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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나라의 하인 1화
0. 운명으로부터 (1)
“데려다준다니까.”
“엄마, 저 군대 가는 거 아니거든요? 무슨 배웅이에요. 학교 가는 건데.”
아침밥을 먹을 때도 연호의 모친은 모든 엄마들이 그러듯 학교까지 데려다준다고 했고, 연호는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으면서도 거절 중이었다. 괜한 유난이라며 고개까지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수능인데.”
“그래 봐야 시험인데요, 뭘. 알잖아요, 나 엄마 닮아서 똑똑한 거.”
연호가 배시시 웃는다. 천진난만한 미소였다. 수능이라고 해도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저번 달 모의고사에서도 국립대 정도는 무리 없이 들어갈 성적이었다. 저번 달만이 아니라 여태까지 연호는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학교 시험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꼭 들었다. 흔히 꼴불견이라는 ‘교과서 보고 공부했어요’, ‘공부가 재미있어요’가 바로 연호였다. 물론 정말 교과서만 보고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는 맞는 말이었다.
“걱정 마요. 버스도 확인했고, 시간도 넉넉해요. 아빠 닮아서 길눈도 엄청 밝잖아요. 몇 번이나 답사 갔고.”
연호는 현관문까지 쫓아 나온 모친의 등을 집안으로 떠밀었다.
“오히려 나보다 엄마가 늦겠어요.”
모친은 그래서 그쯤에서 배웅을 갈무리했다.
“수험표 챙겼지? 미끄러운 거 밟지도, 떨어지는 물건 보지도 말고. 평소 하던 대로. 긴장하지 말고.”
긴장은 엄마가 더한 것 같은데. 실없는 농담까지 던지고 나서야 연호가 현관문을 닫았다. 매년 수능 날만 되면 추워진다더니 올해도 무서운 추위였다. 목도리를 코까지 잡아당기느라 잠깐 드러난 손조차 시리다.
‘으, 장갑도 가지고 올걸.’
뒤늦은 아쉬움에 연호는 차가워진 양손을 비볐다. 열기가 더해진 손을 재빨리 호주머니에 넣으며 집 앞 사거리를 지나갔다.
“수능 치러 가니?”
슈퍼 아주머니가 장사 준비를 하다 말고 연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연호가 단골처럼 드나들던 슈퍼였다. 연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자, 아주머니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게에서 2000원짜리 초콜릿을 가지고 나왔다.
“시험 잘 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연호가 목도리를 끌어 내리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때쯤 연호가 내려온 좁은 골목길 사이로 1톤 트럭이 내려오고 있었다. 차는 자꾸만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래, 어서 가.”
“네. 수고하세요.”
인자하게 웃음을 보인 아주머니가 다시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연호도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하지만 몇 발자국도 채 떼지 못하고 연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불안하게 내려오고 있던 트럭이 연호를 쳐 버린 것이다.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트럭과 충돌한 연호의 몸이 하늘로 붕 뜨는가 싶더니 바닥과 마찰하며 붉디붉은 피가 흘렀다. 뒤늦게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괴성에 아주머니가 쫓아 나왔다.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골목길 한가운데에서 사이렌처럼 울렸다.
그리고 연호는 그때까지도 초콜릿 생각뿐이었다.
‘헤헤. 횡재했네. 가는 길에 먹어야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연호는 오로지 그게 전부였다. 남들은 다 겪는다던 주마등조차 없었다. 그래서 연호는 사람들이 그날, 그 사고에 대해 물어볼 때면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하곤 했다.
“남들은 죽기 전에 막 여태 살았던 과거가 다 보인다고 하잖아. 근데 나는 아니었거든. 죽을 팔자가 아니었나 봐.”
늘 이렇게 천진난만한 척 대꾸하고는 했지만 사실, 연호는 언제나 같은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차라리 그때에 짧은 19년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후회하고, 감회에 젖고, 아쉬워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고.
불효막심하다고, 호래자식이라고 할지언정 연호는 항상 그때를 떠올리며 죽음을 놓지 못했다. 3년하고도 9개월이 지난 지금도.
***
“비…….”
부모님이 없는 틈을 타 조심스레 외출에 나섰던 연호는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예고에도 없던 이슬비 탓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사람들이 줄지어 편의점 안으로 몰려들었다. 편의점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던 연호는 인파에 밀려 자신도 모르는 구석진 곳으로 내몰렸다. 천막이 설치되어 있던 탓에 비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순식간에 변해 버린 지표는 연호를 표류하게 만들었다.
마른하늘은 아니었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나. 불안함에 심장이 사정없이 요동쳤다. 열아홉에 일어난 사고는 연호에게서 시력을 빼앗았다. 오색찬란했던 세계가 죽어 버렸다. 오로지 흑 빛이었다. 아니, 흑 빛도 아니다. 빛이라고 부르기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밝고 영롱했다.
암흑, 흑, 흑색, 밤…….
어느 것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연호가 아는 단어 안에서는 자신에게 닥친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리 바닥을 보고 있던 연호는 찰나의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를 감지한 것이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뿌옇게 도시 사이를 점령했다. 비의 습하고 비릿한 냄새가 짙어졌다.
