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4화


직계 회의는 소설의 내용대로 진행되었다. 남궁백의 다섯 아들 중 네 아들이 한 개의 무력 단체의 대장, 대주가 되었다.
“다음은 추, 네가 말해 보거라.”
드디어 선우의 차례가 왔다. 막내라고 가장 마지막에야 선택권이 왔다. 선우는 자신의 순번이 오자 고민했다.
‘소설의 내용대로 해? 말아?’
소설 속 남궁추는 여섯 개의 무력 단체 중 서열 5위에 해당하는 청룡대를 선택한다.
서열 6위 현무대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강했고, 또 전체적으로 젊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우는 서열 6번째에 해당하는 현무대를 고를까 했다.
‘미래를 생각할 이유가 없지.’
1주일만 있으면 되는 상황에서 몇 년 후 미래를 생각할 이유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5일 후에 있을 마교와의 대전만 생각하면 된다.
서열 5위에 해당하는 청룡대는 젊었으나 매우 공격적이다. 구성원 대부분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매사에 활력은 있지만 인내심 싸움이 주가 되는 수비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서열 6위에 해당하는 현무대는 노쇠했지만 노련했다. 부무기로 활을 쓰기에 수비에 최적화되어 있다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소설에서 마교의 습격 때 가장 많은 활약을 한 건 현무대였다. 현무대의 부대주도 아주 물건이다.
선우는 그래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서열 6위에 해당하는 현무대의 대주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현무대를 맡겠습니다.”
선우가 현무대를 선택할 줄 몰랐던지, 가주 남궁백은 크게 놀랐다.
“뭐? 현무대를 맡겠다고?”
“예,”
“현무대보다 청룡대가 조금 더 났다, 미래를 생각하면 청룡대 대주가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그런데도 현무대를 고를 참이냐?”
“예, 현무대를 고를까 합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번복할 기회를 주마. 다시 생각해 보거라.”
“아버지, 전 번복하지 않겠습니다.”
선우는 남궁백의 거듭된 번복 요구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끝까지 밀어붙였다.
남궁백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더는 번복하라 요구하지 않았다.
“음… 알겠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네 뜻대로 하거라. 지금부터 네가 현무대의 대주다.”
대화를 끝낸 선우는 남궁백의 처소에서 나왔다. 스토리상의 전개가 끝났으니 불편한 자리에 애써 더 있을 이유 없었다.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남궁백의 처소에서 나온 선우는 곧장 자신의 처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주로 취임하게 된 현무대로 가야 하는 게 맞지만 오늘 가나 내일 가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지금 가도 문제다. 뭐라 말할 것이고, 또 뭘 보여줄 것인가? 처소로 가서 여러 가지 등을 고민할 생각이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궁추!”
누군가는 선우를 매우 앙칼지게 불렀다. 분명 남자의 목소리인데 고양이 으르렁대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선우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이가 누군지를 확인했다.
‘남궁신.’
선우를 부른 이는 남궁백의 다섯 자식들 중 첫째인 남궁신이었다. 남궁추의 형제답게 훤칠하게 잘생겼지만 그 얼굴에서 표독함이 느껴진다.
선우는 그를 본 순간 소설 속 남궁추가 그를 어떻게 대했나를 생각했다.
‘싫어하지만 대우는 해줬지?’
소설 속 남궁추는 첫째를 매우 싫어했다. 첫째라는 이유 때문에 능력 이상으로 대접 받는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를 남궁신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남궁가의 장자였기 때문이다.
선우는 남궁추가 첫째 남궁신에게 말하듯 공손하게 손을 모았다.
“예, 형님. 부르셨습니까?”
“왜 청룡대를 고르지 않고 현무대를 골랐지?”
“예?”
“왜 현무대를 골랐느냐고 물었다.”
남궁신은 다짜고짜 따지듯 물어왔다. 말의 앞뒤를 다 잘랐다. 이래서 남궁추가 싫어하는 모양이다. 오늘 처음 봤는데도 절로 꺼려지고 싫어진다.
선우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 남궁추가 남궁신과 대화할 때 주로 쓰는 수법 중 하나를 사용했다.
“제가 그들을 선택한 이유를 형님께 설명해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도 묻지 않으셨는데요?”
남궁세가에서 가주 남궁백의 지위는 절대적이다. 남궁백의 이름 석 자가 들어가면 남궁세가 내에서만큼은 못하는 게 없다.
선우는 이런 남궁백 권위를 빌렸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백의 권위로 남궁세가의 장남 남궁신은 찍어 눌렀다. 덕분에 남궁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궁신은 그저 남궁세가의 장남일 뿐 가주가 아니었다.
