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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나라의 하인 3화
0. 운명으로부터 (3)
남수가 아는 그는 태어날 때부터가 뒷골목에서 나고 자란 놈이었다. 두목을 통해 처음 하인을 본 게 열네 살이었고, 그때에 비해 외형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독종 같은 그의 성격은 한결같이 변함이 없었다.
번지르르한 외모 탓에 가끔 선량해 보이는 거 같은 착각도 들지만, 사실 그는 상상 이상으로 냉정하고 인간미가 없었다. 같은 식구면서도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그 역시 실수를 하지 않았다. 말하기 입이 아플 정도로 이 바닥에 잔뼈가 굵은 남자였다.
“형님? 예? 누가 그랬습니까? 어떤 개호로 잡놈들이 서강파 부두목을 이렇게 만든답니까? 예?”
혼자서 계속 묻던 남수가 흥분해 소리쳤다. 나중에는 서강파에 대한 도전이라는 등의 시답잖은 소리까지 흘렸고, 구겨진 얼굴로 내내 귓가를 어지럽게 때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하인이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오남수.”
하인은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사납게 노려보더니 맞부딪친 잇새로 조곤고곤 남수를 불렀다. 아니, 그 목소리는 곧 터질 활화산처럼 잔잔하게 들끓고 있었다. 남수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괜히 자신에게 불똥이 튈 거 같아 뒷목이 서늘해지자 근거리에 있던 몸을 슬쩍 뒤로 물렸다.
“……네. 형님.”
“다시 한번 말해 봐. 누구랑 무슨 거래였다고?”
짜증스레 하인이 물었다. 잇새로 거친 숨이 터졌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곧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남서파에 박호필이라고 그 짝 두목 오른팔 정도 되는 놈입니다. 총기 여섯 자루랑 마약 거래였고요. 근데요, 형님. 치료가 먼저인 거 같은데요.”
남수는 이미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전화할 기색이었고, 하인 역시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남수의 모습이 퍼즐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맞춰지길 반복하는 중이었다.
“과다 출혈로 쇼크라도 오는 거 아닙니까.”
하인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재킷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헛손질이 두 번 연속으로 이어지자 신경질적으로 욕을 뱉었다. 이윽고 담배 어딨냐며 화를 내자 남수가 재빨리 주머니 안에서 담배를 꺼내어 하인에게 건넸다.
불까지 붙인 뒤 남수가 물었다.
“형님, 재길이한테 연락합니다?”
“알아서 해.”
허락이 떨어지자 남수가 재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에 하인은 폐부 깊숙이 담배를 빨아들이며 상처를 잊으려고 애를 썼고, 한편으론 그들의 얼굴을 잊을 새라 다시금 상기해 보았다. 하지만 술에 물 탄 듯 기억이 차차 흐려지고 있었다.
선명하던 그들의 이목구비가 사라지더니 어느새 가로등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흐릿한 형체만 남는다.
“씨발.”
자신의 기억이 좆같은지, 사람의 기억이 좆같은 건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짓이기며 하인이 기억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여섯 명.”
“예?”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남수가 되물었다.
“거기에 있던 새끼들 말이야.”
하인이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내 생각엔 남서파 새끼들이 맞는 거 같거든?”
하인은 실제로 남서파 조무래기들의 얼굴을 단 한 명도 알지 못했다. 조무래기의 두목조차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단서는 남서파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과 직감이었다.
“근데 그 씹새들이 뭐하러 그랬냐고. 두목도 없는 판국에 겁대가리도 많은 새끼들이.”
“그러니까 칼침을 놓은 새끼들이 남서파 놈들이라구요? 거래는요?”
거래. 그 두 단어에 하인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손안에서 짓이겼다.
“좆됐지.”
하인이 굵직한 숨을 삼켰다.
“그러니까 알아 와.”
마주친 시선에 남수가 ‘네?’ 하고 되물었다. 그리고 때마침 철문이 열리며 헐레벌떡 재길이 뛰어 들어왔다. 하인의 몰골을 눈으로 보고는 상당히 놀란 그는 남수에게 눈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남수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하인이 둘을 갈라놓았다.
“가 봐.”
남수도 재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를……’이라고 먼저 말을 한 것은 남수였고, 그 바람에 불똥이 남수에게로 튀었다.
“못 들었어?”
“예?”
바닥으로 내던진 담배를 하인이 발끝으로 비벼 껐다. 몸도 정신도 흐린 상태에 단단히 꼬인 심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지경이었다. 하인이 곧 칠 것 같은 기세로 남수를 쳐다보았다.
남수가 그제야 방금 하인이 했던 말을 되새기며 허겁지겁 사무실을 나섰다. 하인이 새 담배를 꺼낼 동안 무슨 상황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재길이 눈치껏 전화를 걸었다.
“박재길입니다. 하인 형님이 다쳤습니다. 네? 상처가…….”
칼에 찔린 듯했지만 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길이 넌지시 하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하인은 소파에 기대어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예. 아마도 칼에. 네. 출혈이 많은 것 말고는……. 네, 의식도 있습니다. 부위요?”
은근슬쩍 또 대화 내용을 흘렸고, 하인의 손짓을 보고 재길이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바로 전달했다.
“옆구립니다. 네. 혈액형은 AB형입니다. 네, 네.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마친 재길이 바닥에 내팽개친 재킷을 주워 들었다. 그것을 손짓으로 뺏어 든 하인은 재킷의 양쪽 주머니와 안쪽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들에게서 빼앗은 물건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을 같은 곳을 뒤적이던 하인이 재킷의 주머니를 꽉 쥐었다.
