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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아이에게 그만 돌아가라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피가 줄줄 새던 몸의 상처들도 치료해 주었고, 굶주린 아이에게 음식도 주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제야와 함께 있었다. 벌써 나흘째였다. 이 이상 숲에 머문다면 마을의 인간들이 아이를 이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자신과 함께 있는 모습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가뜩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질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이레는 제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꽃을 따며 놀고 있었다. 인간의 마을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많이 피어나 있으니, 아이가 그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제야가 아이를 불렀다.
“인간의 아이야.”
“네, 아저씨!”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이가 씩씩하게 답하며 쪼르르 제야의 앞에 섰다. 키워 본 적은 없으나 들어 본 적은 있는, 인간계의 애완동물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아이의 큰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제야는 저도 모르게 짧게 웃어 버렸다. 아이는 그 모습에 더 환하게 생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뒤이어 나온 제야의 말에 아이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이제 그만 가 보거라.”
“……네?”
“이곳은 인간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너는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제야로서는 당연한 말을 한 것이었지만 아이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한 듯, 말간 얼굴이 순식간에 겁을 집어먹었다. 제야는 미간을 좁혔다. 여태껏 울면 울었지 겁을 먹지는 않았던 아이다. 마을로 돌아가라는 말에 왜 저런 표정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아이의 가족도, 집도, 모든 것이 있을 텐데.
“하, 하지만…….”
“돌아가는 길은 저기 위의 붉은 새가 알려 줄 터이니, 길을 잃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숲을 혼자 나가기가 무서운가 싶어 뒷말을 덧붙였지만 아이는 여전히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아주 무서운 말을 들었다는 듯, 그 작은 얼굴에 조금씩 공포가 어린다.
“저, 가, 가요……? 가야 해요……?”
마치 매달리듯 아이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제야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이는 꼭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은 얼굴을 한 채, 동그란 머리를 바닥을 향해 푹 숙였다. 그리고는 꽃을 들고 있던 작은 손을 꼼지락거린다.
제야는 이 아이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어 말을 아꼈다. 잠시 침묵이 일었다. 바람이 불어 풀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새들이 맑게 노래하는 소리, 그리고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
놀란 제야가 아이 쪽으로 얼굴을 숙였다. 숙인 얼굴 밑으로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제야는 그야말로 앓아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의 아이 주제에 요 며칠간 자신을 아주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제야는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왜 또 우느냐.”
“…….”
“내가 무서우냐?”
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예상했다. 도통 자신에게 겁을 먹지 않는 아이이니, 이제 와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무섭다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제야는 방금 전 자신이 아이에게 했던 말을 되짚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울지?”
“…….”
“집에 가는 것이 싫은가?”
그 말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울어댄 것인지 얼굴이 또다시 눈물범벅이었다. 제야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며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대답을 해 보아라. 그래야 내가 알 것 아니냐.”
“집이…….”
아이가 흐끅흐끅대며 대답했다. 작은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지만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커다란 푸른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니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저는…… 돌아갈 집이…….”
“그래, 너의 집이.”
“없어요…….”
말을 하던 아이는 서글픔이 터진 것인지 아주 서러운 소리를 냈다. 제야는 잠시 멈칫했다. 돌아갈 집이 없다, 라…….
“마, 마을에 돌아가면…… 저는…… 호, 혼자…….”
“…….”
“다들…… 나를 싫어해서…… 내가, 마을에 있는 거…… 다들, 다들 싫어해서…….”
그래, 그렇구나. 아이의 온몸에 났던 상처. 제 몸을 돌볼 생각도 않고 제야 몸의 상처부터 걱정하던 모습. 먹고 싶은 것이 없느냐 묻는 말에 혼이 날까 눈치를 보면서 떠듬떠듬 대답하던 작은 목소리.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돌보아 주는 사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작고 어린데, 미움까지 받는 모양이었다. 자는 곳은 보나마나 형편없을 테고, 먹을 것은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처럼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렇듯 처음 보는 자신을 의지할 만큼, 아이는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자신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 옷자락을 쥐는 손길에 제야는 마음이 묵직해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눈앞의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는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서러움과 이곳에서마저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여전히 눈물을 펑펑 흘려대고 있었다. 그 작은 몸에서 이 많은 눈물이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손이 자유로웠다면 머리를 쓰다듬어 줄 텐데. 스스로가 한 생각을 채 인식하지도 못하고 제야는 나지막이 아이를 달랬다.
“그만 울거라.”
“지, 지, 집에 가면…….”
“알았으니 그만 울어.”
