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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줄 개
2화
김 간호사의 말은 진짜였다. 오른쪽 진료실로 들어가는 여자의 발걸음은 무거운 추를 단 듯 천근만근인 반면, 왼쪽 진료실로 들어가는 여자의 또각또각 걸어가는 구두 소리는 마치 탭댄스를 추는 것처럼 경쾌하고 신나 보였다.
“아니, 여기가 무슨 저승사자 앞이라도 되나 보지? 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게 보려고 해도 맘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먹던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다원이 계속해서 툴툴거렸다. 이내 들어갔던 환자들이 상반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오자 친절하고 상냥한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원과 김 간호사의 이름을 호명했다.
“정다원 님, 오른쪽으로 들어가시면 되고요. 김선영 님, 왼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간호사의 말에 선영의 얼굴에는 연말 보너스를 받았을 때에 버금가는 미소가 떠올랐다. 저렇게 좋을까나?
“아싸! 그럼 원장님 좀 이따 뵐게요.”
선영은 좋다고 진료실로 뛰어 들어갔고, 다원은 모두가 기피한다는 오른쪽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디 얼마나 잘생겼는지 내 객관적인 눈으로 제대로 평가해 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들어간 다원은 안경을 끼고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남자의 옆모습에 잠시 흔들렸다.
‘뭐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선도 굵고 한 마리 셰퍼드같이 잘생기긴 했네.’
하지만 이내 다원은 냉정해져서 가자미눈을 뜨고 단점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역시나 잘생긴 건 인정해야 했다. 일반인 중에 저 정도면 최상급인 에이 뿔 등급을 줄 만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근방에서 제일 잘생긴 얼굴이라는 데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환자들이 앉는 동그란 회전의자에 앉은 다원은 유리 명패에 적힌 이름을 힐끔거렸다.
[전문의 류하준]
이내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던 의사가 몸을 돌려 앉더니 인상을 쓰곤 따라 들어온 간호사를 향해 물었다.
“박 간호사님. 누가 병원에 개를 데리고 들어왔습니까?”
뜬금없는 그의 말에 간호사는 손까지 내저으며 부인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동물은 금지잖아요.”
간호사의 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킁킁거리던 의사는 진지하고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어디서 개 냄새 나지 않아요?”
“글쎄요. 저는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데요?”
냄새가 나니, 안 나니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없는 개를 찾는답시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끼인 다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찾는 개 여기 있네요.’
두 사람이 아무리 찾아봤자 없는 개를 찾을 리가 만무했다. 하루 종일 개와 함께 있는 다원에게서 옅게나마 개 냄새가 풍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나한테서 개 냄새가 난다고 손을 들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고 다원은 그냥 가만히 앉아 두 사람이 하는 양을 보고만 있었다.
의사는 그녀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문득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프다고 온 환자를 앞에 두고 빠른 처치와 진심 어린 치료는 제공하지 못할망정 인상이나 쓰다니. 이게 무슨 나일론 의사 같은 짓인가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흘러 후각이 익숙해져 더 이상 냄새를 인지 못 할 즈음이 되자 그제야 의사는 무심하게 그녀를 향해 물었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그래, 나는 지금껏 이 질문만 기다렸다는 듯이 다원이 다다다 말을 쏟아 냈다.
“날씨가 따뜻해진 줄 알고 옷을 얇게 입었더니, 저녁에는 아직 상당히 춥잖아요? 열도 좀 있는 것 같고 머리도 아프고 기침도 하고요. 코도 막히고 목도 좀 따끔거리고 아픈 게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요?”
다원의 기다란 증상 설명에 남자 의사는 딱딱한 말투로 한마디를 했다.
“감기에 걸렸는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합니다.”
생각도 못한 대답에 아니 무슨 이런 의사가 다 있나 싶어 다원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보니 왜 옆방 의사에게 진찰받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렇게 불친절한 의사가 어디 있나? 슈바이처 같은 봉사와 헌신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의사도 이제 나름 서비스 업종인데 서비스 정신이 이렇게 부족해서야. 다원이 참지 못하고 한 소리를 하려는데 의사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아, 해 보세요.”
하고 싶은 말은 있었으나 입을 벌려야 하는 통에 다원은 할 말을 속으로 삼켜 버렸다. 하지만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뿐 아예 말을 접은 건 아니었다. 자기가 판단한다던 의사가 입안의 진찰을 마치고 하는 소리에 다원은 안 그래도 막힌 코가 더 막히고 기까지 막혔다.
