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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2일차가 되었다. 선우는 하루 사이에 이곳 세상에 많이 적응했다. 고아 출신이라 눈치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소설이라는 다량의 사전 정보가 있었다.
선우는 식후 비밀 연무장에서 오전을 보냈다. 어제 종일 수련했던 세 가지 검법과 무한보 등을 다시 사용하며 정비 시간을 가졌다.
오후가 되자 선우는 처소에서 나왔다.
“슬슬 가볼까.”
선우는 곧장 현무대 훈련장으로 향했다. 현무대 훈련장은 선우의 처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현무대 훈련장 입구에 도착한 선우는 낡아빠진 담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현무대 훈련장은 굉장히 낡았다. 곳곳에서 보수할 곳이 눈에 띄었다.
여섯 개의 무력 단체 중 서열 6위라서 그런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소설에도 그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선우는 다 낡은 훈련장을 지나 한 건물로 들어갔다. 현무대 대주와 부대주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부대주실 문 앞에 선 선우는 노크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부대주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얼굴에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선우는 저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자는 소설의 비중 있는 조연 중 한 명인 현무대 부대주, 남궁제문이었다.
남궁제문은 하던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일어서서 다가왔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선우는 그 물음을 물음으로 답했다.
“당신이 현무대 부대주입니까?”
“맞습니다. 제가 현무대 부대주입니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신십니까?”
“어제부로 현무대 대주 자리에 오른 남궁추라 합니다.”
“아, 아! 이번에 현무대 대주로 온다던 그 망나니 막내시군요.”
소설 초반의 남궁추는 망나니로 통했다. 배경과 외모를 믿고 계집질에만 심취한 망나니, 그게 남궁추였다.
그러나 그건 초반 1권까지다. 이후 2권부터는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해 4권쯤에는 남궁세가의 잠룡으로 통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남궁제문은 그를 망나니라 칭했다. 이건 싸우자는 거였다. 선우가 대주가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선우는 물끄러미 남궁제문을 바라보다가 나직이 곱씹었다.
“…망나니 막내요?”
“예, 제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뭐, 그리 틀린 말을 한 건 아닙니다. 너무 정확해서 탈이지요.”
“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쁩니다. 망나니한테 망나니라는 단어는 금기거든요. 바보가 바보란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처럼요.”
“하하, 그거 유감이군요.”
선우는 일부로 방긋 웃었다. 화를 내면 지는 싸움이었다.
남궁제문도 역시 방긋 웃는다. 둘의 진득한 눈빛이 오고간다.
선우는 남궁제문에게 점점 다가갔다. 코와 코가 맞닿을 만큼 지근거리에 섰다.
“근질근질하신 것 같은데, 우리 어디 가서 한판 붙을까요?”
자신 있게 말한 것과 달리 솔직히 이길 자신은 없었다. 준비한다고 준비했지만 고작 하루였다. 게다가 싸움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어릴 때 대전 게임 몇 번 해본 게 다였다. 그런데도 덤비는 이유는 남궁제문이라는 사내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선우의 말에 남궁제문은 웃었다.
“하, 이기실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져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졌다는 것은 내 부하가 뛰어나다는 말이니까요.”
“남궁세가의 직계가 방계 중의 방계인 저한테 지면 굉장히 쪽팔릴 텐데요? 소문나면 가주 자리는 물 건너가는 겁니다.”
“소문 안 낼 거잖습니까. 안 그래요? 남궁제문 부대주.”
현무대 부대주인 남궁제문은 남자 중의 남자다. 입이 무겁고 우직하며 바른 말을 할 줄 안다. 현무대가 서열 6위의 무력 단체임에도 소설 끝까지 살아남는 이유는 이런 남궁제문의 활약 덕분이었다. 선우의 말에 남궁제문은 또다시 피식 웃었다.
“음, 결과를 소문내지는 않도록 하죠. 일부러 현무대의 이름을 먹칠할 이유는 없으니까. 저를 따라오십시오. 비무 중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만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남궁제문은 돌아서 걸었다. 선우는 그를 따라 걷는다.
둘이 걸어 도착한 곳, 그곳은 현무대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실내 연무장이다.
선우는 그곳을 쭈욱 둘러봤다.
‘이야…….’
“아무도 이곳으로는 안 올 겁니다.”
