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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프롤로그(2)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델……?
눈을 가늘게 뜬 채 기억을 더듬으며 그 남자의 기다란 다리를 지나 반질한 구두 끝까지 스캔한 뒤 다시 위로 올라갔을 때, 유주의 눈이 그 남자의 눈과 딱 마주쳤다.
남자의 눈이 묘한 빛을 띠더니 관능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런!
그제서야 자신이 남자를 대놓고 아래위로 훑으며 감상했다는 걸 깨달은 유주가 고개를 홱 돌렸다. 마치 대놓고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처럼 보였을 거라는 생각에 술기운을 뚫고 민망함이 치솟았다.
유주는 최대한 몸을 똑바로 가누려 애쓰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도망치듯 홀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그녀가 취하지 않은 척 애를 써도 가느다란 다리가 위태롭게 휘청이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걸어온 유주는 찬물에 손을 담그고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안에는 엉망으로 취한 여자가 보였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남자한테 배신당하고 혼자 취해서 이러고 있는 자신이 무척 비참하게 느껴졌다. 자존심 빼면 시체라는 생각으로 영국에서의 5년간을 버텨 왔다. 자존심이라곤 형편없이 뭉개진 취한 얼굴 위로 루시의 말, 그리고 루시가 보낸 그녀의 남자였던 필립이 침대 위에서 뒹구는 사진이 지나갔다.
일순 그녀의 얼굴에 매서운 독기가 서렸다.
까짓 그러면 뭐 어때?
멋진 남자를 보면 유혹도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유주는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에서 나갔다.
만약 아직도 그 자리에 그 근사한 남자가 있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먼저 남자에게 손을 내밀 생각이었다. 오늘 밤, 말로만 듣던 유혹이라는 걸 해 볼 작정이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인해 시야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푸른빛이 일렁이는 복도가 흔들리자 마치 물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득한 물속.
……어?
복도 끝에 그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앉아 있을 때도 느꼈지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더 근사했다. 키가 크고 적당히 마른 듯한 체형에 탄탄한 근육이 느껴지는 몸이라 피트 되는 슈트가 무척 잘 어울렸다.
그 남자는 유주가 자신을 보고 멈춰 서자 천천히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유주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보기 좋게 벌어진 어깨와 날렵하게 떨어지는 허리. 그 아래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다리로 성큼성큼 그가 다가왔다.
마침내 그녀가 서 있는 바로 앞까지 그 남자가 다가왔다.
“……날 기다린 건가요?”
가까이서 보니 그 남자는 생각보다 더 키가 컸다. 그가 자신의 앞에 서서 내려다보자 유주가 물었다.
“따라오란 소리 아니었나? 난 네 눈빛에서 분명 유혹을 느꼈는데.”
아찔할 정도로 섹시한 눈웃음을 지으며 남자가 느릿하게 말했다.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유주의 알코올에 잠식된 심장을 점점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이런. 그렇게 받아들였나요?”
유주가 조명의 푸른빛이 감도는 유리벽에 어깨를 기대고 몸을 지탱한 채 나른하게 웃었다. 평소 이런 남자가 다가오면 가시부터 세웠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유혹하고, 유혹당하고 싶었다. 온전하게.
유주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푸른빛 눈동자를 응시했다.
레드계열의 드레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를 아찔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을 남자가 진한 시선으로 느리게 훑었다. 만지면 사르륵 흩어질 것 같은 윤기 도는 새까만 머리칼과 붉은 원피스, 그리고 순백의 도자기처럼 깨끗한 동양 여자의 피부가 그의 눈동자를 점점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남자가 그녀에게 한 발 더 다가왔다.
술기운 속에서도 남자의 짙은 우드계열 향수향이 유주의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됐다. 어지러운 그 향기에 취할 것만 같았다.
그가 고개를 천천히 숙이고 유주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이제 와서 모른 척하면 곤란해. 난 네 눈빛으로 이미 달아올라 버렸으니까.”
귓가에 바짝 입술을 갖다 대고 뜨거운 숨을 불어넣자 유주는 순식간에 아랫배가 조이듯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묘한 분위기와 섹시한 목소리가 이상하게 몸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내가 술에 취한 건가? 그래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아니…… 아니다.
이 남자 자체가 위험스러울 정도로 아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유주는 이런 분위기를 가진 이들이 어떤 부류인지 알고 있다. 그녀가 있는 화려한 세계에선 타고난 분위기만으로 상대를 홀리는 부류가 명백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분명 그런 부류에 속하는 남자였다. 단 한 번의 시선으로도 정신 못 차리게 이성을 뒤흔들 수 있는 남자…….
기다란 속눈썹 아래 보석 같은 눈동자가 유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는 남자의 시선에 갇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유주는 이 남자에게 자신이 점차 매료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나는…….”
