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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방금 뭐라 그랬어요?”
로버트가 모델다운 강렬한 시선으로 지그시 바라보자 남자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를 꽉 악물었다. 닐은 뒤로 물러난 남자의 심정을 이해했다. 안드로이드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그랬을 테니까.
“자네에게 말한 거 아니니 신경 끄지.”
“누굴 바보로 알아?!”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닐에게…… 아니, 안드로이드 프리티에게 우아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지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소파에 기댄 자세로 한번 앉아 보겠나?”
“앉기는 무슨, 일어나!”
동시에 명령을 내리면 대체 어쩌라는 거야……. 닐이 이도저도 못하고 엉거주춤 굳자 로버트가 짜증 난 얼굴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남자도 지지 않았다. 서로 치열하게 노려보기 시작하자 직원들이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렸다. 로버트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제 생각나는군. 지난번에 칵테일 바에서 행패 부린 사람이 자네였지? 자네 아버지가 해롤드 핏츠였나?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군.”
부들부들 떨던 남자가 제 아버지를 향한 우아한 모욕에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러자마자 로버트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손을 척 들며 소리쳤다. 그조차 마치 무슨 귀족처럼 우아해 보였다.
“경비!”
“씨발, 이 아저씨가 근데…….”
남자가 이를 악물고 씩씩거렸다. 로버트가 부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온 경비고 뭐고 금방이라도 때릴 것 같은 위협적인 태도였다. 밖에서 누군가 그 남자를 부른 건 바로 그때였다.
“이봐, 앤디! 약속 시간이야.”
그가 폭력을 휘두르지 않은 건 단순히 제 친구들이 부른 탓이었다. 차라리 사고를 일으켜서 아예 쫓겨나길 바랐던 닐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아, 물론…… 미스터 로버트가 맞기를 바랐다는 건 아니고…….
“알았어, 알았다고!”
성질을 내면서 대답한 남자, 앤디 핏츠가 로버트에게 대놓고 삿대질을 했다. 당신 다음에 보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물론 로버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도리어 직원들이 대신 그에게 사과를 했다. 그는 그 사과를 관대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사실 직원들의 잘못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불쾌한 일을 겪어서인지 더는 프리티에게 관심을 줄 흥미도 사라진 듯 다른 진열대로 향했다. 닐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이렇게 사고가 터지니 닐은 정신이 다 없었다. 앞으로 익숙해지는 걸까, 아니면 지금만 이런 걸까……. 앞으로 한 달 무사히 버틸 수 있긴 할까.
이래저래 노심초사하는 사이 나머지 시간은 무사히 끝났다. 안드로이드가 되어 있는 동안은 혹시 몰라 물도 많이 마시지 않은 데다 아까부터 긴장해 있던 터라 목이 바짝 말랐다. 작게 한숨을 쉬며 룸으로 돌아가기 전에 입만 좀 축이고 갈 생각으로 정비실로 향했다. 어차피 옷을 갈아입고 돌아가야 하니 꼭 들러야 했고 다른 사람 모르게 나갈 뒷문도 정비실에 있었다.
닐과 같이 정비실로 들어온 레이디가 상냥한 미소를 보냈다. 레이디는 룸으로 돌아가는 닐과는 달리 영업시간 외에는 항상 정비실에 머무르곤 했다. 레이디가 스스로 전원을 끄기 전에 닐이 인사했다.
“잘 자, 레이디.”
“좋은 밤 되세요, 프리티.”
화사하게 닐에게 미소 짓고는 레이디가 안드로이드 보관함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이내 얼굴에서 생기랄 것이 완전히 사라졌다. 언제 봐도 신기한 장면을 바라보다가 닐이 밀려들어 오는 피곤함에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툭툭 허리를 두드리며 꼴깍꼴깍 물을 마셨다.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걸치고 갈 후드를 찾아 들어 올리자 툭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굴러떨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어 올린 닐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 자식은 왜 포기할 줄을 모르지?”
