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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25화)
4. 게임 생(Game 生)(4)
단숨에 반갑자의 내공을 쓸 수 있게는 됐으나, 딱 보기에도 태양혈이 불쑥 올라와 있는 영돈보다는 내공 수위가 낮을 것이 뻔했다.
“안 받으십니까?”
제갈현이 머뭇거리는 사이, 영돈은 얄밉게도 잔을 더욱더 내밀며 말했다.
이제는 하는 수 없이 그 잔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는 수 없지.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하거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남포도 느낀 것인지, 그의 전음이 제갈현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고, 제갈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모든 흐름의 법칙은 원이다. 부드러움은 원에서 기인하며, 원 안에 모든 묘리가 담겨 있다! 원을 네 녀석의 몸 안에 그리고, 몸으로도 원을 받아들이며, 몸으로 원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잔을 잡아라!”
턱!
콰드드득!
‘크억!’
남포의 가르침대로 원을 그리고 원을 받아들이려 애쓰며 잔에 손을 가져다 댄 제갈현이었으나 잔에서 발생해 온몸으로 침투하는 경력에 속으로 비명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원을 그린다…… 원을…… 회전을 받아들인다……. 내공이 내 몸을 타고 도는 것처럼!’
울컥.
속에서 비릿한 느낌과 함께 몸 안으로 들어온 경력 때문에 혈향을 맡았다. 간신히 핏덩이를 억누르며 몸의 흐름으로 침투하는 경력에 맞춰 원을 그리며 흘러간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자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던 경력이, 통증이 서서히 줄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그것이 바로 이화접목(移花接木)이다!”
띠링!
[기술 ‘이화접목(移花接木)’을 습득하셨습니다. 지능이 20 상승합니다.]
“그리고 네 몸을 타고 흐르는 경력, 영돈이라는 녀석의 내공을 다시 원을 돌려보내라! 엄청난 반탄지기로 되돌려질 것이다! 너만 당할 수는 없지 않느냐?”
제갈현은 경력을 완전히 흘려보내지 못하고 계속해 돌리고만 있었다.
하지만 남포의 전음에 재빨리 경력의 길을 뒤바꾸며 이번엔 자신의 내공까지 실어 영돈에게 되돌려 보냈다.
“그것이 바로, 네닷 푼의 힘으로 천 근을 능히 당한다는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이다!”
[기술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을 습득하셨습니다. 지능이 20 상승합니다.]
쾅!
“크음…….”
영돈은 설마 제갈현이 자신의 경력을 돌려 맞받아칠 줄은 몰랐던 듯 방심하다가 뒤늦게 진기를 끌어올렸지만 약간의 손해를 본 듯 진각을 밟으며 답답한 신음 소리를 내뱉았다.
‘이…… 이런…… 무슨 말도 안 되는!’
‘처…… 천재인가, 저 녀석은.’
영돈이나 남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제갈현은 자신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고급의 무리를 단 한 번 듣는 것만으로 풀어냈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다.
그저 폭발적으로 상승한 지능과 늘어난 기술에 기뻐하고 있었다.
‘사량발천근…… 이화접목이라! 뭔가 대단한 걸 배운 것 같은데?’
자신보다 족히 두세 배는 강한 영돈을 상대로, 그가 방심했다고는 하나 단 두 가지 기술만으로 대등하게 맞섰다는 사실에 제갈현은 얼굴 가득 화색을 띨 수밖에 없었다.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을 저리도 쉽게 배우다니! 시범도 없이 그저 구결만을 전해 줬을 뿐인데!’
남포는 남포대로 경악에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를 느끼는 법을 알려 준 지 고작 며칠 만에 반갑자의 내공을 쌓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한 남포였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목도한 그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무학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공부가 있어야 비로소 몸으로 펼칠 수 있는 고급 무리가 바로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의 묘리이거늘, 이제 옥동쌍취에 반갑자의 내공을 지닌 제갈현이 그토록 섬세하고 유려한 진기의 흐름을 유도해 낼 수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이다! 신동…… 천재……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골격도 좋고, 도를 다루는 법도 정통해서 발탁한 전인이지만, 지금 보니 그 재능이 가히 천부적이었다.
‘녀석을 잡아야 해! 완전히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릇을 지닌 제갈현의 재능에 남포의 눈이 희열로 물들었다.
그 누구보다도 무림의 생리와 이득권 분쟁,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권모술수에 대해서 잘 아는, 몸소 체험한 적이 많은 남포였다. 그런만큼 자신의 세력과 기반을 단단한 초석 위에 세우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경화와 현이를…… 그러면 되겠군!’
고심하던 남포의 시선이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눈과 입이 동그래진 자신의 여동생의 얼굴에 닿았다. 그 순간, 집무실 문을 열고 다정(?)하게 들어서던 제갈현과 남경화의 모습이 그 위로 겹쳐 보였다.
