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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현의 무릎 위에 앉은 하원이 그의 목을 감쌌다. 거뭇거뭇한 우현의 턱에 난 수염을 손으로 매만지며, 하원이 키스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피곤해.”
낮은 목소리가 적요 속을 갈랐다. 차갑지만, 매우 건조한 우현의 목소리에 하원은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는 아무런 미동 없이 하원의 손길을 받았다. 보기 좋은 단단한 근육이 붙은 상체를 손으로 쓸어내리다 바지 버클을 풀었다. 순간이었다. 우현은 제 무릎에 앉아 있는 하원을 침대 위로 쓰러트리듯 눕혔다.
“핫.”
놀라 단말마 같은 비명이 하원의 입에서 터졌지만 그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차분하게 하원의 입술을 뭉개곤 타액으로 젖은 하원의 입안으로 말캉한 혀를 밀어 넣었다. 입안을 훑고 지나가면서 거칠게 혀를 잡아채고는 제 입안으로 가져왔다.
우현의 손이 블라우스를 젖히고 하얀 속살을 움켜쥐었다. 동그란 언덕 위로 솟아난 정점을 손으로 지그시 누르다 비틀었다. 그의 손길에 정점이 딱딱하게 솟았다.
“흐읍.”
집요하게 하원의 입을 막은 우현은 그녀의 뜨거운 숨결을 들이마셨다. 하원을 손을 뻗어 우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제멋대로 흐트러진 호흡을 그의 귓가에 쏟아 내며 하원의 손은 그의 바지를 아래로 끌어 내렸다. 이미 흥분한 중심부가 드로즈 밖으로 튕길 듯 솟아나 있었다. 하원은 드로즈 속으로 손을 넣어 부푼 남성을 애무했다. 그녀의 손길을 받은 남성이 딱딱하게 흥분했다.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듯, 우현의 손이 스커트 속으로 손을 밀어 넣곤 팬티를 끌어 내렸다. 동시에 벗겨진 드로즈 밖으로 남성이 튕겨 나왔다. 우현은 하원의 허벅지를 넓게 벌리곤 그 사이를 갈랐다. 남성을 꽃잎에 문지르다 쑥 하고 밀었다.
“아파…….”
하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어둠 때문에 눈물을 보지 못한 우현은 상체를 앞으로 숙이곤 허리를 앞으로 튕겼다.
“조금만 참아.”
달래듯 말하는 목소리였으나 다정하진 않았다. 그 때문에 하원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더욱 짙어졌다. 예민한 살갗이 말려들어 가며 우현은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두 번 하는 섹스가 아니었다. 3년 내내 그가 드나든 곳이었다. 이 좁은 통로를 그가 수도 없이 채웠다. 우현은 하원의 입술을 찾아 키스하고, 하얀 목덜미를 물어뜯듯 핥았다. 숨결을 불어넣고, 타액으로 살결을 뭉갰다. 그렇게 그의 흔적이 그녀의 몸 곳곳에 열꽃처럼 남아 있었다.
“하아.”
배려 없는 시작으로 처음은 고통스러웠으나 점차 하원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넓게 벌린 그녀의 다리는 우현의 어깨에 걸쳐 있었다. 그의 말대로 조금만 참으면 고통은 곧 쾌락으로 바뀌었다.
여린 살결을 밀고 들어찬 그가 다시 반쯤 후퇴했다. 하지만 곧 무서운 힘으로 그득하니 좁은 곳을 빈틈없이 채웠다. 탁한 숨이 더운 공기 중에 흩뿌려졌다. 우현의 손이 가슴을 움켜잡고 정점을 뭉갰다.
“우현 씨…….”
건조한 입술로 하원은 애타게 그를 불렀다. 그는 대답 없이 허리를 치받고 있었다. 있는 힘껏 다해.
