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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r 1화
chapter 1. 손님
1. 유언의 상자
맬튼은 넥타이를 풀었다. 어울리지 않는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소매 단추를 풀었다. 바로 얼마 전에 새로 장만한 구두를 벗어 던지고 시계와 팔찌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물건이 하나씩 놓였다. 맬튼은 마침내 겨우 한 장 걸치고 있던 속옷까지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물은 미처 데워지지 않아 소름이 돋았다. 차가운 물이 정수리부터 몸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물줄기를 가만히 바라보던 맬튼이 주저앉았다. 더는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는 오늘 아주 고된 하루를 보냈고 드디어 나신으로 한 손에 술병을 들고 거울을 보면서 춤을 춰도 상관없는 집에 도착한 참이었다. 흥이 부족한 그가 술기운에라도 춤을 출 일은 없겠으나, 이제는 충분히 따뜻한 온도에 감싸여 물 낭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엉덩이 정도는 흔들어 줄 의향이 있었다.
거품을 내 머리를 감고 그 거품으로 몸을 마저 씻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듯한 샤워였지만 한시라도 빨리 무거운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눕고 싶었다. 따뜻한 물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지만 15분이 되기 전에 그는 욕실에서 나왔다. 현관에서 욕실로 이어진 길에 그가 벗어 놓은 옷들이 죽 늘어져 있었다. 구입할 때 취급 요령까지 알려 준 고가의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바닥 먼지를 쓸고 있는 걸레 조각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이번엔 옷가지 대신 물로 흔적을 남기며 집 안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찬장에서 술을 꺼내다 말고, 비싸게 주고 산 냉각마법 시트를 깔아 둔 트레이 위의 물병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물을 숨도 안 쉬고 들이켜자 식도를 타고 위를 적시는 느낌이 생생했다.
그는 젖은 머리로 침대에 엎어졌다. 시트의 색이 진해지며 축축해졌다. 맬튼은 한숨을 쉬었다. 피곤이 몸을 무겁게 짓눌러 왔으나 막상 누우니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가 처음 장례식에 간 것은 이웃집에 살던 노부인이 죽었을 때였다. 그녀는 고양이 여섯 마리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고양이털을 온몸에 묻히고 다녔다. 그런 주제에 늘 과한 액세서리를 달고 다녔는데, 맬튼은 그 무거워 보이는 보석들이 내는 빛을 무서워했다. 한 손가락에 두세 개씩 반지를 끼고 진한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노부인의 모습은 젊음을 놓지 못하고 현실에 뒤쳐진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맬튼은 노부인에 집에 종종 놀러 가곤 했다.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 때문에 고양이를 만지려는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노부인의 파이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끊임없이 울어 대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참지 못하고 맬튼의 어머니가 한밤중에 노부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카우치에 앉은 채로 죽어 있었다. 장례식은 초라하게 치러졌다. 친인척도, 자식도 없었기 때문에 이웃들이 그녀의 집에 모여 간단히 음식을 차리고 늙은 여인의 마지막을 기렸다.
맬튼은 죽는다는 말의 의미도 모를 정도로 어렸지만 노부인이 만든 사과파이를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만은 슬퍼했다. 그러나 주인을 잃어 처치가 곤란해진 고양이 여섯 마리 중 한 마리를 맬튼이 맡아 키우게 된 것은 기쁨이었다.
고양이는 밤마다 원래 주인을 그리워했다. 맬튼이 그런 고양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이 든 고양이가 주름진 손을 잊지 못하고 에오오― 하고 울음소리를 낼 때마다 맬튼 역시 사과파이를 그리워했다.
고양이는 나이가 많아 몇 년 지나지 않아 죽어 버렸다. 노부인이 죽었을 때보다 더욱 큰 슬픔을 느낀 맬튼은 손수 고양이, 그레이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후로는 전혀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동물보다 애정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맬튼이 그레이에게 주었던 애정을 보답 받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지금에 와선 그레이를 그리워하지는 않지만 일곱 살 이후로 먹을 수 없었던 사과파이는 여전히 맬튼의 향수를 자극했다. 성인이 되어서부터는 장례식에 가는 일이 익숙해졌고 향수에 젖어드는 일도 줄어들었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맬튼이 부고를 들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이었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수하인은 맬튼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근황을 묻거나 늘 우중충한 날씨에 대한 가벼운 농담도 없는 무례한 편지는 맬튼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곧장 젊은 시절 은사의 타계를 알려 왔다.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쯤 그가 사는 공동주택 앞으로 마차 한 대가 도착했고 막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마차에 태워졌다.
“맬튼 V 페이드?”
마차 안에 앉아 있던 신사는 가족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 맬튼의 중간 이름까지 대며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맬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신사는 바로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 바람에 천장에 머리를 찧고 엉덩이뼈가 눌려 아팠으나 그는 끙끙거리는 맬튼을 쓱 보고 어떤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노아 버틀러 씨께서 당신에게 남기신 것이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와서 수령하기를 바란다고 유언하셨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반드시 일주일 내에 상속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모시고 가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사흘이라니요. 선생님은 어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까?”