“예, 그렇게 생긴 연무장이군요. 그럼 붙어볼까요?”
선우는 건물 구경을 그만두고 남궁제문과 연무장 중앙에서 마주보고 섰다. 늘 오른쪽 허벅지에 차고 있던 검집에 손을 가져간 다음 기수식을 취했다.
“먼저 가도록 하지요.”
“오십시오. 기다리다 지치겠습니다.”
선우는 남궁제문을 노려보다 먼저 움직였다. 처음부터 최강의 스킬인 제왕검법을 쓰지 않고 Master 검법인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했다.
‘창궁무애검법!’
마력이 빠져나가면서 몸이 절로 움직였다. 기본 마력에 두 배에 해당하는 마력을 이 한 번의 공격에 쏟아부었다.
선우의 검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몸을 빙글 돌면서 검을 내려친다.
꽝!
남궁제문은 너무나 손쉽게 선우의 공격을 막아냈다. 선우와 달리 별다른 기술을 쓴 것 같지도 않았다.
선우는 계속해서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선우의 검은 스킬의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인다.
챙! 챙!! 챙! 챙!!
남궁제문은 선우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냈다. 아무래도 남궁세가 사람에게 창궁무애검법으론 안 되는 모양이다.
선우는 무한보를 사용했다. 무한보를 사용하는 중에 섬전십삼검뢰도 사용했다.
‘섬전십삼검뢰!’
무한보를 쓴 순간, 선우의 몸이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빨라졌다. 원래도 빨랐는데 500% 빨라진 선우의 몸놀림은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했다. 거기에 섬전십삼검뢰를 쓰니 번개가 따로 없었다. 번개가 피뢰침을 향해 날아가듯 선우의 검이 남궁제문에게 날아갔다.
쨍!
하지만 남궁제문은 이번에도 역시 쉽게 막아냈다. 표정엔 아직도 여유가 넘쳐흐른다.
선우는 계속해서 공격하다가 크게 물러났다. 마력을 계속 잡아먹는 무한보를 해제한 후 남궁제문을 쳐다봤다. 남궁제문은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걸로 끝입니까?”
선우는 괜히 분해졌다.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음에도.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이걸로 끝이었다면 정말 실망했을 겁니다. 약속도 지키지 않았을 거고요.”
“…….”
“준비한 걸 모두 풀어놓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제대로 된 망신을 당하실 겁니다.”
선우는 남궁제문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그의 말대로 전심전력을 쏟을 생각이었다. 선우는 제왕검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고오―!
제왕검법은 마력 소모가 엄청나다. 기수식을 취한 것만으로 주위의 공기가 찢어질 듯 요동친다.
시종일관 여유 있는 표정을 짓던 남궁제문은 그제야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러고는 검을 꽉 잡고 준비했다.
선우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왕검법!”
선우의 검이 한 마리의 황룡으로 화했다. 황룡이 지면을 낫게 날 때처럼 주위를 점점 초토화시킨다.
황룡은 남궁제문의 앞에서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남궁제문을 물어뜯기 위해 힘껏 입을 벌렸다가 빠르게 다문다.
남궁제문은 아까와는 다르게 혼신의 힘을 다해 막기 시작했다. 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꽈과광!
천둥을 동반한 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가 하늘 높이 비상했다.
자욱했던 먼지는 한참 후에야 가라앉았다. 초토화된 주변의 모습도 그제야 바로 보인다.
“흡…….”
남궁제문의 옷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몸에선 붉은색 선혈이 흘러나왔다.
선우는 그 앞에 서 남궁제문과 검을 맞대고 있었다. 남궁제문은 쓰게 웃었다.
“직계만 배울 수 있다는 제왕검법이라… 확실히 다르군요.”
“…….”
“제가 졌습니다.”
쿵.
남궁제문은 패배를 시인한 후 기절했다.
선우는 그가 깨어날 때까지 그의 곁에 있었다. 그의 곁에 앉아 그와의 결투를 처음부터 복기해 봤다. 그와 결투에서 느낀 것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스킬빨.
제왕검법이라는 사기급 스킬이 없었다면 그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스킬빨로 크게 이긴 듯하지만, 실상은 졌다. 어느 누가 스킬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주겠나? 요즘 어린이 만화도 기다려 주지 않는 추세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눈을 떴다.
