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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24화)
第八章 광견 재림(2)


“황보용! 이 새끼가 아까 네 단전을 부수려고 했지?”
“네에… 두목님!”
“아까 진 빚 갚아 줘.”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이 새끼 단전을 산산이 깨부수라고.”
진자강이 친절하게 강사우의 상의를 위쪽으로 끌어 올려, 황보용 앞에 단전을 떡 하니 내보였다.
“이미 등뼈가 부서졌는데 굳이…….”
황보용은 단전을 부수라는 명령에 선뜻 주먹을 들지 못했다.
그는 뼛속까지 정통의 핏줄은 이은 황보세가의 무인이다.
황보세가는 오랫동안 정도의 길을 걸어온 명문이었고, 그의 마음속에도 세가에서 배웠던 협이 남아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이미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잃었는데, 단전까지 깨부수는 건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철썩―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자강이 갑자기 황보용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너, 이 새끼― 지금 네 눈엔 저기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형제들이 보이지 않는 거냐? 잘 봐라! 이 개새끼들 때문에 우리 형제들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런데 뭐! 굳이 단전을 부술 필요가 없어? 같잖은 정의감이 네 형제보다 중요하다면, 지금 당장 내 조직에서 꺼져! 나한테 강호 도의 따위보다 내 식구들의 안위가 우선이야!”
진자강은 싸늘하게 황보용을 내쳤다.
진짜 화가 많이 났는지, 황보용을 쏘아보는 그의 눈에는 진한 살광마저 내비쳤다.
그제야 황보용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두목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잘못을 벌하시겠다면 무엇이든 감내하겠지만, 자강파를 떠나라는 말씀만은 철회해 주십시오!”
“됐어! 너 같은 놈 필요 없어!”
진자강은 좀처럼 화를 삭히지 못했다.
황보용이 몇 번이고 바닥에 이마를 박으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싸늘한 몇 마디 말뿐이었다.
“두목님, 형님을 용서해 주십시오.”
“너희들…….”
진자강의 눈가에 이채가 떠올랐다.
황보용을 내치려는데, 뜻밖에도 십객이 아닌 자강파의 기존 조직원들이 황보용을 위해 무릎을 꿇은 것이다.
“황보 형님은 평소 저희들을 친형제처럼 살갑게 대해 주셨습니다. 황보 형님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나,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쳇!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거야. 황보용! 이번 한 번은 용서해 주마. 하지만 다시 또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면 그땐 네놈의 혓바닥을 그 자리에서 뽑아 버릴 줄 알아.”
진자강은 화끈하게 황보용을 용서했다.
“역시 두목님답습니다!”
“두목님이 최곱니다!”
“이놈들아, 지금 그런 한가한 소리 할 때냐? 남은 놈들 빨리 정리해! 난 홍아루로 들어간다!”
진자강은 조직원들에게 퉁명스런 말투로 뒤처리 명령을 내린 후, 곧장 홍아루 안으로 들어갔다.
“대형, 같이 가요!”
그가 움직이자 뒤늦게 도착해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있던 강천호도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크악―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사우를 비롯한 황룡문의 무사들이 외마디 비명을 질러 댔다. 손쓰기를 망설이던 황보용이 그들의 단전을 깨부순 것이다.

***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정문이 뚫렸습니다!”
“이런 한심한… 대체 황룡문 놈들은 뭘 하고 있었던 말이냐?”
“그게 모두 자강파의 두목에게 당했습니다.”
“쯧쯧쯧. 하긴 기대한 내가 바보지. 이왕이면 쓸 만한 놈들로 보내 주지 그런 허접한 놈들을 보내 주다니. 놈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빨리 창밖으로 신호탄을 날려라.”
“넷―”
모진국의 명령에 그의 뒤에 서 있던 수하 하나가 부리나케 창가로 달려갔다.
펑펑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신호탄이 피어올랐다.
