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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개 클로이(4화)
일상 part 4. 특경청 기동단 클로이 경사.


루비 배지 하나를 달고 나타나자 5층 전체가 술렁였다.
“단장, 단장이 주워 온 개가 루비를 달았는데?”
조이의 시선이 내 가슴께로 향한다. 나는 가슴에 달린 루비 배지를 만지작거리다가 그 시선에 베실 웃었다. 그리고 배운 대로 경례한다.
“클로이 경사, 오늘로 특경청 기동단 1과 소속으로 발령 받았습니다.”
앞장섰던 커트머리 경관이 어깨를 으쓱인다.
“단번에 경사를 달다니, 이 꼬마— 뭐예요?”
“경찰견이지, 뭐긴 뭐야? 이리 와.”
냉큼 조이의 책상 앞으로 가자 커다란 속으로 쓱쓱 머리를 쓰다듬고는 삐뚤게 단 배지를 바로 달아 주었다.
“이제 내 부하이니 무조건 내 말엔 복종해야 된다.”
“응!”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에, 사람들은 웃어 버렸다.
“단장, 그 꼬마 경관 몇 살이죠?”
“열여섯. 어엿한 성견이지.”
“다른 과에서 근무지까지 애완동물을 데리고 왔다고 놀릴 거라구요.”
그 말에 조이가 쿡, 웃고 만다.
“하긴.”
“단장, 우리 신입한텐 어디 책상을 배정하죠?”
“그렇지. 새 자리가 필요하지.”
펜으로 휙휙 뭔가를 쓰던 조이가 일어나서 사무실 안을 휙 둘러본다. 파티션 몇 개로 분리되어 있을 뿐인 공간에는 수십 개의 책상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 가장 안쪽 정점에 기동단장의 낡은 책상이 있고, 그 앞으로 특별기동단 1과 특별 경호과, 2과 특별 경비과, 3과 대테러 진압과가 서로 영역을 정해 책상 배치되어 있었다.
“헬레나 경정.”
“네, 단장!”
커트머리가 대답했다. 오오— 이름은 처음 듣는 것 같았다.
“자네 소속이니 알아서 하도록 해.”
조이가 내 등을 슬쩍 밀어 그녀 앞으로 보낸다. 내가 움찔 놀라서 고깃집 자제분을 올려다보니 등심, 안심, 양지, 차돌박이 등등이 둥둥 떠다니는 환상이 보였다. 커트머리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씨익 웃는다.
“꼬마.”
나? 멍하게 마주 보자 검지가 퉁 내 이마를 튕겼다.
“다시 소개하지. 헬레나 팬 알렉산더 경정이다. 특별기동단 1과장이고 오늘부터 네 직속 상사지.”
어쨌거나 그녀는 높으신 분이 맞았던 모양이다.

신입답게 볕 안 드는 통로 쪽 자리를 배정 받았지만 어쨌든 나는 게으르고 제멋대로인 개다. 신고식인지 심술인지 무섭게 구는 선배들을 피해 나는 조이의 책상 옆 볕 잘 드는 카펫 위에 자리를 잡았다. 조이의 코트를 담요 삼아 깔고 그 위에 웅크려 누웠다.
그렇게 제멋대로 자체 자리이동을 해도 어딘가 무섭게 집중하고 있는 조이의 옆이라 그런지 여기까지 쫓아와서 괴롭혀 대는 사람은 없었다. 슬쩍 시선을 들어 안달 난 얼굴을 하고 있는 1과 선배들을 쏘아봐 주었다. 그러고는 슬쩍 혀를 내밀어 놀려 주었다.
“클로이, 이쪽으로 와. 네 자리는 거기가 아니라고.”
커트머리 헬레나 과장이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다시피 쪼그리고 앉아서 손짓하며 부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 선배들하고도 친하게 지내야지.”
“변태들이야. 내 엉덩이 만졌어.”
“다신 못 그러게 할게.”
“내 볼도 못 꼬집게 해.”
“응. 그래, 그래.”
“그리고 고기 줘.”
