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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완전히 뒤집힌 차 안으로 들어오는 연기가 심상치 않았다. 가드레일과 나무를 부딪친 차의 범퍼와 보닛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여자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차의 천장으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
“아…….”
거꾸로 매달린 채, 정신을 잃었던 세연이 힘겹게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저었지만 점점 더 의식이 흐려졌다.
“세, 세형아.”
입술을 질끈 깨문 세연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세연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서 안전벨트를 맨 채, 기절해 있는 남동생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아!”
사고의 여파 때문인지 귀가 멍하였다. 눈에 피가 들어가서인지 그녀의 눈으로 보이는 배경은 전부 붉었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야 했다.
“악!”
벨트를 풀기 위해 움직이던 세연이 발에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차가 연속으로 구르면서 다리를 다쳤는지 조금만 건드려도 비명이 나올 정도였다. 자신이 이 정도라면 남동생은……. 세연의 얼굴에 공포가 스며들었다.
“세형아. 유세형! 세형아!”
아무리 불러도 세형에게서는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일이 그녀는 너무나도 두려웠다.
이제 무슨 일을 당해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건만, 막상 닥친 일은 그녀가 받아들이기에는 그 무엇보다도 벅찼다. 안전벨트를 풀기 위해 무슨 수를 다 썼지만 시트에 끼인 벨트는 풀리지 않았다. 세연의 눈이 주변을 정신없이 훑어 내렸다.
뒷좌석에 굴러다니는 자신의 핸드폰을 세연이 길게 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손이 핸드백에 닿지 않았다.
“제……제발.”
차가 완전히 뒤집혔는데도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동생만큼은, 세형만큼은 어떻게든 지켜 내야 했다.
“제발!”
단단히 묶인 안전벨트가 그녀의 피부를 붉게 쓸었지만, 세연은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자 다친 다리에서 나는 고통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입술에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문 세연이 간신히 핸드백을 자신에게로 끌어왔다. 거꾸로 있었던 터라 쏠린 피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힘겹게 핸드폰을 꺼냈건만 액정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힘겨운 손이 온전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런 상황이 되자 떠오르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연결만 된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제발…… 받아요.”
통화음이 끊기고 남자의 목소리가 나는 순간, 세연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비쳤다.
“재혁 씨.”
“지금 바빠. 나중에 통화해.”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허망한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안 돼…… 안 돼!”
머리에 쏠리는 피와 차 안의 들어오는 연기에 점점 의식이 삼켜졌다. 세연의 눈에 치민 눈물이 피와 함께 다시 떨어졌다.
“아…….”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쓰러져 있는 세형을 흔들었지만, 그는 어떤 미동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다리 사이로 붉은 핏덩이가 흘러내렸다.
간신히 참아 내던 공포가 그녀를 휘감았다.
“아아악!”





1.





수줍어하며 몸을 가리는 팔을 잡아 머리 위로 올렸다. 달밤의 연한 달빛에 비치는 모습을 보던 남자의 몸에 열기가 들끓었다.
“저기…… 어머님께서 부르실지도…… 아직 잘 시간이 아니잖아요.”
남자의 손에 거칠게 벗겨진 나신이 추위로 작게 떨렸다.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닫혀 있는 문을 계속 바라보는 눈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손으로 여인의 양손을 붙잡은 그가 다른 손으로 여인의 턱을 매섭게 쳐냈다.
“나한테 집중해.”
“그래도 부르시면…….”
핑곗거리를 찾아 도망가려는 입술을 남자가 입안 가득 삼켰다. 여인의 입안의 여린 살을 혀의 돌기로 애무하던 그가 피하려는 혀를 맹수처럼 낚아채 온 힘을 다해 빨아들였다. 혀뿌리가 뽑힐 것 같은 고통에 여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조, 조금만 부드럽게…… 아흑.”
남자의 손이 봉긋 솟은 가슴을 힘 있게 움켜쥐었다. 오므리려는 다리를 사전에 막으려는 듯 남자의 무릎이 모이려는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내쉬는 숨조차 자신의 것이라는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인지 조금의 틈도 없이 남자가 여인의 입안을 빨아들이고 흡입하였다.