“그가 사망한 것은 13일 새벽입니다. 유언장은 어제 저녁에 개봉했고 유언장을 읽자마자 당신을 데리러 온 것입니다. 페이드 씨.”
“13일이요? 어째서 제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은 거죠? 연초와 연말에는 항상 편지를 썼단 말입니다.”
맬튼은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허무함과 배신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답장이 오지 스승이 자신의 편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페이드 씨에게 상속되는 물건 중에 버틀러 씨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내게 남긴 물건이 뭡니까? 장례식이 다 끝나고서 부르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우편으로 보내도 되구요. 아침부터 미리 연락도 없이 짐 실어 가듯이 이러는 것도 선생님의 유언에 포함되는 일이었나요?”
맬튼의 불쾌한 표정에 잘 차려입은 나이 많은 신사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것에 관해서는 다시 한 번 유감의 말을 드릴 수밖에 없군요. 하지만 페이드 씨, 그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천 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다녀갔고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언장에 당신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죠. 조금 더 시각을 다투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페이드 씨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고, 버틀러 씨의 유언을 이행하기 위해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가 당신의 편지를 읽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버틀러 씨는 상냥하고 현명한 제자에 대해서 종종 언급하곤 했으니까요.”
남자의 말은 정중했지만 단호했다. 확실히 반듯한 모습에 비해서 깊은 주름이 지기 시작한 얼굴은 지쳐 보였다. 그렇다고 아무 연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러는 것을 곱게 넘어갈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지만 스승의 상냥하고 현명한 제자로서 여기서는 한 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직장에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이야기는 그 후에 듣겠습니다.”
남자가 건네준 송신 종이에 맬튼이 메시지와 좌표를 적어 태우자 곧 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휴가를 날리게 될 줄은 몰랐기에 아까움에 배 한쪽이 아팠다. 조금 있으면 다가오는 축제 기간을 끼고 닷새 동안 쉴 작정이었는데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맬튼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신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버틀러 씨가 당신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페이드 씨에게 드릴 것은 작은 상자 하나입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제가 알 필요는 없겠죠.”
맬튼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처음으로 빙긋 웃었다. 맬튼은 아직도 당황스러웠지만 조용히 마차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꽤 먼 거리라도 걸어 다니는 걸 선호하는 맬튼은 오랜만에 타는 마차에 점점 어지럼증을 느꼈다. 아까 운동하러 나왔을 때는 그저 시간이 일러 안개가 끼었나 싶었는데 이제 해가 뜰 시간이었음에도 사위가 뿌옇게 흐렸다. 답답한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연장자와 넉살 좋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에 맬튼은 눈을 감았다.
세 시간을 꼬박 달려 고향에 들어섰을 때 남자가 맬튼을 흔들어 깨웠다. 맬튼은 젖은 채로 눌려 엉망이 된 뒷머리를 정리할 새도 없이 예상도 못 한 맞춤옷 가게로 끌려 들어갔다. 시간이 부족해 이미 제작되어 있던 옷을 사야만 했지만 맬튼에겐 충분한 사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모자라 전문 이발소까지 들러 머리 손질을 받아야 했다. 몇 번이나 거절해도 나이 든 남자는 이런 추레한 몰골로 버틀러 씨 앞에 세울 수 없다 고집을 부렸고 대금도 알아서 치렀기 때문에 맬튼은 못 이기는 척 이끌려 다녔다.
멀끔한 모습으로 도착한 은사의 저택에서 맬튼은 계속 어색함을 느꼈다. 저택은 이상할 정도로 스산하고 은밀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함이라기에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어둠이 저택 전체에 깔려 있었다. 게다가 스승의 취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림과 고예술품들이 집안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은 저택이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한 사람의 부재가 컸다. 스승이 타계했을 때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한 일이 죄책감이 되어 맬튼을 괴롭혔다.
걸을 때마다 구둣발 소리가 나는 것이 도통 적응되지 않았다. 뒤로 넘긴 머리카락에 무의식적으로 올라가는 맬튼의 손을 신사가 막았다.
“기껏 신경 쓴 머리가 망가집니다. 따라오십시오. 상자는 버틀러 씨의 서재에 있습니다.”
맬튼은 앞서가는 남자를 따라 3층의 서재에 들어섰다. 서재 역시 두꺼운 커튼을 쳐 놓은 채로, 어둑한 가운데 언뜻 보이는 장식장의 장식품들 또한 알 수 없는 괴기함이 서려 있었고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써진 책들이 책장 하나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맬튼이 기억하는 버틀러는 친절하지 못한 스승이었다. 언제나 학생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늘 자신만의 세계에 열중하는 사람이라 지도자로서 알맞은 선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는 완벽한 빛이었다. 구부러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두의 중심이었다. 올곧고 반듯해서 맬튼은 감히 버틀러를 의심한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맬튼은 저택에 들어온 순간부터 어떠한 의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책장에 있던 책 중 하나를 꺼내 보려던 순간 신사가 그를 불렀다.