제야의 목소리가 한층 다정해진 것을 느꼈는지 아이가 주춤주춤 고개를 들었다. 애정이 부족한 아이는 애정에 예민해진다. 눈앞의 이가 자신을 미워하는지 어여삐 여기는지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이다. 커다란 눈이 깜빡일 때마다 아직 갈무리하지 못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제야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시이네.”
정확히 심장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나무줄기가 팽창하는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온몸을 타고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나 제야는 덤덤한 얼굴을 유지했다. 눈앞의 예민하고 작은 아이가 그 어떠한 이상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부드러운 바람이 제야와 이레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곧, 허공에서 작은 크기의 노란 요정이 뿅하고 나타났다. 온몸이 금색으로 반짝였다. 이레는 멍하니 작은 요정을 바라보았다. ……엄청 예쁘다. 작은 요정이 예를 갖추듯 제야에게 인사를 했다. 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해 주어야 할 일이 있다.”
제야는 힐끔 이레를 바라보았다. 이레는 갑자기 나타나 반짝반짝이며 움직이는 시이네가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우는 것보다는 저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말거라.”
여직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이네가 의아한 듯 눈을 들었다. 바람의 요정 시이네. 빠르고 영리하며 섬세한 바람을 일으키는 이 요정은, 마치 공기에 녹은 듯 조용히 아이의 곁에서 아이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말에 시이네가 의문 어린 표정을 한다. 직감적으로 아이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챈 요정은, 제야에게는 들리나 이레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물었다.
[목적은 감시입니까, 보호입니까?]
시이네가 움직일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금색의 가루를 홀린 듯 바라보는 이레에게 시선을 주며 제야가 평연히 대답했다. 역시, 이레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보호다. 그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게 네가 지켜라.]
[예.]
꾸벅 고개를 숙인 시이네가 스르르 사라졌다. 이레가 사라지는 시이네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이네는 그저 모습을 감춘 것일 뿐, 공기에 녹아 이레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헛된 인간들이 감히 손대지 못하도록 앞으로 시이네가 아이를 지킬 것이다. 주의를 끌던 존재가 사라지자 아이는 다시 제야를 바라보았다. 제야가 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약속하마.”
“…….”
“너를 지켜 주겠다.”
아이는 알까. 몇백 년 만에 하는 이 약속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는 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누군가와의 약속은, 이레뿐 아니라 제야의 마음까지 가득 채웠다.
“그러니 이만 마을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그리고 언제든 다시 오거라.”
“…….”
“절대로 내쫓지 않으마.”
희미하게 짓는 미소에 아이가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아이가 한 걸음 제야에게 다가왔다. 제야는 그런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가 조금 더 힘 있게 제야의 옷자락을 당겼다.
“저, 정말요……?”
“그래.”
“나 정말 또 와도 돼요……?”
“그래.”
“나 안 미워할 거예요?”
떨리는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야가 대답했다.
“그래.”
아이의 얼굴이 또다시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러움과 두려움을 가득 담은 얼굴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벅차오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이가 떨었다. 제야는 아이가 더 울 것을 알면서도, 단단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내 약속하마.”
그리고 숲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
긴 잠을 자고 일어났다. 제야는 낮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오랜만에 보는 빛. 제야는 힘없이 웃어 보였다. 이렇듯 몸을 속박당하고 벌써 수백 년. 제야는 때때로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떤 날은 잠이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뜨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계절이 바뀌고서야 눈을 뜨고는 했다.
그렇듯 길고 짙은 어둠을 깨고 나오면, 제야는 시야를 밝히는 빛을 보고 이렇듯 허망하게 웃어 버렸다. 꿈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왔으나, 그것에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이 우스워서.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제 앞에서 끔뻑끔뻑 나타났다 사라지는 커다란 눈동자를 따라, 제야 역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맑은 웃음소리가 울린다.
“아저씨, 잘 잤어요?”
작은 아이에서 이제는 소년이 된 인간. 이레는 자연스레 숲에서 따온 과일들을 손질하며 제야에게 말을 걸었다. 여전히 잠에 취한 듯 나른한 얼굴로 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레가 손에 든 산딸기를 제야의 입에 넣어 주었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입에 든 것을 씹었다. 톡톡 입 안에서 터지는 느낌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번에는 그래도 좀 짧았어요.”
“……그랬나.”
“네. 열흘 정도?”