“……지갑.”
“예?”
뒤늦게 생각난 것이었다. 지갑에 넣었던 그 물건을.
하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대한 탄식과 30년 인생에 있어 가장 색다른 하루를 보내고 난 기쁨이 뒤섞인 웃음소리였다.
‘마가 꼈군. 그것도 거대한 마가.’
하인은 제 손으로 지갑을 남자에게 건네준 때를 떠올렸다. 어째서 지갑 속에 넣어 둔 걸 잊어버렸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재길아.”
“네, 형님.”
“사람 하나만 찾아와. 20대 초반이고, 남자. 얼굴은 평범해. 키는 아마…… 네 어깨 정돈 거 같고.”
재길이 영문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남자가 어디 한둘이랴. 하지만 상세한 것을 묻자니 하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친 하인은 늘어지듯 눈꺼풀을 감더니 소파에 누웠다. 감은 눈 밑으로 눈동자가 굴러갔다.
“그 새끼가 물건을 갖고 있거든?”
미친 듯 졸음이 쏟아졌다.
1. 별이 있었다. (1)
하인은 룸살롱에서 태어났다. 15년을 룸살롱의 쪽방에서 살았고, 그곳을 나오면서 그와 엇비슷한 장소는 일부러라도 피해 다녔다. 시끄럽고 더럽다는 게 주된 이유였고, 주변이 지저분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공간을 싫어하는 성격 역시 그때의 영향이었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공간 안에는 항상 쓰레기가 굴러다녔고 시큼한 썩은 내가 났다. 안팎으로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런 좁은 곳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두목이었다.
그리고 한 해 전, 부두목이라는 직책을 받으면서 두목의 명의로 된 나이트클럽의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조용한 술집이면 생각이라도 해 보겠건만, 하인에게 있어서 나이트클럽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영역이었다.
두목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제 명의로 가지고 있으면서 하인은 그렇게 6개월을 방치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두목은 적자에 대한 돈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그 뒤 하인은 차선책으로 나이트클럽을 재길에게 위임해 버렸다. 소유권을 제외한 모든 권리를.
바지사장인 하인이 자신의 소유인 나이트클럽에 얼굴을 내미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끽해야 1년에 두 번이었다. 두목의 생일과 자신의 생일.
하지만 하인은 현재 나이트클럽 입구에 있었다. 알고 있는 정보는 다 주었건만 재길과 남수에게서 만족할 만한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기간이 열흘이었고, 하인은 뒤틀린 심기로 감감무소식인 재길을 찾아왔다.
‘은하수 NIGHT CLUB’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끄러운 소음이 하인의 얼굴을 주물렀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았던 기분이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무전기를 통해 연락을 받은 재길이 사무실에서 곧장 뛰어왔다. 어둡고 복잡한 조명 사이에서도 하인은 한눈에 튀었다. 단순히 그가 자신이 모시는 형님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내뿜는 분위기 자체가 무시무시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재길은 벌써부터 뒷목이 서늘했다. 불똥이 튀어도 어지간히 튀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하인을 조용한 곳으로 안내했다.
룸으로 희미하게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인은 곧장 소파에 앉았다.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어 물자 재길이 잽싸게 재떨이를 하인의 앞으로 옮겼다. 그러곤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하인의 앞에 섰다.
“찾았어?”
“아직 못 찾았습니다.”
“씨발, 왜 못 찾아?”
그 말이 튀어나올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면전에 대고 들으니 재길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실재로 한숨을 내쉬진 않았지만 그만큼 마음이 답답했다. 중요하다는 물건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에게 맡겼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훔쳐 갔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 이상 자세히 물으려고 하면 찢어 죽일 것만 같아 입을 더 놀리기도 힘들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너무 적어서 찾기가 조금 애매합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더 확실했지만 재길은 거기까지 말할 용기가 없었다. 일전에도 못 찾을 거 같다고 알렸더니 찾을 때까지 오지 말라며 쫓아낸 사람이었다.
“왜 못 찾아?”
재길은 예의 그 남자를 찾기 위해 하인에게 물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엔 정신이 혼미해서 무리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음 날에도 하인은 일관되게 남자에 대해 설명했다.
“170 초반에 앞머리가 눈썹 아래 정도. 얼굴형은 조금 둥근 편인가? 어디서 본 적 있는 외모고.”
나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며, 특징도 없다고 했다. 아니, 특징이라고 설명해 주는 말이 있긴 했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라 도움이 될 턱이 없었다.
“좆같애.”
“예?”
“눈이 말이야. 뭔가 달랐는데.”
차라리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김 서방도 찾아오라고 할 것 같아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속으로만 씨부렁거릴 뿐이었다. 그걸 듣고 어떻게 찾느냐고.
하인이 크리스탈로 만든 재떨이를 매만졌다. 재떨이를 들었다 놓았다 할 때마다 재길의 눈동자가 함께 움직였다. 이제나저제나 재떨이가 날아올까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근방에 자리라도 깔라 그래. 분명 그 어디에 사는 놈이니까.”
하인은 분명 주변에 살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 확신이 비록 맨발에 슬리퍼, 그리고 추리닝을 입고 있던 복장과 감에 의존한 것이긴 했지만.
“……일주일째 그러고 있지만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워낙 한두 명이여야 말이죠.”