가슴을 움켜잡던 손이 정점에서 딱딱하게 솟은 유두를 비틀었다. 남자의 흔적에 여인의 입에서 힘겨운 숨이 거듭 흘러나왔다.
이를 세워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잘끈 깨물자 여인이 몸을 떨었다. 미약한 반응이었지만, 그녀의 행동에 남자의 소유욕이 점점 더 짙어졌다.
“재, 재혁 씨! 나…….”
“집중하라고 했을 텐데?”
입술을 뗀 그가 솜털이 올라 있는 귓불을 한입 가득 빨아들였다. 벌을 주듯 빨아들인 귓불을 잘근 깨물자 여인의 팔이 매달리듯 그를 껴안았다.
부드럽게, 또는 야릇하게 감겨 오는 여인의 피부가 좋았다. 여인의 몸에 자신을 각인하듯 남자의 얼굴이 촉촉이 젖은 귓불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가는 얼굴선을 혀로 어루만지고, 부드러운 턱 선을 지나 매끈한 목에 닿은 그가 입술을 길게 묻었다.
“하아. 하아.”
여인이 숨을 내쉴 때마다 살아 있는 것을 증명하듯 여린 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를 파고든 무릎으로 여인이 색에 물들어 가는 증거가 묻어 나왔다.
이를 세워 목을 긁어내리자 그를 피하듯 여인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자의 손이 여인을 짓누르듯 허벅지를 붙잡았다. 쇄골에 파인 홈에 자잘하게 입술을 맞춘 그가 소담히 오른 가슴을 한입에 물었다.
어떤 과일보다도 달고 부드러웠다. 과즙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가슴 위를 이를 세워 물었다.
“하읏.”
가슴의 매끈한 살을 오랫동안 입안 가득 빨고 있던 그가 딱딱해진 유두를 혀로 핥았다. 원을 그리듯 한숨이 새어 나오도록 느릿하게 움직이던 혀가 유두의 정점을 꾹 눌렀다. 그의 혀에 민감해진 몸으로 열기가 차올랐다. 숨조차 내쉬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게 타오르는 무언가를 토해 내려는 듯 여인이 목을 뒤로 젖혔다.
여인의 반응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다른 가슴을 애무하였다. 힘껏 움켜쥐었다가도 그녀를 달래듯 한숨이 나올 정도로 주물렀다. 그의 손길을 따라 여인의 가슴이 형태를 바꾸었다.
갈증을 해소하듯 남자의 혀가 연신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거듭 씹힌 가슴에 어느새 붉은 꽃물이 짙게 들었다.
“하윽.”
아무리 허리를 비틀고 고개를 저어도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그럴수록 그녀에게 벌을 주듯 온몸을 애무하는 그의 손길이 더 거칠어졌다. 아이처럼 가슴에 묻고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멈추자 가쁜 숨을 내쉬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무슨……헉!”
여성을 누르던 무릎이 사라진 자리, 언제 내려갔는지 열기에 찬 눈이 젖은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스라치던 놀란 여인이 다시 다리를 오므리려는 찰나, 양손으로 허벅지를 붙잡은 그가 젖은 여성에 얼굴을 묻었다.
비명조차 지를 사이도 없이 그의 혀가 클리토리스에 닿았다. 당황한 그녀가 남자의 머리를 잡고 밀어내려 했지만, 그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집요했다. 무릎으로 자극할 때와는 다르게 흥건한 액이 남자의 얼굴을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집요한 혀가 클리토리스를 지나 액이 흘러내리는 작은 구멍에 살짝 핥아 내렸다.
“하악!”
그저 닿은 것은 혀끝의 돌기였지만 온몸이 전율에 휩싸이는 쾌락이었다. 머리끝까지 꿰뚫는 감각에 여인이 몸을 떨었다. 애무만으로 절정으로 치달은 여인을 잠시 보았지만 그뿐, 구멍 너머의 여린 살을 혀끝에 기억하듯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남자의 혀가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축축하게 흘러내리는 여인의 체액을 맛보듯 남자가 하나의 흔적도 남김 없이 빨아들였다. 체액을 삼키면서 내는 소리에 여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먹지……마요. 이러지…… 하윽.”
여인의 거부에 남자의 눈썹이 꿈틀댔다. 묘하게 바뀐 반응에 여인이 그게 아니라며 항의하려는 찰나 허벅지를 움켜잡았던 남자의 손이 여인의 허리를 잡고 뒤로 돌렸다.
