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헬 나이츠 1권 (3화)
프롤로그 (2)
“후와―”
“까, 깜짝이야!”
폴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필도 살짝 놀랐는지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역시 진지함은 나와 맞지 않아.”
그 한마디에 폴과 필은 뒤로 발라당 넘어질 뻔했다. 어쨌든 다시 평상시로 돌아온 제이크는 옆에 놓인 책자를 펼쳤다.
“어디 보자!”
그 모습에 폴과 필은 서로 마주보고는 제이크에게 다가갔다.
폴이 물었다.
“도련님, 책 읽으십니까?”
“아니.”
“그럼 그것이 무엇인데요?”
“아, 우리 가문의 비전검술!”
“에엥?”
폴과 필이 동시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이크는 검술 책자를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그림은 이해하겠는데 글씨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서, 설마. 도련님 검술을 배우시겠다는 것은 아, 아니시죠.”
폴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아니, 배울 건데.”
“헉!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이것을 보고 있는 것 아니야.”
폴과 필의 두 눈이 더욱 커졌다. 자신들이 따르는 제이크는 절대 검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도 장식용이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게다가 검으로 싸우면 손에 피부가 닿는 느낌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선호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한 사람이었다. 그런 제이크가 갑자기 검을 익히겠다고 한다. 이는 도저히 믿지 못할 상황이었다.
“꾸, 꿈이지?”
“아, 아니, 현실인 것 같은데.”
폴과 필은 어안이 벙벙한 눈길로 책자를 보고 있는 제이크를 보았다. 두 사람은 마치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제이크의 고개가 두 사람에게 향했다.
“폴은 내 검을 챙겨 와, 필은 갑옷을 가져오고.”
제이크의 지시에 폴과 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동시에 물었다.
“뭐하시게요?”
“뭐하시게요?”
그러자 제이크가 버럭 소리쳤다.
“내가 아까 검술을 배울 거라고 했잖아.”
“예?”
“에이, 거짓말이죠?”
앞에 놓인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폴과 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이크는 검술 책자를 덮고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후후후, 내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냐?”
“네.”
“그렇게 보입니다.”
폴과 필이 동시에 대답했다. 제이크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 자식들이……. 얼른 안 가져와!”
제이크가 으름장을 놓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폴과 필이 동시에 머리를 감싸며 부랴부랴 뛰어갔다.
“이크!”
“아, 알겠어요. 가져오면 되잖아요.”
두 사람이 옆방으로 사라지고 잠시 후 검과 갑옷을 들고 나타났다.
“가져왔습니다.”
제이크가 가져온 갑옷과 검을 살폈다. 갑옷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검도 많이 낡아 보였다. 그것을 본 제이크가 눈살을 찡그렸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쩝, 저희들에게 그렇게 물어보셔도 잘 모릅니다.”
“워낙에 도련님께서 이것들을 멀리하셨지 않습니까.”
폴과 필이 한마디씩 건넸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제이크는 검을 들어 검집에서 검을 분리해 보았다.
“윽!”
팔에 잔뜩 힘을 주며 검을 빼 보았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둬서 그런지 검집에서 검이 나오는데 엄청 뻑뻑했다. 간신히 검신이 보였지만 여기저기 녹이 잔뜩 어려 있어 이미 검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된 것 같다.
“이래서는 쓸 수가 없잖아.”
제이크는 그 검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갑옷도 낡아 있고, 검도 사용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갑옷과 검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그럼 최소한 보름 동안 자신의 검으로 연습을 못하게 된다.
“에잇, 그때까지 못 기다려! 이렇게 된 거 아버지 걸 쓰자.”
“네에?”
“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놈들이 귀를 먹었나. 방금 내가 얘기했잖아. 아버지 것을 사용하겠다고.”
“아, 안 됩니다. 그것을 사용했다가 어떤 경을 치시려고.”
“저도 반대입니다. 그냥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새로 하나 맞추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까지 못 기다려. 난 지금 바로 시작할 거니까.”
“도련님.”
폴이 사정하며 말했지만 제이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미 그의 발걸음이 프라인 백작의 서재로 향하고 있었다. 폴과 필이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의 얼굴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서재에 들어선 제이크는 곧바로 아버지 갑옷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검도 함께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제이크는 입가로 미소를 지었다.
“히히히, 역시 깨끗이 손질되어 있군.”
제이크가 막 그것을 손대려고 할 때 폴이 그를 불렀다.
“도, 도련님.”
“에이씨! 왜!”
제이크는 짜증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길 보세요.”