손아귀에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던 재떨이가 옆으로 밀쳐졌다. 한결 안심한 재길이 말을 덧붙인다.
“주택가잖습니까, 형님. 범위도 넓은데다가, 지갑에 대해 물어도 안다는 사람도, 의심스럽게 대응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씨발.”
하인은 그날 밤에 마주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전반적으론 기억 속에 아주 잘 담겨 있었지만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렇다 할 특징이 없는 얼굴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마주한 눈동자가 무언가 달랐지만 설명하기 어려웠고, 그가 입고 있던 옷차림 역시 추리닝인 것은 확실했지만 정확한 색감이나 형태가 기억나지 않았다. 또한 지팡이에 대한 건 일찍이 그의 기억 속에 없었다.
하인이 찌푸려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머릿속에선 자연스럽게 그날의 일이 펼쳐졌다. 부딪치고, 넘어지고, 지갑을 주는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 가자니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분노와 허탈감에 이가 갈렸다. 행여 우연히 스치게 된다면 바로 저 새끼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남수는?”
“남수도 딱히 진전이 없는 모양입니다. 거래하러 가는 당일까지만 해도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종적이 묘연하답니다.”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재길을 보며 하인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양쪽 다 제 맘에 안 들었다. 특히 남수에게 맡긴 일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 배알이 뒤틀렸다. 자신에게 칼빵을 놓은 새끼가 지금까지 무사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열흘 동안 코빼기도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전부 다?”
“예. 이미 와해된 조직이라 누가 남았는지, 뭘 하고 지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문 거 같습니다.”
“그 새끼들 두목은?”
“아직 교도소에 수감 중이랍니다.”
“……계속 알아봐. 찾으면 당장 연락하고.”
남수에게로 화제가 돌아가자 재길은 반색하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수에게 알아서 전하겠다며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물러선다. 하지만 그런 재길을 붙잡고 하인이 쐐기를 박았다.
“박재길, 넌 일주일 안에 무조건 찾아와.”
재길을 압박하듯 시선을 마주한 하인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룸을 나서자 예의 그 시끄러운 소리가 쾅쾅 귓가를 때렸다.
“소리 좀 줄여.”
자신의 뒤를 따르는 재길에게 하인이 퉁명스레 외쳤다.
“예?”
“음악 소리 좀 줄이라고.”
가게가 그의 소유이긴 했지만 나이트클럽이었다.
“……형님, 아무리 싫으셔도 나이트클럽은 분위기입니다. 조용한 나이트클럽을 누가 찾습니까.”
“오지 말라 그래.”
퉁명스레 되받아친 하인이 룸 라인을 지나 홀을 향해 걸었다. 한 박자 틈을 주며 재길이 하인의 뒤를 따랐다. 마중할 겸으로 따라나서던 길이었는데, 하인이 입구를 지나쳐 버렸다.
“형님, 사무실로 가시는 거 아닙니까?”
하인은 제 뒤를 따라오는 재길을 무시한 채 조잡한 내부를 훑었다. 그러곤 무슨 변덕인지 홀 주위를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
“나 안 갈래.”
‘그래, 이건 아니지.’
연호가 마지못해 승낙했던 이야기를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차연호, 말 번복하기 없다고 이미 약속했다?”
“그냥 너희들끼리 갔다 와.”
“그게 말이 되냐? 당사자가 넌데.”
“그럼 케이크에 불이나 붙여 주라. 어?”
“4년 내내 안 지겹냐? 아니지. 횟수로 따지자면 22년이지. 22년이면 지겨울 때지! 막말로 스물세 살이 술을 못 먹는 나이도 아니고.”
진우의 성화에 연호가 입을 꾹 세게 여몄다. 딱히 진우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서가 아니었다. 지겨운 것도 볼 수 있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가족의 생일만 해도 1년에 세 번이고 자신과 진우의 생일을 합치면 합이 1년에 다섯 번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게 된 이후로는 언제나 그것이 새로웠다. 케이크의 맛은 언제나 달랐고 펑펑 터지는 폭죽에 깜짝 놀라는 것도 여전했다. 오히려 지겨운 것은 그 자리가 아니라 그것을 불편해하는 자신이다.
‘축하’를 전제로 하는 생일 파티에 연호는 진심으로 축하해 본 적이 없었다. 사고 이전에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그 자리에 임했는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연례행사처럼 꼬박꼬박 생일 파티를 챙겼을지도 의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생일 파티를 챙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연호는 매번 그 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축하할 마음도 없이 자리를 함께하는 데에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생겨난 이러한 일들에 거부감도 느끼며, 과연 자신의 인생이 과연 축복일까 하는 의심도 끊임없이 했다.
“오, 이거 괜찮다.”
사색에 빠져 있던 연호가 진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옷?”
“새 옷 같은데? 정장 같기도 하고, 세트 같기도 하고. 베이지색 니트랑 남색 슬랙스 바지랑 재킷.”
그런 옷이 있었나. 연호가 옛 기억을 뒤적였다. 그러다 금방 생각하기를 그만둬 버렸다. 어머니가 사 놓았겠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눈가를 찌르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다 문득 옷의 출처가 떠올랐다. 수능을 앞두고 만난 이 시대의 독신 여성인 고모가 일찍이 스무 살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사 준 옷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고모와 두 시간 넘게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옷을 사곤 대학교 입학식 때 입고 가면 인기 좋겠다며 너스레를 떨던 게 선명하게 기억났다.
