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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사람이 좋아
-벨벳골드마인




조용한 사람이 좋아 1화
프롤로그


우리는 친구에서 그렇고 그런 사이로 발전한, 평범한 관계였다. 어쩌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서로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었다. 가까이 있는 떡이 먹기 좋은 떡이라고― 그냥저냥 육체적 교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정말 별 볼 일 없는 시시한 이야기잖아? 특별히 추억할 만한 것도 없다. 남들처럼 울고불고 감정에 충실하게 격정적으로 연애하고, 뭐 이런 본격 연애담도 아니다.
그렇네. 정말 상대가 그 녀석뿐이었고 그래서 그냥 그 녀석과 관계를 맺었다……인가? 적당히 남들 시선 피해서 슬쩍 스킨십을 즐기고, 그 스릴이 또 뭐 대단한 거라도 된 듯이 흥분하곤 했다. 일상 속에서 몰래 쟁취하는 그 비일상적인 나날들에 취해 있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아니, 사람이란 변하는 것이다.
한 학교, 우리 둘밖에 없던 세계에서 몰래 손을 잡고, 허리를 만지고, 그런 것들로 솜털이 일 정도로 흥분했던 세계는 우리가 졸업하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 그러니까 우릴 둘러싼 세계가 넓어지면서 새삼 대단할 것도 없는 시시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 둘뿐이던 세계는 더 넓어졌고 더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딱히 사귀었던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거기다 대고 어떤 소유권을 주장할 만큼 우리 관계가 확신에 차 있지도 않았고, 나는 평범한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질투 어린 반응을 하는 것은 쪽팔린다고 생각했다. 뭐, 그 녀석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을지도, 하고 반쯤 자포자기했던 것도 같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더 이상 몸으로 대화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사이보다는 성정체성이 비슷한 오래된 친구 사이가 되는 쪽이 좋겠다고 둘 다 판단했을 뿐이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동창에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던 고작 그런 관계였을 뿐이지만― 내 성장기를 차지한 대부분이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당연히 있어야 할 내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는 상실감에 때때로 울적해졌다.
다들 그렇게 하나씩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면서 변해 가겠지. 다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며 그 녀석이 나보다 먼저 새로운 것으로 채워졌다는 게 별수 없이 씁쓸해지곤 했다.


* * *


푹푹 찌는 더위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아 옷을 입은 채 풍덩, 풀장에 뛰어 들었다. 시원해. 기분 좋아. 풀장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넋을 놓고 있자니 머리 위로 부피감 있는 쿠션이 떨어졌다.
아프진 않아도 깜짝 놀랐다. 머리에 충격을 준 쿠션은 그대로 물 위로 텅, 떨어져 내렸다. 멍하게 그걸 보다가 날벼락을 내린 당사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수영복 차림에 담배를 꼬나문 재규어는 날렵한 눈매로 씨익 웃음 지어 보였다.
“더위 먹었냐?”
목소리도 섹시한 자식. 대답하지 않자 놈은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다리를 물에 담그고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는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얼굴 좀 들어 봐.”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마주하니 그는 만족스러운 듯 손을 내려 내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생각해?”
“네 생각.”
“새끼, 닭살은.”
고개를 숙인 녀석의 코가 귓바퀴를 스쳤다. 누가 고양이 과 아니랄까 봐 날름, 목을 핥은 놈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킥킥거렸다. 이 녀석도 참, 가만히만 있으면 정말 멋진 놈인데 나사가 대여섯 개는 풀린 듯 굴어서 좀 깰 때가 많았다. 목소리는 듣고만 있어도 꼴릴 만큼 섹시한 녀석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손에 걸친 담배를 물에 치직, 꺼트리고는 어디론가 던져 버린 녀석은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왔다. 더럽게. 인상을 썼지만 어차피 저놈 풀장이고 저놈 집이다. 뭘 하든 제 마음인 것이다.
정면에 선 그와는 눈높이가 거의 똑같았다. 누가 더 큰지는 모르겠다. 상대방이 키가 180이라고 말하면 나는 181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게 사내새끼들의 당연한 본능이니까. 신체검사 받아서 인증하지 않는 이상 뭐라고 지껄이든 믿을 게 못 되었다.
녀석은 물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내 셔츠를 벗기며 콧노래를 불렀다. 팔을 들어 벗기기 쉽게 해 주었더니 기쁜 듯 몸을 밀착해 온다. 하복부가 마주 닿아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낮게 숨을 내쉬었다. 쪼는 듯한 버드 키스가 잠시도 쉬지 않고 내 입술을 괴롭혔다. 녀석의 뒤통수를 붙들어 보복하듯 아랫입술을 깨물자 예의 그 방정맞지 못한 키득거림이 뒤따랐다.
