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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츠 1권 (15화)
Episode 05 살림에 보태시오 (2)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려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자도 안 받는다. 원금도 자금이 넉넉해질 때 그때 갚으라고 한다. 아이린은 제이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 속에 정말이지 진심이 담긴 것 같다. 말투에서도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아이린 고개를 숙였다.
“의심해서 미안해요. 워낙에 그런 자들에게 많이 당해서…….”
“뭐, 나 같아도 먼저 의심했을 거야. 어느 누가 이런 거금을 선뜻 내주겠어. 이해해.”
제이크의 따뜻한 말에 아이린의 어깨가 들썩였다.
“아무튼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흐느끼며 제이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아이린의 모습을 보던 제이크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해 왔다. 아이린이 흐느끼는 모습이 옛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밤만 되면 저렇게 조용히 흐느끼며 울었던 것 같다. 왜 우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때 제이크는 몰래 숨어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기 전에 자신을 보며 안쓰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갑자기 제이크의 콧잔등이 찡해져 왔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나간다.”
제이크가 곧바로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아이린의 흐느낌은 계속되었다.
홀로 밖으로 나온 제이크는 천천히 복도를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두며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보았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괜찮죠?”
2
다음날 새벽 일찍 깨어난 아이린은 집무실로 가기 전에 하녀를 시켜 급히 네빌 집사를 불렀다. 그리고 아이린은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서 어제 제이크가 준 상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섰다. 그는 새벽 일찍 찾는 아이린의 말에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아가씨, 부르셨습니까?”
“네, 아침 일찍 불러서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요. 전 항상 이 시간에 깨어 있습니다. 그보다 무슨 급한 일이시기에…….”
네빌 집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이린은 탁자 밑에 내려놓은 상자를 올렸다. 어젯밤 늦게 제이크가 건네준 상자였다. 그것을 본 네빌 집사가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열어 보세요.”
아이린의 말에 네빌 집사는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네빌 집사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했으면서도 의심이 들었다.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진짜였다.
“아, 아가씨… 이게 대체…….”
너무 놀라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 집사의 모습을 보며 아이린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놀라셨지요. 저도 처음에 이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보물을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정신을 차린 네빌 집사가 황급히 물었다. 그러자 아이린이 나직이 대답했다.
“제이크 님께서 주셨습니다.”
“제, 제이크 님께서요?”
“네, 어젯밤 절 찾아오셔서 주시고 가신 것입니다.”
아이린의 말에 네빌 집사는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아무 조건 없이 이것을 주고 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장난기가 있어 보이고 또 어떤 때는 진지했다가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였다.
하물며 그를 안 지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뭘 믿고 이리도 큰돈을 내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린이 넌지시 말했다.
“믿기지 않으시죠.”
“네, 네에? 아,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그렇습니다. 제이크 님과 저희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리도 큰돈을 내놓을까요? 혹시…….”
네빌 집사는 혹시라도 그도 이 성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것을 눈치챈 아이린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혹시 불순한 뜻을 품고 이것을 줬을 거라 생각하세요?”
그녀의 직접적인 물음에 네빌 집사는 움찔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지만 제이크 님을 안 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고, 하물며 이 성의 전 주인이었던 프라인 백작가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다시 성을 찾으려고…….”
“아뇨, 그럴 분이 아니세요. 저도 처음에 그것을 의심했지만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아이린이 네빌 집사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네빌 집사는 아이린의 눈빛에서 굳건한 믿음이 느껴졌다. 네빌 집사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제이크 님을 굳게 믿고 계시는군요.”
네빌 집사의 말에 아이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네, 믿어요. 어제 그 사람의 눈을 봤다면 말이죠. 어쨌든 절대 불순한 생각으로 저희에게 이것을 준 것은 아닙니다. 이건 믿어도 돼요.”
“아가씨께서 믿고 계신다면야 저야 상관없습니다. 게다가 이것으로 우리 가문을 살릴 수야 있다면 제이크 님은 우리 가문의 큰 은인이 되는 것입니다.”
“네, 그럼요.”
아이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했다. 그러고는 상자 안에 있는 보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말했다.
