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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 급행혼약 1화
1호 차 (1)
칩거 14일,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
칩거 20일, 시간이 신이 되었다.
칩거 30일, 전화기가 신이 되었다.
칩거 40일, 봄이 신이 되었다.
칩거 50일, 또 개종을 해야 한다.
* * *
또각또각.
누군가 집 안을 거닐고 있다. 정희는 거실 겸 안방의 이불 속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적이 휩싸인 공간에서 시곗바늘 소리가 설핏 하이힐을 신은 불청객으로 와 닿았던 것이다.
저마다 겹겹이 문을 걸어 잠근 도시의 새벽이 퍽이나 낯설다. 전등을 켜고 벽시계를 치어다보았다. 자신이 예민해져서 새삼 크게 들리는 건지, 본디 품고 있던 초침 소리인지를 가늠해 보았다. 정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코앞의 주방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생각이 너무 많다. 일상은 어느덧 선택의 연속이 되어 버렸다.
찻물을 올린 뒤 커피와 생강차를 앞에 두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식탁의 노트북을 켠 뒤 다시금 망설이다가 드디어 개중에서 하나를 고른 듯 생강차를 탔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초점 없는 눈길로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스프링노트를 꺼내 펼쳤다.
겨울 여명이 어둠을 점차 쓸어 내자 정희는 찻물을 미지근하게 데우고는 약봉지를 꺼냈다. 숨죽였던 이웃의 기척이 단단한 벽을 뚫고 하나둘 날아든다. 등교를, 출근을 준비하는 그 기척이 정희의 머릿속을 흔들어 댄다. 달력을 확인하니 저절로 탁한 한숨이 터진다.
“두 달. 정말로 두 달이나 됐어.”
얼마 전 장항을 다녀오고 나서야 되살아난 날짜 감각이었다.
“이제 방 밖으로 나가야 해.”
어금니를 사리물고 분주히 밥그릇을 비웠다. 단단히 옷을 껴입고 빛바랜 크로스백을 걸멨다. 현관에서 신을 신는 도중 바라본, 거울 속에 비치는 키 작은 여자는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심함과 그늘을 담고 있었다. 정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스크까지 쓴 다음 힘차게 현관문을 밀었다.
십수 년을 살았던 서울이 온통 낯설게 다가왔다. 파도에 떠밀리듯 출근길 대열에 합류했던 정희는 용산역에서 내렸다. 전광판의 열차 시간표는 시기적절하게 정보를 생산했고, 그녀는 그 정보를 기나긴 버퍼링을 거쳐 받아들였다. 때문에 기차가 떠난 뒤에야 ‘그 기차를 탔어야 했어.’ 하고 아쉬움을 삼키곤 했다. 이런 식이라면 오늘도 그 어떤 기차도 타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들만 지켜볼 터였다. 정말이지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가야 해.”
정희는 성큼성큼 매표소로 걸었다.
“장항 한 장 주세요. 잠깐만요! 홀수 자리로 부탁해요.”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아 있었다. 하지만 떠난다는 설렘을 오롯이 누릴 수 있었기에 정희는 일찍 표를 사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칩거 60일째, 기차는 그녀를 구원해 줄 신이 되었다.
* * *
정체성이 모호한 겨울이다. 미세 먼지가 뜸해지자 눈이 내렸고, 며칠 동안 흐렸다가 비가 오기를 반복하더니 오늘은 칼바람이 사뭇 매웠다.
민우는 옴츠린 몸을 펴고 단칸방 문을 열었다. 켜켜이 쌓여 있던 음험한 악취가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유향 타는 냄새에 생선이며 날계란이 썩을 때 나는 비릿한 악취가 뒤섞였다.
민우는 문지방을 넘지 못한 채 장갑을 낀 손으로 마스크를 눌렀다. 이로써 그의 30년 인생을 통해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후각이라는 자부심이 단박에 무너졌다. 망자의 공간을 몇 번이고 들락거려 봤지만 이런 냄새는 처음이었다.
“염병, 쩔었네, 쩔었어. 캬악!!”
동행한 오 주임이 진저리를 쳤다.
“어이, 민우. 환기 좀 시키게 문 그냥 열어 놔.”
유품 정리업체 짬밥을 3년 동안 먹은 중년의 오 주임 역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망자가 남긴 악취는 두터웠다.
