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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1화)
序 章
둥둥둥―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북소리.
수많은 인파가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저벅저벅―
사람들의 시선 끝에 저무는 태양을 등지며 걸어오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사내의 등에 길쭉하게 생긴 물건을 매달고, 걸어오고 있었는데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갈기갈기 찢겨진 무복 사이로는 붉은 핏물이 쉴 새 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바닥을 내딛는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는 앞으로 걷고 또 걸었다.
한참 뒤, 드디어 사내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가 멈춰선 곳은 거대한 장원의 정문 앞.
한데, 독특하게도 그 장원에는 현판이 걸려 있지 않았다.
저 정도의 큰 규모라면 당연히 현판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현판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흐압―”
바로 그때.
사내가 한줄기 기합성을 내지르며, 등에 매고 있던 물건을 머리 위로 던졌다.
쾅―
천중제일 단목세가.
사내의 머리 위로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현판의 글귀가 보였다.
“크크크, 이놈들아 잘 봐둬라. 이 몸이 바로 천중제일 단목가의 총관이니라.”
사내는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
미친놈처럼 보이지만, 그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그 누구도 그 웃음을 비웃지 못했다.
총관이라는 그의 직책 앞에는 천하제일인이란 칭호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第一章 빌어먹을 유언(1)
하남 천중산.
오악에 뒤지지 않는 험준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하남의 명소다.
이곳에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아,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중에 비뢰봉이 단연 으뜸이다.
비뢰봉은 천중산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천 장에 이르고 사위는 깎아 지르는 천장단애와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천중산을 오르는 약초꾼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행여 라도 비뢰봉을 오르겠다는 생각은 마시오. 그곳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땅이오. 한 번 발을 잘못 들였다간, 그곳에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모르오.”
쉬쉬쉭 쉬쉭―
우거진 수풀이 요란하게 흔들린다.
그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데, 어찌나 그 움직임이 빠른지 육안으로는 분간이 되질 않는다.
“이 새끼, 오늘은 절대 놓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을 잡아 푹 고아 버리고 말 거야.”
수풀 속에서 날카로운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끼요요―
바로 그 순간.
수풀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매끈하게 뻗은 긴 몸통과 세모꼴의 머리.
혈각흑사(血角黑蛇)였다.
꽤나 오랜 세월을 묵었는지, 녀석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그 길이가 족히 세 배는 길고, 몸통은 어른 팔뚝만큼이나 굵었다.
게다가 눈알은 피를 머금은 듯 붉고, 갈라진 혓바닥 사이로 맹수의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솟은 독아가 보였다.
“어쭈, 네놈이 나하고 끝까지 해 보자는 거지? 좋아, 이 방법까진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혈각흑사의 뒤에서 한 청년이 수풀을 헤집고 튀어나왔다.
짧게 기른 더벅머리와 얼굴 한가운데 자리 잡은 크고 짙은 눈동자.
꾸미지 않았다 뿐이지 상당한 미남이다.
하지만, 그 미남 청년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혈각흑사를 쫓는 내내 연방 욕설을 내뱉었다.
시정잡배들이 할 법한 욕설들인데, 그의 입은 거침이 없이 그것들을 뱉어 냈다.
“혈목와, 놈을 잡아.”
혈각흑사와 거리를 좁힌 청년이 품 안에서 붉은빛을 띤 뭔가를 꺼내 앞으로 내던졌다.
정신없이 앞으로 도망치던 혈각흑사는 눈앞에 떨어지는 붉은 물체에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런데 붉은 물체는 혈각흑사의 움직임을 예상하기라도 했던 듯 자연스럽게 혈각흑사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샤샤샥―
길이 막히자, 혈각흑사는 잔뜩 독 오른 표정으로 독아를 드러냈다. 그리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길을 막아선 붉은 물체를 냅다 물었다.
혈각흑사의 날카로운 독아는 여린 살점을 비집고 들어갔고, 그 틈새로 집채만 한 황소도 단숨에 숨을 끊어 놓을 수 있는 독액이 흘러들어 갔다.
붉은 물체, 아니, 붉은 두꺼비는 괴로운지 온몸을 비틀었다.
혈각흑사는 붉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승자의 여유를 즐겼다.
하지만 그 여유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혈각흑사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까부터 혈각흑사를 맹렬히 쫓아다니던 그 미남 청년이었다.
