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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원정대 1화
01. 결심 (1)


안주인의 이혼 선언에 테일러 가문은 발칵 뒤집혔다. 젊은 수장, 미하엘 테일러 공작은 이 일이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키고, 자신의 안사람을 졸졸 쫓아다니며 마음을 바꾸려 애썼다. 업무마저 다 내팽개치고 부인에게 별궁이며 옷이며 보석이며, 선물을 한 아름 갖다 바치는 그의 모습은 실로 추하기 그지없었다.
남몰래 그를 흠모하던 고용인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왕자님인 각하께서 그러실 리 없다며 눈과 귀를 닫고 아웅 했다. 성격이 냉철하고 칼 같으며 그야말로 냉혈한이라고 소문이 나 있던 공작은 아내의 이혼 통보에 그야말로 한 방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어린 부인, 루이스 테일러(24)는 자신의 휴대 전화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쿵쾅쿵쾅, 방문이 아주 부서질 듯 소음을 내고 있었다. 뭐라 소리치는 목소리가들리긴 하는데, 워낙 방음이 잘 되는지라 그저 웅얼거림으로 들린다.
아까부터 휴대 전화는 계속해서 벨이 울리고 있지, 남편에 가주라는 사람은 교양 없게 와이프의 방문을 거세게 두들기고 있지. 저절로 골이 아파와 루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문질렀다.
“루이스! 허니! 제발 문 좀 열어 봐! 제발, 제발!”
미하엘은 거세게 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하지만 방 안은 쥐새끼 하나 없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저절로 이가 뿌득, 갈렸다. 저번에 집사를 시켜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그는 경멸 어린 표정으로 일주일간 각방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호되게 당한 미하엘은 차마 집사에게 열쇠를 가져오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했다간 별궁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루이스의 표정이 너무도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 발로 나와 문을 열어 줄 때까지 이렇게 두들기며 애원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타이나에 자신만 한 애처가가 또 어디 있다고.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자신과 루이스는 여전히 신혼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밤이 허니문이었으며 신혼여행 첫날 같은 하루를 나날이 보내고 있었다. 믿었건만. 그의 자신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믿었건만. 대체 이 뜬금없는 이혼 통보는 뭐란 말인가. 미하엘은 현실을 부정했다. 절대로, 그가 이혼을 통보할 리가 없었다. 절대로.
“제발, 허니…… 제발 이 문만 열어 줘. 얼굴 맞대고 이야기만 하게 해 줘. 그럼 뭐든지 다 해 줄게. 뭐든지…….”
점점 그의 목소리는 앓듯이 변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집사와 하녀들은 모른 척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렸다. 항상, 언제나 품위 있고 완벽하던 우리 가주님이 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예전부터 공작 부인 마님에게 팔불출처럼 굴면서도 그 품위만큼은 잃지 않던 분이신데.
이젠 마님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똥개…… 아니, 강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도 미친 듯이 끙끙거리며 젖 찾는 강아지.

아랫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미하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영원한 피앙세를 잃지 않겠다는 발악 말고는 아무것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루이스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가 없으면 자신은 그저 숨만 쉬는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기필코 그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미하엘은 쥐고 있는 휴대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두들겼다. 신호음이 가다가 시간 때문에 끊기고를 거의 쉰 번이 반복한 끝내 아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요. 나 잘 거예요.
“허니. 제발. 내 말 좀 들어 봐. 응?”
-싫어요. 한 번만 더 문 두들기면 가만 안 둘 줄 알아요.
“허, 허니? 허니! 자기야!”
뚝, 전화가 끊겼다. 으드득, 휴대 전화 화면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던 미하엘은 크아아악! 하고 허공에 포효를 했다. 그의 무시무시한 샤우팅에 집사와 하녀들은 움찔 몸을 굳히며 덜덜 떨었다. 미하엘의 분노는 결국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뭐 하고 서 있어. 구경났나? 그렇게 할 일이 없나? 만들어 줘?”
“아, 아닙니다!”
으르렁, 마치 짐승과도 같은 목소리에 하녀들은 일제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후다닥 몸을 피했다. 더 이상 서 있다간 오줌이라도 지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새삼 이혼을 하자며 저러고 있는 부인 마님이 원망스러워졌다.