“지금 들어가면 밤새 목욕해도 악취가 안 없어져. 조금만 있다 들어가자구.”
오 주임이 방 어귀에 청소 도구를 내려놓고 약품을 희석한 뒤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오래 기다릴 순 없었다. 일을 맡긴 집주인은 방 안에 악취가 배길 원치 않았다. 흉흉한 소문 역시. 그래서 허름한 단칸방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청소를 맡겼던 것이다.
민우는 악취를 견디기 위해 코 밑과 마스크에 치약을 발랐다. 냄새를 다른 냄새로 방어하는 수단이다. 차라리 독성이 없는 허브가 더 유용하지 싶었는데, 직원들은 재채기가 나거나 낯설다면서 익숙한 치약을 선호하고 있었다.
민우는 포대 자루를 들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꾀죄죄하고 초라해도 높낮이의 배열이 제법 안정적인 세간을 훑어보았다. 딱히 복지센터에 기부할 물건은 없었다. 고철로 넘길 만한 것도 드물었다. 조악한 구식 가전제품과 찌들어 더럽혀진 살림살이를 가지고 노파는 쪽방에서 마지막 7년 인생을 살다 갔다. 다만 여느 독거노인의 방과 다른 점이라면 누렇게 변색된 책들이 제법 쌓여 있다는 정도였다. 민우는 기름때에 전 간장병이며 플라스틱 양념 통 따위를 포대에 쓸어 담았다.
이윽고 밖에 서 있던 오 주임이 들어와 헌 이불을 담는 일을 도왔다. 언제 마셨는지 그에게는 술 냄새가 풍겼다.
“술 드셨어요?”
“염병할, 할멈이 죽은 몸으로 사흘 있었다던데 구라였어.”
“집주인 말로는…….”
“사기 친 거지. 지금이 한여름도 아니고 겨울이잖아. 사흘 묵은 냄새가 이리 염병하게 독하진 않아.”
죽은 자의 집을 수년 동안 들락거린 오 주임의 말이었기에 민우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맨 정신으론 일을 못할 지경인 게지.”
그 말인즉 민우가 이해하고 술을 먹은 그를 대신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유품 정리업체 사장인 자신의 형에게도 본인의 음주 사실을 함구해 달라는 부탁이기도 했다. 치약 냄새를 뚫고 삭은 죽음의 냄새가 여전히 코를 찔러 왔다. 민우는 조금이라도 빨리 방에서 벗어나고자 바삐 움직였다.
“아이고, 그놈의 냄새! 그나마 빨리 끝나니 살겠네, 허허. 민우가 힘이 장사라 금방 다 실었어.”
오 주임은 화물차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이윽고 민우도 운전석에 올라탔다. 조금만 쉬고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다. 오 주임은 자신이 운전을 안 해도 된다는 바를 확인한 마당이니 술을 온전히 비우기로 작정한 듯 한편에 있던 술병으로 손을 뻗었다. 한 모금을 들이켠 오 주임이 민우를 찬찬히 훑어본다.
“아무리 형님네 사업장이라도 해도 내 골통으론 이해가 안 된단 말야. 이리 인물 좋고 힘 좋은 젊은 양반이 죽은 사람 뒤치다꺼리나 하다니. 참, 민우 자네, 유학까지 갔다 왔단 소문이 돌더라고. 대기업에서 서로 모셔 가려고 안달이라나 뭐라나.”
오 주임이 호기심 가득한 말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오늘이 민우의 마지막 근무이니만큼 그동안 물어보지 못해 근질거리던 목구멍을 열은 것이리라. 민우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쓴웃음만 지었다.
“그래, 자네가 워낙 인물이 고상하게 생겨 먹어서 그런 소문이 돌았겠지. 하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 흐흐.”
형에게는 한 달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마음의 짐은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발목을 잡아 댄다. 불쑥 술이 고파진 민우는 오 주임이 들고 있는 술병에서 눈을 돌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세간이 빠진 방 안은 휑했다. 쪽창이 칼바람에 시달리며 내는 소리도 음울하기 짝이 없다. 장판과 벽지를 뜯어내고 소독을 한 번 더 해야 작업이 끝난다.
민우는 오 주임을 기다리지 않고 장판을 들춰내다가 움찔했다. 거기에는 투명 비밀로 감싼 내용물이 조악한 장판 아래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옹색한 세간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돈?”