‘허허. 경화도 그리 싫은 기색은 아니고, 저 정도 미색이면 넘어오지 않을 남자는 없을 터이니……. 이제 경화도 시집을 갈 나이가 됐고 말이야. 빨리 짝을 찾아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어느 한 세력의 크기를 측정할 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바로 그 세력이 가진 바 무력이었다.
그런 점에서, 하남표국은 이류와 삼류 무사들은 많을지 몰라도 표두급의, 그러니깐 일류급 이상의 무사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절정은 없고, 초절정은 국주인 남포 자신밖에 없었다. 그러니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제갈현을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녀석이라면…… 수년 내에 초절정의 벽을 깨고 화경에 다다를 수 있을지도…….’
남포가 제갈현을 보며 눈을 빛내는 동안, 영돈은 영돈 나름대로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있는 영돈도 앞의 제갈현이 보여 준 사량발천근이나 이화접목의 묘리는 제대로 펼쳐 낼 수 없는 심득이요, 절기였다.
게다가 맨처음에는 힘들어하다가 펼쳐 내는 것을 보니 방금 터득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더욱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자신도 묘리를 깨닫지 못한 그런 절기를 애송이가 펼쳐 내다니!
그리고 되레 자신의 진기가 되돌아와 더욱더 큰 힘으로 피해를 주었고, 무려 진각을 밟아서야 되돌아온 경력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절정 고수는 돼야 할 수 있는 일이거늘! 내공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애송이가 나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고수였단 말인가!’
영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서는, 불신이 가득 찬 눈동자로 빙긋이 웃고 있는 제갈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사술이다! 사술이야! 절대 그럴 수가 없어!’
자신의 연적에게, 그것도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애송이에게 패퇴한 모습을 보였다는 창피함 때문일까. 그는 이상하리만치 무인의 기본심인 부동심을 잃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졌다는 것이,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무학이라는 공부가 정면으로 부정당한 것만 같은 기분이 영돈으로 하여금 평정심을 더욱 잃게 하고 있었다.
자존심.
대곤륜파의 일대 제자이자 제마이십사검수로서의 자존심.
그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영돈 자신을 처참히 짓밟아 버린 제갈현을 죽여야 한다!
살심이 들끓기 시작하자, 영돈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고,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후우…….”
그리고 그런 영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역시 이 사건의 주동자인 제갈현이었다.
‘역시…… 아무리 도를 닦은 도사라지만, 무인이고 인간이지. 그리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이고. 어리군, 어려.’
이미 일을 벌일 때부터, 그가 영돈의 진기가 담긴 잔을 돌려보냈을 때부터, 이런 일까지 예상 범위에 놓아두었던 제갈현이었다.
자기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이 최고라 여기고, 자신이 오랜 기간에 걸쳐 한 우물만 판 사람일수록 그 성역과도 같은 곳이 침범당하고 유린 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와 패배감은 컸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A.D에서의 ‘설검’으로 수도 없이 목격했다.
꽈악.
‘버티자. 한 수만. 남 대협이 낄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만.’
그리고 그 성역이 무공인 무림인이라면, 반드시 무공으로 자신을 핍박해 성역을 침범한 나에게 벌을 내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영돈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며 도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는 제갈현이었다.
“사술이다 사술! 네 이노옴!”
팽!
스팟!
“꺄아아악!”
수치심을 참지 못한 영돈이 고함을 내지르며 금속성과 동시에 발검하며 검을 내질렀고, 푸른색의 아지랑이가 일어났다.
그리고 남경화의 귀를 찢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인다!’
준비하고 있던 제갈현은 영돈의 검이 보이는 것에 기뻐하며, 수축하고 있던 근육에 힘을 더욱더 가하며 폭발적으로 구환도를 내질렀다.
우우웅―!
스각! 삭! 스각!
가장 몸에 익은 초식, 사일비정이 제갈현의 손짓에 따라 시전되었다. 주홍빛의 진기가 아지렁이처럼 순간 아른거리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놀랄 정도로 빨리 움직였다.
종으로, 사선으로, 그리고 찌르기.
환상처럼 펼쳐진 사일비정의 초식 속에서, 제갈현이 휘두르는 팔의 궤적을 따라 그의 흑발과 흑적 장포가 펄럭였다.
제갈현은 시야가 빠르게 뒤바뀌는 것에 당황하지 않고, 기수식 그대로 사일비정의 움직임을 뿜어내었다.
카앙!
그리고 내뻗어진 구환도의 끝에 기세 좋게 시전된 곤륜파의 대표적인 검법인 복마검법(伏魔劍法)의 일수가 부딪쳤고,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함께 제갈현의 구환도가 반으로 부러져 버렸다.
