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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r 8화
2. 무모함을 위한 결심 (2)
보안이라든가 추후의 평가라든가, 걸리는 일이 많은 것은 맬튼도 미리 짐작하던 바이나 만약 비드가 정말로 도와줄 수 있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런 관용을 베푸나 의심이 들었지만 꽤 매력적인 제안임에는 틀림없었다. 후에 도움의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 두렵기는 해도 당장에는 절박했다.
“만약에 정말 도와준다면 고마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할리만 성격에 그걸 받아들이진 않을 것 같은데.”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죠.”
비단 할리만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마법에 관련해 종사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마법에 적성이 맞는 이들이 드무니 그 희소성도 무시하지 못했고, 전문적으로 마법을 공부하고 인증시험을 통과해 국가정식마법위원회의 마크가 찍힌 자격증을 받는 것이 워낙 까다롭고 어려워 그런 인재가 나온다면 집안에 두고두고 거론될 자랑이었다.
그런 이들이 어디서 듣지도 못한 외부인이 너희가 못 하는 걸 내가 할 수 있다 말한다고 그럼 부탁합니다, 하며 수긍할 리가 만무했다. 특히나 할리만은 마법에 관련하여 꽤 유명한 집안이기 때문에 한 번 찔러 보는 일조차 망설여지는 것이다.
“일단 기술부에 잠깐 얼굴이나 비추고 와야겠어요. 리는 오늘 강의 나가죠?”
“아, 응. 오후 되기 전에는 돌아올 테니까.”
경호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두 번 강의를 나가는 리는 항상 귀찮아했으면서 가시방석을 빠져나가 정식적으로 게으름을 부릴 수 있게 되자 어느 때보다 서둘렀다. 약간의 부러움을 느끼며, 맬튼은 인원수에 맞춰 간식을 사 들고 기술부로 향했다.
기술 부서에 들어서기 전에 있는 보안 수식이 경호부보다 복잡한 것을 보고 맬튼은 혀를 찼다. 쓸데없이 화려하고 섬세함을 요구하는 것이 영락없이 할리만의 취향이었다. 마나를 그냥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진을 짜는 것처럼 알맞은 위치에 정해진 양의 마나를 주입해야 하는, 귀찮고 상위 기술에 속하는 것이었다.
마법기술부에 드나드는 이들이 그 부서사람들밖에 없다고는 하지만(특히나 기술부는), 굳이 이렇게 뽐내듯이 해 놓은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맬튼은 숨을 한 번 내뱉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으음― 양을 못 정하겠는데. 모자란가? 아아― 모르겠다. 좀 많이 넣으면 그냥 방출되겠지 뭐.’
몇 번 시도하다가 자꾸만 마나가 제대로 안착되지 않자 인내심이 바닥난 맬튼이 인상을 살짝 쓰고 무작정 손바닥에 마나를 모아 수식에 밀어 넣었다. 수식의 빈자리에 마나가 찾아 들어가다가 과도하게 밀어 넣어진 탓에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다음 순간 작은 폭발음과 함께 아예 망가지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맬튼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작은 폭발이었다고 해도 폭발은 폭발이라 손바닥이 열에 그을려 발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으나 그 고통조차 잊은 듯했다.
그때 뒤에서 신경질적인 발걸음이 들렸다.
“아앗! 페이드! 이 멍청한! 지금 뭐하는 짓이야?”
할리만이 아침보다 퀭한 눈을 부릅뜨고 달려왔다. 맬튼이 완전히 망쳐 놓은 보안 수식을 들여다보더니 으르렁 소리를 낼 것 같이 이를 드러냈다.
“가뜩이나 바쁜데 왜 쓸데없이 와서 이런 잡일을 만드는 거야!”
“미안. 난 좀 더 견고할 줄 알았지.”
“진짜 이래서 세미들은.”
겨우 이런 간단한 마나 조작도 제대로 못하느냐 화를 냈다.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지은 죄가 명백해 대꾸하지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할리만이 화를 내는 것도 지치는지 입을 다물었다. 할리만은 그렇게 노발대발한 것에 비해서는 금방 다시 보안 수식을 걸어 놓았고 또 한 번 주의를 주고서야 맬튼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다들 밤을 샜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괜히 왔나 싶은 마음이 들어 맬튼이 아는 척을 하지 못하자 할리만이 맬튼의 손에 들려 있는 간식을 뺏어가 버렸다.
“경호부에서 뇌물 들고 왔으니 좀 먹고 합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수식을 짜고 있던 사람들이 영혼 없는 눈으로 걸어와 빵과 음료 하나씩을 가지고 구석자리로 사라졌다. 제가 짓지도 않은 죄에 죄책감이 들어 수고한다 격려 한마디씩 거들어 주었지만 누구 하나 대답해 주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음료를 할리만에게 건네주었다. 할리만은 고맙단 소리도 하지 않고 받아 제자리로 갔다. 맬튼이 그 뒤를 따라가자 할리만이 잔뜩 어질러진 책상을 뒤져 손바닥만 한 종이 한 뭉치를 던졌다.
“147개 중에서 58개 분리했어. 사흘 남았으니 그동안 밤새면 어떻게든 될 것 같으니까 걱정 마. 이거 궁금해서 온 거지?”
“아― 응.”
“마침 이거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잘 왔네. 분리되는 대로 나머지도 계속 보낼 테니까 명단이랑 미리 맞춰 놓고 있어. 보내 준 마나가 문장에 동봉되어 있었으니까 모양도 최대한 복원할 텐데, 완벽하진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는 건 전시회 당일에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래도 그 정도면 감지덕지야. 알아?”