정신을 잃었던 남궁제문은 약 3시간 만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뜬다. 선우의 물음에 대꾸했다.
“제가 기절했습니까?”
“예, 방금 전까지 기절해 있었습니다.”
“이거 정말 추한 모습 보여드렸군요.”
황문제문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쉬어야 함에도 무리를 한다. 선우는 그를 말렸다.
“상처가 작지 않습니다.”
“그래도 손님을 두고 어찌…….”
“조금이라도 쉬세요. 쉬셔야 합니다.”
“후, 그럼 잠시 운기조식 좀 하겠습니다.”
남궁제문은 곧장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고는 그만의 심법으로 운기조식을 시작한다. 그는 선우를 굳게 믿기로 했는지 무방비 상태였다. 선우는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그가 운기조식에서 깨어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는 곧 눈을 떴다. 운기조식은 마력 회복(내공)뿐 아니라 신체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지 그의 몸에선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눈을 뜬 남궁제문이 일어섰다. 그러고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지면에 머리를 박는다.
“대주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남궁제문은 선우를 현무대의 대주로 인정했다. 선우가 대결에서 이겼기 때문에 인정하는지, 남궁세가의 직계이기에 그냥 인정한 건지는 모를 일이다.
선우는 급히 남궁제문의 몸을 일으켰다.
“용서할 테니 어서 일어나세요. 부대주, 당신은 내게 무릎을 꿇어야 할 만큼 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주님.”
“우리 차나 한 잔 할까요? 부대주님이 대접해 줬으면 하는데요.”
“후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부대주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아까 갔던 부대주의 집무실로 다시 갔다.
“앉으시지요.”
선우는 남궁제문이 권하는 대로 집무실 중앙에 위치한 의자에 가 앉았다. 남궁제문은 미리 끓여 놓은 차를 잔에 담았다.
“드셔보시지요. 차 맛이 괜찮습니다.”
선우는 그의 말에 따라 차를 들이켰다.
‘괜찮네?’
권해서 먹었을 뿐이지만 남궁제문이 따라준 차는 정말 먹을 만했다. 평소에 차를 먹지 않아서 차는 쓰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게 다소 해소될 정도다.
남궁제문은 선우가 차를 마시는 동안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선우를 빤히 바라봤다.
선우는 그 시선 덕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남궁추 님이 저희 현무대의 대주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래요?”
“예, 솔직히 저는 저희 현무대만 대주가 취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희 현무대는 늙고 약하니까요.”
“…….”
“그런 저희를 왜 선택하신 겁니까? 듣기로는 청룡대라는 좋은 선택지 하나 더 있었다고 하던데요.”
선우는 현무대 부대주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처소에서 많이 고민했다.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 애매모호한 관계, 대승적 관계 등 여러 가지 관계를 두고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러다 얻은 결론은 결국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자는 거였다. 그라면 어쩌면 1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내 사람이 되어 줄 것도 같았다.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남궁제문은 완결권까지 배신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선택하고 인정해 준 이를 끝까지 믿고 따른다. 두 번째 미션의 가주 남궁백과도 크게 연관이 없다. 오히려 현무대를 홀대하는 가주 남궁백을 싫어하는 편이다.
선우는 그 생각을 가지고 준비한 말을 시작했다.
“현무대는 부대주님이 생각한 것과 달리 늙지 않았습니다. 대원들이 다소 나이가 있지만, 그건 늙은 게 아니라 노련한 겁니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한 가지 이유요?”
“그걸 설명 드리기 전에 묻겠습니다. 혹시 저와 싸우실 때,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선우의 물음을 들은 남궁제문은 표정을 굳혔다. 뭔가를 그도 느낀 모양이다.
“이상하다 생각한 점이 사실 한 가지 있었습니다.”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소문과 대주님의 무공이 너무 차이가 났습니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대주님의 실력은 소문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겨뤄본 대주님은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진 바 무공을 제대로 사용하시지 못하는 듯도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짚은 겁니까?”
“예,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확실히 그게 이상하셨을 겁니다. 제 비밀을 눈치채셨으니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부대주님만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예, 말씀해 보세요.”
선우는 괜히 주위를 둘러보며 큰 비밀을 알려주는 척 연기했다. 마술사로 잠시 활동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어설프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 거짓말이 능수능란해졌다. 선우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며칠 전, 저를 어떤 단체가 세뇌하려 했습니다.”
