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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자황의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밖을 보니 늘 일어나던 시간인 묘시쯤 되는 것 같았다.
‘뭐야……. 설마 잠든 것인가?’
무언가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자황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이 침실에는 자신만 있었다. 복태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위 재인은 어디에 있는 거지?’
설마, 먼저 잠이 든 자신을 또다시 원망하며 돌아선 것은 아닐까. 혼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복태의 슬픈 모습과 서슬 퍼런 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찾아야 한다. 자황은 마음이 급해 의복을 제대로 정비하지도 않고 바로 방 밖을 나섰다.
처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복태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침소에는 물론 없었고, 침소와 이어져 있는 식사 공간과 응접실, 욕실, 욕실과 이어지는 거실과 뒤뜰도 찾아보고 대청마루를 지나 앞마당 정원까지 돌아다봤지만 복태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조그마한 방 하나. 그 방은 찾아보지 않았었다. 자황은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복태가 고른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으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자황은 복태를 발견하자 긴장감을 놓고 안심하는 듯 한숨을 쉬었다. 복태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지난밤 제쳐놓았던 미안함이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계속 미안한 마음만 드니 이제는 오히려 복태가 미련스러워 보여 화가 나려고 했다. 자황은 복태에게 다가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보시오.”
복태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하지만 움직임은 그게 끝이었다. 자황은 약간의 짜증을 섞어,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크게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시오!”
그제야 복태는 잘 뜨이지 않는 눈을 떴다. 새벽 댓바람부터 보일 리가 없는 자황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사태를 파악한 복태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자황에게 예를 갖추었다.
“아, 폐하. 뭐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어제 왜 그냥 돌아간 것이오?”
‘어딜 돌아가?’
복태는 자황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젯밤 분명히 내 볼 일을 보라는 명을 받고 쉬러 가지 않았는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생각했다. 혹시 자황의 말을 자신이 오해하여 멋대로 판단해 버린 것은 아니었나 싶었다. 복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혹시…… 어제 왜 잠자리에 같이 안 들었냐고 하문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자신이 자황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는 걸 깨달은 복태는 이 위기의 순간을 재빠르게 극복해야만 했다. 말을 잘못 알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부각하기보다는 자황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어제는 어떤 이유로 다른 후궁들을 상대하기 귀찮아지셔서 신첩을 찾으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자황은 복태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자황의 두 손은 갈 곳을 잃은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짐의 의도가 그랬든 안 그랬든, 노력이라도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니오?”
복태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삐친 것처럼 보였던 자황은 스스로에게 내야 할 화를 도리어 복태에게 내기 시작했다.
“그 표정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오? 남의 의중이야 어떻든 간에 그대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면 노력이라도 해 봤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짐의 말이 이해가 안 가오? 소박맞은 첫날밤 이후 몇 년 만에 찾아온 기회인데, 짐이 잠든 모습을 봤으면 악착같이 깨웠어야 하지 않소.”
투정 부리듯 투덜거리는 자황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복태는 지금 이 상황이 조금씩 파악되기 시작했다.
‘내가 애초에 안 간 줄 모르고 본인이 잠든 사이 왔다 간 줄 알고 있고, 그리고 본인이 오히려 너무 미안한 나머지 도리어 적극적이지 못한 내 탓이라며 화를 내는 중인 거고?’
“악착같이 깨운 다음에는요?”
“뭐?”
“악착같이 깨운 다음에는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신첩과 잠자리를 할 마음이 없는 폐하께 제가 뭘 어찌했어야 한단 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자황이 당황하며 입을 벙끗거리다가, 복태의 질문이 감히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깨워서 너무 하다며 화를 내든지, 아니면 울든지! 그리고 그대가 노력하지 않았어도 짐은 할 마음이 있었소! 깨우기만 했다면.”
“그러니까 폐하의 미안한 마음을 이용해서라도 원대로 잠자리를 했어야 한단 말씀이시군요. 허나 폐하, 폐하의 측은지심으로 안긴 신첩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무려 첫. 날. 밤. 인데 말입니다.”
“짐의 측은지심으로 안기고 싶지 않았다면 다른 후궁들처럼 연회 때마다 잔뜩 치장하고 나오든, 짐의 근처에 앉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든지 해야 했소.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는 그대의 책임도 있단 말이오. 짐의 자리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 끝자리에 앉아 눈에 띄지도 않는 옷자락을 걸치고 있었으니 짐이 어찌 그대를 보겠소? 이제 보니 그다지 짐의 안중에 들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소. 내 어제 그대를 지목하여 말을 건네기 전까지 짐과 말조차 섞지 않으려 했을 위인이오, 그대는.”
“이런들 저런들, 신첩이 폐하의 마음에 찼겠습니까?”
“멋대로 판단하고 단정 짓지 마시오.”
복태는 자황의 말에 얼굴을 똑바로 들고 자황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대담하게 자황의 어깨에 두 팔을 걸쳐 목 뒤로 깍지를 끼고 당겨 용안을 가까이 마주했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하고 서로의 숨소리가 코끝을 스치는 가까운 거리가 되었다. 자황은 갑작스러운 복태의 도발에 놀라 두 눈을 크게 하였다.