“감기네요.”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는 다원을 앞에 두곤 의사는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편도가 좀 많이 부었네요. 주사 맞으시고요. 약 지어 드릴 테니 오늘 드시고 차도가 없으시면 내일 한 번 더 오세요.”
의사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옆으로 몸을 돌려 처방전을 입력하는 게 다였다. 아무리 그래도 한 오 분 정도는 증상도 설명하고 주의해야 할 거라든가 이런 걸 좀 자세히 알려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대부분의 병원이 진찰을 금방 끝내는 게 다반사고 정작 진료실에 들어갔다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나온다지만 내 돈 내고 내가 진료받는 건데 너무 성의가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다원이 참지 못하고 기어이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근데 너무 성의가 없으신 거 아니세요? 감기에 걸렸다면 푹 쉬라든가, 아님 편도가 부었으니 따뜻한 물을 수시로 마시라든가. 이런 주의도 좀 해 주시고 그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억울한 듯 따지는 다원을 본 의사는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을 벗었다. 남자의 눈을 마주한 순간 다원은 숨을 멈추고 긴장했다. 안경에 가려져 있던 남자의 눈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만큼 깊고 검었고 생각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무신경해 보였기 때문이다.
“잘 알고 계시네요. 알고 계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남자는 그대로 차트에 눈을 고정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주사실로 가면 된다고 하는 소리에 다원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삿대질까지 해 가며 따지고 싶었지만 불친절하다는 것 빼고는 솔직히 의사가 크게 잘못한 건 없었다. 주사실로 가는 도중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단 하나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래, 맘에 안 들면 다시는 안 찾아오면 되지. 내 다시는 이 병원 찾아오나 봐라.’
주사를 맞기 위해 엉덩이를 까고 있는데 간호사의 말이 들려왔다.
“조금 따끔할 겁니다.”
“아!”
다원의 입에서 절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따끔할 거라던 주사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그 불친절한 의사 자식 때문이다.’
주사가 아픈 거야 당연한 거였지만 더 아프게 느껴진 것을 하준의 탓으로 돌리는 다원이었다. 주사 맞은 곳을 솜으로 잘 누르고 당당하게 병원을 나온 다원은 뜬금없이 돌아서서는 병원을 향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욕을 날렸다.
“칫! 이놈의 병원. 한 달 만에 확 망해 버려라.”
1. 악연? 우연?
며칠 후, 봄날의 오후 카페 안에는 죽어도 가기 싫다고 버티고 있는 다원과 그런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올라가려는 지연이 한참이나 대치 중이었다.
“너 아픈데 계속 이렇게 버틸 거야?”
“어.”
다원은 지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많이 아팠다. 병원 갔다 온 후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어제 중성화 수술 두 건과 슬개골 탈구 수술 한 건을 연달아 하고 나자 물러간 줄 알았던 감기가 다시 도져 몸이 말이 아니었다. 감기에는 푹 쉬는 게 최곤데, 무리해서 수술을 했더니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엎드려 있는 다원을 보다 못한 지연이 얼른 병원에 가라며 떠밀고 있었다.
“잘됐다. 얼마 전에 갔던 이 층 한마음내과 가면 되겠네.”
지연의 말에 엎드려 있던 다원이 질색하며 몸을 일으켰다.
“싫어! 거기는 다시는 안 가.”
이리도 질색을 하는 걸 보니 별일이다 싶었지만 지연도 꼭 이 층 병원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친구의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위에 있는 병원이 그렇게 싫으면 옆 건물에 왕 의원 할아버지네 병원이라도 갔다 와.”
그녀라고 그 생각을 안 해 봤겠나.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링거라도 한 대 맞아야겠다 싶어 출근하는 길에 들렀더니 문은 꼭 잠겨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봄맞이 꽃놀이 갑니다.^^]
꽃놀이로 며칠 쉰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왕 할아버지는 인생 별거 있나 즐기는 게 최고지라는 인생관으로 틈만 나면 이렇게 문 앞에 어디로 가는지까지 상세히 붙여 놓으시곤 어디론가 떠나시곤 했다. 그러다 보니 병원 문을 여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하필이면 그 날이 오늘이라니. 병원 문이 잠긴 걸 본 다원은 닫힌 병원 문을 붙잡고 좌절했었다. 누구는 아파 죽겠는데 꽃놀이 간다고 병원까지 비운 할아버지 덕분에 감기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할아버지 놀러 가셔서 병원 문이 잠겼어.”
