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헬 나이츠 1권 (12화)
Episode 04 보물찾기 (2)


제이크의 말에 네빌 집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제이크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네빌 집사의 팔을 이끌고는 걸어갔다. 네빌 집사는 제이크에게 이끌려 걸어갔고, 그 모습을 보던 폴이 소리쳤다.
“같이 가요, 도련님.”
필도 그 상황을 목격했다.
“왜 우리만 내버려 두고 혼자 가세요.”
“너무 한다, 그치.”
“뭐가 그치야. 다 너 때문이지.”
폴이 필에게 잔뜩 뿔이 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필도 지지 않았다.
“내가 뭐?”
“아니, 됐다.”
폴은 더 이상 필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제이크와 네빌 집사는 더욱더 멀리 사라져 갔다.
“아, 벌써 저기까지 갔잖아.”
“어라? 어서 가자.”
깜짝 놀란 폴과 필은 두 팔을 휙휙 저으며 열심히 뛰어갔다. 제이크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좀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제이크와 네빌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폴과 필은 앞장서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그들의 웃음은 무척이나 해맑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네빌 집사가 회색빛으로 물든 들판에 도착했다.
“여기가 농경지입니다.”
“알았네.”
제이크는 대답을 하고 들판을 바라보았다. 자란 곡식들의 싹이 전부 회색빛으로 썩어 가고 있었다. 그때 한참 뛰어오던 폴과 필이 미친놈처럼 달려와서는 밝게 얘기했다.
“도련님, 저기 아주 좋은 냄새가 납니다.
“좋은 냄새도 나고, 땅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에 힘도 불끈불끈 솟게 하던 걸요.”
“뭐?”
폴과 필의 말에 제이크의 눈빛이 바뀌었다. 하지만 얘기를 끝낸 폴과 필은 그 느낌이 너무도 좋은지 다시 그곳으로 폴짝폴짝 뜀박질을 하며 뛰어다녔다.
제이크도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네빌 집사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제이크의 뒤를 따라갔다. 폴과 필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한 제이크가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흙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 순간 제이크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아니, 이건!”
제이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손에 느껴지는 지독한 마기. 흙의 작은 알갱이는 이미 검게 변색되어 있다. 제이크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마기를 감지한 그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아 다시 흙을 살펴보았다.
‘이곳도…….’
역시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제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쭈욱 훑어보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곳들이 마기에 물들어 있었다.
‘아니, 왜 마기가 땅속에 스며들었지? 어째서?’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해 보았지만 자신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신 제이크가 발을 내딛는 곳의 흙들이 더욱 짙은 검은색으로 변하였다.
제이크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흙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마기는 이곳에서 존재하여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제이크가 넘어갔던 그곳, 바로 그곳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그곳의 기운은 절대 이곳으로 넘어와서는 안 돼. 잠깐, 혹시…….’
제이크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 흙을 집었다. 그러자 역시 흙의 알갱이들이 짙게 변하였다. 흙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역시 나의 존재에 더욱 반응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혹시 나 때문에?’
제이크가 심각한 얼굴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네빌 집사는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며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난데없이 폴과 필이 뛰어들었다. 네빌 집사가 말리 새도 없었다.
“으앗! 맛있는 냄새가 정말 많이 난다.”
“그러게 말아. 정말 신이 나는 걸.”
두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마냥 신나게 썩어 가는 밀밭을 뛰어다녔다. 안 그래도 제대로 된 농작물이 자라지 않아 조심스러운데 두 사람이 그나마 살아 있는 농작물을 다 넘어뜨리고 있었다. 네빌 집사는 그 모습에 눈살을 찡그렸다.
“이, 이보게들. 그러지 말고, 얌전히 있게.”
네빌 집사가 손을 들어 말렸지만 폴과 필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은 더욱더 신난 표정으로 밀밭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헤헤헤, 좋다. 이런 기분 정말 좋아.”
“이것도 먹어 봐. 정말 맛있어.”
필은 다 읽지도 않은 게다가 썩어 가는 밀을 한 움큼 뜯어내고는 입으로 가져가 우걱우걱 씹어댔다. 그것을 또 폴에게 주자 냉큼 받아먹는다.
“먹어 봐, 꽤 맛있는데.”
“그러게, 정말 맛있는데.”
폴과 필은 썩은 밀을 계속해서 뜯어내며 입으로 마구 가져갔다. 썩은 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맛나게 먹는 모습에 네빌 집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그것을 어째. 이보게! 그만들 하게!”
급기야 네빌 집사는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몇 알의 밀이라도 에페포 자작가에는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빵벌레들이 다 먹어 치우고 있었다. 빵벌레는 네빌 집사가 폴과 필을 두고 한 별명이었다.
밥을 먹는다고 구운 빵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먹어치웠기 때문에 지은 별명이었다. 두 사람이 다 빵을 먹어 버리자 정작 에페로 자작가의 식솔들은 그날 스프만 먹었다.
네빌 집사의 얼굴은 더욱더 일그러졌다. 한 해의 농사를 다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폴과 필은 매우 신나 하며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본 제이크가 재빨리 폴과 필에게 소리쳤다.
“폴, 필! 냉큼 이리 오지 못해!”
제이크의 부름에 신나게 뛰어 놀던 폴과 필이 달려왔다.
“불렀습니까.”
“왜 불렀어요, 도련님?”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제이크 앞에 섰다. 제이크는 눈을 부라리며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았다.
딱, 딱!
“아얏!”
“우씨, 또 때려!”
폴과 필은 머리를 감싸며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제이크가 강하게 윽박질렀다.