종소리에서 북소리로 바뀌어 버린 빗소리를 들으며 연호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고가 빼앗아 간 것은 비단 시력만이 아니었다. 연호를 하염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 또는 민폐덩어리.
“후…….”
3년 전 원래 살던 동네를 떠나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온 연호였다. 2년의 방황 끝에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밖으로 나왔다. 부모님의 권유에 자원봉사자를 만났고 그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공감대도 형성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마음이 위로되거나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싫었다.
연호는 아직까지도 아침이 되면 눈을 뜨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안 보이게 되었으니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떠질 수도 있다는 망상.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그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겨우 그 생각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완전한 포기는 아니지만 불가능한 희망을 아등바등 손에 쥐고 있지 않게 되었다.
『너는 내 취향저격 내 취향저격
말하지 않아도 느낌이…….』
때마침 울린 요란한 벨소리에 연호가 몸을 떨었다.
자신의 벨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철 지난 자신의 벨소리가 울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연호는 골칫거리인 이 비가 싫었다. 집에 가는 길이 험난해지는 데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여동생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 그 전에 먼저 전화가 오는 게 빠를까…….
후에 벌어질 일들을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연호가 손에 쥔 지팡이를 동아줄처럼 꼭 거머쥐었다.
외출 시에 연호가 의지할 수 있는 건 흰 지팡이와 예민한 청각뿐이었다. 청각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던 연호는 사고가 나고 나서야 소리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그게 얼마나 예민한 감각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박적으로 청각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우산을 펼치는 소리, 물에 젖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편의점 문에 달린 종소리 등 온갖 소리를 들으려 했다. 이렇게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소란한 낮보다는 조용한 밤이 더 좋았고 다칠 확률도 더 적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상황이 180도 바뀌어 버린다. 빗소리로 인해 평소 듣던 소리가 묻히거나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평소보다 배로 집중을 해야 했고, 그래서 신경이 배로 날카로워지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관자놀이에 찌릿하니 통증이 올라왔다. 비 오는 날에만 찾아오는 손님이다.
편의점에 가서 과자 하나를 사고 집에 오는 그 과정이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더욱 험난할 것이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을 나설 때의 모험심과 호기로움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한때, 호기심이 가득했던 연호에게 더없이 두려운 일이었다.
***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고, 멀끔한 형체에 미남에 가까운 남자가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유리 테이블을 향해 양다리를 뻗고 있던 남수가 그의 등장에 허겁지겁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곤 다소 당황한 얼굴로 남자를 향해 웃어 보인다.
“하하, 형님. 퇴근 안 하셨습니까?”
푼수처럼 웃어 보인 남수는 누가 봐도 조폭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얼굴에 덩치조차 굵직굵직했다. 오른쪽 눈썹에서부터 이마까지 찢어진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였다.
반면 형님이라 불린 남자는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에 깔끔하다 못해 곱상했다. 잘 다듬어진 눈썹에, 또렷한 이목구비 라인. 비율 좋게 다져진 훤칠한 신체는 영화에 나올 법할 정도로 근사했다. 하지만 실상 곱상하게 생긴 그의 지위가 남수보다 우위에 있었다.
남자는 서강파 부두목이었고, 남수는 그의 오른팔 격인 조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팔자 한번 좋네.”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스탠드 옷걸이를 향해 걸었다.
“에이, 팔자가 좋다니요. 이래 봬도 대기 중입니다.”
“무슨 소리야?”
“예?”
“대기라니. 무슨 소리냐고.”
남자가 갈색의 모직 재킷을 벗다 말고 되묻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남수였다. 굵직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9시에 남서파랑 마약 거래 있잖습니까.”
웬일로 까먹었냐며 남수가 말을 덧붙였다.
남자가 턱을 쓸어내리며 거래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못 들었는데. 누가 시켰어?”
“에이, 누구긴요. 두목님이죠.”
“형님이?”
“예, 중국 가시기 전에 주고 가셨습니다.”
금시초문이었다. 출국 때에도 별다른 언질이 없었다. 내가 바빴었나?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철로 된 책상에 앉은 그가 세 번째 서랍을 열어 노란색 파일을 꺼냈다.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마약 거래가 기록되어 있었다. 최근 6개월 사이에 기록된 마약 밀수, 밀매 거래는 국내든 국외든 몇 건 없었다.
정확히는 작년 10월부터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거래가 최근 들어서는 그 수가 한 달에 한 건도 되지 않았다. 마약 단속 기간이 아님에도 마약 단속이 심심찮게 이루어지고 있는 탓이 컸다. 경찰이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들에게 급습당한 조직이 여럿이었고, 그 때문에 다들 몸을 사리고 있었다.
서류를 덮으며,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장소가 어디야?”
사무실에서 나갈 준비를 하던 남자가 다시 물었다. 휴대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남수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얼마 전에 닫은 대진전당포 있지 않습니까. 거기 4층입니다.”
“허문다더니, 아직인갑지?”
