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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넌트
1화
프롤로그(1)


눈이 가려져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포보다 이 방 안에 그가…… 그 남자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어둡고 짙은 색조의 이 방은 어떤 빛도 반사시키지 않으리만치 무겁고 불투명한 블랙과 레드, 그 두 개의 칼라만이 공존한다.
빳빳하고 두꺼운 질감의 붉은 벨벳 커튼과 광택이 도는 새틴 재질의 시트, 천장과 맞닿은 거대한 네 개의 기둥이 세워진 침대, 고급스럽기 짝이 없는 거대한 가구들이 보이지 않아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그는 어디 있는 거지?’
그의 존재를 떠올리려 하자 본능적으로 숨이 가빠 왔다. 그는 언제나 단 한 조각의 숨결도 남김없이 흩뜨려 놨고 그 흐트러진 숨결마저 지배하려 들었다. 이 방 어딘가에 그가 있다. 예민해진 피부 끝에 오소소 곤두서는 솜털이 그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정세린.”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네.”
기다림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알기에 바로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 곳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침대 위? 아니면 가죽 소파 위? 어쩌면 아주 가까운…….
“네가 누구라고?”
습관 같은 확인.
“당신의 노예입니다.”
“당신?”
낮지만 날카롭게 치켜 올라가는 목소리에 얼른 말을 정정했다.
“주인님,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그는 나의 주인님이다. 주인님이어야 한다……. 적어도 이 방 안에서는. 그게 규칙이니까.
“늦었어.”
위협적으로 낮아진 목소리가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렸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거센 심장의 펌프질과 함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뜨거워졌다.
나는 긴장을 숨기기 위해 턱을 치켜들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온몸에 흐르는 긴장도, 입안을 바짝 마르게 하는 두려움도 절대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난 네 주인이지.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야.”
느릿하게 말한 그가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것을 그의 향기가 확인시켰다. 고혹적인 관능미와 지독한 오만함이 가미된 아르모아즈 향이 훅 풍기자 심장박동이 더욱 요란해졌다.
‘이건 플레이일 뿐이야.’
그저 계약으로 이뤄진 하나의 게임…… 난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야.
아무리 세뇌를 시켜 봐도 몸을 지탱하고 있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긴장이 됐다. 이 긴장이 두려움의 긴장인지 성적인 긴장인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벗어.”
플레이가 시작됐다. 낮은 명령이 떨어지자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손을 들어 내 셔츠 단추에 가져갔다. 그의 명령은 게임 스타트 버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게임 화면 안의 캐릭터처럼 그가 버튼을 누르는 대로 움직일 뿐.
달칵, 달칵.
단추를 위에서 아래로 하나하나 푸는 손가락에 그의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긴장으로 손가락이 자꾸만 엇나가려 해 나는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단추를 풀었다. 단추를 모두 풀고 셔츠를 어깨 아래로 벗어 내리자 실크 블라우스가 사라락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스커트의 옆 지퍼를 내리자 스커트가 다리를 감싸듯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이제 내 몸을 가리고 있는 건 짙은 퍼플색의 브래지어와 얇은 브리프뿐이었다.
“다 벗은 건가?”
느른한 목소리였지만 송곳 같은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나는 짧게 숨을 들이켜고 팔을 뒤로 돌렸다. 손끝을 더듬거려 연결된 브래지어 후크를 풀자 차가운 금속성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울렸다. 타이트하게 맞물려 있던 탄력 있는 젖가슴이 아래로 출렁 쏟아져 내렸다.
어깨끈을 하나씩 잡아 내리자 브래지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늘한 공기 중에 노출된 젖꼭지가 팽팽하게 곤두서는 것이 느껴졌다. 얇은 실크 브리프마저 양손으로 잡아 내리고 똑바로 섰다.
눈이 가려진 게 다행일까?
완벽한 나체로 그의 앞에 서 있는 이 순간엔 눈을 가려 주는 이 천이 고맙게 느껴졌다.
“…….”
그는 말이 없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입안이 바짝 말랐다.