“응. 근데…….”
“근데? 뭐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더 빨리는 못 해. 애들 체력도 안 따라 줄 테고 지금도 무리하고 있는 거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맬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자 할리만이 의자를 돌려 마주했다. 맬튼이 말했다.
“무리할 것 없이 전문 기관에 맡기면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괜히 체력 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지금 기술부를 무시하는 거야? 이 정도는 충분히 우리끼리도 할 수 있어. 좀만 수고하면 되는 일이야. 별것도 아닌 거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님을 휴게실에 널브러져 있는 직원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직원들도 외부에 일을 맡기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이건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에 관련된 문제였다.
“그럼 그냥 좀 도움을 받는 건? 그냥 개인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기술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나도 테일의 선배로서 책임감이 있으니까 수고를 덜어 주고 싶은 것뿐이야.”
맬튼은 기분 나쁘게 여기지 말라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때 맬튼의 등 뒤로 시체 같이 걸어 나와 다시 수식을 짜기 시작하는 후배의 모습이 할리만의 눈에 들어왔다. 겨우 하루 밤을 샌 것뿐인데 이 지경이면 사흘째 되는 날에는 누군가 쓰러져도 할 말이 없었다.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누군데?”
“어?”
“누구냐고. 도와주겠다는 사람.”
* * *
퇴근 시간 뒤에 비드가 박물관으로 찾아왔다. 맬튼과 할리만, 리까지 동석했다. 리와 할리만은 비드의 외모에 보자마자 기가 죽어 답지 않게 고분고분한 태도였다. 간단한 소개가 오가고 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어디 기관에 소속된 분이신지.”
“소속?”
“아, 저기 비드 씨는 그러니까, 외국. 그래, 외국에서 오신 분이에요. 그렇죠― 비드?”
맬튼이 제발 허튼 소리하지 말아 달라는 눈빛으로 비드를 쳐다보았다. 비드는 그것이 상당히 탐탁지 않았으나 자처해서 도와주겠다고 나선 마당에 괜히 일을 그르칠 생각은 없었다.
“아아― 르파브에서 왔어.”
르파브는 고산에 위치한 나라로 요정의 나라라고도 불렸다. 황막하고 추운 지대에 세워진 건축물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어마어마해 도저히 인간의 기술로는 실현할 수 없는 것이었고, 국민들의 평균 신장과 외모가 상당히 남달랐기 때문이다. 추운 지역에 위치한 나라의 기후 특성상 불에 관한 마법이 크게 발달했는데 지금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발열지와 발광석도 르파브의 것을 최상으로 쳐 주었다.
대충 둘러댈 줄 알았는데 꽤 그럴싸한 거짓말을 한 것이 의외라, 맬튼조차 리와 할리만과 함께 놀란 눈을 하고 말았다.
“르파브 출신이시면 과연 선뜻 도와주겠다고 하실 만하네요.”
비드는 뭐 그렇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할리만의 신경을 거스르고 말았다.
“아무리 르파브 출신이라고 해도 주요 정계 인사는 물론이고 고위 간부부터 기업가까지 중요한 인물들의 마나를 외부인에 손에 맡긴다는 게 조금 걸리는군요. 비드 씨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까다로운 일을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는지도 잘 모르겠구요.”
날이 선 할리만의 말에 불안한 것은 맬튼이었다. 괜히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비드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비드의 눈치를 보는데 비드는 의외로 평온한 얼굴이었다. 무표정이긴 하나 딱히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비드는 일순간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것이 웃음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흠칫 놀란 할리만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의자가 바닥에 밀려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잠깐 손 좀.”
비드가 상냥한 어투로 할리만에게 손을 내밀었다. 뭘 하려는 건지 짐작도 되지 않는 행동이라 맬튼은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았다.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자 할리만이 쭈뼛거리며 비드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피부가 닿자마자 비드가 할리만의 손을 콱 움켜잡아 당겼다. 그 바람에 할리만은 테이블에 반쯤 몸을 걸친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불안하게 바라보는 맬튼에게 비드는 씩 웃어 주고 양손으로 할리만의 손을 감싸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곤 하얀 피부 때문에 도드라져 보이는 입을 벌렸다.
“악!”
아득― 하고 손가락을 깨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놀란 맬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리 역시 입을 손으로 가리고 말을 잃었다. 그러나 비드는 그러거나 말거나 피가 배어 나오는 할리만의 손가락을 툭 하고 놓아 버렸다.
할리만이 통증이 쉽게 가시지 않는 손을 감싸고 비드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잠깐 확인해 본 것뿐이야.”
“뭘 확인해요.”
“네 마나. 지금 상당히 소비한 것 같은데 얼른 회수하지 않으면 쓰러진다.”
“그걸 어떻게…….”
“인간의 마나는 기본적으로 혈류를 통해서 흐르거든. 신체 조직에 기본적으로 다 마나가 있기는 하지만 혈액이나 타액, 뭐― 그 비슷한 것들에는 특히나 마나가 응축되어 있어.”
할리만이 손에 난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상처가 크지는 않지만 억울함 때문인지 쓰라림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서 내 피로 현재 나의 마나 상태를 확인했다는 겁니까?”
