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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나라의 하인 4화
1. 별이 있었다. (2)
부산스런 외부 소리가 줄어든다 싶더니 이내 노랫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소리도, 누군가의 말소리도, 심지어 진우의 숨소리조차 순식간에 사라지자 연호가 진우의 옷깃을 꽉 쥐었다.
“괜찮아?”
진우가 물었다. 하지만 정신없는 사운드 탓에 연호는 진우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냥 손이 떨려서 양쪽 눈을 꼭 감은 채 진우를 따라 움직였다.
“약속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와?”
진우와 연호가 나타나자 서범이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약속 시간보다 15분이나 늦었기 때문이었다.
“미안. 차가 좀 막혔어.”
진우가 나서서 사과했지만 유난히 까칠한 목소리가 거듭 들렸다.
“일찍 일찍 좀 다녀.”
연호는 서범의 목소리가 괜히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들은 진우와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는데, 한때는 함께 여행도 가고 공부도 하며 나름 돈독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러했듯 사고 이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연락이 뚝 끊어지지 않은 것은 진우 때문이었다.
“미안.”
연호가 사과했다. 그제야 서범이 됐다고 하며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지?”
서범이 물었다. 하지만 연호는 빳빳한 도화지 같은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응, 잘 지냈지.”
두 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며 연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뒤 연호는 자신이 있는 곳이 술집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임을 알게 되었다.
“미안.”
연호가 벙찐 채 진우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미리 말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둥, 술집과 다름없다는 둥, 속여서 미안하다는 둥의 말이었다.
“진짜 미안해.”
거기에 대고 연호가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재진과 서범을 앞에 두고 당장 뛰쳐나간다거나,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것도.
“진짜 미안.”
거듭되는 사과에 연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웨이터가 테이블의 위를 채웠고, 진우의 주도 아래 네 개의 잔이 한곳으로 모였다. 기분이 언짢았던 연호도 차가운 맥주잔을 그러쥐고 있었다.
차갑다. 손바닥으로 감싼 맥주잔의 냉기에 가슴이 펄떡였다. 코를 가까이 하지 않았음에도 술내가 풍겼고, 근근이 담배 냄새도 흘러 들어왔다. 그 외에도 온갖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추측할 수 없는 냄새에 연신 코를 벌렁거리던 연호는 눈을 깜빡이며 놀라움과 호기심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차연호의 첫 술을 위해!”
순식간에 네 개의 잔이 부딪쳤다. 보이지도, 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연호는 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고, 그게 마치 세상에 대한 울림이라도 되듯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뭐 해?”
“어?”
술잔을 쥐고 있던 연호가 진우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안 먹어?”
넌지시 권하는 진우의 목소리에 연호는 망설이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차가운 맥주가 목구멍으로 단숨에 넘어갔다.
“어때?”
“처음 술을 먹어 본 소감이 어떠냐고. 맛있어?”
진우가 묻고, 재진이 덧붙였다.
어떻게 맛을 표현해야 할지. 연호가 입맛을 다셨다.
“글쎄.”
단 것도 아니고, 쓴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맛있지도 않았다. 표현하기 어려워진 연호는 잘 모르겠다며 대꾸했다.
“그치. 분위기로 먹는 거지, 분위기.”
‘분위기…….’
연호가 진우의 목소리에 맥주잔을 그러잡았다.
‘어떤 분위기?’
연호는 시끄러운 분위기 외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진우는 모를 일이었다. 진우가 다시 연호의 손을 잡아 들었다. 네 개의 잔이 또 한 번 찬란한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잊지 않고 귀를 기울였고,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호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위하여.
연호는 언젠가 보았던 광고 속 대사가 떠올랐다. 전혀 알 수 없을 것 같던 분위기가 알 것도 같았다. 어쩐지 오늘만큼은 즐거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한 모금이라도 술이 들어간 탓인지 불안이 살짝 가시더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끌벅적하던 음악 소리에도 익숙해져 서범과 진우, 재진의 대화 소리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대학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고만 나지 않았으면 갔을 대학 이야기에 연호는 씁쓸하게 오징어를 씹으며 취향도 아닌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에 집중했다.
“오늘 좀 멋있네.”
“진우 새끼, 오늘 용 좀 썼다?”
서범의 감탄에 응하듯 재진이 이어서 대꾸한다. 연호는 그들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거라곤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게. 차연호, 넌 진짜 고등학교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머리카락에 간지러워진 코끝을 긁적이다 이야기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연호가 놀란 얼굴을 했다.
“기억나냐? 학교에서 저놈 잘생겼다고 쫓아다닌 후배 많았잖아.”
함께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던 고등학교 이야기가 그들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배들은 어떻고. 생각나냐? 밸런타인데이에 차연호만 어마어마한 양의 초콜릿을 받았었잖아. 알게 모르게 고백도 많이 받았고.”
“와, 씨발. 진짜 부러웠는데.”
“아무렴, 차연호잖아. 공부도 잘해, 성격도 좋아, 얼굴도 반반해.”
작정하고 띄울 생각인지 서범과 재진이 그 옛날 잘나갔던 연호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았다. 듣기만 하던 진우도 한몫 보태듯 목소리를 높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호는 점점 숨이 가빠 왔다.
그들의 말처럼 고등학교 때의 차연호는 못하는 게 없었다.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 성실했고, 적당히 쾌활하기까지 해 교우관계가 좋았던 것은 물론 선후배에게 예쁨도 받는 편이었다. 그 와중에 공부까지 잘해서 교사들에게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연호는 19년 동안 봐 온 자신의 얼굴도 흐릿했다.