죄다 신권으로 교환해 감춘 듯싶다. 그래서 위조지폐 같다는 이질감마저 든다. 특수인쇄를 공부한 덕에 이 방면에 민우는 적지 않은 지식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가 투명 비닐을 들어 골똘히 살폈다. 비닐 속에 납작하고 정교하게 펼쳐진 것은 진짜였다. 위조라면 천재도 이런 천재가 없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얼추 추정해 본 금액은 결코 적지 않았다. 민우는 빠끔 열린 방문을 힐긋 보고는 찬찬히 비닐을 뜯었다. 돈다발 맨 위로 붙은 편지지를 보다 분명하게 읽기 위해서였다.
* * *
직장을 나가지 않은 지 석 달째다. 그리고 두 달의 은둔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지는 한 달째. 정희는 어슬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곰곰이 생각했다. 어디로 갈까? 일단은 벌떡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여느 직장인처럼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파트 부녀회장을 만났다. 중년의 푸근한 인상을 한 그녀가 정희의 메이크업과 캐쥬얼 차림의 옷을 훑어보며 웃는다.
“흐응, 역시 사람은 바깥에서 놀아야 젊어지는 법이야.”
정희는 배시시 웃으며 가벼이 고개를 숙였다. 신경 써서 풀메이크업을 한 것도, 정장을 입은 것도 아닌데 부녀회장은 그렇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부녀회장의 소감엔 타당성이 있었다. 한동안 노상 같은 옷을 입고 노인처럼 맥없이 아파트를 배회했으니 말이다.
정희는 단지를 가로지르며 마주치는 낯익은 얼굴들에도 바쁜 걸음걸이를 유지한 채 인사를 나누었다. 부녀회장을 비롯한 이웃들은 그녀가 두어 달의 자택 근무를 마친 뒤 한 달 전부터 다시 직장으로 출근한다고 알고 있다.
10년 이상 지낸 복도식 소형 아파트 단지인데도 동생이 군대에 갔다는 사실을 비롯해 사적인 정보는 오롯이 정희가 원하는 만큼만, 그리고 원하는 방향으로만 노출되어 있었다. 장항 같은 시골이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전철역 안에서 정희는 잠시 머뭇거렸다. 저마다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탄환처럼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동화된 그녀는 곧 개찰구를 통과해 전철을 탔다. 오늘도 결국 용산역에서 내렸다. 집에서는 영등포역이 더 가까웠다. 하지만 하행 열차만 줄줄이 멈추는 그곳과는 달리 용산역은 선택의 폭이 더 넓었다.
그녀는 지난 한 달 동안 그랬던 것처럼 대합실에 앉아 승차권 발매 상황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한참을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는 듯 매표소로 가 전날처럼 장항선 기차표를 끊었다.
* * *
해거름이 깔릴 무렵 집으로 돌아온 정희는 힘든 하루를 보낸 직장인처럼 아담한 소파로 몸을 던졌다. 오랜만에 생긴 유익한 피로감을 즐기는 시간은 짧았다.
겨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겹겹이 문을 닫고 커튼을 드리우게 하기 때문에 시각적이며 청각적인 공해로부터 더 자유롭다. 하지만 그런 미덕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한다. 너무도 익숙하여 이제는 진저리마저 나는 적막감에 그녀는 얼굴을 무릎에 묻고 태아처럼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낯익은 목소리의 전화는 단 한 통도 오지 않은 날이 흔한 요즘이다. 한때는 전화기를 통해 기적이 생기고, 구원이 생길 것처럼 주시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전화기는 진즉에 구원의 통로로서 신용을 잃었다. 또 흔한 광고 전화겠지, 하며 액정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잘 지내고 있어?
전화기 속 성준의 목소리에는 살짝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정희는 반가운 안부로 응수해야 할지 아닐지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 정희야?
성준이 자신의 침묵을 나무라는 듯싶어 정희는 지극히 성실함이 묻어나는 대답을 뱉었다.
“네, 성준 씨. 전 잘 지내고 있어요.”
― 약은 잘 먹고 있고?
“네, 착실히요.”
― 그래, 착실히 먹어야지. 추워지니 혹시나 걱정돼서 전화해 봤어.
“나, 알잖아요? 혼자 노는 법에 도통한 사람이니 내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정희는 마음과는 달리 뾰족하게 응수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 ……또 연락할게.