“좋았어. 낙찰! 이걸로 갈아입자.”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연호는 과연 자신이 그 옷을 입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안 간다니까. 나 안 갈 거라고. 너희끼리 갔다 와.”
“네가 입으면 딱이겠다.”
거듭되는 거절에도 진우는 옷걸이에 걸쳐진 옷을 벗겨 연호에게 쥐여 주었다.
“진우야.”
연호가 기죽은 목소리로 진우를 불렀다. 그제야 진우가 회유하듯 연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네가 어때서, 인마. 너 기억 안 나? 우리 학교에서 너 잘생겼다고 쫓아다닌 후배가 몇이고, 선배가 몇이냐. 발렌타인데이에 받았던 그 어마어마한 초콜릿은? 고백은 어떻고. 차연호. 너 아직 안 죽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보이는 것도 티 안 나. 진짜. 내가 보증해.”
진우의 말처럼 연호는 훈남에 가까웠다. 다듬은 것 같은 깔끔한 눈썹에 속쌍꺼풀을 지닌 선한 눈, 또렷한 입술 선에 적당히 솟은 코가 잘생긴 미남은 아니었지만 반듯하게 생긴 얼굴이 호감형이었다. 173이라는 신장도 작은 얼굴 탓에 실제보다 더 크게 보였다.
연호는 위로 같은 진우의 말에 쓰게 웃었다. 진우가 말하는 그 모든 일들은 과거였다. 한때에 불과했고, 이따금 이렇게 거론되는 추억들이 연호에겐 가시가 될 뿐이었다.
“알았어.”
연호가 허벅지 사이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거머쥐었다. 어차피 끝까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꽤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사고 소식을 들은 며칠 상간에도 많은 친구들이 머물렀지만 지금은 진우뿐이었다. 한 편의 신기루처럼 친구들이 죄다 사라져 버린 와중에 진우만이 현존하는 오아시스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자 찬란했던 과거와의 유일한 연결 고리.
“안 이상해?”
연호는 학생 때 이후로 입어 본 적 없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불편하고 답답해서 자꾸만 손이 셔츠와 니트를 끌어 내린다.
“야, 가만 좀 있어라.”
연호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난 진우는 손에 왁스를 덜어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연호는 미용실에서나 나는 예의 그 냄새가 썩 낯설었다. 한 올, 한 올 넘어가는 머리카락도 낯설었다.
“왁스는 좀…… 하지 말지.”
“씁! 차연호, 움직이지 마라.”
혀를 차는 소리에 연호가 금방 실소를 터트렸다. 자신의 기억 속에 진우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원숭이를 닮은 순진한 얼굴이 전부였다. 4년의 시간 동안 얼마만큼 변화했는지 알 수 없었고, 또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상상한들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았다.
“좋았어.”
흡족해하는 진우의 목소리에 연호가 마지못해 웃었다.
***
“자, 잠깐만.”
연호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조용한 밤거리가 아닌 시끌벅적한 번화가에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배경 음악처럼 깔리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소리.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무지막지한 발소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소 떼처럼 달려드는 것 같은 발소리에 연호는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췄다. 지나칠 때마다 부딪치는 건 물론, 발을 밟고 가거나 아예 퍽퍽 때리듯 부딪쳐 오는 사람도 있었다.
연호는 깍지 낀 진우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이 시뻘겠다.
“집에 갈래.”
깍지 낀 손에 팔짱까지 끼며 연호가 고개를 저었다. 행여나 진우의 손을 놓칠까 두려웠다.
“무서워?”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연호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진우를 찾으려는 일련의 행동이었다.
진우는 손을 들어 연호의 볼을 쿡 찔렀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기 시작한 연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이지 않는 연호에게 세상의 범위는 아주아주 좁았다. 집이 세상의 대부분이었고, 편의점까지 가는 486걸음은 여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늘처럼 이렇게까지 멀리멀리 나오는 것은 생전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처음 착륙한 연호는 서둘러 대사관을 찾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진짜, 이건 아닌 거 같아.”
불안하기만 한 마음에 연호가 입술을 연신 깨물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던 진우는 깍지 낀 손을 획 빼더니 연호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비슷했던 두 사람의 키가 이제는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뭐가 문제야. 걱정 마.”
그게 문제였다. 익숙한 곳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연호에게 낯선 곳에서 온전히 의지할 대상이 진우밖에 없다는 것. 연호는 집을 나오기 전 흰 지팡이를 두고 온 게 후회되었다. 진우가 티를 내면 안 된다며 단칼에 잘라 버린 탓에 차마 챙기지 못했다.
‘잃어버리면 어떡해? 만약, 만에 하나라도 말이지.’
상상만으로 연호는 발밑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까마득한 세계가 더욱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진짜 괜찮다니까. 별일 없을 거라고. 서범이랑 재진이도 있잖아.”
그다지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연호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 진짜 나 두고 가면 안 돼.”
“짜식, 생각을 해도. 걱정 마,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은근히 나 못 믿는 거 같단 말이야.”
“아냐, 믿지. 내가 믿을 게 너 말고 누가 있어.”
입가에 함박 미소를 띠운 진우가 연호의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단정하게 쓸어 올린 머리카락이 한순간에 너저분해졌다.
“아오씨, 젠장. 얼마나 공들여 만진 머린데.”
진우의 단말마에 연호가 설게 웃었다. 그렇게 긴장을 풀기를 몇 분.
진우와 어깨를 나란히 한 연호가 ‘어서 오십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지하 계단을 밟았다.