“…….”
선우는 그가 말을 잇지 못하자 다시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형님.”
선우는 돌아서 걸어갔다.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남궁신은 그런 선우를 보다가 입술을 잘근 씹는다. 그러고는 대놓고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새끼.”
선우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무시하고 처소로 향했다.

“뭐야, 여긴?”
처소로 가다가 중간에 길을 잃었다. 세가가 워낙 넓은 탓에 그 길이 그 길 같았다.
“저 집은…….”
천신만고 끝에 길을 찾았다. 생전 처음 본 남에게 ‘내 처소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라고 묻는 불상사는 겨우 면했다.
처소에 도착한 순간. 선우는 앞서하기로 마음먹었던 고민을 했다.
‘고른 이유는 대충 설명할 수 있는데, 뭘 보여주지?’
현무대를 고른 이유는 대충 설명하면 된다. 어쨌든 말로 하는 거니까 할 수 있다. 문제는 뭘 보여줄까 이다. 그들로부터 어떻게 인정받을지가 중요했다.
‘스킬을 보여줘? 맞짱이라도 떠?’
소설 속 남궁추는 첫날 청룡대에 간다. 그리고 청룡대 전원과 1대 다로 결투를 벌인다.
남궁추는 청룡대 전원을 무력으로 철저히 굴복시켰다. 그러자 청룡대는 남궁추를 군말 않고 따랐다.
그런데 선우는 소설 속 남궁추처럼 할 수 없다. 아직 스킬조차 써보질 못했다.
‘아, 그래. 일단 스킬을 써보고 결정할까?’
일단 스킬들을 다 써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 그 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스킬 등을 하루 빨리 써 볼 필요가 있다. 선우는 또다시 고민을 했다.
‘연무장이 꼭 필요한데…….’
스킬도 쓰고 남궁추의 몸에 대해서도 알기 위해서는 당장 연무장이 필요했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인적이 거의 없는 연무장이어야만 했다.
선우는 열심히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기억해냈다.
‘처소 내에 비밀 연무장로 향하는 통로가 있었지?’
남궁세가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오랫동안 성세를 누린 만큼 적도 세월만큼이나 많다. 그 적들의 공격을 대비하여 세가 내 이런저런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비밀 연무장도 이런 이유로 만들어졌다.
선우는 비밀 연무장의 출입구를 알고 있었다. 소설 속 남궁추가 시도 때도 없이 이용하는 장소 증 하나인 탓이다.
문제는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고성능 기관이다. 비밀 연무장에 무단으로 들어오는 침입자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그 기관.
‘정해진 대로 걸어야 하는데.’
비밀 연무장은 입구에서부터 정해진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정해진 순서대로 걷지 않으면 이 침입자 방지용 기관이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정해진 걸음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솔직히 누가 그런 걸 일일이 기억하며 보나? 대충 보고 넘기지.
본지 얼마 안 된 소설이라 얼핏얼핏 기억나는 데 이게 맞나 싶다.
‘오른발, 오른발, 왼발, 왼발이던가?’
선우는 고민하다 일단 해보기로 했다. 안 돼서 틀리면 빠르게 도망쳐 나올 생각이었다. 물론 무사히 나오지는 못하겠지만.
선우는 먼저 비밀 연무장의 입구를 찾았다. 소설에 나온 그대로 처소의 그림들을 쭉 둘러봤다.
‘어떤 거지?’
선우의 처소에는 그림이 여러 개 있다.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도 있고, 사물이 그려진 정물화도 있다.
선우는 그중 한 그림을 유심히 봤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본 순간 그곳이 비밀 통로임을 확신했다.
‘확실히 있네.’
소설에 나온 대로 이곳에 그려진 풍경화 한쪽에는 초가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초가집 안에는 아이 둘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이 둘은 표정이 없었다. 일부러 그려 넣지 않은 것이다. 이곳이 비밀통로 입구임을 알리려고.
선우는 이곳임을 확신하고 근처에서 꽃병을 찾았다. 그것이 이 문을 여는 스위치니까.
‘붉은색 조화가…….’
다행히 꽃병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화 대신 붉은색 조화가 들어간 녹색 꽃병이 있었다.
선우는 그 꽃병을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렸다.
드르륵
꽃병을 돌린 순간, 그림이 그려져 있던 벽이 옆으로 서서히 밀렸다. 그리고 내부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선우는 망설이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기억나는 대로 첫 발을 내딛었다.
‘천천히 가자. 천천히.’