문득 제야는 그때를 생각한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쏟아지는 잠을 청하고 눈을 떴을 때, 제 옆에서 얼마나 울어댄 것인지 짓무른 눈을 하고 있던 아이를. 꼬박 두 계절을 잤다. 죽은 줄 알았겠지. 아이는 자신이 목소리를 내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와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아저씨, 아저씨, 하고 엉엉 울던 목소리가 귓가에 선연하다.
제야는 이곳에 갇힌 뒤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생각을, 아이를 만나고 때때로 했다. 손이 자유로웠다면, 작고 여린 등을 토닥여 주었을 텐데. 밤이 되면 반드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꼭 제 몸에 붙어 잠드는 아이가 춥지 않게 안아줄 수 있을 텐데. 수줍게 웃는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을 텐데.
길고 긴 두 계절의 잠을 잔 이후로, 아이는 부쩍 제야의 잠에 예민해졌다. 가끔 제아갸 얕은 숙면을 취하거나 눈을 조금이라도 길게 감고 있는 날에는, 아이는 굉장히 불안한 얼굴로 그 곁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을 맞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제야는 때때로 그 얼굴이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랑스럽다고도.
“아, 그렇지.”
딸기의 꼭지를 따던 이레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촌장님이 바뀐대요. 병세가 더 악화되셨나 봐요.”
“그렇군.”
제야는 밤마다 시이네가 흘려보내 주는 광경들을 떠올렸다. 머리가 새하얗게 바랬고, 굉장히 늙은 인간. 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대 촌장은 그 아들인가?”
“네. 둘째요.”
“둘째라…….”
“키가 굉장히 커요. 아마 우리 마을에서 제일 클 걸요.”
크지 않은 목소리로 조잘거리는 아이를 제야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이네를 곁에 붙여 돌보는 동안 아이를 괴롭히던 손길은 거의 사라졌다. 그 덕에 아이는 이미 잊은 모양이지만, 아이를 괴롭히던 이들 중에서도 촌장의 둘째 아들은 그 주동자 격이었다.
촌장의 아들이라 어른들도 쉬이 말리지 못했고, 마을 아이들은 그에 동조하기 일쑤였다. 처음 만났던 날, 아이의 온몸을 뒤덮은 상처들도 그들이 만든 것이었다. 제야는 차가워진 머리로 그 얼굴을 생각했다. 야비하고, 비열한 인간의 아이. 그런 놈이 한 마을의 촌장이 되다니, 그 마을도 오래가지 못하리라.
하얗고 가는 것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이레가 제야의 앞에서 손을 휘휘 젓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저씨?”
제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레가 싱긋 웃었다.
“성년의 밤이 다가와요.”
“벌써 그리 되었나.”
“네. 저도 곧 성인이에요.”
아이는 여전히 마르고, 하얗고, 또 아주 맑았다. 제야가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군, 그리 되었나……. 성인이라. 시간이 그리 흘렀다. 영영 작을 것만 같았던 아이가 어느새 이리 커, 자신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말한다. 그것은 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마녀의 아들이래요. 그래서 나쁜 아이래요. 내가 죽어야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긴대요. 나는 살아서는 안 된대요.
아이가 지금보다도 작았던 시절, 때때로 잠에서 깬 아이는 굉장히 서글픈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며 울었다. 무엇이든 제야에게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왜 자신이 천덕꾸러기인지, 왜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는지 만큼은 제야에게 말하지 않았다.
알아내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말해 줄 때까지 제야는 기다렸다. 서러운 악몽에서 깨어나 제야의 품을 파고든 아이가 터놓은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의 어머니가 살아생전 마녀라고 의심을 받았던 탓이다. 마녀의 자식은 마녀일 것이라는, 기가 막힐 정도로 단순한 논리였다. 그러나 아이는 제야 역시 자신을 멀리할까 두려워, 아픈 상처를 달고 온 날에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고는 했다.
아이는 마녀가 아니었다. 인간이었다. 타인의 온기와 애정을 바라는 아주 평범한 어린 인간. 그러나 무지한 인간들은 마녀와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하였고, 부모조차 없는 아이는 고립되어 갔다.
아이는 한동안 악몽 속을 헤맸다. 나는 나쁜 아이래요, 못된 아이래요. 잠에서 깬 아이가 그리 울음을 삼키면, 제야는 아이를 품으로 들였다. 이레는 제야에게 작은 손을 뻗었다. 제야는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몸이 자유로웠다면, 하다못해 손이라도 자유로웠다면, 떠는 몸을 안아 주고 아픈 눈물을 닦아 주었을 텐데.