“예?! 세뇌요?”
남궁제문은 크게 놀라 일어섰다. 대 남궁세가의 직계를 세뇌하려는 집단이 있다는 것에 크게 놀란 눈치다.
선우는 그에게 손짓했다. 흥분한 그를 의자에 도로 앉혔다. 그 다음 다시 조곤조곤 말했다.
“쉿, 조용해 주십시오. 저는 그날 술을 마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기척도 없이 접근한 누군가가 제 머리맡에서 저를 세뇌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전 그의 세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악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방법으론 그 세뇌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내공으로 머리의 일부분에 방어벽을 쳤습니다. 기억이 손실이 있더라도 세뇌당하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선우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총관 이학천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총관 이학천은 지금 혈교의 부교주로서의 기억을 스스로 봉인한 상태다. 그가 기억을 봉인한 이유는 한 가지다. 의심 많은 남궁백을 완전히 속이기 위해서.
선우의 설명을 들은 부대주는 놀란 토키 눈으로 변했다.
“그럼……?”
“예, 현재 제 기억 중 일부가 봉인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실전 경험 등의 기억들이 봉인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
“제가 아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무대라면 이런 저를 받아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와 함께 끝까지 같이 가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우는 준비한 거짓말을 모두 했다. 연기도 제법 잘된 기분이었다.
이제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화살에 맞는 자가 결정할 차례다.
남궁제문은 한참을 고민했다. 심사숙고하는 게 표정에서 읽혔다. 정말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말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 다음에 결정하겠습니다.”
“예,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기억이 온전하셨다면 현무대와 청룡대 중 어디를 선택하셨을 것 같습니까?”
남궁제문다운 물음이었다. 남궁제문은 결코 거짓말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선우는 남궁추의 입장에서 솔직히 대답했다.
“기억이 온전했다면 청룡대를 선택했을 겁니다. 청룡대에는 현무대에게는 없는 미래가 있으니까요.”
선우의 대답을 들은 남궁제문은 쓰게 웃는다.
“하하하.”
그러다가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하자 있는 사람들끼리 잘해봅시다, 대주.”
2일차가 되었다. 선우는 하루 사이에 이곳 세상에 많이 적응했다. 고아 출신이라 눈치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소설이라는 다량의 사전 정보가 있었다.
선우는 식후 비밀 연무장에서 오전을 보냈다. 어제 종일 수련했던 세 가지 검법과 무한보 등을 다시 사용하며 정비 시간을 가졌다.
오후가 되자 선우는 처소에서 나왔다.
“슬슬 가볼까.”
선우는 곧장 현무대 훈련장으로 향했다. 현무대 훈련장은 선우의 처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현무대 훈련장 입구에 도착한 선우는 낡아빠진 담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현무대 훈련장은 굉장히 낡았다. 곳곳에서 보수할 곳이 눈에 띄었다.
여섯 개의 무력 단체 중 서열 6위라서 그런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소설에도 그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선우는 다 낡은 훈련장을 지나 한 건물로 들어갔다. 현무대 대주와 부대주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부대주실 문 앞에 선 선우는 노크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부대주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얼굴에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선우는 저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자는 소설의 비중 있는 조연 중 한 명인 현무대 부대주, 남궁제문이었다.
남궁제문은 하던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일어서서 다가왔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선우는 그 물음을 물음으로 답했다.
“당신이 현무대 부대주입니까?”
“맞습니다. 제가 현무대 부대주입니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신십니까?”
“어제부로 현무대 대주 자리에 오른 남궁추라 합니다.”
“아, 아! 이번에 현무대 대주로 온다던 그 망나니 막내시군요.”
소설 초반의 남궁추는 망나니로 통했다. 배경과 외모를 믿고 계집질에만 심취한 망나니, 그게 남궁추였다.
그러나 그건 초반 1권까지다. 이후 2권부터는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해 4권쯤에는 남궁세가의 잠룡으로 통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남궁제문은 그를 망나니라 칭했다. 이건 싸우자는 거였다. 선우가 대주가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선우는 물끄러미 남궁제문을 바라보다가 나직이 곱씹었다.
“…망나니 막내요?”
“예, 제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뭐, 그리 틀린 말을 한 건 아닙니다. 너무 정확해서 탈이지요.”