“이게 버틀러 씨가 당신에게 남긴 상자입니다.”
신사에게서 넘겨받은 상자는 이 저택을 압축시켜 놓은 것처럼 보였다. 고약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문양이 검은 상자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손대는 것마저 두려웠지만 고인이 남긴 것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저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식사를 준비해 놓을 테니 충분히 둘러보시고 내려오도록 하십시오.”
남자가 방을 나가자 음습한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상자와 닿아 있는 손바닥이 묘하게 서늘했다. 맬튼은 책상에 걸터앉아 검은 상자를 노려보았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은색의 문양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보였다.
피로함을 느낀 그는 상자를 내려놓고 커튼을 거뒀다. 한낮이나 잔뜩 낀 구름 때문에 노란 햇빛 대신 음습함과 우울함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맬튼은 커튼을 도로 치고 책장 앞으로 가 아까 전에 꺼내려다 말았던 책을 펼쳤다. 역시나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이지를 넘기다가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익숙한 글귀를 발견했다. 버틀러는 악필로 유명했다.
내 친구에게. 맬튼은 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더듬더듬 글귀를 읽었다. 별 의미 없는 소리였고, 더 이상 그가 읽을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버틀러가 교육자로서 알맞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맬튼 역시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는 재능에 비해 열정이 부족했고 청년이 누릴 수 있는 허황된 꿈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맬튼의 무한한 가능성을 억누르는 방해물이 되었다.
맬튼이 학교에 입학해 적성검사를 받았을 때 온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가 무려 마법사, 지도자, 성직자, 전투가, 교육자로 나뉘는 적성검사에서 마법사를 제외하고 모두 A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적성검사라고 해도 어떤 교양과목을 덤으로 들을 것인가에 대한 명성만 남은 고대마법학교의 겉치레뿐이었지만 한 개 이상의 적성에 A판정을 받은 것은 개교 이래 스무 명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맬튼은 학교의 유명인으로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수십의 시선을 견뎌 내야 했다.
결국 맬튼이 선택한 교양과목은 A판정을 받았던 것들을 모두 제쳐 둔 채로 기초마법의 이해였다. 마법사에 대한 맬튼의 적성은 B–라는 애매한 판정이었지만 C+이상이면 원하는 교양 과목을 수준별로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맬튼은 과감하게 마법교양을 선택했다.
애매했던 판정답게 맬튼이 수업에서 특출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그를 향했던 지대한 관심은 곧 사그라졌다. 모두 그가 원하던 대로였다. 2학년 때 역시 ‘문자의 역사와 마법진의 적용’을 들었고, 3학년 때 ‘수식이해론’에서 낙제점을 받아 여름방학을 날려 버렸다. 그러고 나서 4학년 때 선택한 교양이 ‘지리적 특성과 문화의 상관관계’ 라는, 버틀러가 진행했던 교육교양이었다.
맬튼과 버틀러의 첫 만남이었다. 공식적인 첫 만남은 거짓말이라도 재밌다고 할 수 없었던 수업과 악질적인 리포트로 기억되어 있지만 맬튼은 아마 버틀러 교수가 이미 예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버틀러는 개인적인 자리에서 맬튼을 항상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그 과정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 당시 맬튼은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아니, 가족 이외에는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적어도 학생 시절에는 버틀러가 전부였다. 그러나 마침 4학년 3학기 때 버틀러가 맬튼의 지도교수가 되어 상담 받는 일이 많아지자 맬튼은 버틀러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일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학생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르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맬튼과 똑같은 취급을 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맬튼이 버틀러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버틀러는 박학한 사람이었다. 주로 역사수업을 도맡아 했는데, ‘졸면서 책상에 코를 하도 박아 코가 뭉개지는 수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따라다녔지만 이런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늘 수강 인원이 많았다. 400페이지가 넘는 교과서와 200페이지 안팎의 참고도서 세 권을 한 학기에 모두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온전히 버틀러의 인성 때문이었다고 맬튼은 짐작했다.
하지만 지금 이 방은, 웃는 얼굴로 힘든 기색도 없이 아시이스 대륙 연대기를 세 시간 넘게 연강하던 버틀러의 서재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음침한 느낌의 물건들은 둘째치고 서재에 역사책은 손이 닿지 않는 책장의 맨 위 칸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맬튼이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것도 그 장르가 중구난방이었다. 다섯 원소의 상호작용, 인체의 한계와 기의 흐름, 인간의 세 가지 성 등, 철학부터 의서까지 흐름을 알 수 없게 나열되어 있었다.
맬튼은 책장을 보는 것은 그만두고 다시 검은 상자로 관심을 돌렸다. 붉은 왁스로 봉해져 있는 상자를 손에 들었다. 철제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척 차가워서 불쾌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힘을 주어 상자의 윗부분을 열자 왁스가 바스러지며 떨어졌다.
