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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 급행혼약 2화
1호 차 (2)
부스스 털이 일어난 블랙 오버핏 코트 차림의 민우는 관망창을 통해 소멸해 가는 육신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고인의 바람과는 달리 눈물의 배웅이 쉽지 않았다. 건조한 눈물샘이 머쓱하여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던 걸까? 지척에서 한 여자가 관망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폴라로 된 니트에 블랙 패딩을 걸친 작은 키의 소탈한 차림새였다. 맑은 눈동자와는 달리 안색은 병을 앓거나 앓았던 사람처럼 창백했다. 하지만 눈동자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첫눈에 선한 느낌을 풍기는 인상이었다. 갑자기 그 눈에 물기가 번진다. 급기야 뺨이 흠뻑 젖었고, 얇고 작은 입술 사이로는 오열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물은 전염성이 강했다. 곧 민우의 눈도 촉촉이 젖어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할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의 말년을 추측했던 탓인가 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곁에서 오열하는 여자의 몸이 한순간 기우뚱거렸다. 민우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얼결에 여자는 민우의 품으로 쏙 들어왔다. 작은 새가 품으로 들어온 성싶었다. 함께 망자를 배웅한다는 즉흥적인 유대감에 힘입어 민우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인 양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녀가 조용히 몸을 빼냈다. 슬픔으로 젖은 창백한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가는 바를 민우는 놓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굴뚝새가 그려진다.
“고마워요.”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나직이 말했다. 한마디의 목소리면 충분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미리 통화를 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과연 굴뚝새처럼 투명했다. 민우는 눈두덩을 훔치며 소멸하는 육신을 향해 속으로 말했다.
‘할머니, 소원 푸셨네요. 곱빼기로. 그러니 편히 가세요.’
고인은 이제 다른 무연고 유골과 함께 머물다가 일정 시일이 지나면 공동 추모관으로 향할 터였다.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민우의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그러고는 한참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가벼이 고개를 까닥했다.
화장실에 도착한 민우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은 눈이 영 못마땅하다. 그에게 눈물이란 나약함의 상징이었다. 여태까지 오랜 지인들에게도 내보인 적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필요 이상으로 눈물의 흔적을 지우느라 지체한 탓일까.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여자 화장실을 힐긋거리며 한참을 서 있어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딱히 지금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같은 서울에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다음에 만나도 될 터였다.
하지만 일부러 피하는 것 같은 그녀의 행동거지가 못마땅했다. 고인의 배웅 말고도 따로 용건이 더 있다고 분명히 밝혔는데도 그녀는 휑하니 사라졌다. 더욱이 마지막으로 본 눈빛이 마음속에 걸렸다. 눈물로 씻겨 있어 더욱 맑은 눈동자인데도 허무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용건을 떠나서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다. 품 안에 들어왔을 때의 체온이 여전한 것 같아 민우는 갸웃하며 밖으로 나왔다.
겨울치곤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으나 햇살이 먹구름 뒤로 숨어 버려 산자락을 넘어온 바람은 얼얼했다. 그는 주변을 훑으며 주차장까지 내달렸다. 빠져나가는 승용차들을 시선으로 좇다가 갓 출발하는 버스의 차창을 다급히 훑었다.
“스톱! 스톱!”
민우는 이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가로막은 끝에 가까스로 올라탈 수 있었다. 덕분에 승용차 안의 가방을 챙기지 못했다. 작업복을 넣고 다니던 볼품없는 가방 안에는 상황에 따라 그녀에게 건네야 할 것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민우는 여자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지금 이대로 놓치면 어쩐지 가뭇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어느새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린 그녀는 외자리에 앉아 있었고, 민우는 걸음을 옮겨 그녀의 뒤편으로 앉았다. 시내에서 그녀가 내릴 때까지 민우는 입을 열지 않았고, 그녀 또한 민우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가방을 챙기지 못했던 탓에 그녀에게 접근할 명분이 약했지만, 설령 가방을 소지했어도 말을 붙이지 못했을 만큼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함께 망자를 전송한 입장인데도, 또한 민우가 뒤따른 바를 빤히 알면서도 버스에서 내린 후 그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전철을 타면서도 그랬다.
용산역에서 내린 그녀는 곧장 열차 매표소로 향했다.
“홀수 자리로 부탁해요.”
표를 끊고 돌아서던 그녀는 민우와 마주쳤다.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가벼이 목례를 건넨 뒤 그대로 그를 지나쳤다. 민우는 타박타박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매표소에 얼굴을 들이대고 소리쳤다.
“방금 장항, 홀수 티켓 끊은 여자분하고 동행입니다. 옆자리로 부탁합니다.”
매표소 직원은 눈을 슴뻑거리며 바라보다가 무슨 상상을 했는지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내 ‘운이 좋으시군요.’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발권을 시작했다.