으드득, 뭔가 살벌한 소리가 들린다. 이를 간 거 같은데 아니지? 순진한 척 눈을 깜박이자 커트머리 과장님은 환하게 웃음 지어 보였다.
“그래그래, 최고급 등심으로 주마.”
협상 체결! 냉큼 일어나 다가가는데 중간에 1과 덩치 놈에게 인터셉트당했다.
“으악!”
“으하하하핳핳하! 잡았다!”
버둥버둥 사지를 흔들며 버둥거리는데도 허리를 꽉 잡은 덩치 놈이 놓아주지를 않는다.
“못하게 해!”
우는 소리를 내며 두 손 뻗어 과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느샌가 저 매몰찬 커트머리는 자기 책상에 앉아 못 들은 체하며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못됐어! 못됐어!
“으앙!”
거짓말쟁이 과장이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조용히 해, 꼬마. 전통이라니까.”
“못하게 한다고 하고선!”
“엉덩이 만지는 거랑 볼 꼬집는 것만.”
“너무해!”
현장에 나가 있는 선배들을 제외하고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순혈인간들에게 잡혀 마음껏 희롱당했다. 여기저기 물리고 들쳐 메지고, 던져지고 패스당하고! 개 학대로 당국에 신고할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뒤통수인 것은 퇴근하는 길에 조이가 말해 준 사실이었다.
“기동단에 그런 전통 없어.”
이 거…… 거짓말쟁이들!

일상 part 5. 첫퇴근

포르쉐?! 미묘한데—
조이의 차는 젊은 독신남자가 타기에 아주 근사한 스포츠카지만, 역시 좀 낡았달까? 조수석에 올라타면서, ‘저기— 얼마나 오래된 거야?’ 라고 물었더니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라니, 그게 또 의외라서 놀랐다.
우리가 귀가할 집은 도시 외각 주택지구에 있는 아파트다.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도 그는 드라이빙 모드를 자동운전으로 돌려놓고는 태블릿만 들여다보았다. 아깝잖아, 모처럼 좋은 차인데! 이런 로망을 모르는 남자의 손아귀에서 썩어 가고 있다니. 운전하게 해 주면 좋을 텐데— 나는 반짝반짝한 눈으로 운전대를 바라보았다.
“클로이.”
“응?”
“역시 옷이 필요하겠지?”
입고 있는 제복 역시 보통 인간의 의복과는 다르다. 우선은 팔이나 다리처럼 구조적으로 꼬리를 뺄 수 있어야 하고, 신축성도 훨씬 고강도로 필요하지. 보통 개들은 인간은 움직이지 못하는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으니까, 평범한 순혈 인간의 옷을 입었다가는 조금만 무리해도 옷이 터져 버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제복은 합격점.
조이가 손을 뻗어 내 금빛 꼬리를 만지작거리자 나는 금세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내 반응에 그가 느끼하게 물었다.
“느끼냐?”
“네가 만지는 건 싫지 않아.”
“유혹이 제법 능숙한데?”
조이는 피식 웃으며 드라이빙 모드를 수동으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기어를 변속하여 미끄러지듯 시가지를 움직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건물 숲의 중심. 주위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 으리으리하고 위세 등등한 건물들뿐이었다.
주차 구역에 솜씨 좋게 차를 세운 그가 말했다.
“내려.”
“어딘데?”
“쇼핑하자.”
쇼핑? 옷인가?! 새 옷을 사 주려는 거야? 어머! 멋져!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차에서 내리자, 조이는 기다려 주지도 않고 이미 저만치 앞서 간다. 얼른 달려가 그의 옆구리에 매달렸다.
“내 옷 사는 거야?”
“내 옷을 망가트리면 안 되니까.”
“네가 사는 거지? 나 돈 없어.”
“그래, 월급 탈 때까지만.”
냉정한 척 해도 소용없어. 상냥하잖아! 오른팔에 매달려 신나서 통통거리며 걸었다. 새카맣게 전면 유리로 뒤덮인 건물 1층에 고급스러운 필기체로 새겨진 문패 하나. 그 앞에 서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들어가지.”
