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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스타 1화
1. 기다리는 男과女
「찾지 마라.」
라고, 짤막하게 적혀 있는 쪽지를 보면서 채영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민성, 네가 또……!”
뒷골이 당겨 오며 혈압 또한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채영은 악마같이 잘생긴 민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분노에 떨려 오는 몸을 푹신한 소파에 기댔다.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 잠수란 말인가? 그래! 자유로운 영혼, 좋다 이거야! 하지만 새로운 작품 미팅을 앞두고 잠수 타는 이 못된 버릇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며 놀고 있을 때 잠수 타는 거야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왜 꼭 이런 시기에만 잠수를 타는 걸까? 이젠 놀랍거나 당황스럽지도 않다.
“미안해요, 유 실장님.”
로드 매니저인 훈이가 채영의 눈치를 슬그머니 살피며 말했다.
“잘 지켰어야 했는데. 아, 잠깐 배가 아파서 화장실 간 사이에…….”
채영이 손을 들어 듬직한 훈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괜찮아. 이 녀석 이러는 거 어디 한두 번이야? 내가 찾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넌 그만 들어가. 고생했어.”
“네, 유 실장님. 수고하세요.”
훈이를 돌려보낸 채영은 눈을 반짝이며 혹시나 민성이 남겼을 흔적을 찾아다녔다. 고의로 남기는 건지, 실수로 남기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잠수 탈 때마다 꼭 흔적을 하나씩 남기는 녀석이었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 위에 걸려 있는 민성의 반나체 사진이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 까만 눈, 오뚝한 코, 붉은 입술, 거기에 여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근육과 탄탄한 식스팩, 볼 때마다 느끼긴 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외모이긴 했다.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좀 예쁘면 얼마나 좋아.”
걸려 있는 사진이 민성이라도 되는 양, 채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내뱉었다. 왜 한 번씩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찾으면 죽었어, 너.”
민성의 사진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던 채영은 천천히 침실 안을 수색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베개 아래에서 ‘제주도’에 관련된 여행 책자를 발견했다.
“설마…… 이번엔 제주도냐?”
제주도에 관련된 책자를 스르륵 넘겨 보던 채영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나마 제주도면 수색하기가 좀 더 수월했다. 관광 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만큼 보는 눈들도 많겠지. 팬카페에 접속한 채영은 목격자들이 있길 바라며 팬카페 게시판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오케이, 찾았어.”
꺄아아! 방금 이민성 봤어요!
원하던 글 제목을 찾은 채영은 재빨리 그 글을 클릭했다.
완전 득템입니다, 득템!
와, 지금 완전 흥분해서 타자도 잘 안 쳐지네요!
다른 님들이 맛집에서 민성이 봤다고 했을 땐 부러워서 늘 침만 질질 흘렸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글쎄 민성이가 이 먼 우도까지 올 줄은 정말! 흑흑!
진짜 실물은 다른 님들 말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고요.
인간 같지가 않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저와 같은 인간일 수 있나요?
여기까지 읽은 채영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나쁜 놈. 진짜 제주도였어? 멀리도 갔네.”
우도라니. 그 녀석을 잡으러 우도까지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나마 해외로 튀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매번 잠수를 탈 때마다 점점 더 멀리 가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취미가 맛집 탐방이란 사실엔 감사하고 있었다. 유명한 맛집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인 녀석이라 이렇게 팬카페에만 접속해도 녀석을 목격한 팬들을 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덜미는 잡았다. 이제 잡으러 갈 일만이 남았다.
“이민성, 각오해라.”
*
6월의 제주도는 푸르렀다. 파란 하늘, 그 하늘과 어울리는 푸르른 바다, 하얀 갈매기들이 하늘과 바다를 벗 삼아 춤을 추는 무릉도원. 그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이런 곳에 얄미운 이민성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휴가로 왔다면 정말 기뻤을 것 같다.
햇살이 찬란하게 내리쬐는 우도로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채영은 속으로 민성을 향해 아는 욕이란 욕은 모조리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제일 유명한 낚시터를 물었다. 이민성이 맛집 탐방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바로 낚시였기에.