복태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입을 열어 무미건조한 말투로 물었다.
“설레십니까?”
무심한 표정에 그런 감정 없는 목소리로 유혹 흉내를 낸들 설레겠는가.
“그럴 리가.”
자황의 대답에 복태는 두 발 물러섰다.
“이 정도로 대담한 노력을 했는데도 안 되는 걸 보면, 안 될 일이 맞나 봅니다.”
자황은 황당하여 언성을 높였다.
“이게 그대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전부란 말이오?”
“네.”
“겨우 이 정도가?!”
황제의 체면 불고하고 자황은 입이 딱 벌어졌다. 복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황을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엔 더 이상의 노력을 안 쏟는 것이 제 삶의 철칙입니다.”
***
자황은 급한 일정을 마친 후 잠시 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황의 앞에는 나이가 지극한 상궁이 자리했다. 보통이라면 황제와 상궁의 겸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자황에게 노 상궁은 특별한 존재였다. 자황을 낳아 준 어머니는 궁녀 출신인데 노 상궁이 바로 어머니와 같이 입궁을 했던 동기 지간이었다. 자황이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낙심하였을 때 옆에서 노 상궁이 어머니처럼 보살펴 주어서 자황에게는 어머니나 다름이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이렇듯 함께 다과를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황은 노 상궁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부리고 누구 앞에서보다도 편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복태와 있었던 일을 일일이 일러바치고 있었다.
“그렇게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인간은 처음 봤다.”
쀼루퉁해 보이는 자황을 보며 노 상궁은 지긋하게 미소 지었다. 복태의 태도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은 사람치고는 너무 그 사람 얘기만 하고 있었다. 노 상궁은 그 연유가 궁금했다. 자황이 오지랖이 넓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이를 이리도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거기다 후궁은 자황에게 차고 넘치는데 자황이 이 정도로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그의 신경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후궁도 많으신데 마음에 안 드는 이는 신경 쓰지 않으시면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그것이 짐이 복태에게 한 일련의 행동으로 만들어진 부정적인 사고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짐을 괴롭히는군. 짐이 자신을 마음에 품는 일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더군.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절하하면서 그리도 태연할 수가 있단 말이냐. 얼마나 많이 가치 절하를 해야 그렇게 흔들림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느냔 말이야. 그리고 무어라?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엔 더 이상 노력 안 하는 것이 삶의 철칙? 뭐 그런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철칙이 다 있어? 지금까지 짐이 들은 삶의 철칙 중에서 가장 형편없었다.”
“위 재인 마마께서는 다리가 불편하시다고 들었습니다. 폐하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장애 때문에 그런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본인만 장애를 갖고 산다더냐? 겨우 다리 하나 저는 거? 그 때문에 걷지를 못하더냐? 뛰지를 못하더냐?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하면 남의 입장 같은 건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쉽게 말한다 하겠지만, 짐은 다르지. 위 재인보다도 더 지독한 장애를 겪었으니까……. 그래 신체장애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말의 정신장애로 인한 공포심이 다리뿐 아니라 멀쩡한 등허리를 꼽추처럼 휘게 하였고, 멀쩡한 폐와 심장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였다. 공포로 온 사지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였어.”
자황은 말하면서 지난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기억은 항상 자황의 심연 속에 머무는 그림자이자 동시에 그런 지독한 그림자에서 벗어났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런 지독한 그림자에서 벗어났으니 그는 항상 자신감이 차 있었고 그의 좌우명이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없다.’가 된 것이었다.
자황이 태어난 지 여덟 해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어 방 안에만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였다. 자황의 어머니 유 씨는 자황을 데리고 별궁 근처에 있는 큰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수면과 거의 맞닿아 있어 그 안에 사는 비단잉어가 크고 자세히 보이는 게 명당이었다. 다리 중간에 멈춰 선 유 씨는 자황을 데리고 가장자리 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색색의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자황은 즐거운지 까르르 웃음 지으며 물가로 손을 자꾸 뻗어 댔다. 유 씨는 자황이 물에 빠지지 않게 손을 잡았다.
“무영아. 어미가 비단잉어 얘기해 줄까?”
“네, 어머니.”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어눌한 발음으로 자황이 대답했다.
“비단잉어는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그 크기를 결정한단다. 자그마한 어항에서 자라면 다 커도 조그맣고, 이처럼 넓은 연못에서 자라면 우리 무영이만큼 커질 수도 있어.”
“우와, 신기해요. 어머니!”
아직은 어린 자황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재밌기만 한 이야기였지만 유 씨는 속뜻은 달리 있었다. 황제는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라 명했지만 그렇게 살아가기엔 자황은 너무나 똘똘했다. 처음 자황의 비범함을 알아챘을 땐 걱정이 되었지만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자란 것보다는 똑똑한 편이 이 험난한 황실에서 목숨 붙이고 살아가는 데 더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황태자와 황태제보다 뛰어나면 안 되지만 자황은 뛰어났기에 그 똘똘함으로 오히려 모자란 척 연기를 하라며 가르침을 해 왔다.
