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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술에 취하다
1화
프롤로그


브레이크 타임, 파스타를 연습하던 채린의 곁으로 도준이 소리 없이 다가오더니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채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서채린 씨, 잠깐만 이야기 좀 합시다. 지하 창고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은밀하게 속삭인 후 도준이 등을 돌리며 돌아섰다.
평소와는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에 채린의 가슴이 이유 없이 설레기 시작했다. 채린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볼로네제는 4층 건물의 1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했지만 채린은 지금의 이 두근거리는 감정을 보다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부러 걸어서 내려갔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 채린은 창고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가 왜 자신을 창고로 불러내었는지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혹시 창고 벽에 마구 몰아붙인 뒤 키스를 하려는 건 아닐까?
그런 달콤하고 황홀한 상상 뒤로 현실적인 상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창고에 쌓인 수많은 식재료들의 이름을 다 외우라거나 장부를 하나 건네고서 재고 파악을 하라거나, 뭐 이런 불편한 현실이 펼쳐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또는 도저히 못 가르치겠으니 그만 돌아가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어쨌든 채린은 떨리는 마음으로 창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하고 불편한 쇳소리와 함께 케케묵은 지하 창고 특유의 냄새가 채린의 코에 와 닿았다.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채린을 부르는 도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채린 씨, 여깁니다.”
채린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창고는 꽤 넓었다.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사방으로 쭉 이어져 있었고 통로 옆으로는 선반마다 듣도 보도 못한 식재료들로 가득 쌓여 있었다.
미로 속을 걷듯 도준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녀의 심장이 터질 듯이 펌프질을 해댔다.
채린이 코너를 돌자 도준이 선반에 있는 식재료를 살피고 있었다. 채린이 가까이 다가갔지만 도준은 채린이 옆으로 바짝 다가온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식재료가 든 캔을 하나하나 살피며 캔에 찍혀 있는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채린은 왠지 허탈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방금 전에 상상하던 것 중 가장 최악 중의 최악의 경우가 걸렸다.
“서채린 씨, 모든 재료는 말입니다. 유통기한이란 게 있습니다. 그 유통기한이 지나면 그 음식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에 채린은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그렇죠.”
“그럼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갑자기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채린은 어리둥절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자 도준이 손에 들고 있던 캔을 내려놓더니 몸을 돌려 채린을 똑바로 응시하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는지 물었어요.”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그런 황당한 질문이라 채린은 멀뚱거리며 그의 눈동자만 쳐다보았다. 커다란 눈 안에 갇힌 검은색 눈동자가 무척이나 맑고 투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눈동자를 마주치자 민망하고 어색한 나머지 채린은 그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피해 그의 목울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복숭아씨처럼 크고 굵은 그의 목울대를 보자 채린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고 말았다.
그동안 이 남자를 물론 남자라고 쭉 지켜보며 생각하고 있었지만 목울대를 보자 정말 남자다웠다. 아니, 상남자다.
그녀의 시선이 목울대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에 머물렀다. 조리 가운을 입고 있긴 했지만 가운 위로 드러난 선명한 가슴 근육이 채린의 심장을 바짝 조였다. 게다가 7부 소매 아래로 드러난 우람한 팔뚝 위로 실핏줄이 선명한 색을 띠며 담쟁이 넝쿨처럼 위를 향해 뻗어 있었다.
도준의 탄력 있는 완벽한 몸매에 정신을 뺏긴 채린이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사랑에도 아마 유통기한이 있겠죠. 언젠가는 식을 수도 있으니까.”
채린의 말이 끝나자 그가 채린의 앞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거의 채린의 머리가 그의 가슴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놀란 채린은 숨을 삼키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 딱딱한 선반의 프레임이 닿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채린이 선반에 딱 붙어 서 있는데 도준이 점점 더 채린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검은색 눈동자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채린에게로 다가가며 속삭였다.
“오늘부터 채린 씨와 저만의 유통기한 시작입니다.”
“…….”
무슨 말인지 몰라 채린이 멀뚱거리며 쳐다보자 도준이 다시 말을 했다.
“시작은 오늘이지만 유통기한의 마지막은 없습니다.”