통화 내용은 지난번과 비슷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또 연락한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저번 통화에서도 그 말을 마지막으로 했던 그였다. 이젠 연락 안 해도 된다고 말하지 못한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카톡으로 자신의 의지를 굳이 알리려고 하다가 어플을 삭제했다는 바를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설치하려다가 포기하고 메시지 아이콘을 만지작거리다 그마저도 포기했다. 주전자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얹으면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약을 먹는다고 식어 버린 사랑이 치료되는 건 아니겠지?”
찻물이 채 끓기도 전에 주전자를 내린 뒤 냉장고 속 곰솥을 꺼내 올린 후 노트북을 식탁으로 가져와 유튜브의 음악을 틀었다. 정희는 ‘이네사 갈란테’가 부르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반복해서 들으며 쌀밥과 곰국을 천천히 떠먹었다. 그러다가 이내 수저를 내려놓고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내일은,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때 식탁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희는 화들짝 놀라며 액정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 여보세요. 혹시 양정희 씨 되십니까?
낯설지만 어쩐지 신뢰감을 주는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부디 이 남자가 광고 목적으로 전화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정희는 입을 열었다.
“네, 그런데요?”
― 직업이 사회복지사 맞으시죠?
“지금은…… 아, 네. 그런데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가 복잡해진 정희는 뭉뚱그려 대답했다. 남자는 어떤 여자의 이름을 말했다. 글쎄요, 하고 대답하자, 남자는 그 여자가 노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거주지를 말해 주었다. 아! 이제야 누군지 알 것 같다.
― 돌아가셨습니다.
“아! 언제요?”
― 아무튼 그 일로 양정희 씰 만나야 합니다.
남자는 일방적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가지를 싹둑싹둑 잘라 내면서 지극히 사무적으로 일관하는 남자의 붙임성 없어 보이는 말투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신뢰감을 안겨 주는 단서가 되었다.
잠들기 전 정희는 ‘임재범’의 ‘비상’을 들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소망했다. 오늘 밤의 결심이 아침이면 지워지는 연속성이 이제는 부디 깨지기를.
* * *
줄줄이 늘어선 여러 개의 화로에 거의 동시에 불이 붙었다. 이날의 첫 번째 시신 화장이 시작된 것이다.
1호 차 (1)
칩거 14일,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
칩거 20일, 시간이 신이 되었다.
칩거 30일, 전화기가 신이 되었다.
칩거 40일, 봄이 신이 되었다.
칩거 50일, 또 개종을 해야 한다.
* * *
또각또각.
누군가 집 안을 거닐고 있다. 정희는 거실 겸 안방의 이불 속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적이 휩싸인 공간에서 시곗바늘 소리가 설핏 하이힐을 신은 불청객으로 와 닿았던 것이다.
저마다 겹겹이 문을 걸어 잠근 도시의 새벽이 퍽이나 낯설다. 전등을 켜고 벽시계를 치어다보았다. 자신이 예민해져서 새삼 크게 들리는 건지, 본디 품고 있던 초침 소리인지를 가늠해 보았다. 정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코앞의 주방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생각이 너무 많다. 일상은 어느덧 선택의 연속이 되어 버렸다.
찻물을 올린 뒤 커피와 생강차를 앞에 두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식탁의 노트북을 켠 뒤 다시금 망설이다가 드디어 개중에서 하나를 고른 듯 생강차를 탔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초점 없는 눈길로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스프링노트를 꺼내 펼쳤다.
겨울 여명이 어둠을 점차 쓸어 내자 정희는 찻물을 미지근하게 데우고는 약봉지를 꺼냈다. 숨죽였던 이웃의 기척이 단단한 벽을 뚫고 하나둘 날아든다. 등교를, 출근을 준비하는 그 기척이 정희의 머릿속을 흔들어 댄다. 달력을 확인하니 저절로 탁한 한숨이 터진다.
“두 달. 정말로 두 달이나 됐어.”
얼마 전 장항을 다녀오고 나서야 되살아난 날짜 감각이었다.
“이제 방 밖으로 나가야 해.”
어금니를 사리물고 분주히 밥그릇을 비웠다. 단단히 옷을 껴입고 빛바랜 크로스백을 걸멨다. 현관에서 신을 신는 도중 바라본, 거울 속에 비치는 키 작은 여자는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심함과 그늘을 담고 있었다. 정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스크까지 쓴 다음 힘차게 현관문을 밀었다.