“크윽…….”
비록 받아 내기는 했지만, 구환도를 타고 흐르는 경력이 대단한지라 아직 제갈현의 실력으로는 견뎌 내기 불가능한 것이었다.
울컥.
때문에 피를 한 움큼 뱉어 내기는 했다.
하나 고작 내공 반갑자에 경지조차 일천한 제갈현이 영돈의 일수를 받아 낸 것이었다.
“갈!”
찌르르!
그리고 그제야 남포가 일갈을 내질렀다. 대기가 울리는 것을 보니,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컥!”
그리고 단지 남포가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 달려들던 영돈은 무슨 벽에라도 부딪친 것처럼 튕겨져 나가 나동그라졌다.
남포는 분기탱천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보자 보자 하니 너무 오만 방자하구려! 곤륜에서는 제자들에게 선배 앞에서, 그리고 무림 초출에게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오이까! 그대의 눈에 무림의 선배이자 이곳 하남표국의 국주인 나는 보이지도 않는단 말인가!”
쿠오오오―!
남포의 몸에서 서서히 무형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장포 자락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펄럭이고, 집무실 안의 대기도 광폭하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분노로 평정심을 잃은 상태에서 공력이 가득 담긴 일갈을 맞아 각혈을 한 영돈은, 남포의 기세와 서릿발 같은 위엄에 놀라며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내……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놈이었던 것인가. 아직 공부가 부족하구나! 무량수불…….’
남포의 기세와 자신의 모습, 그리고 제갈현의 모습에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것인지 자각한 영돈은 자신의 수행이 아직 부족함에, 그리고 치졸함에 얼굴을 붉혔다. 분노가 아닌, 뉘우침과 자신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한 수치심으로.
“내 오늘 일은 곤륜파에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쾅!
영돈이 정신을 차린 듯하자 남포는 노발대발 불같이 화를 내며 집무실의 탁자를 내리찍었다.
“현랑, 괜찮아요? 어디 다친 건 아닌가요?”
그리고 남경화는 각혈을 한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제갈현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부산을 떨고 있었다.
‘하하……. 현랑이라……. 나쁘지는 않군.’
자연스레 현랑이라 부르는 남경화의 모습을 보며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제갈현은 시선을 돌려 영돈을 쳐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남포의 진노를 받아 내던 영돈의 눈과 마주친 제갈현은 그를 향해 씨익 웃어 주었다.
그의 일검을 받아 냈기에, 그리고 고작 일 성인 사일비정의 위력이 진기와 합쳐지자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신속하고 강하다는 것에 기쁜 제갈현이었다.
“곤륜의 제자는 벙어리가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제갈현의 웃음에 제갈현을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던 영돈은, 남포의 일갈에 남포를 쳐다보더니 이내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소생의 수행이 부족하여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벌인 것, 남 대협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곤륜의, 구파일방 중의 하나인 곤륜파의 제자가 무릎을 꿇다?
그런 영돈의 모습을 본 남포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대문파의 제자가 무릎까지 꿇는 모습에, 그가 충분히 반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 영돈 도사의 뉘우침을 보아 공식적으로 곤륜에 사과를 요청하지는 않겠네만, 이만 하남표국에서 나가 주었으면 하네. 어서 사문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누그러진 말투로 영돈에게 말한 남포는 시선을 돌려 제갈현을 쳐다보았다.
“괜찮느냐?”
“허억…… 후우……. 곤륜의 검, 그중에서도 제마검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 주셨습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꾸벅.
몸을 힘겹게 일으킨 제갈현이 포권을 해 보이며 영돈에게 말했다.
영돈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림의 선배로서 이런 못난 꼴을 보인 것, 제갈 소협에게 사과드립니다.”
꽤나 예의 바르게 서로에게 인사하는 둘을 보면서 남포의 눈에 경탄의 빛이 서렸다.
‘제갈현! 보면 볼수록 대단한 녀석이구나! 영돈…… 곤륜에서도 걸출한 인재가 하나 나왔군.’
비록 실수를 했다고는 하나 자신의 실수를 금세 깨닫고서는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후배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영돈의 모습에 감탄하는 남포였다.
‘대체 제갈현은 어디서 저 어린 나이에 저런 심계를 지니게 되었을까.’
남포는 어린 제갈현이 어떻게 저런 깊은 심계를 가진 것인지 궁금했다.
어찌하였든 연극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남포 자신은 제갈현이라는, 어쩌면 미래에는 화경을 넘을지도 모르는 무학의 가능성을 지닌 인재를 찾아냈다.
“언제 한번 다시 만날 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갈 소협, 남 소저, 그럼 이만…….”
힘없이 울려 퍼지는 영돈의 목소리만이 집무실을 맴돌았다.
『H.I.D』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