다시금 목이 타 물을 마시며 로니 크로거에게서 온 문자와 통화를 모두 지웠다. 번호를 차단해도 로니 크로거는 다른 사람 번호를 빌려 기어코 또 연락을 해 왔다. 언제 핸드폰 연락처를 바꿔야 할 텐데, 나갈 수는 없고. 다 마신 생수병을 와그작 구겨 쓰레기통에 넣고는 후드를 입으며 뒤로 돌아선 순간이었다. 닐은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대체 어느 사이에인지 누군가가 정비실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여긴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 구역 아니었어? 이 침입자가 무슨 수로 들어왔는지는 둘째 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나는 게 없어 꼼짝도 못하는 사이 남자의 시선이 방금 전에 닐이 마시고 버린 생수병이 담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아까 전 난동을 피운 그 남자, 앤디 핏츠가 비열하게 웃었다.
“너,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지?”
닐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자 그만큼 앤디 핏츠가 가까이 다가왔다. 대체 언제 숨어들어 온 거지? 아까 점심에 레이디와 자신이 이동하는 장소를 보고 눈여겨 본 모양인데 아무리 다들 매장 정리하고 쓸고 닦느라 바빴다고 해도 어떻게 직원들의 눈을 피해서 들어왔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 비웃느라 재밌었냐?”
아, 돌겠네 진짜……. 닐이 조금 얼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앤디 핏츠가 와락 달려들자 저도 모르게 악 하고 놀란 소리를 내며 피했다. 그게 마치 무서운 걸 피한다기보다는 더러운 걸 피한다는 자세라 앤디의 얼굴이 와작 구겨졌다. 그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당당하게 닐에게 요구했다.
“이리 안 와?”
“내가 뭐하러 그쪽으로 가!”
일단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앤디 핏츠와 대치하는 사이 문이 벌컥 열린 것도 그때였다. 자신에게 도움을 줄 직원인 줄 알고 활짝 펴졌던 닐의 얼굴이 도로 굳었다.
“무슨 일…….”
닐과 앤디 핏츠의 대치를 본 로버트가 입을 벙긋거렸다.
아니, 미치겠네……. 당신은 또 왜 들어오세요? 어떻게 들어왔어요? 오늘 무슨 날인가?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왔을 게 분명한 로버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더니, 어쨌든 이 상황에서는 어딜 보나 가해자인 게 분명한 앤디 핏츠의 멱살을 쥐어 멀리 밀어 냈다. 앤디 핏츠가 이를 갈며 로버트를 노려보았다.
당장 급한 상황을 벗어나 다행이긴 했으나 닐은 자신의 아르바이트가 이렇게 한순간에 끝나 버리나 싶어 반쯤 좌절했다. 이윽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직원들도 곧장 달려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앤디 핏츠의 반응은 닐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미안해, 난 이쪽이 나가는 문인 줄 알았어요. 지금 좀 취해서…….”
닐과 직원들을 번갈아 보더니 돌연 적대적인 태도를 버린 그가 보란 듯이 실실 웃음을 흘리며 고분고분하게 손을 들고 나갔다. 오히려 그 태도가 닐에게는 더욱 불안한 것이었다. 앤디 핏츠가 나갈 때까지 쏘아보던 로버츠가 이번에는 눈살을 찌푸리며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무랐다.
“대체 여기 관리를 어떻게 합니까? 외부인에게 안드로이드 도난당하고 싶어요?”
자기도 외부인이고 마음대로 쳐들어왔으면서…….
아무튼 VIP 고객이 저렇게 화를 내는 데다가 또 실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 주었으니 직원들이 그를 감히 나무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며 로버트를 거의 모시다시피 하며 나갔다. 하긴 그럴 수밖에……. 그들도 미하일이 자기 안드로이드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이 모든 일이 끝난 뒤 닐은 완전히 기운이 빠져서는 이번에는 정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여 터덜터덜 제 룸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문까지 꼭꼭 잠그고 나자 갑자기 불안과 걱정이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그 해일에 쓸려 닐은 침대 위로 가랑잎처럼 널브러졌다.