스테디한 관계이긴 하지만 조금만 더 관능적인 반응을 보일 순 없냐? 탓하듯 녀석의 바보 같은 입술을 핥는 동안 하체의 흔들림은 점점 커졌다.
하아― 숨을 토해 내는 녀석의 눈빛이 색정적으로 젖어들어 갔다.
30대가 되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이제 와서 빼고 자시고, 내숭 떨 거리가 없어졌다는 점정도? 물론 부끄러울 것도 없이 욕구에 솔직해지는 건 좋지만, 정력이 딸리는 건 문제였다. 발기하긴 했지만 여기서 뽑으면 이 녀석 페이스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좋은 집에서 좋은 거 많이 처먹고 잘 커서 그런가. 튼튼하기 그지없는 이 녀석은 몇 살 더 어린 티라도 내는 건지, 정력도 좋아서 한번 불붙으면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 괴로워지는 건 나였다.
“흐음.”
목뼈에서 등골을 따라 점차 아래로 훑는 내 손에 녀석은 흠칫 흠칫 떨었다. 아아, 이 정직한 반응 때문에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게 된다니까.
못 견디겠다는 듯 애달프게 토해 내는 녀석의 낮고 허스키한 신음 소리가 좋았다. 건방진 얼굴이 제법 귀엽게 풀리는 것도 괜찮고 재규어처럼 날씬하고 우아한 근육이 부드럽게 약동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단단하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꽉 움켜쥐자 녀석은 낮게 으르렁 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하아, 시발.”
못된 입 같으니라고. 밑에서 올려다보며 턱을 깨물어 주었다.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고개를 흔들어 피하는 녀석 때문에 깨문 턱을 놓친 나는 대신 목을 깨물었다. 그리고 흡착하여 빨아들였다.
“아!”
녀석의 사소한 반항은 단번에 그쳤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까지 갈 풋풋한 정열은 우리 에게 없었다. 음란하게 물속에서 패팅을 즐기는 동안 녀석의 익어 가는 육체를 구경하고 장난치듯 달궈 놓는 정도의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
물속에서 펠라치오 하는 건 어떤 기분이려나? 녀석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바지가 질척인다. 녀석은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올랐으면서도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 채고는 격하게 밀어 냈다. 내 목을 잡고 물 밖으로 끌어낸 녀석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투덜거렸다.
“아, 씨발. 이야기 좀 하자. 넌 어떻게 된 게 밥 처먹고 그 짓만 하냐?”
누가 먼저 도발했는데.
나잇살이나 먹어서 욕하고 그러면 못 쓴다. 귀엽게 보이는 건 한때라고. 쯧쯧.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물 때문에 두 손으로 머리를 뒤로 넘긴 나는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하고 싶은데?”
왜, 새삼 연인 놀이라도 하고 싶냐?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그를 올려다보자 저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얼굴을 붉혔다.
“큭큭!”
웃음이 거슬리는지 불만에 찬 녀석이 불퉁하게 뭔가 말하려는 순간, 입술을 겹쳤다. 그리고 다디단 과실이라도 빠는 것처럼 농염하게 그의 혀를 찾아 빨았다. 숨막혀서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말아야지, 하고 핥고 농락하는 동안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이에 대화는 무슨 대화. 난 조용한 사람이 좋았다.


미치도록 따분한 것도 아니고, 환장하게 신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저냥 평범하게 먹고 사는 게 내 특기다.
눈에 띄지 않으면 손해 볼 일도 없다. 그렇다고 득 볼 일도 없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삶 아닌가? 전생에 무슨 선행을 쌓았는지,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무리 없이 평온한 일상을 이어 왔다.
매달 고향의 부모님 앞으로 돈을 얼마간 부쳐 드리고, 세금 내고, 집세 내고― 뭐 그렇게 빠듯하게라도 한 달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게 내 얼마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요란한 건 싫다. 기대에 따른 부담도 싫다. 유유자적 흘러가는 대로 살 수 있는 게 좋은 거다. 이 정도가 내 소박한 인생관이랄까?
또 덧붙이자면, 나는 ‘소박함’을 동경하는 사람이었다.


나름의 휴가도 끝나고 월요일 늦은 오전, 가게에 나갔다. 평소에도 개점 준비할 시간에는 알바들이 눈치 보지 않도록 여유롭게 출근하는 편이었다. 워낙에 기척 없이 다녀서 그런지 그만 알바생들의 키스씬을 목격하고 말았다.
역시 젊은 애들은 다르네. 아침부터 기력도 좋지요.