“하읏. 우현 씨.”
찰박찰박거리며 살이 부딪쳤다. 여린 살결이 거대한 힘에 의해 샅샅이 부서졌다. 꽃잎을 가르고 치골까지 맞닿을 기세로 무섭게 질주했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애타는 신음을 토해 내는 그녀와 달리 그는 무표정이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그의 표정은 쾌락을 느끼는 건지, 흥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있는 힘껏 허리를 튕기며, 꽃잎에 제 것을 치받을 뿐이었다.
“사랑해.”
팔을 뻗어 우현의 목을 감싸 안은 하원이 고백했다.
“나도.”
별 감흥 없는 얼굴로 우현이 대답하였다. 하지만 하원은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듯 더 이상의 대답은 채근하지 않았다. 칭얼대거나, 매달리는 건 하원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저, ‘나도’. 그 한 마디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하원은 받아들였다.
“뒤돌아.”
낮게 깔린 목소리로 우현이 명령했다. 하원은 베개에 가슴을 대고 엉덩이를 높게 올렸다. 습기 어린 그곳에 다시 그가 채워졌다. 동그란 엉덩이를 양손에 쥐고는 그가 또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허리를 비틀며 튕기다, 후퇴와 직진을 반복하였다. 반쯤 그가 빠지고, 다시 빠진 만큼 그가 채워졌다.
“하아.”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하원은 고개를 돌려 제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허리를 곧추세우곤 절정에 달려가던 남자는 전율하고 있었다.
“흐으윽.”
은밀한 곳이 질척거리며 빈틈없이 맞물렸다. 엉덩이를 꼬집듯 세게 쥔 그가 그녀의 등에 무너졌다. 하지만 여전히 꽃잎에 그가 단단하게 채워져 있었다. 넓게 벌린 다리 사이로 하원의 양다리를 모은 채, 탐스러운 엉덩이 사이를 가르는 제 것을 바라보았다. 애액이 묻은 단단한 것은 쉴 새 없이 좁은 문을 드나들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얼굴을 반쯤 가린 머리를 뒤로 넘겼다. 치덕하게 달라붙었던 머리카락이 치워지자, 예쁜 옆얼굴이 우현의 눈에 들어왔다. 흐트러진 호흡만큼이나 섹시하게 흐트러진 그녀의 뒷모습은 그의 욕망을 끝없이 부채질했다.
“하원아.”
“으응…….”
“하원아, 흐으으윽.”
“하아.”
대답 대신 신음이 멋대로 터졌다. 전율하던 남자의 허리 짓이 빨라지면서 결국 절정에 달했다. 하원의 엉덩이 사이로 투명한 액이 흘러내렸다.
“후우.”
섹스의 여운을 채 느끼기도 전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하원이 고개를 돌렸다.
고고한 자태로 허리를 추켜세운 채 우현은 뒤처리를 끝낸 후였다.
역시 그답다.
맥을 못 추고 축 늘어진 하원이 뒤늦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먼저 씻을까?”
“그래.”
우현의 대답에 하원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에서 나오기 직전, 다시 뒤돌아 우현을 바라봤으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욕실로 들어갔다.
지독하게 차갑고 허무한 섹스.
이 또한, 사랑일까?
우린, 사랑하고 있는 걸까?
아니, 신우현, 그는…….