“어떤 놈이 땡깡을 부려서 아직 못 했답니다.”
“그래?”
자기가 물어 놓고도 딱히 궁금한 얼굴이 아니었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큰둥하게 대꾸한 남자가 이내 남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신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져와.”
여전히 휴대폰에서 시선을 둔 채로 남수가 입을 뻥긋거렸다.
“뭘요?”
남자가 지긋이 남수를 응시했다. 곱상하게만 보이던 외모가 그 순간 위험한 범법자의 분위기를 풍겼다.
“얼른 안 갖고 오지?”
그제야 남수가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보더니 허겁지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제야 이해한 모양이었다.
“자, 잠깐만요. 형님.”
거꾸로 숫자를 세는 남자를 뒤로하고, 남수가 금고를 향해 뛰었다. 바삐 입력하여 금고 문을 열곤 금고 위에 포개어져 있던 자루를 아무렇게나 집어 들어 여섯 자루의 총기를 담는다.
거꾸로 세고 있던 숫자가 어느새 3을 지나고 있었다.
열린 금고를 닫지도 않고, 남수가 널찍한 사무실을 가로질러 양손을 곱게 내밀었다. 조금 전 자신의 건방졌던 행동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잘못했다간 저 총기의 사용처가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투박한 남자의 손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건을 채 갔다.
“퇴근해.”
“형님, 제가 가도…….”
“됐어.”
남자가 미련 없이 사무실 문을 닫고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진짜 가시려고요?”
닫힌 사무실 문을 다시 열어 젖힌 남수가 생기 없는 그의 등을 보며 물었다. 걸걸한 목소리가 쟁쟁하게 계단을 울렸다.
“두 번 묻지 마.”
합죽이가 된 남수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도 또다시 눈치 없이 나불거린다.
“차 키는요?”
필요 없다는 듯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구식이긴 해도 한 자루에 300만 원은 족히 되는 진짜 총이 남자의 머리 위에서 장난감 총처럼 나풀거렸다.
“꽤 먼데…….”
난처한 얼굴로 남수가 웅얼거렸다.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오늘 같은 친절은 처음이었다. 남자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남수를 응시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신경 끊으라는 시선이었다.
“신경 꺼.”
아니나 다를까 남자의 입에서 예의 그 말이 튀어나왔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신 남수가 ‘다녀오십쇼.’ 하고 목청껏 외쳤다. 그리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수가 불만스레 툴툴거렸다.
“……누가 총을 그렇게 들고 다닌답니까.”
***
낡은 건물 안을 비집고 들어간 그는 곧장 4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비상계단을 이용했다. 철거하기로 되어 있는 탓인지 계단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3층에서 깜빡깜빡 불이 빛나긴 했으나 그마저도 곧 꺼질 듯 불안했다.
빡빡한 비상구 문을 열자 기울어진 대진전당포의 현수막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거래 장소임을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 그가 오른손에 쥔 포대 자루를 왼손으로 옮겼다. 그러곤 쇠로 된 문손잡이를 돌린다. 어긋난 이음새에 불길한 소리가 났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내부는 바깥보다 더 짙은 어둠을 간직한 채였다.
캄캄한 그 곳을 향해 그가 발을 내딛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자국째, 난데없이 나타난 낯선 인형이 그를 덮쳤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피하긴 했지만 양쪽에서 달려드는 사내들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한쪽 무릎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누군가 옆구리를 눌렀다. 낯익은 감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어 잇새로 웃음이 터진다.
예상하고 있던 전개라서가 아니었다. 최근 들어 한가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무료했던 삶은 더욱 무료했고, 사는 데 1할의 경계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인은 예고편 없이 벌어지는 자극이 흥미로웠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간간히 빈틈을 보이는 편이었다. 마치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억지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머저리들.’
칼에 찔리고, 복부를 맞아 바닥에 엎드려지는 그 짧은 상황에서도 그는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몇 명의 사내들과 오른쪽 옆구리를 찌르던 남자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 그 모습이 망설임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그 망설임이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확신했다.
사내들 중 한 사람이 그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건물 안쪽으로 끌려가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주변 분위기와 자신의 배에 칼을 꽂은 이를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두운 건물 안에서 사내의 얼굴을 알기란 어려웠고, 그는 그것이 아쉬웠다. 또한…….
‘깊게, 힘껏 비틀어 찔렀어야지.’
자신이 죽음의 문턱은커녕 그 근방에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도.
“얼른 찾아! 그 새끼 찾으라고! 못 찾으면 전부 뒈질 줄 알아!!”