“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쁩니다. 망나니한테 망나니라는 단어는 금기거든요. 바보가 바보란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처럼요.”
“하하, 그거 유감이군요.”
선우는 일부로 방긋 웃었다. 화를 내면 지는 싸움이었다.
남궁제문도 역시 방긋 웃는다. 둘의 진득한 눈빛이 오고간다.
선우는 남궁제문에게 점점 다가갔다. 코와 코가 맞닿을 만큼 지근거리에 섰다.
“근질근질하신 것 같은데, 우리 어디 가서 한판 붙을까요?”
자신 있게 말한 것과 달리 솔직히 이길 자신은 없었다. 준비한다고 준비했지만 고작 하루였다. 게다가 싸움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어릴 때 대전 게임 몇 번 해본 게 다였다. 그런데도 덤비는 이유는 남궁제문이라는 사내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선우의 말에 남궁제문은 웃었다.
“하, 이기실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져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졌다는 것은 내 부하가 뛰어나다는 말이니까요.”
“남궁세가의 직계가 방계 중의 방계인 저한테 지면 굉장히 쪽팔릴 텐데요? 소문나면 가주 자리는 물 건너가는 겁니다.”
“소문 안 낼 거잖습니까. 안 그래요? 남궁제문 부대주.”
현무대 부대주인 남궁제문은 남자 중의 남자다. 입이 무겁고 우직하며 바른 말을 할 줄 안다. 현무대가 서열 6위의 무력 단체임에도 소설 끝까지 살아남는 이유는 이런 남궁제문의 활약 덕분이었다. 선우의 말에 남궁제문은 또다시 피식 웃었다.
“음, 결과를 소문내지는 않도록 하죠. 일부러 현무대의 이름을 먹칠할 이유는 없으니까. 저를 따라오십시오. 비무 중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만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남궁제문은 돌아서 걸었다. 선우는 그를 따라 걷는다.
둘이 걸어 도착한 곳, 그곳은 현무대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실내 연무장이다.
선우는 그곳을 쭈욱 둘러봤다.
‘이야…….’
“아무도 이곳으로는 안 올 겁니다.”
“예, 그렇게 생긴 연무장이군요. 그럼 붙어볼까요?”
선우는 건물 구경을 그만두고 남궁제문과 연무장 중앙에서 마주보고 섰다. 늘 오른쪽 허벅지에 차고 있던 검집에 손을 가져간 다음 기수식을 취했다.
“먼저 가도록 하지요.”
“오십시오. 기다리다 지치겠습니다.”
선우는 남궁제문을 노려보다 먼저 움직였다. 처음부터 최강의 스킬인 제왕검법을 쓰지 않고 Master 검법인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했다.
‘창궁무애검법!’
마력이 빠져나가면서 몸이 절로 움직였다. 기본 마력에 두 배에 해당하는 마력을 이 한 번의 공격에 쏟아부었다.
선우의 검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몸을 빙글 돌면서 검을 내려친다.
꽝!
남궁제문은 너무나 손쉽게 선우의 공격을 막아냈다. 선우와 달리 별다른 기술을 쓴 것 같지도 않았다.
선우는 계속해서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선우의 검은 스킬의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인다.
챙! 챙!! 챙! 챙!!
남궁제문은 선우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냈다. 아무래도 남궁세가 사람에게 창궁무애검법으론 안 되는 모양이다.
선우는 무한보를 사용했다. 무한보를 사용하는 중에 섬전십삼검뢰도 사용했다.
‘섬전십삼검뢰!’
무한보를 쓴 순간, 선우의 몸이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빨라졌다. 원래도 빨랐는데 500% 빨라진 선우의 몸놀림은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했다. 거기에 섬전십삼검뢰를 쓰니 번개가 따로 없었다. 번개가 피뢰침을 향해 날아가듯 선우의 검이 남궁제문에게 날아갔다.
쨍!
하지만 남궁제문은 이번에도 역시 쉽게 막아냈다. 표정엔 아직도 여유가 넘쳐흐른다.
선우는 계속해서 공격하다가 크게 물러났다. 마력을 계속 잡아먹는 무한보를 해제한 후 남궁제문을 쳐다봤다. 남궁제문은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걸로 끝입니까?”