하지만 사람들은 허허 웃으면서 ‘우도 자체가 낚시터’라는 절망적인 말을 채영에게 던졌다. 방파제랑 갯바위, 그 어디서든 낚시하기 좋은 게 바로 우도라고. 그 말에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채영은 애써 기운을 차리며 방파제와 갯바위 중심으로 천천히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제발 얄미운 이민성이 이 섬에 머물러 있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촬영이나 관광으로 몇 번 우도에 온 적이 있었기에, 채영은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섬 입구에서 스쿠터를 렌트했다. 분명 민성이 차를 렌트했을 게 뻔했기에, 그녀는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굳이 렌터카를 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는 길엔 자신이 그 차를 운전해야 할 테니까.
오늘,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청바지에 깊은 감사를 하며 스쿠터에 오른 채영은 천천히 출발을 했다. 이따금 방파제와 갯바위가 보일 때마다 스쿠터를 멈춰 세우고는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하지만 이 섬에는 이민성이 없는 건지, 좀처럼 녀석의 잘난 얼굴은 눈앞에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도 없다면 도대체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하는 걸까? 이민성 성격상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3년 전인가, 하도 열이 받아서 채영도 아예 찾으러 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되도록 녀석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끝내 백기를 든 채영이 허겁지겁 녀석을 찾으러 간 적도 있었다. 정말 지독하게 여유작작한 녀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쁜 녀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돌아올 땐 신기하게도 자신이 찍을 배역에 대한 분석을 아주 완벽하게 해 온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것에 대해선 작가나 감독도 태클을 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낚시를 하면서 배역 분석을 열심히 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배역 분석을 하는 능력이 탁월한 건지, 그건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찍는 영화나 드라마마다 대박이 나고, 연기력에서도 호평을 받는 이민성이었기에 이런 고질적인 잠수에도 불구하고 기획사에서는 쉽게 내칠 수가 없었다. 또한 드라마 제작사나 영화사도 이런 이민성에 대한 배려가 아주 엄청났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죽어나는 건 매니저인 채영일 수밖에 없었다.
이민성 찾아내라 닦달을 하는 영화사와 기획사에 들들 볶이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녀석을 추적하는 자신의 신세가 그저 서글플 뿐이었다. 나중에 매니저 그만두면 흥신소를 차려도 될 정도로 추적과 미행엔 도가 트고 있는 그녀였다.
“나에게 엄청난 특기를 남겨 줘서 아주 고맙다, 이민성.”
다시 스쿠터를 타고 마지막 갯바위를 향해 달리며 채영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주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이민성이 그곳에는 있게 해 달라고. 하지만 하늘은 그런 채영의 간절한 바람을 또 한 번 외면하고 있었다. 낚시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휑한 갯바위의 모습에 채영은 깊은 절망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민성. 이 나쁜 녀석.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이민성!”
홧김에 채영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울분을 토해 내며 외쳤다.
“여기 있다.”
그런데 그 순간 뒤쪽에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채영의 귓가에 들렸다. 깜짝 놀란 채영은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원수 같은 이민성이 세련된 하얀 면바지에 손을 넣고 서 있는 게 채영의 눈에 들어왔다.
“이민성!”
그토록 찾아 헤맨 민성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채영은 소리 높여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민성은 시끄럽다는 듯이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서 자신의 귀를 막았다.
“귀청 떨어지겠네. 그나저나 그 꼴은 또 뭐냐? 아주 헬멧 터지겠네.”
채영이 머리에 쓰고 있는 헬멧을 눈으로 가리키며 민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런 민성의 말에 안 그래도 꽉 낀다고 느껴지는 헬멧을 벗어 던지며 채영은 커다란 눈을 매섭게 뜨고서는 그를 노려보았다.
“나쁜 자식.”
“유채영 표 거친 입담 등장하기 시작했네.”
“너 자꾸 이딴 식으로 잠수 탈래?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래서 쪽지 남겼잖아.”
살벌한 채영의 말에도 민성은 눈 하나 깜짝 안 하며 덤덤한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대꾸했다.
“하! 쪽지? 그딴 것도 쪽지라고 할 수 있어? ‘찾지 마라.’ 달랑 그 한 마디 적어 놓고?”
“그 쪽지 내용대로 안 찾았으면 고생할 일도 없잖아?”
“이민성!”
답이 안 나오는 민성과의 말다툼에 지친 채영이 주먹을 불끈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민성은 입가에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헬멧으로 인해 딱 달라붙은 채영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머리 떡 졌다.”
“야!”
“채영아.”