십수 년을 살았던 서울이 온통 낯설게 다가왔다. 파도에 떠밀리듯 출근길 대열에 합류했던 정희는 용산역에서 내렸다. 전광판의 열차 시간표는 시기적절하게 정보를 생산했고, 그녀는 그 정보를 기나긴 버퍼링을 거쳐 받아들였다. 때문에 기차가 떠난 뒤에야 ‘그 기차를 탔어야 했어.’ 하고 아쉬움을 삼키곤 했다. 이런 식이라면 오늘도 그 어떤 기차도 타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들만 지켜볼 터였다. 정말이지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가야 해.”
정희는 성큼성큼 매표소로 걸었다.
“장항 한 장 주세요. 잠깐만요! 홀수 자리로 부탁해요.”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아 있었다. 하지만 떠난다는 설렘을 오롯이 누릴 수 있었기에 정희는 일찍 표를 사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칩거 60일째, 기차는 그녀를 구원해 줄 신이 되었다.
* * *
정체성이 모호한 겨울이다. 미세 먼지가 뜸해지자 눈이 내렸고, 며칠 동안 흐렸다가 비가 오기를 반복하더니 오늘은 칼바람이 사뭇 매웠다.
민우는 옴츠린 몸을 펴고 단칸방 문을 열었다. 켜켜이 쌓여 있던 음험한 악취가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유향 타는 냄새에 생선이며 날계란이 썩을 때 나는 비릿한 악취가 뒤섞였다.
민우는 문지방을 넘지 못한 채 장갑을 낀 손으로 마스크를 눌렀다. 이로써 그의 30년 인생을 통해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후각이라는 자부심이 단박에 무너졌다. 망자의 공간을 몇 번이고 들락거려 봤지만 이런 냄새는 처음이었다.
“염병, 쩔었네, 쩔었어. 캬악!!”
동행한 오 주임이 진저리를 쳤다.
“어이, 민우. 환기 좀 시키게 문 그냥 열어 놔.”
유품 정리업체 짬밥을 3년 동안 먹은 중년의 오 주임 역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망자가 남긴 악취는 두터웠다.
“지금 들어가면 밤새 목욕해도 악취가 안 없어져. 조금만 있다 들어가자구.”
오 주임이 방 어귀에 청소 도구를 내려놓고 약품을 희석한 뒤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오래 기다릴 순 없었다. 일을 맡긴 집주인은 방 안에 악취가 배길 원치 않았다. 흉흉한 소문 역시. 그래서 허름한 단칸방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청소를 맡겼던 것이다.
민우는 악취를 견디기 위해 코 밑과 마스크에 치약을 발랐다. 냄새를 다른 냄새로 방어하는 수단이다. 차라리 독성이 없는 허브가 더 유용하지 싶었는데, 직원들은 재채기가 나거나 낯설다면서 익숙한 치약을 선호하고 있었다.
민우는 포대 자루를 들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꾀죄죄하고 초라해도 높낮이의 배열이 제법 안정적인 세간을 훑어보았다. 딱히 복지센터에 기부할 물건은 없었다. 고철로 넘길 만한 것도 드물었다. 조악한 구식 가전제품과 찌들어 더럽혀진 살림살이를 가지고 노파는 쪽방에서 마지막 7년 인생을 살다 갔다. 다만 여느 독거노인의 방과 다른 점이라면 누렇게 변색된 책들이 제법 쌓여 있다는 정도였다. 민우는 기름때에 전 간장병이며 플라스틱 양념 통 따위를 포대에 쓸어 담았다.
이윽고 밖에 서 있던 오 주임이 들어와 헌 이불을 담는 일을 도왔다. 언제 마셨는지 그에게는 술 냄새가 풍겼다.
“술 드셨어요?”
“염병할, 할멈이 죽은 몸으로 사흘 있었다던데 구라였어.”
“집주인 말로는…….”
“사기 친 거지. 지금이 한여름도 아니고 겨울이잖아. 사흘 묵은 냄새가 이리 염병하게 독하진 않아.”
죽은 자의 집을 수년 동안 들락거린 오 주임의 말이었기에 민우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맨 정신으론 일을 못할 지경인 게지.”