“얌전히 있지 못해! 여기가 니들 놀이터야!”
폴이 머리를 감싸며 차분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오랜만에 그곳의 향기를 맡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곧바로 필이 말했다.
“맞아, 냄새도 좋고.”
폴과 필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또다시 제이크의 꿀밤이 이어졌다.
“으윽, 아프다.”
“때린 데 또 때려!”
폴이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하는 반면 필은 눈을 부라리며 올려다봤다. 그러자 제이크의 눈동자가 달라졌다. 서서히 검게 변하며 필을 보았다. 그 순간 눈을 부라리며 대들던 필이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마냥 잔뜩 겁을 먹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얌전히 있어라.”
제이크의 말에 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폴도 그 느낌을 받았는지 황급히 필을 감쌌다.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필은 아직……. 제가 진정시키겠습니다.”
폴이 다급히 말했고, 그제야 제이크의 눈빛이 다시 돌아왔다. 그러자 폴은 필을 데리고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마치 조련된 동물들과 같이 아주 온순해져 있다. 네빌 집사는 갑자기 얌전해진 폴과 필의 모습에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네빌 집사는 제이크가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몰랐다. 다만 제이크가 저들을 쳐다봤고, 잠시 후 몸을 부르르 떨며 몹시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매우 얌전해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더 이상 밀밭을 어지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얌전히 자신 곁으로 와서 앉아 있었다. 그들의 두 눈은 아직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반면 제이크는 폴과 필을 진정시킨 후 몇 군데를 더 둘러보았다. 결론은 역시 처음과 같았다.
‘마기라니. 혹시 내가 이곳으로 건너온 것 때문인가?’
조금 전 흙이 자신의 손이 닫자 변색된 것을 떠올리며 살짝 자책을 했다.
‘나 때문이라면 이거 정말 참 난감하게 되었군.’
제이크는 눈을 찡그리며 네빌 집사에게로 걸어왔다. 제이크가 다가오자 오들오들 떨던 필이 마치 괴물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며 뛰어갔다.
그런데 하필 뛰어가는 곳이 또 밀밭이다.
“아, 이보게. 그곳은…….”
네빌 집사가 또 한 번 손을 들어 불렀지만 이미 저 멀리 달아나고 난 후였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다행인 것은 폴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네빌 집사에게 말을 한 후 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네빌 집사의 얼굴은 매우 불쾌한 듯 보였다. 제이크가 네빌 집사를 보며 말했다.
“내가 사과하겠네. 그냥 저 녀석들 미친놈들이다 생각해 주게. 나도 가끔 컨트롤이 힘들어.”
제이크의 말에 네빌 집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상을 풀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원인은 알아냈습니까? 흙을 만져 보는 것이 매우 심각해 보이시던데…….”
네빌 집사가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이마를 만지며 약간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누군가 영지에 장난을 친 것 같아.”
말을 하면서도 왠지 뜨끔했다.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생긴 일이라면 정말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 때문에 생긴 일인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네빌 집사가 매우 화가 났는지 언성을 높였다.
“네에? 장난이라니요? 감히 어떤 놈이 장난을 친단 말입니까? 당장 국왕께 건의해 죄인을 잡아들여야 합니다.”
흥분한 네빌 집사가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제이크는 그를 보며 재빨리 진성을 시켰다.
“아, 아.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야. 다만 그런 느낌이 든다 이거지.”
“그래도 누군가 영지에 해를 끼친 것은 맞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이 말이야.”
제이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는 사이 네빌 집사는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제이크가 다가가 물었다.
“뭘 적어?”
“제이크 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려야 하지 않습니까.”
네빌 집사는 한술 더 떠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급히 네빌 집사를 말렸다.
“아, 잠깐! 아직 확실치 않다니까. 내가 좀 더 확인하고 조사를 한 후 해도 늦지 않아. 그러니 지금은 그냥 내게 맡겨 둬.”
열심히 적던 네빌 집사가 제이크의 말에 적는 것을 멈추었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일리가 있군요.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네빌 집사도 자신이 성급했던 것을 알았다. 단지 누군가 영지에 해를 끼쳤다는 것만으로 흥분하고, 화가 났다. 게다가 확실치 않는 일인데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려고 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격이 너무 급하군.”
“제가요? 아닙니다. 한 가문의 집사인데 어찌 그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었다. 최근 들어 흥분을 자주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몇 달 전부터 사소한 것에도 흥분하고, 화를 내다니. 이런, 이런.”
네빌 집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갑자기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순간 제이크가 네빌 집사을 불렀다.
“집사!”
“네? 네에?”
제이크가 부르자 네빌 집사는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를 보며 제이크가 조용히 말했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고?”
“네, 그렇습니다만.”
제이크의 표정이 또다시 심각해졌다.
‘역시 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원인을 알아내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제이크가 네빌 집사에게 말했다.
“집사, 그대는 이 길로 가서 농민들에게 전하게. 내가 이곳의 조사를 다 마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접근을 불허한다고 말이야. 마을에서 나오지 말고 그곳에만 있으라고 전하게. 자네도 마찬가지야.”
“저, 저도 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농민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네빌 집사가 물었다. 제이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빈 마나석이 있나?
“빈 마나석이오? 그것은 어째서?”
“내가 필요해서.”
제이크의 말에 네빌 집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제이크 님도 보셨다시피 저희 영지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빚도 많이 있고요. 이런 사정에 그 비싼 마나석이 있겠습니까? 설령 있다고 해도 빚을 갚기 위해 당장이라도 팔아치웠을 것입니다.”
네빌 집사의 말에 제이크가 씁쓸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내가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군. 미안하네.”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