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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모는 그러했다.
한 달 전 강동완이 부동산을 통해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이선우가 똑같은 집을 같은 부동산에서 전세로 얻게 되었다. 같은 집만 아니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1104호로 계약을 한 것이다. 사용 승인만 떨어지고 아직 등기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부동산 중개업자는 그 집에 관한 서류들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었고, 내켜 하지 않는 선우에게 집주인을 만나게까지 해 주었다. 급하게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는 바람에 입주를 못 하게 되었고 집을 깨끗하게 쓰는 대신 다른 곳보다 싼 금액을 받는다는 구미가 당기는 설명을 덧붙여서 말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른 곳을 알아보던 선우는 마땅한 집을 찾지 못했고 그사이 중개업자가 피나는 노력으로 공을 들인 탓에 결국 계약에까지 이른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부동산 사기였다.
사건을 정리하고 있던 정 경장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단지 문제가 거기서 끝이 났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불행히도 사건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조사하다 보니 이미 며칠 전부터 중개업자는 몇 건의 이중 계약 문제로 고소된 상태였다. 아마 하루가 다르게 신고는 늘어날 것이다.
이선우에게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이틀 전이라고 했다. 집주인이 잔금 치르는 문제로 일이 얽히는 바람에 보증금을 미리 줄 수 있겠느냐는 전화였었다. 집이 비어 있던 터라 열쇠도 이미 받은 상태였고, 새로 주문한 물건까지 미리 넣게 해 주는 집주인의 배려에 차마 거절을 하지 못하고 이선우는 잔금을 이체해 주었다고 했다.
이런 경우를 처음 접해 보는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피의자는 없고 피해자만 싸우게 된 상황. 그곳도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집이 걸린 문제였다. 자판을 두드리던 일을 멈추고 정 경장의 시선이 선우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로 닿았다. 집에 있는 아이가 떠오르자 안쓰러운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저 여자는 이제 어쩌냐.
“금방 해결이 될까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오는 이선우에게 안타깝지만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일단 수배를 내려서 잡힐 때까지 기다려 보시는 수밖에 없겠어요.”
그의 말에 강동완은 확 눈살을 찌푸렸고 이선우는 울상이 되었다.
“그럼 언제쯤 잡힐 것 같습니까?”
“그건 저희도 모르죠.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작정을 하고 튀었다면 이미 해외로 빠져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신고가 점점 늘어나는 걸로 보아 어마어마한 금액이 걸린 사건이 될 테니까요.”
“다분히 의도적인 사건이라는 거군요.”
“아마 공범도 있을 테고 오랫동안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을 겁니다. 안타깝지만 그래요.”
이선우는 절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질끈 눈을 감았다. 뭔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지만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오늘쯤이면 등기 완료되었을 테니 거긴 엄연한 제 집입니다.”
참 야박하다 싶을 만큼 남자는 매몰찼다.
“물론 우리나라 법이 공시원칙의 형식주의라 등기가 되었다면 법적으로야 그럴 테지만 이건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있어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소송을 하시든가요.”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내내 여자와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는 꼴 좀 보라지. 정 경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녀의 앞날이 막막해 보였다.
“이선우 씨? 그 집에 들어와 있는 짐들은 오늘 중으로 빼 주시죠.”
부탁이 아닌 명령처럼 말을 하고 돌아서는 남자의 등 뒤에 대고 선우가 외쳤다.
“들으셨잖아요. 저도 전세를 얻었으니 엄연하게 그 집에 관해 권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남자는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여자를 돌아보더니 차분하면서도 냉랭한 어조로 그녀의 항의에 대답했다.
“당신이 잡아야 할 건 그 사기꾼이지 내가 아닙니다. 정당하게 세를 얻은 것이 아니라 사기를 당한 거니까.”
남자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지구대를 나섰다. 여자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서러운 듯 울음을 토하는 여자가 안쓰러워 업무를 보던 경찰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그 사기꾼을 잡아 해결을 해 주고 싶은 심정들이었다.

그 남자의 짓이 분명했다.
몇 번 연속으로 비밀번호를 틀리고 나자 경보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 주기로 한 집에 수영이를 맡기고 1104호에 도착했을 때 비밀번호는 바뀌어 있었고 문엔 못 보던 보조 자물쇠가 하나 더 달려 있었다. 그사이 집주인이라던 남자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진짜 미치겠네…….”
정말이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 수영이와 마음 편하게 살 곳을 마련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전 재산을 잃게 생겼다.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는데 제 잘못이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대출까지 낄 정도로 큰 금액을 날리다니. 왜 하필 그 부동산에 들어갔을까. 차라리 짐을 줄일 것을 왜 아파트를 얻을 생각을 했을까. 사람을 믿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당하고만 자신이 한심하고 또 원망스러웠다.
선우는 눈가가 뜨듯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문 앞에 쭈그려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바보처럼 울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우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였다.
“진짜 한심하기는.”
기어이 눈물이 손바닥을 적시었다.
그때였다.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린 것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 안에 그가 있었다. 놀란 선우는 튕기듯 벌떡 일어서며 뒷걸음질을 쳤다. 남자는 꽤 귀찮다는 얼굴로 현관을 막고 서 있었다.
