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헬 나이츠 1권 (14화)
Episode 04 보물찾기 (4)


그때 폴의 주먹에는 검은 오러가 생성되어 있었다. 폴의 주먹질에 돌덩어리는 순식간에 박살이 났고, 그 아래에 거무튀튀한 반지 같이 생긴 것이 하나 나왔다.
폴은 그것을 발견하고는 냉큼 제이크에게 뛰어가 그것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죠?”
“아니!”
제이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시무룩해진 폴이 그 반지를 챙겼다.
“그럼 이거 제가 해도 되죠?”
“쓰읍! 내 놔!”
제이크가 눈을 부라리며 손을 내밀었다. 폴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쳇, 아니라면서 뺐냐?”
그렇게 툴툴거리며 제이크가 지정한 곳을 또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 동안 제이크가 손으로 감지를 하고 폴과 필이 열심히 땅을 팠다.
그 결과 드디어 제이크가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찾았어요!”
폴과 필이 동시에 소리쳤다. 제이크도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간 제이크는 필과 폴이 파 놓은 구덩이 한가운데서 오래된 나무 상자가 발견되었다.
땅에 오랫동안 있어서 그런지 검게 변색되었지만 나무가 썩어 있지는 않았다.
“어서 꺼내라!”
제이크가 지시를 하자 폴이 그 나무 상자를 들고는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제이크 바로 옆에 서며 잔뜩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제이크가 상자를 한 번 쓰다듬고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십여 년 전,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제이크는 어머니의 유품을 모아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북쪽 숲속으로 와서는 땅에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지 제이크에게는 남다른 추억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독립할 때 여유 자금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련을 하던 중 그곳으로 넘어가고 이것에 대한 것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에페로 자작가의 힘든 사정을 듣고는 문득 떠오른 것이다. 물론 자기의 일도 아닌데 나서서 도와준다는 것이 좀 그랬다. 하지만 에페로 자작가는 옛날 자신의 영지였고, 말썽만 부렸던 그때의 일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제이크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자물쇠를 손으로 쥐었다. 그러고는 힘을 주자 자물쇠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뚜껑을 천천히 열자 그곳에 눈이 돌아갈 정도의 반짝이는 보석들이 엄청 많았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가 남긴 유품인 것이다. 그 외에도 어머니가 사용하던 여러 가지 물건들도 함께 넣어 두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만지며 어머니를 생각한 제이크는 돈이 될 만한 물건들만 빼내고 나머지는 다시 넣었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는 폴과 필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까 그 자리에 갖다 놔.”
“예에?”
“아니, 힘들게 팠는데 도로 가져다 놓으라니요.”
폴과 필은 제이크의 지시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크가 눈을 한 번 부라리자 투덜거리면서 상자를 들고 구덩이로 향했다.
“가져다 놓겠습니다.”
“네, 시키는 대로 해야죠.”
폴과 필이 상자를 다시 구덩이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자 제이크가 말했다.
“흙으로 묻어.”
“아, 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토를 달지 않았다. 곧바로 시키는 대로 파놓은 흙은 도로 구덩이에 넣었다. 파는 것만큼 묻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몇 번 손을 움직이자 파였던 땅이 도로 평평해졌다. 제이크는 따로 빼놓은 보석들과 값나가는 물건들을 챙겼다. 대략 돈으로 환산해도 100만 골드쯤 될 것 같았다.
워낙에 귀한 것들이고, 시간도 지나 희소성에 대한 값어치가 올라갔기에 가능했다. 그것을 챙긴 제이크가 폴과 필에게 다시 말했다.
“그동안 파 놓은 구덩이를 다 묻고 난 후 내려와.”
그 한마디만 하고는 제이크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필은 그저 멍하니 있다가 신경질을 부렸다.
“젠장, 만날 이런 것만 시켜. 그리고 피 한 방울 준다고 해 놓구선 그냥 가 버리네. 아, 치사하다, 치사해!”
폴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도련님은 약속은 지키시잖아. 여기 있는 거 다 묻으면 주시겠지. 시작하자.”
“뭐, 어쨌든 도련님이 치사한 것은 사실이야.”
폴의 말에도 필은 연신 투덜거리며 그동안 파놓은 구덩이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 몇 십 군데를 파 놓았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폴은 덩치에 비해 힘도 좋고, 속도도 빨랐다. 필은 늘어나는 팔로 아주 손쉽게 구덩이를 메웠다.
그렇게 구덩이를 다 묻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폴과 필은 그 순간 배고픔이 밀려왔다.
“아, 빵!”
“맞아, 오늘 저녁에 빵이 나온다고 했지.”
“벌써 여기까지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우와, 배고프다. 어서 내려가자.”
“우리 내기할까?”
폴이 갑자기 제안을 했다.
“뭔 내기?”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빵 하나 더 먹기!”
“좋아!”
내기를 성립한 폴과 필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뛰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날아간다고 할 정도의 빠른 몸놀림이었다.