선우는 괜히 분해졌다.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음에도.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이걸로 끝이었다면 정말 실망했을 겁니다. 약속도 지키지 않았을 거고요.”
“…….”
“준비한 걸 모두 풀어놓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제대로 된 망신을 당하실 겁니다.”
선우는 남궁제문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그의 말대로 전심전력을 쏟을 생각이었다. 선우는 제왕검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고오―!
제왕검법은 마력 소모가 엄청나다. 기수식을 취한 것만으로 주위의 공기가 찢어질 듯 요동친다.
시종일관 여유 있는 표정을 짓던 남궁제문은 그제야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러고는 검을 꽉 잡고 준비했다.
선우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왕검법!”
선우의 검이 한 마리의 황룡으로 화했다. 황룡이 지면을 낫게 날 때처럼 주위를 점점 초토화시킨다.
황룡은 남궁제문의 앞에서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남궁제문을 물어뜯기 위해 힘껏 입을 벌렸다가 빠르게 다문다.
남궁제문은 아까와는 다르게 혼신의 힘을 다해 막기 시작했다. 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꽈과광!
천둥을 동반한 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가 하늘 높이 비상했다.
자욱했던 먼지는 한참 후에야 가라앉았다. 초토화된 주변의 모습도 그제야 바로 보인다.
“흡…….”
남궁제문의 옷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몸에선 붉은색 선혈이 흘러나왔다.
선우는 그 앞에 서 남궁제문과 검을 맞대고 있었다. 남궁제문은 쓰게 웃었다.
“직계만 배울 수 있다는 제왕검법이라… 확실히 다르군요.”
“…….”
“제가 졌습니다.”
쿵.
남궁제문은 패배를 시인한 후 기절했다.
선우는 그가 깨어날 때까지 그의 곁에 있었다. 그의 곁에 앉아 그와의 결투를 처음부터 복기해 봤다. 그와 결투에서 느낀 것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스킬빨.
제왕검법이라는 사기급 스킬이 없었다면 그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스킬빨로 크게 이긴 듯하지만, 실상은 졌다. 어느 누가 스킬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주겠나? 요즘 어린이 만화도 기다려 주지 않는 추세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눈을 떴다.
정신을 잃었던 남궁제문은 약 3시간 만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뜬다. 선우의 물음에 대꾸했다.
“제가 기절했습니까?”
“예, 방금 전까지 기절해 있었습니다.”
“이거 정말 추한 모습 보여드렸군요.”
황문제문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쉬어야 함에도 무리를 한다. 선우는 그를 말렸다.
“상처가 작지 않습니다.”
“그래도 손님을 두고 어찌…….”
“조금이라도 쉬세요. 쉬셔야 합니다.”
“후, 그럼 잠시 운기조식 좀 하겠습니다.”
남궁제문은 곧장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고는 그만의 심법으로 운기조식을 시작한다. 그는 선우를 굳게 믿기로 했는지 무방비 상태였다. 선우는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그가 운기조식에서 깨어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는 곧 눈을 떴다. 운기조식은 마력 회복(내공)뿐 아니라 신체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지 그의 몸에선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눈을 뜬 남궁제문이 일어섰다. 그러고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지면에 머리를 박는다.
“대주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남궁제문은 선우를 현무대의 대주로 인정했다. 선우가 대결에서 이겼기 때문에 인정하는지, 남궁세가의 직계이기에 그냥 인정한 건지는 모를 일이다.
선우는 급히 남궁제문의 몸을 일으켰다.
“용서할 테니 어서 일어나세요. 부대주, 당신은 내게 무릎을 꿇어야 할 만큼 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주님.”
“우리 차나 한 잔 할까요? 부대주님이 대접해 줬으면 하는데요.”
“후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부대주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아까 갔던 부대주의 집무실로 다시 갔다.
“앉으시지요.”
선우는 남궁제문이 권하는 대로 집무실 중앙에 위치한 의자에 가 앉았다. 남궁제문은 미리 끓여 놓은 차를 잔에 담았다.
“드셔보시지요. 차 맛이 괜찮습니다.”
선우는 그의 말에 따라 차를 들이켰다.
‘괜찮네?’
권해서 먹었을 뿐이지만 남궁제문이 따라준 차는 정말 먹을 만했다. 평소에 차를 먹지 않아서 차는 쓰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게 다소 해소될 정도다.