솔직히 우리 가주님. 인물은 완전 대천사 미카엘의 강림에, 돈은 황궁 재정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지. 작위, 가문마저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데 대체 왜 이혼을 하자는 거냔 말이다. 그것도 결혼한 지 3년 만에 말이다. 권태기가 오래갔으면 또 몰라,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깨 볶으며 죽고 못 살아 솔로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면서.
대체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 높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겠다는 거냔 말이다. 친정이 괜찮은 집안이면 또 몰라. 동네에서 빵 가게를 운영하는 평민의 집안이면서 말이다.
“두통약 하나 준비해서 내 집무실로 와. 머리가 깨질 것 같군.”
“예, 주인님.”
뿌드득, 이를 갈며 미하엘이 데인에게 말했다. 집사 데인은 짧게 목례를 하곤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와 루이스의 냉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힘든 건 아랫사람들이었다. 데인은 테일러 가문에 일생을 바친 뼛속까지 집사인 남자였다. 비록 남자이긴 하나 테일러가의 내정은 자신의 몫이기도 했다.
마님과 주인님의 평화를 지키는 것 또한 자신의 사명. 그는 루이스와 친한 하녀 몇을 이용해 하루 종일 그를 살폈다. 하지만 루이스, 그는 아주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가 테일러 가문에 들어온 후 테일러가의 내정은 전보다 두 배는 더 좋아졌다. 그의 지혜로운 일 처리 덕분이었다.
그는 집사의 속내를 진즉에 꿰뚫고 자신을 철저히 감췄다. 하녀들은 그에게서 그 무엇도 알아낼 수 없었다. 해서 지금 데인과 미하엘은 죽을 맛이었다.
“보고서 제출 똑바로 하라고 몇 번을 말해! 잘리고 싶나?”
“죄송합니다!”
그의 직속 보좌관을 맡고 있는 카일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크게 외쳤다. 후다닥 꽁무니를 내빼는 이 순간만큼은 한없이 무능해 보이는 보좌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하엘은 다시금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렇게 이를 으득으득 갈다 보면 갑작스레 기분이 축 처지고 무슨 어미 잃고 비 맞는 똥강아지처럼 처량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
무시무시한 분노를 표출하다, 우울감에 퀭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다가, 루이스에게 달려가 애원하다가를 반복한 지도 어느새 열흘이 지나고 있었다.
루이스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미하엘은 절대로 이혼을 해 주지 않을 것이다. 저절로 머리가 아파 와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잠수를 타 버릴 수도 없고.

루이스는 남편인 미하엘이 첸 때문에 아이를 반대한다고 생각했다. 첸은 이제 여섯 살이 된 그의 어린 아들이었다. 친아들은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그의 형의 아들이다. 조카를 아들로 키우고 있는 건 첸의 부모가 둘 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첸의 친모는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원래부터 몸이 약해 가업을 잇지 못하고 요양만 하던 그의 형 가브리엘레는 그녀가 죽은 지 1년도 채 안 되어 죽어 버렸다. 핏덩이 아들을 놔둔 채 말이다.
부모를 잃은 핏덩이 첸을 미하엘은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켰다. 형의 아들이지만, 자신의 아들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와 결혼하고 나서 루이스는 첸의 또 다른 아버지가 되었다.
예전부터 미하엘은 첸에게 모든 것을 물려줄 것이라고 말해 왔기 때문에, 자신이 아이를 낳으면 의도치 않게 후계자 경쟁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근심에 첸을 제외한 다른 자식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일 터였다.
솔직히 루이스는 가문과 기업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다. 하는 일이라곤 테일러 성의 내정을 관리하는 것뿐이었다. 테일러가의 기업에 관한 일은 관심 밖이었다. 자신이 설사 아이를 낳는다 하더라도, 그 아이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미하엘에게 서운하진 않았다. 어미가 욕심이 없다고 자식 또한 그러란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정말로 그는 경우의 수를 모두 차단한 것이다. 자신과 그 아이가 첸의 자리를 넘볼 수도 있다는 작은 확률.
하지만 이미 생겨 버린 아이를 그 혹시나 싶은 미래 때문에 죽여 버리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었다. 루이스는 가업 때문에 미하엘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아이를 테일러 가문과 아예 상관없는 아이로 기를 생각이었다. ……해서 이혼을 권유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 또한 먹히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됐든, 한평생을 테일러 가문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간다 하더라도 차후에 얼마든지 테일러 가문의 혈통을 내세워 지분을 요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른 행성으로, 다른 행성인에게 입양을 보낸다 하더라도 중절 수술을 강요할 것이다.