“그것보다 이 물건의 정확한 가치를 모르겠어요. 집사님께서는 골동품 감정에 일가견이 있잖아요. 그러니 한 번 살펴 주세요.”
새벽 일찍 네빌 집사를 부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네빌 집사는 예전 상단 일을 할 때 골동품 감정을 담당해 왔다. 그래서 제이크가 준 보물의 감정을 물어보려고 부른 것이다.
아이린의 말에 네빌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물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아이린은 옆에서 숨 죽인 채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네빌 집사가 하나하나 확인을 하던 중 어느 하나의 보석에 눈이 커졌다.
“아, 아니, 이것은…….”
네빌 집사가 깜짝 놀라며 그 보석을 들었다. 아이린도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네빌 집사를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네빌 집사가 그것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가씨,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어디를?”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방금 본 것이 확실치 않아서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네빌 집사는 그 말만 남기고 집무실을 나갔다. 아이린은 의아해하며 지켜보다가 네빌 집사가 보고 놀란 그 물건을 손에 쥐었다. 목걸이였다. 목에 걸 줄과 함께 그 중앙에 보라색을 띠고 있는 그 보석을 빼고는 그냥 단순했다.
다만 아무 장식도 갖추지 않은 이것이 오히려 중앙에 있는 보석을 더욱 가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있었다. 너무나도 예쁘면서 아름다웠다. 그 보석에서 자체 발광이 나올 정도였다.
아이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와아, 너무나 아름답다.”
한동안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다시 집무실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하나의 책이 들려져 있었다.
네빌 집사는 오자마자 책을 펼쳤다. 몇 장을 넘기던 그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고는 책과 아이린의 손에 들린 그 보석을 연달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이것이었어. 이것!”
“무엇이기에 이리도 놀라십니까?”
아이린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바로 말해 주었다.
“제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 저의 생각이 맞았습니다. 이것은 아니, 이 보물은 바로 미라젠의 눈물입니다.”
네빌 집사는 흥분이 되는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네? 미라젠의 눈물? 이게요?”
“그렇습니다. 여길 보십시오.”
네빌 집사는 자신이 가지고 온 책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 아이린이 들고 있는 그 보석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 미라젠의 눈물이라고 적혀 있다. 아이린은 그림과 보석을 연달아 보며 물었다.
“그렇군요. 그림과 똑같아요.”
“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미라젠의 눈물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하하핫!”
네빌 집사는 감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아이린이 그런 네빌 집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네빌 집사는 바로 헛기침을 하였다.
“허험,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보석이나 골동품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미라젠의 눈물을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네에? 그럼 이것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에요?”
“대단하다 뿐이겠습니다. 이것의 값어치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네빌 집사의 말에 아이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네빌 집사는 허언을 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빌 집사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책장을 넘기며 다른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한때 딱 한번 이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네빌 집사가 내민 책장에는 같은 색의 보석이 또 있었다. 하지만 보석이 아니라 귀걸이였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미라젠의 목걸이와 닮아 있었다.
“어? 귀걸이인데 이것과 마치 한 쌍인 것처럼 닮았네요.”
“하하하, 바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라젠의 눈물과 한 쌍인 루시의 이슬입니다. 저의 이 두 눈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거죠?”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빌 집사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거의 처음 보았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것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과거 카론 왕국의 베론 후작이라고 계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아리따운 두 분의 따님이 계셨습니다. 베론 후작은 두 따님을 너무나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최고의 장인이 계셨는데 베론 후작님과 아주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일 선물로 이것을 선물했는데 그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 장인께 돈 대신 영지와 별장을 드렸다고 합니다. 어쨌든 베론 후작은 그것을 성인이 된 따님께 각각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기 있는 루시의 이슬은 첫째 따님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미라젠의 눈물 또한 둘째 따님의 이름을 따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인기가 매우 높아 사교계의 큰 파란을 몰고 왔습니다. 하물며 수많은 짝퉁들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이 보석의 가치가 더 높은 이유는 그분의 마지막 작품이라 더 그러합니다.”
“잠깐만요. 장인요? 이 작품을 만드셨다는 분이라면 엄청 대단하신 분이시겠네요.”
“네, 당연하죠. 저희들에게도 익숙한 분이십니다. 바로 장인 노벨이십니다.”