상자 안에는 열쇠와 실로 묶어 동봉된 편지, 그리고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물건 하나가 들어 있었다. 동그랗게 잘 다듬어진 그것은 매끄럽고 희미하게 빛이 났는데 조약돌이라 하기에는 너무 크고 보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투박했다.
검은색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안쪽에 공간이 있었다. 딱 물 한 방울만 한 크기의 빈 부분을 중심으로 빛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장치 없이 빛을 내니 아마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았지만 3학년 이후로 마법에는 아예 손을 놓은 맬튼으로선 그게 무슨 마법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발광마법의 한 종류이겠거니 여기고 편지지에 묶여 있는 끈을 풀었다. 상당한 장문의 편지가 손에 두껍게 잡혔다. 예전 수업시간에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의 편지는 그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
안녕하십니까. 맬튼 페이드. 어제까지는 날이 맑았는데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아침에는 해가 뜨지 않았습니다. 벌써 아홉 시를 향해 가는 시각이지만 불을 밝히고 펜을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나서는 포근한 햇빛이 늘 그립습니다.
그러나 페이드, 그대도 알다시피 이 동네는 늘 한 꺼풀의 우울함이 깔려 있지요. 이곳으로 이사 올 때는 그림자가 주는 차분함과 고요함이 좋았지만 역시 30년이나 그림자 아래 서 있으면 해가 그리워지는 법이겠지요. 요즘은 언젠가는 해안에 하얀 집을 짓고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에 잠을 깨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볕에 그을린 피부도 나름의 멋이 있다고 봅니다.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낭만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까먹지는 않았겠지요.
그대가 이 편지를 따가운 해 아래에 눈부시게 빛나는 백사장 위에서 읽고 있기를 바라지만 요즘 나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당신이 상자를 여는 곳은 어둡고 좁은 나의 서재이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서재는 지난 10년간 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고 당신이 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내가 남긴 것과 내가 부탁할 내용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완벽한 장소일 테니까요.
때문에 맬튼에게 이 서재를 남겼습니다. 상자에 같이 들어 있는 열쇠는 서재의 열쇠입니다. 서재에 있는 모든 책과 물건, 심지어는 가구까지 모두 당신에게 남깁니다. 이 편지를 다 읽고서 도저히 이 공간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열쇠를 폐기하고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대가 이 장소를 받아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열쇠를 받아 준다면 맬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건 당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꿔 줄 사건이 될 것입니다.
맬튼 페이드. 1년에 두 번씩 오는 그대의 편지를 읽는 것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학생 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무심한 말투가 가끔은 안타깝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죠. 변하지 않는 모습이 내심 다행이기도 했지만 늘 말했듯, 맬튼. 당신은 스스로를 얕잡아 보고 있습니다. 그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잠재력이 있고 그걸 끄집어낼 능력도 있습니다. 맬튼에게 부족한 것은 항상 한 방울의 열정이지요. 마냥 열다섯의 미성숙한 아이 같던 당신이 편지로 전해 오는 말이 해가 갈수록 깊이를 더해 가고 현실의 무게로 고뇌하는 것을 언뜻 비칠 때면 맬튼이 어른이 된 만큼 나는 늙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어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나는 흐르는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돌아갔군요.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화낼 필요도 없지요. 나는 이미 예전부터 나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교직에서 은퇴하고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된 그 여행을 떠났던 순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대가 졸업하고 난 바로 다음 해에 나는 은퇴를 했습니다. 내가 맬튼에게 답장을 하지 않은 이유는 선생이 아닌 모습으로 그대의 앞에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맬튼에게 나는 늘 여유롭고 제멋대로인 교사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완벽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특히나 맬튼에게는 번듯한 교육자로 남아 있고 싶었던 나의 욕심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학교에 출근하지 않게 된 첫 번째 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한가로움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루의 반을 학교에서 지냈던 내가 넘치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적극적이고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 여행은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으며,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고, 그와 동시에 내가 한 최악의 결정이고 최대의 실수입니다. 맬튼 페이드,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맬튼. 나는 지금부터 내가 그 여행에서 겪은 일과 만났던 사람, 내가 느꼈던 것. 그리고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그 사건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잠시 숨을 돌리길 권합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뒤 편안한 차림으로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다시 이 편지를 읽으세요. 밤새도록 절대 눈을 돌릴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
맬튼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선생의 충고를 따라 편지를 내려놓았다. 상자에 편지를 다시 동봉하여 넣고 1층으로 내려가니 저택의 사용인이 그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의자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가 그의 앞에 놓였다. 열두 명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에 자신만 앉아 수저를 들려니 부담스러움에 금방 체할 것 같았다.