“응.”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전문적인 마나 측정기는 마법인증을 할 때나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것이고, 마법에 관련하여 제대로 종사하지 않는 이라면 평생 자신의 마나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 까다로운 작업을 이렇게 간단히 그렇다고 한다니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비드의 표정이 너무나 당당했고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의 손가락을 깨무는 기행은 설명되지 않았다. 혹시 르파브 출신의 마법사들은 다 할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물었으나 비드는 그건 제 알 바가 아니고 단지 자신은 할 수 있다 대답했다.
그쯤 되자 리는 물론이고 할리만도 여태껏 가시지 않던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무는, 상당히 무례한 방법으로 마나의 양을 알 수 있다는 건 증명할 길이 없으니 잘 믿을 수는 없었지만 할리만은 적대감을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리는 퇴근을 하고 세 명의 남자가 기술부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직 하루치 일을 끝내지 못한 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낯선 얼굴에 궁금증이 솟아 고개를 돌리는 이도 있었지만 고단함이 지나쳐 그 이상의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매달려도 한 번에 쓸 수 있는 마나의 양이 한정되어 있는지라 일정 수준 이상의 속도는 나지 않아 다들 자신이 맡은 일에만 집중했다.
할리만이 자신의 자리를 지나쳐 안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이미 그곳에는 진을 그려 두고 일을 하고 있는 직원 두 명이 있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죠.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분리 마법입니다. 마나석에 분리 마법을 시전하면 일단은 성질이 비슷한 마나가 두세 개쯤 딸려 나올 텐데 그걸 저기 직원들이 만든 정체 공간에 서너 시간 두면 알아서 분리될 겁니다. 그럼 그걸 시간 여환시켜서 형태복원하고 어느 정도 문장대로 복원이 되면 본인 마나랑 섞어서 이 종이에 흡수시킨 다음에 본인 것만 회수하면 끝납니다. 비드 씨에게 부탁드릴 건 마나석에서 비슷한 마나끼리 추출하는 겁니다. 물건 같은 것도 아니고 대상이 마나라 컨트롤이 꽤 까다로울 텐데…….”
할 수 있겠냐는 말은 생략했지만 비드가 알아듣고 가소롭다는 듯 혀를 찼다. 실제로 할리만이 걱정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것이었다. 본래 악마라는 존재는 마나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생명을 가진 마력체라고 말해도 좋았다. 때문에 마나를 감지하는 데 예민한 비드는 까다롭다 못해 머리가 아플 지경인 마나 분리도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비드는 마법을 쓰면서 방출한 마나를 다시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건 본래 자신의 마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한 만큼 다시 채워 줘야 했다. 비드가 정상의 컨디션이었다면 이 정도 마나 소비는 대수롭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조금 곤란했다.
악마는 눈 밑이 시커메진 인간들을 둘러보았다. 불쌍하긴 하지만 그건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그가 이 일을 굳이 도와주겠다고 한 이유는 이 일로 맬튼에게 빚을 만들어 어서 빨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 낼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비드는 겉옷을 벗어 맬튼에게 건네주고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냥 도와준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걸.”
상당히 음흉한 미소에 맬튼은 순간 뒷감당이 걱정이 되었으나 이제 와서 무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비드는 버석한 얼굴을 한 직원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보는 인물에 직원이 살짝 옆으로 물러나려다가 눈이 커다래졌다.
비드가 진의 끄트머리에 손을 짚었다. 진의 한가운데에 있는 마나석에 최대한 적은 마나를 흘려보내자 그 안에 뒤죽박죽 섞인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많았다. 손가락 끝에 집중을 해 약간 마나를 방출하자 그려 놓은 진이 묘하게 진동했다.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느낌의 주문을 내뱉자 곧장 반응이 왔다. 공중에 떠 있던 마나석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진에 같이 손을 대고 분리 마법을 시전하고 있던 두 명의 직원들이 처음 느끼는 공격적인 마나의 사용에 숨을 들이켰다. 비드의 마나가 마나석 안으로 욱여넣어졌다. 분리 마법이 아니었다. 두 명의 직원들이 무슨 마법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마나석이 과부하 상태에 이르기 직전에야 비드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 급히 진에서 손을 떼고 다급하게 방을 나갔다.
직원이 급히 할리만을 찾아 방안으로 돌아왔을 땐 진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나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맬튼은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나 뭔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할리만이 경악을 했다.
“지금 이게……!”
말을 맺을 여유도 없이 할리만이 뛰어가 비드를 뒤로 잡아당겼다. 비드의 손이 진에서 떨어지자마자 마나석이 회전을 멈췄고 빛도 희미해졌다. 방 안의 공기를 진동시킬 만큼 강한 마나가 진정되고 나자 할리만이 비드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읏― 이거 놓고 말해.”
비드가 할리만의 손을 쳐내고 제 몸을 양팔로 감쌌다. 조금만 더 하면 됐을 텐데 방해받은 것이 기분 나빴다. 그러나 비드가 불쾌한 얼굴을 하든 말든 할리만은 방금 전의 위험하고 몰상식한 짓에 대해 추궁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맬튼이 할리만의 험악한 언사에 재빨리 다가왔다.
비드의 얼굴이 창백했다. 버틀러의 저택에서 일어났을 때와 비슷했다. 넘어진 채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기에 무릎을 꿇고 그의 등을 받쳤다. 미세한 떨림을 손끝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일을 망치려는 겁니까?”
“일을 빨리 끝내려는 거지. 지금처럼 일일이 분리마법으로 마나를 추출하는 것보다야 마나석에 과부하 걸어서 억지로 방출시키는 게 훨씬 빨라.”
비드의 대답에 할리만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짚었다.
“알죠. 하지만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회수도 못하게 대량의 마나를 방출시키다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죽으려고 환장한 거냐는 겁니다!”