계속되는 과거 이야기에 연호가 술잔을 쥐었다.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며, 자꾸만 과거로 흐르는 기억을 막으려 애를 썼다. 그러다 이야기의 끝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잠깐만 자리 좀 비워도 되냐?”
마치 이 순간을 위한 밑밥인 양 서범이 물었다.
“너무 심심해서 그래. 딱 30분만 놀다 올게.”
재진도 합세해 연호를 몰아붙였다.
“진짜, 잠깐이라도 안 되나?”
연호는 정말이지 빈말이라도 그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희끼리 갔다 와.”
‘그랬는데…….’
진우의 한마디에 연호가 그래, 하고 대답했다.
“진짜? 괜찮겠냐?”
후회는 짧았다. 뱉는 것과 동시에 후회했다. 하지만 슬쩍 비친 진우의 기대에 찬 목소리에 연호는 괜히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제 손으로 진우의 등을 떠밀었다.
“갔다 와. 가만히 있으면 별문제 없을 거야.”
자리를 뜨는 소리에 연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습관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딱 30분만!”
진우가 소리쳤다. 연호는 제 생일이라고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잠깐의 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혼자 남은 연호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고양된 불안감에 내리 물과 맥주를 번갈아 마셨고, 그러다 보니 화장실이 급해진 것이다. 혼자라는 사실도 지나치게 방광을 자극했다.
촉진된 생리 현상에 연호가 다리를 꼬았다.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파 왔고, 끙끙 앓았던 연호가 다급하게 가방을 찾았다. 진우에게 전화라도 할 심산이었다.
연호가 단축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그뿐, 통화가 이어지진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연호는 입술을 깨물다 소파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대뜸 통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연호는 악 소리를 내며 바닥과 충돌했고, 아랫배가 찌르르하게 울렸다.
그 순간 연호는 자신이 찔끔 지렸음을 깨달았다.
***
하인은 옆구리로 뻗어 오는 손을 습관적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남자가 힘없이 딸려 와 바닥으로 넘어졌다. 마치 가련한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넘어지는 꼴이 퍽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이 솟구치던 참이라 하인은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매질이라도 하려던 심산이었는데,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찾았다.”
아른거리던 그 새끼였다. 하인은 기쁨에 포효하듯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하지만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남자는 자신의 팔뚝을 동아줄처럼 물고 늘어지더니 외친다.
“도, 도와주세요.”
“뭘 줘?”
하인은 제 귀가 잘못되었나, 하고 생각했다. 살아생전 누군가를 도와준 일이 제 기억엔 없었다. 딱히 제게 도움을 바라는 이도 없었고 호의라는 말로 대가 없이 상부상조하는 곳에 있지도 않았다.
하인이 픽- 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자신이 선량한 얼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물론 아주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선량해 보일 때는 있었다.
웃을 때.
하지만 그 모습은 일찌감치 떼 버렸다.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고 다닌다던 어린 시절에.
‘얕보는 것만큼 기분이 좆같은 것도 없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거슬리는 낯짝이었다. 하인이 지긋이 연호를 뇌까려 봤다. 그러곤 천천히 또박또박 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 봐.”
“화장실이요, 화장실. 죄송해요. 제가, 앞이 안 보여서.”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니, 비단 떨고 있는 게 목소리만은 아니었다. 엑스 자로 꼰 다리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진짜, 죄송, 죄송해요. 근데, 진짜 너무 급해서.”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두 번째에는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연호가 구구절절 설명했다.
“가방에 장애인증이, 그, 있는데. 진짜, 죄송합니다.”
번쩍이는 조명과 시끄러운 소음 사이의 울 듯한 남자의 얼굴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가만히 보던 하인은 신경질적으로 욕을 뱉으며 급하게 남자의 허리를 잡고서 화장실로 내달렸다. 가는 동안에도, 화장실 안에서도 하인은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누가 둔기로 제 머리를 내리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한순간 누군가 자기에게 빙의라도 했던가.
“뭐 해. 급하다면서.”
화장실에 도착하고서도 입술을 떨고 있는 연호에게 하인이 윽박을 질렀다.
“그러니까, 위치가.”
19금 푯말 같은 얼굴로 연호가 물었다. 더 이상 의심할 게 없었던 하인이 연호의 어깨를 잡아 정확히 조준할 수 있는 위치에 세워 주었다. 잠시 후 시원하게 내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하인이 허탈하게 웃었다.
병 수발을 드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은 이상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총이 있었다면 제 손바닥에 구멍이라도 뚫었을지도 모른다.
찝찝하고 묘한 기분에 하인이 연호를 흘겼다. 빨갛게 충혈되어 있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볼일 보면서 우는 남자.’
***
볼일을 보고 난 뒤 후폭풍처럼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이 몰려왔지만, 그보다 앞서 안도감부터 들었다. 그저 최악을 면하게 해 준 그에게 감사했다. 우왁스럽게 내쳐진 일 따위도 이미 잊었다.
그가 내어 준 손도 팔도 아닌 재킷의 일부분을 쥐며, 연호는 행여나 그의 옷이 늘어질까 조심조심 걸었다. 하지만 그의 걸음걸이가 빨라지자 저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고, 하인이 갑작스럽게 멈춰 서는 바람에 등짝에 그대로 얼굴을 들이박고 말았다.
사람의 몸인데 단단한 벽에라도 들이박은 것처럼 느껴졌다.
