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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정아는 이재하 시인이 무척 다정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죽고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습관적으로 문학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 뒷정리를 마치고 묵직한 택배 상자를 들어 봉단이 운영하는 떡갈비집으로 향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그 앞 그늘에 봉단과 동갑내기인 영순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봉단이 먼저 시무룩해 보이는 영순에게 다가갔다.
“영순아. 무슨 일 있어?”
봉단이 영순 옆에 같이 앉아서 묻는다. 영순이 말했다.
“요즘 내가 간을 잘 못 보나 봐. 음식 맛이 없어…….”
정아가 영순이 앉은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숙여 영순에게 말했다.
“왜요. 저 지난번에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호박범벅을 세 그릇이나 먹었는데.”
타지에서 온 정아가 쓸쓸할까 봐 툭하면 반찬을 나눠 주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서운한 말씀을 하실까. 정아가 의아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줍음 많은 영순이 더 말을 안 하자 봉단이 재촉했다.
“왜? 무슨 일인데?”
“내가 보건지소 의사한테 반찬을 해다가 줬는데. 나갔다가 변소 가려고 다시 들어가니까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더라구.”
그 말에 놀란 정아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
“반찬을 버려요? 왜요?”
“그걸 내가 아나……. 그 의사 양반이 원래도 무뚝뚝해서. 속을 알 수가 없어.”
영순은 손맛이 좋은 게 자랑이었다. 고향은 산이고 시집은 바닷가로 와서 육지 음식도, 바다 음식도 잘했다. 부끄럼을 많이 타서 자기 입으로 자랑은 잘 못 해도 옆에서 맛있다고 해 주면 대답 않고 배시시 웃었다.
정아는 마음이 아픈 다음에, 열이 받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봉단이 말했다.
“그 양반이 좀 인간미가 없긴 하지.”
“서울 사람 입에 안 맞았나 보네.”
영순의 울적한 목소리에 정아가 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웃기는 사람이네 정말! 할머니. 그걸 절 줘야지, 뭐 그런 사람한테 가져다주셨어요? 절 주셨으면 맛있게 먹었을 텐데! 할머니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옆에서 화를 내 주니 영순은 마음이 좀 풀려서 슬쩍 웃었다.
“의사 양반이 봐 주니까 그렇게 아프던 몸이 한결 나아서……. 아직 먹을 만하지? 그래도 내가 밥해 온 세월이 얼만데. 젊은 사람이라 입맛이 까다로웠나 봐.”
됐으니 이제 걱정 그만하라는 듯 말하셨지만 정아의 속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손자뻘인 그 의사를 먹이려고 아픈 몸으로 열심히 만들어 가셨을 텐데 그걸 버리다니.
영순 할머니의 몸에서도 마음에서도 진을 쭉 빼 간 것 같아 마음이 욱신거렸다.
그 ‘보건지소 의사’라는 남자는 하도 숙소에만 처박혀 있어서 정아는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이 작은 동네에서 그러기도 힘든데.
정아가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할머니들은 이 주변에 젊은 미혼 남녀가 얼마 없으니 둘이 한번 만나 보라고 권하곤 했다. 얼굴도 그렇게 잘생겼고 나이도 정아와 딱 세 살 차이라면서.
그런 할머니의 말들을 민망해하며 웃어넘기던 차였다. 그런데 기껏 만든 음식을 버렸단 이야기를 들으니 얼굴도 모르는 그가 미워진다.
그날 밤 정아는 깊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래도 한번 찾아가 보지 않으면 이 화가 안 풀릴 것 같았다.

***

문학관은 월요일에 휴관했다. 정아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하고, 일요일은 소하와 격주로 한 명씩만 문학관에 나갔다.
일요일 근무를 하고, 월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그녀가 하품을 하며 옥외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정아는 2층짜리 건물 옥탑방에 살았다. 이 2층짜리 건물에는 보육원이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보육원 바닥 청소를 하고 있던 태진이 흘기며 말했다.
“또 왔어, 또. 젊은 애가 왜 맨날 여길 와.”
태진은 오십 대 중반의 여의사로, 내내 해외에서 근무하다 이제 막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 보육원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 지금은 잠시 여기 눌러살고 있었다. 조만간 지진 구호 활동을 위해 A국가로 떠나기 때문에 그 전까지만 이 보육원을 맡기로 했다.
어깨 조금 아래까지 오는 머리칼을 찰랑거리는 태진은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무척 건강한 인상을 주었고, 실제로도 굉장히 체력이 좋았다.