그때 마침 맬튼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남자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묘한 반가움을 느끼며 맬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것을 남자가 손을 들어 말렸다. 그리고 맬튼의 맞은편에 앉아 사용인에게 식사 대신 차 한 잔을 부탁했다.
chapter 1. 손님
1. 유언의 상자
맬튼은 넥타이를 풀었다. 어울리지 않는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소매 단추를 풀었다. 바로 얼마 전에 새로 장만한 구두를 벗어 던지고 시계와 팔찌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물건이 하나씩 놓였다. 맬튼은 마침내 겨우 한 장 걸치고 있던 속옷까지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물은 미처 데워지지 않아 소름이 돋았다. 차가운 물이 정수리부터 몸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물줄기를 가만히 바라보던 맬튼이 주저앉았다. 더는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는 오늘 아주 고된 하루를 보냈고 드디어 나신으로 한 손에 술병을 들고 거울을 보면서 춤을 춰도 상관없는 집에 도착한 참이었다. 흥이 부족한 그가 술기운에라도 춤을 출 일은 없겠으나, 이제는 충분히 따뜻한 온도에 감싸여 물 낭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엉덩이 정도는 흔들어 줄 의향이 있었다.
거품을 내 머리를 감고 그 거품으로 몸을 마저 씻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듯한 샤워였지만 한시라도 빨리 무거운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눕고 싶었다. 따뜻한 물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지만 15분이 되기 전에 그는 욕실에서 나왔다. 현관에서 욕실로 이어진 길에 그가 벗어 놓은 옷들이 죽 늘어져 있었다. 구입할 때 취급 요령까지 알려 준 고가의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바닥 먼지를 쓸고 있는 걸레 조각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이번엔 옷가지 대신 물로 흔적을 남기며 집 안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찬장에서 술을 꺼내다 말고, 비싸게 주고 산 냉각마법 시트를 깔아 둔 트레이 위의 물병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물을 숨도 안 쉬고 들이켜자 식도를 타고 위를 적시는 느낌이 생생했다.
그는 젖은 머리로 침대에 엎어졌다. 시트의 색이 진해지며 축축해졌다. 맬튼은 한숨을 쉬었다. 피곤이 몸을 무겁게 짓눌러 왔으나 막상 누우니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가 처음 장례식에 간 것은 이웃집에 살던 노부인이 죽었을 때였다. 그녀는 고양이 여섯 마리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고양이털을 온몸에 묻히고 다녔다. 그런 주제에 늘 과한 액세서리를 달고 다녔는데, 맬튼은 그 무거워 보이는 보석들이 내는 빛을 무서워했다. 한 손가락에 두세 개씩 반지를 끼고 진한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노부인의 모습은 젊음을 놓지 못하고 현실에 뒤쳐진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맬튼은 노부인에 집에 종종 놀러 가곤 했다.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 때문에 고양이를 만지려는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노부인의 파이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끊임없이 울어 대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참지 못하고 맬튼의 어머니가 한밤중에 노부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카우치에 앉은 채로 죽어 있었다. 장례식은 초라하게 치러졌다. 친인척도, 자식도 없었기 때문에 이웃들이 그녀의 집에 모여 간단히 음식을 차리고 늙은 여인의 마지막을 기렸다.
맬튼은 죽는다는 말의 의미도 모를 정도로 어렸지만 노부인이 만든 사과파이를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만은 슬퍼했다. 그러나 주인을 잃어 처치가 곤란해진 고양이 여섯 마리 중 한 마리를 맬튼이 맡아 키우게 된 것은 기쁨이었다.
고양이는 밤마다 원래 주인을 그리워했다. 맬튼이 그런 고양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이 든 고양이가 주름진 손을 잊지 못하고 에오오― 하고 울음소리를 낼 때마다 맬튼 역시 사과파이를 그리워했다.
고양이는 나이가 많아 몇 년 지나지 않아 죽어 버렸다. 노부인이 죽었을 때보다 더욱 큰 슬픔을 느낀 맬튼은 손수 고양이, 그레이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후로는 전혀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동물보다 애정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맬튼이 그레이에게 주었던 애정을 보답 받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지금에 와선 그레이를 그리워하지는 않지만 일곱 살 이후로 먹을 수 없었던 사과파이는 여전히 맬튼의 향수를 자극했다. 성인이 되어서부터는 장례식에 가는 일이 익숙해졌고 향수에 젖어드는 일도 줄어들었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맬튼이 부고를 들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이었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수하인은 맬튼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근황을 묻거나 늘 우중충한 날씨에 대한 가벼운 농담도 없는 무례한 편지는 맬튼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곧장 젊은 시절 은사의 타계를 알려 왔다.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쯤 그가 사는 공동주택 앞으로 마차 한 대가 도착했고 막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마차에 태워졌다.
“맬튼 V 페이드?”
마차 안에 앉아 있던 신사는 가족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 맬튼의 중간 이름까지 대며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맬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신사는 바로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 바람에 천장에 머리를 찧고 엉덩이뼈가 눌려 아팠으나 그는 끙끙거리는 맬튼을 쓱 보고 어떤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노아 버틀러 씨께서 당신에게 남기신 것이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와서 수령하기를 바란다고 유언하셨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반드시 일주일 내에 상속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모시고 가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사흘이라니요. 선생님은 어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까?”
