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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 동병상련(2)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웨이터가 들어왔다. 저 의기양양한 표정. 뭔가 한 건 한 표정이었다.
“자. 기대하시고.”
웨이터의 말에 그녀들은 문 쪽을 향해서 시선을 고정했다. 열린 문 사이에서 눈에 보기에도 모델같이 긴 기럭지에 패션 센스 또한 남다른 남자 두 명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선경은 남자들이 들어오자 시선을 술잔으로 향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술병을 집으려고 할 찰나 큼지막한 손이 술병을 가로채 선경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선경은 그 손을 따라 팔에서 어깨, 얼굴로 시선이 옮겨 갔다.
어느 순간 자신의 옆, 살짝 떨어진 곳에 앉은 남자는 약간 무표정한 얼굴로 술을 따르다 선경과 눈이 마주치자 진한 눈썹이 꿈틀거리며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의 술잔을 들어 자신의 두툼한 입술에 갖다 대며 천천히 한 번에 술을 들이켰다.
선경은 그 술이 그의 입안을 따라 타고 들어갈 때마다 일렁이는 목울대를 보고 있자니 남자가 이렇게 섹시해 보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요염해 보였다. 선경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세상엔 이렇게 잘생기고 섹시한 남자가 많았는데 그동안 모르고 산 내가 미친년.
그녀는 떼기 힘든 시선을 억지로 떼서 마른안주 중 육포를 집어 자신의 입속으로 쏙하고 집어넣었다.
“나 안 줘요?”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가 선경의 시선을 다시 한 번 빼앗았다. 그러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그쪽도 나 안 줬잖아요.”
선경은 술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몸 방향은 테이블을 향해 있었지만 얼굴은 살짝 선경을 볼 수 있을 만큼 틀었다. 그의 입술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에 선경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은 긴장된 듯 떨려 왔고 속은 멀미가 나는 듯 일렁거렸다. 순간 넋이 빠진 얼굴을 할 뻔한 선경은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그의 미소에 미소로 답했다. 선경의 미소를 보자 강한 그의 눈이 길게 늘어지며 그 눈빛이 다시 한 번 살짝 흔들렸다.
“아잉- 몰라-”
어디선가 비음 섞인 교태 부리는 목소리가 룸 안에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선경이 지은 쪽을 쳐다보니 눈이 튀어나올 만큼 모습이 가관이 아니었다.
워메, 미친년. 아예 방을 잡아라. 방을!
지은은 거의 남자와 한 몸이 된 것처럼 기대어 교태 아닌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선경은 못 볼 것을 본 사람마냥 고개를 자신의 옆에 앉은 남자 쪽으로 휙 돌려 버렸다.
“이런 곳 처음 와 봤어요?”
남자의 말에 선경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 앞에 있는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막상 남자가 옆에 있고 보니 뭔가 죄지은 것 같기도 하고 불편했다. 지은과 단합하여 바람난 놈들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즐기러 온 것이 이상하게 안 입어 본 옷을 입은 것마냥 자연스럽지가 못했다. 반면 엄 작가 지은은 이런 곳에 얼마나 다녀 보았는지 자연스러움이 철철 묻어나다 못해 넘쳐흘렀다.
“술 한잔 받을래요?”
선경은 남자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남자는 말없이 술잔을 내밀었다. 선경은 술을 따르다 남자의 팔뚝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몸이 드러나지 않은 옷을 입었는데도 섹시할 수 있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너무 마른 남자보단 운동을 어느 정도 한 근육 있는 스타일을 좋아했던 그녀였다.
헤어진 영수는 마른 체형이었다. 운동 좀 하라고 구박하면 종합병원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데 운동까지 하냐며 나중에 전문의 따면 하겠다고 변명했던 놈이었다. 그런 고되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바람은 피워지는가 보다. 선경은 자기도 모르게 아직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 옛 애인을 비교하고 있는 자신이 놀라웠다.
“난 임선경이라고 해요.”
그저 하루 만나 노는 사이라도 이름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남자에게 이름을 말해 주었다. 남자는 선경의 이름을 듣자 살며시 미소를 품었다.
아가야. 너 왜 자꾸 가슴 떨리게 웃니?
헤어진 지 고작 12시간도 안 지났는데 잘생긴 남자가 자신의 옆에서 웃어 주는 모습에 설레는 자신이 참 속물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이런 남자를 만나 보겠냐며 지은처럼 대담하게 즐기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윤우빈”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그의 눈빛이 날 기억해 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경은 마음속으로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새겼다. 순간 시선이 느껴져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따라가니 우빈의 뜨거운 눈빛에 선경은 아찔해졌다.
왜 그렇게 날 쳐다보는 거야.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강렬해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심장이 뛰고 온몸이 뜨거워졌다. 우빈의 눈빛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듯한 느낌에 야릇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남자라면……. 괜찮지 않을까?
순간 우빈을 자신의 첫 경험 상대자로 생각하는 모습에 선경 자신은 깜짝 놀랐다. 술기운이 슬슬 오르는지 심장이 뛰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아앙.”
