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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



대해의 제왕 1권(1화)
프롤로그


새하얀 구름이 장식하는 청명한 하늘, 그 아래로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 구름을 뚫고 등장한 태양이 빛을 뿌려 해수면에 부딪히자 바다는 마치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듯 아름답게 반짝였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할 대해의 아름다움. 바다는 그 모든 것을 간직한 채 영원한 보석으로 남아 있어 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내 변화가 찾아왔다.
구오오오오오오!!
순백의 구름을 밀어내고 빠른 속도로 하늘을 장악해 가는 먹구름이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맑았던 하늘은 곧 어둠으로 뒤덮였다.
콰르르릉, 콰르릉!!
하늘 전체를 뒤덮은 먹구름 속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전기에너지가 생성되어 가는 소리였다.
먹구름은 스스로 포용할 수 없는 과도한 에너지를 바다를 향해 뱉어 냈다.
쿠르르르르르릉, 콰르르르릉!!
그러자 해수면을 향해 수십, 수백의 천둥, 번개가 떨어져 내리며 장관을 연출했다.
그리고.
구오오오오오오오!!
바다를 통째로 빨아들일 것만 같은 거대한 토네이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직경이 2킬로미터에 이르는 수십 개의 거대한 토네이도는 마치 하늘을 부셔 버릴 듯한 사나운 기세였다.
저 깊은 해저에는 해저 화산지진이 발생하며 바다를 뒤흔들었다.
콰지지지직, 쩌어어엉! 콰드드드드득!!
해저의 지형 자체를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지각의 움직임으로 바다 위에는 2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세상을 삼킬 듯 대지를 향해 밀려 나갔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고 있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순식간에 지옥의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쐐애애애애애애액!!
그 지옥의 바다에 거대한 해일을 타고 유영하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구오오오오오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극고음의 괴성을 지르며 나타난 존재.
그 정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지게 만드는 동해 바다의 제왕, 수룡 매그나탄이었다.
쿠아아아아앙!!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300미터가 훌쩍 넘는 바다의 대괴수는 산처럼 일어난 해일을 반으로 가르며 대양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매그나탄의 양옆은 그 만큼이나 거대하고 강인해 보이는 두 마리의 수룡이 호위하듯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세 마리의 거대한 수룡들은 현세에 강림한 지옥의 바다 속에서 그 당당한 자태를 잃지 않으며 서쪽으로 헤엄쳐 나가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릉, 번쩍!!
그때 매그나탄의 주위로 다량의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너무나도 웅장하고 강인한 그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매그나탄, 속도를 높여라.”
구오오오오오오!!
동해 바다의 주인인 수룡 매그나탄의 머리 위에 서서 세 마리의 수룡보다 더 당당하게 대해 전부를 눈에 담고 있는 한 명의 인간.
세상을 모두 불태워 버릴 정도로 거대한 화염을 눈동자 속에 담고 있는 청색 머리의 남자.
현세에 지옥의 바다를 불러낸 주인공, 바로 그가 세상을 향해 크게 외쳤다.
“내가 돌아왔다!! 이 바다의 주인인 내가 돌아왔다!! 크하하하하하하하!!”
그의 외침에 대해의 모든 생명체들이 숨을 죽였다.
콰르르르릉, 번쩍!!
구르르르르르르릉.
뿐만 아니라 그의 주위로 무수히 많은 수의 낙뢰가 떨어져 내렸고 엄청난 수의 토네이도가 새로 생겨났다.
구오오오오오, 쩌저저저저적!!
해일은 더욱 높아졌고 수룡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빙하가 생겨나 해수면 위로 떠올랐다.
남자가 웃음을 멈추었다.
이내 그의 표정이 북해의 빙하보다 더 차갑게 변화하며 주변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변화에 세 마리의 거대한 괴수들도 숨을 죽이고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두 눈동자만큼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나 대해의 제왕이 말이다!!”



1. 진화의 시작(1)


