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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25화)
第八章 광견 재림(3)
***
자강파와 곤룡회 간의 전면전이 끝난 뒤, 낙양 일대는 온통 그 싸움에 대한 얘기로 시끄러웠다.
워낙에 규모가 컸던데다, 관군들까지 개입을 했으니 사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느 조직이 이긴 거지?”
“아무래도 곤룡회 쪽이 아닐까? 내 듣기로 자강파의 조직원들 중 상당수가 낙양 관부에 끌려갔다고 하던데.”
“나도 그 얘기 들었어. 내 처남이 관옥에서 옥지기로 일을 하는데, 험상궂은 주먹패들이 한꺼번에 떼로 입옥됐다고 했었어.”
사람들이 셋 이상 모인 곳에선 여지없이 자강파와 곤룡회 사이에 일어난 싸움의 결과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얘기하는 대다수는 곤룡회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생각과 달랐다.
이번 전면전에서 자강파는 곤룡회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곤룡회는 이번 싸움에 조직원의 삼분지 이 이상을 동원했다. 그에 반해, 자강파는 주위연과 북문 외곽에 흩어져 있던 상당수의 조직원들이 싸움에 불참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조직은 양패구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결과적으로 곤룡회는 머리가 잘리는 치명상을 당했고, 자강파에는 아직 주위연이란 머리가 남아 있었다.
주위연은 싸움이 정리된 뒤, 곧장 남은 휘하의 조직원들을 움직여 동문을 쳤다.
동문에 남아 있던 곤룡회의 조직원들은 자강파의 기습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곤룡회가 가지고 있던 사업체는 고스란히 주위연의 손에 의해 자강파로 흡수됐다.
두 조직 간의 전면전이 끝난 지도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시끌벅적했던 밖과 달리, 낙양 관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관옥 안에서 시정잡배들이 저들끼리 싸움을 벌이거나, 쓸데없는 내기로 요란하게 고함 소리를 내고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소리가 전혀 나질 않았다.
“젠장! 저런 거물을 우리랑 같은 곳에 넣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러게. 광견이라고 하면, 지나가던 똥개 새끼도 놀라서 오줌을 지린다고 할 판인데.”
“난 개도 아닌데 처음 본 순간부터 오줌을 지렸어. 눈빛이 얼마나 사나운지 심장이 콱 쪼그라드는 줄 알았어.”
큼지막한 뇌옥의 한구석.
열 명이 넘는 죄수들이 그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분명히 공간이 넓건만 그들은 좀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죄다 한곳에 꽂혀 있었다.
그곳에는 유난히 짚단이 푹신푹신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짚단 위에는 한 사내가 등을 보인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코까지 골아 대며 자는 모양새가 참으로 태평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언제까지 같이 지내야 하는 거야?”
“이대론 정말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
“장평이, 너 관부에 아는 형님 있다고 했잖아. 그 형님한테 좀 얘기해서 뇌옥 좀 바꿔달라고 하면 안 되냐!”
“니미, 진즉에 얘기해 봤지. 근데 씨알도 안 먹혀.”
“왜?”
“왜긴 왜야! 저기 일 뇌옥은 낙양에서 이름난 거부 장평인의 조카가 있고, 저쪽 이 뇌옥은 용 포쾌의 처남이 있잖아.”
“아, 그랬지… 이거, 답이 없네.”
죄수들은 절망감에 고개를 떨궜다.
영락없이 진자강이 뇌옥을 나갈 때까지는 이 숨 막히는 생활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어. 우리 뭐라도 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죄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장평에게 쏠렸다.
“일단 천지신명께라도 빌자. 개과천선한다고 하면, 하늘도 감동해 우리 소원을 들어줄 거다.”
장평의 의견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달리 수가 없었던 죄수들은 장평의 의견에 따랐다. 두 손을 모으고 열심히 비벼 대는 그들의 모습에선 절박한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끼이잉―
그런데 바로 그때, 뇌옥 전체에 요란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옥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설마, 천지신명께서―”
죄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철문 쪽으로 쏠렸다.
저벅저벅―
날렵한 체구의 사내가 보였다.
그의 바로 옆에는 관옥의 경비를 총책임지는 옥사장이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사내의 신분이 범상치 않은 듯 연신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주 대인! 시간은 많이 내어 드릴 수 없습니다. 지부대인께서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 터라, 자칫하면 제 목이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염려할 것 없소.”