그렇게 들어선 곳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브랜드의 의상숍이다. 그야, 매일 TV에서 선전하는 걸 봤는걸?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들이 한껏 멋 부리며 저택을 거닐거나, 사냥을 하거나, 오피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선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입고 있던 조이의 평상복도 이 브랜드의 옷이었지. 좋아하는 걸까?
“어머, 경무관님. 오랜만이에요. 옆은— 일행이신가요?”
댄디, 또 댄디한 매장을 지키고 있는 점원들 중 한 명이 능숙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그 매장의 유일한 여직원이었다.
“멜리사. 오늘은 이 아이의 옷이 필요해서.”
“처음 뵙는 분이시로군요.”
“보다시피 우리 쪽 신입이야.”
“아아, 역시 특경청 채용 기준은 얼굴인 건가요?”
혼잣말을 가장한 입바른 소리에 조이는 그저 웃고 말았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왜냐하면 오늘 실컷 이 몸을 괴롭혀 댄 녀석들 중 반반하게 생긴 놈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거든. 사람이라기보다는 곰 같은 녀석들이었다. 그리즐리 베어!
어쨌거나 멜리사라는 여직원은 내 앞에 서서는 한껏 영업용 미소를 짓는다.
“반가와요, 멜리사입니다.”
“클로이야.”
그녀의 시선이 내 가슴의 루비 배지를 슬쩍 스치고 지나간다.
“네, 클로이 님. 찾으시는 스타일이 있나요?”
그 말을 기다렸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응. 이번 파리 컬렉션에서 에디 루스테잉이 스텔라 쇼에서 입은 가죽팬츠에 올리비아 발망이 입은 흰색 드레스 블라우스, 조나단 킨버스가 피날레로 입은 깅엄체크 스웨터. 그리고 지난 시즌 거긴 한데, 장 아세가 청록색 면바지와 함께 입었던 검정색 라이더 재킷 아직 남아 있어? 디테일이 시크해서 좋아. 꼭 가지고 싶어.”
순간 조이의 시선에 초점이 흐려지는 걸 알아채 버렸다. 약간의 공백을 둔 후, 슥 돌아보며 ‘너는 대체 뭐하는 개냐?’ 하고 묻는 듯한 그를 보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요 1년 동안은 맨날 TV 보는 게 일과였거든.”
불과 며칠 전, 아직 백수였던 나는— 정확히 말하자면 텔레비전 채널을 하루 종일 패션 채널에 고정, 4대 패션쇼, 유명 컬렉션이란 컬렉션은 모조리 섭렵한! 머릿속만은 완벽하게 트랜디한 잉여였달까.
얌전히 굴면 악취놈도 가지고 싶어 하는 옷 정도는 사 주고 말이지. 먹는 것과 입는 것은 순혈인간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짜게 식은 얼굴로 작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너, 이번이 마지막일 줄 알아.”
“신난다!”
허락이나 다름없는 그 말에 두 팔 벌려 조이를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비벼 댔다.
“이건 부하가 아니라 꽃뱀이지.”
“아니야, 말 잘 듣는 부하가 될게. 진짜야!”
“그래, 그래.”
어쩐지 체념하는 것 같은 목소리다. 그래, 잘 생각했어, 조이. 적당한 체념은 몸과 정신 모두에게 좋다고. 조이를 소파에 앉혀 놓고 나는 실컷 이것저것 입어 보았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직원들을 이리저리 지휘하며 나를 가장 우아하고 날렵하며 아름답게 보여 줄 수 있는 의상을 고르고 또 골랐다.
결국 마지막에 고른 것은 탄성이 충분한 질기디 질긴 가죽팬츠와 품이 넉넉한 베이비 핑크색의 스웨터다. 이 정도로 고급 의상 숍이 아니면 개를 위한 옷은 없으니까 이참에 이것저것 다 사 버리고 싶었지만, 어쨌거나 현재의 나는 가난한 신입사원이다.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안녕, 핏이 멋진 블루진. 다음에 왔을 때도 남아 있다면 꼭 데려가 줄게.
