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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사옥으로 들어서는 유희를 주목하는 경비원 최 씨, 근무 8년째, 그가 모르는 직원은 없었다. 그는 샌드라가 회전 도어를 밀고 들어설 때부터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한 발 두 발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경계심은 눈 녹듯 스러졌다.
‘와! 외국인?’
170cm의 키는 미국에선 평범했지만 한국에서는 큰 편에 해당된다. 늘씬한 각선미와 계란형 얼굴, 그리고 눈부시게 하얀 피부가 어우러져 언뜻 외국인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눈이 마주치자 저에게 서슴없이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경비 최 씨는 몸을 바로 세웠다.
「실례합니다.」
외국인이 맞나 보다. 자신이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 회화를 써먹을 좋은 기회였다. 이래서 사람은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 거지 아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전문 영어를 구사하는 샌드라의 회화에 문장 하나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천, 천천히……. 너무 빨라요.」
「네? 아, 미안해요. 음, 실무경영팀 사무실이 어딘지 아세요?」
실무경영팀? 토막 영어 실력으로 겨우겨우 알아들은 실무경영팀이라는 단어에 귀가 번쩍 뜨였다.
「저 위에…….」
경비 최 씨는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20층이라고 말을 하려다 막히는 영어 때문에 직접 그녀를 데리고 가 20층 버튼을 눌러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우쭐해진 최 씨는 그동안 쏟아부은 영어 학원 수강비가 아깝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스르르 닫히려 할 때 그제야 빙긋 웃음 짓는 유희였다.
‘So cute.’
사실 유희는 여섯 살 때 미국으로 갔기 때문에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디랭귀지로 열심인 귀여운 경비를 보자 모른 척 시치미를 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 누군가가 올라탔다. 눈에 띄게 키가 큰 남자였지만 장신의 남자들로 가득한 미국에서 자란 그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구석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그가 바로 마 회장의 아들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20층에 다다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앞서가던 남자가 흘깃 뒤를 쳐다보더니 뒤따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추켜세운다.
“20층입니다. 잘못 내리신 거 아닙니까?”
“아닌데요.”
“이곳은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잘못 내리신 거 같군요.”
제 할 말만 내뱉고 등 돌리는 남자 뒤통수에 시선을 꽂은 채 여자가 다시 그를 쫓았다.
저벅, 또각. 저벅, 또각.
재한이 실무팀 문을 열어젖히자 인국과 상철은 그의 뒤에 시선을 주더니 급화색이 돌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환영 의사를 격하게 내비쳤다.
“와아!”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맞이하는 것처럼 화색을 띠는 인국이 다가서자 재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 * *
재한이 문을 열기 전 실무 A팀은 나름 분주했다. 베일에 싸인 채 얼굴도 모르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할 B팀. 해외 실력파 셋에 본사 직속 한 명, 모르긴 몰라도 만만치 않을 것이 자명했다. 괴짜 마 회장의 기이한 행적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재한이 하나뿐인 아들일지라도 능력이 없다면 내치고도 남을 위인이셨다.
“궁금하지 않아?”
낙천주의자에다 박애주의자인 인국이 들뜬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회의 준비나 하시지.”
유리는 재한의 전화를 받고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희라는 이름 말이야 여자 맞지? 남자 아니지? 그럼 남자 셋에 여자 하난가?”
박상철도 호기심이 그득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마 회장님 말이야. 숨긴 꿍꿍이가 대체 뭘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재한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뒤에 기가 막힌 각선미를 가진 여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저절로 눈길이 향하는 미인이.
“저…….”
아름다운 여성분 등장이시다. 두 남자 인국과 상철은 얼른 몸을 일으켜 환영 의사를 가감 없이 내비쳤다. 한줄기 서광이 비친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무실에도 봄이 찾아왔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이곳은 방문자가 제한된 출입 금지 구역……. 아! 혹시 실무 B팀?”
그녀가 미처 대답하기 전 인국이 눈치 빠르게 짚어 내자 여자가 살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다.
“실무 B팀 본사 파견자가 여자였군요. 반가워요. 전 하인국이라고 합니다.”
그는 제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해외 영입파 중 한 사람이 그녀인지 모르고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이라 생각했나 보다. 유희가 오해를 정정하기도 전 인국의 몸은 유희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전, 샌…… 김유희입니다.”
“환영합니다. 이거 이거 실무팀이 환해지겠는걸요?”
정말 한국 남자들은 자기식대로 생각하기를 무척 좋아하나 보다. 아까 경비도 그렇고, 지레짐작하며 자신을 노려보는 저 남자도 그렇고, 지금 눈앞의 이 남자도. 하지만 유희는 나름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의 특권 중 하나가 어디를 가든 대접받기 아니던가.