폴이 한 벽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이크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곳으로 갔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검과 갑옷이 보였다.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를 했고, 단 하나 갑옷의 왼쪽 가슴에 세 개의 불꽃이 삼각형을 이루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제이크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꼭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호오, 멋진 갑옷인데. 내가 못 보던 것이잖아.”
“그러게요. 저도 처음 보는 것입니다.”
“저도요.”
폴과 필도 처음 보는 갑옷에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들도 오랫동안 서재를 들락거렸지만 이곳에 갑옷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갑옷 참 멋지네.”
“나도.”
폴과 필이 멍한 눈으로 그것을 쳐다보고 있을 때 제이크가 냉큼 다가와 벽에 걸린 갑옷과 검을 떼어 냈다. 폴과 필이 말릴 시간도 없이.
“히히, 맘에 들었어. 오늘부터 내 것이다.”
그 모습에 폴과 필은 왠지 불안한 눈이 되며 말했다.
“도련님, 그런 건 건드리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맞아요. 백작님의 물건을 함부로 손대었다가 큰일 나면 어쩌시려고요.”
“괜찮아. 어차피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돼. 이미 지하 연무장에서 수련하라고 허락을 해 주셨으니까. 여기 있는 갑옷과 검도 분명 허락해 주셨을 거야. 그러니 당연히 내가 가져도 되는 것이지.”
제이크의 말은 어찌 보면 약간의 억지가 있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두 사람은 그저 묵묵히 제이크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데.”
“그러게 말이야.”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제이크는 냉큼 그것을 챙겨서 서재를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도련님, 같이 가요.”
“같이 가요.”
폴과 필이 제이크의 뒤를 따라 뛰어갔다. 그러나 그 검과 갑옷은 프라인 백작가에서도 알지 못하는 갑옷이었다. 단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저 신비의 갑옷이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프라인 백작가도 모르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 갑옷과 검이 무려 천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하필 오늘 밤에 말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제이크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갑옷이라 생각하고 신이 난 것이다.
제이크가 지하 연무장으로 들어간 지 몇 시간이 흘렀다. 하나 지하 연무장에서는 시간적 감각이 없다. 그 중앙에 제이크가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입구에는 폴과 필이 앉아 있다.
“핫, 에잇! 이얍!”
지하 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리는 제이크의 기합 소리. 하나 검을 휘두르는 건지 아니면 검에 휘둘리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제이크의 검술은 엉망이었다.
“헉, 헉! 빌어먹을!”
쨍그랑!
제이크는 욕을 내뱉으며 검을 내팽개쳤다. 그 모습을 앉아서 지켜보던 폴과 필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카를로스 기사단장님을 부르자니까요.”
제이크가 두 사람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시끄러! 그 영감탱이 말은 꺼내지도 마!”
제이크가 이리도 성을 내는 이유는 카를로스가 은근히 제이크를 무시하는 겨냥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제이크의 괜한 자격지심인 것이다.
“나 혼자 익힐 수 있어.”
제이크가 말을 하며 옆에 떨어진 비전검술 책자를 들었다. 그것을 확인하며 다시 한 번 검을 들었다.
“내가 포기할 줄 알고. 어림없어.”
그 말을 하며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는 폴과 필은 절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구, 고집을 피우시네.”
“몰라서 그래? 우리 도련님의 고집은 그 누구도 못 말리지.”
“하긴 그렇지, 그것이 문제야.”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잠이나 잘까?”
“그래, 자자.”
폴과 필은 서로 말을 주고받고는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하지만 제이크는 온 신경을 검에 집중했다. 책자에 그려진 대로 따라서 검을 움직였다.
휙― 휘휘휙!
물론 생각처럼 검이 움직여 줄 리 만무했다. 제이크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생각처럼 검이 움직여지지 않자. 이제는 아예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젠장, 빌어먹을! 왜 안 되는 거야! 에잇!”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를 때 자신도 모르게 검이 손에서 벗어났다.
“어? 어어?”
손에서 벗어난 검은 그대로 맞은편 벽에 박혔다.
푸욱!
“헉!”
제이크는 헛바람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검의 예리함에 놀라고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벽에 검이 박혔으니 말이다. 제이크는 검이 박힌 곳으로 걸어갔다.
“내 힘이 이렇게도 좋았나?”
살짝 의구심을 가지며 히죽 웃었다.
“하긴 내 힘이 세긴 세지.”
그 말을 하며 벽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것을 빼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합! 어라?”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벽에 박힌 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이크는 이마에 핏줄이 불쑥 솟아오를 정도의 힘을 다시 한 번 주었다. 그래도 벽에 박힌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젠장, 왜 안 빠지는 거야.”