“크크크, 이놈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청년은 혈와를 물고 있는 혈각흑사를 보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혈각흑사는 또 다른 적의 출현에 잔뜩 경계하며 혈와를 물고 있던 입을 벌렸다.
크크륵. 크륵.
혈각흑사가 이상했다.
혈와를 붙잡고 있던 독아를 밖으로 빼냈을 뿐인데, 온몸을 비틀며 소름끼치는 소성을 토해 냈다.
마치 그 모습은 독에 중독되어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와서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어. 혈목와는 네 녀석하곤 상극의 독을 지닌 독물이야. 네 독이 아무리 지독해도, 상성상 혈목와의 독을 당해 내진 못해.”
혈목와는 천중산에서만 나는 특이한 종류의 독두꺼비다.
크기나 생김새는 일반 두꺼비와 거의 차이가 없는데, 이름에서 보듯 혈목와는 눈동자가 붉다.
독물에 조예가 깊은 자들의 말에 따르면, 핏속에 흐르는 화독이 혈목와의 눈을 붉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사실로 증명된 바는 없다.
‘이 이상 날뛰면 내단에 손상이 갈 수도 있어. 이쯤에서 놈의 숨통을 끊고, 내단을 회수하는 게 좋겠어.’
혈각흑사의 몸부림이 시간이 갈수록 더 격해지자, 청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혈각흑사의 머리통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붙잡았다. 혈각흑사는 화독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청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청년은 강한 손아귀 힘은 혈각흑사의 머리통을 그대로 깨부숴 버렸다.
퍽―
비릿한 피 냄새가 사위에 진동한다.
혈각흑사의 붉은 피가 바닥을 흠뻑 적셨다. 당연히 혈각흑사를 잡고 있던 청년의 손도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청년은 혈각흑사의 피는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혈각흑사의 몸통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얼마 후, 청년의 손아귀에 푸른 빛깔을 띤 구슬이 쥐어졌다.
그것은 오랜 세월 혈각흑사가 몸 안에 품고 있던 내단이었다.
“휴우, 이제야 겨우 구했네. 이거면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한테 더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지.”
청년은 혈각흑사의 내단을 바라보며 한껏 흥분된 기색을 보였다.
혈각흑사의 내단은 강호인들이 흔히 아는 내력 증강의 보물이 아니다.
녀석의 내단은 아무리 많이 복용해도 내력 한 줌 늘어나지 않고, 한서불침이나 금강불괴의 효과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녀석의 내단은 독특한 효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독에 대한 내성을 길러 주는 것이다.
흔히들 영물의 내단을 먹기만 하면 천독불침, 만독불침이 된다고들 착각을 하는데 그것은 지극히 와전된 이야기다.
일반 영물의 내단은 순수하게 내공을 늘려 주는 역할만 할 뿐, 독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천독불침, 만독불침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일반 영물이 아닌 독물의 내단을 취해야 한다.
물론, 독물의 내단은 일반 내단과 달리 그 위험성이 매우 크다.
독물의 내단은 말이 좋아 내단이지, 실제로는 긴 세월에 걸쳐 독물이 응축된 독 덩어리다. 그냥 몸에 좋다고 별 생각 없이 복용했다간 오히려 골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독단을 제대로 몸에 흡수하기 위해서는 독공의 고수가 꼭 필요하다.
‘독한 영감탱이. 이걸로 당신과의 약속은 모두 이행했어. 이걸로 이 지긋지긋한 산중지옥을 떠날 수 있겠지.’
진자강은 혈각흑사의 내단을 품에 넣으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미친 영감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이곳에 들어온 게 벌써 십 년 세월이다.
강해지고 싶지 않냐는 생뚱맞은 물음에 그냥 고개 한 번 끄덕였을 뿐인데 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버렸다.
십 년의 세월.
진자강에겐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었다.
영감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잘나가는 뒷골목 주먹이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제 이름을 딴 조직도 있었고, 자신의 말을 황제의 말보다 더 믿고 따르는 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악귀 같은 영감을 만나면서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 낙양 뒷골목을 접수하겠다던 원대한 꿈은 채 펼쳐 보기도 전에 접어야 했고, 친형제 같던 동생과도 십 년 동안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진자강은 억울하고 분통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천중산의 험준한 지세가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결국, 일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진자강은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진자강의 수련은 시작됐다.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끔찍한 수련이었다. 하지만 진자강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 년, 삼 년, 사 년…….
