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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사랑한다
목차
1화
<프롤로그>
거실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서 신문을 읽고 있던 우혁은 갑자기 읽고 있던 신문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야?”
우혁은 재떨이에 아무렇게나 담배를 비벼 끄고는 아직 화가 덜 풀린 표정으로 조금 전에 구겼던 신문을 펼쳐 읽다 만 기사를 마저 읽었다.
[영화배우 남우혁, 강남 유흥가에서 연인과 데이트!]
기사의 헤드라인이었다. 가보지도 않은 강남은 무엇이며, 있지도 않은 연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우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요 근래 일주일에 한 번씩 말도 되지 않은 추측성 기사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그가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쉬고 있지만 우혁은 인기 있는 영화배우이자 탤런트였다. 한때는 떠오르는 한류로 각광을 받기도 했었다. 그의 조각 같은 준수한 외모와 명문대 졸업, 재벌 2세란 배경 때문에 그의 인기는 한동안 식을 줄을 몰랐었다.
그래서 잠시 활동을 쉬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는 언론의 관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연예인이라 그런 엉뚱한 기사가 쏟아지는 것에 늘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었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있지도 않은 일이 기사로 쏟아지니 우혁은 당황스러운 데다 어이가 없었다. 소문이 좋지 않으면 차기작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에게 좋지 않은 소문은 독약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혁은 한숨을 내뱉었다. 곧 다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생긴 이 황당한 일 때문에 그는 신경이 쓰였다. 중요한 것은 기사가 나올 때마다 그의 사진이 실리니 우혁의 입장에선 더 황당하기만 했다.
처음엔 합성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들었지만 기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한신그룹의 차남을 대놓고 물 먹일 일이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사진이 합성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끊임없이 그런 제보들이 쏟아졌다.
매일 룸살롱을 들락거린다는 기사는 양반이었다. 게이라는 사진과 함께 남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다니는 사진이 실리기도 했으니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는 우혁이 호스트바를 다닌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가 사귀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소문과 함께 쌍둥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심지어는 성형 설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우혁이 뭐라고 반박을 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건, 다름 아니라 기사의 사진 속에 찍힌 인물이 바로 우혁 자신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였다. 자세히 살펴본다면 사진 속 주인공이 우혁이 아니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대중들이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마련 아닌가.
결국 우혁은 누군가가 자신을 사칭하고 다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그게 아니라면 우혁이 아닌 줄 빤히 알면서 기자들이 일부러 가십거리처럼 기사를 쏟아내는 것이다. 기자들이야 밑져야 본전인 일이니.
우혁의 매니저인 종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우혁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형님을 사칭하고 다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종수의 말에 우혁은 손가락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그런데 무슨 이유로 사칭을 하고 다니는 걸까? 목적이 있을 것 아냐.”
“누군가가 형님을 꼭 빼닮은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습니까? 하루만이라도 남우혁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형님을 사칭하면 여자들도 잘 붙을 테고, 인기도 좋을 테고 말입니다.”
하긴, 그런 이유 말고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우혁은 입술을 잘근 깨문 채로 말했다.
“백곰, 수고스럽지만 어떤 놈인지 찾아줘야 되겠다. 이놈, 면상을 한번 봐야겠어. 콩밥을 먹이든지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못하게 따끔하게 손을 좀 봐야 되겠어.”
우혁의 말에 종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물론 찾아야죠. 그런데 정말 형님을 똑같이 빼닮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사칭을 하는 것도 아니니…….”
듣고 보니 종수의 말이 맞았다. 정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한단 말인가. 자신은 생긴 대로 살고 있을 뿐인데.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 비슷하게 생겼겠지. 사진이란 각도와 조명, 거리에 따라 얼마든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사람이 정말 존재할까? 나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난 쌍둥이도 아닌데.”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
우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쌍둥이도 아닌데,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면……. 혹시 도플갱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죽는다는 그 도플갱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야?
우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비슷하게 닮았겠지.’
1. 도플갱어?
‘도대체 얼마나 닮았단 말인가.’
처음엔 황당함에서 조금씩 분노로 바뀌던 그 감정이 이제는 호기심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닮았기에 기자들이고 사람들이고 헷갈린단 말인가. 모든 사람들이 깜빡 속을 정도로. 하지만 계속해서 부풀려지는 소문에 우혁은 더 이상은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소문이란 한겨울 언덕에 쌓이는 눈만 같다. 누군가가 언덕 위에서 눈덩이 한 뭉치를 언덕 아래로 굴리기 시작하면 눈덩이는 계속 커지게 마련이다.
우혁은 주먹을 불끈 쥐고서 주차장까지 내려가 자동차에 올랐다. 차에 오르자마자 우혁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종수에게 말했다.
“좀 성과가 있어?”
우혁의 말에 덩치가 북극곰만 한 종수는 잔뜩 움츠러든 표정을 하고서 대답했다.
“형님, 왜 그렇게 성격이 급하십니까? 찾아보라고 하신 지 아직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백방으로 찾고 있으니까 금방 찾을 겁니다. 그러니까 며칠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어떻게든 찾아내겠습니다.”
“당장 찾아서 내 앞에 데리고 와.”