“네에? 장인 노벨 님요?”
“네, 그렇습니다.”
장인 노벨. 이 사람은 그 옛날 전설의 드워프의 후손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아주 뛰어난 세공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그 가치와 아름다움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투박한 손으로 섬세하게 다듬는 기술하며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장식품의 대가였다.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이라고 하면 아주 고가에 팔리고 있었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매우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그의 상품 가치를 더욱 높여 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것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진 자필 사인이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인이기에 짝퉁이 나와도 금방 들통이 날 정도였다. 그것을 기억해 낸 네빌 집사가 미라젠의 눈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 어딘가 그분의 사인이 있을 텐데…….”
한참을 찾던 네빌 집사의 눈이 커졌다.
“여기 있군요. 분명 장인 노벨님의 것이 맞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보라색을 띠고 있는 미라젠의 눈물 상부를 보여 주었다. 그곳에 아주 미세하지만 노벨이라는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건 진품입니다.”
네빌 집사도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이것의 대한 부연 설명을 하였다.
“그러니까. 루시의 이슬이 먼저 나왔고, 미라젠의 눈물은 카론 왕국의 멸망과 함께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네빌 집사는 미라젠의 눈물을 손에 쥐며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린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흥분한 얼굴이 되어 있던 네빌 집사도 안색을 바꾸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베론 후작님의 둘째 따님이 혹시 제이크 님의 어머니가 아닐까요?”
아이린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던 네빌 집사가 바로 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베론 후작님의 둘째 따님이 프라인 백작가로 시집을 갔다는 얘기는 있었습니다.”
“그럼 혹시 그분의 이름이 미라젠이었나요?”
“그건 저도 잘……. 하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네에, 그렇군요.”
아이린은 대답을 하면서 갑자기 슬픈 표정이 되었다. 솔직히 아이린은 이걸 받아야 하나 고민이 커졌다. 어머니의 유품에 그것도 매우 귀한 것인데……. 그녀의 고민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 아이린의 표정을 뒤늦게 확인한 집사가 흥분만 마음을 진정시켰다.
Episode 05 살림에 보태시오 (2)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려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자도 안 받는다. 원금도 자금이 넉넉해질 때 그때 갚으라고 한다. 아이린은 제이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 속에 정말이지 진심이 담긴 것 같다. 말투에서도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아이린 고개를 숙였다.
“의심해서 미안해요. 워낙에 그런 자들에게 많이 당해서…….”
“뭐, 나 같아도 먼저 의심했을 거야. 어느 누가 이런 거금을 선뜻 내주겠어. 이해해.”
제이크의 따뜻한 말에 아이린의 어깨가 들썩였다.
“아무튼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흐느끼며 제이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아이린의 모습을 보던 제이크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해 왔다. 아이린이 흐느끼는 모습이 옛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밤만 되면 저렇게 조용히 흐느끼며 울었던 것 같다. 왜 우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때 제이크는 몰래 숨어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기 전에 자신을 보며 안쓰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갑자기 제이크의 콧잔등이 찡해져 왔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나간다.”
제이크가 곧바로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아이린의 흐느낌은 계속되었다.
홀로 밖으로 나온 제이크는 천천히 복도를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두며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보았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괜찮죠?”
2
다음날 새벽 일찍 깨어난 아이린은 집무실로 가기 전에 하녀를 시켜 급히 네빌 집사를 불렀다. 그리고 아이린은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서 어제 제이크가 준 상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섰다. 그는 새벽 일찍 찾는 아이린의 말에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아가씨, 부르셨습니까?”
“네, 아침 일찍 불러서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요. 전 항상 이 시간에 깨어 있습니다. 그보다 무슨 급한 일이시기에…….”
네빌 집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이린은 탁자 밑에 내려놓은 상자를 올렸다. 어젯밤 늦게 제이크가 건네준 상자였다. 그것을 본 네빌 집사가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열어 보세요.”
아이린의 말에 네빌 집사는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네빌 집사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했으면서도 의심이 들었다.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진짜였다.
“아, 아가씨… 이게 대체…….”