“다 알아차렸으면서 왜 그렇게 나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꿍꿍이가 있는 얼굴이었다. 대놓고 약점 잡았구나 하는 표정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거기에 로버트까지 걱정이 태산이다. 설마 그 사람도 눈치챈 건 아니겠지? 잠시 끙끙 앓다가 제프리에게 일단 이 일을 털어 놓고 상담하려고 닐이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나 제프리는 뭘 하는지 통 연락을 받지 않았다. 미하일에게 물어보려니 연락처를 아예 모르고.
“아, 돌겠네.”
아무튼 타냐가 누누이 이른 대로 건강한 피부를 위해 충분한 수면은 필수였기에 닐은 겨우겨우 씻은 다음 기다시피 하여 침대로 돌아왔다. 피곤한 하루였기에 잠은 금방 쏟아져 내렸다. 걱정과 불안감도 그렇게 잠시간은 잠에 파묻힐 수 있었다. 아주 잠시간은…….

***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마사지를 받는 내내 끙끙 닐이 앓자 세상만사 무관심한 것 같은 타냐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닐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문득 칵테일 바에서 앤디 핏츠가 사고를 쳤다는 로버트의 말을 떠올렸다.
“타냐, 혹시 앤디 핏츠가 누구인지 알아요?”
“아. 물론, 알지.”
타냐가 종아리 어딘가를 꾹 누르자 닐이 아야, 하고 아픈 소리를 내며 팔을 퍼덕거렸다. 고통스러워하거나 말거나 다른 쪽 종아리도 눌러 당겨 닐이 다시 퍼덕거리게 만든 타냐가 특유의 허스키한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헤롤드 핏츠 상원 의원의 아들인데, 아주 유명한 망나니지. 지난번에 파트너가 바람을 피웠다고 성질에 못 이겨 술병 집어 던지며 난리를 피워서 경고를 먹었어. 전부터 누차 경고를 받아 와서 아마 한 번 더 받으면 회원 자격 박탈일걸.”
“그렇구나…….”
그 술병, 한 번만 더 던져 주면 안 되나? 그럼 여러 사람 좋고 나도 좋고 아주 행복할 텐데…….
그러나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치장을 모두 마치고 초조한 마음으로 매장 뒷문으로 들어가자마자 가게 안을 서성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앤디 핏츠가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자신을 도와줄 제프리는 밖에 있었고……. 어제부터 대체 왜 그러는지 핸드폰도 받질 않고…….
“에라,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닐이 일단 미하일이 오는 점검 시간 때까지만 버티자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를 일찍 쫑을 내게 되든 아니면 뻔뻔하게 안드로이드인 척 버티든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괴롭힌다고 해도 어차피 직접 손은 못 대니까 중간에 직원이 중재해 줄 터였다.
나가기 전 귀띔을 해 주려고 제프리를 열심히 바라보았지만 오늘 그는 이상하게도 몹시 얼이 빠져 있었다. 대신 닐이 인간인 줄 모르는 다른 직원만 열심히 벨벳 커튼을 걷고 닐과 레이디를 예쁘게 앉혀 줄 뿐이었다.
곧장 앤디 핏츠가 으스대며 다가왔다. 얼굴을 보니 닐이 사람이라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프리티, 오늘 다시 보게 되어서 정말 기뻐.”
느끼하게 속삭이며 앤디가 닐의 턱을 살짝 잡아 올렸다. 닐이 온순한 척 눈을 살며시 굴렸다. 괜히 자극해서 좋을 일은 없었으니까.
“이제 네 예쁜 몸 좀 보여 줄래?”