위태로운 신음 소리가 룸 안으로 퍼졌다. 선경은 순간적으로 지은에게 시선을 향했다. 지은은 거의 드러눕는 자세였다. 주변 사람이 보기 민망할 정도의 농밀한 키스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선경과 우빈의 시각을 자극했다.
“엄지!”
선경은 지은의 이름을 불렀지만 지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키스를 나누었다. 저러다 옷 벗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선경은 민망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선경을 우빈이 살짝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우빈이 이상하게 의식이 된 선경은 머뭇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저…… 화장실 좀…….”



3. 자극(1)


선경은 앉아 있는 우빈의 앞을 지나 룸 밖으로 향했다. 선경이 자신 앞으로 지나가자 잔잔히 뿌려진 향수 냄새가 우빈의 후각을 자극했다. 강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꽃향이 바람에 실려 그녀가 지나간 곳을 따라 그에게 전해져 왔다. 여자의 향수 냄새만으로도 몸이 짜릿해질 수 있다는 것이 안 믿기는 듯 우빈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빈도 룸 밖으로 향했다. 가만히 서 있자 그녀의 향기가 마치 길 안내를 하듯 향기가 곳곳마다 조금씩 남아 있었다. 화장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 복도에 우빈은 등을 기대어 삐딱하게 서 있었다. 임선경.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자신과 비슷한 나이 때로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성숙해 보였으며,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유니크한 면이 느껴졌었다.
세상에는 선경처럼 예쁘고 몸매까지 좋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과 시선을 끄는 여자는 여태껏 선경 하나뿐이었다.
왜 안 나오는 거야?
우빈은 화장실 입구 쪽을 안 보는 척하면서 선경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당최 여자들은 화장실 한번 가면 나오지 않으니 정말 신기한 동물이라 생각했다. 남자는 소변 아니면 대변, 둘 중의 하나이므로 오래 걸리면 큰일을 보는 걸로 생각할 테지만 여자는 무언가 복잡한 과정이 많을 테니 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급한 성질을 죽이긴 힘들었다.
그때 갑자기 과할 정도로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옷도 끈이 딱 끊기면 한 번에 다 벗겨질 것같이 위태로운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우빈에게 안기듯 몸을 기대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기, 혼자야? 나랑 나갈래?”
우빈의 인상이 단번에 찌그러졌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힘 있고 가늘게 뜨며 여자를 쳐다보았다.
“꺼져.”
여자는 우빈의 말에 얼굴이 확 빨개지며 재수 없다고 욕을 해 대며, 창피한지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빈은 지금 다른 여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선경의 모습만 그의 시선으로 좇을 뿐이었다.
선경은 화장실에 오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술기운이 올라오려는 것 같아 화장실 안에 있는 의자에 잠시 앉아 있었다. 머리가 띵했지만 이상하게 우빈의 그 뜨거운 눈빛이 생각났다.
아…… 잘생긴 애가 그렇게 쳐다보니까 내가 맘에 들어서 쳐다보는 거라고 착각하고 싶다.
선경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조금 웃겼다.
나 그동안 사랑받는 게 아니었나. 그래도 영수 그 인간이 처음엔 나 많이 아껴 주고 사랑해 줬는데…… 진짜 내가 혼전순결이라고 해서 바람난 거지. 암만!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처음부터 못 지키겠다고 하든가. 어딜 사랑해서 지켜 준 거라고 포장을 그럴 듯하게 해. 남자도 아닌 새끼. 더러운 놈.
역시나 좋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끝은 쌍욕뿐인 헤어진 지 12시간도 안 지난 옛 애인 생각.
쓸데없다. 쓸데없어. 이제 그만 생각해야지. 감정 소모야. 의미가 없어. 이제는. 아…… 근데 엄지 이년. 완전 물 만났네. 허! 들어가기가 무섭다.
선경은 의자에 더 앉아 있고 싶었으나 우빈이 살짝 걱정되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 갑자기 일어서서 그런지 선경은 순간 토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재빨리 변기통 하나를 부여잡았다.
대단하게 쏟아 내고 나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화장을 고칠 수도 없었고 그저 가글을 열심히 한 후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화장실 밖으로 향했다.
“야! 어디서 꺼지래? 재수 없어!”
향수를 몸에 쏟아부은 것처럼 독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한 여자가 욕 지랄을 해 대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선경은 도대체 왜 그런가 싶었지만 기다리는 우빈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왜 이제 나와요?”
낮은 음성이 고개를 숙인 선경의 귀를 자극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남자의 넓은 가슴이 보였다. 선경의 심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선경은 시선을 조금 더 위쪽으로 향했다.
“아…….”
살짝 고개를 숙여 자신을 보는 우빈의 모습이 만지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선경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빨개졌다.
왜 이렇게 심장이 뛰고 지랄이야. 그리고 만지고 싶다는 생각은 도대체 왜 드는 거니. 나 정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선경은 우빈의 얼굴이 다가오자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한 걸음 뒤로 가자,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또 한 걸음 뒤로 가자, 또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더 이상은 뒤로 갈 곳이 없었다.