건물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하인이 입술을 비틀었다. 그리고 이내 입술 사이로 웃음을 머금은 가파른 숨소리가 터졌다. 이런 일은 계획에 없었던 듯 조잡하게 건물 곳곳을 쏘다니는 그들의 모양새가 우스웠다. 소란스럽기는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초조한 그들의 발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입에 물었다. 캐비닛과 뜯긴 건물 자재들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는 처음 사무실을 나올 때처럼 깔끔하진 않았다. 이마 한가운데 붉게 솟은 멍과 터진 입술, 옷 여기저기에 뭍은 먼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담뱃대에 불을 붙이려던 그는 이내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었다. 핫바지 새끼들이라고 해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썩 보기 좋은 꼴은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이렇게 된 연유를 되새겼다. 담배꽁초를 이로 씹으며 자신의 처지를 곱씹고 또 곱씹었고, 그러다 몇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속았을 것이라는 추론이었다. 거래를 하러 나온 저놈들도 남서파 조직의 일원이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심증도 물증도 너무 희박하기만 했다. 남서파를 사칭해서 계획을 세울 인간이 이렇게 허술하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너무 어설프잖아.’
생각을 달리한 그가 남서파 조직을 떠올렸다.
예전엔 이류였지만 지금은 삼류를 넘어 와해된 거나 진배없는 아무개 조직이었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두목은 감방에 있고, 조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물론 아직까지 조직의 이름과 소수의 조직원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그들에게서 빼앗은 물건을 매만졌다. 거래 조건인 마약도, 총기도 빼앗긴 채였지만 손에 들어온 정체불명의 물건 탓에 생각만큼 기분이 좆같지 않았다.
그는 냉정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들은 누구이며, 이 거래에 무슨 이물질이 낀 것인지, 또한 도망칠 때 아무 생각 없이 갈취해 온 이 열쇠의 용도가 무엇인지. 그들이 건물을 쥐 잡듯 뒤지면서 자신과 함께 열쇠를 번번이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요한 물건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자신을 찌른 새끼였다.
‘받은 만큼 갚아 줘야지.’
아무도 없는 빈 건물에서 하인이 작게 낄낄거렸다. 그러고는 건물을 올라올 때에 보았던 또 다른 비상구로 이동했다. 4층에선 단단히 잠겨 있었는데 5층 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손잡이도 없어서 발끝으로 미는 것만으로도 문을 열 수 있었다.
밀폐된 건물 안의 퀴퀴한 공기를 밀어 내고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아니, 상쾌한 비바람이었다. 비바람이 세차게 그의 얼굴을 적시며 낡은 건물을 탕탕 울려 댔다.
“좆같은 타이밍이군.”
먹구름이 자욱한 하늘을 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나올 때만 해도 맑은 날씨였는데. 아쉬운 듯 혀를 찬 그는 바깥 외벽에 만들어진 낡은 철제 계단 위로 몸을 실었다.
‘끼에에-’ 하고 우는 소리가 마치 짐승의 포효와도 같았다.
발바닥에 힘을 실어 흔들자 불길한 울음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낡아도 한참은 낡은 건물을 떠올리자, 일자로 뻗어 있던 눈썹이 크게 휘어졌다.
그가 혀를 차며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까마득한 높이였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죽지는 않겠네.”
그는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죽어도 할 수 없고. 운수가 존나게 없던 탓인 거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이 죽을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저 여느 날처럼 똑같을 거 같은 기분이었다.
칠이 다 벗겨진 손잡이를 잡으며, 그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마다 계단이 차츰차츰 아래로 꺼지며 건물의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어쩌면 그가 땅을 디디는 것보다 계단이 무너져 도착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땅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계단이 괴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결국 계단의 일부와 함께 그가 아래로 떨어졌다.
쩌렁쩌렁하고 요란하게 울려 퍼진 소리에 두 명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곤 큰 소리로 외쳤다.
“밖에 있잖아!! 얼른 내려가!!”
하인은 무너진 철제 위에 누워 하늘을 응시했다. 잠깐 귀찮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두더지 놀이라도 하듯 쏙 하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길 반복하는 그들의 머리를 지켜보던 그가 한 박자 숨을 고르며 일어났다. 하지만 금세 허리가 고꾸라졌다. 입술 사이로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렀고 등에선 빗물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다.
하인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셔츠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진득한 핏물을 헤집고 상처의 깊이와 길이를 가늠한다.
“씨발…….”
한껏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손바닥 전체가 새빨간 핏물이었고, 어느새 셔츠마저 붉게 배어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물건을 지갑 속에 단단히 박아 넣었다. 한순간에 짜증이 솟구쳤다. 웃으면서 재수가 없군, 하고 외치던 게 진심이 된 것이다.
그가 흐트러진 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구겨진 재킷을 털고 자못 여유로운 사람처럼 머리카락도 매만진다. 그 뒤 굽이진 골목길로 향했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건물 입구를 응시했다.
‘어떻게 할까…….’
복수가 불가피했다. 문제는 그들의 얼굴을 모르는 데에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쓸어 넘기며 지금 도망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하인은 이내 악동처럼 웃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그 웃음의 끝자락에 그들이 있었다. 건물에서 더 이상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하인이 가로등 아래로 이동했다. 그러곤 그들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눈이 마주치면 다시 뛰었고, 그렇게 사거리 골목길에서 다시 멈춰 선 하인이 한 번 더 그들을 확인했다.
그들이 가로등 아래를 지나쳐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점을 찍듯 하나하나 그들의 얼굴을 본 하인은 이내 뒤도 보지 않고 달렸다.