“그래? 아님, 이참에 쉬는 겸해서 병원 문 일찍 닫고 좀 먼 데 있는 병원이라도 가든가.”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좀 있다 수술 한 건 잡혀 있어.”
얼굴 표정을 보니 이건 보통 아픈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손을 질질 끌고서라도 병원으로 끌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병원은 문을 닫았지. 병원 문을 닫고 좀 먼 곳에 있는 병원을 가려 해도 수술이 잡혀 있으니 그도 안 되지. 그렇다면 다원이 그리도 싫어하는 이 층 병원밖에 없었다.
선택지는 세 개가 있었지만 정작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보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지연이 다원의 팔을 힘주어 잡고 일어섰다. 정말 아프긴 한 건지 몸에 힘이 없어 곧바로 딸려 오는 게 흐느적거리는 풍선 인형 같았다.
“왜, 왜 이래? 위에 있는 병원은 안 간다니까.”
“시끄러. 애도 아니고 지금 네가 병원 고르게 생겼어? 너 이렇게 제정신 아닌 상태로 수술이라도 하다가 남의 귀한 강아지 황천길 보낼 수도 있다고.”
정신이 번쩍 들게 충고하는 지연의 말에 다원은 대꾸하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해도 몸 컨디션이 받쳐 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다원을 부축한 지연이 와플을 만들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불렀다.
“민제야. 나 이 층 병원 잠깐 갔다 올 테니까 카페 잘 보고 있어.”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잘생긴 얼굴과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단번에 알바 자리를 차지한 민제가 걱정 마시라며 손을 들어 보였다.
“네.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여긴 제가 제대로 지키고 있겠습니다.”
민제의 응원을 뒤로하고 지연에게 이끌려 가는 다원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뭉그적거리는 다원을 힘주어 끌고 올라간 지연은 이윽고 이 층 한마음내과라고 큼직이 적혀 있는 유리문 앞에 다원을 데려다 놓았다. 다원이 얼마 전 다시는 이 병원의 문턱을 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무색했다. 무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크게 한숨을 쉬는 그녀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지연이 물었다.
“아니, 대체 이 병원 의사가 어떻게 했기에 이래?”
아픈 몸을 하고도 역시나 입은 살아 있는지 다원이 열변을 토했다.
“내 살다 살다 그렇게 불친절한 사람은 처음 봤어. 아니 글쎄 내가 감기 걸렸는지 아닌지는 자기가 판단한다 이거야. 나는 그냥 주사나 맞고 처방대로 약이나 지어 가라 이거지.”
작은 일도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친구를 너무나 잘 아는 지연은 다원이 과장하는 거라 생각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라고?”
“진짜라니까. 너도 한 번 봤어야 하는데, 얼굴만 번지르르하면 뭐 하나? 성격이 지랄 맞은데. 내 장담하는데 아마 여자 친구도 없을 거다. 그 성격을 받아 주는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야말로 오랜 세월 득도로 경지에 오른 신선이지, 신선.”
얼마나 지났을까? 그 뒤로도 이러쿵저러쿵하는 다원의 열변 아닌 열변은 계속됐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지연이 다원을 말렸다.
“이러다가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들으면 들으라지. 내가 겁먹을 줄 알고?”
“그래도 병원 앞이잖아.”
“병원 앞이면 뭐? 내가 말 못 할 줄…….”
지연이 말렸지만 아직 할 말이 많은 다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계속될 수 없었다. 그 이유인 즉, 뒤쪽에서 봄과는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 보면 꼭 이럴 때 뒤에서 음침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험담하고 있는 상대가 떡하니 나타나더라니,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언제 왔는지 다원이 그리도 흉을 보던 그 의사 놈이 떡하니 서 있었다.
“안 들어갑니까?”
아까의 좋던 기세는 어디 갔는지 다원의 몸은 생각하는 석고상처럼 눈에 띄게 굳어졌다. 의사는 전번에 봤던 하얀 가운이 아닌 몸에 딱 맞는 슈트를 입고 떡하니 서 있었다. 이제 출근하는지, 한 손에는 검정색 서류 가방을 들고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여전히 표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2화
김 간호사의 말은 진짜였다. 오른쪽 진료실로 들어가는 여자의 발걸음은 무거운 추를 단 듯 천근만근인 반면, 왼쪽 진료실로 들어가는 여자의 또각또각 걸어가는 구두 소리는 마치 탭댄스를 추는 것처럼 경쾌하고 신나 보였다.