사내는 옥사장을 안심시키며 사 뇌옥 쪽으로 걸어갔다.
사내가 다가오자, 죄수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대형―”
사뇌옥 입구에 멈춰 선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진자강을 향하고 있었다.
“아함~ 누구야?”
귓가를 간질이는 사내의 목소리에 진자강이 하품을 해 대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사내와 진자강의 시선이 마주쳤다.
“위연이 왔구나!”
진자강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대, 대형…….”
주위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인마,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여기야 어릴 때 수도 없이 들락날락거렸잖아. 바깥 상황은 어때?”
“저희 쪽에서 동문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곤룡회가 가지고 있던 사업체는 모두 저희 쪽으로 병합됐고, 곤룡회의 잔존 세력들도 모두 자강파로 편입시켰습니다.”
“크크크, 역시 일 처리 하나는 깔끔하구나. 네 녀석을 남겨두고 움직이길 잘했어.”
“그런 말씀 마십시오. 대형이 안 계시니 조직원들이 모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십시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나오실 수 있도록 윗선에 줄을 대겠습니다.”
“후훗, 쓸데없는 짓이야. 날 잡아넣었던 지부대인 놈 눈빛을 봤을 때 웬만한 연줄 가지고선 이곳을 나가기 힘들어.”
“그렇다고 이대로 풀려나기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일 아닙니까?”
주위연의 얼굴엔 안타까운 빛이 역력했다.
“위연아, 내가 빨리 나갔으면 좋겠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지금 전 조직원들이 대형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귀 좀 대 봐. 아주 좋은 방법을 하나 가르쳐 줄게.”
진자강이 주위연의 귀를 살짝 빌렸다.
그리곤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몇 마디 말을 그에게 전했다.
시종일관 어둡던 주위연의 얼굴은 진자강의 몇 마디 말에 금세 환해졌다.
“대형, 조만간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조금 더 고생하십시오.”
“응. 걱정 말고 어서 가라.”
진자강이 손을 흔들며 주위연을 배웅했다.
주위연은 급한 일이라도 갑자기 생겼는지 옥사장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뇌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젠장! 천지신명은 무슨 얼어 죽을!”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죄수들이 애꿎은 하늘을 원망하며 주위연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주위연이 관옥을 왔다 간 지 나흘째 되는 날, 갑자기 관옥으로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지부대인 곽위천이 별다른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관옥을 방문한 것이다.
“지부대인을 뵙습니다.”
옥지기들이 황급히 허리를 꺾었다.
그들에게 지부대인의 위치는 하늘 위에 뜬 해와 같았다.
“모두 잠깐 밖에 나가들 있어라. 이곳의 죄수와 할 얘기가 있다.”
“충―”
곽위천의 명령에 옥지기들은 부리나케 뇌옥 밖으로 나갔다.
“진자강―”
곽위천의 시선이 진자강에게 향했다.
하지만 진자강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아예 무시하는 건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곽위천은 순간 격하게 화가 치밀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지금 아쉬는 건 그지, 진자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자강, 내가 실수했다. 그만 화 풀고 뇌옥에서 나가라.”
곽위천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자신이 직접 잡아넣어, 이제 와서 풀어주다니. 당최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었다.
“지부대인!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여기가 제집처럼 편안합니다. 지난번에 대인께서 말씀하신 죄목대로라면 전 여기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험험, 조사 과정에 착오가 있었다.”
“그래요? 제가 듣기론 낙양의 용 포쾌는 철두철미한 사건 처리로 명성이 드높던데요.”
진자강은 곽위천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이리저리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때마다 곽위천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대인!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제게 이러는 이유가 뭔지?”
진자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곽위천은 한참 동안 대답을 망설이다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금의 낙양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변해 있었다. 그 이유는 모두 자강파로 인한 것이었다.
진자강이 관부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주위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강파의 모든 활동을 중단시켰다.
호랑이가 숨을 죽이자, 여기저기서 승냥이들이 등장했다.
승냥이들은 호랑이 눈치를 보지 않고, 미친 듯이 재물을 탐했고 그 과정에서 애꿎은 양민들만 큰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입은 양민들은 관부로 떼로 몰려와 진자강을 풀어 달라 성토했다.
처음엔 관부에서도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며 묵살했는데,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각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황궁에까지 소문이 퍼질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곽위천으로선 다른 선택의 수가 없었다. 문제의 근원인 진자강을 풀어주는 것밖에는.