나는 그가 어떤 말이든 해 주길 바라는 걸까? 모르겠다.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내 몸을 집요하게 훑는 그의 짙은 눈동자가 날 흥분시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가 내 팔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 그의 손아귀 힘대로 끌려가다 어느 지점에서 그가 손을 놨다.
“앉아.”
나는 얌전히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무릎을 굽히자 맨엉덩이에 벨벳의자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둥근 엉덩이와 그 사이 은밀한 부위에 세밀하고 촘촘하게 올라온 극세사의 보드라운 감촉이 닿았다.
“……아.”
극세사 감촉이 진분홍색 도톰한 속살에 자극을 주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와 입술을 꽉 물었다.
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이후 내 몸은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멋대로 반응했다. 마치 그가 원하는 대로만 완벽하게 반응하는 인형으로 길들여지듯…….
‘웃기지 마.’
질끈 깨문 입술 사이로 오기가 치솟아 올랐다. 난 당신 뜻대로 되지 않아. 절대.
“다리 벌려.”
꽉 조여드는 은밀한 부위를 들키지 않으려 오므리고 있던 다리가 그의 명령에 의해 벌어졌다.
“더.”
엄격한 목소리에 다리를 더 벌렸다. 다리가 벌어지는 움직임에 부드러운 극세사가 연약한 살을 자극했다. 아랫배가 바짝 조여들며 미끌거리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촉촉이 젖어 있을 그곳을 그가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랍에서 무언가 꺼내는 소리가 들린 뒤 그의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그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 속 깊은 곳의 근육이 은밀하게 조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손, 뒤로 돌려.”
의자등 뒤로 손을 돌리자 내 손목에 달그락거리는 차갑고 단단한 금속성 재질이 느껴졌다. 묵직한 수갑으로 손목을 결박시킨 그가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잘그락, 잘그락.
가느다란 의자 다리와 내 발목을 연결한 수갑이 하나씩 채워졌다. 이제 눈이 가려진 채 다리를 벌리고 의자에 사지가 결박됐다. 숨결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흥분과 긴장의 경계에 놓인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감각이 온몸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손목과 발목을 결박하고 있는 묵직한 수갑이 내는 소리가 귀 안을 자극했다. 시야가 차단되면 주위의 모든 감각에 예민해진다는 걸 이 남자로 인해 처음 알았다. 소리와 향, 질감과 촉감…… 그 모든 것이 평소보다 몇 배나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
“네가 누구라고?”
내 앞에 선 그가 말했다. 그는 수시로 그걸 확인받으려 했다.
“노예…… 주인님의 노예요.”
“잘했어.”
낮게 칭찬한 그의 목소리에서 관능적인 웃음이 느껴졌다. 그다음, 불시에 가슴 끝에 뜨거운 감각이 닿았다.
“앗……!”
촛농이 가슴 끝에 떨어졌다. 그가 초를 들고 있다는 것도 몰랐기에 그 급작스러운 감각을 예상하지 못했다. 저온초의 붉은색 촛농이 팽팽하게 곤두선 분홍색 유두에 한 방울 떨어지자 뜨거움과 짜릿함이 온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아, 아…….”
둥근 유두를 타고 미끄덩한 촛농이 가슴 모양을 따라 흘러내렸다.
“더 커졌군. 흥분한 건가?”
어느새 바짝 다가온 그의 목소리가 내 귓속에 파고들었다. 그의 차가운 목소리와 달리 뜨거운 숨결이 귓속의 솜털을 건들자 발가락 끝까지 바짝 오므라들었다.
“이쪽도 같이 흥분하지 그래.”
“핫!”
이번엔 정확히 반대쪽 유두로 촛농이 떨어졌다. 동그랗게 팽창한 살덩이에 촛농이 닿는 순간 델 듯한 뜨거움이 느껴졌다가 곧바로 그 감각은 쾌감으로 바뀌었다. 강한 자극을 가하는 촛농이 예민한 젖꼭지를 타고 둥근 젖가슴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이쪽이 더 크게 부풀었는데. 음란하게.”
그가 뜨거운 촛농에 닿아 팽창된 유두를 손가락으로 죽 잡아당겼다.
“아, 아파요.”
“아파?”
아파? 아니, 아니야.
“아니…… 흣.”