어쨌거나 딱 달라붙는 가죽팬츠와 베이비 핑크 스웨터의 조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예 입은 채 계산해 달라 졸랐다. 멜리사가 입고 들어온 제복을 종이가방에 넣어서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받아 들고 전신 거울 앞에서 핑그르르 돌아 보았다.
찌르르, 가슴 깊이 황홀감이 차오른다.
역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벌꿀 금발을 손으로 척 쓸어 올리며 후후, 웃어 보였다. 좋아! 경찰일이 잘 안 되면 모델로 노선 변경해 보자! 톱 모델 소개 프로그램에서 봤던 골든 쥬빌리 세르비앙을 떠올리며 나는 음침하게 웃었다. 잘만하면 이 몸도 세르비앙을 제치고 거대 패션왕국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계산 끝났어. 멍하니 있으면 두고 간다.”
“앗! 같이 가!”
얼른 조이의 오른팔에 매달렸다.
“잘 어울리지?”
대답은 없었지만 조이의 입술이 조금 말려 올라가는 것을 보아 버렸네! 흐뭇한 거지? 이 몸의 사랑스러움에 넋이 나간 거지? 그럼, 아무렴, 그렇고말고.
그러나 그 자아도취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가게를 나와서 걷던 도중, 불현듯 번개에 맞은 듯 놀라 흠칫 멈춰 서야 했다. 그런 이상행동에 조이 역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큰일 날 뻔했네!”
“무슨 일인데?”
“중요한 걸 잊을 뻔했어!”
“그게 뭐길래?”
“잠깐만! 먼저 차로 가 있어!”
그리고 나는 빙글 돌아 나왔던 가게로 헐레벌떡 달려 들어갔다. 방금 전 마중하며 인사했던 멜리사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다시 맞이했다.
“놓고 간 게 있어!”
그리고 나는 탈의실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다행이다—!”
다행히 벌써 치워 버리진 않았네. 나는 조금 전 옷을 갈아입다가 호주머니에서 꺼내둔 종이쪽지를 발견하고는 얼른 소중히 주워 들었다.
“아, 클로이 님 것인가요?”
“응. 놓고 갈 뻔했어.”
“뭔가요? 소중한 것인가 보죠?”
“응, 비밀이야. 그럼 가 볼게!”
“또 오세요.”
화사하게 웃는 멜리사를 보며 나도 활짝 웃었다. 이런 거, 누가 봐도 낙서처럼 보여서 버릴 테니까— 늦었으면 위험했다고. 가게에서 나와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종이쪽지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헬레나 과장이 준 것이다. 본인이 기분 좋거나 내가 말 잘 들을 때마다 도장을 찍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도장 하나 받았고 말이지. 손바닥만 한 종이 제일 위에는 ‘특등급 등심 500g 이용권’이라고 손 글씨로 적혀 있었다. 도장 열 개를 모으면 등심 500g이 공짜라고! 알겠냐? 이건 그야말로 공짜 고기 쿠폰! 이런 걸 잃어버릴 수는 없다.
만약 잃어버린다면 울었겠지. 두려운 가정이다. 헬레나 과장에게 ‘잃어버렸으니까 다시 만들어 줘’라고 입이 찢어져도 말 못한다고. 으으으……. 아니, 결국은 말하겠지. 온갖 치욕을 참으며. 그런 미래를 막을 수 있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 느꼈다.
“좋아.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서 보관하자!”
첫 월급을 받으면 지갑을 사는 걸로!
신이 나서 주차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이에게 버림받기 전에 얼른 가야 했다. 그 녀석, 차에 올라탄 시점에 나라는 동행이 있었단 것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혼자 귀가해 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카드 명세서가 나오고 나서야 ‘아!’ 하고 불현듯 깨달을지도 몰랐다. 그야, 우리는 겨우 어제부터 동거하게 되었으니까 아직까지는 없는 편이 더 익숙할 것이다. 얼른 나에게 익숙해지도록 길들여야지. 지금까지의 느낌으로는 그 남자, 제법 괜찮은 동거인이 될 것 같았다. 후후—
그렇게 슬금슬금 달려 주차장에 들어서려는 순간…….