“아하, 며칠 안 되지만 여기에 꽤 정이 들었는데.”
“언제든 원하면 방을 내주겠다. 그러니 제발 오늘 중으로 이곳을 나가라.”
“하하하, 지부대인께서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진자강이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유유자적한 발걸음으로 뇌옥을 나섰다.
곽위천은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지만 할 수 없었다.
아쉬운 건 자신 쪽이니까.
***
“두목님, 출옥을 축하드립니다!”
진자강이 뇌옥을 나오자, 낙양 관아 앞에선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앞서 뇌옥을 나온 자강파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나와 그를 반긴 것이다.
“대형, 이것부터―”
조직원들 틈바구니 속에서 강천호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두부가 들려 있었다.
“강호야,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두부를 먹냐!”
“대형, 그래도 뇌옥에서 나오면 두부를 먹어 주는 게 좋습니다.”
“어휴, 알았다. 네 정성을 봐서 먹으마.”
진자강은 강천호가 건네는 두부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 모습에 조직원들은 진자강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강혁이는 좀 어떠냐?”
소란스런 환영식이 끝난 후, 진자강이 주위연을 불러 마강혁의 안부를 물었다.
“꽤 중상이기는 한데 앞으로 몸을 쓰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자식, 맷집이 많이 늘었는데.”
“후후,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일 곤룡회 혼자 벌인 일 아니지? 홍아루로 들어갈 때 막아섰던 놈들, 분명 정식으로 무공을 익히고 있었어.”
두부를 다 먹고 나자, 진자강의 얼굴엔 예의 진득한 살기가 감돌았다.
곤룡회야 묵사발을 냈으니 감정이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아직 풀어야 할 상대가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이미 조사를 해 뒀습니다.”
“어디야?”
“황룡문입니다.”
“역시 그 새끼들이었군.”
진자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악연을 맺고 있는 놈들 중 그만한 실력을 지닌 무사를 가지고 있는 곳은 황룡문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크크크, 광견을 건드렸으니 놈들이 원하는 대로 화끈하게 물어 줘야지. 애들 모아서 곧장 황룡문으로 간다.”
진자강의 발길이 낙성로로 향했다. 낙성로는 황룡문이 자리한 곳.
바야흐로 광견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2권에서 계속
第八章 광견 재림(3)
자강파와 곤룡회 간의 전면전이 끝난 뒤, 낙양 일대는 온통 그 싸움에 대한 얘기로 시끄러웠다.
워낙에 규모가 컸던데다, 관군들까지 개입을 했으니 사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느 조직이 이긴 거지?”
“아무래도 곤룡회 쪽이 아닐까? 내 듣기로 자강파의 조직원들 중 상당수가 낙양 관부에 끌려갔다고 하던데.”
“나도 그 얘기 들었어. 내 처남이 관옥에서 옥지기로 일을 하는데, 험상궂은 주먹패들이 한꺼번에 떼로 입옥됐다고 했었어.”
사람들이 셋 이상 모인 곳에선 여지없이 자강파와 곤룡회 사이에 일어난 싸움의 결과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얘기하는 대다수는 곤룡회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생각과 달랐다.
이번 전면전에서 자강파는 곤룡회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곤룡회는 이번 싸움에 조직원의 삼분지 이 이상을 동원했다. 그에 반해, 자강파는 주위연과 북문 외곽에 흩어져 있던 상당수의 조직원들이 싸움에 불참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조직은 양패구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결과적으로 곤룡회는 머리가 잘리는 치명상을 당했고, 자강파에는 아직 주위연이란 머리가 남아 있었다.
주위연은 싸움이 정리된 뒤, 곧장 남은 휘하의 조직원들을 움직여 동문을 쳤다.
동문에 남아 있던 곤룡회의 조직원들은 자강파의 기습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곤룡회가 가지고 있던 사업체는 고스란히 주위연의 손에 의해 자강파로 흡수됐다.
두 조직 간의 전면전이 끝난 지도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시끌벅적했던 밖과 달리, 낙양 관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관옥 안에서 시정잡배들이 저들끼리 싸움을 벌이거나, 쓸데없는 내기로 요란하게 고함 소리를 내고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소리가 전혀 나질 않았다.
“젠장! 저런 거물을 우리랑 같은 곳에 넣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러게. 광견이라고 하면, 지나가던 똥개 새끼도 놀라서 오줌을 지린다고 할 판인데.”
