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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츠 1권 (13화)
Episode 04 보물찾기 (3)


네빌 집사도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모습을 뒤로하고 제이크가 농경지를 쭉 훑어보았다.
“휴, 어림잡아 한 20개는 있어야겠는데…….”
넓은 농경지의 마기만 없애려 해도 중간 크기의 마나석이 스무 개는 필요할 것 같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제이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지. 내 돈을 털어내는 수밖에.”
생각을 마친 제이크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가 옮기는 곳은 북쪽의 숲속이었다. 제이크가 향하는 방향이 북쪽이라는 것을 알고는 네빌 집사가 서둘러 말했다.
“제이크 님, 그곳은 가지 않는 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왜?”
“그것이 반 년 전부터 그곳에서 이상한 마물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도 몇 명이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래? 괜찮아. 그보다 자네는 서둘러 돌아가서 아까 했던 말을 전해.”
제이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하지만 네빌 집사는 걱정스러웠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정 가셔야 한다면 기사들이라도…….”
“아, 혼자 가도 돼. 나도 기사니까. 그까짓 마물들쯤 혼자서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어. 그러니 걱정 마.”
제이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북쪽 숲으로 걸어갔다. 네빌 집사는 그래도 불안한지 멀어지는 제이크를 향해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제이크는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때 어디 갔다 왔는지 폴과 필이 제이크의 곁으로 달려왔다. 그들의 얼굴은 조금 전 두려움에 떨던 얼굴이 아니었다. 무척이나 신이 난 밝은 표정들이었다.
네빌 집사는 북쪽 숲으로 사라지는 제이크 일행을 지켜보고는 이내 중얼거렸다.
“괜찮겠지. 그보다 어서 가서 농민들에게 알려야겠군.”
말을 마치자 말자 네빌 집사는 서둘러 마을로 향했다.

3

북쪽 숲으로 들어선 제이크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이내 방향을 정하고는 걸어갔다. 그 뒤를 폴과 필이 따라왔다. 제이크의 눈에 숲 안쪽으로 엷은 마기가 스며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강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북쪽 숲으로 모여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폴과 필도 냄새를 맡고는 흐르고 있는 마기로 가서는 한껏 들이마셨다.
“쓰읍―”
그러자 폴과 필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마기의 기운이라니.”
“헤헤헤, 냄새 좋다.”
제이크는 두 사람의 행동을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러고는 방향을 왼쪽으로 틀었다. 숲 속 깊숙이 몸을 움직여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온 제이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주위를 살폈다. 왼쪽을 보았다가, 다시 오른쪽을 보았다. 제법 큰 나무로 가서 천천히 확인을 해 본다. 그러다가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른 나무에게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이곳 어디였던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를 잘 모르겠는지 현재 있는 주위를 몇 번이고 돌아다니며 확인을 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제법 커다란 나무 밑을 발로 툭툭 쳐 보았다. 그렇다고 뭔가 툭하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무껍질이 벗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발로 몇 번 차더니 잠시 생각을 한 후 고개를 돌렸다.
“폴, 필!”
제이크의 부름에 냉큼 달려오는 두 사람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왜요?”
폴과 필이 눈을 반짝이며 제이크 앞에 섰다. 제이크는 나무 밑의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을 파라.”
“이곳에 뭔가 있습니까?”
“왜요?”
폴과 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냥 한 번 말할 때 ‘네, 알겠습니다.’ 하면 안 되냐? 꼭 두 번 말해야 해?”
제이크는 짜증이 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필이 심드렁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갑자기 땅을 파라고 하니 궁금해서 그렇죠. 그치?”
필이 폴을 보며 말했다. 폴도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크에게 말했다.
“필의 말도 맞습니다.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땅을 파더라도 꺼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폴의 차분한 말에 제이크의 인상이 찡그러졌다. 그는 슬슬 살기를 띠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폴! 니들이 언제부터 내말에 토를 달았나? 이곳으로 건너오니 살 만한가 보지?”