벽에 기대서서 물끄러미 구경하는데, 한창 열 내던 녀석이 할딱거리며 파트너의 어깨를 움켜잡다가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화들짝 놀라서 떨어졌다. 꼬마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너!”
“좋은 아침.”
“기척 좀 내고 다녀요!”
과연 이게 세대 차인가? 땡땡이 치고 있는 쪽이 사장님께 호통이라. 우리 때도 저랬었나? 아니, 단지 이건 내 카리스마의 문제인 건가? 아아, 존경받는 사장님이 되고 싶다. 입맛을 다시고는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바 앞에 섰다.
“휴가는 잘 다녀오셨어요?”
“재규어한테 납치당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수다스럽긴.
“일하자. 10분 후 개점이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천성이 게을러서 개점 준비를 서두르지는 않았다. 재고 리스트를 눈으로 훑어보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오전 11시 오픈이긴 해도 그 시간 딱 되면 손님들이 밀려들어 오는 것도 아니고, 서두를 필요 없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언제 눈이 맞았지? 가게 안에서 닭털 날리면서 분위기 흐리면 안 되는데. 우울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흐음, 언제부터냐?
이반계 찻집을 운영한지도 어언 3년. 가끔 모르고 들어오거나 흥미 거리로 접근하는 사람들로부터 커뮤니티 회원들을 보호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큰일은 없다.
알바들은 발랑 까졌어도 할 일은 다 했고 손도 야무졌다. 만사가 태평한 오너의 방임주의 가게 경영에도 적자가 나지 않는 건 전적으로 똘똘한 알바생들 덕택이었다. 그러니까 오너 머리 위에 알바가 있는 것도 별 수 없는 일이지요.
보드라운 면으로 뽀득뽀득 잔을 닦았다. 이 조용하고 단순한 노동은 명상과 한없이 닮아 있어서, 어느 순간이 되면 무아지경으로 멍― 때리게 되는 게 문제다. 반쯤 넋 놓고 작업하다 보면 건전한 노동을 하던 젊은이들이 둘이서만 사라지기 일쑤! 짜식들, 담배 피우러 나갔나? 하긴, 내가 바에 있으니까.
문이 열리고 딸랑, 하는 소리가 첫 손님의 입장을 알렸다. 뭐든지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취향인지라 가게 문에 고전적인 놋방울을 걸어 놓았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
곧장 바 앞에 앉는 이 사람은 인생 통틀어 가장 오래된 친구이다. 그는 여전히 어려 보이는 얼굴에 봄날에 햇볕을 쬐듯 어딘지 나른하고 따뜻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녀석의 묘한 시선이 신경 쓰였다.
“휴가 즐거웠냐?”
녀석이 물었다. 다들 남의 휴가에는 왜 이렇게 관심이 지대한지요? 그냥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 말자 “뭐라도 시원한 걸로.” 하고 주문한다.
일부러 손이 많이 가는 메뉴를 선택했다. 쉐이커에 에스프레소를 넣고 흔드는 동안 녀석이 빙글거리는 얼굴로 “오오! 폼 나오는데?” 하고 유난을 떤다. 코웃음을 쳐 줬지만 가슴께가 뻐근했다.
“쉐이크 카푸치노 나왔습니다.”
“오~ 고마워.”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성진 씨와 만나기로 했어. 외근 나왔다가 어차피 점심시간 끝나고 들어가야 해서 잠깐 얼굴 보기로 했지.”
“닭살.”
코웃음을 쳤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씁쓸함이 배어 나왔다. 10년이 지나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건 전적으로 나의 미숙함 때문이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물었다.
“연애질은 차질 없냐?”
“누가 걱정 안 해도 될 정도로 봄날이다.”
“성진 씨, 좋은 사람 같더라. 너한텐 아깝지.”
“알아. 그러니까 절대 안 놓칠 거야.”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나이의 샐러리맨이 얼굴을 붉히며 말갛게 웃는 모습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쑥스러워하며 방긋방긋 웃는 녀석의 얼굴에 저열한 질투가 샘솟았다. 그래, 좋은 사랑을 하고 있구나. 마침 뒷문 밖에서 사장 몰래 쉬다가 돌아온 알바들이 담배 냄새를 풍겼다.
“어? 오셨네요, 서진 씨. 이 시간에 웬일?”
알바들은 이상하게 이 친구를 잘 따르는 편이었다. 한 녀석은 형~ 형~ 하고 애교를 부리질 않나, 또 다른 한 녀석은 ‘서진 씨’ 하고 어른스럽게 부르긴 하지만 은근슬쩍 말을 놓는 게 여간 편하게 구는 게 아니다.