“난 개도 아닌데 처음 본 순간부터 오줌을 지렸어. 눈빛이 얼마나 사나운지 심장이 콱 쪼그라드는 줄 알았어.”
큼지막한 뇌옥의 한구석.
열 명이 넘는 죄수들이 그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분명히 공간이 넓건만 그들은 좀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죄다 한곳에 꽂혀 있었다.
그곳에는 유난히 짚단이 푹신푹신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짚단 위에는 한 사내가 등을 보인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코까지 골아 대며 자는 모양새가 참으로 태평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언제까지 같이 지내야 하는 거야?”
“이대론 정말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
“장평이, 너 관부에 아는 형님 있다고 했잖아. 그 형님한테 좀 얘기해서 뇌옥 좀 바꿔달라고 하면 안 되냐!”
“니미, 진즉에 얘기해 봤지. 근데 씨알도 안 먹혀.”
“왜?”
“왜긴 왜야! 저기 일 뇌옥은 낙양에서 이름난 거부 장평인의 조카가 있고, 저쪽 이 뇌옥은 용 포쾌의 처남이 있잖아.”
“아, 그랬지… 이거, 답이 없네.”
죄수들은 절망감에 고개를 떨궜다.
영락없이 진자강이 뇌옥을 나갈 때까지는 이 숨 막히는 생활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어. 우리 뭐라도 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죄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장평에게 쏠렸다.
“일단 천지신명께라도 빌자. 개과천선한다고 하면, 하늘도 감동해 우리 소원을 들어줄 거다.”
장평의 의견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달리 수가 없었던 죄수들은 장평의 의견에 따랐다. 두 손을 모으고 열심히 비벼 대는 그들의 모습에선 절박한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끼이잉―
그런데 바로 그때, 뇌옥 전체에 요란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옥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설마, 천지신명께서―”
죄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철문 쪽으로 쏠렸다.
저벅저벅―
날렵한 체구의 사내가 보였다.
그의 바로 옆에는 관옥의 경비를 총책임지는 옥사장이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사내의 신분이 범상치 않은 듯 연신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주 대인! 시간은 많이 내어 드릴 수 없습니다. 지부대인께서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 터라, 자칫하면 제 목이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염려할 것 없소.”
사내는 옥사장을 안심시키며 사 뇌옥 쪽으로 걸어갔다.
사내가 다가오자, 죄수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대형―”
사뇌옥 입구에 멈춰 선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진자강을 향하고 있었다.
“아함~ 누구야?”
귓가를 간질이는 사내의 목소리에 진자강이 하품을 해 대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사내와 진자강의 시선이 마주쳤다.
“위연이 왔구나!”
진자강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대, 대형…….”
주위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인마,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여기야 어릴 때 수도 없이 들락날락거렸잖아. 바깥 상황은 어때?”
“저희 쪽에서 동문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곤룡회가 가지고 있던 사업체는 모두 저희 쪽으로 병합됐고, 곤룡회의 잔존 세력들도 모두 자강파로 편입시켰습니다.”
“크크크, 역시 일 처리 하나는 깔끔하구나. 네 녀석을 남겨두고 움직이길 잘했어.”
“그런 말씀 마십시오. 대형이 안 계시니 조직원들이 모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십시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나오실 수 있도록 윗선에 줄을 대겠습니다.”
“후훗, 쓸데없는 짓이야. 날 잡아넣었던 지부대인 놈 눈빛을 봤을 때 웬만한 연줄 가지고선 이곳을 나가기 힘들어.”
“그렇다고 이대로 풀려나기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일 아닙니까?”
주위연의 얼굴엔 안타까운 빛이 역력했다.
“위연아, 내가 빨리 나갔으면 좋겠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지금 전 조직원들이 대형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귀 좀 대 봐. 아주 좋은 방법을 하나 가르쳐 줄게.”
진자강이 주위연의 귀를 살짝 빌렸다.
그리곤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몇 마디 말을 그에게 전했다.
시종일관 어둡던 주위연의 얼굴은 진자강의 몇 마디 말에 금세 환해졌다.
“대형, 조만간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조금 더 고생하십시오.”
“응. 걱정 말고 어서 가라.”
진자강이 손을 흔들며 주위연을 배웅했다.
주위연은 급한 일이라도 갑자기 생겼는지 옥사장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뇌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젠장! 천지신명은 무슨 얼어 죽을!”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죄수들이 애꿎은 하늘을 원망하며 주위연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주위연이 관옥을 왔다 간 지 나흘째 되는 날, 갑자기 관옥으로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지부대인 곽위천이 별다른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관옥을 방문한 것이다.