제정신이 아니라 고개를 저었다. 큰 소리에 다른 직원들이 다들 방안으로 들어와 기웃거렸다. 할리만은 침착하지 못하고 자꾸만 화를 냈다. 비드가 맬튼에게 몸을 기댄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무슨 마법을 써도 회수도 못 하는데.’
일어나려는 듯한 제스처에 맬튼이 비드를 부축했다. 그 김에 목 뒤를 손으로 만져 보니 역시나 차가웠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해.”
맬튼이 큰 소리를 내는 할리만을 손을 들어 제지했다. 할리만이 방 안을 둘러보다가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정리 좀 하고 나가겠다 하고 둘을 먼저 내보냈다.
맬튼은 경호부의 사무실에 딸려 있는 숙직실의 침대에 비드를 눕혔다. 하지만 비드는 눕지 않고 굳이 앉았다. 안색이 좋지 않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맬튼은 비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마주쳤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차분한 목소리였다. 비드가 눈을 피하자 팔뚝을 붙잡았다. 인상을 찌푸렸으나 놓아주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대답하라는 재촉의 대신이었다.
“도와 달라며.”
“나는 마법에 대해서 무지하긴 하지만 지금 당신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는 건 알겠어요. 나한테는 마나도 회수하지 않고 다닌다고 한 소리 하더니 방금은 뭡니까? 죽을 수도 있었어요.”
“그렇게 쉽게 안 죽어.”
“그런 말투 하지 말아요. 무슨 말인지 알잖아요.”
나는 화가 난 건가. 왜 화가 났을까. 은근한 언짢음이 상당히 거슬렸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맬튼은 비드의 팔을 놓아주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대답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비드의 모습에 짜증이 솟았다.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입장이면 적어도 숨기는 건 없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가시가 돋은 말이었다. 비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까 거기서 그 마법사가 말리지만 않았으면 별로 들키지 않고 일을 끝낼 수 있었을 텐데, 하고 할리만 탓을 했다. 왜 자신이 있는 그대로 말해 주지 않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맬튼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야말로 도와줄 마음이 있긴 해? 여태 노아의 편지도 읽지 않고 미뤄 두고만 있잖아.”
“그건…… 그건 이번 일이 정리되면 읽을 생각이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거짓말은 잘하는군.”
“그게 아닌……. 이건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죠. 일단은 할리만이 오면 뭐라고 대답할 겁니까?”
“몰라.”
“비드.”
“……난 마나를 회수 못 해. 인간 같지 않다고. 원래 못 하는 걸 어떡하라는 소리야.”
“그게 무슨…….”
그때 할리만이 화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린 채 앉아 있는 비드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맬튼을 번갈아 보더니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숨을 길게 쉬고 문을 닫았다.
마나석에 워낙 다량의 마나를 불어넣은 탓에 직원들이 조금씩 더 보태 강제로 마나를 방출시켰다 보고했다. 마나석이 망가졌는데,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긴 해도 일단 테일에게 전해 달라 맬튼에게 부탁했다.
그리곤 비드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유를 물었다. 비드는 잠시 망설이다 그저 가장 빠른 해결방법을 찾은 것뿐이라 답했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답이었으나 비드의 안색이 워낙 좋아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하고 차후에 다시 연락을 하겠다 말을 마치고 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드가 숨 가빠하는 탓에 몇 번이나 쉬었다. 박물관에서 보다는 혈색이 미약하게 돌아온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나치게 차가웠다.
겨울에나 덮는 이불을 꺼내 원래 덮는 것 위에 주름 지지 않게 펼쳤다. 비드가 필요 없다 거절했으나 맬튼은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불을 들춰 내려는 비드의 손을 잡아 이불 안으로 집어넣고 어깨까지 이불을 끌어당겼다.
“자요. 자는 동안 버틀러 선생님의 편지 읽어 둘 테니까.”
“정말?”
“그래요. 아침에 일어나면 나도 뭔가를 좀 알게 될 테니 아까 못한 이야기는 내일 하죠.”
비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옆으로 돌려 웅크렸다. 갈증이 났다. 아무래도 오랜만이라 조절이 미숙했던 모양이었다. 손이 떨려와 이불을 움켜쥐었다. 눈을 감고 맬튼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물을 따라 마셨다.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물을 또 따라 침대로 다가와 머리맡에 컵을 놓았다. 뒤통수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옷이 스치는 소리가 나고 서랍을 뒤지는 소리 뒤에 종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멀어져 가기에 비드가 눈을 뜨고 몸을 돌렸다.
“맬튼.”
불편한 티 테이블 의자에 앉으려던 맬튼이 비드의 부름에 희미하게 웃었다.
“어서 자요.”
비드가 몸을 반쯤 일으키는가 싶더니 침대의 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다시 누워 이불을 코까지 뒤집어썼다. 맬튼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해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자 이불을 살짝 들썩였다.
“여기서 읽어.”
굉장한 아량이었다. 왜 자신의 침대를 비드가 써도 된다고 허락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나 엉덩이가 배기는 철제 의자보다야 당연히 침대가 나았다. 맬튼이 침대에 앉자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오랜만에 앉아 보는 침대가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었다. 맬튼이 옆자리에 앉는 것을 본 비드가 다시 몸을 돌려 누웠다.