0. 운명으로부터 (1)
“데려다준다니까.”
“엄마, 저 군대 가는 거 아니거든요? 무슨 배웅이에요. 학교 가는 건데.”
아침밥을 먹을 때도 연호의 모친은 모든 엄마들이 그러듯 학교까지 데려다준다고 했고, 연호는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으면서도 거절 중이었다. 괜한 유난이라며 고개까지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수능인데.”
“그래 봐야 시험인데요, 뭘. 알잖아요, 나 엄마 닮아서 똑똑한 거.”
연호가 배시시 웃는다. 천진난만한 미소였다. 수능이라고 해도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저번 달 모의고사에서도 국립대 정도는 무리 없이 들어갈 성적이었다. 저번 달만이 아니라 여태까지 연호는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학교 시험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꼭 들었다. 흔히 꼴불견이라는 ‘교과서 보고 공부했어요’, ‘공부가 재미있어요’가 바로 연호였다. 물론 정말 교과서만 보고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는 맞는 말이었다.
“걱정 마요. 버스도 확인했고, 시간도 넉넉해요. 아빠 닮아서 길눈도 엄청 밝잖아요. 몇 번이나 답사 갔고.”
연호는 현관문까지 쫓아 나온 모친의 등을 집안으로 떠밀었다.
“오히려 나보다 엄마가 늦겠어요.”
모친은 그래서 그쯤에서 배웅을 갈무리했다.
“수험표 챙겼지? 미끄러운 거 밟지도, 떨어지는 물건 보지도 말고. 평소 하던 대로. 긴장하지 말고.”
긴장은 엄마가 더한 것 같은데. 실없는 농담까지 던지고 나서야 연호가 현관문을 닫았다. 매년 수능 날만 되면 추워진다더니 올해도 무서운 추위였다. 목도리를 코까지 잡아당기느라 잠깐 드러난 손조차 시리다.
‘으, 장갑도 가지고 올걸.’
뒤늦은 아쉬움에 연호는 차가워진 양손을 비볐다. 열기가 더해진 손을 재빨리 호주머니에 넣으며 집 앞 사거리를 지나갔다.
“수능 치러 가니?”
슈퍼 아주머니가 장사 준비를 하다 말고 연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연호가 단골처럼 드나들던 슈퍼였다. 연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자, 아주머니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게에서 2000원짜리 초콜릿을 가지고 나왔다.
“시험 잘 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연호가 목도리를 끌어 내리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때쯤 연호가 내려온 좁은 골목길 사이로 1톤 트럭이 내려오고 있었다. 차는 자꾸만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래, 어서 가.”
“네. 수고하세요.”
인자하게 웃음을 보인 아주머니가 다시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연호도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하지만 몇 발자국도 채 떼지 못하고 연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불안하게 내려오고 있던 트럭이 연호를 쳐 버린 것이다.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트럭과 충돌한 연호의 몸이 하늘로 붕 뜨는가 싶더니 바닥과 마찰하며 붉디붉은 피가 흘렀다. 뒤늦게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괴성에 아주머니가 쫓아 나왔다.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골목길 한가운데에서 사이렌처럼 울렸다.
그리고 연호는 그때까지도 초콜릿 생각뿐이었다.
‘헤헤. 횡재했네. 가는 길에 먹어야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연호는 오로지 그게 전부였다. 남들은 다 겪는다던 주마등조차 없었다. 그래서 연호는 사람들이 그날, 그 사고에 대해 물어볼 때면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하곤 했다.
“남들은 죽기 전에 막 여태 살았던 과거가 다 보인다고 하잖아. 근데 나는 아니었거든. 죽을 팔자가 아니었나 봐.”
늘 이렇게 천진난만한 척 대꾸하고는 했지만 사실, 연호는 언제나 같은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차라리 그때에 짧은 19년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후회하고, 감회에 젖고, 아쉬워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고.
불효막심하다고, 호래자식이라고 할지언정 연호는 항상 그때를 떠올리며 죽음을 놓지 못했다. 3년하고도 9개월이 지난 지금도.
“비…….”
부모님이 없는 틈을 타 조심스레 외출에 나섰던 연호는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예고에도 없던 이슬비 탓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사람들이 줄지어 편의점 안으로 몰려들었다. 편의점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던 연호는 인파에 밀려 자신도 모르는 구석진 곳으로 내몰렸다. 천막이 설치되어 있던 탓에 비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순식간에 변해 버린 지표는 연호를 표류하게 만들었다.
마른하늘은 아니었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나. 불안함에 심장이 사정없이 요동쳤다. 열아홉에 일어난 사고는 연호에게서 시력을 빼앗았다. 오색찬란했던 세계가 죽어 버렸다. 오로지 흑 빛이었다. 아니, 흑 빛도 아니다. 빛이라고 부르기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밝고 영롱했다.
암흑, 흑, 흑색, 밤…….
어느 것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연호가 아는 단어 안에서는 자신에게 닥친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리 바닥을 보고 있던 연호는 찰나의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를 감지한 것이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뿌옇게 도시 사이를 점령했다. 비의 습하고 비릿한 냄새가 짙어졌다.