정아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전 우리 꼬맹이들 영어 가르쳐 주러 오는 거거든요?”
“으이구…….”
태진이 또 ‘그럴 시간에 연애 좀 해라’라며 잔소리하기 위해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정아가 잽싸게 말을 돌렸다.
“아. 그보다 태진 쌤. 어제 진짜 열 받는 얘기 들었어요. 영순 할머니 있잖아요. 가끔 보육원에 음식 가져다주시는.”
“응. 알지. 엄청 수줍음 많은 할머니?”
영순은 종종 음식을 만들어 여기 보육원에 가져다주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걸 말없이 보기만 하다가, 그게 에너지라도 된 것처럼 힘이 난 걸음으로 떠나곤 했었다.
“그 할머니가 보건지소 의사한테 반찬을 만들어다 줬는데,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더래요.”
차분히 말하려던 정아가 중간부터 울컥해서 언성이 높아졌다.
“말이 돼요? 부잔가……. 아니, 부자여도. 어떻게 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을 버려요?”
“그러게. 그 녀석 참 못됐네.”
태진이 맞장구쳐 주면서도 속으론 내심 의아해했다. 정아는 원래 웬만한 것들에 웃으며 좋게, 좋게 넘어가는 타입인데 웬일로 저렇게 뿔이 났나. 사람 좋은 것도 지나치면 걱정거리였다. 늘 웃고 상냥한 그녀의 속에서 뭔가가 짓눌려 썩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태진은 처음, 열다섯 살의 정아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정아의 몸에 있던 상처들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다. 저 애가 영영 화내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줄 알고.
그 보건지소 의사에게는 화도 안 날 정도로, 태진은 정아가 화내는 모습이 반가웠다. 정아가 순한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래서 저도 오늘 보건지소 가 보려고요.”
한참 딴생각을 하던 태진이 문뜩 정신이 들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건지소? 오늘? 가서 따지게?”
“네. 왜 버렸는지 알아야겠어요. 영순 할머닌 맘이 약해서 화를 못 내시잖아요.”
씩씩거리는 걸 보니 속이 많이 상했나 보다. 하여튼 저 남 생각하는 오지랖 반만 자기 걱정을 해도 옛날에 남자 친구가 생겼겠네. 태진이 속으로 생각하며 괜히 입을 삐죽거렸다.

***

신희는 며칠째 너무 잔소리를 들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할머니 두 분이 오시더니 중얼중얼 잔소리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할머니가 얼마나 서운해했는지 몰라. 떡갈비집 할머니랑 문학관 아가씨가 달래 줘서 그나마 좀 풀어졌지.”
“……죄송합니다.”
도시락을 버린 후, 영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신희는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해명해야 하는데 온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동네가 얼마나 작은지 동네 사람들이 다 와서 한 소리씩 하신다. 진료를 받고 난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의사 양반. 문학관 아가씨랑 한번 잘해 봐.”
“예?”
대화가 왜 또 거기로…….
말주변 없는 신희는 이럴 때마다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몰라 무척 난감했다. 할머니들이 종종 신희에게 문학관 아가씨를 만나 보라고 중매를 하시는 것이다. 이 동네 젊은 사람이 딱 둘밖에 없는 것도 아닐 텐데. 하긴 젊은 미혼 여자가 동네에 거의 없긴 했다. 젊은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오게 된 이주 여성이었다.
“그렇게 착한 아가씨도 없어. 얼굴은 또 얼마나 예쁜데.”
“네.”
“의사 양반은 하도 무뚝뚝해서, 그런 사근사근한 아가씨가 딱이라니까.”
“아. 그렇군요.”
신희가 심심한 반응만 보이자 결국 할머니들도 포기하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선다. 신희가 말을 덧붙였다.
“할머니. 큰 병원 꼭 가셔야 해요. 내과요. 알겠죠?”
그러자 알았다는 듯이 손만 휘휘 젓고 나가신다. 저러고 다음에 또 보건지소에 와서 ‘여기 의사 양반이 있는데 왜 큰 병원을 가. 돈 아깝게.’ 하실 것이 뻔하다.
보건지소는 한계가 있었고 신희의 전공이 아닌 과에서 해결해야 할 증상이 수두룩했다. 화술 공부를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어르신들을 병원으로 보낼 수 있을까.
잔소리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점심시간이 되자 신희는 보건지소 2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숙소는 사람이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신희가 슬리퍼를 신고 베란다 건조대에 널어 둔 빨래를 만져 보았다. 아침에 널어놓고 나갔는데 해가 워낙 좋아 벌써 다 말랐다.
