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8화
3. 그녀, 헤일리(3)


문을 나선 수현은 블라인드가 쳐진 유리 벽 너머를 노려보며 분을 삭였다. 그녀의 이름도, 직업도 알고 있으면서 깜찍하게 모른 체했던 여신의 행태가 그녀를 더 약 오르게 했다. 하지만 이내 숨을 고르며 돌아섰다. 저 여자와 마주칠 일이 몇 번이나 더 있겠나 싶어서다.
정신적 피로감이 일반인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연예인들을 상대로 심리 상담이라니, 얼마 못 가 두 손 들고 도망칠 게 뻔하다. 먼저 나가떨어지지 않으면 살짝 밀어 주는 방법도 있다. 수현은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복도 저 끝에서 강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수현은 반갑게 그를 부르며 다가갔다.
“회의실 가는 거야?”
“아직 안 갔어?”
“나 막 가려던 참.”
강수는 회의실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로 향했다. 가려던 참이었다면 확실하고 신속하게 보내 주는 게 예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주는 강수의 행동을 제멋대로 해석한 수현은 미소를 지었다. 말투는 틱틱거리면서도 그녀를 배웅하는 그의 배려 깊은 성격이 그녀를 웃게 만든 것이다.
“새 상담원 대체 나이가 몇 살이야?”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수에게 수현이 넌지시 물었다.
“박사야.”
강수가 틀린 포지션을 바로잡아 주지만 수현은 못 들은 체하며 제 말만 이어 갔다.
“사십 넘었나? 스타일이 영…….”
강수의 시선이 수현에게로 향했다.
“좀 세련된 사람으로 뽑지 그랬엉.”
수현은 애교스럽게 눈을 흘기며 부드러운 투로 나무랐다.
“딴딴하게 틀어 올린 머리 하며, 조문객처럼 시커먼 정장에, 오십 대 선생들도 안 신을 살색 스타킹이라니. 쯧쯧…….”
‘스타킹?’ 강수의 눈썹이 쑤욱 올라갔다. 출근길에 만났던 그녀는 스타킹을 신고 있지 않았었다. ‘아니, 신었던 건가?’ 그의 눈이 잘못된 건가, 혼자 헷갈리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가라.”
강수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수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 회의실로 향했다.
‘살색이 아니라 살 아니었나?’ 회의실 문을 지나면서도 계속 그 생각이다.

***

그날 오후, 커피를 가져오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던 여신은 사무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강수를 발견하고 긴장태세를 취했다.
‘설마 나한테 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기를 바라며 속엣말을 중얼대지만 강수는 벌써 그녀 앞에 멈춰 섰다.
“헤어스타일 좀 세련되게 할 수 없나? 무슨 사오십 대 부인도 아니고.”
또 시작된 어이없는 잔소리에 여신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일할 때 치렁치렁하면 거추장스러워서요.”
“그럼 무난하게 묶던가. 그렇게 틀어 올려서 뒷목이 훤히 보이는 그런 스타일은 별로야. 촌스러워.”
아침과 마찬가지로 자기 말만 끝내고 돌아서는 강수를, 여신은 짜증스럽게 째려봐 주고는 그를 지나쳐 탕비실 쪽으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가 몇 발짝 가기도 전에 그가 다시 불러 세웠다.
“그리고.”
“네.”
여신은 체념이 담긴 한숨을 내쉰 다음 천천히 돌아서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짜증을 참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드러나자 강수는 ‘풋.’ 터질 뻔한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야만 했다. 그러곤 노골적으로 시선을 끌어 내리며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녀의 다리를 가리켰다.
“다리에 뭐 좀 신지? 오뉴월인 줄 아나 본데, 지금 십일월이야. 춥지도 않나?”
딱 벌어진 채 굳은 것처럼 보이던 여신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다 하다 별!”
조금만 더 하면 그녀의 눈에 불이 켜질지도 모르겠다. 불씨가 커지기 전에 돌아선 강수는 싱긋 웃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약이 올라 발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고 싶지 않기도 하다. 줄다리기 같은 그 실랑이를 즐기느라 무한정 시간을 끌게 될까 봐서다.