너무 놀라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 집사의 모습을 보며 아이린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놀라셨지요. 저도 처음에 이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보물을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정신을 차린 네빌 집사가 황급히 물었다. 그러자 아이린이 나직이 대답했다.
“제이크 님께서 주셨습니다.”
“제, 제이크 님께서요?”
“네, 어젯밤 절 찾아오셔서 주시고 가신 것입니다.”
아이린의 말에 네빌 집사는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아무 조건 없이 이것을 주고 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장난기가 있어 보이고 또 어떤 때는 진지했다가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였다.
하물며 그를 안 지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뭘 믿고 이리도 큰돈을 내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린이 넌지시 말했다.
“믿기지 않으시죠.”
“네, 네에? 아,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그렇습니다. 제이크 님과 저희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리도 큰돈을 내놓을까요? 혹시…….”
네빌 집사는 혹시라도 그도 이 성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것을 눈치챈 아이린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혹시 불순한 뜻을 품고 이것을 줬을 거라 생각하세요?”
그녀의 직접적인 물음에 네빌 집사는 움찔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지만 제이크 님을 안 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고, 하물며 이 성의 전 주인이었던 프라인 백작가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다시 성을 찾으려고…….”
“아뇨, 그럴 분이 아니세요. 저도 처음에 그것을 의심했지만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아이린이 네빌 집사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네빌 집사는 아이린의 눈빛에서 굳건한 믿음이 느껴졌다. 네빌 집사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제이크 님을 굳게 믿고 계시는군요.”
네빌 집사의 말에 아이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네, 믿어요. 어제 그 사람의 눈을 봤다면 말이죠. 어쨌든 절대 불순한 생각으로 저희에게 이것을 준 것은 아닙니다. 이건 믿어도 돼요.”
“아가씨께서 믿고 계신다면야 저야 상관없습니다. 게다가 이것으로 우리 가문을 살릴 수야 있다면 제이크 님은 우리 가문의 큰 은인이 되는 것입니다.”
“네, 그럼요.”
아이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했다. 그러고는 상자 안에 있는 보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말했다.
“그것보다 이 물건의 정확한 가치를 모르겠어요. 집사님께서는 골동품 감정에 일가견이 있잖아요. 그러니 한 번 살펴 주세요.”
새벽 일찍 네빌 집사를 부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네빌 집사는 예전 상단 일을 할 때 골동품 감정을 담당해 왔다. 그래서 제이크가 준 보물의 감정을 물어보려고 부른 것이다.
아이린의 말에 네빌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물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아이린은 옆에서 숨 죽인 채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네빌 집사가 하나하나 확인을 하던 중 어느 하나의 보석에 눈이 커졌다.
“아, 아니, 이것은…….”
네빌 집사가 깜짝 놀라며 그 보석을 들었다. 아이린도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네빌 집사를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네빌 집사가 그것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가씨,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어디를?”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방금 본 것이 확실치 않아서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네빌 집사는 그 말만 남기고 집무실을 나갔다. 아이린은 의아해하며 지켜보다가 네빌 집사가 보고 놀란 그 물건을 손에 쥐었다. 목걸이였다. 목에 걸 줄과 함께 그 중앙에 보라색을 띠고 있는 그 보석을 빼고는 그냥 단순했다.
다만 아무 장식도 갖추지 않은 이것이 오히려 중앙에 있는 보석을 더욱 가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있었다. 너무나도 예쁘면서 아름다웠다. 그 보석에서 자체 발광이 나올 정도였다.
아이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와아, 너무나 아름답다.”
한동안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다시 집무실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하나의 책이 들려져 있었다.
네빌 집사는 오자마자 책을 펼쳤다. 몇 장을 넘기던 그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고는 책과 아이린의 손에 들린 그 보석을 연달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이것이었어. 이것!”
“무엇이기에 이리도 놀라십니까?”
아이린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바로 말해 주었다.
“제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 저의 생각이 맞았습니다. 이것은 아니, 이 보물은 바로 미라젠의 눈물입니다.”
네빌 집사는 흥분이 되는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네? 미라젠의 눈물? 이게요?”
“그렇습니다. 여길 보십시오.”