“잡아당기지 마.”
“죄송합니다.”
연호가 얼른 사과했다.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고, 또다시 몇 발자국 못 가 하인이 걸음을 멈췄다. 일정 간격으로 당겨지는 느낌이 ‘저기요, 저기요’라고 부르는 것만 같았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린 하인이 연호를 사납게 쳐다본다.
“뭐야?”
“네?”
“잡아당기지 말랬잖아.”
“아, 저, 그게.”
연호가 입술을 작게 오물거렸다. 차마 놓칠까 봐 무서워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연호의 모습을 보고는 하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 씨발. 들쳐 메고 가는 게 낫겠네.”
하지만 시끄러운 소음 탓에 말의 전부가 연호에게 들리진 않았다. 눈치껏 화를 내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연호가 변명하듯 옷을 느슨하게 잡고는 고개를 숙여 외쳤다.
“거, 걸음이 너무 빨라서…….”
“뭐?”
나직이 중얼거리는 데다 고개까지 숙이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하인에게 닿을 턱이 없었다. 앵앵거리는 음악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씨발, 소리 좀 줄이라니까.”
하인은 짜증을 내며 연호에게 밀착하더니 푹 숙인 고개를 억지로 들추어 물었다.
“뭐라고?”
“거, 걸음이 너무 빨라서 놓칠 거 같아서…….”
“확실히 말해. 벙어리는 아니잖아.”
자신의 존재가 민폐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연호는 고마움을 넘어선 미안함에 사과했다.
“……죄송해요.”
말하고 나니 조금 서글픈 감정이 들어 연호가 시큰해진 눈가를 문질렀다.
하인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현란한 조명 사이에서 언뜻 보이는 연호의 얼굴을 보며 그 시간을 인내했다. 인내하면 할수록 마음이 거하게 팔딱이고 있었다. 근거리에 있는 시끄러운 사운드 탓이라 여기며 하인은 몇 분을 흘려보냈다.
“다 했어?”
다 울었냐는 말이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하던 연호가 고개를 저었다.
“안 울었어요.”
그러면서 어깨로 눈가를 문질러 닦는다. 하인은 크게 한숨을 삼키며 걸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보란 듯 정말 아주 천천히 걸었다.
연호도 느리게 그 뒤를 따랐다. 걷는 속도에 비례하여 기분도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급격한 피로감에 집이 그리워졌고, 진우 생각도 났다.
지금쯤 자리에 왔을지. 내가 없어져서 놀라지는 않았을지. 아직도 없으면 어떡하나, 내가 간 줄 알고 집에 간 것은 아니겠지 하는 걱정을 하던 찰나, 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
하인은 예고 없는 연호의 반격에 몸이 뒤집힐 뻔했다. 재킷을 잡아당기는 물리적인 힘이 강했다. 방심한 사이 일어난 일이었고, 몸이 휘청거렸다. 간신히 넘어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지만 인내심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하인은 옷깃을 쥔 연호의 손목을 움켜쥐며 몸을 틀었다. 그러곤 사납게 변한 얼굴로 연호를 가깝게 끌어당겼다.
윽박을 지르든 협박이든 뭐든 할 심산이었는데, 연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하인의 솟구친 화는 터지지 못한 채 속에서 남아 버렸다. 터져 나오는 게 거친 숨뿐이었다.
웃고 있었다. 양쪽 입꼬리를 보란 듯 올린 채 해맑게도. 처음 마주하는 화사한 얼굴에 하인은 상당히 놀랐고, 순간적으로 화가 가라앉아 버렸다. 하지만 잠시 후 삼켜진 화는 배로 튀어 올랐으나 타이밍은 이미 지나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하인이 험상궂은 얼굴로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것도 모르고 연호는 가까이 마주한 하인의 숨소리에 더욱이 해맑게 소리치고 있었다. 근처에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반가워한다.
“그런데?”
화를 참지 못해서 목소리가 까칠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성이 나 있었다. 하지만 연호의 기는 죽어지지 않았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조심스레 하인에게 묻고 있었다.
“찾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저를 제대로 얕잡아 보고 있었다. 그럴 듯했다. 그래서 그저 웃었다. 입을 크게 벌려 웃곤 가차 없이 돌아섰다. 그런 수고스런 짓거리에 동참할 마음이 없었다. 하인은 대꾸 없이 걸었다. 아니, 나아가려고 하던 찰나, 하인의 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참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데?”
“에?”
“그 친구, 어떻게 생겼냐고. 설마 그냥 찾아 달라는 소리는 아닐 거잖아. 특징이라도 있을 거 아냐.”
아아, 연호는 고개를 끄덕여 납득하곤 재빨리 특징을 얘기했다.
“키는 저보다 이 정도 더 커요. 그리고 원숭이를 닮았어요.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연호는 19살에 머물러 있던 기억을 되살려 말했다. 키를 제외하곤 연호의 기억에서 진우는 달라진 게 없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원숭이를 닮은 순딩순딩했던 모습이 마지막이다.
4년의 시간 동안 얼마만큼 변화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대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는 게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기도 했고, 어쩌면 그 모습 그대로였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는?”
“네?”
“무턱대고 찾으라는 건가? 나이를 알아야 찾지.”
“스물세 살이요.”
“이름은?”
“네?”
“네 이름. 이름 정도는 알아야 물어볼 거 아냐.”
“아, 차연호예요.”