4. 그녀의 아이(1)


여신과 지현, 그리고 무진이 오랜만에 식탁에 모였다. 여신이 새 직장으로 출근하고, 지현은 주간지 칼럼 말고도 두 가지 일을 더 맡게 되어 갑작스레 바빠졌었다. 그리고 무진은 새로 시작한 그룹 스터디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는 중이다.
좁은 식탁 위에는 젓가락들이 분주히 오가는 소리뿐이다. 지현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는 무진을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다가 양념갈비를 듬뿍 집어 무진의 숟가락 위에 올려 준다. 입에 있는 밥도 아직 다 못 삼킨 무진이 씩 웃어 보인다.
“고마워, 아빠.”
“마이 무, 아들!”
죽이 척척 맞는 지현과 무진은 마주 보며 벌쭉, 미소를 주고받았다.
“밥 먹자, 밥.”
보다 못한 여신의 잔소리가 끼어들자 둘은 다시 숟가락질에 전념했다.
“새 사무실은 마음에 들어?”
이번에는 여신에게 묻는 소리다.
“그럭저럭. 책상이 쓸데없이 커서 바꿔 달라고 할까 싶어.”
“책상 크면 좋지, 왜? 이것저것 다 올려놔도 되고! 좋기만 하겠다.”
“그건 너한테나 좋은 거고.”
여신의 핀잔에 무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리 정돈에는 영 소질이 없는 지현을 무진도 잘 알기 때문이다. 지현은 장난스레 인상을 구기며 무진을 향해 ‘으으.’ 으름장을 놓는 시늉을 하지만 무진의 웃음은 그치지 않는다. 그런 아이를 따라 함께 웃어 버린 지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넌지시 운을 뗐다.
“집은 언제 알아볼까?”
여신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반찬을 골라 무진의 접시에 놓아 준 뒤 젓가락을 놓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꼭 이사해야 해?”
“무진이 스터디는?”
지현이 이미 시작한 공부방 얘기를 꺼내자 여신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무진이 새롭게 시작한 영어 스터디 장소는 강남역 근처의 오피스텔이다. 아무리 스쿨버스가 있고, 스터디 선생님이 따로 차량을 운행한다 해도 너무 멀어서 안 된다고 확실히 의사를 밝혔던 여신은 친구에게 뒤늦은 원망을 쏟아부었다.
“그러니까 그냥 이 동네에서 알아보자니까 왜 그 먼 데다 구했냐구.”
지현은 손바닥을 펴 진정하라는 시늉을 하고는 차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반복했다.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 언어에 저렇게 감각이 뛰어난 애를 왜 맹탕 놀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무진이가 하고 싶어 하잖아!”
지원을 요청하듯 아이를 쳐다보자 무진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재미있어.”
“차 오래 타고 다녀야 하는데 지겹지 않아?”
여신이 묻는 소리에 무진은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다.
“좀 지겹긴 한데, 재미있어.”
“무진아, 우리 이사할까?”
지현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자 무진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어디로?”
“스터디 선생님네 근처로.”
“와! 완전 좋아!”
두 번째 지현의 풀무질에는 아예 일어서서 발을 구른다.
“그 동네 너무 비싸.”
여신이 다급하게 끼어들지만 지현은 또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그 옆 동네로.”
“거기도 좋아! 나랑 같이 기초 단계 하는 누나도 옆 동네 산대!”
“옆 동네가 어딘 줄 알아?”
“몰라. 암튼 가까우면 누나랑 놀기도 하고 좋겠다, 그찌?”
여신은 잔뜩 흥분해 혀 짧은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무진을 진정시키며 지현에게 눈을 흘겼다.
“애 바람 넣지 마.”
“무슨 바람이야, 얘는 내가 무슨 풍선장수니? 바람을 넣고 다니게?”
지현은 눈을 떼룩떼룩 굴리며 시치미를 뗐다. 그렇다고 속아 넘어갈 여신이 아니다. 여신은 아이와 지현을 번갈아 쳐다보며 단호한 투로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일단 생각 좀 더 해 보자.”