애교만점 알바들의 재롱에 생글 생글 웃으며 리액션 하는 이 친구가 확실히 아저씨 같은 나랑은 다르게 동안이긴 하지.
선이 가는 얼굴도 그렇지만 반듯한 자세나 에디슬리먼의 슈트가 잘 어울리는 슬림한 몸매도 어려 보이는 데 한몫했다. 색이 옅고 결이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한창 연애 중이라 그런지 단정하지만 젊어 보이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겉보기엔 여기 알바들과도 그다지 나이가 차이나 보이진 않았다.
“엉아,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오마.”
“오너! 친구 분도 오셨는데 어딜 가요?”
뾰족하게 소리치는 알바의 카리스마 앞에 너무 쉽사리 굴복하자니 놋방울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인 이 몸이 공손하게 인사하는데, 알바들은 “성진 씨다!” “성진 씨, 서진 씨 만나러 오셨어요?” 하고 부산을 떨었다. 남성지 화보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당당한 체구에 딱 맞는 슈트를 입은 김성진은 같은 수컷들의 경쟁심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하하.
“휴가는 즐거우셨어요?”
김성진에 말에 나는 이마를 긁적였다. 당신마저 내 휴가에 관심 있는 거요? 아니면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인가? 그냥 희미하게 웃어 보이자 김성진은 “얼굴 좋아 보이네요.” 하고 말하더니 금세 제 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주 그냥 깨가 쏟아지는구나. 외롭다. 그만해라…… 하는 치졸한 마음은 물론 꾹꾹 눌러 숨기고 몇 천원이라도 매상을 더 올리려 부지런히 영업 활동, 제일 비싼 메뉴를 밀어 넣어 주고 나서야 화사하게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그때 또다시 딸랑하고 방울 울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고개를 드니, 재규어가 하품을 하며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 들뜬 얼굴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허. 어째 부지런히 인사하는 건 나뿐인 것 같다. 아예 입을 꾹 다문 알바들을 날 잡고 교육을 좀 시켜야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는데, 김성진 옆자리에 털썩! 앉은 그가 사납게 웃었다.
“어라? 여기서 뭐하냐, 김성진? 오랜만이다.”
김성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서진은 바짝 얼어서 재규어 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친구야, 그렇게 얼 필요 없단다. 이 녀석이 좀 생날라리 같아 보이긴 해도 근본은 괜찮은 애야. 알바들마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더니 “오너, 재료 준비할게요.”, “재고 정리할게요.” 하고 부지런을 떨며 사라졌다.
결국 바 업무는 전부 내 몫이냐?
“주문하시겠습니까?”
“섹스 온 더 비치.”
이 새끼는 우리 가게가 바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 줘야 귓구멍에 접수를 할까?
“칵테일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손님. 메뉴판을 드리겠습니다.”
아침부터 알코올 마시지 마. 마음의 소리를 꾹 누르며 메뉴판을 내밀었더니 이 건방진 새끼는 피식, 사람 속 뒤틀리게 만드는 웃음을 입꼬리에 매달고는 “아무 거나 비싼 걸로.” 하고 건방을 떨었다.
귀엽네. 3일 밤낮으로 울던 얼굴이 저렇게 건방 떠는 걸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그래, 자기가 아직 10대 청춘이라고 착각하는, 머리가 덜 여문 놈이니 귀엽게 봐 줘야지 어쩌겠어? ……나도 이렇게 어른인 척 여유를 부리지만, 실은 정말 이 녀석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시종일관 웃는 낯짝의 내가 신기한지 김성진이 내게 말하는 척하면서 재규어를 향해 빈정거렸다. 평소에는 매너로 빚어낸 듯한 녀석이 말이다.
“철 안 든 손님을 상대로도 여유만만하시네요. 과연 오너.”
“귀여우니까요.”
여기 이 손님은 웬만큼 건방진 건 전부 용서될 정도로 귀여운 구석이 있지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재규어의 무례한 앞발을 들어 올려, 의외로 섬세한 손가락 위에 입을 맞추었다.
크음, 신음을 흘린 그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을 대룩대룩 굴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걸어 쌩하니 화장실로 자리를 피해 버렸다. 쿡쿡, 귀엽기도 하지.
“실례.”
경이롭다는 듯 쳐다보는 서진에게 윙크를 하며 바에서 나왔다. 창고 문을 똑똑 두드려서 알바에게 부재를 알리고는 느긋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 꼬마들 취향의 BGM, 쿨재즈의 선율이 신경질적으로 등 뒤에 따라붙었다. 잠겨 있는 화장실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문 열어, 새끼 고양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시발.” 하는 낮은 욕지거리와 함께 찰칵 문이 열렸다.