콰앙!!!!!
몸을 때리는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멀리서도 한눈에 띌 정도로 굉장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어어?”
장대하게 폭발한 것은 조이의 포르쉐였다. 시커먼 연기가 자욱하다. 폭발로 인한 파편이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어어어어어?”
뭐야, 벌써 끝난 거야?! 조이, 내 새 동거인은 오늘 자로 인생 끝? 뭐야, 니콜라이가 죽은 게 겨우 어제의 일이라고. 이놈의 망할 징크스!
이 소란스런 폭발에 주위 빌딩에 있던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쏟아져 나온다.
아아. 이거 거짓말 같네. 그렇게 생각하며 타닥타닥 타오르는 포르쉐를 향해 주춤주춤 다가갔다.
“죽은 걸까?”
“누가?”
“으악!!! 깜짝이야!!!”
그리고 정말로 심장이 멎을 듯이 놀라 버렸다. 바로 옆에서 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감전된 듯 펄쩍 뛰어올라 돌아보니 피곤해하는 얼굴로 폰을 들여다보는 조이가 있었다.
“살아 있잖아?”
“아아—”
“아아—가 아니라고!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네 차가 불타는데!”
“그래서 보험 부르는 중.”
“그런 문제냐?!”
“슬슬 바꿀까 싶던 참이었어.”
“설마 해서 묻는데— 너 말이야.”
조이가 성가시단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말해.”
“네가 폭파시킨 건 아니겠지?!”
콩! 그대로 휴대전화로 이마를 맞았다. 우씨! 그리고 불만스레 올려다보자 콤보로 볼까지 꼬집혔다.
“하는 수 없지. 일단은 택시를 타자.”
어쨌든 간에 그날 쇼핑의 끝은 포르쉐 2020년식 카레라 S7의 폭파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엄청난 하루였다…….

가 아니라! 조이는 도착한 보험회사 조사원에게— ‘시동을 켜니 폭발했다.’라고 말하던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 녀석? 폭발 당시 차 안에 있었단 거잖아? 왜 멀쩡해? 털끝 한 올까지 멀쩡해 보이는데 뭐야, 뭐야?

새 동거인에 대해선 좀 두고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3. 신참 개는 파란 속을 헤맨다.

복수 part 1. 테러

“기동단 1과 전원 집합!”
커트머리가 크게 외쳤다. 더불어 나는 그녀에게 뒷덜미가 잡힌 채 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다.
와! 많잖아?! 헬레나 과장의 호출에 모여든 이들은 그 수가 거의 백여 명에 가까울 것 같았다. 대회의실 불이 켜졌다. 나는 그녀가 지정해 준 자리에 앉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과에 부상당한 덜떨어진 놈은 없겠지?”
“전원 이상 없습니다.”
“그래, 드디어 빨간불이 들어왔다. 3년간 준비한 프로젝트이니 만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어제의 산발적인 테러는 부두 마피아 미하일의 소행일 것이다. 니콜라이라는 구심점이 없어진 만큼 지금의 그들 패밀리 간에도 뭔가 보여 줄 거리가 필요하겠지. 앞으로 미하일 이하 부두 마피아가 완전 체포될 때까지 전쟁이다. 해럴드 경관, 상황 보고.”
내 옆에 앉아 있던 제복 사나이가 일어나자 전면 유리에 갖가지 영상과 글씨가 빼곡하게 떠올랐다.
“어제 오후 5시부터 오늘 오전 8시까지 단장을 비롯하여 특경청 소속 경찰 240명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테러가 국지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해당 특경들의 차량에 부착된 원격폭탄으로 인한 폭발 사고가 총 120건, 자택 폭발 14건, 주차장 전소규모의 대단위 테러 4건, 스나이퍼에 의한 저격 20건입니다. 서기관 포함 사무직 특경의 중상 피해 32명, 간부급 중상자 1명, 사망자는 전무하며 이외 부상자도 없습니다. 기동단 소속의 피해는 전무합니다.”