평일 오전의 장항선 새마을호 객실은 한산했다. 그녀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감기가 들었나?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런 기운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민우가 곁으로 가 옆자리에 앉자, 그녀는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장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묘하게 가슴을 찌르는 눈빛의 잔상이 눈앞으로 떠다닌다. 자신의 품에 안겨 울음을 토했던 그때와 달리 잔뜩 웅크린 그녀는 투명하고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그에 대해 호기심마저도 드러내지 않기에 민우는 말을 붙이지 못했다. 버스를 가로막은 끝에 올라탄 민우를 설뚱하게 바라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르다.
‘이상한 여자.’
곧 쓴웃음이 나왔다. 여자 입장에선 도리어 이쪽이 이상한 남자일 터였다. 문득 고인이 남긴 편지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댁이 내 핏줄이 아니라면 세상 누구보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 줄 것 같은 양정희 선생에게…….
현재로선 고인이 남긴 정보와는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덜컹. 삐그덕.
객실 안에선 기차 특유의 마찰 소리보다는 좌석 어딘가에서 들리는 삐거덕거리는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수원을 지나자 차창 밖으로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민우는 왠지 궂은 날씨가 싫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느슨한 일정과 낯선 여자를 향한 적당한 긴장감 역시도. 먼저 말을 붙이는 일이 내키진 않아도 이쯤에서 용건을 내놓아도 될 듯싶다. 어쩌면 여자는 이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른다.
사실 용건을 떠나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전화 통화 때부터 이채로웠던, 가늘고 높아 한없이 투명한 굴뚝새 같은 목소리를. 민우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으흠, 양정희 씨가 맞…….”
순간 민우는 말을 삼키고 피식 웃었다. 그녀는 차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기도하듯 깍지를 낀 손과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을 바라보니 어쩐지 민우의 가슴에도 훈기가 번졌다. 그때 휴대폰이 울었다. 진동에서 소리로 바뀌기 전에 민우는 사붓이 객실을 벗어났다. 그러고는 통로 연결망의 소음을 피해 화장실로 들어가 통화를 시작했다.
― 기차 안이라고? 뭔 일인지 진짜 말 안 할래!
형의 화난 목청이 쩡쩡 울렸다.
“미안해요, 형. 오늘은 일 못 해. 설명은 나중에…….”
― 한 달 다 채웠잖냐. 어쨌든 우리 일은 영영 안 해도 되니 빨리 네 자리로 돌아가기나 해. 한 사장님이 아까도 전화했더라.
형의 목소리가 적이 누그러졌다.
― 근데 너 괜찮냐?
“응.”
―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니고?
“응.”
― 휴우, 자식아. 네 인생 설명하는 법 좀 배워라. 네 형수가 걱정하더라. 한 사장님한테도 꼭 전화 넣고.
그러는 형의 인생은 왜 솔직히 밝히지 않았냐고 따지려다가 통화를 마쳤다.
민우는 교환학생으로 슈투트가르트로 건너간 뒤 바라던 대로 인턴십을 통과해 자동차 부품의 금형 설계뿐 아니라 3D 프린터 설계를 경험했다. 아버지가 남겼다는 유산을 형이 송금해 준 덕분에 장기적으로 승부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독일 공부에 만족하지 않고, 3D 프린터의 강자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실무를 익혔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온 중견 기업 오너를 만났다. 파트너를 만나 국내에 들어온 민우는 비로소 형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민우는 스스로에게 비아냥거렸다.
‘몰랐다고? 아니 사실은 알려고 하지도 않았겠지.’
몇 번을 자문해 보아도 답은 같았다. 줄곧 그렇게 살았다. 줄곧 나 자신만을 아껴 왔고, 이익이 되지 않거나 불편한 문제는 아예 눈길도 안 주었다.
객실로 돌아와 옆자리에 앉으며 살펴본 그녀는 아까와 같은 모습인데도 사뭇 느낌이 달랐다. 평화로웠던 모습에 예의 울타리가 보였다. 옴츠린 모양새가 포식자의 영역에 들어선 고슴도치가 잔뜩 가시를 세운 방어적 자세를 떠올리게 했다.
기차가 수원을 지나 평택으로 향할 때 날리던 진눈깨비가 멈췄다. 차창 밖 뿌연 대기와 젖은 숲을 통해서 빗줄기가 사그라듦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도록 건조했던 가슴이 촉촉이 젖어 든다. 왜 쉬는 날엔 기차를 탈 생각을 못 하고 죽어라 산에만 올랐을까. 민우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여자가 이미 진즉부터 잠에서 깨어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정희가 바라본 세상은 퍽이나 찬찬히 움직였다. 설핏 잠들었던 정희는 남자가 휴대폰을 들고 일어날 때 깨어났다. 하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남자는 금방 돌아왔다. 정희는 그가 고마웠다. 딱히 그가 아니더라도 기차를 타면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고마웠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곁에 앉아 사람의 온기를 나누어 준 뒤 깔끔하게 뒤돌아서 떠나는 여행객들 모두가 고마운 요즘이다.