그러나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제야는 대신, 얼굴을 숙여 아이의 따끈한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놀랐는지 아이가 울음을 멈추었다. 동글동글한 눈이 자신을 바라보기에, 제야는 가만히 웃어 주었다.
“내가 너를 무어라 부르지?”
“……이, 인간의…… 아이요…….”
“그래. 너는 인간의 아이다.”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이 애처로웠다. 따뜻한 물을 준비해 놓아야겠다 생각하며, 제야는 말을 이었다.
“마녀 따위가 아니야.”
“……정말요……? 나 사람이에요…?”
“내가 네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느냐.”
아이가 재빨리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너는 사람이야.”
제야는, 자신의 말이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닿기를 바랐다. 더 이상 그런 헛된 소리에 울지 않기를, 서러운 악몽을 꾸고 가슴을 움켜쥐며 깨어나지 않기를. 제야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주 평범하고 어여쁜, 작은 인간이란다.”
그 마음에 보답하듯 아이는 눈을 접어 예쁘게 웃었다. 그리고 제야의 바람대로, 아이가 악몽을 꾸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이는 제야를 볼 때마다 환하게, 기쁘게 웃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질 정도로.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제야를 찾아왔다. 어쩌다 늦어져도 사나흘이 지나면 모습을 보였다. 제야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의 발소리는 가벼웠기 때문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기 쉬웠다. 그러나 제야는 언제나,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아이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마침내 아이가 하얀 얼굴을 내밀며 웃음 지으면, 제야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지루해졌다. 잠깐 인사했다 끝을 보이고 마는 꽃잎에게도 흥미를 잃었다. 아이는 그렇게 제야에게 다가왔다. 흐르듯 아무것도 없던 제야의 인생에, 아주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면…….”
이레가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제야는 늘 그렇듯 잔잔한 눈을 하고 자신의 말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 이레는 그 얼굴이, 그 눈빛이, 참 좋았다.
“제가 무엇이든 아저씨의 소원 하나를 들어줄게요.”
얼마 남지 않은 성년의 밤. 이레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제야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었다. 그동안은 항상 받기만 했으니, 이번만큼은 그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제야는 의외로운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그의 검고 결 좋은 머리카락이 스르르 흔들렸다.
“성년의 날이면, 내가 너를 축하해 줘야지. 원하는 것이 있나?”
“아니오.”
이레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드리고 싶어요.”
“…….”
“무엇이든요.”
비록 가진 것이 없고, 제야처럼 허공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기분 좋은 바람을 일으키는 재주도 없지만, 그래도 하나쯤은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제야는 묘한 얼굴로 이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스르르 웃는다. 그 광경은 마치 그림 같아서, 이레는 시선을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내 가장 큰 소원은, 네가 행복해지는 것이지.”
“…….”
“하지만 네가 주겠다 하니, 조금 더 고민을 해 보마.”
바람. 또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아주 부드럽고, 간지러운 바람이.
“너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웃는 얼굴이 참, 아름다웠다.
***
제야의 옆에서 이레는 많은 일을 했다. 낡은 책을 가져와 가만히 읽기도 했고, 가끔은 그 책을 제야에게 읽어 주기도 했다. 조곤조곤 책을 읽는 아이의 목소리는 무척 기분이 좋았기에, 제야 역시 그 시간이 기꺼웠다. 가끔은 과일을 따러 숲을 서성이기도 하고, 멀리서 날아온 새와 정답게 놀기도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이레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제야에게 다가와 안겨 잠이 들었다. 아이가 커 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것만은 바뀌지 않았다. 혹여 무거울까 불안한 얼굴을 하면서도 이레는 늘 제야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제야에게는 하잘것없는 무게였고 도리어 즐거운 무게감이었다. 잠들기 전에 이레의 이마에 내리는 입맞춤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레는 제야에게 입맞춤을 받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제야의 가슴에 얼굴을 댄 이레는 길게 내린 제야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었다. 언제 만져도 참 부드럽다. 제야는 아이의 손길이 간지러운 듯했지만 별다른 말없이 이레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저씨는…….”
“…….”
“이 숲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깊고 깊은 숲. 숲을 끼고 있는 이레의 마을에서는 이곳을 괴기하고 무서운 것으로 취급했다. 숲에는 두려운 존재가 산다,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들어가면 죽는다, 별의별 얘기가 다 떠돌았다. 한 번이라도 숲에 들어갔던 자는 모두 숲의 얘기만 나오면 치를 떨었다. 그 안에서 나는 끔찍한 것을 봤어. 괴물이 살아 있어. 창백한 얼굴로 입을 모아 모두 그리 말했다.