제이크가 으름장을 놓으며 말하자 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도 못 느끼는 필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 그것이 아니라…….”
폴이 말했다.
“또 때리려고?”
필이 머리를 감싸며 째려봤다. 제이크는 참지 않았다. 손이 휙휙 움직여 폴과 필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탁, 탁!
폴과 필은 눈에서 뭔가 번쩍였다. 그러고는 뒤통수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폴과 필은 동시에 뒤통수를 감싸며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야얏!”
“이러다 뒤통수 남아나지 않겠네.”
“난 벌써 뒤통수에 혹이 하나 생겼어.”
“나도. 이거 보세요, 도련님.”
급기야 필은 자신의 뒤통수를 제이크에게 보여 주며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제이크는 쳐다보지도 않고 또 한 번 주먹을 쥐었다.
“아직 덜 맞았구나. 오냐, 일단 맞고 시작하자.”
제이크의 으름장에 폴과 필은 동시에 깜짝 놀라며 멀찍이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피하는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사라지는 것이 감쪽같다.
하지만 제이크의 눈에는 그들이 어디로 도망을 쳤는지 보였다. 오른편의 큰 나무 뒤로 숨어 들어간 것을 확인한 제이크가 나직이 속삭였다.
“좋은 말로 할 때 튀어나와!”
그러자 나무 뒤에서 폴과 필이 얼굴을 살짝 내밀며 말했다.
“안 때리시면 나가고요.”
“도련님이 때리시는 것은 너무 아파요.”
둘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제이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알았다. 그러니 어서 나와.”
손을 들어 까닥거렸다. 폴과 필은 서로 눈치를 보며 삐죽삐죽 걸어 나왔다. 제이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말을 말지. 알았다, 이놈들아. 만일 내가 찾는 걸 발견하는 녀석은 내 피를 한 방울 주마.”
제이크의 말에 폴과 필의 눈동자가 바뀌었다. 마치 이글이글 타오르는 탐욕스런 눈빛이었다. 폴과 필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튀어나오며 제이크 앞에 섰다.
“저, 정말이에요?”
“도련님 정말이죠?”
둘은 제이크에게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야호!”
“정말 얼마 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야.”
폴과 필은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표출했다. 제이크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마음이 짠했다.
‘쯧쯧, 폴은 괜찮지만 필은 아직 멀었나? 그래도 두 명 다 인간의 본성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지.’
제이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두 사람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폴과 필은 의욕이 넘쳐흘렀다. 폴이 제이크를 보며 물었다.
“도련님, 이곳입니까?”
그러자 곧바로 필이 나서며 말했다.
“맞아, 이곳이라고 해서 내가 먼저 파야지.”
말을 마치자 마자 곧바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폴이 인상을 찡그렸다.
“앗! 필, 반칙이야.”
“반칙이 어디 있어.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지.”
“쳇, 치사한 녀석.”
폴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필은 곧바로 제이크가 가리킨 방향을 파기 시작했다.
팟! 파파팟!
엄청난 빠른 속도였다. 그때를 같이해 폴도 합세를 했다.
“같이 파!”
쾅, 쾅, 쾅!
제이크는 뒤로 살짝 물러나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폴과 필은 엄청난 속도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저 발만 내딛고 있는 느낌으로 봐도 엄청 딱딱해 보였다. 그런데도 폴과 필에게는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폴이 두 주먹으로 땅을 두들기며 다졌고, 그곳을 필이 두 팔로 팠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이 감지되었다. 평상시보다 폴의 팔이 커져 있었고, 필의 팔 또한 좀 더 늘어나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폴의 팔이 단단한 것이 마치 바위처럼 변하였고, 필의 팔은 고무팔처럼 늘어난 것이다. 이것은 폴과 필이 가진 능력 중에 하나였다.