“제가 잘못 찾아 왔나요?”
매끄러운 한국어 탓에 그녀가 해외 영입파라는 걸 짐작도 못 한 그들이었다.
“사무실은 맞은편이라고 들었는데, 맞지 한 실장?”
인국의 시선을 따라가자 눈을 가늘게 조프린 유리가 인상을 찌푸리고 유희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들의 이런 반응에 익숙한 유희는 더욱 환하게 웃음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김유희입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억지로 내민 손을 유희가 맞잡고 미소까지 지으며 호의를 나타내자 유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다운되었다.
‘이 여자……뭐야?’
재한은 유희라는 여자가 하는 모양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처음엔 사무실을 잘못 찾았나 오해했지만 B팀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그건 그렇고 본사 파견 직원이 여자였나? 저 당당함은 뭐지?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뭐 이런 건가? 아님 실력에서 기인한 자신감인가?’
홱, 하고 갑자기 뒤돌아 자신을 향하는 여자의 눈빛에 재한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런 눈빛을 뭐라 해야 하나, 처음 접하는 생소한 눈빛. 여자의 스스럼없고 과감한 눈빛이 낯설었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마재한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Mr.마, 경영실무 B팀 김유희라고 해요.」
뭐야? 이 여자? 갑자기 영어를 했다, 한국어를 했다. 해외에서 근무하다 바로 본사로 투입되었나? 재한은 매끄러운 미 본토 발음을 구사하는 여자를 가만히 살폈다.
유희는 이제 장신의 남자가 바로 A팀의 리더이자 마 회장의 아들임을 알아챘다.
‘이 사람이.’
그녀의 미모와 부드러운 미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좁히는 남자 마재한. 유희는 검은 오라를 흩뿌리는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날려 주었다.
「실무 팀장이시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곳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많은 도움 부탁드려도 될까요?」
재한은 여자가 생글거리면서 자신의 험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며 제 할 말을 따박따박 대꾸하는 게 영 신경에 거슬렸다.
「도움 줄 게 뭐 있겠습니까? 실력으로 온 것이 맞는다면 말입니다.」
매끄러운 영어로 자신에게 대답하는 재한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유희는 오랜만에 호적수를 만난 것 같은 묘한 느낌에 전율했다. 마치 도박에서 패를 쥐고 있다, 뒤집으면 에이스일 거 같다는 예감처럼.
「네, 회장님이 직접 부르신 만큼 이름값은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첫 만남이었다.
앞으로 실무 B팀을 이끌 팀장으로서 그녀가 가장 먼저 입국하고 나머지 두 남자는 주변을 정리하고 1주 뒤 한국으로 들어올 예정이라 당분간 유희와 본사 직원이 실무 B팀을 이끌게 된 것을 A팀은 모르고 있었다.
바람이 창으로 불어와 유희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자 그걸 또 넋 놓고 바라보는 인국과 상철이다.
‘그저 여자라면……. 쯧.’
유리는 미소 짓는 그녀에게서 받은 이상한 중압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수상한 냄새가 나.’
“자자 이쪽으로.”
그 순간 인국이 설레발을 치며 유희를 의자로 안내했다.
“하인국이라고 합니다.”
“박상철입니다.”
자기소개를 하며 끼어든 두 사람 때문에 재한과 유희의 대화가 도중에 끊겼다.
“맞은편 사무실엔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을 겁니다. 커피 어떠세요.”
“고마워요. 혹시 캡슐 커피도 되나요?”
“하하하, 그럼요. 뭐로?”
“라테 가능할까요?”
인국은 얼른 커피를 준비하기 위해 커피 머신으로 달려갔다. 오지랖을 열심히 펼치는 얼빠진 두 남자를 제쳐 두고 재한과 유리는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회장님이 후계자를 혹독히 훈련시키려나 보네. 아주 좋은 방식이야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답게 키워야지 부자가 삼대를 가려면.’
그녀가 마 회장을 만난 건 우연이지만 나름 그의 업적과 깨끗한 사생활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재벌들이 흔히 그러듯 부인 외에 정부를 두는 것은 거의 다반사였고 사후 모르던 혼외 자식들이 나타나 재산 상속을 주장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보니 오로지 한 여자와 결혼해 사별하고 재혼을 하지 않는 괴짜로 알려졌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인 그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여기 있습니다.”
인국이 타온 커피를 마시던 유희는 문득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디……이래도? 짧은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각선미가 남달랐기에 언제나 주의를 끄는 편에 속한다. 살짝 다리를 교차하며 겹친 다리 위치를 바꾸자 감질나게 허벅지가 보였다 사라진다.