나는 키가 작지도, 크지도 않다.
대한민국 평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외모가 뛰어나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형편없이 못생긴 것도 아닌 평범한 편이다.
나는 수학을 잘하지 못하지만 산수 능력은 뛰어나다.
숫자를 좋아해 정해진 숫자를 외우거나 사칙연산 정도의 계산은 빠른 편이지만 응용력이 약해 고난이도의 수학 문제는 잘 풀지 못한다.
나는 기억력이 좋아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 사물의 명칭 등은 한 번 들으면 잘 잊어 버리지 않는다.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예측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실천력이나 행동력이 약해 처음해 보는 일을 과감히 시도한 적이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전한 국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평균 이하도 평균 이상도 아닌 보통의 남자.
나 천종환은 그런 남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잠을 늦게 자는 편이고 잠이 많은 편이라 아침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아 놔, 제기랄!”
그래서 아침에 자주 지각을 한다.
그런고로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대에 내 방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가방은 어디 간 거야? 이쯤 어딘가에 놔뒀는데?”
급할 때 마다 꼭 뭔가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정해진 출근 시간은 9시, 나는 8시 49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올려다보고는 가방 찾기를 포기한다.
“에라이, 퇴근하고 나서 찾자.”
항상 들고 다녀서 없으면 허전한 가방이지만 회사에 필요한 무언가가 들어 있지 않았기에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끼익, 쾅!
나는 반쯤 내려간 양말, 구겨 신은 구두, 어깨에 둘러멘 외투, 그리고 이에 물고 있는 넥타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리할 생각으로 집을 나선다.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15층.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에 나는 차림새를 정리한다.
―9층입니다.
9층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선다.
꽤나 미인이기에 평소 같았으면 그녀를 의식해서라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얌전히 있을 터였지만 지각이 확실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스스슥, 휘릭.
보통 5분이 넘게 소요되는 넥타이 매기가 10초 만에 이루어졌다. 물론 모양새가 엉망이지만 넥타이는 버스 안에서 고치기로 한다.
머리를 감고 물기를 털지 않아 물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있는 머리를 왼손으로 다듬으며 오른손으로 외투를 몸에 걸친다.
엘리베이터의 오른쪽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며 출근 준비를 하는 나를 옆의 여자가 힐끗 쳐다보며 이내 시선을 돌린다.
조금 창피하지만 어쩔 수 없다.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빠르게 뛰어나간다.
내가 출근을 위해 타야 하는 104번 버스는 정확히 십 분 간격으로 분침이 3분을 가리킬 때에 집 근처의 정류장에 도착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8시 53분이 되면 집 건너편의 정류장에 10초 이하의 오차로 104번 버스가 도착한다는 말이다.
고로 8시 52분 11초인 지금 당장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으면 그 버스를 타지 못할 확률이 높아진다.
“제발, 바뀌어라!!”
횡단보도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제발 내가 도착하기 전에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기를 기도했다.
몇몇 행인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만 그런 시선은 무시한다.
왜냐하면 내가 횡단보도에 도착하자마자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망설일 새 없이 바로 횡단보도 위를 달린다. 죽어라 달리면 저 멀리서 오고 있을 104번 버스를 탈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버스를 타면 나의 지각 시간은 10분이 되고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 시간은 20분이 된다.
지각하면 안 돼!
내 머리는 오로지 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왼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화물 트럭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던 중 들려오는 엄청난 소음에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대형 트럭을.
‘안 돼!!’
나의 입이 그렇게 외치기 전에 일은 일어났다.
쿵!!
나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눈앞으로 천둥이 치더니 시야가 곧 흐려졌다.
“꺄아아아악!!”
“사고다!!”
“119, 119!”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그렇게 좋지 못한 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소음들은 이내 사라졌다.
이내 나의 의식은 저 어둠 속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바다를 떠다니고 있었다.
햇빛이 닿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심해 속이었지만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볼 수가 있었다.
‘꿈인가?’
그렇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바다 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였다.
무리지어 헤엄치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 물결 따라 움직이는 해초들, 바닥을 장식하는 불가사리며 조개들, 그리고 눈앞을 떠다니는 수많은 플랑크톤들.
그중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어두운 바다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었다.
그것은 손톱만큼이나 작은 해파리들이었다.
그들은 어두운 심해 속에서 마치 우주를 장식하는 별들처럼 밝게 빛나며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천천히 그들을 따라간다.
해류에 몸을 맡긴 채 바다와 조화되어 흘러가는 별들.
나는 별을 쫓아 더 깊은 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꿈이지만 너무나 현실 같은 느낌이다.
눈앞의 바다는 꿈처럼 몽롱하지 않았다. 의식은 너무나도 또렷했고 주변의 상황들을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꿈이지만 현실처럼 느껴지는 바다 속에서 나는 자유로이 헤엄친다.
그러다 별들이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나는 불현듯 공포에 몸을 떤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
깊고 깊은 바다 속에 혼자 버려진 공포심이 내 몸을 옥죄어 온다.
나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저 높은 곳으로, 수면을 향해, 밝은 곳으로 가게 되면 이 공포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손이 내 몸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내 몸은 어둠 속에 묶여 버렸다.
그리고.
번쩍!
나는 심연의 어둠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거대한 한 쌍의 눈동자를.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핏빛 눈동자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르르르르르.
울부짖는다.
세상을 씹어 삼킬 듯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놈이 으르렁거린다.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다.
숨이 막혀 온다.
“쿠오아아아아아아악!!”
괴물이 그 거대한 입을 벌린다.
나는 그 살벌하고도 무서운 광경에 의식의 끈을 놓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