“그가 사망한 것은 13일 새벽입니다. 유언장은 어제 저녁에 개봉했고 유언장을 읽자마자 당신을 데리러 온 것입니다. 페이드 씨.”
“13일이요? 어째서 제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은 거죠? 연초와 연말에는 항상 편지를 썼단 말입니다.”
맬튼은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허무함과 배신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답장이 오지 스승이 자신의 편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페이드 씨에게 상속되는 물건 중에 버틀러 씨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내게 남긴 물건이 뭡니까? 장례식이 다 끝나고서 부르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우편으로 보내도 되구요. 아침부터 미리 연락도 없이 짐 실어 가듯이 이러는 것도 선생님의 유언에 포함되는 일이었나요?”
맬튼의 불쾌한 표정에 잘 차려입은 나이 많은 신사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것에 관해서는 다시 한 번 유감의 말을 드릴 수밖에 없군요. 하지만 페이드 씨, 그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천 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다녀갔고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언장에 당신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죠. 조금 더 시각을 다투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페이드 씨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고, 버틀러 씨의 유언을 이행하기 위해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가 당신의 편지를 읽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버틀러 씨는 상냥하고 현명한 제자에 대해서 종종 언급하곤 했으니까요.”
남자의 말은 정중했지만 단호했다. 확실히 반듯한 모습에 비해서 깊은 주름이 지기 시작한 얼굴은 지쳐 보였다. 그렇다고 아무 연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러는 것을 곱게 넘어갈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지만 스승의 상냥하고 현명한 제자로서 여기서는 한 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직장에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이야기는 그 후에 듣겠습니다.”
남자가 건네준 송신 종이에 맬튼이 메시지와 좌표를 적어 태우자 곧 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휴가를 날리게 될 줄은 몰랐기에 아까움에 배 한쪽이 아팠다. 조금 있으면 다가오는 축제 기간을 끼고 닷새 동안 쉴 작정이었는데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맬튼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신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버틀러 씨가 당신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페이드 씨에게 드릴 것은 작은 상자 하나입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제가 알 필요는 없겠죠.”
맬튼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처음으로 빙긋 웃었다. 맬튼은 아직도 당황스러웠지만 조용히 마차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꽤 먼 거리라도 걸어 다니는 걸 선호하는 맬튼은 오랜만에 타는 마차에 점점 어지럼증을 느꼈다. 아까 운동하러 나왔을 때는 그저 시간이 일러 안개가 끼었나 싶었는데 이제 해가 뜰 시간이었음에도 사위가 뿌옇게 흐렸다. 답답한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연장자와 넉살 좋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에 맬튼은 눈을 감았다.
세 시간을 꼬박 달려 고향에 들어섰을 때 남자가 맬튼을 흔들어 깨웠다. 맬튼은 젖은 채로 눌려 엉망이 된 뒷머리를 정리할 새도 없이 예상도 못 한 맞춤옷 가게로 끌려 들어갔다. 시간이 부족해 이미 제작되어 있던 옷을 사야만 했지만 맬튼에겐 충분한 사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모자라 전문 이발소까지 들러 머리 손질을 받아야 했다. 몇 번이나 거절해도 나이 든 남자는 이런 추레한 몰골로 버틀러 씨 앞에 세울 수 없다 고집을 부렸고 대금도 알아서 치렀기 때문에 맬튼은 못 이기는 척 이끌려 다녔다.
멀끔한 모습으로 도착한 은사의 저택에서 맬튼은 계속 어색함을 느꼈다. 저택은 이상할 정도로 스산하고 은밀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함이라기에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어둠이 저택 전체에 깔려 있었다. 게다가 스승의 취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림과 고예술품들이 집안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은 저택이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한 사람의 부재가 컸다. 스승이 타계했을 때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한 일이 죄책감이 되어 맬튼을 괴롭혔다.
걸을 때마다 구둣발 소리가 나는 것이 도통 적응되지 않았다. 뒤로 넘긴 머리카락에 무의식적으로 올라가는 맬튼의 손을 신사가 막았다.
“기껏 신경 쓴 머리가 망가집니다. 따라오십시오. 상자는 버틀러 씨의 서재에 있습니다.”
맬튼은 앞서가는 남자를 따라 3층의 서재에 들어섰다. 서재 역시 두꺼운 커튼을 쳐 놓은 채로, 어둑한 가운데 언뜻 보이는 장식장의 장식품들 또한 알 수 없는 괴기함이 서려 있었고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써진 책들이 책장 하나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맬튼이 기억하는 버틀러는 친절하지 못한 스승이었다. 언제나 학생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늘 자신만의 세계에 열중하는 사람이라 지도자로서 알맞은 선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는 완벽한 빛이었다. 구부러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두의 중심이었다. 올곧고 반듯해서 맬튼은 감히 버틀러를 의심한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맬튼은 저택에 들어온 순간부터 어떠한 의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책장에 있던 책 중 하나를 꺼내 보려던 순간 신사가 그를 불렀다.