‘진즉에 밖으로 나와 기차를 탈걸.’
오늘은 도중에 내리지 않고 목적지인 장항까지 갈 터였다. 그녀는 죽은 할머니를 통해서 더 늦기 전에 장항의 외할머니를 보러 가야 한다는 조급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자신의 용무를 채 밝히지 않은 장민우를 내버려 둔 채 기차 시간을 가늠하며 내달렸다. 하지만 기차를 타고부터 결심은 흔들렸다. 해결된 문제는 전혀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탓이다. 요컨대 혼자 장항을 가는 것은 여전히 좋은 생각이 못 되었다.
“후우!”
탁한 한숨을 토할 때 장민우가 나타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희는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입을 열지 못했고, 그 역시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예의 용건이라는 것 때문에 따라왔겠지만 가능하면 찬찬히 그의 말을 듣고 싶었다.
민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핸섬했다. 호리호리한 키에 말쑥한 생김새는 수수한 옷차림마저 바람직한 코디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 남자가 곁에 앉았다는 현실을 오롯이 즐기다 보니 울울했던 기분이 나아지고 있었다.
기차가 터널로 진입하자 차창은 투명한 흑색 거울이 됐다. 그 기회를 통해 정희는 장민우를 훔쳐보았다. 그리고 순간 움찔했다. 그가 빤히 그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창유리 속의 그가 입을 연다.
“커피 한잔하실래요?”
“네?”
정희는 뚱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터널 소음으로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호흡이 가빠졌다.
“용건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 네. 용건. 그렇군요.”
기차는 천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여기까지 동행한 그의 행동거지도 퍽이나 이상했다. 정희는 헛웃음을 삼켰다. 뭐, 나만큼이나 이상할까.
“기차 안에 카페가 있다던데.”
커피를 먼저 제의한 그가 말을 흐리며 엉거주춤 머뭇거렸다. 정희가 자신 있게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2호 차가 카페예요.”
정희도 그의 용건이라는 것이 궁금하긴 했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일로 그녀를 만나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고, 화장터에 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에 정희는 흔쾌히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흘렀던 탓에 그가 따로 긴한 용건을 품고 있다는 말은 허술하게 챙겼었다.
어쨌거나 정희는 용건을 마친 그가 기차에서 먼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뚱맞은 바람을 안고 열차 카페로 들어섰다. 따뜻한 원두커피를 한 잔씩 주문하고 계산을 치를 때였다.
“제가…….”
먼저 값을 지불하려는 정희를 그가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제가 할 테니 저기 앉아 계세요.”
그는 말을 하며 싱긋 웃어 보였다.
이윽고 원두커피를 각자 손에 쥔 채 두 사람은 널찍한 창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로 가 나란히 앉았다. 그가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정희를 바라봤다.
“감기 걸렸어요?”
“아뇨.”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을 알아차린 정희는 객쩍게 웃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워낙에 자주 쓰다 보니 마스크를 썼다는 사실도 잊은 채 커피를 입으로 가져갈 뻔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그가 용건이라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의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처럼 사무적인 투로 재빨리 말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양정희 씨에게 무언가를 남기셨습니다.”
“저한테요?”
“네. 양정희 씨가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화장터에서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셨던 분이기도 하고요.”
눈물은 그쪽도 흘리지 않았나요. 정희는 그 말은 일단 삼켰다.
“할머니께선 양정희 씨에게 돈을 남기셨습니다.”
“……왜, 왜요?”
“이유는 전화로 말씀드렸잖아요.”
“설마, 단지 제가 마지막 대화 상대여서요? 정말 그게 이유…….”
“눈물도 흘려 주었죠.”
“고작 그런 이유로…….”
어안이 벙벙해 있는 정희와는 달리 남자는 시큰둥하고도 무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고작이 아니죠. 당시 할머니 상황으론.”
“그치만 할머닌 몹시 어렵게 사시던 분인데, 그런 분이 무슨 돈이 있다고…….”
“아마도 당신 저승길을 위해 모으셨나 봅니다. 아니면 자식들을 위해서나.”
정희가 알기로는 할머니의 자식들은 이미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다.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정희 딴에는 애썼건만 구청의 도움으로 아들 한 명이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것만 겨우 알아냈을 뿐이다.
“캐나다에 사는 아들은 할머니의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더군요. 호적이 복잡한 딸은 시신 포기 각서만을 보냈고요. 그래서 구청에서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