연호가 넙죽넙죽 신상을 읊었다. 찾을 마음은 요만큼도 없으면서 하인은 연호의 정보를 속속들이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러곤 기다려 보라며 대충 찾는 시늉을 한다. 번잡한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주변을 몇 번 훑던 시선이 다시 연호에게로 향했다.
“없어. 원숭이 닮은 남자.”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걸로 납득할 거라고도 생각했는데, 연호는 단호하게 하인에게 아니라고 말했다.
“진짜요? 없어요? 분명 주변에 있을 건데. 지금도 목소리가 들리잖아요.”
연호는 하인의 옷깃을 잡아끌며 몇 발자국 뒤로 요리 조리 움직였다. 하인은 인상을 쓰며 연호가 하는 대로 잠깐 끌려다녀 주었다. 저 손을 내리칠까 말까 몇 번을 고민했다. 이름과 나이도 알았으니 헤어진다 해도 다시 찾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앞을 못 본다는 커다란 특징도 있었다.
“그만해.”
하인이 목소리를 굳히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자리에 있으면 알아서 오겠지.”
하인이 연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쉽사리 끌려오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버티고 있었다. 하인이 짜증스럽게 연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조금 전에 폭발하지 못한 화를 내려는데 하인의 귓가에 차연호의 이름이 들려왔다. 또렷했다.
하인은 몇 초 전에 들었던 이름 석 자가 제 이름이라도 된 듯 낯설지 않았다. 귀에 쏙 하니 박혔고, 간간히 음악 소리에 뭉개지긴 했지만 차연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더 들었다.
정말 근거리에 있는 모양이었다.
보란 듯 웃고 있는 연호를 보며 하인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곤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주변을 훑었다. 그러다 현란한 조명 사이에서 그들을 발견했다.
“저기 있네.”
기둥 사이로 그들이 보였다. 조금 귀찮긴 했지만 하인은 연호를 데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고 했다. 그들이 차연호에 대해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
진우와 서범, 재진은 기둥에 서 있었다. 삐끼들에게 끌려 룸에 들어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온 상태였다.
“시간 얼마나 됐어?”
“30분 됐나? 자리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아, 씨발. 그러게 그 새끼는 왜 데려와 가지고.”
진우의 물음에 연호가 있을 자리를 보며 서범이 대꾸했고 재진이 기다렸다는 듯 불만을 터트렸다. 진우는 두 사람을 힐끗 보다 웃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찾아 붙이고는 짓눌린 발음으로 진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재밌잖아.”
“씨발. 재미? 이게 재밌냐? 존나 놀지도 못하고 뭐하는 짓이냐고. 나이트 가자고 부른 새끼가 왜 말도 없이 데려와.”
“그래. 이진우, 이 개새꺄.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냐?”
재진의 말에 서범도 불만을 터트렸다. 화를 내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진우는 연호가 있을 자리로 고개를 틀었다. 절묘하게 기둥에 가려져 있어 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차연호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자리에 불안하게 앉아 있을 연호를 떠올리다 두 사람을 다시 쳐다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인다.
“뭐 어때.”
“웃음이 나오냐? 씨팔. 너, 왜 안 하던 짓 하고 지랄이야, 진짜. 좋아하지도 않는 새끼가.”
“내 기억엔 싫어했던 거 같은데.”
재진과 서범이 기억하기론 진우는 열등감을 느껴 알게 모르게 뒤에서 연호를 무진장 싫어했었다. 그런데 연호가 사고당한 이후에는 갑자기 사람이 변하기라도 한듯 연호를 챙기더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에겐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연호를 질색하는 자신들까지 엮어 부르고 있었다.
“뭐, 싫어하긴 했는데…….”
기둥에 기대어 있던 진우가 몸을 일으켰다. 톡톡 손에 든 담뱃재를 떨어트리며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때보다 싫진 않지. 너넨 아니야?”
“미쳤냐? 말했잖아. 난 걔가 불편해. 어지간하면 엮지 좀 마라. 매번 이게 뭐냐. 씨발놈아.”
재진이 질색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마주 본 서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고, 진우는 질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다.
“불편한 게 뭐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게 불편하다고, 씨발아. 착하지도 않은 새끼가 갑자기 왜 착한 척하고 지랄이야. 네놈 성격을 내가 모르냐?”
재진의 빈정거림에 진우가 얼굴을 굳혔다. 열여덟 살 때부터 재진과 친구였다. 같은 고등학교에 이어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에 재학 중인 두 사람이었다. 가장 친하다고 봐도 무방했고 착하지 않은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재진, 착한 척이라니. 말이 좀 심하네. 착한 척이 아니라 이 정도면 착한 축에 껴야 하는 거 아니냐? 친구도 없는 우리 연호를 챙겨 주는 게 난데.”
“뭐?”
“뭐래냐.”
“불쌍한 놈 도와주는 거면 충분히 착한 거 아니냐고.”
진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묻는다. 그 얼굴이 가히 덤덤했다. 아무렇지 않아했고, 죄책감도 없었다. 원래 그런 듯 얼굴에 태연함이 묻어나 있었다.
“차연호 그 새끼 고등학교 때 꽤 멋있었잖아. 존나 부러웠다고. 공부도 잘해, 성격도 좋아, 집안도 괜찮고. 인물도 그만하면 괜찮지. 뭐 하나 빠진 게 없었잖아. 그런 새끼가 저래 됐잖아. 얼마나 불쌍하냐. 사람 앞일은 참 모른다니까. 안 그래?”
진우의 눈빛이 아스라이 과거에 젖어 들더니 금세 표독스럽게 변했다. 굳은 얼굴로 담배를 잘근 씹었다.