맬튼이 불을 끄고 유리 상자에 발광 마법을 걸자 푸른색의 은은한 빛이 방 안을 채웠다. 조용한 숨소리와 일정 간격으로 스치는 종이 소리에 비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2. 무모함을 위한 결심 (2)
보안이라든가 추후의 평가라든가, 걸리는 일이 많은 것은 맬튼도 미리 짐작하던 바이나 만약 비드가 정말로 도와줄 수 있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런 관용을 베푸나 의심이 들었지만 꽤 매력적인 제안임에는 틀림없었다. 후에 도움의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 두렵기는 해도 당장에는 절박했다.
“만약에 정말 도와준다면 고마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할리만 성격에 그걸 받아들이진 않을 것 같은데.”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죠.”
비단 할리만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마법에 관련해 종사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마법에 적성이 맞는 이들이 드무니 그 희소성도 무시하지 못했고, 전문적으로 마법을 공부하고 인증시험을 통과해 국가정식마법위원회의 마크가 찍힌 자격증을 받는 것이 워낙 까다롭고 어려워 그런 인재가 나온다면 집안에 두고두고 거론될 자랑이었다.
그런 이들이 어디서 듣지도 못한 외부인이 너희가 못 하는 걸 내가 할 수 있다 말한다고 그럼 부탁합니다, 하며 수긍할 리가 만무했다. 특히나 할리만은 마법에 관련하여 꽤 유명한 집안이기 때문에 한 번 찔러 보는 일조차 망설여지는 것이다.
“일단 기술부에 잠깐 얼굴이나 비추고 와야겠어요. 리는 오늘 강의 나가죠?”
“아, 응. 오후 되기 전에는 돌아올 테니까.”
경호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두 번 강의를 나가는 리는 항상 귀찮아했으면서 가시방석을 빠져나가 정식적으로 게으름을 부릴 수 있게 되자 어느 때보다 서둘렀다. 약간의 부러움을 느끼며, 맬튼은 인원수에 맞춰 간식을 사 들고 기술부로 향했다.
기술 부서에 들어서기 전에 있는 보안 수식이 경호부보다 복잡한 것을 보고 맬튼은 혀를 찼다. 쓸데없이 화려하고 섬세함을 요구하는 것이 영락없이 할리만의 취향이었다. 마나를 그냥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진을 짜는 것처럼 알맞은 위치에 정해진 양의 마나를 주입해야 하는, 귀찮고 상위 기술에 속하는 것이었다.
마법기술부에 드나드는 이들이 그 부서사람들밖에 없다고는 하지만(특히나 기술부는), 굳이 이렇게 뽐내듯이 해 놓은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맬튼은 숨을 한 번 내뱉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으음― 양을 못 정하겠는데. 모자란가? 아아― 모르겠다. 좀 많이 넣으면 그냥 방출되겠지 뭐.’
몇 번 시도하다가 자꾸만 마나가 제대로 안착되지 않자 인내심이 바닥난 맬튼이 인상을 살짝 쓰고 무작정 손바닥에 마나를 모아 수식에 밀어 넣었다. 수식의 빈자리에 마나가 찾아 들어가다가 과도하게 밀어 넣어진 탓에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다음 순간 작은 폭발음과 함께 아예 망가지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맬튼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작은 폭발이었다고 해도 폭발은 폭발이라 손바닥이 열에 그을려 발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으나 그 고통조차 잊은 듯했다.
그때 뒤에서 신경질적인 발걸음이 들렸다.
“아앗! 페이드! 이 멍청한! 지금 뭐하는 짓이야?”
할리만이 아침보다 퀭한 눈을 부릅뜨고 달려왔다. 맬튼이 완전히 망쳐 놓은 보안 수식을 들여다보더니 으르렁 소리를 낼 것 같이 이를 드러냈다.
“가뜩이나 바쁜데 왜 쓸데없이 와서 이런 잡일을 만드는 거야!”
“미안. 난 좀 더 견고할 줄 알았지.”
“진짜 이래서 세미들은.”
겨우 이런 간단한 마나 조작도 제대로 못하느냐 화를 냈다.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지은 죄가 명백해 대꾸하지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할리만이 화를 내는 것도 지치는지 입을 다물었다. 할리만은 그렇게 노발대발한 것에 비해서는 금방 다시 보안 수식을 걸어 놓았고 또 한 번 주의를 주고서야 맬튼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다들 밤을 샜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괜히 왔나 싶은 마음이 들어 맬튼이 아는 척을 하지 못하자 할리만이 맬튼의 손에 들려 있는 간식을 뺏어가 버렸다.
“경호부에서 뇌물 들고 왔으니 좀 먹고 합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수식을 짜고 있던 사람들이 영혼 없는 눈으로 걸어와 빵과 음료 하나씩을 가지고 구석자리로 사라졌다. 제가 짓지도 않은 죄에 죄책감이 들어 수고한다 격려 한마디씩 거들어 주었지만 누구 하나 대답해 주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음료를 할리만에게 건네주었다. 할리만은 고맙단 소리도 하지 않고 받아 제자리로 갔다. 맬튼이 그 뒤를 따라가자 할리만이 잔뜩 어질러진 책상을 뒤져 손바닥만 한 종이 한 뭉치를 던졌다.
“147개 중에서 58개 분리했어. 사흘 남았으니 그동안 밤새면 어떻게든 될 것 같으니까 걱정 마. 이거 궁금해서 온 거지?”
“아― 응.”
“마침 이거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잘 왔네. 분리되는 대로 나머지도 계속 보낼 테니까 명단이랑 미리 맞춰 놓고 있어. 보내 준 마나가 문장에 동봉되어 있었으니까 모양도 최대한 복원할 텐데, 완벽하진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는 건 전시회 당일에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래도 그 정도면 감지덕지야. 알아?”