선우는 확실히 기억나는 네 발은 성큼성큼 걸었다. 얼핏 기억나는 다섯 발은 도망 갈 채비를 한 채 걸었다. 다행히도 아홉 발 째 까지는 이상 없었다. 문제는 마지막 발이다.
‘이건 아예 기억이 안 나네…….’
열 번째로 내딛어야 하는 발이 아예 기억이 나질 않았다. 50% 확률의 도박을 해야 할 성 싶었다. 선우는 고민 끝에 오른발을 내밀었다.
척.
그런데 그 순간,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르륵.
“흡!”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공포 영화를 보다가 귀신이 나와 놀랐을 때보다 더 놀랐다.
‘틀렸나?’
선우는 온몸을 완전히 긴장시킨 채 대기했다. 기관이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공격해 올지 알 수가 없었기에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때, 형광등 불빛이 들어온 것처럼 주위가 환해졌다. 이 시대에 전기가 있나 의문이 들 정도로 내부가 밝아졌다.
선우는 여전히 긴장한 채 밝아진 내부를 확인했다.
‘아지트 느낌 나네.’
빛이 나면서 넓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학교 체육관 크기는 될 법한 정말 넓은 공터였다.
선우는 긴장한 채 서 있다가 기관 소리가 멈춘 순간 발을 움직였다. 그러고는 공터 안으로 발을 서서히 내딛었다.
‘제대로 온 건가?’
예상되었던 기관의 공격은 전혀 없었다. 공터 안으로 완전히 진입했음에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12이라는 확률을 뚫은 모양이다. 정말 천운이었다.
선우는 긴장을 풀며 연무장 중앙에 갔다. 한동안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다 목적한 바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일단 순서대로.’
선우는 가장 먼저 몸을 풀었다.
“후…….”

몸이 어느 정도 풀렸다고 판단된 순간 선우는 연무장 중앙에 섰다. 허벅지에 자리한 검집에서 검을 뽑은 다음 보유한 스킬을 써봤다.
아이스 볼을 사용할 때처럼 가상의 적을 눈앞에 세우고 그를 공격하기 위해 스킬명을 외쳤다.
“창궁무애검법.”
스킬명이 입 밖으로 나간 순간, 선우의 육체가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체와 함께 검도 자동으로 움직여졌다.
검은 일정한 루트로 휘둘러졌다. 빠르게 허공을 가른다.
펼쳐진 창궁무애검법은 참으로 멋진 검법이었다. 남궁세가의 기초 검법에 불과함에도 멋있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선우는 이어서 제왕검법을 써봤다. 그런데 창궁무애검법과 달리 제왕검법을 사용한 순간, 마력이 한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제왕검법.”
제왕검법이 펼쳐진 순간 지축이 사정없이 울렸다. 이것이 제왕의 품격이라 말하는 것처럼 갑자기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꽈광광!!
흙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가시거리가 1m도 되지 않았다.
선우는 그 참상에 한 말을 잃었다. 제왕검법은 정말 위험한 상대에게나 써야겠다고 뒤늦게 다짐했을 정도다.
선우는 흙먼지가 가라앉자 마지막으로 섬전십삼검뢰를 써봤다.
“섬전십삼검뢰.”
섬전십삼검뢰는 굉장히 빠른 검법이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검집에서 검이 뽑히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검이 휘둘러졌다. 괜히 이름에 번개가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이 정도 속도면 허공도 벨 수 있을 것 같다.
선우는 계속해서 무한보도 사용해 보았다.
“무한보!”
1시간 정도를 그렇게 수련하자 마력집 안에 마력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번엔 마지막 남은 스킬인 천뢰제왕신공을 펼칠 차례다.
선우는 소설에서 본 것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은 후 천뢰제왕신공을 펼쳤다.
‘천뢰제왕신공.’
천뢰제왕신공은 말 그대로 신공이다. 천뢰제왕신공을 사용한 순간, 가슴 속으로 다량의 마력이 빨려 들어왔다. 마력이 자동으로 차길 기다릴 때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완전히 비어졌던 마력집에 인위적으로 마력을 들이 붓는 기분이었다.
선우는 한 시간 만에 다시 일어섰다. 그 큰 마력집에 마력을 다시 채우는데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죽이네…….’
선우는 다시 세 가지 검법과 무한보를 펼쳤다. 무한보를 펼친 상태에서 검법을 써 보기도 하고, 무한보를 사용한 다음 무작정 연무장을 달려보기도 했다.
선우는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연무장에서 연무만 했던 예상 밖의 매우 평온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