아이에게 그만 돌아가라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피가 줄줄 새던 몸의 상처들도 치료해 주었고, 굶주린 아이에게 음식도 주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제야와 함께 있었다. 벌써 나흘째였다. 이 이상 숲에 머문다면 마을의 인간들이 아이를 이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자신과 함께 있는 모습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가뜩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질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이레는 제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꽃을 따며 놀고 있었다. 인간의 마을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많이 피어나 있으니, 아이가 그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제야가 아이를 불렀다.
“인간의 아이야.”
“네, 아저씨!”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이가 씩씩하게 답하며 쪼르르 제야의 앞에 섰다. 키워 본 적은 없으나 들어 본 적은 있는, 인간계의 애완동물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아이의 큰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제야는 저도 모르게 짧게 웃어 버렸다. 아이는 그 모습에 더 환하게 생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뒤이어 나온 제야의 말에 아이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이제 그만 가 보거라.”
“……네?”
“이곳은 인간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너는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제야로서는 당연한 말을 한 것이었지만 아이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한 듯, 말간 얼굴이 순식간에 겁을 집어먹었다. 제야는 미간을 좁혔다. 여태껏 울면 울었지 겁을 먹지는 않았던 아이다. 마을로 돌아가라는 말에 왜 저런 표정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아이의 가족도, 집도, 모든 것이 있을 텐데.
“하, 하지만…….”
“돌아가는 길은 저기 위의 붉은 새가 알려 줄 터이니, 길을 잃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숲을 혼자 나가기가 무서운가 싶어 뒷말을 덧붙였지만 아이는 여전히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아주 무서운 말을 들었다는 듯, 그 작은 얼굴에 조금씩 공포가 어린다.
“저, 가, 가요……? 가야 해요……?”
마치 매달리듯 아이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제야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이는 꼭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은 얼굴을 한 채, 동그란 머리를 바닥을 향해 푹 숙였다. 그리고는 꽃을 들고 있던 작은 손을 꼼지락거린다.
제야는 이 아이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어 말을 아꼈다. 잠시 침묵이 일었다. 바람이 불어 풀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새들이 맑게 노래하는 소리, 그리고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
놀란 제야가 아이 쪽으로 얼굴을 숙였다. 숙인 얼굴 밑으로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제야는 그야말로 앓아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의 아이 주제에 요 며칠간 자신을 아주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제야는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왜 또 우느냐.”
“…….”
“내가 무서우냐?”
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예상했다. 도통 자신에게 겁을 먹지 않는 아이이니, 이제 와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무섭다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제야는 방금 전 자신이 아이에게 했던 말을 되짚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울지?”
“…….”
“집에 가는 것이 싫은가?”
그 말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울어댄 것인지 얼굴이 또다시 눈물범벅이었다. 제야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며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대답을 해 보아라. 그래야 내가 알 것 아니냐.”
“집이…….”
아이가 흐끅흐끅대며 대답했다. 작은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지만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커다란 푸른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니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저는…… 돌아갈 집이…….”
“그래, 너의 집이.”
“없어요…….”
말을 하던 아이는 서글픔이 터진 것인지 아주 서러운 소리를 냈다. 제야는 잠시 멈칫했다. 돌아갈 집이 없다, 라…….
“마, 마을에 돌아가면…… 저는…… 호, 혼자…….”
“…….”
“다들…… 나를 싫어해서…… 내가, 마을에 있는 거…… 다들, 다들 싫어해서…….”
그래, 그렇구나. 아이의 온몸에 났던 상처. 제 몸을 돌볼 생각도 않고 제야 몸의 상처부터 걱정하던 모습. 먹고 싶은 것이 없느냐 묻는 말에 혼이 날까 눈치를 보면서 떠듬떠듬 대답하던 작은 목소리.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돌보아 주는 사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작고 어린데, 미움까지 받는 모양이었다. 자는 곳은 보나마나 형편없을 테고, 먹을 것은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처럼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렇듯 처음 보는 자신을 의지할 만큼, 아이는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자신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 옷자락을 쥐는 손길에 제야는 마음이 묵직해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눈앞의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는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서러움과 이곳에서마저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여전히 눈물을 펑펑 흘려대고 있었다. 그 작은 몸에서 이 많은 눈물이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손이 자유로웠다면 머리를 쓰다듬어 줄 텐데. 스스로가 한 생각을 채 인식하지도 못하고 제야는 나지막이 아이를 달랬다.
“그만 울거라.”
“지, 지, 집에 가면…….”