사옥으로 들어서는 유희를 주목하는 경비원 최 씨, 근무 8년째, 그가 모르는 직원은 없었다. 그는 샌드라가 회전 도어를 밀고 들어설 때부터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한 발 두 발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경계심은 눈 녹듯 스러졌다.
‘와! 외국인?’
170cm의 키는 미국에선 평범했지만 한국에서는 큰 편에 해당된다. 늘씬한 각선미와 계란형 얼굴, 그리고 눈부시게 하얀 피부가 어우러져 언뜻 외국인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눈이 마주치자 저에게 서슴없이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경비 최 씨는 몸을 바로 세웠다.
「실례합니다.」
외국인이 맞나 보다. 자신이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 회화를 써먹을 좋은 기회였다. 이래서 사람은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 거지 아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전문 영어를 구사하는 샌드라의 회화에 문장 하나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천, 천천히……. 너무 빨라요.」
「네? 아, 미안해요. 음, 실무경영팀 사무실이 어딘지 아세요?」
실무경영팀? 토막 영어 실력으로 겨우겨우 알아들은 실무경영팀이라는 단어에 귀가 번쩍 뜨였다.
「저 위에…….」
경비 최 씨는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20층이라고 말을 하려다 막히는 영어 때문에 직접 그녀를 데리고 가 20층 버튼을 눌러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우쭐해진 최 씨는 그동안 쏟아부은 영어 학원 수강비가 아깝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스르르 닫히려 할 때 그제야 빙긋 웃음 짓는 유희였다.
‘So cute.’
사실 유희는 여섯 살 때 미국으로 갔기 때문에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디랭귀지로 열심인 귀여운 경비를 보자 모른 척 시치미를 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 누군가가 올라탔다. 눈에 띄게 키가 큰 남자였지만 장신의 남자들로 가득한 미국에서 자란 그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구석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그가 바로 마 회장의 아들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20층에 다다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앞서가던 남자가 흘깃 뒤를 쳐다보더니 뒤따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추켜세운다.
“20층입니다. 잘못 내리신 거 아닙니까?”
“아닌데요.”
“이곳은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잘못 내리신 거 같군요.”
제 할 말만 내뱉고 등 돌리는 남자 뒤통수에 시선을 꽂은 채 여자가 다시 그를 쫓았다.
저벅, 또각. 저벅, 또각.
재한이 실무팀 문을 열어젖히자 인국과 상철은 그의 뒤에 시선을 주더니 급화색이 돌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환영 의사를 격하게 내비쳤다.
“와아!”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맞이하는 것처럼 화색을 띠는 인국이 다가서자 재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재한이 문을 열기 전 실무 A팀은 나름 분주했다. 베일에 싸인 채 얼굴도 모르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할 B팀. 해외 실력파 셋에 본사 직속 한 명, 모르긴 몰라도 만만치 않을 것이 자명했다. 괴짜 마 회장의 기이한 행적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재한이 하나뿐인 아들일지라도 능력이 없다면 내치고도 남을 위인이셨다.
“궁금하지 않아?”
낙천주의자에다 박애주의자인 인국이 들뜬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회의 준비나 하시지.”
유리는 재한의 전화를 받고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희라는 이름 말이야 여자 맞지? 남자 아니지? 그럼 남자 셋에 여자 하난가?”
박상철도 호기심이 그득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마 회장님 말이야. 숨긴 꿍꿍이가 대체 뭘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재한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뒤에 기가 막힌 각선미를 가진 여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저절로 눈길이 향하는 미인이.
“저…….”
아름다운 여성분 등장이시다. 두 남자 인국과 상철은 얼른 몸을 일으켜 환영 의사를 가감 없이 내비쳤다. 한줄기 서광이 비친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무실에도 봄이 찾아왔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이곳은 방문자가 제한된 출입 금지 구역……. 아! 혹시 실무 B팀?”
그녀가 미처 대답하기 전 인국이 눈치 빠르게 짚어 내자 여자가 살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다.
“실무 B팀 본사 파견자가 여자였군요. 반가워요. 전 하인국이라고 합니다.”
그는 제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해외 영입파 중 한 사람이 그녀인지 모르고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이라 생각했나 보다. 유희가 오해를 정정하기도 전 인국의 몸은 유희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전, 샌…… 김유희입니다.”
“환영합니다. 이거 이거 실무팀이 환해지겠는걸요?”
정말 한국 남자들은 자기식대로 생각하기를 무척 좋아하나 보다. 아까 경비도 그렇고, 지레짐작하며 자신을 노려보는 저 남자도 그렇고, 지금 눈앞의 이 남자도. 하지만 유희는 나름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의 특권 중 하나가 어디를 가든 대접받기 아니던가.