“이게 버틀러 씨가 당신에게 남긴 상자입니다.”
신사에게서 넘겨받은 상자는 이 저택을 압축시켜 놓은 것처럼 보였다. 고약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문양이 검은 상자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손대는 것마저 두려웠지만 고인이 남긴 것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저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식사를 준비해 놓을 테니 충분히 둘러보시고 내려오도록 하십시오.”
남자가 방을 나가자 음습한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상자와 닿아 있는 손바닥이 묘하게 서늘했다. 맬튼은 책상에 걸터앉아 검은 상자를 노려보았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은색의 문양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보였다.
피로함을 느낀 그는 상자를 내려놓고 커튼을 거뒀다. 한낮이나 잔뜩 낀 구름 때문에 노란 햇빛 대신 음습함과 우울함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맬튼은 커튼을 도로 치고 책장 앞으로 가 아까 전에 꺼내려다 말았던 책을 펼쳤다. 역시나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이지를 넘기다가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익숙한 글귀를 발견했다. 버틀러는 악필로 유명했다.
내 친구에게. 맬튼은 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더듬더듬 글귀를 읽었다. 별 의미 없는 소리였고, 더 이상 그가 읽을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버틀러가 교육자로서 알맞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맬튼 역시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는 재능에 비해 열정이 부족했고 청년이 누릴 수 있는 허황된 꿈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맬튼의 무한한 가능성을 억누르는 방해물이 되었다.
맬튼이 학교에 입학해 적성검사를 받았을 때 온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가 무려 마법사, 지도자, 성직자, 전투가, 교육자로 나뉘는 적성검사에서 마법사를 제외하고 모두 A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적성검사라고 해도 어떤 교양과목을 덤으로 들을 것인가에 대한 명성만 남은 고대마법학교의 겉치레뿐이었지만 한 개 이상의 적성에 A판정을 받은 것은 개교 이래 스무 명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맬튼은 학교의 유명인으로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수십의 시선을 견뎌 내야 했다.
결국 맬튼이 선택한 교양과목은 A판정을 받았던 것들을 모두 제쳐 둔 채로 기초마법의 이해였다. 마법사에 대한 맬튼의 적성은 B–라는 애매한 판정이었지만 C+이상이면 원하는 교양 과목을 수준별로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맬튼은 과감하게 마법교양을 선택했다.
애매했던 판정답게 맬튼이 수업에서 특출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그를 향했던 지대한 관심은 곧 사그라졌다. 모두 그가 원하던 대로였다. 2학년 때 역시 ‘문자의 역사와 마법진의 적용’을 들었고, 3학년 때 ‘수식이해론’에서 낙제점을 받아 여름방학을 날려 버렸다. 그러고 나서 4학년 때 선택한 교양이 ‘지리적 특성과 문화의 상관관계’ 라는, 버틀러가 진행했던 교육교양이었다.
맬튼과 버틀러의 첫 만남이었다. 공식적인 첫 만남은 거짓말이라도 재밌다고 할 수 없었던 수업과 악질적인 리포트로 기억되어 있지만 맬튼은 아마 버틀러 교수가 이미 예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버틀러는 개인적인 자리에서 맬튼을 항상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그 과정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 당시 맬튼은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아니, 가족 이외에는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적어도 학생 시절에는 버틀러가 전부였다. 그러나 마침 4학년 3학기 때 버틀러가 맬튼의 지도교수가 되어 상담 받는 일이 많아지자 맬튼은 버틀러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일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학생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르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맬튼과 똑같은 취급을 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맬튼이 버틀러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버틀러는 박학한 사람이었다. 주로 역사수업을 도맡아 했는데, ‘졸면서 책상에 코를 하도 박아 코가 뭉개지는 수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따라다녔지만 이런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늘 수강 인원이 많았다. 400페이지가 넘는 교과서와 200페이지 안팎의 참고도서 세 권을 한 학기에 모두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온전히 버틀러의 인성 때문이었다고 맬튼은 짐작했다.
하지만 지금 이 방은, 웃는 얼굴로 힘든 기색도 없이 아시이스 대륙 연대기를 세 시간 넘게 연강하던 버틀러의 서재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음침한 느낌의 물건들은 둘째치고 서재에 역사책은 손이 닿지 않는 책장의 맨 위 칸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맬튼이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것도 그 장르가 중구난방이었다. 다섯 원소의 상호작용, 인체의 한계와 기의 흐름, 인간의 세 가지 성 등, 철학부터 의서까지 흐름을 알 수 없게 나열되어 있었다.
맬튼은 책장을 보는 것은 그만두고 다시 검은 상자로 관심을 돌렸다. 붉은 왁스로 봉해져 있는 상자를 손에 들었다. 철제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척 차가워서 불쾌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힘을 주어 상자의 윗부분을 열자 왁스가 바스러지며 떨어졌다.