설거지를 끝낸 여신과 지현은 거실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사람들은 어때?”
“뭐, so so.”
“연예인들 누구 만났어? 데뷔한 연예인들도 만나 봤니? 아님 연습생들만 상대해?”
“아직, 많이 만나진 못했어. 제대로 된 상담도 아직 없고.”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TV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그녀들은 다시 대화를 이어 갔다.
“빈 사무실만 지키는 거야?”
“그게, 좀…….”
여신이 ‘쯧.’ 혀를 차며 뜸을 들이자 지현은 호기심 그득한 얼굴을 들이대며 대답을 재촉했다.
“뭐?”
여신은 다시 TV 화면에 시선을 던졌다가 겨우 대답을 내놓았다.
“좀 그래. 나 뭔가 음……. 인테리어 같은 느낌이야.”
“어떤?”
“구색 맞추기? 보여 주기식? 뭐 그런 느낌. 아침에 출근하면 매니지먼트 총괄이사랑 건물 한 바퀴 돌면서 연습생들 조회해. 그리고 임원회의 있는 날은 참석해서 웃고 앉아 있다가 외부 인사들 미팅 있을 때 따라 나가기도 하고…….”
요즘 회사에서 주로 하는 일과를 모두 말한 여신은 지현을 쳐다봤다. 지현의 시선도 친구에게 고정돼 있다.
가만히 쳐다보던 지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심스레 묻는다.
“얼굴마담이니?”
“글쎄…….”
여신은 실소를 터뜨렸다.
“하긴, 애 엄마 데려다가 무슨 얼굴마담을 시키겠어.”
“아직 애 있는 줄 몰라.”
무심코 하는 소리에 여신도 덤덤히 사실을 짚어 주는데 지현의 반응은 대화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크게 터져 나왔다.
“말 안 했어? 서류 안 넣었니?”
머그컵을 내려놓고 풀썩거리며 돌아앉은 지현에게 여신은 첫 출근 날의 기억을 더듬어 대답해 준다.
“외국인등록증은 복사하더라. 그거 말고는 별다른 요구 없었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지현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돌아앉았다.
“하긴, 근로계약 하는데 서류 수십 가지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학적부도 인터넷 접속 한 번이면 다 나오고.”
그녀들의 직업군은 정규직하고는 거리가 멀다.
삼 년 동안 세 군데의 언론사와 계약을 맺었던 지현은 마지막 계약이 끝난 후에는 어느 언론사와도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불안정한 계약 상태를 유지하면서 갖은 간섭과 속박을 고스란히 참아 내느니 차라리 배고픈 프리랜서가 낫겠다 싶어서 내린 결론이었다.
지난 사 년간 여신을 지켜본 결과로는 심리상담 쪽도 썩 나아 보이지는 않았었다. 심지어 여신은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직업상담 일을 하지 않았던가.
시선은 TV화면에 둔 채 생각에 잠겼던 지현은 문득 생각난 것을 끄집어냈다.
“야, 거기 대표 진짜 재벌 3세니?”
“몰라.”
“왜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
“물어보지?”
“출근한 지 겨우 보름 된 신참이? 그것도 액세서리처럼 딸려 다니는 내 신세에? 꽃뱀 같지 않겠어?”
나란히 앉아 앞만 보며 나누던 짧은 대화가 또 끊어졌다. 그녀들에겐 익숙한 대화 방식이다.
“행동거지를 보면 정말 그쪽인가 싶긴 해.”
이번에는 여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수 없어?”
“좀 그래. 간섭 심하고, 말투 냉랭하고, 표정 날카롭고…….”
“그리고 또 뭐? 어떤데?”
지현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관심을 보인다.
“잔소리가 많아. 연습생들하고 있을 때 블라인드 내리지 마라, 너무 가까이 앉지 마라, 냉정해야 할 때는 적당히 냉정해야 한다, 외근은 자기한테 직접 허락 맡고 나가라, 남자 직원들하고 단둘이 외근 나가지 마라,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만 먹어라, 정장 입지 마라, 머리 올리지 마라,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라, 여직원들한테 휘말려서 남 험담하는 거 듣고 있지 마라…….”
한참을 떠들었는데 지현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여신은 말을 하다 말고 힐끔 옆을 돌아본다. 지현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져 있다. ‘재수 없다.’ 얼굴에 쓰여 있는 답을 알아차린 여신은 ‘큭.’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보스가 아니라 남편이야?”
한참 만에 입을 연 지현은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다.
“뭐래니?”
여신은 기가 막혀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야, 남편도 아닌데 그런 간섭까지 하는 거 보니 텄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어. 이래서 지라시는 믿으면 안 된다니까.”
여신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몰디브에서 그가 사라지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녀의 남편이 됐을까…….