“제가 잘못 찾아 왔나요?”
매끄러운 한국어 탓에 그녀가 해외 영입파라는 걸 짐작도 못 한 그들이었다.
“사무실은 맞은편이라고 들었는데, 맞지 한 실장?”
인국의 시선을 따라가자 눈을 가늘게 조프린 유리가 인상을 찌푸리고 유희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들의 이런 반응에 익숙한 유희는 더욱 환하게 웃음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김유희입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억지로 내민 손을 유희가 맞잡고 미소까지 지으며 호의를 나타내자 유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다운되었다.
‘이 여자……뭐야?’
재한은 유희라는 여자가 하는 모양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처음엔 사무실을 잘못 찾았나 오해했지만 B팀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그건 그렇고 본사 파견 직원이 여자였나? 저 당당함은 뭐지?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뭐 이런 건가? 아님 실력에서 기인한 자신감인가?’
홱, 하고 갑자기 뒤돌아 자신을 향하는 여자의 눈빛에 재한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런 눈빛을 뭐라 해야 하나, 처음 접하는 생소한 눈빛. 여자의 스스럼없고 과감한 눈빛이 낯설었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마재한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Mr.마, 경영실무 B팀 김유희라고 해요.」
뭐야? 이 여자? 갑자기 영어를 했다, 한국어를 했다. 해외에서 근무하다 바로 본사로 투입되었나? 재한은 매끄러운 미 본토 발음을 구사하는 여자를 가만히 살폈다.
유희는 이제 장신의 남자가 바로 A팀의 리더이자 마 회장의 아들임을 알아챘다.
‘이 사람이.’
그녀의 미모와 부드러운 미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좁히는 남자 마재한. 유희는 검은 오라를 흩뿌리는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날려 주었다.
「실무 팀장이시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곳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많은 도움 부탁드려도 될까요?」
재한은 여자가 생글거리면서 자신의 험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며 제 할 말을 따박따박 대꾸하는 게 영 신경에 거슬렸다.
「도움 줄 게 뭐 있겠습니까? 실력으로 온 것이 맞는다면 말입니다.」
매끄러운 영어로 자신에게 대답하는 재한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유희는 오랜만에 호적수를 만난 것 같은 묘한 느낌에 전율했다. 마치 도박에서 패를 쥐고 있다, 뒤집으면 에이스일 거 같다는 예감처럼.
「네, 회장님이 직접 부르신 만큼 이름값은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첫 만남이었다.
앞으로 실무 B팀을 이끌 팀장으로서 그녀가 가장 먼저 입국하고 나머지 두 남자는 주변을 정리하고 1주 뒤 한국으로 들어올 예정이라 당분간 유희와 본사 직원이 실무 B팀을 이끌게 된 것을 A팀은 모르고 있었다.
바람이 창으로 불어와 유희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자 그걸 또 넋 놓고 바라보는 인국과 상철이다.
‘그저 여자라면……. 쯧.’
유리는 미소 짓는 그녀에게서 받은 이상한 중압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수상한 냄새가 나.’
“자자 이쪽으로.”
그 순간 인국이 설레발을 치며 유희를 의자로 안내했다.
“하인국이라고 합니다.”
“박상철입니다.”
자기소개를 하며 끼어든 두 사람 때문에 재한과 유희의 대화가 도중에 끊겼다.
“맞은편 사무실엔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을 겁니다. 커피 어떠세요.”
“고마워요. 혹시 캡슐 커피도 되나요?”
“하하하, 그럼요. 뭐로?”
“라테 가능할까요?”
인국은 얼른 커피를 준비하기 위해 커피 머신으로 달려갔다. 오지랖을 열심히 펼치는 얼빠진 두 남자를 제쳐 두고 재한과 유리는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회장님이 후계자를 혹독히 훈련시키려나 보네. 아주 좋은 방식이야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답게 키워야지 부자가 삼대를 가려면.’
그녀가 마 회장을 만난 건 우연이지만 나름 그의 업적과 깨끗한 사생활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재벌들이 흔히 그러듯 부인 외에 정부를 두는 것은 거의 다반사였고 사후 모르던 혼외 자식들이 나타나 재산 상속을 주장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보니 오로지 한 여자와 결혼해 사별하고 재혼을 하지 않는 괴짜로 알려졌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신망이 두터운 인물인 그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여기 있습니다.”
인국이 타온 커피를 마시던 유희는 문득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디……이래도? 짧은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각선미가 남달랐기에 언제나 주의를 끄는 편에 속한다. 살짝 다리를 교차하며 겹친 다리 위치를 바꾸자 감질나게 허벅지가 보였다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