그럼 그렇지. 익히 예상한 패턴에 닐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는 로니 크로거 같은 저런 놈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단추를 풀어내던 그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휘둘릴 건 또 뭐야? 아니, 저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앞으로 그럴 일도 없을 것이다. 닐의 눈동자가 잠시 단호한 빛으로 빛났다. 그가 다시 과거로 돌아와서 깨달은 커다란 교훈은 상대방이 자신의 약점을 쥐고 흔들려 할 때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로버트에게 시선만으로 제압을 당하던 앤디 핏츠의 모습을 떠올렸다. 로버트의 시선이 그토록 강렬한 이유는 그의 눈매가 날카롭거나 톱 모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그가 당당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뛰었지만 침착하려 노력하며 닐은 좀 구부러졌던 등을 똑바로 펴고, 어깨를 조금 뒤로 젖히면서 도로 소파에 앉았다. 앤디 핏츠가 인상을 쓰며 뭐라 하려는 것을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면서 느릿느릿 셔츠 단추를 풀었다. 처음 닐을 보았을 때처럼 앤디 핏츠가 잠시 넋을 놓았다. 그건 그가 상냥한 신사이든, 악의에 찬 양아치이든 간에 상관없이 어쨌든 닐이 매력적이라고 여긴다는 의미였다.
단추를 끄르다 말고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자 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닐은 바로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고객 한 명이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다가왔다. 느른하게 숨을 뱉으며 마지막 단추를 풀어 내리자 지나가던 커플이 자리에서 멈추었다.
계속해서 닐이 입고 있던 상의를 바닥에 스르륵 떨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앤디 핏츠는 이제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몰려 있단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붉혔다. 아무래도 사람이 적은 틈을 타 뭔가 하려던 모양이었다.
“너…….”
닐이 보란 듯이 바지 버클에 손가락을 하나 걸어 잡아당기며 미소를 지을 때까지도 모든 게 다 괜찮았다. 그러니까…… 시선 한쪽에 홀린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제프리가 걸리기 전까지는…….
설마 아니겠지. 닐이 내심 식은땀을 흘렸으나 오늘따라 좀 맛이 간 모양새였다.
“이 안드로이드는 성능이 어떤가?”
알파를 양옆으로 둘을 끼고 있는 오메가가 닐을 아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제프리가 이때다 싶어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오는 걸 닐이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오늘만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앤디 핏츠가 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주변 사람들이 인상을 썼다―껄렁거리는 모양새로 샵을 나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앤디 핏츠가 가더니 이번에는 제프리가 왔다.
“거의 사람과 동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번 제품을 테스트해 볼까요?”
제프리, 제프리……. 네가 지금 정신이 나갔구나. 나중에 내 손에 죽고 싶어서 이래? 웃는 얼굴로 알게 모르게 눈을 부라려 보았지만 제프리는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워낙 눈치가 없는 놈이었으니까. 아니, 지금은 어디 나사 하나 빠진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고.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제프리 저놈이 어떤 놈이던가. 진성 사디스트다. 그렇다고 저놈이 닐과 순수한 친구이기만 하던가? 차라리 그러면 나았지. 로니와 사귀기 전 닐은 제프리와 두세 번 잔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뜻밖에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나 점차 제 취향을 참지 못하고 두 번째, 세 번째가 될 수록 점점 거칠어지는 행위에 곧장 닐은 기겁을 하고는 그다음부터는 관계하는 걸 거절했다.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제프리에게는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애인들이 다 감당을 못 하고 줄줄이 떨어져 나가지! 당황한 닐이 속으로 거의 악담을 했다.
“프리티, 엎드려 봐.”
상품 진열대에 있던 테스터용 로터를 들어 올리면서 제프리가 명령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시선들에 닐이 엎드리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나중에 쟤를 어떻게 해야 잘 족쳤다고 소문이 날까…….
“아주 예쁜 엉덩이죠.”
바지를 끌어 내린 제프리가 엉덩이를 꽉 쥐어 주무르며 설명했는데, 목소리에서 욕망이 뚝뚝 떨어져 닐의 등으로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가 일부러 보란 듯 엉덩이를 잡아 벌려 치부를 보여 주자 닐이 숨을 크게 쉬며 바닥을 조금 긁었다. 이내 그가 손자국이 남도록 엉덩이 한쪽을 크게 내리쳤다.
“감촉도 아주 좋아요.”