“그리고 잉어는 밤에 잠잘 때도 눈을 항상 뜨고 있단다.”
“눈을 뜨고 어떻게 자요?”
“물고기는 그렇단다. 낮에도 밤에도 눈을 뜨고 있는 이 비단잉어를 본받아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해야 해. 어미가 매일 해 주는 말 잊지 않았지?”
“네, 어머니. 소자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데서나 뽐내지 않고 꼭 어머니에게만 뽐낼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지금은 조금 놀아도 되지요?”
조심스럽게 묻는 자황의 모습이 귀여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답을 기다리는 자황에게 허락을 내리자 잉어가 헤엄쳐 간 앞쪽으로 아장아장 뛰어갔다. 눈으로 무영을 쫓다 다리 반대편에 들어서는 홍 귀인(貴人 : 정2품)을 발견했다.
귀인 홍 씨는 대사농(大司農 : 지금의 재무장관) 홍천명의 여식으로 자식을 보진 못했지만 그 세가 대단하여 황후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아비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여 그 성질머리 또한 선한 성품은 아니었다. 유 씨는 성은을 입고 답응이 되었을 때 워낙 조용히 지내 홍 씨의 눈에 띄지 않았지만 회임을 하고부터는 간간이 홍 씨의 압박을 받아 왔었다. 그것이 무영을 낳으면서는 눈에 띄게 괴롭혀 왔기에 홍 씨를 보자마자 유 씨는 그 자리에서 그만 굳어 버렸다.
“네년은 눈이 안 보이기라도 하더냐? 인사도 없구나.”
홍 씨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에 들리고 나서야 유 씨는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송구하옵니다.”
“네년이 지금 아들을 낳았다 하여 내 앞에서 유세를 부리는 것이냐?”
“오해이십니다, 홍 귀인 마마.”
유 씨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홍 씨는 그 모습에 조금 마음이 풀려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자랑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지난밤에 내 처소에서 머무르신 폐하께서 내게 친히 내리신 노리개이니라.”
황제가 요즘 홍 귀인의 처소에 자주 들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다. 요즘은 황제가 유 씨를 찾지 않기에 홍 씨는 그 점을 콕 집어 약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 씨는 약이 오르기는커녕 다리 위에서 물가로 손을 뻗고 있는 자황에게 온 신경이 가 있었다. 자칫하면 물속으로 빠질 것 같은 모습이 위태위태하여 유 씨는 홍 씨를 지나쳐 자황에게 뛰어갔다. 그 과정에서 홍 씨의 몸과 부딪혀 그만 홍 씨가 들고 있던 노리개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유 씨는 급하게 달려가 자황을 잡아 안았다.
“위험하지 않으냐!”
“송구합니다, 어머니. 조그만 더 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네 이년!”
홍 씨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유 씨에게 다가와 뺨을 거세게 쳤다.
“네년이 감히 황제께서 하사하신 노리개를 깨 먹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게 된 유 씨는 자황을 내려놓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홍 씨에게 사정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황자가 걱정되어 앞뒤 분간 못 한 소인의 잘못이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내 이 일은 결단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여봐라, 가서 매질할 것을 가지고 오너라!”
홍 씨의 명령을 받고 한 궁녀가 뛰어가서는 날카로운 회초리와 두툼한 채찍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것을 본 자황은 놀라 울음을 터뜨렸지만 유 씨가 달래 줄 틈도 없이 궁녀 하나가 자황을 붙들고 뒤로 물러났다. 유 씨는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해 봤지만 홍 씨는 용납하지 않고 무참히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자황은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궁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울며불며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유 씨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연못에 퍼졌지만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유 씨의 편을 들지 못하고 홍 씨의 눈치만 살폈다.
홍 씨의 매질은 그녀의 체력이 다했을 때 비로소 멈췄다. 땀을 흘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홍 씨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유 씨를 노려보다가 자리를 떴다. 그제야 궁녀의 손에서 벗어난 자황은 유 씨에게 달려갔다. 채찍질로 인해 비단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나와 젖어 있었다. 머리도 맞았는지 이마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피는 바닥으로 흘러 다시 몸을 적시고 있었다. 유 씨는 자황이 다가왔는데도 쳐다볼 힘도 없어 숨만 힘겹게 내쉬고 있었다.
“어…… 어…… 어…… 어머니……. 어…… 어머니…….”
