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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츠 1권 (19화)
Episode 06 채플 백작의 방문(4)


“와아, 음식이다.”
“맛나겠다.”
그러면서 음식을 손으로 집어 마구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꼭 한마디씩 했다.
“우엑, 맛없어.”
“정말 맛없다. 그치?”
그리 말하면서도 뱉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네빌 집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놈들, 그리 말하려면 먹지 마!”
하지만 폴과 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빌 집사가 갑자기 인상을 풀었다.
“하긴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넘어가지. 맛없어도 마음껏 먹게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린은 오히려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모습에 아이린은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제이크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옛 추억이 떠올랐다. 10년 전 자신도 저들과 함께 춤추며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 자신의 팔을 잡는 이가 있었다. 제이크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아이린이었다.
‘또 잡아?’
하지만 아이린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 채 소리쳤다.
“우리도요…….”
“뭐라고?”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 때문에 아이린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제이크가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아이린이 제이크의 귀에다 대며 말했다.
“우리도 춤 춰요.”
제이크의 눈이 크게 떠지며 손을 저었다.
“안 돼, 나 춤 못 춰!”
“저도 못 춰요.”
그 말을 하며 억지로 제이크를 이끌고 중앙으로 나왔다. 제이크는 어정쩡한 자세로 섰다. 아이린이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마주 잡으며 소리쳤다.
“그냥 저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 봐요.”
그러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제이크는 그녀와 함께 춤을 추며 밝은 표정에서 정말 행복하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평온함과 행복함이었다. 그것은 아이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는 연신 꺄르르 웃으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그런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제이크도 절로 웃음이 그려졌다.

새벽이 되었다.
지난 밤 신나게 춤을 추며 놀던 식솔들은 저마다 술에 취해 그 자리에 뻗어 잠이 들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간혹 몇몇 사람들이 아직 남아 술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제이크도 아직 자리에 앉아 있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술을 홀짝홀짝 마시며 널브러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네빌 집사도 오랜만에 거하게 취했는지 폴과 필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커억, 너희들 그러면 못쓰는 법이야. 자고로, 생각이 있다면 그리 말하면 안 되지! 안 그러냐?”
술이 많이 취했는지 혀가 꼬여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대도 계속해서 폴과 필에게 충고를 하고 있었다. 폴과 필도 이미 술에 취해 그 자리에 뻗어 듣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말이다.
“음식까지고 타박하면 만든 사람이 얼마나 무안하냐. 안 그래 이놈들아! 그냥 만들어 주면 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라고 알겠어!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이것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우당창창!
네빌 집사가 술병을 들고 자리에 일어서 폴과 필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비틀거리며 그대로 넘어졌다. 그때를 같이 해 식탁에 있던 접시와 음식들이 쏟아졌다. 제이크가 놀라며 그를 보았다. 하지만 괜찮아 보였다. 술병을 안고 그대로 잠든 모양이다.
“음냐, 너희들! 다시는… 그러지 마라……. 음냐.”
그 모습에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후훗, 집사가 그동안 많이 쌓인 모양이군.”
그리 말하고는 제이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갔지?”
제이크는 아이린을 찾고 있었다.
그 시각 아이린은 아크 오라버니의 방에 있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깊이 잠들어 있다. 아이린은 아크 오라버니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녀는 아크 오라버니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오라버니… 다행히 영지를 지킬 수 있었어. 나 잘했지? 잘했다고 칭찬해 줘.”
아이린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러고는 머리를 침대에 묻으며 속삭였다.
“어서 일어나.”
그 말을 들었을까? 아크의 눈썹이 한순간 꿈틀거렸다.



Episode 07 달라지는 영지 (1)


1

베이런 후작가의 둘째 아들인 빌슨은 에페로 자작가에서 보낸 선물을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마, 말도 안 돼!”
빌슨은 앞에 놓인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안에는 5만 골드와 함께 이번 달 이자까지 함께 보내져 온 것이다.
“뭐야? 돈이 어디서 났냔 말이야!”
그때 상자 안에 에페로 자작가의 봉인이 찍힌 서신이 한 통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든 빌슨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서신을 뜯었다.

그동안 도와주신 은혜 잊지 않겠어요. 이것으로 베이런 후작가와의 채무 관계는 이제 없는 것입니다. 그럼 건강하세요.