붉은 불꽃과 함께 흰 연기가 홍아루 주변으로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흐흐흐, 진자강! 네놈이 제 잘난 맛에 날뛰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넌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퍼져 가는 연기를 보면서 모진국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모진국―”
바로 그때.
위층으로 진자강의 신형이 떠올랐다.
급한 마음에 내력을 전력으로 쏟아 부어 단박에 계단을 타고 오른 것이다.
“드디어 도착하셨군.”
모진국은 진자강의 등장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진자강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까지 했다.
그에 반해 진자강의 얼굴은 흉신악살의 그것처럼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온몸에 피갑칠을 한 채 한쪽에 처박혀 있는 마강혁을 발견한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새끼! 감히 내가 없는 틈을 타서 기습 공격을 해 와?”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이 바닥의 진리 아닌가.”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여 대는구나!”
“지껄일 만하니까 지껄이는 거다. 이미 너와 나의 승부는 내 승리로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 무슨 개소리냐? 네놈이 데려온 떨거지들은 이미 우리 애들한테 제압당한 지 오래다.”
이유 모를 모진국의 자신감에 진자강은 기가 찼다.
이미 밖은 자강파가 완전히 우세를 점한 상황이다.
곤룡회의 남은 인원이라고 해 봐야, 모진국과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열 명도 안 되는 떨거지가 전부였다.
“후후, 그 녀석들은 이번 거사를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네놈을 옭아맬 진짜 덫은 곧 이곳에 나타날 것이다.”
‘저놈이 대체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지? 아까 봤던 그 무사 놈들은 이미 내가 제압을 다 했는데.’
진자강은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꼈다.
당장의 상황만 놓고 보면 분명 자강파의 승리가 확실한데, 모진국의 미소가 자꾸만 맘에 걸렸다.
뿌우웅 뿌우웅―
그런데 바로 그때, 진자강의 귓전으로 반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관군들이 사용하는 뿔소린데.’
진자강이 황급히 창가 쪽으로 달려갔다.
짐작대로 홍아루 앞으로 관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낙양 일대에 흩어져 있던 모든 관군들을 이곳을 집결시켰는지 관군의 꼬리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죄인들은 포박을 받아라!”
관군들이 자강파의 조직원들을 둘러쌌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죄인들을 사로잡을 때 사용하는 포승줄이 들려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 일은 관군이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내력을 회복한 황보용이 대표로 관군들 앞에 나섰다.
자강파의 조직원들은 그를 중심으로 대열을 갖춰 섰다.
“너희 자강파는 도를 넘어서는 폭력을 자행했다. 이번 싸움의 시작이 너희 조직의 두목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사과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싸움을 부풀렸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이 있거든 관부에 가서 얘기해라. 만약 체포에 불응할시 너희 모두를 중죄인으로 치부하고 엄히 벌할 것이다!”
‘이런… 당했다.’
황보용은 그제야 이 모든 일이 철저하게 모진국의 계획하에 이뤄진 일임을 깨달았다.
뒷골목의 오랜 전통을 깨면서까지 무리한 싸움을 걸어온 곤룡회의 의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관군들이 들이닥치고 보니 이해가 되지 않던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딱딱 들어맞았다.
‘관군에 저항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아니, 오히려 모진국은 그걸 더 노릴 거야.’
“모두 관군의 지시에 따라라.”
황보용은 관군에 대한 저항을 포기했다. 싸워 봐야 얻을 게 없는 싸움이었다.
“모두 포박해라!”
관군들이 자강파의 조직원들에게 달려들어 포승줄을 걸었다.
황보용이 명을 내린 터라, 조직원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관군들에게 몸을 내줬다.
“곽 대인 납신다! 모두 길을 비켜라!”
관군들 사이로 낙양 관부의 총책임자인 지부대인 곽위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장 출신답게 탄탄한 체구와 더불어 강인한 인상이 돋보였다.
“홍아루에 자강파의 수괴가 있다고 들었다. 포두들은 나를 따라 홍아루로 간다.”