커트머리가 혀를 찬다.
“이번 전쟁 종료 시까지 본인 부주의로 인한 부상자가 우리 과에 한 놈이라도 나오지 않도록 한다. 어설프게 어디서 한 놈 맞고 들어오기라도 하면 전원 뺑뺑이 칠 줄 알아, 알겠나?”
“네, 과장님! 근데 또 다른 과 대장님들하고 내기라도 하신 건?”
“큼, 뭐, 너희들도 덜떨어진 취급당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
“물론 아닙니다!”
“좋다. 긴장 풀지 말고 각자 맡은 위치에서 대상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도록 한다. 이상!”
“과장님.”
“뭔가, 해럴드 경관?”
“우리 신입은 어디로 배치됩니까?”
그 물음에 커트머리가 나를 본다.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와 맹렬한 시선까지. 뜨거운 여자다. 덕분에 나도 덩달아 긴장했다.
“네가 데리고 있어.”
“네?! 신입인데요?”
“뭐, 어때. 이참에 잘 가르치라고.”
“제가 신입연수까지 맡게 되는 겁니까?!”
“일단— 가장 인력이 밀집되는 만큼 안전하기도 할 테고.”
“반대로 대상자가 총감이니 만큼 제일 위험하기도 하다고요.”
내 이야기임은 분명한데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헬레나 과장이 한쪽 입꼬리만 씨익 말아 올리며 웃는다.
“좋잖아? 어이, 클로이. 아주 믿음직한 녀석은 아니지만 옆에 선배 따라다니면서 잘 배우도록 해. 이번 일 잘 끝내면 하루에 도장 다섯 개씩 팍팍 찍어 줄 테니까.”
오! 나는 척 경례해 보였다.
“맡겨 줘!”


회의가 끝나고 기동단 대회의실에서 1과 녀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조이가 헬레나 과장을 손짓해 불렀다.
“1과는 전원 무사한가?”
“물론이죠! 우리 과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치는 그런 덜떨어진 단원이 존재할 것 같습니까?”
그러자 2과, 3과의 대장으로 소개받은 특경 두 명이 빙글거리며 끼어든다.
“특경 기동단장의 차량이 전파되다니— 단장님이야말로 기동단의 수치라 할 수 있죠.”
“자신감 과잉이라고 해야 할지, 주의력 부족이라고 해야 할지. 여튼 남 보기 부끄러우니까 좀 더 조심해 주세요, 단장.”
헬레나 과장 역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제일 긴장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과장들의 성화에 조이는 완전히 질린 기색이 되어 헛기침을 한다.
“그렇게 건수 잡았다는 듯이 좋아하는 건 미하일이 죽은 이후로 미루도록 하지.”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동단원 전원을 향해 말했다.
“부두 마피아가 냄새를 맡았다. 멍청한 두뇌로 잘도 여기 장단에 쫓아온 건 대견한 노릇이지만.”
그의 농담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목표는 모두들 잘 알고 있지? 1과 특별경호대. 헬레나 과장 지시에 따라 오늘부터 다이아몬드 단계 특경 간부 경호에 배치, 상황 종료는 부두 마피아 전멸까지다. 2과 특별경비대. 손호 과장 지시에 따라 이스턴시티 전방위 도심 방어를 맡는다. 코드 종료 시까지 도시에서 소매치기 하나라도 숨도 못 쉬게 압박하도록. 3과 대테러전략 기동대. 이번 축제는 너희들의 시간이다. 내 지시에 따라 쓰레기들을 완전히 박멸할 때까지 퇴근은 꿈도 꾸지 말도록. 제이슨 경정?”
“네, 단장.”
“3년 절치부심의 결과, 반드시 내놓아야 해.”
“이를 말씀이십니까?”
조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된 사내지만, 그는 정말로 자기 일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저토록 행복해 보이는 웃음이라니? 흡사 선물 뜯기 전의 어린아이 표정 같지 않은가?
그가 말을 이었다.
“자, 이 도시에서 냄새 풍기는 쓰레기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