약물 한입이면 그 어떤 고통도,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유산이 되는 이 세상에서 낙태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 행위였다.

‘아이는 절대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식 전날 밤, 그가 혼전 계약서와 함께 건넨 말이었다.
미하엘 테일러. 어린 나이에 테일러 가문의 수장이 된 그는 27세의 나이에 두 번째 결혼을 맞았다.
2년이라는 연애를 끝마치고 서로 열렬히 사랑하며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그의 작위와는 맞지 않은 결혼이라며 세간의 화젯거리였던 그 결혼의 신부는, 놀랍게도 아무런 볼품없는 남자였다.
그는 가문도, 명예도, 돈도, 아무것도 보잘 것 없었다. 그저 수수한 아름다움이 묻어져 나오는 단정한 외모를 빼면 어디 하나 볼 것 없는 하찮은 평민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테일러 가문의 안주인이 될 거라는 소식에 해외에서까지 그들을 중심으로 기삿거리를 쏟아 냈다.
운명적인 사랑의 결실이라고 행복한 웃음으로 인터뷰를 하는 두 사람의 속사정에 이런 혼전 계약서가 있다는 사실은, 테일러 가문의 변호사와 당사자인 두 사람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루이스 다인은 사랑하는 연인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아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사랑으로 그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명을 하더라도 나중에 분명 그는 자신의 아이를 원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결혼만 생각할래.’ 이게 그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는 결혼 당시 21세의 어린 나이였고, 해서 자신의 연인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철이 없던 것이다.
결혼 후 얼마간은 아이에 대한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사랑하는 남편과 드넓은 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해서 루이스는 물었다. 이쯤 되면 그 또한 생각을 바꾸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하엘. 저기…… 아이는 갖지 않겠다던 약속…… 아직도 여전한가요?’
솔직히 이젠 마음이 바뀌었겠지, 하는 확신을 갖고 물은 거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한 눈빛과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수면제 먹고 강제로 산부인과로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 다시는 하지 마.’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게, 한없이 다정하고 또 다정하던 그의 얼굴이 그토록 싸늘해 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사람 하나는 하직시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는 진심으로, 아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젊긴 하지만 엄연히 한 가문의 수장이었다. 루이스는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미하엘을 상대할 수 없었다. 연애 초기부터 시작해서 결혼 후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를 때까지 말이다.
해서 그 경고를 들은 후 1년이 지나고 아이가 생겼을 때, 루이스는 고민에 빠졌다. 아이의 아비가 떡하니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못했다. 1년 전, 만약에 아이가 생긴다면 강제로 낙태를 시킬 거라고 말하는 미하엘은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피임은 연애 초반부터 시작해 쭉 테일러 가문의 전문 주치의가 관리해 주고 있었다. 루이스는 매달 가임기와 발정기에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자신 또한 서로 함께 원하지 않는 아이는 필요 없다며 철저한 피임에 별다른 말없이 잘 따르는 루이스의 모습에 미하엘은 방심했다.
자신이 관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한다는 생각에, 또한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피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3년이 지나도 아이를 갖고 싶다고 조르지 않고 꼬박꼬박 피임을 받아들이는 루이스를 믿었던 탓이다. 그렇게 서서히 루이스에 대한 관리는 풀어져만 갔고, 예상치 못하게 아이가 들어섰던 것이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루이스는 마음을 굳혔다.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로 이혼을 결정했다. 후회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생긴 아이를 어떻게 지운단 말인가. 아이를 가졌단 것을 알기 전엔 그 또한 아이를 갖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도저히 지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테일러 가문의 눈을 피해 아무도 모르는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고 나오며 루이스는 거의 반나절을 초음파 사진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이 굳어졌다.
자신은 절대로 이 아이를 죽이지 못한다.

똑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루이스는 고개를 돌렸다.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문을 바라보자, ‘아빠’ 하고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이스는 그제야 굳은 얼굴을 풀고 활짝 웃었다.
“내 새끼 왔어? 공부 잘했고?”
“네에.”
방싯방싯 웃으며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루이스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첸을 안아 들었다. 쪽, 하고 아이가 볼에 입을 맞춰 왔다. 루이스 또한 웃으며 베이비 키스를 해 주었다. 언제 봐도 사랑스럽고, 언제 봐도 어여쁜 아이였다. 루이스는 첸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아이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었다. 누구의 품에도 곧잘 안겨 천사 같은 미소를 날려 주는 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 가문에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아이였다. 루이스 또한 첸을 친자식처럼, 아니, 그보다 더 어여삐 여기며 키웠다.