1. 별이 있었다. (2)
부산스런 외부 소리가 줄어든다 싶더니 이내 노랫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소리도, 누군가의 말소리도, 심지어 진우의 숨소리조차 순식간에 사라지자 연호가 진우의 옷깃을 꽉 쥐었다.
“괜찮아?”
진우가 물었다. 하지만 정신없는 사운드 탓에 연호는 진우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냥 손이 떨려서 양쪽 눈을 꼭 감은 채 진우를 따라 움직였다.
“약속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와?”
진우와 연호가 나타나자 서범이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약속 시간보다 15분이나 늦었기 때문이었다.
“미안. 차가 좀 막혔어.”
진우가 나서서 사과했지만 유난히 까칠한 목소리가 거듭 들렸다.
“일찍 일찍 좀 다녀.”
연호는 서범의 목소리가 괜히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들은 진우와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는데, 한때는 함께 여행도 가고 공부도 하며 나름 돈독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러했듯 사고 이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연락이 뚝 끊어지지 않은 것은 진우 때문이었다.
“미안.”
연호가 사과했다. 그제야 서범이 됐다고 하며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지?”
서범이 물었다. 하지만 연호는 빳빳한 도화지 같은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응, 잘 지냈지.”
두 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며 연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뒤 연호는 자신이 있는 곳이 술집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임을 알게 되었다.
“미안.”
연호가 벙찐 채 진우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미리 말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둥, 술집과 다름없다는 둥, 속여서 미안하다는 둥의 말이었다.
“진짜 미안해.”
거기에 대고 연호가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재진과 서범을 앞에 두고 당장 뛰쳐나간다거나,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것도.
“진짜 미안.”
거듭되는 사과에 연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웨이터가 테이블의 위를 채웠고, 진우의 주도 아래 네 개의 잔이 한곳으로 모였다. 기분이 언짢았던 연호도 차가운 맥주잔을 그러쥐고 있었다.
차갑다. 손바닥으로 감싼 맥주잔의 냉기에 가슴이 펄떡였다. 코를 가까이 하지 않았음에도 술내가 풍겼고, 근근이 담배 냄새도 흘러 들어왔다. 그 외에도 온갖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추측할 수 없는 냄새에 연신 코를 벌렁거리던 연호는 눈을 깜빡이며 놀라움과 호기심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차연호의 첫 술을 위해!”
순식간에 네 개의 잔이 부딪쳤다. 보이지도, 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연호는 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고, 그게 마치 세상에 대한 울림이라도 되듯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뭐 해?”
“어?”
술잔을 쥐고 있던 연호가 진우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안 먹어?”
넌지시 권하는 진우의 목소리에 연호는 망설이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차가운 맥주가 목구멍으로 단숨에 넘어갔다.
“어때?”
“처음 술을 먹어 본 소감이 어떠냐고. 맛있어?”
진우가 묻고, 재진이 덧붙였다.
어떻게 맛을 표현해야 할지. 연호가 입맛을 다셨다.
“글쎄.”
단 것도 아니고, 쓴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맛있지도 않았다. 표현하기 어려워진 연호는 잘 모르겠다며 대꾸했다.
“그치. 분위기로 먹는 거지, 분위기.”
‘분위기…….’
연호가 진우의 목소리에 맥주잔을 그러잡았다.
‘어떤 분위기?’
연호는 시끄러운 분위기 외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진우는 모를 일이었다. 진우가 다시 연호의 손을 잡아 들었다. 네 개의 잔이 또 한 번 찬란한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잊지 않고 귀를 기울였고,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호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위하여.
연호는 언젠가 보았던 광고 속 대사가 떠올랐다. 전혀 알 수 없을 것 같던 분위기가 알 것도 같았다. 어쩐지 오늘만큼은 즐거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한 모금이라도 술이 들어간 탓인지 불안이 살짝 가시더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끌벅적하던 음악 소리에도 익숙해져 서범과 진우, 재진의 대화 소리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대학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고만 나지 않았으면 갔을 대학 이야기에 연호는 씁쓸하게 오징어를 씹으며 취향도 아닌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에 집중했다.
“오늘 좀 멋있네.”
“진우 새끼, 오늘 용 좀 썼다?”
서범의 감탄에 응하듯 재진이 이어서 대꾸한다. 연호는 그들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거라곤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게. 차연호, 넌 진짜 고등학교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머리카락에 간지러워진 코끝을 긁적이다 이야기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연호가 놀란 얼굴을 했다.
“기억나냐? 학교에서 저놈 잘생겼다고 쫓아다닌 후배 많았잖아.”
함께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던 고등학교 이야기가 그들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배들은 어떻고. 생각나냐? 밸런타인데이에 차연호만 어마어마한 양의 초콜릿을 받았었잖아. 알게 모르게 고백도 많이 받았고.”
“와, 씨발. 진짜 부러웠는데.”
“아무렴, 차연호잖아. 공부도 잘해, 성격도 좋아, 얼굴도 반반해.”
작정하고 띄울 생각인지 서범과 재진이 그 옛날 잘나갔던 연호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았다. 듣기만 하던 진우도 한몫 보태듯 목소리를 높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호는 점점 숨이 가빠 왔다.
그들의 말처럼 고등학교 때의 차연호는 못하는 게 없었다.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 성실했고, 적당히 쾌활하기까지 해 교우관계가 좋았던 것은 물론 선후배에게 예쁨도 받는 편이었다. 그 와중에 공부까지 잘해서 교사들에게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연호는 19년 동안 봐 온 자신의 얼굴도 흐릿했다.