제이크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했지만 검을 뽑지 못했다.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폴과 필을 보았다. 녀석들은 입구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제이크가 분노했다.
“이것들이 또 자! 야, 인마! 어서 일어나지 못해!”
제이크의 언성이 지하 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풀과 필이 벌떡 일어섰다.
“넹?”
“우린 안 잤어요.”
폴과 필이 일어나자 하는 말이다. 그러다 벽에 박힌 검을 보며 두 사람 다 헛바람을 삼켰다.
“헉!”
“어라, 어찌 된 일이래?”
“뭘 그리 멍청히 보고 있어. 어서 이리 와서 잡아 당겨!”
제이크의 분노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폴과 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달려왔다.
“도련님, 왜 검이 여기 있데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검을 벽에 박으면 어떻게 합니까.”
폴과 필이 투덜거리자 제이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닥치고, 어서 당기기나 해!”
“네, 알겠습니다.”
“당연히 뽑아야죠.”
제이크, 폴과 필이 동시에 검의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줬다. 그때 제이크와 폴, 필은 보지 못했지만 검 끝에 달린 둥근 수정에서 빛이 났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혔다. 그와 동시에 벽에 균열이 생기며 허물어졌다.
쩌어억!
허물어진 벽에서 시커먼 구멍이 생기면서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바람은 더욱 강해졌고, 제이크와 폴, 필을 에워쌌다.
“어! 뭐, 뭐야!”
“도련니임!”
“저 구멍이 우리를 빨아 당기고 있어요.”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세 사람은 점점 시커먼 구멍 속으로 끌려갔다. 제이크는 발에 힘을 주며 그 힘에 대항했다. 하지만 더욱 거세진 힘은 곧이어 제이크와 폴, 필을 집어삼켰다.
“으아아아악!”
제이크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사람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시커먼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휘이이잉―
바람은 지하 연무장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시커먼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그곳은 다시 벽돌이 올라가며 그 구멍을 메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을 삼킨 시커먼 구멍은 다시 원래의 벽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하 연무장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과연 조금 전까지 이곳에 세 사람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제이크, 폴, 필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프라인 백작가에서는 그 세 사람을 찾기 위해 몇 달을 헤매었지만 조금의 단서도 얻지 못했다. 하물며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프롤로그 (2)
“후와―”
“까, 깜짝이야!”
폴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필도 살짝 놀랐는지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역시 진지함은 나와 맞지 않아.”
그 한마디에 폴과 필은 뒤로 발라당 넘어질 뻔했다. 어쨌든 다시 평상시로 돌아온 제이크는 옆에 놓인 책자를 펼쳤다.
“어디 보자!”
그 모습에 폴과 필은 서로 마주보고는 제이크에게 다가갔다.
폴이 물었다.
“도련님, 책 읽으십니까?”
“아니.”
“그럼 그것이 무엇인데요?”
“아, 우리 가문의 비전검술!”
“에엥?”
폴과 필이 동시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이크는 검술 책자를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그림은 이해하겠는데 글씨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서, 설마. 도련님 검술을 배우시겠다는 것은 아, 아니시죠.”
폴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아니, 배울 건데.”
“헉!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이것을 보고 있는 것 아니야.”
폴과 필의 두 눈이 더욱 커졌다. 자신들이 따르는 제이크는 절대 검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도 장식용이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게다가 검으로 싸우면 손에 피부가 닿는 느낌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선호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한 사람이었다. 그런 제이크가 갑자기 검을 익히겠다고 한다. 이는 도저히 믿지 못할 상황이었다.
“꾸, 꿈이지?”
“아, 아니, 현실인 것 같은데.”
폴과 필은 어안이 벙벙한 눈길로 책자를 보고 있는 제이크를 보았다. 두 사람은 마치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제이크의 고개가 두 사람에게 향했다.
“폴은 내 검을 챙겨 와, 필은 갑옷을 가져오고.”
제이크의 지시에 폴과 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동시에 물었다.
“뭐하시게요?”
“뭐하시게요?”
그러자 제이크가 버럭 소리쳤다.
“내가 아까 검술을 배울 거라고 했잖아.”
“예?”
“에이, 거짓말이죠?”
앞에 놓인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폴과 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이크는 검술 책자를 덮고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후후후, 내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냐?”
“네.”
“그렇게 보입니다.”
폴과 필이 동시에 대답했다. 제이크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 자식들이……. 얼른 안 가져와!”
제이크가 으름장을 놓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폴과 필이 동시에 머리를 감싸며 부랴부랴 뛰어갔다.