Episode 05 살림에 보태시오 (1)


1

모든 일과를 마무리 짓는 늦은 저녁 시간.
아이린은 집무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인다. 흩어진 펜들과 각종 서류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한쪽으로 옮겨 놓는다.
대충 정리가 끝난 아이린은 자신 앞에 따로 놓인 서류 뭉치를 들고 일어났다. 손에 들린 것은 오늘 네빌 집사가 올린 보고서였다. 이것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볼 생각이다.
책상 위를 한 번 훑어보고는 그것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책상을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이린이 멈칫한다.
‘이 시간에 누구지? 집사인가?’
아이린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말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제이크였다. 제이크를 본 아이린이 의외라는 눈빛이 되었다.
“어머? 어쩐 일이세요?”
제이크는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 있었군. 지금 바쁜가?”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방금 일을 마치던 참이었어요.”
“그래? 내가 늦은 것은 아니고?”
“괜찮아요. 우선 여기에 앉으세요.”
아이린이 밝은 표정으로 자리를 권했다. 제이크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손에 들린 상자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아이린의 시선이 그곳에 향했지만 무엇인지는 몰랐다.
“어쩐 일이세요?”
아이린의 물음에 제이크는 탁자 위에 올려놓은 상자를 밀었다.
“우선 이거 받아.”
제이크가 가지고 온 상자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설마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고는 몰랐다. 궁금증을 느낀 아이린이 곧바로 물었다.
“이게 뭔가요?”
제이크가 내민 상자를 만지지도 않은 채 물었다. 제이크는 그저 담담히 말했다.
“보면 되잖아. 열어 봐.”
살짝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아이린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이크는 반말부터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말을 약간 퉁퉁 튕기며 하며 며칠 동안 지내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쨌든 상자를 열어 보라고 하니 열어 보았다.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본 순간 아이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달빛에 반사되어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아이린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그녀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 아니… 이건…….”
상자 안에는 엄청난 보물들로 가득했다. 반지며 귀걸이, 목걸이까지 모두 다 빼어난 수공예를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아이린은 여성이기에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상자 안에 있는 보물들의 값어치가 상당하다는 것도 잘 알았다.
“헛, 이걸 어디서?”
제이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원래 여기가 프라인 백작가였다는 걸 알지? 나도 한때 여기에 있었고 말이야.”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도 뭔가 생각이 났는지 곧바로 말했다.
“아, 그럼 그때?”
“그래, 물려받은 유산이 조금 되는데 그걸 나만이 아는 장소에 숨겨 놨거든. 다행히 그 자리에 있더라고. 그래서 조금 챙겨 왔어.”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상자의 뚜겅을 천천히 닫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제게?”
“아, 음… 뭐랄까?”
제이크는 갑자기 난감한 표정이 되며 말을 더듬었다. 사실 제이크는 남에게 도움을 준다거나 베푼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것은 독립할 때 필요한 자금으로 쓰기 위해 모아 둔 것이다. 순전히 자신만의 비상금이다.
그런데 아이린을 위해, 아니, 에페로 자작가를 위해 선뜻 내놓았다. 옛날 같은 성격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대사건이었다.
이런 실정이니 제이크도 마땅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도와주려고 가져왔다고 말하기도 뭐했다.
“……?”
아이린은 더욱 궁금증을 느끼며 제이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자 갑자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냥 먹여 주고 재워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
말이 되지 않는다. 먹여 주고 재워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니. 이 정도의 돈이라면 큰 식당을 차려도 되고, 상단을 운영해도 된다. 아니면 작은 마을을 통째로 구입해도 될 정도였다.
이런 것을 고작 먹여 주고 재워 준 보답이라고 선뜻 내놓는 것이 아이린으로서는 경계를 품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지낸 지도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일주일치 숙식 치고는 너무 많다. 그것도 상당히 말이다.
“먹여 주고 재워 준 보답이라고요?”
살짝 의심의 눈초리로 말하는 아이린. 갑자기 쑥스러워진 제이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뭐 그렇다는 거지. 부담 갖지는 마.”
웃고 있는 제이크를 한동안 바라보던 아이린이 굳은 얼굴로 상자를 도로 밀어 제이크 앞에 두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받을 수는 없네요.”
“왜?”
제이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아이린이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단지 며칠 동안 신세진 것에 대한 보답치고는 너무 과분한데요. 게다가 당신은 손님으로 이곳에 머무는 것이에요. 이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린이 딱 자르며 거절했다. 제이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정말 받지 않을 거야?”
“네.”
“이 성이 다른 놈에게 그냥 넘어가도 말이야?”
“그건…….”
아이린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녀도 앞에 놓인 돈이라면 충분히 탐이 났다. 그냥 먹이고 재워 준 보답이란다. 그냥 감사히 받으면 되었다. 하지만 뭣 모르고 이렇게 큰돈을 받기에는 부담이 솔직히 되었다.
아이린이 말을 못했다. 제이크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나도 한때는 이곳의 주인이었다. 그딴 녀석에게 이 성을 넘기는 것을 두고 보고 싶지 않아. 너도 그렇고 싶지 않잖아. 안 그래?”
“…….”
아이린은 말이 없었다. 사실 누구보다도 이 성을 넘기고 싶지 않은 것은 아이린 본인이다. 설령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돈을 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솔직히 두려웠다. 제이크와 안 지 이제 고작 일주일인데 이 사람은 뭘 믿고 이리도 큰돈을 성큼 내놓는 것이며, 아이린은 무슨 염치로 이것을 받겠는가.
아이린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가 답답한지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정 받기 거부하면 투자라고 해 두지.”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아이린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투, 투자요?”
“그래, 투자! 내가 당신에게 투자를 하겠어.”
제이크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린이 표정이 바뀌었다. 솔직히 투자라는 말에 많이 당황했다.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접근한 사람들에게 넙죽넙죽 돈을 받았다가 지금 영지가 이 모양이 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투자금을 받는다면 이제 헤어날 구멍도 없게 된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린은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을 눈치챈 제이크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험, 크게 생각할 것 없어. 따로 이자는 주지 않아도 되고, 원금은 넉넉해지며 그때 갚으면 된다. 정, 내말을 못 믿겠으면 계약서도 써 주지. 이 성을 지켜야 하잖아.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