***

며칠 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앞으로 나온 무진은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같은 자리만 맴맴 돌고 있다. 다가오는 차 소리가 들리면 멈춰 서서 기대감에 찬 눈을 붙박았다가 스쿨버스나 학원버스를 타고, 혹은 엄마나 아빠의 차를 타고 떠나는 아이들의 모습만 확인하고 다시 움직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무진아!”
한참 만에 들려온 반가운 목소리에 무진은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일해야 되는데 나 때문에 어떡해?”
눈이 마주치자마자 걱정을 늘어놓는 아들에게 여신은 미소로 답했다.
“괜찮아.”
‘히히.’ 그제야 소리 내 웃으며 조수석에 오른 무진은 엄마가 차에 타기를 기다렸다가 혼자 세워 둔 제 계획을 말한다.
“집에 혼자 있어도 돼. 숙제하면서 얌전히 있을게.”
여신은 무진의 생각이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실 스터디 선생님의 사과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집까지 최대한 빨리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아이를 둔다는 게 영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사무실에 없었다. 외부 미팅 후 곧장 퇴근할 거라는 주영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안도의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나왔었다. 같은 층의 다른 이사들이야 강수보다 더 바쁜 사람들이니 걱정 없다.
여신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아이의 계획이 실행되기 어려움을 알려 주었다.
“미안하지만 그렇겐 안 되겠는데?”
“왜? 엄마 퇴근했어?”
“아니, 집까지 갔다 오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엄마 사무실에서 숙제해.”
“진짜?”
무진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기쁨이 넘실대는 동그란 얼굴이 사랑스러워 여신은 아이의 볼을 잡고 장난스레 흔들었다.
“응, 진짜.”
무진은 뺨이 늘어난 채로 제가 알고 있는 최고의 탄사를 외쳤다.
“완전 쩔어!”

역시 그녀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텅 비다시피 한 팔 층에서 여신과 무진은 각자의 일에 빠져 오후를 보내는 중이다.
똑똑.
“네.”
여신은 기계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든다. 조용히 열리는 유리문 뒤에는 엄하기로 소문난 최 전무가 있다. 여신은 얼른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전무님 어쩐 일이세요?”
“뭐 좀 전해 주려고.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야?”
여신은 저도 모르게 긴장한다. 무사히 오후 시간을 넘기고 퇴근하는 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최 전무에게 들키다니 난감한 일이다.
“제 아들이에요. 오늘 스터디가 갑자기 취소돼서.”
“이렇게 큰 아들이 있었어? 어이구,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을 몰라봤구먼.”
장희가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자 여신은 나직한 투로 아이를 불렀다.
“무진아 인사해야지.”
여신의 조용한 재촉에 아이가 고개를 들자 장희의 웃음기를 머금은 눈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차무진입니다.”
“어, 그래.”
장희는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거린 후에도 꼼짝 않고 서서 아이를 관찰하고 있다.
“고놈 희한하네…….”
“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에 여신이 대꾸하자 장희는 그제야 시선을 돌려 딴소리를 지껄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잘생겼다고. 우리 막냇동생네 딸내미가 딱 요만해. 소개시켜 주고 싶을 만큼 잘생겼네.”
평소에 듣기 힘든 전무의 웃음소리가 놀라워 여신의 눈이 동그래지지만 이내 제 모습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