자황은 처음 보는 광경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사람의 몸에서 이처럼 많은 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듯했고, 무엇보다 항상 정갈한 차림새에 단아한 미소만 보여 줬던 어머니가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놀라는 듯했다. 죽음에 관해 간접적으로도 겪어 보지 못한 어린 나이인데 첫 경험의 대상이 어머니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 사건은 며칠 후 황제의 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신의 대한 시기심으로 황제의 하사품을 망가뜨렸다는 홍 씨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황제는 오히려 유 씨에게 진노하여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게했다. 이에 유 씨를 직접 모셨던 궁녀가 사가의 의원을 불러들여 치료하게 하였다. 하지만 치료의 시기가 늦어져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유 씨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자황은 그 충격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많은 연못과 연못으로 향하는 길목만 가면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 증세를 보이거나, 숨이 가쁘기 시작했고 심하게는 호흡 곤란이나 정신을 잃었다.
어느 날 황실의 공식적인 연회에서 발작을 일으켜 쓰러진 사건은 모든 사람이 자황의 병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자황을 보며 사람들은 그가 어딘가 모자란 아이 같다며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무시하고 얼간이, 머저리라고 손가락질했다.
***
그날 이후 자황은 철저하게 자신의 방 안에서만 살게 되었다.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이제는 두려움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뛰어놀았던 바깥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지만 그날의 공포가 온 마음을 장악하여 감히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황은 항상 어두운 방구석에서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세상, 그 조그마한 일부분만 보는 것이 그가 가질 수 있는 세상이었다. 마음의 갈증보다 더한 공포. 항상 마음속에서 이 두 개의 응어리가 서로의 크기와 깊이를 재어 가며 싸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 상궁이 손에 웬 신발을 들고 자황을 찾아왔다.
“언제까지 그러고만 계실 작정이십니까?”
어머니의 친구인 노 상궁이 그런 자황의 뒷모습을 토닥였다.
“노 상궁.”
“돌아가신 유 답응 마마께서 슬퍼하고 계실 겁니다.”
노 상궁은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자황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신발을 자황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신이 말입니다. 신묘하게도 이 신을 신는 사람에게 이 신에 담긴 인생을 나눠 준다고 하더이다. 그렇게 이 신의 밑창이 닳도록 신으면 이 신에 담긴 삶이 그 사람의 삶이 된답니다.”
“신에게 인생이 어디 있더냐. 사람인 나도 가지지 못한 것이 고작 신발에게 있단 말이냐.”
자황은 창가에 기대어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선 하염없이 창밖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아버지가 내린 ‘무영’이라는 이름을 부정하기 위해 아무리 학문을 닦고 무예를 익혀도, 이 문밖만 나가면 병신이 되었다. 이 안에서의 노력은 너무나도 부질없었다. 부질없으니 이건 삶이 아니다. 그러니 우스울 수밖에. 자황에게도 없는 삶이 고작 사람들이 질근질근 밟는 신발에 있다니!
“물건엔 사념이 담긴다 하죠. 만든 사람이 세상사를 담아 넣었다 하더이다.”
“그래서 이 신에는 무슨 인생이 담겨 있다더냐?”
“마마께서 밟을 인생은 신발 바닥에 새겨져 있나이다.”
자황은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신발 바닥의 글귀를 읽게 되었다.
‘내디뎌야 한다. 이대로 삶의 무게에 매장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
자황은 신발 바닥의 글귀를 보는 순간 가슴속 깊이 가라앉아 있었던 무언가가 울컥 목울대를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의 공포에 삶이 매장되어 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마음의 갈증과 공포 사이에 서 있었던 것이다. 흙더미가 점점 목 끝까지 차오르는지도 모르고 그렇고 앉아서 재기만 했던 것이다.
자황은 눈물이 뜨겁게 차오르는 눈으로 노 상궁을 바라보았다. 노 상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금씩 몸을 일으켜 세워 자황은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다. 어두웠던 방 안에 밝은 햇살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눈부심에 눈을 찡그리자 고여 있었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나왔다. 자황은 자신의 발에 신겨져 있는 신을 바라보고는 더 밝은 빛이 존재하는 바깥세상을 향해 마침내 한 발짝 내디뎠다.
‘내딛자! 매장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금 이 순간.’
“장애가 있다 하여 모든 이가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진 않아.”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던 자황이 다시 입을 열었다. 노 상궁은 자황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림짐작하였다.
“그리도 그분이 신경이 쓰이신다면…….”
노 상궁의 말허리를 자르며 자황이 끼어들었다.
“좋은 의미로 신경 쓰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 상궁은 자황의 말에 나이답지 않게 호호거리며 웃었다. 자황은 뭐가 우스운 거냐는 듯 노려봤지만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다. 자황은 노 상궁을 험하게 대하지 못하니 말이다.
“폐하께서 태복 선생의 글로 도움을 받으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폐하께서 위 재인 마마께 태복 선생이 되어 드리는 것은 어떠할는지요?”
“뭐? 짐이 어떻게 말이냐? 짐이 그리 한가한 줄 아느냐?”
자황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과 말로 언성을 높였다. 노 상궁은 그런 자황을 지긋이 쳐다보며 여태까지 인자했던 표정을 지우고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말 없는 노 상궁의 표정에 괜히 양심의 가책이 밀려왔다. 자황은 뚱한 모습으로 중얼거리며 말했다.