점심 식사로 냉장고에 넣어 뒀던 주먹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그 잠깐 사이에 빨래를 걷고 식탁 앞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공부를 했다. 이렇게 여유 있어 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처음에는 보건지소 사람들이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었지만, 신희가 외식을 못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따로 밥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지 못하니 친해지는 속도가 언제나처럼 더뎠다.
신희가 주먹밥을 다 먹고 책을 덮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아 담배 한 대를 물고 옥외 계단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거기 서서 담배를 피우는데, 멀리서부터 씩씩거리며 걸어오는 여자 둘이 보였다.
“진짜 들어가게?”
소하가 정아를 붙잡으며 물었다. 길에서 우연히 정아를 만나서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보건지소에 가서 의사와 따진단다. 동네 사람들을 다 도와주고 다녀서 오지랖이 넓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소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도 정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응. 따질 거야.”
“네가 찾아가서 따질 일은 아니잖아?”
소하가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니 욱해 있던 정아가 조금 진정하는 기미를 보인다.
신희가 담배를 한 모금 더 깊이 빨고 재떨이에 비벼 껐다. 설마 싶어 계단 몇 개를 내려가서 정아의 얼굴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아니겠지.”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아 당황했다.
신희가 1층에 내려갈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정아가 말했다.
“그래도. 사과는 하라고 할 거야. 할머니한테.”
“너도 진짜. 오지랖이 태평양이다.”
소하가 포기했는지 한숨만 쉬었다. 정아는 영순 할머니가 유난히 애틋했다. 잠깐만 이야기해도 울컥 눈물이 날 정도로 고달픈 삶을 사셨어도, 굶주리던 자신의 어릴 때를 떠올리며 음식을 챙겨 보육원에 종종 찾아오시는 그 걸음이 자꾸만 떠올랐다.
“가 볼게. 내일 봐.”
정아가 씩씩하게 인사하더니 보건지소 앞으로 향한다. 결국 소하는 한숨을 쉬며 바로 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보건지소 건물 앞에는 트럭 몇 대가 있고 지역 이름이 적힌 깃발, 태극기, 보건지소 깃발 이렇게 세 개가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에 금연 포스터가 있고 동네 사람들 몇 명이 로비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정아가 지나가던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를 붙잡았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여기 남자 의사 선생님 계세요? 키가 큰.”
할머니들에게 들은 인상착의를 말하자 여자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아, 그게…….”
정아가 자초지종을 말하려던 때였다. 여자가 정아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저 선생님 말하는 건가?”
그 말에 정아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왔는지 그녀의 뒤에 할머니들 말대로 키가 엄청나게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정아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입구에 금연하자고 포스터까지 걸려 있는데 의사에게선 담배 냄새가 났다. 가글을 해서 산뜻한 향기가 나긴 했지만, 가운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는 모양이다. 신희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 웃었다.
“들어가서 말씀하시죠.”
그가 말하며 진료실을 턱짓했다. 정아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정아의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물었다.
“이신희 선생님. 아는 분이에요?”
“아무튼 저 찾으러 오신 것 같긴 합니다.”
신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신희’라는 이름에 정아의 눈이 커졌다. 가운을 입은 여자는 “별일이네.” 하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원래 제가 있던 진료실로 들어갔다.
정아가 커진 눈으로 신희를 올려다보기만 하자 그가 고개를 조금 숙여 물었다.
“나 찾으러 온 거 아니에요?”
“네? 아, 맞는데……요.”
그가 맞을까. 마지막으로 본 신희가 열여덟 살. 14년이 지났다. 신희가 몸을 돌리더니 진료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그럼.”
그의 뒷모습에 정아는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첫사랑. 책을 읽으며 걸어가던 그 세 살 위의 첫사랑이다. 어릴 땐 그렇게 예쁘장하던 소년이 삼십 대가 되어서는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정아가 신희를 뒤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그가 모른 척 물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네? 아, 아픈 게 아니라…….”
“아픈 게 아니면?”
신희가 되묻자 정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에게 따지러 왔던 건지.
정아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첫사랑일지도 모르는 남자와 단둘이 있는 이 진료실이 숨 막히고 불편했다.
그녀의 불편한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희가 물었다.
“반찬 때문에 왔어요?”
어떻게 알았지? 정아가 움찔했다.
“할머니가 얼마나 속상해하셨는지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