0. 운명으로부터 (3)
남수가 아는 그는 태어날 때부터가 뒷골목에서 나고 자란 놈이었다. 두목을 통해 처음 하인을 본 게 열네 살이었고, 그때에 비해 외형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독종 같은 그의 성격은 한결같이 변함이 없었다.
번지르르한 외모 탓에 가끔 선량해 보이는 거 같은 착각도 들지만, 사실 그는 상상 이상으로 냉정하고 인간미가 없었다. 같은 식구면서도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그 역시 실수를 하지 않았다. 말하기 입이 아플 정도로 이 바닥에 잔뼈가 굵은 남자였다.
“형님? 예? 누가 그랬습니까? 어떤 개호로 잡놈들이 서강파 부두목을 이렇게 만든답니까? 예?”
혼자서 계속 묻던 남수가 흥분해 소리쳤다. 나중에는 서강파에 대한 도전이라는 등의 시답잖은 소리까지 흘렸고, 구겨진 얼굴로 내내 귓가를 어지럽게 때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하인이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오남수.”
하인은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사납게 노려보더니 맞부딪친 잇새로 조곤고곤 남수를 불렀다. 아니, 그 목소리는 곧 터질 활화산처럼 잔잔하게 들끓고 있었다. 남수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괜히 자신에게 불똥이 튈 거 같아 뒷목이 서늘해지자 근거리에 있던 몸을 슬쩍 뒤로 물렸다.
“……네. 형님.”
“다시 한번 말해 봐. 누구랑 무슨 거래였다고?”
짜증스레 하인이 물었다. 잇새로 거친 숨이 터졌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곧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남서파에 박호필이라고 그 짝 두목 오른팔 정도 되는 놈입니다. 총기 여섯 자루랑 마약 거래였고요. 근데요, 형님. 치료가 먼저인 거 같은데요.”
남수는 이미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전화할 기색이었고, 하인 역시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남수의 모습이 퍼즐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맞춰지길 반복하는 중이었다.
“과다 출혈로 쇼크라도 오는 거 아닙니까.”
하인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재킷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헛손질이 두 번 연속으로 이어지자 신경질적으로 욕을 뱉었다. 이윽고 담배 어딨냐며 화를 내자 남수가 재빨리 주머니 안에서 담배를 꺼내어 하인에게 건넸다.
불까지 붙인 뒤 남수가 물었다.
“형님, 재길이한테 연락합니다?”
“알아서 해.”
허락이 떨어지자 남수가 재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에 하인은 폐부 깊숙이 담배를 빨아들이며 상처를 잊으려고 애를 썼고, 한편으론 그들의 얼굴을 잊을 새라 다시금 상기해 보았다. 하지만 술에 물 탄 듯 기억이 차차 흐려지고 있었다.
선명하던 그들의 이목구비가 사라지더니 어느새 가로등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흐릿한 형체만 남는다.
“씨발.”
자신의 기억이 좆같은지, 사람의 기억이 좆같은 건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짓이기며 하인이 기억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여섯 명.”
“예?”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남수가 되물었다.
“거기에 있던 새끼들 말이야.”
하인이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내 생각엔 남서파 새끼들이 맞는 거 같거든?”
하인은 실제로 남서파 조무래기들의 얼굴을 단 한 명도 알지 못했다. 조무래기의 두목조차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단서는 남서파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과 직감이었다.
“근데 그 씹새들이 뭐하러 그랬냐고. 두목도 없는 판국에 겁대가리도 많은 새끼들이.”
“그러니까 칼침을 놓은 새끼들이 남서파 놈들이라구요? 거래는요?”
거래. 그 두 단어에 하인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손안에서 짓이겼다.
“좆됐지.”
하인이 굵직한 숨을 삼켰다.
“그러니까 알아 와.”
마주친 시선에 남수가 ‘네?’ 하고 되물었다. 그리고 때마침 철문이 열리며 헐레벌떡 재길이 뛰어 들어왔다. 하인의 몰골을 눈으로 보고는 상당히 놀란 그는 남수에게 눈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남수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하인이 둘을 갈라놓았다.
“가 봐.”
남수도 재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를……’이라고 먼저 말을 한 것은 남수였고, 그 바람에 불똥이 남수에게로 튀었다.
“못 들었어?”
“예?”
바닥으로 내던진 담배를 하인이 발끝으로 비벼 껐다. 몸도 정신도 흐린 상태에 단단히 꼬인 심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지경이었다. 하인이 곧 칠 것 같은 기세로 남수를 쳐다보았다.
남수가 그제야 방금 하인이 했던 말을 되새기며 허겁지겁 사무실을 나섰다. 하인이 새 담배를 꺼낼 동안 무슨 상황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재길이 눈치껏 전화를 걸었다.
“박재길입니다. 하인 형님이 다쳤습니다. 네? 상처가…….”
칼에 찔린 듯했지만 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길이 넌지시 하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하인은 소파에 기대어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예. 아마도 칼에. 네. 출혈이 많은 것 말고는……. 네, 의식도 있습니다. 부위요?”
은근슬쩍 또 대화 내용을 흘렸고, 하인의 손짓을 보고 재길이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바로 전달했다.
“옆구립니다. 네. 혈액형은 AB형입니다. 네, 네.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마친 재길이 바닥에 내팽개친 재킷을 주워 들었다. 그것을 손짓으로 뺏어 든 하인은 재킷의 양쪽 주머니와 안쪽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들에게서 빼앗은 물건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을 같은 곳을 뒤적이던 하인이 재킷의 주머니를 꽉 쥐었다.