우혁의 불호령에 종수는 덩치에 맞지 않게 입술을 실룩거리며 곁눈질로 우혁의 눈치를 살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를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이건 딱히 사칭하는 것도 아니니,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종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우혁과 닮은 사람이 자주 나타난다는 유흥가 일대 클럽과 룸살롱 웨이터, 업소 아가씨에게 미리 일러두었었다. 남우혁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나면 즉각 연락을 하라고.
우혁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다 종수가 넌지시 말했다.
“형님, 받은 시나리오와 대본은 잘 검토해보셨습니까? 제가 볼 때는 정미혜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던데…….”
우혁은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고는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요즘 간섭이 꽤 많이 늘었다. 이제는 작품까지…….”
종수는 눈을 깔고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 간섭이 아니라…… 그냥 제 생각에 그렇다는 겁니다. 뭐, 제 생각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니까 형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우혁은 씩 미소를 지었다.
“참고는 해볼게. 넌 촉이 좋으니까.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시킨 거나 잘 알아 봐. 그 녀석 말이야.”
“네. 형님.”
우혁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코로 한숨을 길게 내뱉은 뒤, 양팔로 팔짱을 낀 채 시트에 몸을 기댔다. 요 근래는 가까운 지인들까지 우혁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연일 기사가 쏟아지니 의심을 하지 않으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게이가 아니냐는 소문, 그리고 룸살롱 출입, 있지도 않은 열애설.
이틀 뒤, 우혁은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댄 채 탁자 위에 놓인 몇 개의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을 검토하고 있었다. 평소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의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던 그라 이번에도 우혁은 그런 배역을 원하고 있었다. 주위에선 새로운 캐릭터를 권했지만 아직까지 우혁은 망설여졌다.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배우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아왔으니까.
아직 김이 채 가시지 않은 미지근한 커피 한 잔을 들이켜며 대본을 읽어보던 우혁은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현관을 넌지시 응시했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이 아파트를 자유자재로 올 수 있는 사람은 매니저를 맡고 있는 종수밖에 없었다. 거실 쪽으로 뒤뚱거리며 들어오는 그를 보자마자 우혁이 입을 열었다.
“백곰, 찾았어?”
종수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네. 찾았습니다.”
찾았다는 종수의 말에 우혁은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래? 어디 있어? 당장 보러 가자.”
“형님, 그런데…… 그게 말입니다.”
“왜? 뭘 그렇게 뜸 들여? 그놈 알고 보니 무서운 놈이야? 아니면 대단한 놈이야?”
종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게 말입니다. 형님하고 닮기는 정말 많이 닮았습니다. 저도 보자마자 형님, 하고 말할 뻔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그게……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여자?”
듣고도 우혁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정말 여자였어? 그런데도 나하고 닮았단 말이야?”
“네. 정말 형님하고 쌍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빼닮았습니다.”
“여자인 것은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까지 제가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변태일 수도 있잖아.”
“멀리서 보면 헷갈리지만 가까이서 보니 여자가 확실했습니다.”
우혁은 한쪽 입가를 지그시 올렸다. 자신을 닮은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니. 그 사실에 우혁은 궁금증이 일었다. 자신과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다.
“여자인데 나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거 참 웃기는 일이군. 백곰, 내가 여자처럼 생겼어? 아니면 그 여자가 남자처럼 생긴 거야?”
종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이 닮기는 엄청 많이 닮았는데 우혁은 남자처럼 생겼고 우혁을 닮은 그 여자는 여성스럽게 생겼었다.
“형님은 남자처럼 생겼고 그 여자는 여자처럼 생겼습니다.”
간단한 종수의 대답에 우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꽃미남, 조각 미남 같은 소리는 들었지만 여자처럼 곱상하다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우혁이었다. 닮았다는 인물이 여자라고 하니 우혁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그 여자,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 거야?”
“직장을 알아냈습니다. 잡지사에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마치는 시각에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나보고 잠복이라도 하라는 거야?”
“아, 아니 제가 설득해서 데리고 올 테니까 형님은 커피숍 같은 데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그럼 나가서 식사부터 하고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네가 알아서 데리고 와. 거칠게 하지 말고 정중하게 모셔와.”
“……네.”
우혁은 저도 모르게 정중하게 모셔오라고 말을 했다. 자신을 닮은 여자에 대한 묘한 동질감이랄까.
“그럼 같이 나가자. 백곰, 뭐 먹고 싶어? 또 삼겹살이라고 말하면 죽는다.”
우혁의 눈치를 살피며 종수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날도 덥고 한데, 삼계탕은 어떻습니까?”
“또 고기야? 좋아. 삼계탕은 봐준다. 너 먼저 내려가서 차에 에어컨이나 빵빵하게 해 놓고 있어.”
“네. 형님.”
우혁은 종수가 현관을 나가자마자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서 현관 벽면에 걸린 거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나를 닮은 여자라…….’
우혁은 자신의 얼굴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았다. 마치 지우개로 그림의 선을 지우듯 자신의 눈과 코, 입술 라인을 부드럽게 고쳐보았다. 붓으로 그리듯 자신의 눈을 크게 그리고 쌍꺼풀까지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입술에도 붉은 립스틱을 바르는 상상까지 했다. 하지만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보아도 거울 속에 보이는 모습은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남우혁만 존재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되는 일을 상상까지 하고 있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웃기는 것이다. 우혁은 혼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