네빌 집사는 자신이 가지고 온 책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 아이린이 들고 있는 그 보석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 미라젠의 눈물이라고 적혀 있다. 아이린은 그림과 보석을 연달아 보며 물었다.
“그렇군요. 그림과 똑같아요.”
“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미라젠의 눈물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하하핫!”
네빌 집사는 감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아이린이 그런 네빌 집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네빌 집사는 바로 헛기침을 하였다.
“허험,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보석이나 골동품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미라젠의 눈물을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네에? 그럼 이것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에요?”
“대단하다 뿐이겠습니다. 이것의 값어치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네빌 집사의 말에 아이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네빌 집사는 허언을 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빌 집사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책장을 넘기며 다른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한때 딱 한번 이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네빌 집사가 내민 책장에는 같은 색의 보석이 또 있었다. 하지만 보석이 아니라 귀걸이였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미라젠의 목걸이와 닮아 있었다.
“어? 귀걸이인데 이것과 마치 한 쌍인 것처럼 닮았네요.”
“하하하, 바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라젠의 눈물과 한 쌍인 루시의 이슬입니다. 저의 이 두 눈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거죠?”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빌 집사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거의 처음 보았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것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과거 카론 왕국의 베론 후작이라고 계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아리따운 두 분의 따님이 계셨습니다. 베론 후작은 두 따님을 너무나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최고의 장인이 계셨는데 베론 후작님과 아주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일 선물로 이것을 선물했는데 그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 장인께 돈 대신 영지와 별장을 드렸다고 합니다. 어쨌든 베론 후작은 그것을 성인이 된 따님께 각각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기 있는 루시의 이슬은 첫째 따님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미라젠의 눈물 또한 둘째 따님의 이름을 따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인기가 매우 높아 사교계의 큰 파란을 몰고 왔습니다. 하물며 수많은 짝퉁들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이 보석의 가치가 더 높은 이유는 그분의 마지막 작품이라 더 그러합니다.”
“잠깐만요. 장인요? 이 작품을 만드셨다는 분이라면 엄청 대단하신 분이시겠네요.”
“네, 당연하죠. 저희들에게도 익숙한 분이십니다. 바로 장인 노벨이십니다.”
“네에? 장인 노벨 님요?”
“네, 그렇습니다.”
장인 노벨. 이 사람은 그 옛날 전설의 드워프의 후손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아주 뛰어난 세공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그 가치와 아름다움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투박한 손으로 섬세하게 다듬는 기술하며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장식품의 대가였다.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이라고 하면 아주 고가에 팔리고 있었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매우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그의 상품 가치를 더욱 높여 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것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진 자필 사인이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인이기에 짝퉁이 나와도 금방 들통이 날 정도였다. 그것을 기억해 낸 네빌 집사가 미라젠의 눈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 어딘가 그분의 사인이 있을 텐데…….”
한참을 찾던 네빌 집사의 눈이 커졌다.
“여기 있군요. 분명 장인 노벨님의 것이 맞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보라색을 띠고 있는 미라젠의 눈물 상부를 보여 주었다. 그곳에 아주 미세하지만 노벨이라는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건 진품입니다.”
네빌 집사도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이것의 대한 부연 설명을 하였다.
“그러니까. 루시의 이슬이 먼저 나왔고, 미라젠의 눈물은 카론 왕국의 멸망과 함께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네빌 집사는 미라젠의 눈물을 손에 쥐며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린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흥분한 얼굴이 되어 있던 네빌 집사도 안색을 바꾸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베론 후작님의 둘째 따님이 혹시 제이크 님의 어머니가 아닐까요?”
아이린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던 네빌 집사가 바로 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베론 후작님의 둘째 따님이 프라인 백작가로 시집을 갔다는 얘기는 있었습니다.”
“그럼 혹시 그분의 이름이 미라젠이었나요?”
“그건 저도 잘……. 하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네에, 그렇군요.”
아이린은 대답을 하면서 갑자기 슬픈 표정이 되었다. 솔직히 아이린은 이걸 받아야 하나 고민이 커졌다. 어머니의 유품에 그것도 매우 귀한 것인데……. 그녀의 고민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 아이린의 표정을 뒤늦게 확인한 집사가 흥분만 마음을 진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