남궁제문은 선우가 차를 마시는 동안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선우를 빤히 바라봤다.
선우는 그 시선 덕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남궁추 님이 저희 현무대의 대주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래요?”
“예, 솔직히 저는 저희 현무대만 대주가 취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희 현무대는 늙고 약하니까요.”
“…….”
“그런 저희를 왜 선택하신 겁니까? 듣기로는 청룡대라는 좋은 선택지 하나 더 있었다고 하던데요.”
선우는 현무대 부대주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처소에서 많이 고민했다.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 애매모호한 관계, 대승적 관계 등 여러 가지 관계를 두고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러다 얻은 결론은 결국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자는 거였다. 그라면 어쩌면 1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내 사람이 되어 줄 것도 같았다.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남궁제문은 완결권까지 배신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선택하고 인정해 준 이를 끝까지 믿고 따른다. 두 번째 미션의 가주 남궁백과도 크게 연관이 없다. 오히려 현무대를 홀대하는 가주 남궁백을 싫어하는 편이다.
선우는 그 생각을 가지고 준비한 말을 시작했다.
“현무대는 부대주님이 생각한 것과 달리 늙지 않았습니다. 대원들이 다소 나이가 있지만, 그건 늙은 게 아니라 노련한 겁니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한 가지 이유요?”
“그걸 설명 드리기 전에 묻겠습니다. 혹시 저와 싸우실 때,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선우의 물음을 들은 남궁제문은 표정을 굳혔다. 뭔가를 그도 느낀 모양이다.
“이상하다 생각한 점이 사실 한 가지 있었습니다.”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소문과 대주님의 무공이 너무 차이가 났습니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대주님의 실력은 소문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겨뤄본 대주님은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진 바 무공을 제대로 사용하시지 못하는 듯도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짚은 겁니까?”
“예,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확실히 그게 이상하셨을 겁니다. 제 비밀을 눈치채셨으니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부대주님만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예, 말씀해 보세요.”
선우는 괜히 주위를 둘러보며 큰 비밀을 알려주는 척 연기했다. 마술사로 잠시 활동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어설프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 거짓말이 능수능란해졌다. 선우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며칠 전, 저를 어떤 단체가 세뇌하려 했습니다.”
“예?! 세뇌요?”
남궁제문은 크게 놀라 일어섰다. 대 남궁세가의 직계를 세뇌하려는 집단이 있다는 것에 크게 놀란 눈치다.
선우는 그에게 손짓했다. 흥분한 그를 의자에 도로 앉혔다. 그 다음 다시 조곤조곤 말했다.
“쉿, 조용해 주십시오. 저는 그날 술을 마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기척도 없이 접근한 누군가가 제 머리맡에서 저를 세뇌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전 그의 세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악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방법으론 그 세뇌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내공으로 머리의 일부분에 방어벽을 쳤습니다. 기억이 손실이 있더라도 세뇌당하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선우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총관 이학천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총관 이학천은 지금 혈교의 부교주로서의 기억을 스스로 봉인한 상태다. 그가 기억을 봉인한 이유는 한 가지다. 의심 많은 남궁백을 완전히 속이기 위해서.
선우의 설명을 들은 부대주는 놀란 토키 눈으로 변했다.
“그럼……?”
“예, 현재 제 기억 중 일부가 봉인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실전 경험 등의 기억들이 봉인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
“제가 아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무대라면 이런 저를 받아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와 함께 끝까지 같이 가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우는 준비한 거짓말을 모두 했다. 연기도 제법 잘된 기분이었다.
이제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화살에 맞는 자가 결정할 차례다.
남궁제문은 한참을 고민했다. 심사숙고하는 게 표정에서 읽혔다. 정말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말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 다음에 결정하겠습니다.”
“예,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기억이 온전하셨다면 현무대와 청룡대 중 어디를 선택하셨을 것 같습니까?”
남궁제문다운 물음이었다. 남궁제문은 결코 거짓말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선우는 남궁추의 입장에서 솔직히 대답했다.
“기억이 온전했다면 청룡대를 선택했을 겁니다. 청룡대에는 현무대에게는 없는 미래가 있으니까요.”
선우의 대답을 들은 남궁제문은 쓰게 웃는다.
“하하하.”
그러다가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하자 있는 사람들끼리 잘해봅시다, 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