 더 살리고 싶었다.
하니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차창을 깨뜨리기 위해 자동차의 전면 유리를 있는 힘껏 발로 찼다. 하지만 유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충격에 하니가 뒤로 밀려나갔다. 다시 하니는 힘을 모아 힘차게 발로 유리를 밀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번쩍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짧은 찰나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 자동차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쉽게 열리지가 않았다. 숨이 막히는지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동차 유리 너머에 있는 하니를 쳐다보았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하니는 보았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본능적인 모습.
하니가 몸짓으로 자동차 앞 유리를 발로 차라는 시늉을 했다. 그것 말고는 하니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쯤 누운 자세로 힘차게 유리를 발로 찼다. 다행히 남자가 구두를 신고 있어 구두 굽과 남자의 힘에 의해 유리에 금이 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남자가 발길질을 하자 유리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겨우 빠져나올 정도의 틈이 만들어지자 남자가 그 깨어진 틈으로 머리부터 집어넣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남자의 몸이 자동차에서 다 빠져나오자 하니가 그의 어깨를 감싸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동안 이미 그의 몸은 의식을 잃고 축 늘어져 있었다.
물에서 빠져나온 하니는 도로 옆 갓길에 그를 뉘었다. 죽은 듯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는 그의 옆으로 하니 역시 쓰러져 누웠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 움직일 힘이 없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벌인 죽음과의 사투. 그를 구했다는 생각에 하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하니는 문득 칠 년 전의 사건을 떠올렸다. 그 기억 속에서 수빈이도 지금 저 남자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서 쓰러져 있었다.
하니가 정신을 가다듬고 재빨리 일어나 남자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심장이 미세하게 뛰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하니가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남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때 의식이 돌아온 듯 남자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살았겠지.’
가쁜 숨을 내쉬며 기진맥진한 하니가 남자의 옆으로 다시 쓰러졌다.
***
“누나, 이제 깨어난 거야? 괜찮아? 나 누군지 알겠어?”
눈을 뜨자 희철이 침울한 표정을 하고서 하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동생 엄희철이잖아!”
“다행이네, 기억상실증 같은 건 안 걸려서.”
“그게 무슨 말이야?”
“다친 데 없어서 다행이라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게 아니라면 이상 없어.”
그제야 희철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니가 남자의 옆에 쓰러져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고 그녀는 그와 함께 들것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었다. 그러고는 피곤했던지 간호사가 놔준 링거 주사를 맞고 깜빡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하니는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떡 일어나자 희철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누나, 괜찮아?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갖다 줄게.”
“괜찮아. 그런데 나랑 같이 온 남자는?”
하니는 걱정이 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그 남자의 얼굴과 수빈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나타나는 바람에 그 남자가 궁금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른 병실에 있어.”
“상태는 어때?”
“타박상을 좀 심하게 입은 것 말고는 괜찮아 보였어. 그런데 누나가 그 남자 구한 거야?”
하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누나 대단하네.”
“시끄러. 오토바이랑 내 지갑, 휴대 전화는 찾아왔어?”
“오토바이는 찾았는데, 휴대 전화랑 지갑은 안 보이던데. 그럼 잃어버린 거야?”
“네가 안 챙겼으면 잃어버린 거겠지.”
희철의 말에 하니는 속이 상했다. 그날 새벽에 팔았던 치킨 값이 그대로 사라져 버린 데다 휴대전화까지 잃어버렸으니.
“너, 원무과 가서 나 퇴원한다고 말하고 와!”
“누나, 오늘 하루는 그냥 여기서 쉬지.”
“됐어. 놀 것 다 놀고 언제 돈 벌 거니? 네 학비는? 생활비는? 나 멀쩡하거든. 그러니까 빨리 갔다 와!”
희철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실을 빠져나갔다.
재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신 떠안게 된 가장이라는 자리. 그 자리는 누구에게 양보할 수도 없는데다 버릴 수도 없었다.
동생 희철의 학교만은 하니 자신의 힘으로 졸업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없이 아버지가 하던 치킨 가게를 경영하게 된 것이다.
하니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벌써 정오가 지났다. 하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며 지난 새벽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경황이 없던 와중에도 달빛에 어렴풋이 드러난 그 남자의 얼굴 윤곽이 생각났다.
크고 반듯한 콧날과 두툼한 입술, 달빛에 뺨까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 그리고 그 두툼한 입술에 닿던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까지 생생하게 기억났다.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며 의사가 들어오고 그 뒤로 간호사가 뒤따라 들어왔다.
“엄하니 씨.”
나이가 지긋한 의사의 호명에 하니는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남경서 씨 여자 친구 맞으시죠?”
“네? 그 사람이 누구죠? 처음 듣는 이름인데.”
“같이 입원한 환자 말입니다. 남경서 씨 말로는 두 분 연인 사이라고 하던데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게 무슨 소리인지.
“뭔가 잘못 알고 있나봅니다. 혹시 그 사람 머리를 심하게 다친 건 아닌가요?”
“저희가 봐서는 정상으로 보입니다만. 필요하시다면 MRI를 찍겠지만 그 사람 보호자가 없어서……. 그러니까 여자 친구인 강하니 씨가 남경서 씨 보호자를 하셔야겠습니다만.”
“네?”
하니는 기가 찼다. 기껏 물에 빠진 사람 살려놨더니 봇짐 내놓으라는 것보다 더 심하잖아. 이 사람이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차라리 벼룩에 간을 빼먹지, 어디다 빈대 붙으려고.
간호사가 일러준 그의 병실을 찾아간 하니는 벌컥 하고 문을 열었다.
“이봐요, 아가씨! 옷 갈아입는데 문을 벌컥 열면 어떡해?”
중년의 환자 한 명이 외출을 하려는 듯 팬티만 입은 채 바지로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누구 좀 찾으러 왔…….”
하니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병실 한쪽 구석에서 환한 빛을 발견했다. 마치 예수의 재림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후광이 한 남자의 몸에서 발산되었다.
저것이 진정 인간의 모습인가? 눈썹을 살짝 가린 머리카락, 그 아래로 펼쳐지는 눈부시게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지난밤엔 그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얼굴을 자세히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잠시 경서의 모습에 넋을 빼앗긴 하니가 정신을 가다듬고는 자신이 이 병실에 찾아온 근본적인 이유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남경서에게 따지러 온 것이다.
하니는 그를 쳐다보며 소리를 빽 질렀다.
“이봐요! 당신이 남경서란 사람 맞죠?”
하니를 보자 경서가 놀란 눈을 하고서 대답했다.
“네. 그런데 누구시죠?”
“당신 구해준 사람도 몰라요? 그건 그렇고, 왜 내가 당신 여자 친구라고 거짓말한 거죠?”
무섭게 쳐다보며 말하는 하니의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서가 입을 열었다.
“당신 도움이 필요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