“뭐…… 짐이 준…… 상처도 있으니까…….”
자황의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밖을 보니 늘 일어나던 시간인 묘시쯤 되는 것 같았다.
‘뭐야……. 설마 잠든 것인가?’
무언가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자황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이 침실에는 자신만 있었다. 복태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위 재인은 어디에 있는 거지?’
설마, 먼저 잠이 든 자신을 또다시 원망하며 돌아선 것은 아닐까. 혼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복태의 슬픈 모습과 서슬 퍼런 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찾아야 한다. 자황은 마음이 급해 의복을 제대로 정비하지도 않고 바로 방 밖을 나섰다.
처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복태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침소에는 물론 없었고, 침소와 이어져 있는 식사 공간과 응접실, 욕실, 욕실과 이어지는 거실과 뒤뜰도 찾아보고 대청마루를 지나 앞마당 정원까지 돌아다봤지만 복태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조그마한 방 하나. 그 방은 찾아보지 않았었다. 자황은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복태가 고른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으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자황은 복태를 발견하자 긴장감을 놓고 안심하는 듯 한숨을 쉬었다. 복태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지난밤 제쳐놓았던 미안함이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계속 미안한 마음만 드니 이제는 오히려 복태가 미련스러워 보여 화가 나려고 했다. 자황은 복태에게 다가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보시오.”
복태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하지만 움직임은 그게 끝이었다. 자황은 약간의 짜증을 섞어,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크게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시오!”
그제야 복태는 잘 뜨이지 않는 눈을 떴다. 새벽 댓바람부터 보일 리가 없는 자황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사태를 파악한 복태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자황에게 예를 갖추었다.
“아, 폐하. 뭐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어제 왜 그냥 돌아간 것이오?”
‘어딜 돌아가?’
복태는 자황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젯밤 분명히 내 볼 일을 보라는 명을 받고 쉬러 가지 않았는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생각했다. 혹시 자황의 말을 자신이 오해하여 멋대로 판단해 버린 것은 아니었나 싶었다. 복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혹시…… 어제 왜 잠자리에 같이 안 들었냐고 하문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자신이 자황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는 걸 깨달은 복태는 이 위기의 순간을 재빠르게 극복해야만 했다. 말을 잘못 알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부각하기보다는 자황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어제는 어떤 이유로 다른 후궁들을 상대하기 귀찮아지셔서 신첩을 찾으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자황은 복태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자황의 두 손은 갈 곳을 잃은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짐의 의도가 그랬든 안 그랬든, 노력이라도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니오?”
복태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삐친 것처럼 보였던 자황은 스스로에게 내야 할 화를 도리어 복태에게 내기 시작했다.
“그 표정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오? 남의 의중이야 어떻든 간에 그대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면 노력이라도 해 봤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짐의 말이 이해가 안 가오? 소박맞은 첫날밤 이후 몇 년 만에 찾아온 기회인데, 짐이 잠든 모습을 봤으면 악착같이 깨웠어야 하지 않소.”
투정 부리듯 투덜거리는 자황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복태는 지금 이 상황이 조금씩 파악되기 시작했다.
‘내가 애초에 안 간 줄 모르고 본인이 잠든 사이 왔다 간 줄 알고 있고, 그리고 본인이 오히려 너무 미안한 나머지 도리어 적극적이지 못한 내 탓이라며 화를 내는 중인 거고?’
“악착같이 깨운 다음에는요?”
“뭐?”
“악착같이 깨운 다음에는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신첩과 잠자리를 할 마음이 없는 폐하께 제가 뭘 어찌했어야 한단 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자황이 당황하며 입을 벙끗거리다가, 복태의 질문이 감히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깨워서 너무 하다며 화를 내든지, 아니면 울든지! 그리고 그대가 노력하지 않았어도 짐은 할 마음이 있었소! 깨우기만 했다면.”
“그러니까 폐하의 미안한 마음을 이용해서라도 원대로 잠자리를 했어야 한단 말씀이시군요. 허나 폐하, 폐하의 측은지심으로 안긴 신첩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무려 첫. 날. 밤. 인데 말입니다.”
“짐의 측은지심으로 안기고 싶지 않았다면 다른 후궁들처럼 연회 때마다 잔뜩 치장하고 나오든, 짐의 근처에 앉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든지 해야 했소.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는 그대의 책임도 있단 말이오. 짐의 자리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 끝자리에 앉아 눈에 띄지도 않는 옷자락을 걸치고 있었으니 짐이 어찌 그대를 보겠소? 이제 보니 그다지 짐의 안중에 들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소. 내 어제 그대를 지목하여 말을 건네기 전까지 짐과 말조차 섞지 않으려 했을 위인이오, 그대는.”
“이런들 저런들, 신첩이 폐하의 마음에 찼겠습니까?”
“멋대로 판단하고 단정 짓지 마시오.”