작게 수군거리는 목소리와 시선들에 점점 다리 사이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엎드려 있는 자세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닐은 도저히 제 표정을 관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얼굴이 후끈후끈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제프리가 뭐라 설명하는 말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
착 소리를 내며 라텍스 장갑을 낀 제프리가 차가운 젤로 적신 손가락을 하나 밀어 넣자 닐이 신음 소리를 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 보고 있는 것 같아 갑자기 흥분감이 확 밀려들어 왔다. 그는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이럴 때 가장 흥분하는 사람이라고…….
“응, 읏…….”
제프리는 몇 번 뒤를 쑤석이다가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어 가위질을 하듯 벌렸다. 그도 모자라 아예 자세히 보라는 둥 말을 하며 가장자리에 손가락을 걸어 잡아 벌리기까지 했다. 닐이 팔에 이마를 문질렀다.
“정말 사람 같은 반응이죠.”
이 나쁜 놈아, 진짜 사람이니까!
어째서인지 제프리는 여기에 있을 때 그를 정말 안드로이드 프리티로 보는 것 같았다. 닐이 신음 소리를 내는 동안 얼마나 잘 삼키는지 보여 주겠다면서 제프리가 로터를 밀어 넣었다. 아직 채 풀리지도 않았는데 꾸우욱 누르며 밀어 넣기에 닐이 퍼득 몸을 떨었다.
“아으, 으…….”
안드로이드니 싫다고 말을 해도 되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었다. 그저 엎드려서 제프리가 다루는 대로 치부를 보이며 신음할 뿐이었다.
“귀여운 소리로 우는데.”
숨을 헐떡이는 닐의 고개를 누군가 잡아 올렸다. 아까 안드로이드의 성능을 묻던 오메가였다. 그는 부드럽고 서늘한 손길로 붉게 달아오른 닐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이런 부분도 정말 사람 같다며 감탄했다. 잔뜩 예민한 상태라 그 손길에도 닐은 느꼈다.
“지금 구매하겠어요.”
“아직은 예약 구매만 가능합니다.”
“그럼 예약을 하도록 하죠.”
구매 의사를 보였음에도 제프리는 멈추지 않았다. 제 욕구를 채우고 있다는 게 아주 분명한 행동이었다. 고객들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지만, 닐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다른 직원들은 가능한 한 안드로이드가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도록 하고 있었으니까.
꾸욱 로터를 깊은 곳까지 밀어 넣은 제프리가 이번에는 구슬을 길게 줄로 엮은 물건을 들어 올렸다. 저도 모르게 뭐라 하려던 닐은 제 눈앞에 있는, 반짝거리는 느낌을 줄 정도로 고급스러운 손님의 구두를 보며 참았다.
“하……. 응, 읏.”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지름의 구슬도 여러 개가 들어가자 점차 부담스러워졌다. 제프리는 잘 들어가지 않아도 억지로 눌러 넣었고, 그때마다 닐은 고통 반 쾌감 반으로 신음했다. 오메가면 모를까 베타인 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행위였다. 후들후들 떨렸으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내리는 적나라한 평가들이었다.
“신음 소리나 반응이 괜찮은데.”
“뒤는 좀 지나치게 조이는 게 아닌가 싶어.”
“사용하기에는 조이는 쪽이 더 좋지. 고장 나면 AS를 받거나 다시 사면 될 일이고.”
어쨌든 판매량이 급격히 뛰어오르는 건 잘 알겠다…….
“아!”
갑자기 제프리가 밀어 넣었던 구슬들을 한꺼번에 휙 빼내는 바람에 닐이 몸을 퍼득 떨었다. 진정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곧장 다시 밀어 넣자 다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가 로터의 진동을 울리고, 구슬을 다시 끝까지 한 알 한 알 밀어 넣고 손가락을 휘젓자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흐으, 아으…….”
이렇게 아픈데도 그럭저럭 흥분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느끼는 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때문일 터였다. 닐은 차라리 제프리가 아프게 해서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아니면 벌써 좋아서 질질 싸고 있었을 테니까.
“아, 아! 흐읏.”