“알았으니 그만 울어.”
제야의 목소리가 한층 다정해진 것을 느꼈는지 아이가 주춤주춤 고개를 들었다. 애정이 부족한 아이는 애정에 예민해진다. 눈앞의 이가 자신을 미워하는지 어여삐 여기는지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이다. 커다란 눈이 깜빡일 때마다 아직 갈무리하지 못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제야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시이네.”
정확히 심장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나무줄기가 팽창하는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온몸을 타고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나 제야는 덤덤한 얼굴을 유지했다. 눈앞의 예민하고 작은 아이가 그 어떠한 이상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부드러운 바람이 제야와 이레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곧, 허공에서 작은 크기의 노란 요정이 뿅하고 나타났다. 온몸이 금색으로 반짝였다. 이레는 멍하니 작은 요정을 바라보았다. ……엄청 예쁘다. 작은 요정이 예를 갖추듯 제야에게 인사를 했다. 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해 주어야 할 일이 있다.”
제야는 힐끔 이레를 바라보았다. 이레는 갑자기 나타나 반짝반짝이며 움직이는 시이네가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우는 것보다는 저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말거라.”
여직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이네가 의아한 듯 눈을 들었다. 바람의 요정 시이네. 빠르고 영리하며 섬세한 바람을 일으키는 이 요정은, 마치 공기에 녹은 듯 조용히 아이의 곁에서 아이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말에 시이네가 의문 어린 표정을 한다. 직감적으로 아이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챈 요정은, 제야에게는 들리나 이레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물었다.
[목적은 감시입니까, 보호입니까?]
시이네가 움직일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금색의 가루를 홀린 듯 바라보는 이레에게 시선을 주며 제야가 평연히 대답했다. 역시, 이레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보호다. 그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게 네가 지켜라.]
[예.]
꾸벅 고개를 숙인 시이네가 스르르 사라졌다. 이레가 사라지는 시이네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이네는 그저 모습을 감춘 것일 뿐, 공기에 녹아 이레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헛된 인간들이 감히 손대지 못하도록 앞으로 시이네가 아이를 지킬 것이다. 주의를 끌던 존재가 사라지자 아이는 다시 제야를 바라보았다. 제야가 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약속하마.”
“…….”
“너를 지켜 주겠다.”
아이는 알까. 몇백 년 만에 하는 이 약속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는 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누군가와의 약속은, 이레뿐 아니라 제야의 마음까지 가득 채웠다.
“그러니 이만 마을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그리고 언제든 다시 오거라.”
“…….”
“절대로 내쫓지 않으마.”
희미하게 짓는 미소에 아이가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아이가 한 걸음 제야에게 다가왔다. 제야는 그런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가 조금 더 힘 있게 제야의 옷자락을 당겼다.
“저, 정말요……?”
“그래.”
“나 정말 또 와도 돼요……?”
“그래.”
“나 안 미워할 거예요?”
떨리는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야가 대답했다.
“그래.”
아이의 얼굴이 또다시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러움과 두려움을 가득 담은 얼굴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벅차오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이가 떨었다. 제야는 아이가 더 울 것을 알면서도, 단단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내 약속하마.”
그리고 숲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긴 잠을 자고 일어났다. 제야는 낮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오랜만에 보는 빛. 제야는 힘없이 웃어 보였다. 이렇듯 몸을 속박당하고 벌써 수백 년. 제야는 때때로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떤 날은 잠이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뜨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계절이 바뀌고서야 눈을 뜨고는 했다.
그렇듯 길고 짙은 어둠을 깨고 나오면, 제야는 시야를 밝히는 빛을 보고 이렇듯 허망하게 웃어 버렸다. 꿈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왔으나, 그것에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이 우스워서.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제 앞에서 끔뻑끔뻑 나타났다 사라지는 커다란 눈동자를 따라, 제야 역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맑은 웃음소리가 울린다.
“아저씨, 잘 잤어요?”
작은 아이에서 이제는 소년이 된 인간. 이레는 자연스레 숲에서 따온 과일들을 손질하며 제야에게 말을 걸었다. 여전히 잠에 취한 듯 나른한 얼굴로 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레가 손에 든 산딸기를 제야의 입에 넣어 주었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입에 든 것을 씹었다. 톡톡 입 안에서 터지는 느낌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번에는 그래도 좀 짧았어요.”
“……그랬나.”
“네. 열흘 정도?”