“……지갑.”
“예?”
뒤늦게 생각난 것이었다. 지갑에 넣었던 그 물건을.
하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대한 탄식과 30년 인생에 있어 가장 색다른 하루를 보내고 난 기쁨이 뒤섞인 웃음소리였다.
‘마가 꼈군. 그것도 거대한 마가.’
하인은 제 손으로 지갑을 남자에게 건네준 때를 떠올렸다. 어째서 지갑 속에 넣어 둔 걸 잊어버렸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재길아.”
“네, 형님.”
“사람 하나만 찾아와. 20대 초반이고, 남자. 얼굴은 평범해. 키는 아마…… 네 어깨 정돈 거 같고.”
재길이 영문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남자가 어디 한둘이랴. 하지만 상세한 것을 묻자니 하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친 하인은 늘어지듯 눈꺼풀을 감더니 소파에 누웠다. 감은 눈 밑으로 눈동자가 굴러갔다.
“그 새끼가 물건을 갖고 있거든?”
미친 듯 졸음이 쏟아졌다.
1. 별이 있었다. (1)
하인은 룸살롱에서 태어났다. 15년을 룸살롱의 쪽방에서 살았고, 그곳을 나오면서 그와 엇비슷한 장소는 일부러라도 피해 다녔다. 시끄럽고 더럽다는 게 주된 이유였고, 주변이 지저분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공간을 싫어하는 성격 역시 그때의 영향이었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공간 안에는 항상 쓰레기가 굴러다녔고 시큼한 썩은 내가 났다. 안팎으로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런 좁은 곳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두목이었다.
그리고 한 해 전, 부두목이라는 직책을 받으면서 두목의 명의로 된 나이트클럽의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조용한 술집이면 생각이라도 해 보겠건만, 하인에게 있어서 나이트클럽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영역이었다.
두목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제 명의로 가지고 있으면서 하인은 그렇게 6개월을 방치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두목은 적자에 대한 돈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그 뒤 하인은 차선책으로 나이트클럽을 재길에게 위임해 버렸다. 소유권을 제외한 모든 권리를.
바지사장인 하인이 자신의 소유인 나이트클럽에 얼굴을 내미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끽해야 1년에 두 번이었다. 두목의 생일과 자신의 생일.
하지만 하인은 현재 나이트클럽 입구에 있었다. 알고 있는 정보는 다 주었건만 재길과 남수에게서 만족할 만한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기간이 열흘이었고, 하인은 뒤틀린 심기로 감감무소식인 재길을 찾아왔다.
‘은하수 NIGHT CLUB’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끄러운 소음이 하인의 얼굴을 주물렀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았던 기분이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무전기를 통해 연락을 받은 재길이 사무실에서 곧장 뛰어왔다. 어둡고 복잡한 조명 사이에서도 하인은 한눈에 튀었다. 단순히 그가 자신이 모시는 형님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내뿜는 분위기 자체가 무시무시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재길은 벌써부터 뒷목이 서늘했다. 불똥이 튀어도 어지간히 튀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하인을 조용한 곳으로 안내했다.
룸으로 희미하게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인은 곧장 소파에 앉았다.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어 물자 재길이 잽싸게 재떨이를 하인의 앞으로 옮겼다. 그러곤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하인의 앞에 섰다.
“찾았어?”
“아직 못 찾았습니다.”
“씨발, 왜 못 찾아?”
그 말이 튀어나올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면전에 대고 들으니 재길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실재로 한숨을 내쉬진 않았지만 그만큼 마음이 답답했다. 중요하다는 물건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에게 맡겼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훔쳐 갔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 이상 자세히 물으려고 하면 찢어 죽일 것만 같아 입을 더 놀리기도 힘들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너무 적어서 찾기가 조금 애매합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더 확실했지만 재길은 거기까지 말할 용기가 없었다. 일전에도 못 찾을 거 같다고 알렸더니 찾을 때까지 오지 말라며 쫓아낸 사람이었다.
“왜 못 찾아?”
재길은 예의 그 남자를 찾기 위해 하인에게 물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엔 정신이 혼미해서 무리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음 날에도 하인은 일관되게 남자에 대해 설명했다.
“170 초반에 앞머리가 눈썹 아래 정도. 얼굴형은 조금 둥근 편인가? 어디서 본 적 있는 외모고.”
나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며, 특징도 없다고 했다. 아니, 특징이라고 설명해 주는 말이 있긴 했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라 도움이 될 턱이 없었다.
“좆같애.”
“예?”
“눈이 말이야. 뭔가 달랐는데.”
차라리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김 서방도 찾아오라고 할 것 같아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속으로만 씨부렁거릴 뿐이었다. 그걸 듣고 어떻게 찾느냐고.
하인이 크리스탈로 만든 재떨이를 매만졌다. 재떨이를 들었다 놓았다 할 때마다 재길의 눈동자가 함께 움직였다. 이제나저제나 재떨이가 날아올까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근방에 자리라도 깔라 그래. 분명 그 어디에 사는 놈이니까.”
하인은 분명 주변에 살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 확신이 비록 맨발에 슬리퍼, 그리고 추리닝을 입고 있던 복장과 감에 의존한 것이긴 했지만.
“……일주일째 그러고 있지만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워낙 한두 명이여야 말이죠.”