그 말인즉 민우가 이해하고 술을 먹은 그를 대신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유품 정리업체 사장인 자신의 형에게도 본인의 음주 사실을 함구해 달라는 부탁이기도 했다. 치약 냄새를 뚫고 삭은 죽음의 냄새가 여전히 코를 찔러 왔다. 민우는 조금이라도 빨리 방에서 벗어나고자 바삐 움직였다.
“아이고, 그놈의 냄새! 그나마 빨리 끝나니 살겠네, 허허. 민우가 힘이 장사라 금방 다 실었어.”
오 주임은 화물차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이윽고 민우도 운전석에 올라탔다. 조금만 쉬고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다. 오 주임은 자신이 운전을 안 해도 된다는 바를 확인한 마당이니 술을 온전히 비우기로 작정한 듯 한편에 있던 술병으로 손을 뻗었다. 한 모금을 들이켠 오 주임이 민우를 찬찬히 훑어본다.
“아무리 형님네 사업장이라도 해도 내 골통으론 이해가 안 된단 말야. 이리 인물 좋고 힘 좋은 젊은 양반이 죽은 사람 뒤치다꺼리나 하다니. 참, 민우 자네, 유학까지 갔다 왔단 소문이 돌더라고. 대기업에서 서로 모셔 가려고 안달이라나 뭐라나.”
오 주임이 호기심 가득한 말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오늘이 민우의 마지막 근무이니만큼 그동안 물어보지 못해 근질거리던 목구멍을 열은 것이리라. 민우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쓴웃음만 지었다.
“그래, 자네가 워낙 인물이 고상하게 생겨 먹어서 그런 소문이 돌았겠지. 하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 흐흐.”
형에게는 한 달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마음의 짐은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발목을 잡아 댄다. 불쑥 술이 고파진 민우는 오 주임이 들고 있는 술병에서 눈을 돌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세간이 빠진 방 안은 휑했다. 쪽창이 칼바람에 시달리며 내는 소리도 음울하기 짝이 없다. 장판과 벽지를 뜯어내고 소독을 한 번 더 해야 작업이 끝난다.
민우는 오 주임을 기다리지 않고 장판을 들춰내다가 움찔했다. 거기에는 투명 비밀로 감싼 내용물이 조악한 장판 아래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옹색한 세간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돈?”
죄다 신권으로 교환해 감춘 듯싶다. 그래서 위조지폐 같다는 이질감마저 든다. 특수인쇄를 공부한 덕에 이 방면에 민우는 적지 않은 지식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가 투명 비닐을 들어 골똘히 살폈다. 비닐 속에 납작하고 정교하게 펼쳐진 것은 진짜였다. 위조라면 천재도 이런 천재가 없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얼추 추정해 본 금액은 결코 적지 않았다. 민우는 빠끔 열린 방문을 힐긋 보고는 찬찬히 비닐을 뜯었다. 돈다발 맨 위로 붙은 편지지를 보다 분명하게 읽기 위해서였다.
* * *
직장을 나가지 않은 지 석 달째다. 그리고 두 달의 은둔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지는 한 달째. 정희는 어슬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곰곰이 생각했다. 어디로 갈까? 일단은 벌떡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여느 직장인처럼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파트 부녀회장을 만났다. 중년의 푸근한 인상을 한 그녀가 정희의 메이크업과 캐쥬얼 차림의 옷을 훑어보며 웃는다.
“흐응, 역시 사람은 바깥에서 놀아야 젊어지는 법이야.”
정희는 배시시 웃으며 가벼이 고개를 숙였다. 신경 써서 풀메이크업을 한 것도, 정장을 입은 것도 아닌데 부녀회장은 그렇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부녀회장의 소감엔 타당성이 있었다. 한동안 노상 같은 옷을 입고 노인처럼 맥없이 아파트를 배회했으니 말이다.
정희는 단지를 가로지르며 마주치는 낯익은 얼굴들에도 바쁜 걸음걸이를 유지한 채 인사를 나누었다. 부녀회장을 비롯한 이웃들은 그녀가 두어 달의 자택 근무를 마친 뒤 한 달 전부터 다시 직장으로 출근한다고 알고 있다.