“응. 근데…….”
“근데? 뭐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더 빨리는 못 해. 애들 체력도 안 따라 줄 테고 지금도 무리하고 있는 거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맬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자 할리만이 의자를 돌려 마주했다. 맬튼이 말했다.
“무리할 것 없이 전문 기관에 맡기면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괜히 체력 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지금 기술부를 무시하는 거야? 이 정도는 충분히 우리끼리도 할 수 있어. 좀만 수고하면 되는 일이야. 별것도 아닌 거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님을 휴게실에 널브러져 있는 직원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직원들도 외부에 일을 맡기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이건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에 관련된 문제였다.
“그럼 그냥 좀 도움을 받는 건? 그냥 개인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기술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나도 테일의 선배로서 책임감이 있으니까 수고를 덜어 주고 싶은 것뿐이야.”
맬튼은 기분 나쁘게 여기지 말라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때 맬튼의 등 뒤로 시체 같이 걸어 나와 다시 수식을 짜기 시작하는 후배의 모습이 할리만의 눈에 들어왔다. 겨우 하루 밤을 샌 것뿐인데 이 지경이면 사흘째 되는 날에는 누군가 쓰러져도 할 말이 없었다.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누군데?”
“어?”
“누구냐고. 도와주겠다는 사람.”
* * *
퇴근 시간 뒤에 비드가 박물관으로 찾아왔다. 맬튼과 할리만, 리까지 동석했다. 리와 할리만은 비드의 외모에 보자마자 기가 죽어 답지 않게 고분고분한 태도였다. 간단한 소개가 오가고 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어디 기관에 소속된 분이신지.”
“소속?”
“아, 저기 비드 씨는 그러니까, 외국. 그래, 외국에서 오신 분이에요. 그렇죠― 비드?”
맬튼이 제발 허튼 소리하지 말아 달라는 눈빛으로 비드를 쳐다보았다. 비드는 그것이 상당히 탐탁지 않았으나 자처해서 도와주겠다고 나선 마당에 괜히 일을 그르칠 생각은 없었다.
“아아― 르파브에서 왔어.”
르파브는 고산에 위치한 나라로 요정의 나라라고도 불렸다. 황막하고 추운 지대에 세워진 건축물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어마어마해 도저히 인간의 기술로는 실현할 수 없는 것이었고, 국민들의 평균 신장과 외모가 상당히 남달랐기 때문이다. 추운 지역에 위치한 나라의 기후 특성상 불에 관한 마법이 크게 발달했는데 지금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발열지와 발광석도 르파브의 것을 최상으로 쳐 주었다.
대충 둘러댈 줄 알았는데 꽤 그럴싸한 거짓말을 한 것이 의외라, 맬튼조차 리와 할리만과 함께 놀란 눈을 하고 말았다.
“르파브 출신이시면 과연 선뜻 도와주겠다고 하실 만하네요.”
비드는 뭐 그렇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할리만의 신경을 거스르고 말았다.
“아무리 르파브 출신이라고 해도 주요 정계 인사는 물론이고 고위 간부부터 기업가까지 중요한 인물들의 마나를 외부인에 손에 맡긴다는 게 조금 걸리는군요. 비드 씨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까다로운 일을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는지도 잘 모르겠구요.”
날이 선 할리만의 말에 불안한 것은 맬튼이었다. 괜히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비드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비드의 눈치를 보는데 비드는 의외로 평온한 얼굴이었다. 무표정이긴 하나 딱히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비드는 일순간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것이 웃음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흠칫 놀란 할리만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의자가 바닥에 밀려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잠깐 손 좀.”
비드가 상냥한 어투로 할리만에게 손을 내밀었다. 뭘 하려는 건지 짐작도 되지 않는 행동이라 맬튼은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았다.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자 할리만이 쭈뼛거리며 비드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피부가 닿자마자 비드가 할리만의 손을 콱 움켜잡아 당겼다. 그 바람에 할리만은 테이블에 반쯤 몸을 걸친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불안하게 바라보는 맬튼에게 비드는 씩 웃어 주고 양손으로 할리만의 손을 감싸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곤 하얀 피부 때문에 도드라져 보이는 입을 벌렸다.
“악!”
아득― 하고 손가락을 깨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놀란 맬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리 역시 입을 손으로 가리고 말을 잃었다. 그러나 비드는 그러거나 말거나 피가 배어 나오는 할리만의 손가락을 툭 하고 놓아 버렸다.
할리만이 통증이 쉽게 가시지 않는 손을 감싸고 비드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잠깐 확인해 본 것뿐이야.”
“뭘 확인해요.”
“네 마나. 지금 상당히 소비한 것 같은데 얼른 회수하지 않으면 쓰러진다.”
“그걸 어떻게…….”
“인간의 마나는 기본적으로 혈류를 통해서 흐르거든. 신체 조직에 기본적으로 다 마나가 있기는 하지만 혈액이나 타액, 뭐― 그 비슷한 것들에는 특히나 마나가 응축되어 있어.”
할리만이 손에 난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상처가 크지는 않지만 억울함 때문인지 쓰라림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서 내 피로 현재 나의 마나 상태를 확인했다는 겁니까?”
“응.”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전문적인 마나 측정기는 마법인증을 할 때나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것이고, 마법에 관련하여 제대로 종사하지 않는 이라면 평생 자신의 마나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 까다로운 작업을 이렇게 간단히 그렇다고 한다니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비드의 표정이 너무나 당당했고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의 손가락을 깨무는 기행은 설명되지 않았다. 혹시 르파브 출신의 마법사들은 다 할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물었으나 비드는 그건 제 알 바가 아니고 단지 자신은 할 수 있다 대답했다.