닐은 한참을 제프리가 뒤를 쑤시는 대로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고 바르작거렸다. 그런 그가 위기를 느낀 건 한참 흥이 찼는지 제프리가 다시 뒤에 뭔가 문지를 때였다. 제법 굵직한 굵기에 등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이 인간이 돌았나? 지금 그게 내 뒤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안에 이미 들어 있잖아!
“착하지…….”
닐이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이제는 싫다고 해도 되나? 전에 미하일이 저항하는 모드가 있었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그저 자신을 쏟아지는 시선들 때문에 머리가 멍했다. 약간 패닉에 빠진 상태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도 되나 싶어 갈팡질팡할 때였다.
펄럭 소리가 나며 담요가 닐의 온몸을 덮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신형 안드로이드에 문제가 있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전시해야겠군요.”
눈이 가려서 어리둥절한 가운데서도 이 목소리가 미하일의 것이라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다른 의미로 닐의 가슴이 쿵쿵 뛰는 동안 미하일은 머리끝까지 꼼꼼하게 담요를 덮어씌우더니 무겁지도 않은지 번쩍 안아 올리기까지 했다. 그 행동에 닐이 기겁했으나 지금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담요가 걷어진 건 정비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직 로터가 작동 중이었기 때문에 닐이 바들바들 떨며 겨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만 냈다. 미하일이 그런 닐을 빤히 바라보더니 불쑥 아직 덮인 담요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왜, 왜요?”
닐이 말을 더듬었다.
“왜긴, 도와주려는 거잖아. 싫어?”
어째서인지 아까 사람들에게 보일 때보다 더 부끄러워 닐은 그저 눈만 굴렸다. 미하일은 충분히 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엉덩이에 닿았을 때 닐은 헉 하며 숨을 삼키고 말았다.
“난 거칠게 안 해.”
상냥하게 말하며 미하일이 밖으로 나온 끈을 잡아당겼다.
“아, 아…….”
주륵 천천히 구슬이 빠져나가자 닐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뚝 멈추며 미하일이 물었다. 아파서 그런 거야? 아니면 느껴서 그런 거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자 그가 손가락을 밀어 넣어 안을 더듬거리며 다시 물었다.
“느껴서 그래?”
“……읏, 으.”
“닐, 대답.”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닐은 좀 충격을 받았다. 그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느, 느껴서요…….”
“그럼 천천히 빼는 게 좋나, 빠르게 빼는 게 좋나?”
아니, 그런 거 묻지 말고 그냥 빼면 안 되나? 닐이 반쯤 우는 얼굴로 올려다봐도 미하일의 표정은 제법 진지했다. 수치심의 끝을 달리는 것 같아 닐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천히, 천천히요…….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내린 순간 그는 미하일의 다리 사이를 보고 말았다. 다시 고개를 들자 미하일이 뺨을 긁적였다.
“도와주는 건 도와주는 거고, 흥분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그, 그건 그런데…… 아!”
천천히라고 하니 이제는 숫제 손가락 하나가 파고들어 안쪽에서부터 느릿느릿 구슬을 잡아당겼다. 잔뜩 흥분하기도 하고 느끼기도 한 닐이 저도 모르게 담요를 잡아당기자 스륵 천이 미끄러지며 치부가 드러나고 말았다. 잔뜩 단단해져서 흥분한 제 물건에 미하일의 시선이 닿자 그가 숨을 헐떡였다.
구슬이 빠져나갈 때마다 젤이 같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몹시도 적나라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미하일의 시선이 제일 부끄러웠다. 닐이 어쩔 줄 몰라 얼굴을 가리자 그가 가만히 뺨과 턱을 잡았다.
“가리면 아픈 건지, 느끼는 건지 알 수 없는데.”
“그게, 아파도 괜찮, 괜찮은데…… 아, 읏, 읏…….”
미하일이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젓자 닐이 바들바들 떨었다. 손가락 두 개가 뒤를 느리게 벌려 구슬 하나를 빼내고, 또 느리게 벌려 빼냈다. 결국 닐이 참지 못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한꺼번에 빼 주세요…….
“그래? 그렇다면야.”