10년 이상 지낸 복도식 소형 아파트 단지인데도 동생이 군대에 갔다는 사실을 비롯해 사적인 정보는 오롯이 정희가 원하는 만큼만, 그리고 원하는 방향으로만 노출되어 있었다. 장항 같은 시골이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전철역 안에서 정희는 잠시 머뭇거렸다. 저마다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탄환처럼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동화된 그녀는 곧 개찰구를 통과해 전철을 탔다. 오늘도 결국 용산역에서 내렸다. 집에서는 영등포역이 더 가까웠다. 하지만 하행 열차만 줄줄이 멈추는 그곳과는 달리 용산역은 선택의 폭이 더 넓었다.
그녀는 지난 한 달 동안 그랬던 것처럼 대합실에 앉아 승차권 발매 상황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한참을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는 듯 매표소로 가 전날처럼 장항선 기차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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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이 깔릴 무렵 집으로 돌아온 정희는 힘든 하루를 보낸 직장인처럼 아담한 소파로 몸을 던졌다. 오랜만에 생긴 유익한 피로감을 즐기는 시간은 짧았다.
겨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겹겹이 문을 닫고 커튼을 드리우게 하기 때문에 시각적이며 청각적인 공해로부터 더 자유롭다. 하지만 그런 미덕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한다. 너무도 익숙하여 이제는 진저리마저 나는 적막감에 그녀는 얼굴을 무릎에 묻고 태아처럼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낯익은 목소리의 전화는 단 한 통도 오지 않은 날이 흔한 요즘이다. 한때는 전화기를 통해 기적이 생기고, 구원이 생길 것처럼 주시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전화기는 진즉에 구원의 통로로서 신용을 잃었다. 또 흔한 광고 전화겠지, 하며 액정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잘 지내고 있어?
전화기 속 성준의 목소리에는 살짝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정희는 반가운 안부로 응수해야 할지 아닐지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 정희야?
성준이 자신의 침묵을 나무라는 듯싶어 정희는 지극히 성실함이 묻어나는 대답을 뱉었다.
“네, 성준 씨. 전 잘 지내고 있어요.”
― 약은 잘 먹고 있고?
“네, 착실히요.”
― 그래, 착실히 먹어야지. 추워지니 혹시나 걱정돼서 전화해 봤어.
“나, 알잖아요? 혼자 노는 법에 도통한 사람이니 내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정희는 마음과는 달리 뾰족하게 응수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 ……또 연락할게.
통화 내용은 지난번과 비슷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또 연락한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저번 통화에서도 그 말을 마지막으로 했던 그였다. 이젠 연락 안 해도 된다고 말하지 못한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카톡으로 자신의 의지를 굳이 알리려고 하다가 어플을 삭제했다는 바를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설치하려다가 포기하고 메시지 아이콘을 만지작거리다 그마저도 포기했다. 주전자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얹으면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약을 먹는다고 식어 버린 사랑이 치료되는 건 아니겠지?”
찻물이 채 끓기도 전에 주전자를 내린 뒤 냉장고 속 곰솥을 꺼내 올린 후 노트북을 식탁으로 가져와 유튜브의 음악을 틀었다. 정희는 ‘이네사 갈란테’가 부르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반복해서 들으며 쌀밥과 곰국을 천천히 떠먹었다. 그러다가 이내 수저를 내려놓고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내일은,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때 식탁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희는 화들짝 놀라며 액정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 여보세요. 혹시 양정희 씨 되십니까?
낯설지만 어쩐지 신뢰감을 주는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부디 이 남자가 광고 목적으로 전화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정희는 입을 열었다.
“네, 그런데요?”
― 직업이 사회복지사 맞으시죠?
“지금은…… 아, 네. 그런데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가 복잡해진 정희는 뭉뚱그려 대답했다. 남자는 어떤 여자의 이름을 말했다. 글쎄요, 하고 대답하자, 남자는 그 여자가 노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거주지를 말해 주었다. 아! 이제야 누군지 알 것 같다.
― 돌아가셨습니다.
“아! 언제요?”
― 아무튼 그 일로 양정희 씰 만나야 합니다.
남자는 일방적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가지를 싹둑싹둑 잘라 내면서 지극히 사무적으로 일관하는 남자의 붙임성 없어 보이는 말투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신뢰감을 안겨 주는 단서가 되었다.
잠들기 전 정희는 ‘임재범’의 ‘비상’을 들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소망했다. 오늘 밤의 결심이 아침이면 지워지는 연속성이 이제는 부디 깨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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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늘어선 여러 개의 화로에 거의 동시에 불이 붙었다. 이날의 첫 번째 시신 화장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