계속되는 과거 이야기에 연호가 술잔을 쥐었다.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며, 자꾸만 과거로 흐르는 기억을 막으려 애를 썼다. 그러다 이야기의 끝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잠깐만 자리 좀 비워도 되냐?”
마치 이 순간을 위한 밑밥인 양 서범이 물었다.
“너무 심심해서 그래. 딱 30분만 놀다 올게.”
재진도 합세해 연호를 몰아붙였다.
“진짜, 잠깐이라도 안 되나?”
연호는 정말이지 빈말이라도 그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희끼리 갔다 와.”
‘그랬는데…….’
진우의 한마디에 연호가 그래, 하고 대답했다.
“진짜? 괜찮겠냐?”
후회는 짧았다. 뱉는 것과 동시에 후회했다. 하지만 슬쩍 비친 진우의 기대에 찬 목소리에 연호는 괜히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제 손으로 진우의 등을 떠밀었다.
“갔다 와. 가만히 있으면 별문제 없을 거야.”
자리를 뜨는 소리에 연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습관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딱 30분만!”
진우가 소리쳤다. 연호는 제 생일이라고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잠깐의 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혼자 남은 연호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고양된 불안감에 내리 물과 맥주를 번갈아 마셨고, 그러다 보니 화장실이 급해진 것이다. 혼자라는 사실도 지나치게 방광을 자극했다.
촉진된 생리 현상에 연호가 다리를 꼬았다.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파 왔고, 끙끙 앓았던 연호가 다급하게 가방을 찾았다. 진우에게 전화라도 할 심산이었다.
연호가 단축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그뿐, 통화가 이어지진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연호는 입술을 깨물다 소파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대뜸 통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연호는 악 소리를 내며 바닥과 충돌했고, 아랫배가 찌르르하게 울렸다.
그 순간 연호는 자신이 찔끔 지렸음을 깨달았다.
하인은 옆구리로 뻗어 오는 손을 습관적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남자가 힘없이 딸려 와 바닥으로 넘어졌다. 마치 가련한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넘어지는 꼴이 퍽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이 솟구치던 참이라 하인은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매질이라도 하려던 심산이었는데,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찾았다.”
아른거리던 그 새끼였다. 하인은 기쁨에 포효하듯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하지만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남자는 자신의 팔뚝을 동아줄처럼 물고 늘어지더니 외친다.
“도, 도와주세요.”
“뭘 줘?”
하인은 제 귀가 잘못되었나, 하고 생각했다. 살아생전 누군가를 도와준 일이 제 기억엔 없었다. 딱히 제게 도움을 바라는 이도 없었고 호의라는 말로 대가 없이 상부상조하는 곳에 있지도 않았다.
하인이 픽- 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자신이 선량한 얼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물론 아주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선량해 보일 때는 있었다.
웃을 때.
하지만 그 모습은 일찌감치 떼 버렸다.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고 다닌다던 어린 시절에.
‘얕보는 것만큼 기분이 좆같은 것도 없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거슬리는 낯짝이었다. 하인이 지긋이 연호를 뇌까려 봤다. 그러곤 천천히 또박또박 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 봐.”
“화장실이요, 화장실. 죄송해요. 제가, 앞이 안 보여서.”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니, 비단 떨고 있는 게 목소리만은 아니었다. 엑스 자로 꼰 다리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진짜, 죄송, 죄송해요. 근데, 진짜 너무 급해서.”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두 번째에는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연호가 구구절절 설명했다.
“가방에 장애인증이, 그, 있는데. 진짜, 죄송합니다.”
번쩍이는 조명과 시끄러운 소음 사이의 울 듯한 남자의 얼굴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가만히 보던 하인은 신경질적으로 욕을 뱉으며 급하게 남자의 허리를 잡고서 화장실로 내달렸다. 가는 동안에도, 화장실 안에서도 하인은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누가 둔기로 제 머리를 내리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한순간 누군가 자기에게 빙의라도 했던가.
“뭐 해. 급하다면서.”
화장실에 도착하고서도 입술을 떨고 있는 연호에게 하인이 윽박을 질렀다.
“그러니까, 위치가.”
19금 푯말 같은 얼굴로 연호가 물었다. 더 이상 의심할 게 없었던 하인이 연호의 어깨를 잡아 정확히 조준할 수 있는 위치에 세워 주었다. 잠시 후 시원하게 내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하인이 허탈하게 웃었다.
병 수발을 드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은 이상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총이 있었다면 제 손바닥에 구멍이라도 뚫었을지도 모른다.
찝찝하고 묘한 기분에 하인이 연호를 흘겼다. 빨갛게 충혈되어 있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볼일 보면서 우는 남자.’
볼일을 보고 난 뒤 후폭풍처럼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이 몰려왔지만, 그보다 앞서 안도감부터 들었다. 그저 최악을 면하게 해 준 그에게 감사했다. 우왁스럽게 내쳐진 일 따위도 이미 잊었다.
그가 내어 준 손도 팔도 아닌 재킷의 일부분을 쥐며, 연호는 행여나 그의 옷이 늘어질까 조심조심 걸었다. 하지만 그의 걸음걸이가 빨라지자 저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고, 하인이 갑작스럽게 멈춰 서는 바람에 등짝에 그대로 얼굴을 들이박고 말았다.
사람의 몸인데 단단한 벽에라도 들이박은 것처럼 느껴졌다.
“잡아당기지 마.”