“이크!”
“아, 알겠어요. 가져오면 되잖아요.”
두 사람이 옆방으로 사라지고 잠시 후 검과 갑옷을 들고 나타났다.
“가져왔습니다.”
제이크가 가져온 갑옷과 검을 살폈다. 갑옷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검도 많이 낡아 보였다. 그것을 본 제이크가 눈살을 찡그렸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쩝, 저희들에게 그렇게 물어보셔도 잘 모릅니다.”
“워낙에 도련님께서 이것들을 멀리하셨지 않습니까.”
폴과 필이 한마디씩 건넸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제이크는 검을 들어 검집에서 검을 분리해 보았다.
“윽!”
팔에 잔뜩 힘을 주며 검을 빼 보았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둬서 그런지 검집에서 검이 나오는데 엄청 뻑뻑했다. 간신히 검신이 보였지만 여기저기 녹이 잔뜩 어려 있어 이미 검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된 것 같다.
“이래서는 쓸 수가 없잖아.”
제이크는 그 검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갑옷도 낡아 있고, 검도 사용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갑옷과 검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그럼 최소한 보름 동안 자신의 검으로 연습을 못하게 된다.
“에잇, 그때까지 못 기다려! 이렇게 된 거 아버지 걸 쓰자.”
“네에?”
“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놈들이 귀를 먹었나. 방금 내가 얘기했잖아. 아버지 것을 사용하겠다고.”
“아, 안 됩니다. 그것을 사용했다가 어떤 경을 치시려고.”
“저도 반대입니다. 그냥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새로 하나 맞추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까지 못 기다려. 난 지금 바로 시작할 거니까.”
“도련님.”
폴이 사정하며 말했지만 제이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미 그의 발걸음이 프라인 백작의 서재로 향하고 있었다. 폴과 필이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의 얼굴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서재에 들어선 제이크는 곧바로 아버지 갑옷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검도 함께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제이크는 입가로 미소를 지었다.
“히히히, 역시 깨끗이 손질되어 있군.”
제이크가 막 그것을 손대려고 할 때 폴이 그를 불렀다.
“도, 도련님.”
“에이씨! 왜!”
제이크는 짜증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길 보세요.”
폴이 한 벽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이크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곳으로 갔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검과 갑옷이 보였다.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를 했고, 단 하나 갑옷의 왼쪽 가슴에 세 개의 불꽃이 삼각형을 이루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제이크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꼭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호오, 멋진 갑옷인데. 내가 못 보던 것이잖아.”
“그러게요. 저도 처음 보는 것입니다.”
“저도요.”
폴과 필도 처음 보는 갑옷에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들도 오랫동안 서재를 들락거렸지만 이곳에 갑옷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갑옷 참 멋지네.”
“나도.”
폴과 필이 멍한 눈으로 그것을 쳐다보고 있을 때 제이크가 냉큼 다가와 벽에 걸린 갑옷과 검을 떼어 냈다. 폴과 필이 말릴 시간도 없이.
“히히, 맘에 들었어. 오늘부터 내 것이다.”
그 모습에 폴과 필은 왠지 불안한 눈이 되며 말했다.
“도련님, 그런 건 건드리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맞아요. 백작님의 물건을 함부로 손대었다가 큰일 나면 어쩌시려고요.”
“괜찮아. 어차피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돼. 이미 지하 연무장에서 수련하라고 허락을 해 주셨으니까. 여기 있는 갑옷과 검도 분명 허락해 주셨을 거야. 그러니 당연히 내가 가져도 되는 것이지.”
제이크의 말은 어찌 보면 약간의 억지가 있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두 사람은 그저 묵묵히 제이크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데.”
“그러게 말이야.”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제이크는 냉큼 그것을 챙겨서 서재를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도련님, 같이 가요.”
“같이 가요.”
폴과 필이 제이크의 뒤를 따라 뛰어갔다. 그러나 그 검과 갑옷은 프라인 백작가에서도 알지 못하는 갑옷이었다. 단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저 신비의 갑옷이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프라인 백작가도 모르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 갑옷과 검이 무려 천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하필 오늘 밤에 말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제이크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갑옷이라 생각하고 신이 난 것이다.
제이크가 지하 연무장으로 들어간 지 몇 시간이 흘렀다. 하나 지하 연무장에서는 시간적 감각이 없다. 그 중앙에 제이크가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입구에는 폴과 필이 앉아 있다.
“핫, 에잇! 이얍!”
지하 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리는 제이크의 기합 소리. 하나 검을 휘두르는 건지 아니면 검에 휘둘리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제이크의 검술은 엉망이었다.