부드럽고 달콤한 도준의 목소리와 함께 남자 스킨 냄새가 채린의 코에 와 닿았다. 그리고 점점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채린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입술에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부드러운 입술이 채린의 입술을 삼키듯이 조심스럽게 깨물었다.
“흐읍!”
채린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입술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부드러웠다. 전체적으로 남성미가 느껴지는 그의 분위기상 거칠 거라 생각했던 키스는 예상 외로 부드러웠다. 너무 부드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듯 도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그의 입술에선 크림소스의 맛이 났다. 부드럽고 달콤한.
부드러운 그의 입술에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어느새 도준의 뜨거운 혀가 채린의 잇새를 가르고 들어왔다. 뭔가 뜨겁고 습한 것이 입 안으로 들어오자 채린이 화들짝 놀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혀가 뱀처럼 꼬물거리며 채린의 입 안을 마구 휘저었다. 그의 혀가 닿을 때마다 채린의 몸 안 어딘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강한 전류 같은 것이 흘러 그녀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
채린은 입술을 그에게 맡긴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도준의 몸에 닿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뒤로 빼고서 중얼거렸다.
“흐읍……, 저기……, 실땅님…….”
아직 좋아한다거나 그런 고백을 들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키스라니…….
채린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싫지 않았다. 이대로 몇 시간 동안 그와 키스를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채린은 이 남자에게서 확인을 하고 싶었다. 정말 좋아서 키스를 하는 건지, 그냥 자신의 굶주린 욕정 때문인지.
채린이 두 손을 버둥거린 채 그의 입술에 갇혀 있는 자신의 입술을 겨우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저기요……, 잠깐……만요. 타임!”
하지만 도준의 입술은 잠시의 틈을 용납하지 않은 채 채린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채린이 머릿속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뜨거운 그의 혀가 채린의 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도준의 뜨거운 키스에 채린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
몸속에서 뜨거운 용암이 마구 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온몸이 뜨거워지며 그녀의 아랫도리가 천천히 젖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의 커다란 손이 불쑥 채린의 한쪽 가슴을 움켜잡았다.
“허엇…….”
처음 겪어 보는 생경한 느낌에 채린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키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느낌이 그녀를 엄습했다.
온몸에 짜릿하고 고압 전류 같은 것이 빠르게 관통하는 기분을 채린은 만끽했다.
이제는 채린에게 버틸 만한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채린의 가슴 위에 핀 여린 꽃봉오리가 금세 딱딱하게 굳어졌다.
짜릿한 쾌감이 그녀를 덮치자 전기 충격을 받은 개구리의 사지가 펴지듯이 채린의 손바닥이 쫙 펴졌다.
채린은 눈을 살며시 뜨고서 도준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먹이를 코앞에 둔 한 마리 야수 같았다.
야수가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커다란 두 손을 뻗더니 채린의 셔츠 옷깃을 양쪽에서 잡았다. 그리고 곧 ‘두두둑’ 하고 단추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채린의 셔츠가 찢겼다.
‘어, 이건 좀 아닌데.’
예상치 못한 도준의 거친 태도에 채린은 당혹스러웠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채린이 도준을 응시하자 도준의 입가에 정복자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채린의 두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 위로 추켜 올렸다. 갑자기 달라진 그의 섬뜩한 눈동자 때문에 채린은 겁이 나서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그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곧 도준이 자신의 목에 두른 스카프를 빼내더니 채린의 손과 선반의 프레임을 묶어 버렸다. 손이 묶이자 채린이 놀라서 물었다.
“저기……, 실장님 이게 무슨…….”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은 채 손바닥으로 채린의 두 눈을 가렸다. 채린이 눈을 떴지만 그의 손바닥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난 채린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실장님……, 절 어떻게 하시려고…….”
여전히 도준은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두 눈이 가려져 앞을 볼 수 없는 채린은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다. 채린은 저도 모르게 목구멍 속에 가득 고인 침을 삼켰다.
불안하면서 이상하게 기대가 되었다.
잠시 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눈떠!”
귀에 익은 목소리긴 한데 도준이 아니었다.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