복태는 자황의 말에 얼굴을 똑바로 들고 자황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대담하게 자황의 어깨에 두 팔을 걸쳐 목 뒤로 깍지를 끼고 당겨 용안을 가까이 마주했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하고 서로의 숨소리가 코끝을 스치는 가까운 거리가 되었다. 자황은 갑작스러운 복태의 도발에 놀라 두 눈을 크게 하였다.
복태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입을 열어 무미건조한 말투로 물었다.
“설레십니까?”
무심한 표정에 그런 감정 없는 목소리로 유혹 흉내를 낸들 설레겠는가.
“그럴 리가.”
자황의 대답에 복태는 두 발 물러섰다.
“이 정도로 대담한 노력을 했는데도 안 되는 걸 보면, 안 될 일이 맞나 봅니다.”
자황은 황당하여 언성을 높였다.
“이게 그대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전부란 말이오?”
“네.”
“겨우 이 정도가?!”
황제의 체면 불고하고 자황은 입이 딱 벌어졌다. 복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황을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엔 더 이상의 노력을 안 쏟는 것이 제 삶의 철칙입니다.”
자황은 급한 일정을 마친 후 잠시 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황의 앞에는 나이가 지극한 상궁이 자리했다. 보통이라면 황제와 상궁의 겸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자황에게 노 상궁은 특별한 존재였다. 자황을 낳아 준 어머니는 궁녀 출신인데 노 상궁이 바로 어머니와 같이 입궁을 했던 동기 지간이었다. 자황이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낙심하였을 때 옆에서 노 상궁이 어머니처럼 보살펴 주어서 자황에게는 어머니나 다름이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이렇듯 함께 다과를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황은 노 상궁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부리고 누구 앞에서보다도 편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복태와 있었던 일을 일일이 일러바치고 있었다.
“그렇게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인간은 처음 봤다.”
쀼루퉁해 보이는 자황을 보며 노 상궁은 지긋하게 미소 지었다. 복태의 태도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은 사람치고는 너무 그 사람 얘기만 하고 있었다. 노 상궁은 그 연유가 궁금했다. 자황이 오지랖이 넓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이를 이리도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거기다 후궁은 자황에게 차고 넘치는데 자황이 이 정도로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그의 신경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후궁도 많으신데 마음에 안 드는 이는 신경 쓰지 않으시면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그것이 짐이 복태에게 한 일련의 행동으로 만들어진 부정적인 사고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짐을 괴롭히는군. 짐이 자신을 마음에 품는 일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더군.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절하하면서 그리도 태연할 수가 있단 말이냐. 얼마나 많이 가치 절하를 해야 그렇게 흔들림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느냔 말이야. 그리고 무어라?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엔 더 이상 노력 안 하는 것이 삶의 철칙? 뭐 그런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철칙이 다 있어? 지금까지 짐이 들은 삶의 철칙 중에서 가장 형편없었다.”
“위 재인 마마께서는 다리가 불편하시다고 들었습니다. 폐하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장애 때문에 그런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본인만 장애를 갖고 산다더냐? 겨우 다리 하나 저는 거? 그 때문에 걷지를 못하더냐? 뛰지를 못하더냐?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하면 남의 입장 같은 건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쉽게 말한다 하겠지만, 짐은 다르지. 위 재인보다도 더 지독한 장애를 겪었으니까……. 그래 신체장애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말의 정신장애로 인한 공포심이 다리뿐 아니라 멀쩡한 등허리를 꼽추처럼 휘게 하였고, 멀쩡한 폐와 심장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였다. 공포로 온 사지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였어.”
자황은 말하면서 지난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기억은 항상 자황의 심연 속에 머무는 그림자이자 동시에 그런 지독한 그림자에서 벗어났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런 지독한 그림자에서 벗어났으니 그는 항상 자신감이 차 있었고 그의 좌우명이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없다.’가 된 것이었다.
자황이 태어난 지 여덟 해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어 방 안에만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였다. 자황의 어머니 유 씨는 자황을 데리고 별궁 근처에 있는 큰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수면과 거의 맞닿아 있어 그 안에 사는 비단잉어가 크고 자세히 보이는 게 명당이었다. 다리 중간에 멈춰 선 유 씨는 자황을 데리고 가장자리 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색색의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자황은 즐거운지 까르르 웃음 지으며 물가로 손을 자꾸 뻗어 댔다. 유 씨는 자황이 물에 빠지지 않게 손을 잡았다.
“무영아. 어미가 비단잉어 얘기해 줄까?”
“네, 어머니.”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어눌한 발음으로 자황이 대답했다.
“비단잉어는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그 크기를 결정한단다. 자그마한 어항에서 자라면 다 커도 조그맣고, 이처럼 넓은 연못에서 자라면 우리 무영이만큼 커질 수도 있어.”
“우와, 신기해요. 어머니!”
아직은 어린 자황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재밌기만 한 이야기였지만 유 씨는 속뜻은 달리 있었다. 황제는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라 명했지만 그렇게 살아가기엔 자황은 너무나 똘똘했다. 처음 자황의 비범함을 알아챘을 땐 걱정이 되었지만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자란 것보다는 똑똑한 편이 이 험난한 황실에서 목숨 붙이고 살아가는 데 더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황태자와 황태제보다 뛰어나면 안 되지만 자황은 뛰어났기에 그 똘똘함으로 오히려 모자란 척 연기를 하라며 가르침을 해 왔다.