졸지에 엎드린 자세가 된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좀 전까지 그의 혀가 머물렀던 여성으로 딱딱해진 남성이 깊숙하게 들어왔다.
“하악……읏.”
충분히 젖어 있어도 여인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여성에 남성을 묻은 그에게서 낮은 신음 소리가 나왔다. 힘들어하는 그녀와는 달리 발기한 남성을 빡빡하게 조이는 여성이 미치도록 좋았다.
남자가 허리를 움직이자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 하악.”
여인의 말 따위 듣지 못한 것처럼 남자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좀 전의 전희와는 달리 여성을 깊게 채우고 빠지는 남자의 움직임은 거칠었다.
남자의 움직임에 밀린 여인이 침대의 시트를 움켜잡았다. 붉게 달아올랐던 가슴이 침대에 눌려 속절없이 흔들렸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커질수록 여인에게서 가무러질 듯 힘겨운 신음이 들려왔다.
몸의 무게까지 실어 가며 깊숙이 들어오는 남성이 버거웠다. 그의 열락을 다 받아 내기에는 그녀는 너무나도 작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여인이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의 큰 손이 침대에 눌린 가슴을 힘껏 움켜잡았다. 그의 열기에 전염되듯 힘겨워하던 여인의 깨문 입에서 색에 젖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읏. 하아.”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그는 무서웠지만, 그가 그녀에게 만족하는 유일한 순간이 이때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여인은 최선을 다하였다.
그녀를 자극하듯 그의 이가 하얀 등을 깨물었다.
“아앗!”
자극에 놀란 여인이 남성을 받아들인 여성을 제 힘껏 조였다. 그녀의 행동에 남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하였다.
“흐윽. 하앗.”
여인의 등을 누른 그가 좀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광포하게 움직였다.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맹수에게 붙잡힌 초식동물처럼 남자의 손길에 여인의 몸이 제멋대로 휘둘렸다.
애무로 치달았던 절정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복부를 채우는 통증만큼이나 휩싸이는 열기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남자가 물고 있는 등이 붉게 변하고, 거친 움직임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 하얀 등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에게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신음과 함께 얼얼한 여성 가득 그의 흔적이 채워졌다.
“하아.”
토하듯 힘든 숨을 내쉰 여인의 정신이 아늑히 멀어져 갔다. 하지만 그대로 정신을 놓는 대신 힘겹게 몸을 돌려 남자와 눈을 마주했다. 음습할 정도로 차갑고 가라앉은 눈, 사랑을 하는 지금의 행위조차 욕구를 푸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남자.
“괜찮아요?”
퇴근하자마자 삼켜 버리듯 섹스를 한 남자를 보던 여인이 손을 들어 뺨을 감쌌다. 그녀의 물음에도 말 없던 남자가 여인의 가슴골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듯 여인의 손이 파고들었다.
“쉬어요. 쉬어도 돼요.”
노래하듯 속삭이는 목소리에 몸을 맡긴 남자가 눈을 감았다.

* * *

눈을 뜨자 남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방도, 여인도 아닌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재혁 오빠. 깼어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화사한 미모에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 것인지 연신 미소를 지은 젊은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에 거의 다 왔어요. 일어나요.”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누른 그가 무서운 숨을 내쉬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고개를 돌리고 다시 쳐다볼 정도로 잘생긴 남자였지만, 그러한 외모를 가리듯 남자의 분위기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차가운 위압감이 느껴졌다.
행여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큰일이라도 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다들 그와 눈을 마주하는 것을 회피했지만, 곁의 여자는 연신 미소였다.
“피곤해하기에 안 깨웠는데 안 좋은 꿈 꿨어요?”
“김선아. 조용히.”
남자의 한마디에 선아라는 여자의 미간이 작게 꿈틀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행여나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봤을까 봐 얼른 원래대로 표정을 바꾼 선아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선아가 조용해지자 남자, 아니 재혁이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다시 긴 숨을 내쉬었다.
서른 살에 떠났던 한국을 서른다섯에 되어서야 돌아왔다. 일의 해결이 아니라 시작을 위해서 돌아오는 곳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편하기보다는 무거웠다.
그 증거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꾼 꿈은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