“생각이 짧은 겁니까? 여태 비밀번호를 안 바꾸고 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라.”
“설마 혼자서 짐을 실으러 온 겁니까?”
흠칫 놀라며 눈물을 훔친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짐이라니. 당장 머물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미 전 재산을 보증금으로 털어 넣은 터라 방을 구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운이 좋아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원룸 하나를 얻는다 쳐도 저 많은 짐의 대부분을 처리해야 할 판이었다. 현관 너머로 쌓여 있는 자신의 물건들이 보이자 선우는 더욱 북받쳐 오르는 느낌이었다. 이 순간에 누구 하나 힘이 되어 줄 가족이 없다는 것이 서럽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울음을 참느라 눈자위를 붉힌 채 안간힘을 쓰는 선우를 한참 내려다보던 동완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인상을 팍 구긴 채 길을 터 주었다. 언제까지 현관에서 이 여자의 하소연을 들어 줄 수도 없었고, 어찌 되었든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물건들은 해결해야 했다.
“일단 들어와요.”
신발을 벗고 들어선 집 안 풍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남자는 소파를 옮기던 중이었는지 벽 쪽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선우의 소파를 치우고 꽤 고가로 보이는 짙은 갈색의 소파가 그리로 향하고 있었다. 생활에 필요하다 싶은 모든 물건이 정확히 2개씩이었다. 아직 설치하지 못한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침대도 2개였고 하다못해 전혀 취향이 다른 스탠드도 2개였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다.
집 안을 둘러보는 선우를 지켜보던 동완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물었다. 달칵 라이터를 켜자 선우가 돌아보았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수영을 데리고 왔더라면 분명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말렸을 테지만 지금 자신은 그럴 처지가 아님을 절실하게 깨닫는 중이었다. 담배가 아니라 마약을 한다 해도 절대 나서지 않고 조용히 처분을 기다릴 것이었다.
“그래,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동완의 물음에 선우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경찰 말로는 언제 잡힐지도 모른다 했다. 이미 그 돈은 사기꾼의 손에 들어가 버렸고 이대로 이 집을 나간다면 그야말로 거리로 나앉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혼자라면 찜질방에서 숙식하든 햇빛이 전혀 안 드는 반지하 단칸방을 얻든 무슨 수라도 생각을 해 볼 테지만 그 어린 수영을 데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였다. 그 사기꾼을 찾을 때까지는 이 집에서 버티는 것. 결론은 그거였다.
울며 매달리지 말고 침착하자, 이선우. 선우는 마음을 가다듬고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물론 이 상황이 황당하시겠지만 저도 이 집에 관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길게 연기를 내뿜던 남자는 귀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차가운 빛을 띠는 암갈색의 눈동자가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그쪽도 억울하시겠지만 저도 이 집에 남아 있어야겠어요.”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합니까?”
남자의 쌀쌀한 말투에 멈칫했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우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저, 이 집에 전 재산을 쏟아부었어요. 그 돈 찾을 때까지는 절대 이 집에서 나갈 수가 없어요.”
“제 발로 나가지 않겠다면 내보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경비실에 연락할까요?”
“그럼 다시 오죠, 뭐. 쫓아내면 또 오고 또 오고. 어떻게든 버텨 봐야죠. 저도 방법이 없으니까.”
“……그 말은 지금 이 집에서 함께 살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선우가 움찔했다.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문제였다. 누군가와 그것도 생판 모르는 남자와 어느 날 갑자기 한집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꿈도 꿔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이렇게 젊고 잘생긴 싱글의 남자라니.
선우는 쿵덕거리는 가슴을 달래기 위해 지그시 주먹을 쥐었다.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는데 어디로 물러설 수가 있을까.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악마라고 해도 거절은 안 될 일이었다.
“그래야 한다면 못할 것도 없죠. 허락만 하신다면 저도 이 집에 관한 권리를 행사하고 싶은데요.”
“하,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괜한 힘 빼지 말고 아이 아빠한테 연락해요. 막무가내인 당신이랑은 더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까.”
남자의 차가운 반응에 선우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이 아빠는…… 죽었어요.”
놀라 흔들리는 남자의 눈동자가 보였다. 형부가 죽었으니 아이 아빠가 죽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었지만 어쩐지 좀 찔렸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를 키우려면 난 이 집이 꼭 필요해요.”
남자의 동정심을 조금이라도 자극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될 기미라도 보인다면 지금은 영혼이라도 팔아야 했다. 수영이와 거리로 쫓겨나지 않으려면.

샤워를 마치고 나온 동완은 주방으로 향하였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시원한 맥주나 한 잔 마시고 푹 잘 생각이었다. 몇 차례 이사를 했지만 오늘처럼 힘든 날은 처음이었다. 이런 날은 알코올의 힘을 빌려 푹 잠드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방 불이 켜지자 동완은 의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여자는 아무래도 그릇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모양이다. 잡지에서나 보았을 법한 온갖 종류의 접시와 찻잔들. 그것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한쪽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