“그리고 잉어는 밤에 잠잘 때도 눈을 항상 뜨고 있단다.”
“눈을 뜨고 어떻게 자요?”
“물고기는 그렇단다. 낮에도 밤에도 눈을 뜨고 있는 이 비단잉어를 본받아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해야 해. 어미가 매일 해 주는 말 잊지 않았지?”
“네, 어머니. 소자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데서나 뽐내지 않고 꼭 어머니에게만 뽐낼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지금은 조금 놀아도 되지요?”
조심스럽게 묻는 자황의 모습이 귀여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답을 기다리는 자황에게 허락을 내리자 잉어가 헤엄쳐 간 앞쪽으로 아장아장 뛰어갔다. 눈으로 무영을 쫓다 다리 반대편에 들어서는 홍 귀인(貴人 : 정2품)을 발견했다.
귀인 홍 씨는 대사농(大司農 : 지금의 재무장관) 홍천명의 여식으로 자식을 보진 못했지만 그 세가 대단하여 황후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아비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여 그 성질머리 또한 선한 성품은 아니었다. 유 씨는 성은을 입고 답응이 되었을 때 워낙 조용히 지내 홍 씨의 눈에 띄지 않았지만 회임을 하고부터는 간간이 홍 씨의 압박을 받아 왔었다. 그것이 무영을 낳으면서는 눈에 띄게 괴롭혀 왔기에 홍 씨를 보자마자 유 씨는 그 자리에서 그만 굳어 버렸다.
“네년은 눈이 안 보이기라도 하더냐? 인사도 없구나.”
홍 씨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에 들리고 나서야 유 씨는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송구하옵니다.”
“네년이 지금 아들을 낳았다 하여 내 앞에서 유세를 부리는 것이냐?”
“오해이십니다, 홍 귀인 마마.”
유 씨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홍 씨는 그 모습에 조금 마음이 풀려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자랑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지난밤에 내 처소에서 머무르신 폐하께서 내게 친히 내리신 노리개이니라.”
황제가 요즘 홍 귀인의 처소에 자주 들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다. 요즘은 황제가 유 씨를 찾지 않기에 홍 씨는 그 점을 콕 집어 약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 씨는 약이 오르기는커녕 다리 위에서 물가로 손을 뻗고 있는 자황에게 온 신경이 가 있었다. 자칫하면 물속으로 빠질 것 같은 모습이 위태위태하여 유 씨는 홍 씨를 지나쳐 자황에게 뛰어갔다. 그 과정에서 홍 씨의 몸과 부딪혀 그만 홍 씨가 들고 있던 노리개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유 씨는 급하게 달려가 자황을 잡아 안았다.
“위험하지 않으냐!”
“송구합니다, 어머니. 조그만 더 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네 이년!”
홍 씨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유 씨에게 다가와 뺨을 거세게 쳤다.
“네년이 감히 황제께서 하사하신 노리개를 깨 먹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게 된 유 씨는 자황을 내려놓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홍 씨에게 사정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황자가 걱정되어 앞뒤 분간 못 한 소인의 잘못이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내 이 일은 결단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여봐라, 가서 매질할 것을 가지고 오너라!”
홍 씨의 명령을 받고 한 궁녀가 뛰어가서는 날카로운 회초리와 두툼한 채찍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것을 본 자황은 놀라 울음을 터뜨렸지만 유 씨가 달래 줄 틈도 없이 궁녀 하나가 자황을 붙들고 뒤로 물러났다. 유 씨는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해 봤지만 홍 씨는 용납하지 않고 무참히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자황은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궁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울며불며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유 씨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연못에 퍼졌지만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유 씨의 편을 들지 못하고 홍 씨의 눈치만 살폈다.
홍 씨의 매질은 그녀의 체력이 다했을 때 비로소 멈췄다. 땀을 흘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홍 씨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유 씨를 노려보다가 자리를 떴다. 그제야 궁녀의 손에서 벗어난 자황은 유 씨에게 달려갔다. 채찍질로 인해 비단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나와 젖어 있었다. 머리도 맞았는지 이마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피는 바닥으로 흘러 다시 몸을 적시고 있었다. 유 씨는 자황이 다가왔는데도 쳐다볼 힘도 없어 숨만 힘겹게 내쉬고 있었다.
“어…… 어…… 어…… 어머니……. 어…… 어머니…….”