“죄송합니다.”
연호가 얼른 사과했다.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고, 또다시 몇 발자국 못 가 하인이 걸음을 멈췄다. 일정 간격으로 당겨지는 느낌이 ‘저기요, 저기요’라고 부르는 것만 같았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린 하인이 연호를 사납게 쳐다본다.
“뭐야?”
“네?”
“잡아당기지 말랬잖아.”
“아, 저, 그게.”
연호가 입술을 작게 오물거렸다. 차마 놓칠까 봐 무서워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연호의 모습을 보고는 하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 씨발. 들쳐 메고 가는 게 낫겠네.”
하지만 시끄러운 소음 탓에 말의 전부가 연호에게 들리진 않았다. 눈치껏 화를 내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연호가 변명하듯 옷을 느슨하게 잡고는 고개를 숙여 외쳤다.
“거, 걸음이 너무 빨라서…….”
“뭐?”
나직이 중얼거리는 데다 고개까지 숙이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하인에게 닿을 턱이 없었다. 앵앵거리는 음악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씨발, 소리 좀 줄이라니까.”
하인은 짜증을 내며 연호에게 밀착하더니 푹 숙인 고개를 억지로 들추어 물었다.
“뭐라고?”
“거, 걸음이 너무 빨라서 놓칠 거 같아서…….”
“확실히 말해. 벙어리는 아니잖아.”
자신의 존재가 민폐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연호는 고마움을 넘어선 미안함에 사과했다.
“……죄송해요.”
말하고 나니 조금 서글픈 감정이 들어 연호가 시큰해진 눈가를 문질렀다.
하인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현란한 조명 사이에서 언뜻 보이는 연호의 얼굴을 보며 그 시간을 인내했다. 인내하면 할수록 마음이 거하게 팔딱이고 있었다. 근거리에 있는 시끄러운 사운드 탓이라 여기며 하인은 몇 분을 흘려보냈다.
“다 했어?”
다 울었냐는 말이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하던 연호가 고개를 저었다.
“안 울었어요.”
그러면서 어깨로 눈가를 문질러 닦는다. 하인은 크게 한숨을 삼키며 걸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보란 듯 정말 아주 천천히 걸었다.
연호도 느리게 그 뒤를 따랐다. 걷는 속도에 비례하여 기분도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급격한 피로감에 집이 그리워졌고, 진우 생각도 났다.
지금쯤 자리에 왔을지. 내가 없어져서 놀라지는 않았을지. 아직도 없으면 어떡하나, 내가 간 줄 알고 집에 간 것은 아니겠지 하는 걱정을 하던 찰나, 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인은 예고 없는 연호의 반격에 몸이 뒤집힐 뻔했다. 재킷을 잡아당기는 물리적인 힘이 강했다. 방심한 사이 일어난 일이었고, 몸이 휘청거렸다. 간신히 넘어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지만 인내심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하인은 옷깃을 쥔 연호의 손목을 움켜쥐며 몸을 틀었다. 그러곤 사납게 변한 얼굴로 연호를 가깝게 끌어당겼다.
윽박을 지르든 협박이든 뭐든 할 심산이었는데, 연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하인의 솟구친 화는 터지지 못한 채 속에서 남아 버렸다. 터져 나오는 게 거친 숨뿐이었다.
웃고 있었다. 양쪽 입꼬리를 보란 듯 올린 채 해맑게도. 처음 마주하는 화사한 얼굴에 하인은 상당히 놀랐고, 순간적으로 화가 가라앉아 버렸다. 하지만 잠시 후 삼켜진 화는 배로 튀어 올랐으나 타이밍은 이미 지나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하인이 험상궂은 얼굴로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것도 모르고 연호는 가까이 마주한 하인의 숨소리에 더욱이 해맑게 소리치고 있었다. 근처에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반가워한다.
“그런데?”
화를 참지 못해서 목소리가 까칠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성이 나 있었다. 하지만 연호의 기는 죽어지지 않았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조심스레 하인에게 묻고 있었다.
“찾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저를 제대로 얕잡아 보고 있었다. 그럴 듯했다. 그래서 그저 웃었다. 입을 크게 벌려 웃곤 가차 없이 돌아섰다. 그런 수고스런 짓거리에 동참할 마음이 없었다. 하인은 대꾸 없이 걸었다. 아니, 나아가려고 하던 찰나, 하인의 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참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데?”
“에?”
“그 친구, 어떻게 생겼냐고. 설마 그냥 찾아 달라는 소리는 아닐 거잖아. 특징이라도 있을 거 아냐.”
아아, 연호는 고개를 끄덕여 납득하곤 재빨리 특징을 얘기했다.
“키는 저보다 이 정도 더 커요. 그리고 원숭이를 닮았어요.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연호는 19살에 머물러 있던 기억을 되살려 말했다. 키를 제외하곤 연호의 기억에서 진우는 달라진 게 없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원숭이를 닮은 순딩순딩했던 모습이 마지막이다.
4년의 시간 동안 얼마만큼 변화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대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는 게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기도 했고, 어쩌면 그 모습 그대로였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는?”
“네?”
“무턱대고 찾으라는 건가? 나이를 알아야 찾지.”
“스물세 살이요.”
“이름은?”
“네?”
“네 이름. 이름 정도는 알아야 물어볼 거 아냐.”
“아, 차연호예요.”