손아귀에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던 재떨이가 옆으로 밀쳐졌다. 한결 안심한 재길이 말을 덧붙인다.
“주택가잖습니까, 형님. 범위도 넓은데다가, 지갑에 대해 물어도 안다는 사람도, 의심스럽게 대응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씨발.”
하인은 그날 밤에 마주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전반적으론 기억 속에 아주 잘 담겨 있었지만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렇다 할 특징이 없는 얼굴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마주한 눈동자가 무언가 달랐지만 설명하기 어려웠고, 그가 입고 있던 옷차림 역시 추리닝인 것은 확실했지만 정확한 색감이나 형태가 기억나지 않았다. 또한 지팡이에 대한 건 일찍이 그의 기억 속에 없었다.
하인이 찌푸려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머릿속에선 자연스럽게 그날의 일이 펼쳐졌다. 부딪치고, 넘어지고, 지갑을 주는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 가자니 스스로에 대한 짜증과 분노와 허탈감에 이가 갈렸다. 행여 우연히 스치게 된다면 바로 저 새끼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남수는?”
“남수도 딱히 진전이 없는 모양입니다. 거래하러 가는 당일까지만 해도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종적이 묘연하답니다.”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재길을 보며 하인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양쪽 다 제 맘에 안 들었다. 특히 남수에게 맡긴 일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 배알이 뒤틀렸다. 자신에게 칼빵을 놓은 새끼가 지금까지 무사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열흘 동안 코빼기도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전부 다?”
“예. 이미 와해된 조직이라 누가 남았는지, 뭘 하고 지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문 거 같습니다.”
“그 새끼들 두목은?”
“아직 교도소에 수감 중이랍니다.”
“……계속 알아봐. 찾으면 당장 연락하고.”
남수에게로 화제가 돌아가자 재길은 반색하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수에게 알아서 전하겠다며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물러선다. 하지만 그런 재길을 붙잡고 하인이 쐐기를 박았다.
“박재길, 넌 일주일 안에 무조건 찾아와.”
재길을 압박하듯 시선을 마주한 하인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룸을 나서자 예의 그 시끄러운 소리가 쾅쾅 귓가를 때렸다.
“소리 좀 줄여.”
자신의 뒤를 따르는 재길에게 하인이 퉁명스레 외쳤다.
“예?”
“음악 소리 좀 줄이라고.”
가게가 그의 소유이긴 했지만 나이트클럽이었다.
“……형님, 아무리 싫으셔도 나이트클럽은 분위기입니다. 조용한 나이트클럽을 누가 찾습니까.”
“오지 말라 그래.”
퉁명스레 되받아친 하인이 룸 라인을 지나 홀을 향해 걸었다. 한 박자 틈을 주며 재길이 하인의 뒤를 따랐다. 마중할 겸으로 따라나서던 길이었는데, 하인이 입구를 지나쳐 버렸다.
“형님, 사무실로 가시는 거 아닙니까?”
하인은 제 뒤를 따라오는 재길을 무시한 채 조잡한 내부를 훑었다. 그러곤 무슨 변덕인지 홀 주위를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나 안 갈래.”
‘그래, 이건 아니지.’
연호가 마지못해 승낙했던 이야기를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차연호, 말 번복하기 없다고 이미 약속했다?”
“그냥 너희들끼리 갔다 와.”
“그게 말이 되냐? 당사자가 넌데.”
“그럼 케이크에 불이나 붙여 주라. 어?”
“4년 내내 안 지겹냐? 아니지. 횟수로 따지자면 22년이지. 22년이면 지겨울 때지! 막말로 스물세 살이 술을 못 먹는 나이도 아니고.”
진우의 성화에 연호가 입을 꾹 세게 여몄다. 딱히 진우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서가 아니었다. 지겨운 것도 볼 수 있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가족의 생일만 해도 1년에 세 번이고 자신과 진우의 생일을 합치면 합이 1년에 다섯 번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게 된 이후로는 언제나 그것이 새로웠다. 케이크의 맛은 언제나 달랐고 펑펑 터지는 폭죽에 깜짝 놀라는 것도 여전했다. 오히려 지겨운 것은 그 자리가 아니라 그것을 불편해하는 자신이다.
‘축하’를 전제로 하는 생일 파티에 연호는 진심으로 축하해 본 적이 없었다. 사고 이전에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그 자리에 임했는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연례행사처럼 꼬박꼬박 생일 파티를 챙겼을지도 의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생일 파티를 챙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연호는 매번 그 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축하할 마음도 없이 자리를 함께하는 데에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생겨난 이러한 일들에 거부감도 느끼며, 과연 자신의 인생이 과연 축복일까 하는 의심도 끊임없이 했다.
“오, 이거 괜찮다.”
사색에 빠져 있던 연호가 진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옷?”
“새 옷 같은데? 정장 같기도 하고, 세트 같기도 하고. 베이지색 니트랑 남색 슬랙스 바지랑 재킷.”
그런 옷이 있었나. 연호가 옛 기억을 뒤적였다. 그러다 금방 생각하기를 그만둬 버렸다. 어머니가 사 놓았겠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눈가를 찌르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다 문득 옷의 출처가 떠올랐다. 수능을 앞두고 만난 이 시대의 독신 여성인 고모가 일찍이 스무 살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사 준 옷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고모와 두 시간 넘게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옷을 사곤 대학교 입학식 때 입고 가면 인기 좋겠다며 너스레를 떨던 게 선명하게 기억났다.
