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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가는 날>





1화


시끌벅적한 날이었다.
집 안팎으로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고 뭘 그리 주문했는지 대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넘나들고 있었다. 덕분에 안도 시끄럽고 밖도 시끄럽다. 굳이 사정을 물을 것도 없었다. 안에서 보나 밖에서 보나 ‘오늘 이 집에 경사가 있소.’라는 티가 팍팍 풍기고 있을 테니까.
“세 번이나?”
“진짜?”
“아, 그렇다니까요.”
사연 모를 대화와 곧 이어 왁 터져 나오는 까르르한 웃음소리.
잔치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자리에선 여지없이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쳇!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더니.”
여자들 무리에 섞여 앉아 연방 깔깔 웃어 젖히는 제 마누라를 흘겨보며 하준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든다는 투다. 짐짓 심술맞은 얼굴을 하고 긴 다리를 쭉 뻗어 한 뼘만큼 열어 놓았던 방문을 홱 닫아 버렸다.
“자기들끼리만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원. 웃다가 숨넘어가겠네.”
“이 아새끼래, 점심밥 잘 받아먹어 놓고는 웬 골집(심술)맞은 짓이네?”
“심심해서 그러지.”
“심심하면은 여 와서 밤이나 더 까라우. 너그 형들 하는 거 안 보이네?”
콧등에 돋보기안경을 얹어 놓고 장부를 들여다보던 윤 여사가 고갯짓으로 밤 까기에 열중인 하중과 하서를 가리켰다. 안 도와주고 남자들끼리 팽팽 놀기만 한다고 성이 난 여자들이 억지로 떠맡긴 일거리였다. 아이 주먹만 한 밤을 다섯 바가지나 놓고 앉아 열심히 껍질을 까는 모습이 제법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짜증나게. 애초에 다 까 놓은 밤으로 사 오면 될 것을 꼭 통째로 사 와서는 괜한 일거리를 만들어 주더라?”
“미친놈. 말은 그렇게 하는 주제에 미리 해 놓은 음식은 절대로 안 처먹는 게 어디의 누구시더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미리 까서 약 쳐서 포장해 놓은 걸 가져다 놓았어 봐. 네가 그걸 잘도 처먹었겠다. 응?”
“쳇! 누가 그런 걸 말해? 그냥 따로 일손을 좀 사서 까면 되는 거 아니냔 말이지.”
하서의 독설에 하준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아새끼래, 이 집안에 남는 손이 열 개나 되는데 고작 이깟 일에 일손을 사란 말이네?”
“아니이, 남는 손이라고 다 같은 손인가? 이만한 일에 꼭 고급인력을 동원할 건 뭐냐고. 그리고 엄마 말처럼 똑같이 남는 손이면 왜 석준이 놈은 안 불러? 설마 하나뿐인 사위라고 차별하는 거유?”
“오야, 차별하는 거이디.”
생각해 보는 기색도 없이 윤 여사는 가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어쩌면 좋은가’ 하는 얼굴로 쯧쯧 혀를 차면서 말했다.
“철때기(철딱서니) 없는 아새끼래, 하나뿐인 제 어린 누이 시집살이 시키려면 뭔 짓을 못 하갔니.”
“흥! 시집살이는 무슨. 저한테 푹 빠져 있는 든든한 신랑에다 이제 대를 이어 줄 떡두꺼비 같은 아들까지 턱하니 낳아 놓았는데 누가 감히 시집살이를 시켜? 엄마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 하경이 팔자가 딱 여왕님 팔자라고 소문 자자하게 났어.”
“그래서 이제는 석준이가 만만하게 보인다 이거네?”
“크흠, 누가 그렇대?”
만만하기는 개뿔.
전이나 지금이나 이석준은 결코 쉬운 놈이 아니었다. 분명히 전보다 더 부드러워지고 가끔은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하는 데다 하경의 말이라면 아무리 우스운 주문이라도 따박따박 잘만 들어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틈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말은 못하지만 매제라고 부르다가도 혼자서 괜히 황송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이건 뭐 쉬운 구석이 있는 놈이어야 말이지.”
“휴우, 그걸 알면서도 부르라는 소리가 나오냐, 이놈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와서 칼이나 잡아. 하도 까 댔더니 난 이제 손이 다 아프다.”
벌겋게 불어 터진 손가락을 보여 주며 하중이 앓는 소리를 했다. 그때였다.
“저 왔습니다!”
