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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현 1권(25화)
11. 마도(魔道)의 출도(2)


그랬다. 그럴 터였다. 하지만, 지금 제갈무령은 그들이 준동하고 있다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장내의 모든 이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있을 리 없다. 그럴 리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 다.
“군사. 지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소만…….”
단목세가 가주인 단목하정(端木夏停)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정사대전으로부터 이제야 40년. 겨우 무림이 안정되어 가고 있는 이때에 마도라니! 마도들이 전쟁을 걸어온다면 그것을 감당해 낼 여력이 당금 무림에는 없었다.
“마. 도. 입니다. 특히 이 굵은 점은 마공임이 확실한 흔적이 남은 곳이지요. 개방에서 보내온 정보이니 확실할 것입니다.”
“허어…….”
“어허…….”
“이런…….”
장내가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마도라…… 가뜩이나 정사대전의 폐해가 남아 있는 상황에 마도가 움직일 줄이야. 그야말로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좌중들이 한참을 그렇게 침음성을 흘리고 있을 때, 그를 언짢게 보던 모용영휘가 혀를 끌끌, 차며 입을 열었다.
“쯧, 지금 그렇게 한숨이나 쉬고 있을 때인가!! 마도라지 않나. 얼른 대책부터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좌중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그들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제갈무령이었다.
“하아, 그래서 이번 칠천회에 이 의제를 제시한 것입니다. 지금은 우선 개방과의 연계하에 저희 제갈세가의 정보망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아냈습니다. 이번에 움직임을 포착한 마도는 마교가 틀림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인가?”
자신 있게 말하는 제갈무령에, 황보세가 가주 황보군(皇甫君)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질문했다. 그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제갈무령은 조선에서 들여온 합죽선(合竹扇:대나무로 만든 쥘부채)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접으며 화남(華南) 지방. 정확히는 광동(廣東)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지도를 보아 주십시오, 얼핏 보면 붉은 점들이 무분별하게 찍혀 있는 것 같지만, 자잘한 점들은 다 무시하고, 굵은 점들만을 모아 이렇게 연결하면…….”
“아!”
지도에 몇 개인가 선이 그어지기 시작하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연결하기 전에는 몰랐지만, 막상 연결하고 나니 모든 선이 한 점으로 이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자잘한 점들도 그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십만대산(十萬大山)!!”
중원 최남단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 십만대산! 천산(天山)으로도 불리는 이 산은 가히 십만에 달하는 봉우리와 이리저리 굽이치는 산세로 인해 자연이 준비한 최고의 요새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만큼 사람이 정착하기는 힘든 곳이다.
“그런 곳에 자리 잡고 있었을 줄이야. 본디 마교의 본거지라고 알려진 조서산(鳥鼠山)은 이제 완전히 벗어난 것인가?”
“그렇겠지요. 처음에는 혹시나 해서 조서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말 그대로 생쥐 눈곱만큼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갈무령의 말에 좌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군사,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당천명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던 제갈무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선은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십만대산이 워낙 험난한지라 선제공격을 한다고 해도 승산이 없을 뿐더러, 적들이 정말 십만대산에 위치해 있는지조차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잠시 말을 쉰 제갈무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것은 백도맹보다 우리 칠천회가 먼저 처리를 해야지요. 이 정보 자체도 개방이 보내온 것이고요. 그래서 가주님과 상의해 비밀리에 우리 제갈세가의 묘영대(妙影隊)를 보내 ‘그들’을 찾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자신 있게 말하는 제갈무령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단목하정이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들이라 함은?”
“200여 년 전, 혈마대전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고 계실 테지요.”
“물론이네. 겨우 여인 하나 때문에 번진 싸움이 엄청난 혈겁을 불러왔었지. 그런데 그것이 뭐 어쨌다는 겐가?”
제갈무령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시 지도의 이 부분을 보아 주십시오. 푸른 점이 보이십니까?”
“그렇소.”
딱히 대답을 한 단목하정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마음에 궁금한 시선으로 제갈무령을 보자, 잠시 뜸을 들인 그가 충격적인 사실을 고했다.
“이것이 묘영대가 보내온 정보. 혈교의 흔적입니다.”
“흐읍!!”
“흠!!”
좌중들의 눈이 휘둥그레 뜨여졌다. 마교만으로도 충격적이건만, 혈교까지 준동을 시작했다니!!
“또한 혈교와 마교가 부딪힌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 말에 이해력이 빠른 모용영휘가 눈을 빛냈다.
“하면……?”
“예, 아직 혈교와 마교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혈교를 찾아 마교와 부딪히게 만든다면?”
그때, 팽무벽이 아는 척을 하고 싶었는지 끼어들었다.
“허어, 그야말로 어부지리로군!”
“그렇습니다. 또한 이이제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참으로 발칙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누가 있어 혈교와 마교를 이런 식으로 제압하려 했을까! 하지만 이 작전에도 맹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 혈교나 마교가 생각대로 움직여 줄지 의문이네. 만약 200년 전처럼 두 세력의 칼끝이 우리 쪽으로 향해 오면 어쩌려고 그러나?”
단목하정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하지만 제갈무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답했다.
“훗, 그럴 걱정은 없습니다. 그때는 아직 마교와 혈교가 아수라교에서 떨어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당연히도 두 세력 사이에는 아직 공통점이 많았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세를 회복했다고는 하나 200년 전의 혈마대전으로 거의 궤멸 상태까지 간 두 교입니다. 서로에게 우호적일 리가 없지요. 아마도 그들 사이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을 겁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푸른 점이고 말입니다.”
“흐음.”
단목하정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한줄기 날카로운 미소와 함께 세세한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제갈무령이었다. 그의 말에 회실에서는 연신 감탄사와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회주인 남궁건의 폐회사와 함께 칠천회의 본회가 끝을 맺었다. 각 세가의 가주들은 또다시 벌어질지도 모르는 혈겁에 대한 걱정과, 왜 자신들의 대(代)에 이런 귀찮은 일이 생겼는가 하는 짜증이 뒤섞인 감정을 속내로 숨기며 자신들의 거처로 하나둘 돌아갔다.