미하일이 줄을 잡아당겨 빼내자 닐의 허리가 흠칫흠칫 튀었다. 미하일은 안에 들어갔던 구슬은 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뒤 여직 안에서 징징 울리고 있는 로터의 줄을 잡았다. 그러고는 슬슬 잡아당기며 빼내다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좋은 거 해 줄까?”
반쯤 절정에 가깝게 올랐던 닐이 움찔움찔 떨며 멍하니 미하일을 바라보다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러자 미하일이 다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안쪽 깊은 곳까지 밀려들어 간 로터를 잡아당겨 손가락이 닿을 정도로 빼내더니, 그가 긴 손가락으로 로터를 쥐어 어딘가를 짓눌렀다.
“……! 아, 아……!”
눈앞이 까마득하게 물든 것 같기도, 혹은 희게 번진 것 같기도 하여 닐이 외마디 소리를 냈다. 다리며 허리가 경련하듯 덜덜 떨렸고 이미 잔뜩 흥분한 물건에서는 줄줄 프리컴이 흘러내렸다. 잠시만, 잠시만……! 지독한 쾌감에 닐이 팔을 허우적거리자 미하일이 잡아 허공을 긁는 손가락을 핥았다.
“거길 말고 여길 쥐어야지.”
그러고는 축축한 손을 끌어 닐 자신의 것을 쥐어흔들게 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젖힌 닐이 높은 신음 소리를 내며 어쩔 줄 몰라 울었다. 미하일이 손가락에서 잠시 힘을 빼었다가 로터로 특별히 예민한 곳을 세게 문질러 주었을 때 결국 그는 줄줄 흰 사정액을 뱉으며 절정에 오르고 말았다.
완전히 지쳐 버린 닐이 가쁘게 숨을 쉬며 축 늘어지자, 미하일은 로터 또한 던져 버리고는 일부러 으적 소리가 나도록 짓밟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사이 닐이 더듬더듬 담요를 찾았지만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있던 담요가 어째서인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곧 미하일이 물에 적신 수건을 들고 오는 바람에 그는 그저 몸을 웅크리기만 했다.
“괜찮았어?”
미하일이 해 주려는 걸 얼른 빼앗아서 성급하게 몸을 닦고 바지를 올려 입던 닐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역시 이런 곳의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지 미하일의 손놀림은, 음…… 굉장히 훌륭했다.
“그럼 아까 그 상황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아서 제지하긴 했는데 괜한 참견이었나?”
“괜찮아요, 느끼긴 했으니까요…….”
아직 여운이 남아 조금 넋이 나간 닐이 멍하니 대답하자 그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느꼈다고 기분 나빴던 일이 괜찮아지는 건 아니지.”
미하일의 말에 닐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물론 수치스러웠다. 화도 났고. 하지만……. 제프리가 자신을 아프게 다룬 것만 아니라면 사실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글쎄 무엇이든 로니 크로거와 있었을 때의 일들에 비하면 괜찮을 수밖에 없었다. 약간, 자신의 섹스 판타지에 가깝기도 했고, 이 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각오하지 않은 상황도 아니었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자마자 새삼 깨달은 것이지만, 그는 누군가의 시선이나 관심을 받는 것이 좋았다. 그러니 로니 크로거와 동거한 뒤 그의 강요로 거의 집에서만 살다시피 했을 때 그렇게 우울했겠지.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무엇보다 지금은 안전이 보장된 상황이 아닌가? 게다가 오늘 손님들 중 닐을 경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자신을, 귀여워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언짢고 복잡미묘해진 닐이 애꿎은 수건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좋았어요.”
어째서인지 미하일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 왜? 좋긴 좋았다. 기분이 복잡하고 부끄러웠던 닐이 조금 이를 악물었다. 느꼈으니 좋은 거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고…….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느낄 정도로 좋았는데, 단지 제프리가 문제였을 뿐이지. 그는 정말 아픈 게 싫었다.
“제프리 말마따나 제 취향에 맞는걸요.”