상자 안에는 열쇠와 실로 묶어 동봉된 편지, 그리고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물건 하나가 들어 있었다. 동그랗게 잘 다듬어진 그것은 매끄럽고 희미하게 빛이 났는데 조약돌이라 하기에는 너무 크고 보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투박했다.
검은색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안쪽에 공간이 있었다. 딱 물 한 방울만 한 크기의 빈 부분을 중심으로 빛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장치 없이 빛을 내니 아마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았지만 3학년 이후로 마법에는 아예 손을 놓은 맬튼으로선 그게 무슨 마법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발광마법의 한 종류이겠거니 여기고 편지지에 묶여 있는 끈을 풀었다. 상당한 장문의 편지가 손에 두껍게 잡혔다. 예전 수업시간에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의 편지는 그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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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맬튼 페이드. 어제까지는 날이 맑았는데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아침에는 해가 뜨지 않았습니다. 벌써 아홉 시를 향해 가는 시각이지만 불을 밝히고 펜을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나서는 포근한 햇빛이 늘 그립습니다.
그러나 페이드, 그대도 알다시피 이 동네는 늘 한 꺼풀의 우울함이 깔려 있지요. 이곳으로 이사 올 때는 그림자가 주는 차분함과 고요함이 좋았지만 역시 30년이나 그림자 아래 서 있으면 해가 그리워지는 법이겠지요. 요즘은 언젠가는 해안에 하얀 집을 짓고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에 잠을 깨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볕에 그을린 피부도 나름의 멋이 있다고 봅니다.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낭만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까먹지는 않았겠지요.
그대가 이 편지를 따가운 해 아래에 눈부시게 빛나는 백사장 위에서 읽고 있기를 바라지만 요즘 나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당신이 상자를 여는 곳은 어둡고 좁은 나의 서재이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서재는 지난 10년간 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고 당신이 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내가 남긴 것과 내가 부탁할 내용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완벽한 장소일 테니까요.
때문에 맬튼에게 이 서재를 남겼습니다. 상자에 같이 들어 있는 열쇠는 서재의 열쇠입니다. 서재에 있는 모든 책과 물건, 심지어는 가구까지 모두 당신에게 남깁니다. 이 편지를 다 읽고서 도저히 이 공간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열쇠를 폐기하고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대가 이 장소를 받아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열쇠를 받아 준다면 맬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건 당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꿔 줄 사건이 될 것입니다.
맬튼 페이드. 1년에 두 번씩 오는 그대의 편지를 읽는 것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학생 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무심한 말투가 가끔은 안타깝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죠. 변하지 않는 모습이 내심 다행이기도 했지만 늘 말했듯, 맬튼. 당신은 스스로를 얕잡아 보고 있습니다. 그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잠재력이 있고 그걸 끄집어낼 능력도 있습니다. 맬튼에게 부족한 것은 항상 한 방울의 열정이지요. 마냥 열다섯의 미성숙한 아이 같던 당신이 편지로 전해 오는 말이 해가 갈수록 깊이를 더해 가고 현실의 무게로 고뇌하는 것을 언뜻 비칠 때면 맬튼이 어른이 된 만큼 나는 늙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어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나는 흐르는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돌아갔군요.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화낼 필요도 없지요. 나는 이미 예전부터 나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교직에서 은퇴하고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된 그 여행을 떠났던 순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대가 졸업하고 난 바로 다음 해에 나는 은퇴를 했습니다. 내가 맬튼에게 답장을 하지 않은 이유는 선생이 아닌 모습으로 그대의 앞에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맬튼에게 나는 늘 여유롭고 제멋대로인 교사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완벽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특히나 맬튼에게는 번듯한 교육자로 남아 있고 싶었던 나의 욕심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학교에 출근하지 않게 된 첫 번째 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한가로움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루의 반을 학교에서 지냈던 내가 넘치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적극적이고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 여행은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으며,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고, 그와 동시에 내가 한 최악의 결정이고 최대의 실수입니다. 맬튼 페이드,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맬튼. 나는 지금부터 내가 그 여행에서 겪은 일과 만났던 사람, 내가 느꼈던 것. 그리고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그 사건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잠시 숨을 돌리길 권합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뒤 편안한 차림으로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다시 이 편지를 읽으세요. 밤새도록 절대 눈을 돌릴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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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튼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선생의 충고를 따라 편지를 내려놓았다. 상자에 편지를 다시 동봉하여 넣고 1층으로 내려가니 저택의 사용인이 그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의자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가 그의 앞에 놓였다. 열두 명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에 자신만 앉아 수저를 들려니 부담스러움에 금방 체할 것 같았다.
그때 마침 맬튼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남자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묘한 반가움을 느끼며 맬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것을 남자가 손을 들어 말렸다. 그리고 맬튼의 맞은편에 앉아 사용인에게 식사 대신 차 한 잔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