그쯤 되자 리는 물론이고 할리만도 여태껏 가시지 않던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무는, 상당히 무례한 방법으로 마나의 양을 알 수 있다는 건 증명할 길이 없으니 잘 믿을 수는 없었지만 할리만은 적대감을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리는 퇴근을 하고 세 명의 남자가 기술부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직 하루치 일을 끝내지 못한 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낯선 얼굴에 궁금증이 솟아 고개를 돌리는 이도 있었지만 고단함이 지나쳐 그 이상의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매달려도 한 번에 쓸 수 있는 마나의 양이 한정되어 있는지라 일정 수준 이상의 속도는 나지 않아 다들 자신이 맡은 일에만 집중했다.
할리만이 자신의 자리를 지나쳐 안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이미 그곳에는 진을 그려 두고 일을 하고 있는 직원 두 명이 있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죠.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분리 마법입니다. 마나석에 분리 마법을 시전하면 일단은 성질이 비슷한 마나가 두세 개쯤 딸려 나올 텐데 그걸 저기 직원들이 만든 정체 공간에 서너 시간 두면 알아서 분리될 겁니다. 그럼 그걸 시간 여환시켜서 형태복원하고 어느 정도 문장대로 복원이 되면 본인 마나랑 섞어서 이 종이에 흡수시킨 다음에 본인 것만 회수하면 끝납니다. 비드 씨에게 부탁드릴 건 마나석에서 비슷한 마나끼리 추출하는 겁니다. 물건 같은 것도 아니고 대상이 마나라 컨트롤이 꽤 까다로울 텐데…….”
할 수 있겠냐는 말은 생략했지만 비드가 알아듣고 가소롭다는 듯 혀를 찼다. 실제로 할리만이 걱정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것이었다. 본래 악마라는 존재는 마나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생명을 가진 마력체라고 말해도 좋았다. 때문에 마나를 감지하는 데 예민한 비드는 까다롭다 못해 머리가 아플 지경인 마나 분리도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비드는 마법을 쓰면서 방출한 마나를 다시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건 본래 자신의 마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한 만큼 다시 채워 줘야 했다. 비드가 정상의 컨디션이었다면 이 정도 마나 소비는 대수롭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조금 곤란했다.
악마는 눈 밑이 시커메진 인간들을 둘러보았다. 불쌍하긴 하지만 그건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그가 이 일을 굳이 도와주겠다고 한 이유는 이 일로 맬튼에게 빚을 만들어 어서 빨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 낼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비드는 겉옷을 벗어 맬튼에게 건네주고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냥 도와준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걸.”
상당히 음흉한 미소에 맬튼은 순간 뒷감당이 걱정이 되었으나 이제 와서 무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비드는 버석한 얼굴을 한 직원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보는 인물에 직원이 살짝 옆으로 물러나려다가 눈이 커다래졌다.
비드가 진의 끄트머리에 손을 짚었다. 진의 한가운데에 있는 마나석에 최대한 적은 마나를 흘려보내자 그 안에 뒤죽박죽 섞인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많았다. 손가락 끝에 집중을 해 약간 마나를 방출하자 그려 놓은 진이 묘하게 진동했다.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느낌의 주문을 내뱉자 곧장 반응이 왔다. 공중에 떠 있던 마나석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진에 같이 손을 대고 분리 마법을 시전하고 있던 두 명의 직원들이 처음 느끼는 공격적인 마나의 사용에 숨을 들이켰다. 비드의 마나가 마나석 안으로 욱여넣어졌다. 분리 마법이 아니었다. 두 명의 직원들이 무슨 마법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마나석이 과부하 상태에 이르기 직전에야 비드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 급히 진에서 손을 떼고 다급하게 방을 나갔다.
직원이 급히 할리만을 찾아 방안으로 돌아왔을 땐 진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나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맬튼은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나 뭔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할리만이 경악을 했다.
“지금 이게……!”
말을 맺을 여유도 없이 할리만이 뛰어가 비드를 뒤로 잡아당겼다. 비드의 손이 진에서 떨어지자마자 마나석이 회전을 멈췄고 빛도 희미해졌다. 방 안의 공기를 진동시킬 만큼 강한 마나가 진정되고 나자 할리만이 비드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읏― 이거 놓고 말해.”
비드가 할리만의 손을 쳐내고 제 몸을 양팔로 감쌌다. 조금만 더 하면 됐을 텐데 방해받은 것이 기분 나빴다. 그러나 비드가 불쾌한 얼굴을 하든 말든 할리만은 방금 전의 위험하고 몰상식한 짓에 대해 추궁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맬튼이 할리만의 험악한 언사에 재빨리 다가왔다.
비드의 얼굴이 창백했다. 버틀러의 저택에서 일어났을 때와 비슷했다. 넘어진 채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기에 무릎을 꿇고 그의 등을 받쳤다. 미세한 떨림을 손끝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일을 망치려는 겁니까?”
“일을 빨리 끝내려는 거지. 지금처럼 일일이 분리마법으로 마나를 추출하는 것보다야 마나석에 과부하 걸어서 억지로 방출시키는 게 훨씬 빨라.”
비드의 대답에 할리만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짚었다.
“알죠. 하지만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회수도 못하게 대량의 마나를 방출시키다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죽으려고 환장한 거냐는 겁니다!”