연호가 넙죽넙죽 신상을 읊었다. 찾을 마음은 요만큼도 없으면서 하인은 연호의 정보를 속속들이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러곤 기다려 보라며 대충 찾는 시늉을 한다. 번잡한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주변을 몇 번 훑던 시선이 다시 연호에게로 향했다.
“없어. 원숭이 닮은 남자.”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걸로 납득할 거라고도 생각했는데, 연호는 단호하게 하인에게 아니라고 말했다.
“진짜요? 없어요? 분명 주변에 있을 건데. 지금도 목소리가 들리잖아요.”
연호는 하인의 옷깃을 잡아끌며 몇 발자국 뒤로 요리 조리 움직였다. 하인은 인상을 쓰며 연호가 하는 대로 잠깐 끌려다녀 주었다. 저 손을 내리칠까 말까 몇 번을 고민했다. 이름과 나이도 알았으니 헤어진다 해도 다시 찾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앞을 못 본다는 커다란 특징도 있었다.
“그만해.”
하인이 목소리를 굳히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자리에 있으면 알아서 오겠지.”
하인이 연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쉽사리 끌려오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버티고 있었다. 하인이 짜증스럽게 연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조금 전에 폭발하지 못한 화를 내려는데 하인의 귓가에 차연호의 이름이 들려왔다. 또렷했다.
하인은 몇 초 전에 들었던 이름 석 자가 제 이름이라도 된 듯 낯설지 않았다. 귀에 쏙 하니 박혔고, 간간히 음악 소리에 뭉개지긴 했지만 차연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더 들었다.
정말 근거리에 있는 모양이었다.
보란 듯 웃고 있는 연호를 보며 하인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곤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주변을 훑었다. 그러다 현란한 조명 사이에서 그들을 발견했다.
“저기 있네.”
기둥 사이로 그들이 보였다. 조금 귀찮긴 했지만 하인은 연호를 데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고 했다. 그들이 차연호에 대해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우와 서범, 재진은 기둥에 서 있었다. 삐끼들에게 끌려 룸에 들어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온 상태였다.
“시간 얼마나 됐어?”
“30분 됐나? 자리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아, 씨발. 그러게 그 새끼는 왜 데려와 가지고.”
진우의 물음에 연호가 있을 자리를 보며 서범이 대꾸했고 재진이 기다렸다는 듯 불만을 터트렸다. 진우는 두 사람을 힐끗 보다 웃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찾아 붙이고는 짓눌린 발음으로 진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재밌잖아.”
“씨발. 재미? 이게 재밌냐? 존나 놀지도 못하고 뭐하는 짓이냐고. 나이트 가자고 부른 새끼가 왜 말도 없이 데려와.”
“그래. 이진우, 이 개새꺄.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냐?”
재진의 말에 서범도 불만을 터트렸다. 화를 내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진우는 연호가 있을 자리로 고개를 틀었다. 절묘하게 기둥에 가려져 있어 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차연호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자리에 불안하게 앉아 있을 연호를 떠올리다 두 사람을 다시 쳐다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인다.
“뭐 어때.”
“웃음이 나오냐? 씨팔. 너, 왜 안 하던 짓 하고 지랄이야, 진짜. 좋아하지도 않는 새끼가.”
“내 기억엔 싫어했던 거 같은데.”
재진과 서범이 기억하기론 진우는 열등감을 느껴 알게 모르게 뒤에서 연호를 무진장 싫어했었다. 그런데 연호가 사고당한 이후에는 갑자기 사람이 변하기라도 한듯 연호를 챙기더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에겐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연호를 질색하는 자신들까지 엮어 부르고 있었다.
“뭐, 싫어하긴 했는데…….”
기둥에 기대어 있던 진우가 몸을 일으켰다. 톡톡 손에 든 담뱃재를 떨어트리며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때보다 싫진 않지. 너넨 아니야?”
“미쳤냐? 말했잖아. 난 걔가 불편해. 어지간하면 엮지 좀 마라. 매번 이게 뭐냐. 씨발놈아.”
재진이 질색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마주 본 서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고, 진우는 질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다.
“불편한 게 뭐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게 불편하다고, 씨발아. 착하지도 않은 새끼가 갑자기 왜 착한 척하고 지랄이야. 네놈 성격을 내가 모르냐?”
재진의 빈정거림에 진우가 얼굴을 굳혔다. 열여덟 살 때부터 재진과 친구였다. 같은 고등학교에 이어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에 재학 중인 두 사람이었다. 가장 친하다고 봐도 무방했고 착하지 않은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재진, 착한 척이라니. 말이 좀 심하네. 착한 척이 아니라 이 정도면 착한 축에 껴야 하는 거 아니냐? 친구도 없는 우리 연호를 챙겨 주는 게 난데.”
“뭐?”
“뭐래냐.”
“불쌍한 놈 도와주는 거면 충분히 착한 거 아니냐고.”
진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묻는다. 그 얼굴이 가히 덤덤했다. 아무렇지 않아했고, 죄책감도 없었다. 원래 그런 듯 얼굴에 태연함이 묻어나 있었다.
“차연호 그 새끼 고등학교 때 꽤 멋있었잖아. 존나 부러웠다고. 공부도 잘해, 성격도 좋아, 집안도 괜찮고. 인물도 그만하면 괜찮지. 뭐 하나 빠진 게 없었잖아. 그런 새끼가 저래 됐잖아. 얼마나 불쌍하냐. 사람 앞일은 참 모른다니까. 안 그래?”
진우의 눈빛이 아스라이 과거에 젖어 들더니 금세 표독스럽게 변했다. 굳은 얼굴로 담배를 잘근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