문득 제야는 그때를 생각한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쏟아지는 잠을 청하고 눈을 떴을 때, 제 옆에서 얼마나 울어댄 것인지 짓무른 눈을 하고 있던 아이를. 꼬박 두 계절을 잤다. 죽은 줄 알았겠지. 아이는 자신이 목소리를 내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와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아저씨, 아저씨, 하고 엉엉 울던 목소리가 귓가에 선연하다.
제야는 이곳에 갇힌 뒤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생각을, 아이를 만나고 때때로 했다. 손이 자유로웠다면, 작고 여린 등을 토닥여 주었을 텐데. 밤이 되면 반드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꼭 제 몸에 붙어 잠드는 아이가 춥지 않게 안아줄 수 있을 텐데. 수줍게 웃는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을 텐데.
길고 긴 두 계절의 잠을 잔 이후로, 아이는 부쩍 제야의 잠에 예민해졌다. 가끔 제아갸 얕은 숙면을 취하거나 눈을 조금이라도 길게 감고 있는 날에는, 아이는 굉장히 불안한 얼굴로 그 곁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을 맞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제야는 때때로 그 얼굴이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랑스럽다고도.
“아, 그렇지.”
딸기의 꼭지를 따던 이레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촌장님이 바뀐대요. 병세가 더 악화되셨나 봐요.”
“그렇군.”
제야는 밤마다 시이네가 흘려보내 주는 광경들을 떠올렸다. 머리가 새하얗게 바랬고, 굉장히 늙은 인간. 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대 촌장은 그 아들인가?”
“네. 둘째요.”
“둘째라…….”
“키가 굉장히 커요. 아마 우리 마을에서 제일 클 걸요.”
크지 않은 목소리로 조잘거리는 아이를 제야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이네를 곁에 붙여 돌보는 동안 아이를 괴롭히던 손길은 거의 사라졌다. 그 덕에 아이는 이미 잊은 모양이지만, 아이를 괴롭히던 이들 중에서도 촌장의 둘째 아들은 그 주동자 격이었다.
촌장의 아들이라 어른들도 쉬이 말리지 못했고, 마을 아이들은 그에 동조하기 일쑤였다. 처음 만났던 날, 아이의 온몸을 뒤덮은 상처들도 그들이 만든 것이었다. 제야는 차가워진 머리로 그 얼굴을 생각했다. 야비하고, 비열한 인간의 아이. 그런 놈이 한 마을의 촌장이 되다니, 그 마을도 오래가지 못하리라.
하얗고 가는 것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이레가 제야의 앞에서 손을 휘휘 젓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저씨?”
제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레가 싱긋 웃었다.
“성년의 밤이 다가와요.”
“벌써 그리 되었나.”
“네. 저도 곧 성인이에요.”
아이는 여전히 마르고, 하얗고, 또 아주 맑았다. 제야가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군, 그리 되었나……. 성인이라. 시간이 그리 흘렀다. 영영 작을 것만 같았던 아이가 어느새 이리 커, 자신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말한다. 그것은 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마녀의 아들이래요. 그래서 나쁜 아이래요. 내가 죽어야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긴대요. 나는 살아서는 안 된대요.
아이가 지금보다도 작았던 시절, 때때로 잠에서 깬 아이는 굉장히 서글픈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며 울었다. 무엇이든 제야에게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왜 자신이 천덕꾸러기인지, 왜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는지 만큼은 제야에게 말하지 않았다.
알아내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말해 줄 때까지 제야는 기다렸다. 서러운 악몽에서 깨어나 제야의 품을 파고든 아이가 터놓은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의 어머니가 살아생전 마녀라고 의심을 받았던 탓이다. 마녀의 자식은 마녀일 것이라는, 기가 막힐 정도로 단순한 논리였다. 그러나 아이는 제야 역시 자신을 멀리할까 두려워, 아픈 상처를 달고 온 날에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고는 했다.
아이는 마녀가 아니었다. 인간이었다. 타인의 온기와 애정을 바라는 아주 평범한 어린 인간. 그러나 무지한 인간들은 마녀와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하였고, 부모조차 없는 아이는 고립되어 갔다.
아이는 한동안 악몽 속을 헤맸다. 나는 나쁜 아이래요, 못된 아이래요. 잠에서 깬 아이가 그리 울음을 삼키면, 제야는 아이를 품으로 들였다. 이레는 제야에게 작은 손을 뻗었다. 제야는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몸이 자유로웠다면, 하다못해 손이라도 자유로웠다면, 떠는 몸을 안아 주고 아픈 눈물을 닦아 주었을 텐데.