미하일이 이번에는 닐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취향에 맞건 안 맞건 좆같은 상황이 되는 조건이 있어. 첫 번째, 본인의 허락이 없는 행위다. 두 번째, 사전에 약속된 상황이 아니다. 세 번째, 싫어하는데 했다. 그래서 이 중 단 한 가지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닐이 눈을 굴렸다. 어쩌겠나? 제프리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것을. 게다가 신세도 많이 졌고……. 물론 제프리의 의도가 훤히 보이니만큼 이번 일은 가만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쉬어. 앞으로 제프리는 안드로이드에 손도 못 댈 테니까.”
“네, 감사했습니다.”
닐의 인사에 미하일은 어깨를 으쓱했다. 감사할 일이 뭐가 있어? 직원 관리는 내 의무이자 권리지. 그러고는 덧붙였다.
“러시아에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손을 자르든 좆을 자르든 어딘가 잘라 버렸겠지만 여긴 러시아가 아니니까.”
……농담이겠지?
“아무튼 내일 보자고.”
툭툭 짐짓 다정하게 닐의 어깨를 두드려 준 미하일이 정비실을 나갔다. 닐은 한참을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잡아당겨 두른 뒤 소파에 죽 다리를 뻗고 누웠다. 피곤해서 잠시 낮잠을 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까 자신을 안아 올리던 미하일만 떠올리면 가슴이 설레서 한참을 뒤척였다. 그가 가물가물 눈을 감고 잠들려는 때였다. 반쯤 꿈에 잠긴 귓가에 닐, 닐 하고 조심스럽게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눈을 문지르며 일어나자 제프리가 보여서 흠칫 놀랐다.
“사과하려고 왔어.”
아주 기가 죽은 제프리가 작게 말했다. 갑자기 잠이 훅 달아나 닐은 자리에 바로 앉았다.
“내가 아까 크게 실수한 거지?”
앞으로 아르바이트가 한참이나 남았으니만큼 닐은 이참에 말해 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사이 제프리가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내가 눈치가 없는 건 아는데…….”
눈치만 없어? 정말?
“그게, 며칠 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졌거든.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가 아니라 욕구불만이 쌓인 거겠지. 닐이 매섭게 노려보자 제프리가 아주 작게 겨우 말했다. 날 용서 못 한다고 해도 이해해.
“제피, 내가, 아니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하고 싶다고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나서서 하지 마.”
제프리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섹스를 좋아한다고 24시간 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 넌 24시간 누굴 괴롭히고 싶을지 몰라도 난 아니라고. 아까 네가 한 행동은 선을 넘었어.”
“정말, 정말 미안해.”
한참 동안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한숨만 쉬다가 닐이 입을 열었다. 제프리가 오해하고 있는 걸 이 기회에 고쳐야겠다.
“그리고 로니 크로거와 술집에서 했던 건 내가 좋아서 한 게 아냐.”
제프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직까지도 닐의 말을 이해 못 하고 어리둥절한 얼굴이기에 그가 덧붙였다.
“그 자식이 약을 먹였었다고. 넌 그때 내가 정말 정상으로 보였어?”
“하지만, 그…….”
말을 더듬더듬하는 게 제프리는 아주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간 닐이 적성에 맞다느니, 취향이 어쩌고저쩌고했던 걸 떠올리고 있는지 그 얼굴에 죄책감이 스쳤다. 그래,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그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거겠지. 닐은 차가운 얼굴로 쏘아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제프리에게 모질게 굴 수가 없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에게 그나마 진심으로 호의를 가지고 동정하며 도와주는 사람은 제프리밖에 없었다. 그게 굶주린 동네 떠돌이 개에게나 줄 그런 가벼운 감정이라고는 해도, 어쩔 수가 없이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닐은 이렇게 협소한 인맥을 가진 스스로를 동정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그 동정심에 조금 비참해졌다. 한때는 자신에게도 정말 좋은 친구라고 할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가 먼저 부르기 전까지는 당분간은 내 눈앞에 얼씬거리지도 마.”
같은 매장에서 일하니 아예 보이지 말라고는 못 하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