첸은 여섯 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였지만, 루이스가 자신의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말을 조금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 때부터 미하엘이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차후에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은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봐 아예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 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첸은 루이스가 자신의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뚤어질 아이가 절대 아니었다. 미하엘은 첸을 믿었고…… 해서 비밀은 없었다.
“아빠 아직도 화났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아버지가…… 아빠가 많이 화나셨다고 했어요.”
첸의 대답을 들은 루이스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굳히며 자신도 모르게 ‘그 인간이’ 하고 중얼거렸다. 껌뻑껌뻑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첸의 표정에 곧바로 표정을 지우고 활짝 웃었다.
“아니야, 아버지가 오해하신 거야. 아빠 하나도 화 안 났어.”
헤헤헤, 하고 루이스가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아직 스물네 살 밖에 되지 않는 그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았다. 미하엘 또한 이건 뭐, 아이가 아이를 기르는군, 하고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루이스는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성격이었다.
아들 첸과 하녀들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약하며 친절한 안주인이지만, 오히려 다른 가문의 귀부인들을 상대할 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다. 평민 출신인 그를 깎아내리고 비웃는 부인과 영애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는 소문은 이미 전설로 남아 있다.
한 1년 정도, 그런 일들이 심해지다가 서서히 가라앉고 나자 이젠 그에게 붙으려는 사람이 더 늘었다. 평민 출신이다 하더라도 그는 어엿한 공작 부인이었고, 그와 가깝게 지낸다고 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때때로 아편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취미 생활로 끌어들이려 할 때도 있었지만, 루이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그의 성격 덕분에 테일러 가문에서 그는 아랫사람들의 찬양을 받고 우러러보는 존재였다.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 첸의 유모를 바라보았다.
“우리 병아리 먹일 과자 좀 갖다 주시겠어요?”
“예, 마님.”
“감사합니다.”
루이스는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는 항상 유모든, 하녀든, 심부름을 하는 어린아이에게든 항상 존댓말을 했다. 아랫것들은 그리 다루는 게 아니라고, 말을 높여서는 안 된다는 집사의 가르침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외적인 지위로 봐선 아랫사람일지라도, 자신에겐 다 존중해 줘야 하는 똑같은 사람들이라며 고집을 부리는 그의 모습에 집사는 그럼 공적인 자리에서만이라도 하대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루이스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공작 부인인 그가 하녀들에게 존대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다는 집사의 설명에 어쩔 수가 없었다.
“저 밥 먹었어요. 배 안 고파요.”
“너 점심 남긴 거 아빠가 다 알아. 어디서 뻥을 쳐? 주방장이 특별히 만든 영양 쿠키야. 와, 정말 맛있겠다. 그치? 하나만 먹자, 응?”
“마님, 그런 언사는…….”
험한 루이스의 말투에 유모가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누가 들으면 어쩌시려고, 라는 말은 칭얼거리는 첸의 목소리에 쏙 들어갔다. 루이스는 품위를 지켜야 하는 자리에선 칼같이 지켰지만, 이렇듯 사적인 자리에선 여전히 철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미하엘은 그게 그만의 매력이라며 놔두라며 웃었다.
첸은 또래 아이들보다 확연히 작았다. 몸도 말랐고, 누가 보면 빈민촌에 사는 거지로 오해하겠다며 미하엘이 호통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모와 집사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첸의 살을 왜 찌우지 못하냐는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첸은 자신의 친부를 닮아 입이 짧았고, 체구도 작았다. 키가 크고 어깨와 등이 넓은 전형적인 건강한 체구를 갖고 있는 미하엘과는 딴판이었다. 루이스는 거의 매일을 첸에게 무언가를 먹이기 위해 씨름해야 했다. 단호박이 들어간 영양 쿠키를 입 앞에 들이밀어 줘도 통 먹질 않는 아이의 모습에 루이스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안 먹을 거야? 아빠 속상한데?”
속상한 듯한 아비의 목소리에 첸은 입을 삐죽 내밀며 못 이기는 척 쿠키를 한 입 물었다. 그 모습에 루이스는 활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여간, 누구처럼 물러 터져 가지고 부자가 나 속상한 꼴은 절대로 못 봐요.’
그의 광대는 이미 활짝 승천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