제이크와 함께 넘어간 폴과 필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마인이 되어야 했다.
이것은 그들의 선택이었고, 두 사람은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얘기치 않은 부작용이 생겨났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서서히 사라지며 마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제이크가 간신히 막았지만 인간의 본성을 반 정도는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기억마저 옛날 이곳에서 장난기 많고, 언제나 함께 놀았던 그때의 일만 기억하고 있기에 그동안 이상한 행동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신이 돌아올 때도 있다. 다만 이렇듯 조금의 마기라도 나타났을 때 그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이크는 폴과 필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이크에게도 숨기고 싶은 부작용이 하나 있다는 것도…….
어쨌거나 제이크의 지시로 폴과 필이 열심히 땅을 팠다. 하나 아무리 파도 제이크가 말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제이크는 유심히 그곳을 살피고는 말했다.
“그만!”
폴과 필이 땅 파는 것을 멈추며 고개를 들었다.
“그만 파요?”
“그래! 다음은 저곳을 파 보아라.”
“네, 도련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이크의 지시에 폴과 필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또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과 곡괭이로 파는 것보다 더 빨랐다.
파파파파파팟!
필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한 움큼의 땅이 파여지며 뒤로 싸여 갔다. 두 사람은 정말이지 미친 듯이 땅을 파헤쳤다. 한참을 땅을 파던 그때 필의 팔이 멈추었다.
“어라?”
“도련님? 이거예요?”
필의 말에 제이크가 걸어갔다. 폴과 필이 판 구덩이에 동물의 시체로 보이는 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이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먹어도 돼요?”
말이 끝나자 말자 필은 동물의 뼈를 냉큼 입으로 가져가 삼켰다. 그 순간 폴이 필을 바라보며 말했다.
“치사하게 너만 먹어?”
“히히히, 먼저 손대는 사람이 임자지.”
필은 입안에 있는 동물 뼈를 아주 맛나게 오도독 씹어댔다. 그 소리에 제이크가 인상을 찡그리며 필의 머리를 발로 찼다.
퍽!
“아얏!”
“그런 것 먹지 마!”
“쳇, 먹는데 때리고…….”
필이 투덜거리며 구덩이에서 기어 나왔고, 그 모습을 보던 폴이 피식 웃었다.
“킥킥, 꼴좋다.”
“뭐야? 너 말 다했어?”
“내가 뭐, 뭐라고 했는데?”
필의 언성에 폴은 시치미를 뗐다. 필이 폴을 보며 으르렁댔다. 하지만 둘은 주먹으로 치고 박고 싸우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눈만 부라렸다. 이런 면에서는 두 사람이 쌍둥이라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제이크는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하고 다른 장소를 물색했다.
“쩝,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이곳도 많이 변한 모양이군. 하지만 장소는 이곳이 틀림없는데.”
제이크가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군.”
그 한마디를 하고는 두 손을 들어 바닥이 아래로 가게 했다. 그러고는 마치 무언가를 조사하는 것처럼 땅 위를 휙휙 저으며 움직였다. 바로 제이크의 디펙트 능력이었다.
디펙트의 능력을 사용해 땅 주위를 돌아다니던 제이크가 땅 아래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곳을 파!”
제이크의 명령에 두 사람은 쏜살같이 달려와 또다시 땅을 팠다. 역시 능력자인 폴과 필이기에 땅은 순식간에 파이며 내려갔다. 그때 폴 앞에 큼직한 돌덩어리가 나타났다. 필의 손으로 어찌하지 못하자 폴이 나섰다.
돌덩어리를 한 번 쳐다보고는 큰 기합 소리를 냈다.
“이합!”
쾅! 콰콰쾅!
그 순간 엄청난 크기의 돌덩어리는 폴의 주먹질에 서서히 금이 생겨나며 박살나기 시작했다. 폴 주위로 부서진 돌 파편들이 비상했다. 하지만 폴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돌덩어리에 주먹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