우빈은 벽과 자신의 몸 사이에 갇힌 선경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보자 순간 그녀를 안고 싶어졌다. 하지만 안는 것보다 그녀에게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긴 우빈은 한 손을 벽에 짚고 한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그의 팔이 자신의 허리를 감자 선경의 눈은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할 수 없이 고정되어 졌다. 조금만 더 밀착이 된다면 자신의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기절이라도 시켜야 할 판이었다.
우빈의 뜨거운 눈빛은 순간 너무나도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선경은 그의 눈빛에 현기증이 날 뻔했다. 남자가 자신을 이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염병할 영수 그 자식도 자신을 이렇게 쳐다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이 눈빛 뭐야.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선경은 좋으면서도 우빈의 마음의 진심을 알고 싶어졌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만남이 진지해질 수 있을까도 싶었다. 지은도 룸 안에서 본 지 얼마 안 되는 남자랑 키스하고 난리가 났지 않았나. 금방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 아니라면 하루 즐기는데 이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 속에서 선경의 눈빛은 점점 흔들렸다.
우빈의 심장도 세차게 뛰었다. 나이에 비해 여자 경험이 많은 그였지만 이렇게 여자를 앞에 두고 심장 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녀도 자신처럼 심장이 뛰는지 느끼고 싶었다. 우빈은 점점 자신의 입술을 선경의 입술을 향하여 다가갔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됐는지 목울대가 일렁이며 마른침을 삼키었다.
선경도 다가오는 우빈의 입술에 몸이 가느다랗게 떨려 왔다. 호흡도 빨라지고 심장은 고장 날 것 같았다. 거의 닿을락 말락 할 거리에서 선경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술을 가리었렸다. 우빈은 따뜻한 입술의 느낌이 아닌 차가운 느낌에 천천히 선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아래를 향하며 조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리고 있는 선경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울렁거렸다.
“미…… 미안해요.”
선경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 룸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서 있던 곳을 쳐다보며 울렁거리던 마음이 조금은 화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날 거부했다?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소유욕이 꿈틀거리며 그를 한순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쉽게 입술을 내주면 재미없지. 좀 더 이렇게 심장이 뛰고 설레야 더 좋은 걸 거야. 내가 그동안 너무 여자를 쉽게 가졌어.
우빈은 애써 자신을 위로했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부라는 것이 이렇게 자신의 소유욕을 자극할 줄은 몰랐다.
선경이라는 여자, 꼭 가져야겠다.
우빈은 머리를 양손으로 다듬으며 선경이 룸에서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빠른 걸음을 걸었다.
“좋은 만남을 위하여!”
방에 들어온 우빈은 걱정과는 다르게 술을 마시고 있는 선경의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망가지 않은 걸 보니 그녀도 틀림없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곳에서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장난 아닌데.”
우빈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선경은 술을 마시다 우빈의 말에 멈칫했다. 그의 말이 메아리처럼 선경의 귓가에 맴돌았다.
“선경 씨가 맘에 들어요. 난.”
그의 계속되는 고백에 선경은 또다시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선경은 자신의 옆에 앉은 남자가 자신을 보고 맘에 든다고 장난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확 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 안 한다고 해도 영수라는 남자 때문에 남자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 상태가 아니던가.
“야! 우빈아. 이 누나들 오늘 다 애인하고 헤어졌대. 그것도 애인이 둘 다 바람났대. 미친놈들. 이렇게 예쁜 누나들을 두고 왜 바람이 나?”
우빈의 친구가 우빈을 향해 소리쳤다. 우빈은 친구의 말을 듣고 한쪽 눈썹이 위로 향하며 미간이 좁아졌다.
아, 이 미친년이 술 처먹더니 이제 별걸 다 말했구나. 이 엄지 망할 년아.
선경은 지은을 쏘아보았지만 지은은 태연한 얼굴로 괜찮다고 입을 벙긋거렸다.
그래서 나 처녀라는 것도 떠벌리지 그러냐! 이 썩을 년아!
선경은 성격대로 입에 욕 모터를 달고 한바탕 시원하게 퍼붓고 싶었지만 우빈이라는 남자 때문에 입이 다물어졌다. 선경은 표정이 굳어져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려고 하자 우빈은 선경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으며 그녀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다행이네요.”
우빈의 말에 선경은 ‘뭐가요’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애인 있었으면 내가 뺏으려고 했거든요. 그 애인한테서 선경 씨를.”
우빈은 치아가 보일 정도로 시원한 미소를 보였다. 선경은 자신의 심장을 괴롭히는 우빈과 계속 있으면 이러다 심장마비 걸려서 죽지 싶었다. 그만큼 그의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그녀의 심장은 반응했다.
몸도 좋고 잘생긴 애가 말도 잘하네. 딱 바람둥이 같다. 악! 뭘 어떻게 생각해도 바람이랑 연결이 되냐!
선경은 자신의 생각을 쥐어뜯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만남도 이별도 마음도 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진리인데. 자신의 생각이 우빈을 방어하고 있다 한들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을 사람의 마음대로 막을 수 없는 것, 그것을 선경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쳐다보는 것도 예쁘다.”
우빈은 아예 작정을 한 듯 선경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선경은 그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애꿎은 술만 계속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