제정신이 아니라 고개를 저었다. 큰 소리에 다른 직원들이 다들 방안으로 들어와 기웃거렸다. 할리만은 침착하지 못하고 자꾸만 화를 냈다. 비드가 맬튼에게 몸을 기댄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무슨 마법을 써도 회수도 못 하는데.’
일어나려는 듯한 제스처에 맬튼이 비드를 부축했다. 그 김에 목 뒤를 손으로 만져 보니 역시나 차가웠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해.”
맬튼이 큰 소리를 내는 할리만을 손을 들어 제지했다. 할리만이 방 안을 둘러보다가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정리 좀 하고 나가겠다 하고 둘을 먼저 내보냈다.
맬튼은 경호부의 사무실에 딸려 있는 숙직실의 침대에 비드를 눕혔다. 하지만 비드는 눕지 않고 굳이 앉았다. 안색이 좋지 않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맬튼은 비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마주쳤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차분한 목소리였다. 비드가 눈을 피하자 팔뚝을 붙잡았다. 인상을 찌푸렸으나 놓아주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대답하라는 재촉의 대신이었다.
“도와 달라며.”
“나는 마법에 대해서 무지하긴 하지만 지금 당신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는 건 알겠어요. 나한테는 마나도 회수하지 않고 다닌다고 한 소리 하더니 방금은 뭡니까? 죽을 수도 있었어요.”
“그렇게 쉽게 안 죽어.”
“그런 말투 하지 말아요. 무슨 말인지 알잖아요.”
나는 화가 난 건가. 왜 화가 났을까. 은근한 언짢음이 상당히 거슬렸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맬튼은 비드의 팔을 놓아주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대답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비드의 모습에 짜증이 솟았다.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입장이면 적어도 숨기는 건 없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가시가 돋은 말이었다. 비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까 거기서 그 마법사가 말리지만 않았으면 별로 들키지 않고 일을 끝낼 수 있었을 텐데, 하고 할리만 탓을 했다. 왜 자신이 있는 그대로 말해 주지 않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맬튼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야말로 도와줄 마음이 있긴 해? 여태 노아의 편지도 읽지 않고 미뤄 두고만 있잖아.”
“그건…… 그건 이번 일이 정리되면 읽을 생각이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거짓말은 잘하는군.”
“그게 아닌……. 이건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죠. 일단은 할리만이 오면 뭐라고 대답할 겁니까?”
“몰라.”
“비드.”
“……난 마나를 회수 못 해. 인간 같지 않다고. 원래 못 하는 걸 어떡하라는 소리야.”
“그게 무슨…….”
그때 할리만이 화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린 채 앉아 있는 비드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맬튼을 번갈아 보더니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숨을 길게 쉬고 문을 닫았다.
마나석에 워낙 다량의 마나를 불어넣은 탓에 직원들이 조금씩 더 보태 강제로 마나를 방출시켰다 보고했다. 마나석이 망가졌는데,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긴 해도 일단 테일에게 전해 달라 맬튼에게 부탁했다.
그리곤 비드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유를 물었다. 비드는 잠시 망설이다 그저 가장 빠른 해결방법을 찾은 것뿐이라 답했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답이었으나 비드의 안색이 워낙 좋아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하고 차후에 다시 연락을 하겠다 말을 마치고 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드가 숨 가빠하는 탓에 몇 번이나 쉬었다. 박물관에서 보다는 혈색이 미약하게 돌아온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나치게 차가웠다.
겨울에나 덮는 이불을 꺼내 원래 덮는 것 위에 주름 지지 않게 펼쳤다. 비드가 필요 없다 거절했으나 맬튼은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불을 들춰 내려는 비드의 손을 잡아 이불 안으로 집어넣고 어깨까지 이불을 끌어당겼다.
“자요. 자는 동안 버틀러 선생님의 편지 읽어 둘 테니까.”
“정말?”
“그래요. 아침에 일어나면 나도 뭔가를 좀 알게 될 테니 아까 못한 이야기는 내일 하죠.”
비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옆으로 돌려 웅크렸다. 갈증이 났다. 아무래도 오랜만이라 조절이 미숙했던 모양이었다. 손이 떨려와 이불을 움켜쥐었다. 눈을 감고 맬튼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물을 따라 마셨다.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물을 또 따라 침대로 다가와 머리맡에 컵을 놓았다. 뒤통수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옷이 스치는 소리가 나고 서랍을 뒤지는 소리 뒤에 종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멀어져 가기에 비드가 눈을 뜨고 몸을 돌렸다.
“맬튼.”
불편한 티 테이블 의자에 앉으려던 맬튼이 비드의 부름에 희미하게 웃었다.
“어서 자요.”
비드가 몸을 반쯤 일으키는가 싶더니 침대의 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다시 누워 이불을 코까지 뒤집어썼다. 맬튼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해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자 이불을 살짝 들썩였다.
“여기서 읽어.”
굉장한 아량이었다. 왜 자신의 침대를 비드가 써도 된다고 허락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나 엉덩이가 배기는 철제 의자보다야 당연히 침대가 나았다. 맬튼이 침대에 앉자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오랜만에 앉아 보는 침대가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었다. 맬튼이 옆자리에 앉는 것을 본 비드가 다시 몸을 돌려 누웠다.
맬튼이 불을 끄고 유리 상자에 발광 마법을 걸자 푸른색의 은은한 빛이 방 안을 채웠다. 조용한 숨소리와 일정 간격으로 스치는 종이 소리에 비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