종소리에서 북소리로 바뀌어 버린 빗소리를 들으며 연호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고가 빼앗아 간 것은 비단 시력만이 아니었다. 연호를 하염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 또는 민폐덩어리.
“후…….”
3년 전 원래 살던 동네를 떠나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온 연호였다. 2년의 방황 끝에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밖으로 나왔다. 부모님의 권유에 자원봉사자를 만났고 그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공감대도 형성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마음이 위로되거나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싫었다.
연호는 아직까지도 아침이 되면 눈을 뜨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안 보이게 되었으니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떠질 수도 있다는 망상.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그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겨우 그 생각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완전한 포기는 아니지만 불가능한 희망을 아등바등 손에 쥐고 있지 않게 되었다.
『너는 내 취향저격 내 취향저격
말하지 않아도 느낌이…….』
때마침 울린 요란한 벨소리에 연호가 몸을 떨었다.
자신의 벨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철 지난 자신의 벨소리가 울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연호는 골칫거리인 이 비가 싫었다. 집에 가는 길이 험난해지는 데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여동생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 그 전에 먼저 전화가 오는 게 빠를까…….
후에 벌어질 일들을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연호가 손에 쥔 지팡이를 동아줄처럼 꼭 거머쥐었다.
외출 시에 연호가 의지할 수 있는 건 흰 지팡이와 예민한 청각뿐이었다. 청각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던 연호는 사고가 나고 나서야 소리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그게 얼마나 예민한 감각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박적으로 청각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우산을 펼치는 소리, 물에 젖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편의점 문에 달린 종소리 등 온갖 소리를 들으려 했다. 이렇게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소란한 낮보다는 조용한 밤이 더 좋았고 다칠 확률도 더 적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상황이 180도 바뀌어 버린다. 빗소리로 인해 평소 듣던 소리가 묻히거나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평소보다 배로 집중을 해야 했고, 그래서 신경이 배로 날카로워지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관자놀이에 찌릿하니 통증이 올라왔다. 비 오는 날에만 찾아오는 손님이다.
편의점에 가서 과자 하나를 사고 집에 오는 그 과정이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더욱 험난할 것이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을 나설 때의 모험심과 호기로움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한때, 호기심이 가득했던 연호에게 더없이 두려운 일이었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고, 멀끔한 형체에 미남에 가까운 남자가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유리 테이블을 향해 양다리를 뻗고 있던 남수가 그의 등장에 허겁지겁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곤 다소 당황한 얼굴로 남자를 향해 웃어 보인다.
“하하, 형님. 퇴근 안 하셨습니까?”
푼수처럼 웃어 보인 남수는 누가 봐도 조폭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얼굴에 덩치조차 굵직굵직했다. 오른쪽 눈썹에서부터 이마까지 찢어진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였다.
반면 형님이라 불린 남자는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에 깔끔하다 못해 곱상했다. 잘 다듬어진 눈썹에, 또렷한 이목구비 라인. 비율 좋게 다져진 훤칠한 신체는 영화에 나올 법할 정도로 근사했다. 하지만 실상 곱상하게 생긴 그의 지위가 남수보다 우위에 있었다.
남자는 서강파 부두목이었고, 남수는 그의 오른팔 격인 조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팔자 한번 좋네.”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스탠드 옷걸이를 향해 걸었다.
“에이, 팔자가 좋다니요. 이래 봬도 대기 중입니다.”
“무슨 소리야?”
“예?”
“대기라니. 무슨 소리냐고.”
남자가 갈색의 모직 재킷을 벗다 말고 되묻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남수였다. 굵직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9시에 남서파랑 마약 거래 있잖습니까.”
웬일로 까먹었냐며 남수가 말을 덧붙였다.
남자가 턱을 쓸어내리며 거래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못 들었는데. 누가 시켰어?”
“에이, 누구긴요. 두목님이죠.”
“형님이?”
“예, 중국 가시기 전에 주고 가셨습니다.”
금시초문이었다. 출국 때에도 별다른 언질이 없었다. 내가 바빴었나?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철로 된 책상에 앉은 그가 세 번째 서랍을 열어 노란색 파일을 꺼냈다.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마약 거래가 기록되어 있었다. 최근 6개월 사이에 기록된 마약 밀수, 밀매 거래는 국내든 국외든 몇 건 없었다.
정확히는 작년 10월부터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거래가 최근 들어서는 그 수가 한 달에 한 건도 되지 않았다. 마약 단속 기간이 아님에도 마약 단속이 심심찮게 이루어지고 있는 탓이 컸다. 경찰이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들에게 급습당한 조직이 여럿이었고, 그 때문에 다들 몸을 사리고 있었다.
서류를 덮으며,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장소가 어디야?”
사무실에서 나갈 준비를 하던 남자가 다시 물었다. 휴대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남수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얼마 전에 닫은 대진전당포 있지 않습니까. 거기 4층입니다.”
“허문다더니, 아직인갑지?”