“헉, 헉! 빌어먹을!”
쨍그랑!
제이크는 욕을 내뱉으며 검을 내팽개쳤다. 그 모습을 앉아서 지켜보던 폴과 필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카를로스 기사단장님을 부르자니까요.”
제이크가 두 사람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시끄러! 그 영감탱이 말은 꺼내지도 마!”
제이크가 이리도 성을 내는 이유는 카를로스가 은근히 제이크를 무시하는 겨냥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제이크의 괜한 자격지심인 것이다.
“나 혼자 익힐 수 있어.”
제이크가 말을 하며 옆에 떨어진 비전검술 책자를 들었다. 그것을 확인하며 다시 한 번 검을 들었다.
“내가 포기할 줄 알고. 어림없어.”
그 말을 하며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는 폴과 필은 절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구, 고집을 피우시네.”
“몰라서 그래? 우리 도련님의 고집은 그 누구도 못 말리지.”
“하긴 그렇지, 그것이 문제야.”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잠이나 잘까?”
“그래, 자자.”
폴과 필은 서로 말을 주고받고는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하지만 제이크는 온 신경을 검에 집중했다. 책자에 그려진 대로 따라서 검을 움직였다.
휙― 휘휘휙!
물론 생각처럼 검이 움직여 줄 리 만무했다. 제이크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생각처럼 검이 움직여지지 않자. 이제는 아예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젠장, 빌어먹을! 왜 안 되는 거야! 에잇!”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를 때 자신도 모르게 검이 손에서 벗어났다.
“어? 어어?”
손에서 벗어난 검은 그대로 맞은편 벽에 박혔다.
푸욱!
“헉!”
제이크는 헛바람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검의 예리함에 놀라고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벽에 검이 박혔으니 말이다. 제이크는 검이 박힌 곳으로 걸어갔다.
“내 힘이 이렇게도 좋았나?”
살짝 의구심을 가지며 히죽 웃었다.
“하긴 내 힘이 세긴 세지.”
그 말을 하며 벽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것을 빼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합! 어라?”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벽에 박힌 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이크는 이마에 핏줄이 불쑥 솟아오를 정도의 힘을 다시 한 번 주었다. 그래도 벽에 박힌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젠장, 왜 안 빠지는 거야.”
제이크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했지만 검을 뽑지 못했다.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폴과 필을 보았다. 녀석들은 입구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제이크가 분노했다.
“이것들이 또 자! 야, 인마! 어서 일어나지 못해!”
제이크의 언성이 지하 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풀과 필이 벌떡 일어섰다.
“넹?”
“우린 안 잤어요.”
폴과 필이 일어나자 하는 말이다. 그러다 벽에 박힌 검을 보며 두 사람 다 헛바람을 삼켰다.
“헉!”
“어라, 어찌 된 일이래?”
“뭘 그리 멍청히 보고 있어. 어서 이리 와서 잡아 당겨!”
제이크의 분노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폴과 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달려왔다.
“도련님, 왜 검이 여기 있데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검을 벽에 박으면 어떻게 합니까.”
폴과 필이 투덜거리자 제이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닥치고, 어서 당기기나 해!”
“네, 알겠습니다.”
“당연히 뽑아야죠.”
제이크, 폴과 필이 동시에 검의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줬다. 그때 제이크와 폴, 필은 보지 못했지만 검 끝에 달린 둥근 수정에서 빛이 났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혔다. 그와 동시에 벽에 균열이 생기며 허물어졌다.
쩌어억!
허물어진 벽에서 시커먼 구멍이 생기면서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바람은 더욱 강해졌고, 제이크와 폴, 필을 에워쌌다.
“어! 뭐, 뭐야!”
“도련니임!”
“저 구멍이 우리를 빨아 당기고 있어요.”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세 사람은 점점 시커먼 구멍 속으로 끌려갔다. 제이크는 발에 힘을 주며 그 힘에 대항했다. 하지만 더욱 거세진 힘은 곧이어 제이크와 폴, 필을 집어삼켰다.
“으아아아악!”
제이크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사람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시커먼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휘이이잉―
바람은 지하 연무장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시커먼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그곳은 다시 벽돌이 올라가며 그 구멍을 메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을 삼킨 시커먼 구멍은 다시 원래의 벽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하 연무장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과연 조금 전까지 이곳에 세 사람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제이크, 폴, 필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프라인 백작가에서는 그 세 사람을 찾기 위해 몇 달을 헤매었지만 조금의 단서도 얻지 못했다. 하물며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