자황은 처음 보는 광경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사람의 몸에서 이처럼 많은 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듯했고, 무엇보다 항상 정갈한 차림새에 단아한 미소만 보여 줬던 어머니가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놀라는 듯했다. 죽음에 관해 간접적으로도 겪어 보지 못한 어린 나이인데 첫 경험의 대상이 어머니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 사건은 며칠 후 황제의 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신의 대한 시기심으로 황제의 하사품을 망가뜨렸다는 홍 씨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황제는 오히려 유 씨에게 진노하여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게했다. 이에 유 씨를 직접 모셨던 궁녀가 사가의 의원을 불러들여 치료하게 하였다. 하지만 치료의 시기가 늦어져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유 씨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자황은 그 충격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많은 연못과 연못으로 향하는 길목만 가면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 증세를 보이거나, 숨이 가쁘기 시작했고 심하게는 호흡 곤란이나 정신을 잃었다.
어느 날 황실의 공식적인 연회에서 발작을 일으켜 쓰러진 사건은 모든 사람이 자황의 병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자황을 보며 사람들은 그가 어딘가 모자란 아이 같다며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무시하고 얼간이, 머저리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날 이후 자황은 철저하게 자신의 방 안에서만 살게 되었다.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이제는 두려움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뛰어놀았던 바깥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지만 그날의 공포가 온 마음을 장악하여 감히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황은 항상 어두운 방구석에서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세상, 그 조그마한 일부분만 보는 것이 그가 가질 수 있는 세상이었다. 마음의 갈증보다 더한 공포. 항상 마음속에서 이 두 개의 응어리가 서로의 크기와 깊이를 재어 가며 싸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 상궁이 손에 웬 신발을 들고 자황을 찾아왔다.
“언제까지 그러고만 계실 작정이십니까?”
어머니의 친구인 노 상궁이 그런 자황의 뒷모습을 토닥였다.
“노 상궁.”
“돌아가신 유 답응 마마께서 슬퍼하고 계실 겁니다.”
노 상궁은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자황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신발을 자황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신이 말입니다. 신묘하게도 이 신을 신는 사람에게 이 신에 담긴 인생을 나눠 준다고 하더이다. 그렇게 이 신의 밑창이 닳도록 신으면 이 신에 담긴 삶이 그 사람의 삶이 된답니다.”
“신에게 인생이 어디 있더냐. 사람인 나도 가지지 못한 것이 고작 신발에게 있단 말이냐.”
자황은 창가에 기대어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선 하염없이 창밖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아버지가 내린 ‘무영’이라는 이름을 부정하기 위해 아무리 학문을 닦고 무예를 익혀도, 이 문밖만 나가면 병신이 되었다. 이 안에서의 노력은 너무나도 부질없었다. 부질없으니 이건 삶이 아니다. 그러니 우스울 수밖에. 자황에게도 없는 삶이 고작 사람들이 질근질근 밟는 신발에 있다니!
“물건엔 사념이 담긴다 하죠. 만든 사람이 세상사를 담아 넣었다 하더이다.”
“그래서 이 신에는 무슨 인생이 담겨 있다더냐?”
“마마께서 밟을 인생은 신발 바닥에 새겨져 있나이다.”
자황은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신발 바닥의 글귀를 읽게 되었다.
‘내디뎌야 한다. 이대로 삶의 무게에 매장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
자황은 신발 바닥의 글귀를 보는 순간 가슴속 깊이 가라앉아 있었던 무언가가 울컥 목울대를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의 공포에 삶이 매장되어 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마음의 갈증과 공포 사이에 서 있었던 것이다. 흙더미가 점점 목 끝까지 차오르는지도 모르고 그렇고 앉아서 재기만 했던 것이다.
자황은 눈물이 뜨겁게 차오르는 눈으로 노 상궁을 바라보았다. 노 상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금씩 몸을 일으켜 세워 자황은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다. 어두웠던 방 안에 밝은 햇살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눈부심에 눈을 찡그리자 고여 있었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나왔다. 자황은 자신의 발에 신겨져 있는 신을 바라보고는 더 밝은 빛이 존재하는 바깥세상을 향해 마침내 한 발짝 내디뎠다.
‘내딛자! 매장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금 이 순간.’
“장애가 있다 하여 모든 이가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진 않아.”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던 자황이 다시 입을 열었다. 노 상궁은 자황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림짐작하였다.
“그리도 그분이 신경이 쓰이신다면…….”
노 상궁의 말허리를 자르며 자황이 끼어들었다.
“좋은 의미로 신경 쓰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 상궁은 자황의 말에 나이답지 않게 호호거리며 웃었다. 자황은 뭐가 우스운 거냐는 듯 노려봤지만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다. 자황은 노 상궁을 험하게 대하지 못하니 말이다.
“폐하께서 태복 선생의 글로 도움을 받으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폐하께서 위 재인 마마께 태복 선생이 되어 드리는 것은 어떠할는지요?”
“뭐? 짐이 어떻게 말이냐? 짐이 그리 한가한 줄 아느냐?”
자황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과 말로 언성을 높였다. 노 상궁은 그런 자황을 지긋이 쳐다보며 여태까지 인자했던 표정을 지우고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말 없는 노 상궁의 표정에 괜히 양심의 가책이 밀려왔다. 자황은 뚱한 모습으로 중얼거리며 말했다.
“뭐…… 짐이 준…… 상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