순간적인 자극에 아프다고 생각했던 감각은 고통과 쾌감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사이에 있었다.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강한 자극에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그와 나누는 모든 행위가 그랬다. 처음은 고통으로 인식하지만 곧 그 감각은 참을 수 없는 쾌감으로 변한다. 모든 감각은 완벽한 그의 통제 아래 있었다.
“아, 아…….”
그가 유두를 잡아당기며 살짝 비틀자 찌릿, 하고 강한 전류가 흘렀다. 그가 손가락으로 지분거리던 유두를 놔주고 다시 촛농을 떨어뜨렸다.
“으, 앗.”
연이어 터지는 짜릿한 자극에 의자가 덜컹거릴 정도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움직일 때마다 수갑이 덜그럭거리며 조여든다. 숨결이 거칠어지고 흘러내린 촛농이 헐떡이는 아랫배를 따라 내려갔다.
“젖었군.”
그가 아플 정도로 피가 몰린 진홍색 유두를 놔주고 낮게 말했다. 이 순간에도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차가웠다.
“네가 줄줄 흘리니까 의자가 젖잖아.”
주르륵, 아까보다 많은 양의 촛농이 떨어져 내렸다. 헐떡이는 가슴을 지나 흘러내린 촛농이 벌어진 다리 사이의 검은 숲으로 미끄러지자 그의 손가락이 불시에 그곳으로 파고들었다.
“핫……!”
미끄덩한 촛농이 듬뿍 묻은 굵은 손가락이 딴딴하게 피가 몰린 동그란 음핵을 무자비하게 비벼 댔다.
“아, 아, 앗.”
세게 마찰을 일으키는 그의 거친 움직임에 따라 신음이 뚝뚝 끊겨 나왔다. 그의 무자비한 손놀림에 다리 사이가 더욱 조여들며 뜨거운 욕망의 샘물을 흘려보냈다. 그가 애액과 촛농이 섞인 끈적한 질구로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깊게 쑤걱거리는 움직임에 나는 크게 헐떡였다.
‘그, 그만!’
참기 힘든 날 선 쾌감이 연속적으로 엄습하자 차오른 뜨거움을 더 이상 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푹 찔러 들어간 곳에서 뜨거운 샘물이 왈칵 터져 나오려는 순간,
“이런, 안 되지.”
느른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아, 하아…….”
찐덕한 애액과 함께 단단한 손가락이 확 빠져나가자 달싹거리던 엉덩이가 아쉬움으로 바르르 떨렸다.
“내가 쉽게 가게 해 줄 것 같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 귓가에 그의 잔인한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한껏 터질 듯 뜨거워진 나와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냉정했다.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더 해 달라고 안달이 났군. 음란하기 짝이 없어.”
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뜻대로 너무나 쉽게 흥분해 버리는 내 육체에게 화가 났고, 그런 스스로가 경멸스러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을 크게 들이켜는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자, 잠깐……!”
그의 손가락이 거둬진 자리에 훅 하고 뜨거운 입김이 닿았다. 허여멀건 애액이 엉킨 검은 음모에 입김이 닿자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아, 아, 거긴……!’
그가 옴찔거리는 도홧빛 조갯살을 덥석 물었다.
“아으읏―!”
벌겋게 부어오른 속살이 그의 뜨거운 입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손발이 결박된 상태로 허리가 확 휘어지고 고개가 쳐들렸다. 춥, 추웁 소리를 내며 습한 살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자 머릿속이 하얗게 부서졌다.
싫어. 싫어.
눈이 가려져서, 소리에, 감각에 한없이 예민해지는 게 너무 싫었다. 그가 무릎을 꿇고 내 은밀한 부위를 빨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머릿속에 펼쳐졌다.
“으, 아, 아앗, 아, 아앗!”
신음이 제멋대로 터져 나왔다. 뜨거운 입술에 크게 물렸다 풀려날 때마다 꿀렁거리며 미끈한 애액이 쏟아져 나왔다. 미칠 듯한 자극에 다리를 오므리려 할수록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 오히려 자극이 더 커졌다. 그의 입술이 빨아들이는 대로 엉덩이가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멋대로 움직이라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