큰 소리와 함께 거의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봄바람을 맞고 왔는지 온통 헝클어진 머리꼴을 한 문지형이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들어와 넉살도 좋게 은씨 형제 곁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하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어디 한구석 쉬운 데가 없는 놈도 있는 반면 온몸 구석구석, 뼛속까지 쉬운 놈도 있는 법이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아무것도 아니다. 밤이나 까라.”
제 몫으로 주어진 칼을 지형에게 툭 건네주고 하준은 아예 윤 여사 곁에 드러누웠다.
형제들의 원성 어린 시선이 송곳처럼 단박에 날아와 꽂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뻔뻔하게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되지도 않는 타령을 잠깐 하다가 마치 잠꼬대처럼 지형을 향해 툭 물었다.
“좋으냐?”
“예? 아, 예. 흐흐.”
안 그래도 싱글싱글하던 얼굴이 갑자기 확 폈다.
결혼의 ‘결’ 자도 안 나왔는데 벌써부터 입이 귀밑까지 벌어져 있었다. 낼모레 장가가는 놈답게 나사가 백 개쯤 빠진 꼬라지였다. 그렇다. 문지형이 드디어 장가를 간다. 하도 오래 묵어서 과연 장가를 갈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는데 어디서 운 좋게 여자를 하나 주워 오더니 곧 결혼을 한다고 했다.
군말 없이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에 결혼식을 치러 주기로 결정을 보았다.
인사받고 겨우 삼 주 만에 날짜를 잡은 건 혹시라도 여자가 도망갈까 봐 걱정스러워서다. 도대체가 책밖에 모르는 인간이라 어디에서 또 멀쩡한 여자를 구해 온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그만큼 기적 같은 결혼이었다.
“새끼, 아주 좋아 죽는구먼. 하긴, 좋을 때지. 너무 좋아서 잠도 안 오겠지. 결혼식이 코앞인데 잠이 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지.”
“그런 겁니까?”
“그렇다니까. 저 냉동인간 같은 우리 작은형도 결혼 전날 밤은 벌벌 떨면서 뜬눈으로 지새웠어.”
갑작스러운 폭로에 하서가 당장 도끼눈을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런 것을 싹 무시하고 하준이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제수씨도 참 용하다. 어떻게 너 같은, 공부밖에 모르는 책벌레하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든?”
“하하. 그게요…… 일단은 취미도 같고 무엇보다 제 탐구정신에 반했답니다.”
“탐구정신?”
모두의 머리위에 작은 물음표가 떴다.
두 사람의 취미라고 해 봐야 물어볼 것도 없이 독서다.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보고 일단 보기 시작하면 밥때는 물론이고 잠도 잊는다. 그런데 뜬금없이 웬 탐구정신이냔 말이다. 그거 혹시 궁금한 게 생기면 해결이 될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연구한다는 뜻인가? 그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문지형은 뼛속까지 쉬운 놈이지만 인내심 하나만은 또 하늘을 찌르는 놈이라 정말 궁금한 일이라거나, 혹은 일단 마음먹은 일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하고 또 하는 놈이었다. 하긴, 그러니 교수씩이나 되었겠지. 각자 해답을 찾은 은씨 형제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사각사각 밤을 까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제수씨가 작가라고 했었지?”
게으른 해달처럼 늘어진 하준이 누운 채 떡을 하나 집어먹으면서 물었다.
“뭐 쓰는 작가라디? 방송작가인가?”
“아, 그건 아니고 그냥…… 소설 씁니다.”
“소설? 그럼 소설가냐?”
“네, 그런 거죠. 하하.”
여자를 데려왔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느라 이것저것 물을 생각은 꿈에도 못한 은씨 형제들이 그제야 이해의 눈빛을 보내왔다. 소설가라면 책 좋아하고 아는 것도 많을 테니 평생 공부만 하다 나이를 먹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놈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었을 테지 하는 심정이었다.
“좋아. 너를 받아 준 사람이니 이 형님이 다른 건 몰라도 후원은 한번 대차게 해 주마. 사인회라도 열어서 제수씨 책을 왕창 팔아 주겠어. 책 제목이 뭐냐?”
“쿨룩. 크흠. 그, 그게…….”
지형의 얼굴이 희미하게 붉어졌다.
대답을 하긴 해야 하는데 사실대로 털어놓자니 모종의 이유 때문에 심하게 망설여진다. 은씨 형제는 둘째 치고 계모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계신데 여기에서 ‘제목은 뜨거운 허벅지 사이, 마님이 지켜보고 계셔, 이러시면 안 돼요 사장님, 오빠를 믿지마입니다.’라고 어찌 감히 고백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