해가 거듭될수록 그는 강해졌다.
뒷골목의 샛별로 주목받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한데 배움이 깊어질수록 영감에 대한 진자강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왜? 그건 영감이 전수한 무공 때문이었다.
십천무(十天武).
이름은 참 그럴싸하다.
뭐 뜻도 장수의 상징인 십장생을 바탕으로 창안됐다고 하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십천무를 익히는 과정이다.
해괴망측.
십천무를 배우는 내내 진자강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정도로 십천무를 익히는 과정은 진자강으로 하여금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천록권.
십천무의 첫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무공이다.
그 이름에서 보여지듯, 이 권법은 사슴처럼 빠르고 유연하게 팔과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진자강은 완벽한 천록권의 투로를 몸에 익히기 위해 반년이 넘게 사슴을 쫓아다녀야 했다. 물론, 진자강의 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천록권을 익히는 과정은 군학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군학보는 학처럼 양팔을 날개로 이용해 신형을 움직이는 일종의 보법이다.
천록권을 겨우 몸에 익힌 진자강은 군학보란 이름에 잔뜩 긴장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군학보를 익히는 방법 또한 천록권의 그것과 거의 흡사했다.
진자강은 반년 동안 학을 따라 나는 법을 배웠다.
이건 미친 짓이라며 스스로 생각하고 또 입 밖으로 내뱉었지만, 군학보를 전수하는 영감은 자신의 뜻을 절대 꺾지 않았다.
결국 진자강은 어쩔 수 없이 그 미친 짓을 해 가며 군학보를 익혔다.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깨지는 일은 일상처럼 일어났고 그때마다 영감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십천무를 익히기 위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빌어먹을 수련이라고 해 댔지만, 독하게 영감이 시키는 대로 다 해낸 것이다.
‘이런,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는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또 늦었다고 무슨 꼬장을 부릴지 모르니 서둘러야겠어.’
잠시 상념에 젖었던 진자강은 서녘으로 저무는 해를 보며 급하게 비뢰봉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엔 머리가 터져 버린 혈각흑사의 시체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序 章
둥둥둥―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북소리.
수많은 인파가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저벅저벅―
사람들의 시선 끝에 저무는 태양을 등지며 걸어오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사내의 등에 길쭉하게 생긴 물건을 매달고, 걸어오고 있었는데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갈기갈기 찢겨진 무복 사이로는 붉은 핏물이 쉴 새 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바닥을 내딛는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는 앞으로 걷고 또 걸었다.
한참 뒤, 드디어 사내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가 멈춰선 곳은 거대한 장원의 정문 앞.
한데, 독특하게도 그 장원에는 현판이 걸려 있지 않았다.
저 정도의 큰 규모라면 당연히 현판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현판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흐압―”
바로 그때.
사내가 한줄기 기합성을 내지르며, 등에 매고 있던 물건을 머리 위로 던졌다.
쾅―
천중제일 단목세가.
사내의 머리 위로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현판의 글귀가 보였다.
“크크크, 이놈들아 잘 봐둬라. 이 몸이 바로 천중제일 단목가의 총관이니라.”
사내는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
미친놈처럼 보이지만, 그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그 누구도 그 웃음을 비웃지 못했다.
총관이라는 그의 직책 앞에는 천하제일인이란 칭호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第一章 빌어먹을 유언(1)
하남 천중산.
오악에 뒤지지 않는 험준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하남의 명소다.
이곳에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아,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중에 비뢰봉이 단연 으뜸이다.
비뢰봉은 천중산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천 장에 이르고 사위는 깎아 지르는 천장단애와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천중산을 오르는 약초꾼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행여 라도 비뢰봉을 오르겠다는 생각은 마시오. 그곳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땅이오. 한 번 발을 잘못 들였다간, 그곳에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모르오.”
쉬쉬쉭 쉬쉭―
우거진 수풀이 요란하게 흔들린다.
그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데, 어찌나 그 움직임이 빠른지 육안으로는 분간이 되질 않는다.
“이 새끼, 오늘은 절대 놓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을 잡아 푹 고아 버리고 말 거야.”
수풀 속에서 날카로운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끼요요―
바로 그 순간.
수풀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매끈하게 뻗은 긴 몸통과 세모꼴의 머리.