두 살이나 많은 자신에게 누나라는 호칭은 밥 말아 먹고 늘 저딴 식으로 이름만 불러 대는 그였다.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지?”
벌써 6년째 못 고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채영은 의지의 한국인답게 다시 한 번 민성에게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대해 알려 주고 있었다.
“채영아.”
하지만 귓구멍이 막혔는지 끝까지 저딴 식으로 부르는 민성이었다. 끝내 호칭 정리는 포기하며 채영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왜?”
“나 오늘 월척 낚았다. 보여 줄까? 안 그래도 이걸로 회도 떠 먹고, 매운탕도 끓일 생각이었는데 잘됐다. 같이 먹자.”
팬들이 붙여 준 일명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하는 민성의 말에 채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찾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같이 그딴 걸 먹자 그러냐?”
“청개구리잖아, 너. 찾지 말라고 아무리 그래도 나 찾아다니는.”
도대체 누가 누구보고 청개구리라고 하는 걸까? 매번 잠수 타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얘기를 해도 잠수를 타는 주제에.
“겨우 그거 가지고 청개구리라고 하면……!”
“한준혁 잊으라고 해도 잊지 못하고, 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기다리는.”
“이민성!”
남의 가슴 아픈 상처를 헤집어 놓는 민성의 말에 채영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를 향해 외쳤다. 하지만 민성의 말은 거기서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연애하자고 해도 싫다고 하는 청개구리잖아. 아니야?”
장난인지 진심인지조차 헷갈렸다. 이민성이 생긋 눈웃음을 지으며 저렇게 물을 때는 그 속내를 쉽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농담이 지나치다?”
채영의 말에 민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이내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채영을 바라보는 그였다.
“내가 잡은 녀석, 보여 줄까?”
그러면서 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래서 채영은 민성의 연애하자는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민성은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이미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줘 버려서,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게 익숙해져 버린 자신이었다. 그 틈을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게 싫었다.
더군다나 이민성은 절대 연애 상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연예인이었고, 스타였다.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만큼 스타와의 연애가 얼마나 고달픈지 채영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민성 같은 사람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연민에 가까울 것이다. 한준혁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봐 온 그였으니까.
1. 기다리는 男과女
「찾지 마라.」
라고, 짤막하게 적혀 있는 쪽지를 보면서 채영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민성, 네가 또……!”
뒷골이 당겨 오며 혈압 또한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채영은 악마같이 잘생긴 민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분노에 떨려 오는 몸을 푹신한 소파에 기댔다.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 잠수란 말인가? 그래! 자유로운 영혼, 좋다 이거야! 하지만 새로운 작품 미팅을 앞두고 잠수 타는 이 못된 버릇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며 놀고 있을 때 잠수 타는 거야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왜 꼭 이런 시기에만 잠수를 타는 걸까? 이젠 놀랍거나 당황스럽지도 않다.
“미안해요, 유 실장님.”
로드 매니저인 훈이가 채영의 눈치를 슬그머니 살피며 말했다.
“잘 지켰어야 했는데. 아, 잠깐 배가 아파서 화장실 간 사이에…….”
채영이 손을 들어 듬직한 훈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괜찮아. 이 녀석 이러는 거 어디 한두 번이야? 내가 찾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넌 그만 들어가. 고생했어.”
“네, 유 실장님. 수고하세요.”
훈이를 돌려보낸 채영은 눈을 반짝이며 혹시나 민성이 남겼을 흔적을 찾아다녔다. 고의로 남기는 건지, 실수로 남기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잠수 탈 때마다 꼭 흔적을 하나씩 남기는 녀석이었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 위에 걸려 있는 민성의 반나체 사진이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 까만 눈, 오뚝한 코, 붉은 입술, 거기에 여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근육과 탄탄한 식스팩, 볼 때마다 느끼긴 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외모이긴 했다.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좀 예쁘면 얼마나 좋아.”
걸려 있는 사진이 민성이라도 되는 양, 채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내뱉었다. 왜 한 번씩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찾으면 죽었어, 너.”
민성의 사진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던 채영은 천천히 침실 안을 수색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베개 아래에서 ‘제주도’에 관련된 여행 책자를 발견했다.
“설마…… 이번엔 제주도냐?”