“아니, 여기가 무슨 저승사자 앞이라도 되나 보지? 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게 보려고 해도 맘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먹던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다원이 계속해서 툴툴거렸다. 이내 들어갔던 환자들이 상반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오자 친절하고 상냥한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원과 김 간호사의 이름을 호명했다.
“정다원 님, 오른쪽으로 들어가시면 되고요. 김선영 님, 왼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간호사의 말에 선영의 얼굴에는 연말 보너스를 받았을 때에 버금가는 미소가 떠올랐다. 저렇게 좋을까나?
“아싸! 그럼 원장님 좀 이따 뵐게요.”
선영은 좋다고 진료실로 뛰어 들어갔고, 다원은 모두가 기피한다는 오른쪽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디 얼마나 잘생겼는지 내 객관적인 눈으로 제대로 평가해 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들어간 다원은 안경을 끼고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남자의 옆모습에 잠시 흔들렸다.
‘뭐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선도 굵고 한 마리 셰퍼드같이 잘생기긴 했네.’
하지만 이내 다원은 냉정해져서 가자미눈을 뜨고 단점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역시나 잘생긴 건 인정해야 했다. 일반인 중에 저 정도면 최상급인 에이 뿔 등급을 줄 만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근방에서 제일 잘생긴 얼굴이라는 데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환자들이 앉는 동그란 회전의자에 앉은 다원은 유리 명패에 적힌 이름을 힐끔거렸다.
[전문의 류하준]
이내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던 의사가 몸을 돌려 앉더니 인상을 쓰곤 따라 들어온 간호사를 향해 물었다.
“박 간호사님. 누가 병원에 개를 데리고 들어왔습니까?”
뜬금없는 그의 말에 간호사는 손까지 내저으며 부인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동물은 금지잖아요.”
간호사의 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킁킁거리던 의사는 진지하고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어디서 개 냄새 나지 않아요?”
“글쎄요. 저는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데요?”
냄새가 나니, 안 나니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없는 개를 찾는답시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끼인 다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찾는 개 여기 있네요.’
두 사람이 아무리 찾아봤자 없는 개를 찾을 리가 만무했다. 하루 종일 개와 함께 있는 다원에게서 옅게나마 개 냄새가 풍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나한테서 개 냄새가 난다고 손을 들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고 다원은 그냥 가만히 앉아 두 사람이 하는 양을 보고만 있었다.
의사는 그녀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문득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프다고 온 환자를 앞에 두고 빠른 처치와 진심 어린 치료는 제공하지 못할망정 인상이나 쓰다니. 이게 무슨 나일론 의사 같은 짓인가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흘러 후각이 익숙해져 더 이상 냄새를 인지 못 할 즈음이 되자 그제야 의사는 무심하게 그녀를 향해 물었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그래, 나는 지금껏 이 질문만 기다렸다는 듯이 다원이 다다다 말을 쏟아 냈다.
“날씨가 따뜻해진 줄 알고 옷을 얇게 입었더니, 저녁에는 아직 상당히 춥잖아요? 열도 좀 있는 것 같고 머리도 아프고 기침도 하고요. 코도 막히고 목도 좀 따끔거리고 아픈 게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요?”
다원의 기다란 증상 설명에 남자 의사는 딱딱한 말투로 한마디를 했다.
“감기에 걸렸는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합니다.”
생각도 못한 대답에 아니 무슨 이런 의사가 다 있나 싶어 다원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보니 왜 옆방 의사에게 진찰받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렇게 불친절한 의사가 어디 있나? 슈바이처 같은 봉사와 헌신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의사도 이제 나름 서비스 업종인데 서비스 정신이 이렇게 부족해서야. 다원이 참지 못하고 한 소리를 하려는데 의사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아, 해 보세요.”
하고 싶은 말은 있었으나 입을 벌려야 하는 통에 다원은 할 말을 속으로 삼켜 버렸다. 하지만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뿐 아예 말을 접은 건 아니었다. 자기가 판단한다던 의사가 입안의 진찰을 마치고 하는 소리에 다원은 안 그래도 막힌 코가 더 막히고 기까지 막혔다.
