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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욕실에 들어온 동하는 지팡이를 벽에 세운 후 거울을 보았다. 손바닥으로 까칠해진 얼굴을 쓸어내린 후 다시 시선을 내리니 바지춤이 크게 부풀어올라있는 것이 보였다. 혁대와 버클을 풀고 속옷을 내렸다.
단단하게 일어선 몸끝을 붙잡고 손을 움직였다.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이정의 신음, 열기에 들뜬 그녀의 얼굴과 뜨겁고 촉촉했던 음부를 떠올리며, 손에 악력을 가했다.
마스터베이션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이마에 쾌감의 흔적이 주름으로 깊게 새겨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녀의 안을 뚫어버리는 상상이 그를 폭주하게 만들었다.
“끄응.”
이윽고 손끝에서 묽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정수리까지 저릿해지게 만드는 감각이 찾아왔다. 동하는 신음 같은 호흡을 연신 내뱉으며 달아오른 가슴을 다독거렸다. 잠시 흐트러졌던 모든 것들의 뒤처리를 완벽하게 한 후, 벽에 세워둔 지팡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한숨 끝에 매달린 가느다란 실소. 동하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이곳으로 내려온 이후 단 한 번도 웃지 않은 너.
매번 절망하면서도 끝내 강제로 널 안지 않는 이유는, 네 가슴이 나를 간절하게 원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
넌 몰라.
네 젖가슴에 키스를 한 내가 욕망을 참기 위해 어떤 수고를 해야 하는지.
이 밤이 얼마나 큰 고통이 될지.
욕망보다 더 짙은 내 마음을 모르는 네가,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는지.



1.



-누구세요.
“네. 저는 김진규 교수님 소개로 온 허이정 학생입니다.”
하얀색 외벽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저택을, 이정은 망연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압도적인 규모의 집이었다. 제 얼굴이 투명하게 비치는 황금색 대문 옆에는, 적어도 자동차 다섯 대 정도는 너끈히 주차시킬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었다.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혀야만 보이는 대문 위는 기와가 고급스럽게 얹혀 있었다.
인터폰을 통한 대화가 잠시 끊긴 틈을 타, 이정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어제 김진규 교수가 했던 말이 언뜻 스쳤던 것도 그때였다.

‘한 번 들르기나 해봐. 과외비는 다른 곳보다 다섯 배는 족히 더 받을 수 있을 거야. 다만 상대가 중 고등학생이 아니라 머리가 다 커버린 스물 한 살짜리라는 게 걸리긴 하지만. 자네하고 동갑이니까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함께 공부한다고 생각해.’

머리가 다 커버린 스물 한 살짜리. 김진규 교수는 그 스물 한 살짜리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지인으로부터 믿을 만한 제자를 물색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늘 생활고를 겪고 있는 이정을 떠올렸다고만 했다.
한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대학교의 수학교육학과 장학생이지만, 부모 없이 일찍부터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해야 했던 성실한 제자 이정을 김진규 교수는 항상 안타깝게 여겨왔다.
김진규 교수의 제안이 아니었다 해도 이정은 이미 다른 곳의 다섯 배, 라는 것에 홀려 있었다. 일 년 동안 과외를 해서 저금을 하면 생활비 걱정 없이 남은 공부를 모두 마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도 순식간이었다. 임용시험 준비도 문제없을 것이다. 이정은 김진규 교수의 제안을 덥석 물었고, 지금 이 집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 외관의 위용에 반쯤 넋이 나가버렸다.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질적인 풍광에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다. 교수님께는 죄송하다고 하고 그냥 돌아갈까, 라는 갈등이 일었다.
-네. 들어와요.
아까와는 다른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이정은 갈등이 담긴 표정으로 가방끈을 고쳐 메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위로 만들어진 계단 몇 개와 정원으로 이어지는 디딤돌 몇 개를 디디는 동안, 이정의 시야에 비쳐든 광경은 축구장을 연상케 하는 넓고 푸른 잔디였다.
대문 앞에서와는 달리 숨이 트일 정도로 광활한 정원이었다. 언젠가 수학여행 때 잠시 가본 적 있던 대관령의 어느 목장처럼 짙푸른 색깔이었다. 저만치 앞엔 엊그제 내린 눈이 쌓여 채 녹지 않은 나무그네가 보였다. 겨울과 어울리는, 조금은 처연하고도 을씨년스러운 그 모습들을 눈으로 훑으면서, 이정은 걸음을 옮겼다.
“어서 와요. 이정 학생.”
“반갑습니다.”
현관에는 차콜 무늬 홈드레스를 정갈하게 갖추어 입은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정은 엉거주춤 인사를 하며 심호흡을 했다.
“어제 김 교수님한테서 연락받았어요. 잘 부탁해요. 이정 학생.”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잘 부탁드려요.”
“과외 경험은 많다 들었는데 아마 스물 한 살짜리는 처음이겠죠?”
여인은 인자하게 웃으며 이정을 거실로 안내했다. 테이블에는 벌써 찻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발을 디디는 공간마다, 눈으로 훑어대는 것들마다, 반짝거리지 않는 것들이 없었다. 초록색 양탄자는 올올이 부드러워 감히 올라서는 것조차 무안할 지경이었다.
소파에 자리하자마자 여인은 흰 봉투를 내밀었다. 과외비라고 덧붙였지만 그 두께에 짐짓 놀라 다섯 배가 아니라 열 배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정이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어쩌지 못하고 있는 사이,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과외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 있는 선생님도 수소문해봤지만 아무래도 지인을 통해 알아보는 게 더 낫겠다 싶었어요. 뭐랄까, 요즘은 워낙 사람 사이에도 불신이 많은 분위기잖아요. 이정 학생은 과 수석에 과외 경험도 많다고 들었고 뭣보다 수능을 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 판단했죠. 김 교수님의 칭찬도 한 몫 단단히 했구요. 애가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노력을 안 해요. 이정 학생이 친구처럼 이끌어주고 동기 부여를 해주면 좋겠어요.”
“아, 네.”
부스럭거리는 봉투 소리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부인의 과도한 칭찬 한 마디 한 마디에 이정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지나친 기대감과 더불어 이 집이 주는 위압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연신 긴장이 묻은 입술만 혀끝으로 쓸고 있었다.
“3층 끝 방에 가면 돼요. 그럼 부탁할게요.”
부인은 그렇게 말한 후 거실을 떠났다. 잠시 후 나타난 사람은 양복을 단정히 차려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이정은 남자의 안내를 받고 계단을 올랐다. 부인이 말한 3층 가장 끝 방에 도착하자, 남자는 임무를 다한 표정을 지어보인 후 내려갔다. 혼자가 되어서야 굳은 어깨가 얼마쯤 누그러졌다. 갈등이 끼어들기 전에 서둘러 노크를 한 그녀는 최대한 덤덤한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방 안에선 대답이 건너오지 않았다. 혹시 못 들은 건가 싶어 귀를 바짝 세워 문에 갖다 대었지만 돌아온 건 침묵뿐이었다. 이정은 하는 수 없이 노크를 세 번 더 한 후 ‘들어갈게요.’라고 크게 외치며 삐거덕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