제주도에 관련된 책자를 스르륵 넘겨 보던 채영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나마 제주도면 수색하기가 좀 더 수월했다. 관광 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만큼 보는 눈들도 많겠지. 팬카페에 접속한 채영은 목격자들이 있길 바라며 팬카페 게시판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오케이, 찾았어.”
꺄아아! 방금 이민성 봤어요!
원하던 글 제목을 찾은 채영은 재빨리 그 글을 클릭했다.
완전 득템입니다, 득템!
와, 지금 완전 흥분해서 타자도 잘 안 쳐지네요!
다른 님들이 맛집에서 민성이 봤다고 했을 땐 부러워서 늘 침만 질질 흘렸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글쎄 민성이가 이 먼 우도까지 올 줄은 정말! 흑흑!
진짜 실물은 다른 님들 말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고요.
인간 같지가 않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저와 같은 인간일 수 있나요?
여기까지 읽은 채영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나쁜 놈. 진짜 제주도였어? 멀리도 갔네.”
우도라니. 그 녀석을 잡으러 우도까지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나마 해외로 튀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매번 잠수를 탈 때마다 점점 더 멀리 가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취미가 맛집 탐방이란 사실엔 감사하고 있었다. 유명한 맛집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인 녀석이라 이렇게 팬카페에만 접속해도 녀석을 목격한 팬들을 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덜미는 잡았다. 이제 잡으러 갈 일만이 남았다.
“이민성, 각오해라.”
*
6월의 제주도는 푸르렀다. 파란 하늘, 그 하늘과 어울리는 푸르른 바다, 하얀 갈매기들이 하늘과 바다를 벗 삼아 춤을 추는 무릉도원. 그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이런 곳에 얄미운 이민성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휴가로 왔다면 정말 기뻤을 것 같다.
햇살이 찬란하게 내리쬐는 우도로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채영은 속으로 민성을 향해 아는 욕이란 욕은 모조리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제일 유명한 낚시터를 물었다. 이민성이 맛집 탐방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바로 낚시였기에.
하지만 사람들은 허허 웃으면서 ‘우도 자체가 낚시터’라는 절망적인 말을 채영에게 던졌다. 방파제랑 갯바위, 그 어디서든 낚시하기 좋은 게 바로 우도라고. 그 말에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채영은 애써 기운을 차리며 방파제와 갯바위 중심으로 천천히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제발 얄미운 이민성이 이 섬에 머물러 있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촬영이나 관광으로 몇 번 우도에 온 적이 있었기에, 채영은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섬 입구에서 스쿠터를 렌트했다. 분명 민성이 차를 렌트했을 게 뻔했기에, 그녀는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굳이 렌터카를 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는 길엔 자신이 그 차를 운전해야 할 테니까.
오늘,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청바지에 깊은 감사를 하며 스쿠터에 오른 채영은 천천히 출발을 했다. 이따금 방파제와 갯바위가 보일 때마다 스쿠터를 멈춰 세우고는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하지만 이 섬에는 이민성이 없는 건지, 좀처럼 녀석의 잘난 얼굴은 눈앞에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도 없다면 도대체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하는 걸까? 이민성 성격상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3년 전인가, 하도 열이 받아서 채영도 아예 찾으러 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되도록 녀석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끝내 백기를 든 채영이 허겁지겁 녀석을 찾으러 간 적도 있었다. 정말 지독하게 여유작작한 녀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쁜 녀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돌아올 땐 신기하게도 자신이 찍을 배역에 대한 분석을 아주 완벽하게 해 온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것에 대해선 작가나 감독도 태클을 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낚시를 하면서 배역 분석을 열심히 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배역 분석을 하는 능력이 탁월한 건지, 그건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찍는 영화나 드라마마다 대박이 나고, 연기력에서도 호평을 받는 이민성이었기에 이런 고질적인 잠수에도 불구하고 기획사에서는 쉽게 내칠 수가 없었다. 또한 드라마 제작사나 영화사도 이런 이민성에 대한 배려가 아주 엄청났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죽어나는 건 매니저인 채영일 수밖에 없었다.
이민성 찾아내라 닦달을 하는 영화사와 기획사에 들들 볶이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녀석을 추적하는 자신의 신세가 그저 서글플 뿐이었다. 나중에 매니저 그만두면 흥신소를 차려도 될 정도로 추적과 미행엔 도가 트고 있는 그녀였다.