“어떤 놈이 땡깡을 부려서 아직 못 했답니다.”
“그래?”
자기가 물어 놓고도 딱히 궁금한 얼굴이 아니었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큰둥하게 대꾸한 남자가 이내 남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신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져와.”
여전히 휴대폰에서 시선을 둔 채로 남수가 입을 뻥긋거렸다.
“뭘요?”
남자가 지긋이 남수를 응시했다. 곱상하게만 보이던 외모가 그 순간 위험한 범법자의 분위기를 풍겼다.
“얼른 안 갖고 오지?”
그제야 남수가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보더니 허겁지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제야 이해한 모양이었다.
“자, 잠깐만요. 형님.”
거꾸로 숫자를 세는 남자를 뒤로하고, 남수가 금고를 향해 뛰었다. 바삐 입력하여 금고 문을 열곤 금고 위에 포개어져 있던 자루를 아무렇게나 집어 들어 여섯 자루의 총기를 담는다.
거꾸로 세고 있던 숫자가 어느새 3을 지나고 있었다.
열린 금고를 닫지도 않고, 남수가 널찍한 사무실을 가로질러 양손을 곱게 내밀었다. 조금 전 자신의 건방졌던 행동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잘못했다간 저 총기의 사용처가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투박한 남자의 손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건을 채 갔다.
“퇴근해.”
“형님, 제가 가도…….”
“됐어.”
남자가 미련 없이 사무실 문을 닫고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진짜 가시려고요?”
닫힌 사무실 문을 다시 열어 젖힌 남수가 생기 없는 그의 등을 보며 물었다. 걸걸한 목소리가 쟁쟁하게 계단을 울렸다.
“두 번 묻지 마.”
합죽이가 된 남수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도 또다시 눈치 없이 나불거린다.
“차 키는요?”
필요 없다는 듯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구식이긴 해도 한 자루에 300만 원은 족히 되는 진짜 총이 남자의 머리 위에서 장난감 총처럼 나풀거렸다.
“꽤 먼데…….”
난처한 얼굴로 남수가 웅얼거렸다.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오늘 같은 친절은 처음이었다. 남자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남수를 응시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신경 끊으라는 시선이었다.
“신경 꺼.”
아니나 다를까 남자의 입에서 예의 그 말이 튀어나왔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신 남수가 ‘다녀오십쇼.’ 하고 목청껏 외쳤다. 그리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수가 불만스레 툴툴거렸다.
“……누가 총을 그렇게 들고 다닌답니까.”
낡은 건물 안을 비집고 들어간 그는 곧장 4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비상계단을 이용했다. 철거하기로 되어 있는 탓인지 계단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3층에서 깜빡깜빡 불이 빛나긴 했으나 그마저도 곧 꺼질 듯 불안했다.
빡빡한 비상구 문을 열자 기울어진 대진전당포의 현수막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거래 장소임을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 그가 오른손에 쥔 포대 자루를 왼손으로 옮겼다. 그러곤 쇠로 된 문손잡이를 돌린다. 어긋난 이음새에 불길한 소리가 났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내부는 바깥보다 더 짙은 어둠을 간직한 채였다.
캄캄한 그 곳을 향해 그가 발을 내딛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자국째, 난데없이 나타난 낯선 인형이 그를 덮쳤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피하긴 했지만 양쪽에서 달려드는 사내들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한쪽 무릎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누군가 옆구리를 눌렀다. 낯익은 감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어 잇새로 웃음이 터진다.
예상하고 있던 전개라서가 아니었다. 최근 들어 한가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무료했던 삶은 더욱 무료했고, 사는 데 1할의 경계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인은 예고편 없이 벌어지는 자극이 흥미로웠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간간히 빈틈을 보이는 편이었다. 마치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억지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머저리들.’
칼에 찔리고, 복부를 맞아 바닥에 엎드려지는 그 짧은 상황에서도 그는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몇 명의 사내들과 오른쪽 옆구리를 찌르던 남자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 그 모습이 망설임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그 망설임이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확신했다.
사내들 중 한 사람이 그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건물 안쪽으로 끌려가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주변 분위기와 자신의 배에 칼을 꽂은 이를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두운 건물 안에서 사내의 얼굴을 알기란 어려웠고, 그는 그것이 아쉬웠다. 또한…….
‘깊게, 힘껏 비틀어 찔렀어야지.’
자신이 죽음의 문턱은커녕 그 근방에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도.
“얼른 찾아! 그 새끼 찾으라고! 못 찾으면 전부 뒈질 줄 알아!!”