“감기네요.”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는 다원을 앞에 두곤 의사는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편도가 좀 많이 부었네요. 주사 맞으시고요. 약 지어 드릴 테니 오늘 드시고 차도가 없으시면 내일 한 번 더 오세요.”
의사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옆으로 몸을 돌려 처방전을 입력하는 게 다였다. 아무리 그래도 한 오 분 정도는 증상도 설명하고 주의해야 할 거라든가 이런 걸 좀 자세히 알려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대부분의 병원이 진찰을 금방 끝내는 게 다반사고 정작 진료실에 들어갔다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나온다지만 내 돈 내고 내가 진료받는 건데 너무 성의가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다원이 참지 못하고 기어이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근데 너무 성의가 없으신 거 아니세요? 감기에 걸렸다면 푹 쉬라든가, 아님 편도가 부었으니 따뜻한 물을 수시로 마시라든가. 이런 주의도 좀 해 주시고 그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억울한 듯 따지는 다원을 본 의사는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을 벗었다. 남자의 눈을 마주한 순간 다원은 숨을 멈추고 긴장했다. 안경에 가려져 있던 남자의 눈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만큼 깊고 검었고 생각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무신경해 보였기 때문이다.
“잘 알고 계시네요. 알고 계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남자는 그대로 차트에 눈을 고정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주사실로 가면 된다고 하는 소리에 다원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삿대질까지 해 가며 따지고 싶었지만 불친절하다는 것 빼고는 솔직히 의사가 크게 잘못한 건 없었다. 주사실로 가는 도중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단 하나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래, 맘에 안 들면 다시는 안 찾아오면 되지. 내 다시는 이 병원 찾아오나 봐라.’
주사를 맞기 위해 엉덩이를 까고 있는데 간호사의 말이 들려왔다.
“조금 따끔할 겁니다.”
“아!”
다원의 입에서 절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따끔할 거라던 주사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그 불친절한 의사 자식 때문이다.’
주사가 아픈 거야 당연한 거였지만 더 아프게 느껴진 것을 하준의 탓으로 돌리는 다원이었다. 주사 맞은 곳을 솜으로 잘 누르고 당당하게 병원을 나온 다원은 뜬금없이 돌아서서는 병원을 향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욕을 날렸다.
“칫! 이놈의 병원. 한 달 만에 확 망해 버려라.”
1. 악연? 우연?
며칠 후, 봄날의 오후 카페 안에는 죽어도 가기 싫다고 버티고 있는 다원과 그런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올라가려는 지연이 한참이나 대치 중이었다.
“너 아픈데 계속 이렇게 버틸 거야?”
“어.”
다원은 지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많이 아팠다. 병원 갔다 온 후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어제 중성화 수술 두 건과 슬개골 탈구 수술 한 건을 연달아 하고 나자 물러간 줄 알았던 감기가 다시 도져 몸이 말이 아니었다. 감기에는 푹 쉬는 게 최곤데, 무리해서 수술을 했더니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엎드려 있는 다원을 보다 못한 지연이 얼른 병원에 가라며 떠밀고 있었다.
“잘됐다. 얼마 전에 갔던 이 층 한마음내과 가면 되겠네.”
지연의 말에 엎드려 있던 다원이 질색하며 몸을 일으켰다.
“싫어! 거기는 다시는 안 가.”
이리도 질색을 하는 걸 보니 별일이다 싶었지만 지연도 꼭 이 층 병원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친구의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위에 있는 병원이 그렇게 싫으면 옆 건물에 왕 의원 할아버지네 병원이라도 갔다 와.”
그녀라고 그 생각을 안 해 봤겠나.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링거라도 한 대 맞아야겠다 싶어 출근하는 길에 들렀더니 문은 꼭 잠겨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봄맞이 꽃놀이 갑니다.^^]
꽃놀이로 며칠 쉰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왕 할아버지는 인생 별거 있나 즐기는 게 최고지라는 인생관으로 틈만 나면 이렇게 문 앞에 어디로 가는지까지 상세히 붙여 놓으시곤 어디론가 떠나시곤 했다. 그러다 보니 병원 문을 여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하필이면 그 날이 오늘이라니. 병원 문이 잠긴 걸 본 다원은 닫힌 병원 문을 붙잡고 좌절했었다. 누구는 아파 죽겠는데 꽃놀이 간다고 병원까지 비운 할아버지 덕분에 감기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할아버지 놀러 가셔서 병원 문이 잠겼어.”