혈각흑사(血角黑蛇)였다.
꽤나 오랜 세월을 묵었는지, 녀석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그 길이가 족히 세 배는 길고, 몸통은 어른 팔뚝만큼이나 굵었다.
게다가 눈알은 피를 머금은 듯 붉고, 갈라진 혓바닥 사이로 맹수의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솟은 독아가 보였다.
“어쭈, 네놈이 나하고 끝까지 해 보자는 거지? 좋아, 이 방법까진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혈각흑사의 뒤에서 한 청년이 수풀을 헤집고 튀어나왔다.
짧게 기른 더벅머리와 얼굴 한가운데 자리 잡은 크고 짙은 눈동자.
꾸미지 않았다 뿐이지 상당한 미남이다.
하지만, 그 미남 청년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혈각흑사를 쫓는 내내 연방 욕설을 내뱉었다.
시정잡배들이 할 법한 욕설들인데, 그의 입은 거침이 없이 그것들을 뱉어 냈다.
“혈목와, 놈을 잡아.”
혈각흑사와 거리를 좁힌 청년이 품 안에서 붉은빛을 띤 뭔가를 꺼내 앞으로 내던졌다.
정신없이 앞으로 도망치던 혈각흑사는 눈앞에 떨어지는 붉은 물체에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런데 붉은 물체는 혈각흑사의 움직임을 예상하기라도 했던 듯 자연스럽게 혈각흑사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샤샤샥―
길이 막히자, 혈각흑사는 잔뜩 독 오른 표정으로 독아를 드러냈다. 그리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길을 막아선 붉은 물체를 냅다 물었다.
혈각흑사의 날카로운 독아는 여린 살점을 비집고 들어갔고, 그 틈새로 집채만 한 황소도 단숨에 숨을 끊어 놓을 수 있는 독액이 흘러들어 갔다.
붉은 물체, 아니, 붉은 두꺼비는 괴로운지 온몸을 비틀었다.
혈각흑사는 붉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승자의 여유를 즐겼다.
하지만 그 여유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혈각흑사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까부터 혈각흑사를 맹렬히 쫓아다니던 그 미남 청년이었다.
“크크크, 이놈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청년은 혈와를 물고 있는 혈각흑사를 보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혈각흑사는 또 다른 적의 출현에 잔뜩 경계하며 혈와를 물고 있던 입을 벌렸다.
크크륵. 크륵.
혈각흑사가 이상했다.
혈와를 붙잡고 있던 독아를 밖으로 빼냈을 뿐인데, 온몸을 비틀며 소름끼치는 소성을 토해 냈다.
마치 그 모습은 독에 중독되어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와서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어. 혈목와는 네 녀석하곤 상극의 독을 지닌 독물이야. 네 독이 아무리 지독해도, 상성상 혈목와의 독을 당해 내진 못해.”
혈목와는 천중산에서만 나는 특이한 종류의 독두꺼비다.
크기나 생김새는 일반 두꺼비와 거의 차이가 없는데, 이름에서 보듯 혈목와는 눈동자가 붉다.
독물에 조예가 깊은 자들의 말에 따르면, 핏속에 흐르는 화독이 혈목와의 눈을 붉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사실로 증명된 바는 없다.
‘이 이상 날뛰면 내단에 손상이 갈 수도 있어. 이쯤에서 놈의 숨통을 끊고, 내단을 회수하는 게 좋겠어.’
혈각흑사의 몸부림이 시간이 갈수록 더 격해지자, 청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혈각흑사의 머리통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붙잡았다. 혈각흑사는 화독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청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청년은 강한 손아귀 힘은 혈각흑사의 머리통을 그대로 깨부숴 버렸다.
퍽―
비릿한 피 냄새가 사위에 진동한다.
혈각흑사의 붉은 피가 바닥을 흠뻑 적셨다. 당연히 혈각흑사를 잡고 있던 청년의 손도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청년은 혈각흑사의 피는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혈각흑사의 몸통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얼마 후, 청년의 손아귀에 푸른 빛깔을 띤 구슬이 쥐어졌다.
그것은 오랜 세월 혈각흑사가 몸 안에 품고 있던 내단이었다.
“휴우, 이제야 겨우 구했네. 이거면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한테 더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지.”
청년은 혈각흑사의 내단을 바라보며 한껏 흥분된 기색을 보였다.