“존명!”
곽위천을 필두로 한 관부의 핵심 인사들이 홍아루로 들어섰다.

“이 개새끼, 어디서 수작질이야!”
퍽퍽퍽―
진자강의 주먹이 모진국의 면상에 연달아 꽂힌다.
곽위천이 등장하는 걸 보고 한껏 들떠 있던 모진국의 얼굴은 참혹한 몰골로 변했다.
“커, 커헉! 이, 이러고도 네, 네놈이 무사할 줄 아느냐!”
“그건 네놈이 걱정할 게 못돼. 관군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네놈을 아작 내면 그만이니까.”
진자강은 쉴 새 없이 모진국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모진국은 마강혁을 괴롭힐 때 사용했던 철권을 진자강을 상대로도 사용했지만, 진자강의 주먹은 그런 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 내가 다치면 네, 네놈도 겨, 결코 무사하지 못한다.”
“오지랖 넓게 내 걱정할 필요 없어. 기왕지사 일이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감옥에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
진자강은 모진국의 협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모진국의 몸을 자근자근 밟았다.
다시는 이 바닥에서 재기할 수 없도록 그는 두 손과 두 발을 집중적으로 깨부셨다.
손발이 깨질 때마다 모진국의 입에서 차마 들을 수 없는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진자강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사, 살려 주, 주십시오…….”
상황이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자, 모진국은 필사적으로 진자강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이 미친놈이 자길 죽일 것 같다는 극도의 공포심이 든 것이다.
“이미 늦었어. 네놈이 강혁이를 저 꼴로 만들고도 무사하길 바라면 안 되지.”
크아악―
진자강이 대놓고 갈비뼈를 으스러뜨렸다.
생살도 아니고, 생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진자강, 그 손 멈춰라!”
모진국이 고통에 힘겨워 기절하려는 찰나, 위층으로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곽위천이 올라왔다.
곽위천은 무장 특유의 투기를 발산하며, 진자강을 사납게 노려봤다.
“이런, 귀하신 분께서 이 누추한 곳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진자강은 그제야 모진국에게서 손을 뗐다.
“진자강, 네놈의 죄를 알고서도 지금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이냐?”
“저의 죄라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이놈이?”
곽위천은 진자강의 뻔뻔한 태도에 열이 받았다.
낙양 바닥에서 최고의 권력자라 불리는 자신이다. 한데, 진자강은 자신을 앞에 두고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용 포쾌! 놈의 죄를 낱낱이 읊어라.”
“넷, 지부대인!”
용 포쾌란 불린 자가 곽위천의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이 싸움이 벌어지게 된 계기와 그간에 진자강이 저질러온 여러 불법 행위들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들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죄목들이었지만, 그 죄 자체는 분명 국법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곽위천이 그 죄목들을 물고 늘어진다면, 진자강으로서도 달리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진자강! 이제는 네 죄를 인정하느냐?”
용 포쾌가 죄상을 모두 읊고 나자, 곽위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아예 작정하고 오셨군요. 좋습니다. 그렇게 절 잡아가길 원하신다면 잡혀 드리죠. 뭐 오랜만에 뇌옥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곽위천의 생각과 달리 진자강은 태연하게 앞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알아서 포박하라는 의미였다.
‘빌어먹을 놈!’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풀렸건만 곽위천의 얼굴은 사납게 구겨졌다. 진자강이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을 상상했건만 지금의 모습은 너무 태평하지 않은가.
“포박해라!”
곽위천은 진자강을 사납게 노려보며 명을 내렸다.
그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포쾌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와 진자강의 몸을 묶었다.
진자강은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웃으면서 그들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왜 저놈이 낙양 뒷골목에서 광견이라 불리는지 잘 알겠군. 하지만, 네놈이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관부에 끌려가는 순간, 광견이란 네놈의 명성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포쾌들에게 이끌려 아래로 내려가는 진자강의 뒷모습을 보면서 곽위천을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