“그래? 아님, 이참에 쉬는 겸해서 병원 문 일찍 닫고 좀 먼 데 있는 병원이라도 가든가.”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좀 있다 수술 한 건 잡혀 있어.”
얼굴 표정을 보니 이건 보통 아픈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손을 질질 끌고서라도 병원으로 끌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병원은 문을 닫았지. 병원 문을 닫고 좀 먼 곳에 있는 병원을 가려 해도 수술이 잡혀 있으니 그도 안 되지. 그렇다면 다원이 그리도 싫어하는 이 층 병원밖에 없었다.
선택지는 세 개가 있었지만 정작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보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지연이 다원의 팔을 힘주어 잡고 일어섰다. 정말 아프긴 한 건지 몸에 힘이 없어 곧바로 딸려 오는 게 흐느적거리는 풍선 인형 같았다.
“왜, 왜 이래? 위에 있는 병원은 안 간다니까.”
“시끄러. 애도 아니고 지금 네가 병원 고르게 생겼어? 너 이렇게 제정신 아닌 상태로 수술이라도 하다가 남의 귀한 강아지 황천길 보낼 수도 있다고.”
정신이 번쩍 들게 충고하는 지연의 말에 다원은 대꾸하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해도 몸 컨디션이 받쳐 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다원을 부축한 지연이 와플을 만들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불렀다.
“민제야. 나 이 층 병원 잠깐 갔다 올 테니까 카페 잘 보고 있어.”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잘생긴 얼굴과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단번에 알바 자리를 차지한 민제가 걱정 마시라며 손을 들어 보였다.
“네.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여긴 제가 제대로 지키고 있겠습니다.”
민제의 응원을 뒤로하고 지연에게 이끌려 가는 다원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뭉그적거리는 다원을 힘주어 끌고 올라간 지연은 이윽고 이 층 한마음내과라고 큼직이 적혀 있는 유리문 앞에 다원을 데려다 놓았다. 다원이 얼마 전 다시는 이 병원의 문턱을 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무색했다. 무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크게 한숨을 쉬는 그녀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지연이 물었다.
“아니, 대체 이 병원 의사가 어떻게 했기에 이래?”
아픈 몸을 하고도 역시나 입은 살아 있는지 다원이 열변을 토했다.
“내 살다 살다 그렇게 불친절한 사람은 처음 봤어. 아니 글쎄 내가 감기 걸렸는지 아닌지는 자기가 판단한다 이거야. 나는 그냥 주사나 맞고 처방대로 약이나 지어 가라 이거지.”
작은 일도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친구를 너무나 잘 아는 지연은 다원이 과장하는 거라 생각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라고?”
“진짜라니까. 너도 한 번 봤어야 하는데, 얼굴만 번지르르하면 뭐 하나? 성격이 지랄 맞은데. 내 장담하는데 아마 여자 친구도 없을 거다. 그 성격을 받아 주는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야말로 오랜 세월 득도로 경지에 오른 신선이지, 신선.”
얼마나 지났을까? 그 뒤로도 이러쿵저러쿵하는 다원의 열변 아닌 열변은 계속됐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지연이 다원을 말렸다.
“이러다가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들으면 들으라지. 내가 겁먹을 줄 알고?”
“그래도 병원 앞이잖아.”
“병원 앞이면 뭐? 내가 말 못 할 줄…….”
지연이 말렸지만 아직 할 말이 많은 다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계속될 수 없었다. 그 이유인 즉, 뒤쪽에서 봄과는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 보면 꼭 이럴 때 뒤에서 음침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험담하고 있는 상대가 떡하니 나타나더라니,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언제 왔는지 다원이 그리도 흉을 보던 그 의사 놈이 떡하니 서 있었다.
“안 들어갑니까?”
아까의 좋던 기세는 어디 갔는지 다원의 몸은 생각하는 석고상처럼 눈에 띄게 굳어졌다. 의사는 전번에 봤던 하얀 가운이 아닌 몸에 딱 맞는 슈트를 입고 떡하니 서 있었다. 이제 출근하는지, 한 손에는 검정색 서류 가방을 들고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여전히 표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