건물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하인이 입술을 비틀었다. 그리고 이내 입술 사이로 웃음을 머금은 가파른 숨소리가 터졌다. 이런 일은 계획에 없었던 듯 조잡하게 건물 곳곳을 쏘다니는 그들의 모양새가 우스웠다. 소란스럽기는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초조한 그들의 발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입에 물었다. 캐비닛과 뜯긴 건물 자재들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는 처음 사무실을 나올 때처럼 깔끔하진 않았다. 이마 한가운데 붉게 솟은 멍과 터진 입술, 옷 여기저기에 뭍은 먼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담뱃대에 불을 붙이려던 그는 이내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었다. 핫바지 새끼들이라고 해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썩 보기 좋은 꼴은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이렇게 된 연유를 되새겼다. 담배꽁초를 이로 씹으며 자신의 처지를 곱씹고 또 곱씹었고, 그러다 몇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속았을 것이라는 추론이었다. 거래를 하러 나온 저놈들도 남서파 조직의 일원이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심증도 물증도 너무 희박하기만 했다. 남서파를 사칭해서 계획을 세울 인간이 이렇게 허술하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너무 어설프잖아.’
생각을 달리한 그가 남서파 조직을 떠올렸다.
예전엔 이류였지만 지금은 삼류를 넘어 와해된 거나 진배없는 아무개 조직이었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두목은 감방에 있고, 조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물론 아직까지 조직의 이름과 소수의 조직원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그들에게서 빼앗은 물건을 매만졌다. 거래 조건인 마약도, 총기도 빼앗긴 채였지만 손에 들어온 정체불명의 물건 탓에 생각만큼 기분이 좆같지 않았다.
그는 냉정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들은 누구이며, 이 거래에 무슨 이물질이 낀 것인지, 또한 도망칠 때 아무 생각 없이 갈취해 온 이 열쇠의 용도가 무엇인지. 그들이 건물을 쥐 잡듯 뒤지면서 자신과 함께 열쇠를 번번이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요한 물건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자신을 찌른 새끼였다.
‘받은 만큼 갚아 줘야지.’
아무도 없는 빈 건물에서 하인이 작게 낄낄거렸다. 그러고는 건물을 올라올 때에 보았던 또 다른 비상구로 이동했다. 4층에선 단단히 잠겨 있었는데 5층 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손잡이도 없어서 발끝으로 미는 것만으로도 문을 열 수 있었다.
밀폐된 건물 안의 퀴퀴한 공기를 밀어 내고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아니, 상쾌한 비바람이었다. 비바람이 세차게 그의 얼굴을 적시며 낡은 건물을 탕탕 울려 댔다.
“좆같은 타이밍이군.”
먹구름이 자욱한 하늘을 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나올 때만 해도 맑은 날씨였는데. 아쉬운 듯 혀를 찬 그는 바깥 외벽에 만들어진 낡은 철제 계단 위로 몸을 실었다.
‘끼에에-’ 하고 우는 소리가 마치 짐승의 포효와도 같았다.
발바닥에 힘을 실어 흔들자 불길한 울음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낡아도 한참은 낡은 건물을 떠올리자, 일자로 뻗어 있던 눈썹이 크게 휘어졌다.
그가 혀를 차며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까마득한 높이였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죽지는 않겠네.”
그는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죽어도 할 수 없고. 운수가 존나게 없던 탓인 거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이 죽을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저 여느 날처럼 똑같을 거 같은 기분이었다.
칠이 다 벗겨진 손잡이를 잡으며, 그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마다 계단이 차츰차츰 아래로 꺼지며 건물의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어쩌면 그가 땅을 디디는 것보다 계단이 무너져 도착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땅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계단이 괴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결국 계단의 일부와 함께 그가 아래로 떨어졌다.
쩌렁쩌렁하고 요란하게 울려 퍼진 소리에 두 명의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곤 큰 소리로 외쳤다.
“밖에 있잖아!! 얼른 내려가!!”
하인은 무너진 철제 위에 누워 하늘을 응시했다. 잠깐 귀찮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두더지 놀이라도 하듯 쏙 하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길 반복하는 그들의 머리를 지켜보던 그가 한 박자 숨을 고르며 일어났다. 하지만 금세 허리가 고꾸라졌다. 입술 사이로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렀고 등에선 빗물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다.
하인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셔츠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진득한 핏물을 헤집고 상처의 깊이와 길이를 가늠한다.
“씨발…….”
한껏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손바닥 전체가 새빨간 핏물이었고, 어느새 셔츠마저 붉게 배어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물건을 지갑 속에 단단히 박아 넣었다. 한순간에 짜증이 솟구쳤다. 웃으면서 재수가 없군, 하고 외치던 게 진심이 된 것이다.
그가 흐트러진 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구겨진 재킷을 털고 자못 여유로운 사람처럼 머리카락도 매만진다. 그 뒤 굽이진 골목길로 향했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건물 입구를 응시했다.
‘어떻게 할까…….’
복수가 불가피했다. 문제는 그들의 얼굴을 모르는 데에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쓸어 넘기며 지금 도망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하인은 이내 악동처럼 웃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그 웃음의 끝자락에 그들이 있었다. 건물에서 더 이상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하인이 가로등 아래로 이동했다. 그러곤 그들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눈이 마주치면 다시 뛰었고, 그렇게 사거리 골목길에서 다시 멈춰 선 하인이 한 번 더 그들을 확인했다.
그들이 가로등 아래를 지나쳐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점을 찍듯 하나하나 그들의 얼굴을 본 하인은 이내 뒤도 보지 않고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