“좋았어. 낙찰! 이걸로 갈아입자.”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연호는 과연 자신이 그 옷을 입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안 간다니까. 나 안 갈 거라고. 너희끼리 갔다 와.”
“네가 입으면 딱이겠다.”
거듭되는 거절에도 진우는 옷걸이에 걸쳐진 옷을 벗겨 연호에게 쥐여 주었다.
“진우야.”
연호가 기죽은 목소리로 진우를 불렀다. 그제야 진우가 회유하듯 연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네가 어때서, 인마. 너 기억 안 나? 우리 학교에서 너 잘생겼다고 쫓아다닌 후배가 몇이고, 선배가 몇이냐. 발렌타인데이에 받았던 그 어마어마한 초콜릿은? 고백은 어떻고. 차연호. 너 아직 안 죽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보이는 것도 티 안 나. 진짜. 내가 보증해.”
진우의 말처럼 연호는 훈남에 가까웠다. 다듬은 것 같은 깔끔한 눈썹에 속쌍꺼풀을 지닌 선한 눈, 또렷한 입술 선에 적당히 솟은 코가 잘생긴 미남은 아니었지만 반듯하게 생긴 얼굴이 호감형이었다. 173이라는 신장도 작은 얼굴 탓에 실제보다 더 크게 보였다.
연호는 위로 같은 진우의 말에 쓰게 웃었다. 진우가 말하는 그 모든 일들은 과거였다. 한때에 불과했고, 이따금 이렇게 거론되는 추억들이 연호에겐 가시가 될 뿐이었다.
“알았어.”
연호가 허벅지 사이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거머쥐었다. 어차피 끝까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꽤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사고 소식을 들은 며칠 상간에도 많은 친구들이 머물렀지만 지금은 진우뿐이었다. 한 편의 신기루처럼 친구들이 죄다 사라져 버린 와중에 진우만이 현존하는 오아시스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자 찬란했던 과거와의 유일한 연결 고리.
“안 이상해?”
연호는 학생 때 이후로 입어 본 적 없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불편하고 답답해서 자꾸만 손이 셔츠와 니트를 끌어 내린다.
“야, 가만 좀 있어라.”
연호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난 진우는 손에 왁스를 덜어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연호는 미용실에서나 나는 예의 그 냄새가 썩 낯설었다. 한 올, 한 올 넘어가는 머리카락도 낯설었다.
“왁스는 좀…… 하지 말지.”
“씁! 차연호, 움직이지 마라.”
혀를 차는 소리에 연호가 금방 실소를 터트렸다. 자신의 기억 속에 진우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원숭이를 닮은 순진한 얼굴이 전부였다. 4년의 시간 동안 얼마만큼 변화했는지 알 수 없었고, 또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상상한들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았다.
“좋았어.”
흡족해하는 진우의 목소리에 연호가 마지못해 웃었다.
“자, 잠깐만.”
연호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조용한 밤거리가 아닌 시끌벅적한 번화가에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배경 음악처럼 깔리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소리.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무지막지한 발소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소 떼처럼 달려드는 것 같은 발소리에 연호는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췄다. 지나칠 때마다 부딪치는 건 물론, 발을 밟고 가거나 아예 퍽퍽 때리듯 부딪쳐 오는 사람도 있었다.
연호는 깍지 낀 진우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이 시뻘겠다.
“집에 갈래.”
깍지 낀 손에 팔짱까지 끼며 연호가 고개를 저었다. 행여나 진우의 손을 놓칠까 두려웠다.
“무서워?”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연호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진우를 찾으려는 일련의 행동이었다.
진우는 손을 들어 연호의 볼을 쿡 찔렀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기 시작한 연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이지 않는 연호에게 세상의 범위는 아주아주 좁았다. 집이 세상의 대부분이었고, 편의점까지 가는 486걸음은 여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늘처럼 이렇게까지 멀리멀리 나오는 것은 생전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처음 착륙한 연호는 서둘러 대사관을 찾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진짜, 이건 아닌 거 같아.”
불안하기만 한 마음에 연호가 입술을 연신 깨물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던 진우는 깍지 낀 손을 획 빼더니 연호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비슷했던 두 사람의 키가 이제는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뭐가 문제야. 걱정 마.”
그게 문제였다. 익숙한 곳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연호에게 낯선 곳에서 온전히 의지할 대상이 진우밖에 없다는 것. 연호는 집을 나오기 전 흰 지팡이를 두고 온 게 후회되었다. 진우가 티를 내면 안 된다며 단칼에 잘라 버린 탓에 차마 챙기지 못했다.
‘잃어버리면 어떡해? 만약, 만에 하나라도 말이지.’
상상만으로 연호는 발밑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까마득한 세계가 더욱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진짜 괜찮다니까. 별일 없을 거라고. 서범이랑 재진이도 있잖아.”
그다지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연호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 진짜 나 두고 가면 안 돼.”
“짜식, 생각을 해도. 걱정 마,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은근히 나 못 믿는 거 같단 말이야.”
“아냐, 믿지. 내가 믿을 게 너 말고 누가 있어.”
입가에 함박 미소를 띠운 진우가 연호의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단정하게 쓸어 올린 머리카락이 한순간에 너저분해졌다.
“아오씨, 젠장. 얼마나 공들여 만진 머린데.”
진우의 단말마에 연호가 설게 웃었다. 그렇게 긴장을 풀기를 몇 분.
진우와 어깨를 나란히 한 연호가 ‘어서 오십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지하 계단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