“나에게 엄청난 특기를 남겨 줘서 아주 고맙다, 이민성.”
다시 스쿠터를 타고 마지막 갯바위를 향해 달리며 채영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주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이민성이 그곳에는 있게 해 달라고. 하지만 하늘은 그런 채영의 간절한 바람을 또 한 번 외면하고 있었다. 낚시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휑한 갯바위의 모습에 채영은 깊은 절망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민성. 이 나쁜 녀석.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이민성!”
홧김에 채영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울분을 토해 내며 외쳤다.
“여기 있다.”
그런데 그 순간 뒤쪽에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채영의 귓가에 들렸다. 깜짝 놀란 채영은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원수 같은 이민성이 세련된 하얀 면바지에 손을 넣고 서 있는 게 채영의 눈에 들어왔다.
“이민성!”
그토록 찾아 헤맨 민성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채영은 소리 높여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민성은 시끄럽다는 듯이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서 자신의 귀를 막았다.
“귀청 떨어지겠네. 그나저나 그 꼴은 또 뭐냐? 아주 헬멧 터지겠네.”
채영이 머리에 쓰고 있는 헬멧을 눈으로 가리키며 민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런 민성의 말에 안 그래도 꽉 낀다고 느껴지는 헬멧을 벗어 던지며 채영은 커다란 눈을 매섭게 뜨고서는 그를 노려보았다.
“나쁜 자식.”
“유채영 표 거친 입담 등장하기 시작했네.”
“너 자꾸 이딴 식으로 잠수 탈래?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래서 쪽지 남겼잖아.”
살벌한 채영의 말에도 민성은 눈 하나 깜짝 안 하며 덤덤한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대꾸했다.
“하! 쪽지? 그딴 것도 쪽지라고 할 수 있어? ‘찾지 마라.’ 달랑 그 한 마디 적어 놓고?”
“그 쪽지 내용대로 안 찾았으면 고생할 일도 없잖아?”
“이민성!”
답이 안 나오는 민성과의 말다툼에 지친 채영이 주먹을 불끈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민성은 입가에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헬멧으로 인해 딱 달라붙은 채영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머리 떡 졌다.”
“야!”
“채영아.”
두 살이나 많은 자신에게 누나라는 호칭은 밥 말아 먹고 늘 저딴 식으로 이름만 불러 대는 그였다.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지?”
벌써 6년째 못 고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채영은 의지의 한국인답게 다시 한 번 민성에게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대해 알려 주고 있었다.
“채영아.”
하지만 귓구멍이 막혔는지 끝까지 저딴 식으로 부르는 민성이었다. 끝내 호칭 정리는 포기하며 채영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왜?”
“나 오늘 월척 낚았다. 보여 줄까? 안 그래도 이걸로 회도 떠 먹고, 매운탕도 끓일 생각이었는데 잘됐다. 같이 먹자.”
팬들이 붙여 준 일명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하는 민성의 말에 채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찾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같이 그딴 걸 먹자 그러냐?”
“청개구리잖아, 너. 찾지 말라고 아무리 그래도 나 찾아다니는.”
도대체 누가 누구보고 청개구리라고 하는 걸까? 매번 잠수 타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얘기를 해도 잠수를 타는 주제에.
“겨우 그거 가지고 청개구리라고 하면……!”
“한준혁 잊으라고 해도 잊지 못하고, 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기다리는.”
“이민성!”
남의 가슴 아픈 상처를 헤집어 놓는 민성의 말에 채영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를 향해 외쳤다. 하지만 민성의 말은 거기서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연애하자고 해도 싫다고 하는 청개구리잖아. 아니야?”
장난인지 진심인지조차 헷갈렸다. 이민성이 생긋 눈웃음을 지으며 저렇게 물을 때는 그 속내를 쉽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농담이 지나치다?”
채영의 말에 민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이내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채영을 바라보는 그였다.
“내가 잡은 녀석, 보여 줄까?”
그러면서 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래서 채영은 민성의 연애하자는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민성은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이미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줘 버려서,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게 익숙해져 버린 자신이었다. 그 틈을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게 싫었다.
더군다나 이민성은 절대 연애 상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연예인이었고, 스타였다.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만큼 스타와의 연애가 얼마나 고달픈지 채영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민성 같은 사람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연민에 가까울 것이다. 한준혁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봐 온 그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