“지부대인을 뵙습니다.”
옥지기들이 황급히 허리를 꺾었다.
그들에게 지부대인의 위치는 하늘 위에 뜬 해와 같았다.
“모두 잠깐 밖에 나가들 있어라. 이곳의 죄수와 할 얘기가 있다.”
“충―”
곽위천의 명령에 옥지기들은 부리나케 뇌옥 밖으로 나갔다.
“진자강―”
곽위천의 시선이 진자강에게 향했다.
하지만 진자강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아예 무시하는 건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곽위천은 순간 격하게 화가 치밀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지금 아쉬는 건 그지, 진자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자강, 내가 실수했다. 그만 화 풀고 뇌옥에서 나가라.”
곽위천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자신이 직접 잡아넣어, 이제 와서 풀어주다니. 당최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었다.
“지부대인!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여기가 제집처럼 편안합니다. 지난번에 대인께서 말씀하신 죄목대로라면 전 여기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험험, 조사 과정에 착오가 있었다.”
“그래요? 제가 듣기론 낙양의 용 포쾌는 철두철미한 사건 처리로 명성이 드높던데요.”
진자강은 곽위천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이리저리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때마다 곽위천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대인!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제게 이러는 이유가 뭔지?”
진자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곽위천은 한참 동안 대답을 망설이다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금의 낙양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변해 있었다. 그 이유는 모두 자강파로 인한 것이었다.
진자강이 관부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주위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강파의 모든 활동을 중단시켰다.
호랑이가 숨을 죽이자, 여기저기서 승냥이들이 등장했다.
승냥이들은 호랑이 눈치를 보지 않고, 미친 듯이 재물을 탐했고 그 과정에서 애꿎은 양민들만 큰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입은 양민들은 관부로 떼로 몰려와 진자강을 풀어 달라 성토했다.
처음엔 관부에서도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며 묵살했는데,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각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황궁에까지 소문이 퍼질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곽위천으로선 다른 선택의 수가 없었다. 문제의 근원인 진자강을 풀어주는 것밖에는.
“아하, 며칠 안 되지만 여기에 꽤 정이 들었는데.”
“언제든 원하면 방을 내주겠다. 그러니 제발 오늘 중으로 이곳을 나가라.”
“하하하, 지부대인께서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진자강이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유유자적한 발걸음으로 뇌옥을 나섰다.
곽위천은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지만 할 수 없었다.
아쉬운 건 자신 쪽이니까.
“두목님, 출옥을 축하드립니다!”
진자강이 뇌옥을 나오자, 낙양 관아 앞에선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앞서 뇌옥을 나온 자강파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나와 그를 반긴 것이다.
“대형, 이것부터―”
조직원들 틈바구니 속에서 강천호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두부가 들려 있었다.
“강호야,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두부를 먹냐!”
“대형, 그래도 뇌옥에서 나오면 두부를 먹어 주는 게 좋습니다.”
“어휴, 알았다. 네 정성을 봐서 먹으마.”
진자강은 강천호가 건네는 두부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 모습에 조직원들은 진자강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강혁이는 좀 어떠냐?”
소란스런 환영식이 끝난 후, 진자강이 주위연을 불러 마강혁의 안부를 물었다.
“꽤 중상이기는 한데 앞으로 몸을 쓰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자식, 맷집이 많이 늘었는데.”
“후후,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일 곤룡회 혼자 벌인 일 아니지? 홍아루로 들어갈 때 막아섰던 놈들, 분명 정식으로 무공을 익히고 있었어.”
두부를 다 먹고 나자, 진자강의 얼굴엔 예의 진득한 살기가 감돌았다.
곤룡회야 묵사발을 냈으니 감정이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아직 풀어야 할 상대가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이미 조사를 해 뒀습니다.”
“어디야?”
“황룡문입니다.”
“역시 그 새끼들이었군.”
진자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악연을 맺고 있는 놈들 중 그만한 실력을 지닌 무사를 가지고 있는 곳은 황룡문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크크크, 광견을 건드렸으니 놈들이 원하는 대로 화끈하게 물어 줘야지. 애들 모아서 곧장 황룡문으로 간다.”
진자강의 발길이 낙성로로 향했다. 낙성로는 황룡문이 자리한 곳.
바야흐로 광견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