―에페로 자작가의 아이린 에페로 올림―

빌슨은 서신을 다 읽고는 와락 구겨서 집어 던졌다. 적힌 서신은 간단하지만 왠지 그 안에 뼈 있는 말이 담겨 있는 듯했다.
“젠장! 이게 어찌 된 일야! 게이런 남작! 어디 있나! 게이런 남작!”
빌슨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게이런 남작이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빌슨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앞에 놓인 돈 상자를 가리켰다.
“저게 뭐냐?”
게이런 남작이 힐끔 쳐다봤다.
“도, 돈이 아닙니까?”
“누가 몰라서 물어? 저 돈이 에페로 자작가에서 왔어. 어찌 된 일이야?”
“네에? 에페로 자작가에서 말입니까?”
게이런 남작도 놀란 눈치다. 그는 황급히 돈이 든 상자로 가서 확인했다. 어림잡아도 5만 골드가 되어 보였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이만한 돈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니, 곧 있음 파산 직전까지 몰린 상태였다. 그런데 고작 열흘 사이에 이 정도의 돈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저히 갚을 능력이 안 되었단 말입니다.”
“네 눈은 병신이야? 이게 돈이 아니면 뭐야, 뭐냐고!”
“…….”
게이런 남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빌슨이 재차 물었다.
“정말 몰라?”
“네에, 저도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어떻게 저들이 이 돈을 마련했는지…….”
게이런 남작도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그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빌슨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며 소리쳤다.
“그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어서 나가서 알아봐!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아, 알겠습니다. 바로 보고해 올리겠습니다.”
빌슨의 으름장에 게이런 남작이 깜짝 놀라며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빌슨은 다시 돈이 든 상자로 향했다.
그는 그 돈을 손으로 움켜쥐고는 욕을 내뱉었다.
“젠장! 빌어먹을! 어떻게 된 일이야!”
그는 진정되지 않는 듯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조금만 더 압박을 가하면 쉽게 성을 차지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말이다.
그런데 어디서 돈을 구했는지 원금과 함께 이자까지 보내왔다. 빌슨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에페로 자작성을 차지하면 이제 곧 아버지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으아아악, 젠장, 젠장, 젠장!”
빌슨은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집어 던지며 화풀이를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게이런 남작에게서 보고서가 올라왔다. 그 내용은 이랬다.

아무리 조사를 해 보아도 그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누가 에페로 자작가를 도와줬는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알아낸 것은 채플 백작가에게 빚진 돈 20만 골드도 갚았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조사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게이런 남작이 보낸 보고서였다. 그것을 읽은 빌슨은 그 보고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떤 놈이야!”

같은 시각 제이크는 폴과 필을 데리고 농경지에 나와 있었다. 지난번 농경지에 깔린 마기에 대해 좀 더 조사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한참 조사를 하던 제이크가 갑자기 귀가 간지러운지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뭐지? 왜 이렇게 간지러워!”
그 순간 제이크는 옆에서 놀고 있는 폴과 필을 날카롭게 째려봤다. 그 시선을 느낀 폴과 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요?”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그러자 제이크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너희들이지?”

2

한가로운 오후.
아이린은 언제나처럼 집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정리하는 서류의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그 옆에는 아직까지 정리하지 못한 서류들로 수북했다.
그러나 아이린의 얼굴에는 전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서류 정리하는 것이 이렇듯 기쁜 줄 몰랐다. 돈이 없을 때는 서류에 사인하는 일이 너무나도 곤혹스러웠지만 지금처럼 자금이 충분할 때는 사인하는 것이 즐거웠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열심히 서류를 확인하고 사인을 했다. 그때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네빌 집사가 뛰어왔다. 그의 손에는 하나의 서류가 들려 있다.
“아가씨, 아가씨!”
네빌 집사는 흥분한 목소리로 아이린을 불렀다. 서류를 정리하던 아이린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목소리가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이네요.”
아이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활짝 웃었다.
“당연히 날아갈 듯 기쁘죠.”
“네에? 뭐가 그리 기쁘세요.”
아이린이 잠시 펜을 놓고는 물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팔렸습니다. 팔렸어요!”
기쁨에 춤이라도 추듯이 네빌 집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아이린이 그것을 받아들며 확인을 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재빨리 말했다.
“귀걸이를, 귀걸이를 사겠다고 합니다.”
“정말요?”
“네, 서류에 적힌 것을 보십시오.”
아이린도 상기된 표정으로 서류를 훑어보았다. 그곳에는 마론 왕국에서도 제법 큰 상단인 벨란 상단에서 귀걸이를 사겠다는 내용이었다.
“정말이네요. 잘되었어요.”
아이린도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얼마에 사겠다고 하던가요?”
아이린의 물음에 네빌 집사가 말했다.
“제 생각으로 대략 5만 골드면 충분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무려 20만 골드에 사겠다고 합니다.”
“네에? 2, 20만 골드요?”
아이린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편 얘기를 네빌 집사는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말하며 좋아했다. 아이린도 사실 기뻤다. 5만 골드 정도 하는 귀걸이를 무려 20만 골들에 사겠다고 하니 말이다.
아이린은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5만 골드짜리를 왜 20만에 사려고 하는지 그것이 의아했다.
“집사님.”
“네, 아가씨.”
“벨란 상단이라는 곳을 확인은 해 보았나요?”
아이린의 물음에 네빌 집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처음에 의아해서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확실히 벨란 상단은 마론 왕국에서 제법 큰 상단이었습니다. 다만 상단의 주인이 누군지는 아직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곳과 거래하는 몇몇 상단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자신들도 주인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상단들이 벨란 상단을 신용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요?”
아이린은 잠시 고민을 하였다. 그러나 네빌 집사의 조사와 그곳과 오랫동안 거래해 온 상단들이 입 모아 신용을 확인했으니 믿어도 될 거 같았다. 게다가 제이크의 어머니 유품을 좋은 값에 팔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아이린의 승낙이 떨어지자 네빌 집사는 환한 얼굴이 되며 말했다.
“그럼 그쪽과 거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에. 하지만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는 것을 잊지 마세요.”
“하하하, 당연합니다.”
네빌 집사가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다시 홀로 남게 된 아이린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그 상태로 있었다. 그러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