***

다음 날 모용세가의 처소.
“으응…….”
이른 새벽부터 잠이 깨어 버린 서현은 그 작은 손으로 눈을 비비고는 몽롱한 눈빛으로 방을 나섰다.
터벅터벅
몸에 익숙해진 길에 따라 우물로 향하던 서현은 문득 주변의 풍경이 모용세가와 다른 것을 깨달았다.
“후아암∼ 응?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닌데…… 아! 아직 남궁세가를 떠나지 않았었구나!”
기지개를 쫘악, 켜며 늘어진 하품을 내쉰 서현은 집과는 다른 풍경에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다, 아직 칠천회의 도중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너무도 당연한 일을 늦게 깨달은 자신에게 콩! 하고 귀엽게 꿀밤을 먹이고는 주위를 둘렀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일렀던 탓인지,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아∼ 내키지는 않지만 다시 자야 하나?”
내공을 돌리면 잠기운 정도는 쉽게 날려 버릴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며 깨어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서현은 다시 한바탕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돌아섰다.
찌릿!
“……?!”
하지만 이내 느껴지는 무섭도록 차가운 살기에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며 다시 한 번 뒤돌아서야 했다.
서현이 뒤를 돌아보자 수상한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잘못, 느낀 건가?’
그럴 리는 없었다. 서현의 갈고닦인 예리한 기감이 무언가를 아주 놓치고 못 느낀다면 모를까, 잘못 인식한다는 것은 하늘이 여섯 번 뒤집어지고 땅이 서른 번 뒤집어진 뒤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불가능 하다는 뜻이다.
‘…….’
서현은 진지한 얼굴로 기감을 퍼뜨렸다.