1. 신우현, 당신 참 못됐다





한 시간 10분.
그를 기다린 시간.

<7시까지 레스토랑으로 와. 예약했어.>

하원은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답장은커녕 전화도 없었다. 10분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30분이 지나자 차가 막히나 걱정이 되었고, 그 후로 시간이 점점 지나자 전화 한 통 없는 그의 행동에 화가 나서 막연히 기다렸다.
‘너도 안 하면 나도 안 해. 누가 이기나 보자’라는 유치한 발상에서 오기가 시작되었다. 지금껏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새로 개업한 레스토랑에 가자고 며칠 전부터 떠들었다. 귀찮다는 듯 그가 어쩔 수 없이 수락했고 오늘 퇴근하기 전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싫다 좋다 가타부타 대답이 없는 그의 반응에 하원은 이제 실망은커녕 초연해졌다. 인내심 없는 자신에게 신이 내린 벌이 아닐까 의심이 들 만큼 그는 늘 그녀의 인내심을 테스트했다.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하고 고개를 추켜세운 채 아래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참으로 뻔뻔하고 거만하게.
하원은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테이블에 혼자 있는 사람은 저 혼자였다. 커플, 가족,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짝을 이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직까지 음식을 주문하지도 않고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다. 이런 스스로가 참으로 못나고 불쌍해 보이기까지 해서 울컥했다.
하원은 조용한 휴대폰 액정을 켰다. 다시 꺼진 휴대폰 액정을 핸드백에 넣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의 기다림은 무모하다. 그래, 내가 졌다. 쓸데없는 오기와 고집으로 비참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인정하고 난 후의 하원은 허무함에 한숨을 토해 냈다.
당신, 참 잘났다. 잘났어.
하원은 직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예약한 음식 가져다주세요. 한 번에 다 준비해 주세요.”
혼자 있는 하원이 먹을 양은 많았으니 이미 전화 예약한 음식은 미룰 수 없었다. 하원의 주문에 직원이 조금 의아한 눈빛이 하원에게 향했다. 하지만 부지런하게 만든 음식이 차례로 테이블에 세팅되기 시작하였다. 테이블 가득 채워진 음식만 바라봐도 저절로 배가 불었다. 하원은 애피타이저와 후식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스테이크를 썰어 입속에 넣었다. 와인도 한 잔 마셨다. 먹지도 않은 음식값을 계산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우아한 자태로 하원은 스테이크 접시 하나를 깨끗이 비우곤, 맞은편에 세팅된 접시를 끌어다 놓았다. 맛있어도 너무 맛있다. 역시 유명 셰프의 음식을 예약까지 해서 먹으러 온 보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후회할 짓을 한 거다.
스테이크 두 접시를 깔끔하게 비우는 동안 와인도 바닥이 났다. 취기가 올라왔다. 머리가 띵한 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오자 사방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시원한 밤바람에 하원의 머리가 흩날렸다. 한참을 멍하니 바람을 맞던 하원은 터덜터덜 걸었다. 목적지를 정하고 걸은 것이 아니었다. 버스와 택시 정류장을 한참 지나 걸어 맥줏집에 들어갔다.
맥주 500cc 한 잔과 마른안주를 주문해 벌컥벌컥 들이켰다. 빠르게 잔을 비우고 다시 술을 주문했다. 처음 맥주를 주문할 때 나온 안주는 그대로였다. 오늘따라 술이 막힘없이 들어갔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마시고.”
벌컥.
500cc 한 잔을 또 비웠다.
“죽자.”
탁.
빈 잔을 내려놓았다. 안주는 필요 없었다.
마시고 비워지기를 반복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여전히 조용한 휴대폰에 향했다.
밤이 깊어간다.
외로움과 함께.

* * *

딩동- 딩동- 딩동-
맑고 청량한 초인종 음이 조용한 복도를 가득 메웠다. 초인종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하원의 손이 다시 초인종에 향했다.
“아, 왜 아 나오는 거야. 자즈나게”(아, 왜 안 나오는 거야. 짜증나게.)
기다림이 점점 커질수록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조그마한 손으로 주먹을 말아 쥔 그녀의 손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탕. 탕. 탕.
“신우현! 나오라고!”
맨 정신으론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것이 그녀가 살면서 기본적으로 지키는 것이었다. 술이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들고, 얼굴에 철판을 깔게 만드는 듯했다. 그리고 울컥했던 감정까지 모두 사라진 지금 하원에겐 그를 향한 분노뿐,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성이 있는 박하원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밤늦게 찾아와 행패 부리는 행동은 아무리 술 취한 그녀라고 해도 그는 절대 용납하는 법이 없었다. 감정과 이성의 조절은 몸에 밴 그에게 이런 행동은 한심한 짓거리에 불과했다.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그는 감정이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술도 언제나 본인의 주량껏 마시며,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어쩔 땐 감정도 없는 냉혈남 같지만, 자기 관리가 철저한 그를 존경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것은 자리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 아니었다. 감정도 없고 차갑고, 냉정해서 기계 같았다.
딩동- 딩동-
안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자 하원은 다시 초인종을 연달아 눌렀다. 그에 대한 이해와 인내심은 개나 주라며 폭주해 버린 하원을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