유주가 붉은 입술을 열었을 때, 남자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그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유주가 본능적으로 입술을 벌렸다. 이 남자의 관능적인 입술 안에 담긴 뜨거움을 맛보고 싶었다.
입술이 벌어지자 말캉한 혀가 그녀의 입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축축한 혀가 유주의 혀를 휘감고 빨아들이자 아찔한 쾌감이 아랫배를 바짝 조였다. 음란할 정도로 관능적인 혀의 움직임에 숨이 턱턱 막혔다. 유주의 입술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오자 물기 젖은 소리를 내며 입술이 떨어졌다.
짧지만 강렬한 키스였다.
“나는 널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하겠어?”
입술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남자가 말했다. 매혹적인 푸른 눈동자가 꼼짝없이 유주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런 관계, 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좋아요.”
유주는 승낙의 말을 내뱉고는 남자의 가슴을 천천히 손바닥으로 쓸었다. 단단한 감촉이 부드러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자 묘한 기대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 말 외엔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었어.”
오만한 표정으로 그녀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던 남자가 입술 끝을 슬쩍 올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유주는 입술에 닿는 뜨거운 열기를 한껏 빨아들였다. 남자의 키스는 모든 걸 줄 듯 퍼붓다가 애타게 빠져나갔다. 그의 타액이 진한 욕망의 향으로 그녀를 위험한 숲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마실수록 갈증이 일어 유주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열정적으로 그의 입술을 탐했다.
“하아.”
입술이 떨어지며 거친 숨결이 탄성처럼 뿌려졌다.
그의 손이 어느새 유주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아 자신에게 바짝 끌어당기고 있었다. 단단한 그의 몸이 전신에 닿았다. 맞닿은 하체에 느껴지는 성적인 욕망이, 그녀의 숨결을 더욱 거칠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음란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여성을 쿡쿡 찌르듯 자극하는 그의 몸짓은 섹스보다 자극적이었다.
“앗, 여기선…….”
유주가 그를 붙잡은 채로 올려다보자 그녀만큼이나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던 남자가 팔을 잡아끌었다.
“따라와.”
유주는 잠자코 그에게 잡혀 따라갔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밤은…… 오늘 밤만큼은.



1. 도망친 숨결(1)


“앗!”
차가운 거울로 밀쳐진 유주는 드레스 사이로 기다란 손가락이 단숨에 들어오자 흠칫 놀랐다.
대담하게도 바의 남자 화장실 안으로 유주를 이끈 남자는 사방이 거울로 되어 있는 음란한 칸막이 안으로 유주를 밀어 넣었다.
그는 정신없이 키스를 퍼부으며 허벅지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탐욕적으로 훑어 올렸다.
“흐읏.”
남자의 손가락이 예민한 살갗을 파고들어 오자 그의 입술 안에서 유주가 신음을 터뜨렸다.
“목소리가 좋군. 내 취향이야.”
유주의 입술을 핥으며 남자가 낮게 말했다. 그녀의 여린 목덜미를 힘껏 빨며 내려가자 유주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예민한 살을 빨아들이는 남자의 뜨거운 입술에 유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건…… 아!”
그의 큼직한 손이 드레스용 누드 브래지어를 걷어 내고 봉긋한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의 강한 손가락에 탱탱하게 부푼 가슴이 눌린 고무공처럼 엉망으로 모양이 일그러졌다. 바짝 곤두선 분홍빛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자 아랫배가 바짝 조여들었다.
남자는 피가 잔뜩 몰려서 더욱 팽팽해진 젖꼭지를 한 입에 집어삼켰다.
“아앗.”
미끈한 혀로 살살 굴리듯 애무하며 한쪽 손으로는 얇은 브리프 위를 문지르자 유주의 허리가 크게 휘었다.
“여기가…… 예민하군.”
그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유두를 살짝 문 채로 웅얼대듯 말하자 뜨거운 입김과 아릿한 고통에 더욱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애액으로 흥건히 젖은 브리프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도톰한 살을 남자의 손가락이 노골적으로 문질러 댔다.
“하, 아읏……. 그만해요. 아앗!”
성감대를 동시에 자극당하자 유주의 헐떡임이 커져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 꺾이자 남자의 다리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와 지탱했다. 그의 집요한 혀와 손가락이 유주의 성감대를 끊임없이 공략하고 있었다. 젖은 브리프를 밀치고 안으로 파고든 손가락이 미끈한 좁은 입구 속으로 단번에 침입해 들어왔다.
“아!”
질척해진 그녀의 속살이 그의 손가락을 남김없이 삼키며 진한 애액을 흘렸다. 남자는 좁은 틈새를 거침없이 쑤걱거리며 밀어 올렸다.
“아앗, 아, 앗……!”
좁은 입구가 순식간에 흥건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손가락이 드나들기 수월해지자 그는 팔에 힘을 주고 힘껏 깊이 들쑤셔 댔다. 그 노골적인 쾌감에 유주의 머릿속이 아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