‘오라버니.’
같은 시각, 아직도 자신에게 한마디 상의나 언질도 없이 집을 나가 버리는 자신의 오라버니 남궁현에게…… 아니, 오라비에게 믿음도, 의지도 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 무심코 흘려 버린 살기를 추스르는 한 여인이 있었다.
‘결국, 또 그리 나가시는 건가요.’
그녀의 이름은 남궁소연. 누구보다도 남궁현과 가까운 사이라고 자부하는, 그의 여동생이었다.
“하아― 그러다 또 기억을 잃으시기라도 하면…….”
소연은 어렸을 적에 언제나 오라비와 함께 놀던 정자를 향했다.
워낙 어릴 때라 그랬는지, 그저 아무도 쓰지 않는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냥 신기했던 곳이다.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저 그뿐이라면, 어린애들의 특성대로 금방 질려 다른 곳을 찾았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주변의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웠으니까. 초록빛을 내뿜는 수많은 나무들과 풀들, 그리고 시원하게 수정 빛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 낮에는 시원한 그늘을, 밤에는 따뜻한 별빛을 보여 주는 정자는 소연의 기억 속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아직도 잃지 않고 있었다.
“…….”
한참 동안을 정자에 서서 그저 하늘만 바라보던 소연이 문득 눈을 감으며 털썩 하고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말려 올라간 치마 밑으로 뽀얀 살결을 지닌 허벅지가 드러나며 여명을 받고 옥빛으로 빛났다. 어머니 서모련이 봤다면 다 큰 처녀가 무슨 망측한 짓이냐며 거품을 물고 까무러칠 만한 장면이었다.
‘어렸을 적엔 그저 이렇게 함께 대자로 그저 누워 있기만 해도 즐거워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잠시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소연이 실소를 흘렸다. 어릴 적이라고는 해도 고작 몇 년 전까지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멀게 느껴지다니. 거기다, 그것은 이제 소연 혼자만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오라버니, 언젠가는 기억이 돌아오실까?’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인지 그러기를 바라게 되는 소연이었다.
그때, 수풀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누, 누구세요?!”
인기척이 느껴지자 부끄러운 짓을 해 버렸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며 검에 손을 가져가는 소연의 얼굴은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수풀 속에서 한 인영이 빠져나왔다.
“아. 미, 미안하오. 엿보려던 생각은 아니었소만, 본의 아니게…….”
“어머, 어머. 모용 소협이셨군요.”
인영의 목소리가 들리고, 모습이 보이자 소연은 발그레하던 볼을 단숨에 원래대로 되돌리며 입술 끝을 둥글게 말고는 인영. 서현을 향해 걸어갔다. 어린아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천천히 서현에게 다가간 소연은 섬섬옥수를 들어 서현의 얼굴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소, 소저?”
“…….”
스윽.
보드라운 손길이 볼에 닿는 것을 느낀 서현은 눈을 질끈 감으며 얼굴을 붉혔다.
‘소, 소저가…… 이, 이이, 이, 입맞춤을 하려는 것인가? 우, 우리는 겨우 십수여 일 전에 만난 사이인데?!’
순결(?)을 빼앗길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하면서도 기대하던 서현이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결국 서현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소연의 얼굴이 점점 그에게로 다가가고…….
쭈우욱!
“오, 오어, 애애 으어 아으 어이우?(소, 소저, 대체 무엇 하는 것이오?)”
“호호, 호호호. 아우, 귀여워라. 역시 어린아이들 살결은 너무 부드럽다니까. 부러워 죽겠어요. 안 그런가요, 소협? 아, 소협은 어린아이라 안 그렇겠네요.”
서현의 볼을 쭈욱, 하고 잡아 늘린 소연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한참 동안이나 장난을 쳤다.
‘에휴…….’
그사이로 세상 누구도 그 의미를 알아 주지 못할 한숨을 내쉬는 십삼 세 소년이 그곳에 있었다.

날이 밝았다.
그제야 칠천회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하룻밤의 휴식도 취한 각 세가의 인원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남궁세가의 환송을 받으며 하나둘씩 자신들의 본가를 향해 흩어졌다. 다음에 이들이 모이는 때는, 분명히 각자의 세가에게 나누어진 역할을 모두 완수하고 혈교와 마교의 꼬리를 잡은 뒤일 터였다.
그렇게, 일곱 하늘은 각자의 본가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몰랐다. 그들에게 다가오는 마도의 음모를.

***

“어디보자, 여기서 가장 가까운 강항(江港:강의 항구)은 안경(安慶)에 있는 건가?”
그리고 잠산현의 작은 촌락인 잠릉촌(潛陵村). 평범한 무복 차림에 죽립을 쓴 사내가 지도를 펼쳐 보고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후우웅―
“앗!”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자, 사내의 죽립이 휘익 하고 벗겨졌다.
확!
“휴우, 또 잃어버리는 줄 알았네.”
가벼운 몸놀림으로 날아가려는 죽립을 잡아챈 사내, 궁현은 죽립을 깊게 눌러 쓰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하아, 안경까지 가려면 길을 또 얼마나 걸어가야 한다냐…….”
뒷머리를 벅벅 긁은 궁현이 다시 발을 뻗었다.


<『남궁현』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