혈각흑사의 내단은 강호인들이 흔히 아는 내력 증강의 보물이 아니다.
녀석의 내단은 아무리 많이 복용해도 내력 한 줌 늘어나지 않고, 한서불침이나 금강불괴의 효과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녀석의 내단은 독특한 효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독에 대한 내성을 길러 주는 것이다.
흔히들 영물의 내단을 먹기만 하면 천독불침, 만독불침이 된다고들 착각을 하는데 그것은 지극히 와전된 이야기다.
일반 영물의 내단은 순수하게 내공을 늘려 주는 역할만 할 뿐, 독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천독불침, 만독불침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일반 영물이 아닌 독물의 내단을 취해야 한다.
물론, 독물의 내단은 일반 내단과 달리 그 위험성이 매우 크다.
독물의 내단은 말이 좋아 내단이지, 실제로는 긴 세월에 걸쳐 독물이 응축된 독 덩어리다. 그냥 몸에 좋다고 별 생각 없이 복용했다간 오히려 골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독단을 제대로 몸에 흡수하기 위해서는 독공의 고수가 꼭 필요하다.
‘독한 영감탱이. 이걸로 당신과의 약속은 모두 이행했어. 이걸로 이 지긋지긋한 산중지옥을 떠날 수 있겠지.’
진자강은 혈각흑사의 내단을 품에 넣으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미친 영감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이곳에 들어온 게 벌써 십 년 세월이다.
강해지고 싶지 않냐는 생뚱맞은 물음에 그냥 고개 한 번 끄덕였을 뿐인데 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버렸다.
십 년의 세월.
진자강에겐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었다.
영감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잘나가는 뒷골목 주먹이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제 이름을 딴 조직도 있었고, 자신의 말을 황제의 말보다 더 믿고 따르는 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악귀 같은 영감을 만나면서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 낙양 뒷골목을 접수하겠다던 원대한 꿈은 채 펼쳐 보기도 전에 접어야 했고, 친형제 같던 동생과도 십 년 동안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진자강은 억울하고 분통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천중산의 험준한 지세가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결국, 일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진자강은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진자강의 수련은 시작됐다.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끔찍한 수련이었다. 하지만 진자강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 년, 삼 년, 사 년…….
해가 거듭될수록 그는 강해졌다.
뒷골목의 샛별로 주목받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한데 배움이 깊어질수록 영감에 대한 진자강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왜? 그건 영감이 전수한 무공 때문이었다.
십천무(十天武).
이름은 참 그럴싸하다.
뭐 뜻도 장수의 상징인 십장생을 바탕으로 창안됐다고 하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십천무를 익히는 과정이다.
해괴망측.
십천무를 배우는 내내 진자강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정도로 십천무를 익히는 과정은 진자강으로 하여금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천록권.
십천무의 첫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무공이다.
그 이름에서 보여지듯, 이 권법은 사슴처럼 빠르고 유연하게 팔과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진자강은 완벽한 천록권의 투로를 몸에 익히기 위해 반년이 넘게 사슴을 쫓아다녀야 했다. 물론, 진자강의 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천록권을 익히는 과정은 군학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군학보는 학처럼 양팔을 날개로 이용해 신형을 움직이는 일종의 보법이다.
천록권을 겨우 몸에 익힌 진자강은 군학보란 이름에 잔뜩 긴장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군학보를 익히는 방법 또한 천록권의 그것과 거의 흡사했다.
진자강은 반년 동안 학을 따라 나는 법을 배웠다.
이건 미친 짓이라며 스스로 생각하고 또 입 밖으로 내뱉었지만, 군학보를 전수하는 영감은 자신의 뜻을 절대 꺾지 않았다.
결국 진자강은 어쩔 수 없이 그 미친 짓을 해 가며 군학보를 익혔다.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깨지는 일은 일상처럼 일어났고 그때마다 영감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십천무를 익히기 위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빌어먹을 수련이라고 해 댔지만, 독하게 영감이 시키는 대로 다 해낸 것이다.
‘이런,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는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또 늦었다고 무슨 꼬장을 부릴지 모르니 서둘러야겠어.’
잠시 상념에 젖었던 진자강은 서녘으로 저무는 해를 보며 급하게 비뢰봉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엔 머리가 터져 버린 혈각흑사의 시체만이 덩그러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