그러나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제야는 대신, 얼굴을 숙여 아이의 따끈한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놀랐는지 아이가 울음을 멈추었다. 동글동글한 눈이 자신을 바라보기에, 제야는 가만히 웃어 주었다.
“내가 너를 무어라 부르지?”
“……이, 인간의…… 아이요…….”
“그래. 너는 인간의 아이다.”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이 애처로웠다. 따뜻한 물을 준비해 놓아야겠다 생각하며, 제야는 말을 이었다.
“마녀 따위가 아니야.”
“……정말요……? 나 사람이에요…?”
“내가 네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느냐.”
아이가 재빨리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너는 사람이야.”
제야는, 자신의 말이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닿기를 바랐다. 더 이상 그런 헛된 소리에 울지 않기를, 서러운 악몽을 꾸고 가슴을 움켜쥐며 깨어나지 않기를. 제야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주 평범하고 어여쁜, 작은 인간이란다.”
그 마음에 보답하듯 아이는 눈을 접어 예쁘게 웃었다. 그리고 제야의 바람대로, 아이가 악몽을 꾸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이는 제야를 볼 때마다 환하게, 기쁘게 웃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질 정도로.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제야를 찾아왔다. 어쩌다 늦어져도 사나흘이 지나면 모습을 보였다. 제야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의 발소리는 가벼웠기 때문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기 쉬웠다. 그러나 제야는 언제나,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아이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마침내 아이가 하얀 얼굴을 내밀며 웃음 지으면, 제야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지루해졌다. 잠깐 인사했다 끝을 보이고 마는 꽃잎에게도 흥미를 잃었다. 아이는 그렇게 제야에게 다가왔다. 흐르듯 아무것도 없던 제야의 인생에, 아주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면…….”
이레가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제야는 늘 그렇듯 잔잔한 눈을 하고 자신의 말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 이레는 그 얼굴이, 그 눈빛이, 참 좋았다.
“제가 무엇이든 아저씨의 소원 하나를 들어줄게요.”
얼마 남지 않은 성년의 밤. 이레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제야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었다. 그동안은 항상 받기만 했으니, 이번만큼은 그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제야는 의외로운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그의 검고 결 좋은 머리카락이 스르르 흔들렸다.
“성년의 날이면, 내가 너를 축하해 줘야지. 원하는 것이 있나?”
“아니오.”
이레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드리고 싶어요.”
“…….”
“무엇이든요.”
비록 가진 것이 없고, 제야처럼 허공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기분 좋은 바람을 일으키는 재주도 없지만, 그래도 하나쯤은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제야는 묘한 얼굴로 이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스르르 웃는다. 그 광경은 마치 그림 같아서, 이레는 시선을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내 가장 큰 소원은, 네가 행복해지는 것이지.”
“…….”
“하지만 네가 주겠다 하니, 조금 더 고민을 해 보마.”
바람. 또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아주 부드럽고, 간지러운 바람이.
“너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웃는 얼굴이 참, 아름다웠다.
제야의 옆에서 이레는 많은 일을 했다. 낡은 책을 가져와 가만히 읽기도 했고, 가끔은 그 책을 제야에게 읽어 주기도 했다. 조곤조곤 책을 읽는 아이의 목소리는 무척 기분이 좋았기에, 제야 역시 그 시간이 기꺼웠다. 가끔은 과일을 따러 숲을 서성이기도 하고, 멀리서 날아온 새와 정답게 놀기도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이레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제야에게 다가와 안겨 잠이 들었다. 아이가 커 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것만은 바뀌지 않았다. 혹여 무거울까 불안한 얼굴을 하면서도 이레는 늘 제야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제야에게는 하잘것없는 무게였고 도리어 즐거운 무게감이었다. 잠들기 전에 이레의 이마에 내리는 입맞춤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레는 제야에게 입맞춤을 받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제야의 가슴에 얼굴을 댄 이레는 길게 내린 제야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었다. 언제 만져도 참 부드럽다. 제야는 아이의 손길이 간지러운 듯했지만 별다른 말없이 이레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저씨는…….”
“…….”
“이 숲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깊고 깊은 숲. 숲을 끼고 있는 이레의 마을에서는 이곳을 괴기하고 무서운 것으로 취급했다. 숲에는 두려운 존재가 산다,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들어가면 죽는다, 별의별 얘기가 다 떠돌았다. 한 번이라도 숲에 들어갔던 자는 모두 숲의 얘기만 나오면 치를 떨었다. 그 안에서 나는 끔찍한 것을 봤어. 괴물이 살아 있어. 창백한 얼굴로 입을 모아 모두 그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