“도와줄게.”
봐, 귀엽잖아. 나는 아무데서나 발정하는 고양이가 아직 성가시기보다는 귀여웠다. 화장실로 들어서며 뒤로 문을 잠갔다.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를 쓰다듬어 줄 애정 정도는 내게도 있었다.



1. 쓰다듬어 주세요, 야옹~! (1)


재규어의 본명은 류재인. 의외로 중성적인 느낌의 예쁘장한 이름이다. 워낙에 미친놈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우리 알바들은 물론이고 이쪽 사람들은 그의 그림자만 나타나도 엮이지 않으려고 피하면서도, 선망의 시선을 보내고는 했다.
실은 그렇게 지랄 맞은 성격도 아니었다. 이놈은 그냥 금수저에 막내아들인 데다가 본인도 부자인― 성격이 살짝 까탈스러운 전천후 매력남일 뿐이다. 인물값 안 하는 인간도 있나? 예쁘게 봐줄 수준이지, 뭘.
애달프게 매달려 혀를 빨아 오는 녀석의 허리를 단단하게 받쳤다. 오른손으로 녀석의 부푼 주니어를 당기며 문지를 때마다 달콤한 신음 소리를 흘리는 게 여간 섹시한 게 아니었다. 휴가 내내 그 짓만 했더니 아주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게 되어 버린 내 새끼고양이가 귀여웠다.
내 아기 고양이는 생각보다 애교도 많아서 눈 위에 베이비 키스를 내려놓으면 금방 안달 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치열을 톡톡 더듬으며 칭얼거렸다. 흐으~응, 야옹야옹 우는 녀석을 흠뻑 빨아 마시는 동안 잡고 있던 날씬한 허리 근육이 우욱, 하고 수축했다.
미끈거리는 쿠퍼액으로 젖은 내 손바닥이 바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윽고 손안에 울컥거리며 쏟아진 정액의 느낌에 나도 덩달아 서 버렸다.
하아…… 사정감에 숨소리마저 멎은 채 굳어 있는 녀석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녀석은 사정 후에는 늘 하아― 하아― 가늘게 숨을 몰아쉬며 나른하게 힘이 풀려 버리곤 했다. 하는 수 없이 손을 흐르는 물에 씻고 손수건으로 녀석의 뒤처리를 해 주었다.
“야, 너는?”
녀석의 시선이 내 바지 앞섶을 향했다.
“내가 빨아 줄게.”
“됐어.”
이 형아, 안 그래도 요즘 스테미너 딸린다. 너는 어디서 보약 지어 먹냐? 부럽다, 인마. 비릿하게 웃어 주자 만년 발정남은 재수 없다는 얼굴로 바지 지퍼를 올렸다.
“그나저나 가게에는 웬일로 다 행차를?”
담담하게 묻자 아직도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녀석이 확연하게 들뜬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 맞다. 너 오늘 퇴근 좀 당기면 안 되냐?”
“되는데 무슨 일로?”
“오늘 내 스튜디오에서 파티 있는데.”
“안 가.”
“그러지 말고 좀 와라.”
자랑하고 싶어 죽겠다는 게 얼굴에 전부 드러나 있어서 나는 고집을 피우려다가 피식,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웃자 놈은 넘어왔다고 생각했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파티에 대해 떠들어 댔다.
이상하게 재규어는 자신이 속해 있는,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 유난히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는 별스런 우정을 기대하거나 지금의 관계 그 이상을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단순히 제가 얼마나 잘났는지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것들이 전혀 편하지 않았다. 관계의 진전을 떠나서 녀석이 속해 있는 세상은, 내 기준에서 지나치게 시끌벅적했다.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나로서는 이 화려한 청년과의 스테디한 관계조차 때때로 부담스러운데, 그는 그 이상을 원하는 것이다. 쓰다듬어 주세요, 야옹~ 하는 얼굴로 보고 있는 녀석이 귀엽기는 했지만.
“별로 몸이 좀 안 좋아서…….”
“거짓말 마. 너 보약 지어 먹지? 얼굴에 윤기가 도는구만, 어디서 구라를.”
“실은 어머니가 오늘은 일찍 들어오라고…….”
“부모님 지방 사시는 거 다 알아.”
예쁜아, 형이 그런 사교 모임은 질색이라서 절친 생일 파티도 안 가는 거 잊었니? 턱을 긁적이는데 녀석이 제 머리를 문질러 왔다.
“가자, 응?”
“고양아.”
오늘 따라 왜 이러실까? 절대 꼬리 흔드는 개과 동물은 아닐 텐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