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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중국 중앙부 양쯔강 하류 유역에 위치한 안휘성 천주산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세가가 하나 존재한다.
중원에 자리한 수많은 세가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성세를 자랑하는 세가이다.
그 세가는 주로 검법을 사용한다.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검법 중 하나가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이고 또 다른 하나가 대연검법(大衍劍法)이다. 이 세가의 이름은 남궁세가다.
대 남궁세가(南宮世家).
남궁세가의 외곽, 수많은 집채들 속 한 침상에 한 남자가 누워 자고 있다. 그는 곤히 자는 듯하더니 갑자기 앓는 소리를 내며 조금씩 깨어난다.
“으음…….”
그는 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백의 다섯 자식들 중 한 명인 남궁추였다. 한때는 망나니 소리를 듣고 내놓은 자식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현재는 잠룡 소리 듣고 있었다.
남궁추는 스르륵 눈을 떴다.
“들어왔나?”
사내는 겉은 남궁추지만 속은 남궁추가 아니었다. 남궁추의 몸에는 현재 이선우가 들어가 있었다.
선우는 깨어난 즉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처음 판타지 세계에 갔을 때, 밑도 끝도 없이 도망쳐야 했던 걸 상기한 탓이다.
“아무도 없네?”
선우 주위에는 현재 아무도 없었다. 딱히 주인공의 적대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무협 소설인 만큼 암살자를 특히 걱정해야 하지만 다행히도 남궁세가 4권에서 암살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선우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말했다.
“라라, 내 말 들려?”
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라 안 들려?”
재차 불러 봐도 소용없다. 아무래도 소설 속 세상에선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모양이다. 운영자라 개입하지 않겠다는 건가?
선우는 라라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거울을 찾았다.
‘없나?’
남궁추가 남자라 그런 건지 남궁추의 방에는 제대로 된 거울이 없었다. 시대적 배경이 한참 전의 과거라 제대로 된 거울이 없는 걸 수도 있다.
선우는 일어서 거울 대용으로 삼을 만한 걸 찾았다. 반들반들한 대리석 벽이 보인다.
벽에 얼굴을 비춰봤다. 왠지 벽으로 얼굴을 비추는 일이 습관될 것 같다.
‘잘생겼네.’
소설 속 남궁추는 미남으로 표현된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많은 여자들이 그를 따랐다. 망나니 행동을 사서 하는 극 초반에도 그를 따르는 여자들이 있었다. 속된 말로 얼빠들이었다.
벽에 비친 남궁추의 얼굴은 매우 잘생겼다. 날카로운 턱선, 붉은 입술, 짙은 눈썹은 CF속 미남 배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둠으로 물들어 있던 리치의 얼굴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선우는 만족한 듯 웃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남궁추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오우…….”
남궁추는 몸도 매우 좋았다. 남자의 표상 같은 몸이었다. 그러나 흠이 좀 있다. 군데군데에 흉터가 있다.
역시 무림인다웠다. 무림인이라 그런지 그 흉터들이 모두 흉터 같지 않고 훈장 같게 느껴졌다.
선우는 한동안 자신의 몸을 살피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했다. 시야 한쪽에 자리 잡은 아이콘들을 터치하는 일이었다.
‘세 가지나 있네.’
시선 가장자리에는 세 개의 아이콘이 있었다. 하나는 처음 소설 속 세상에 갔을 때도 본 ‘07’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새로 생긴 ‘미션’이라는 이름의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인포메이션’, 즉 ‘정보’라 적혀 있다.
첫 번째야 무슨 의미인지 이제 잘 알고 있었다. 1주일 중 아직 하루도 안 지났다는 의미다. 선우는 곧장 ‘미션’을 확인해 보았다.
“미션!”
그새 말로 하는 게 익숙해졌다. 누르는 대신 순간적으로 말로 해버려서 아차 하고 다시 누르려 했는데, 미션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말로 해도 되는 모양이다.
선우는 미션을 살폈다.
〈 미션 〉
1, 습격
마교의 교주 천마는 남궁세가를 눈엣가시로 생각합니다. 이런 남궁세가를 멸하기 위해 흑풍대 정예 고수 500명과 3명의 장로를 보냈습니다. 5일 후에 있을 마교의 공격으로부터 남궁세가를 구원하십시오. 많은 이들을 구원할수록 보상의 질이 올라갑니다.
* 미션 성공 조건 – 남궁세가의 구성원 50% 이상 생존.
* 미션 실패 조건 – 남궁세가의 구성원 50% 미만 생존.
사용자의 사망 혹은 행동 불능 상태.
2, 동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백은 가족도 믿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조차 감시자를 붙이고 감시합니다. 남궁추 또한 감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남궁백의 의심으로부터 살아남으십시오.
* 미션 성공 조건 – 7일 동안 정체 숨김.
* 미션 실패 조건 – 복귀 전에 정체 발각.
나타난 미션창에는 2개의 미션이 적혀 있었다. 뭔 뜻인지 알기 어려웠던, 소 뒷걸음질로 겨우 클리어했던 테스트 버전과는 달리 미션의 내용과 미션 성공, 실패 조건 등이 세세히 나와 있었다.
첫 번째 미션은 소설 남궁세가 4권의 주요 내용인 마교의 습격을 막는 것이다. 두 번째 미션은 의심병 환자인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백으로부터 정체를 발각당하지 않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미션 모두 엄청난 난이도였다.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주인공도 30%만을 겨우 살렸는데…….’
소설 속의 남궁추는 마교의 습격을 막아냈다. 남궁추 본인의 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흑풍대의 공격으로부터 세가를 살려냈다. 하지만 살아남은 남궁세가의 식솔은 반도 되지 못했다. 대피한 인원까지 포함하여 약 30% 정도만 삼아 남았다. 그런데 50% 이상을 살려야 한다. 거기다 남궁백으로부터 정체도 발각되지 않으면서.
불가능한 미션을 받은 것처럼 막막했다. 소설 주인공과 달리 선우는 무공을 알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종합격투기라도 배울 걸 그랬다. 그럼 시간이라도 끌 수 있을 텐데…….
선우는 참담한 얼굴로 다음 아이콘을 선택했다.
“정보!”
정보라 외치자 사용자 정보창이 나타났다. 선우에게 라라가 보상으로 준 사용자 정보창과 큰 틀은 같았다.
〈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
1, 이름(Name) : 남궁추(이선우)
2, 나이(Age) : 28세
3, 성별(Sex) : 남자
4, 국적(Nationality) : 당나라
5, 신장(Height)⁕체중(Weight) : 185cm, 89㎏
6, 종합 능력치( Comprehensive Ability )
[근력 : 54]
[내구 : 65]
[민첩 : 72]
[체력 : 70]
[마력 : 56]
[행운 : 10]
7, 보유스킬( Possession Skill )
― 창궁무애검법(마력 0.5%미만 사용 불가, Active, Master) : 남궁세가의 기초검공.
― 제왕검법(마력 20%미만 사용 불가, Active, 6성) : 남궁세가의 직계자손만 익힐 수 있는 검법으로 매우 패도적이며 적을 갈갈이 찢어 살육하는 것이 목적인 검법이다.
― 섬전십삼검뢰(마력 5%미만 사용 불가, Active, 9성) : 어느 날 나무에 떨어진 번개를 보고 남궁세가의 사조가 만들었다는 전설적인 쾌검. 남궁세가의 기품이 담겨 있다.
― 천뢰제왕신공(마력 회복 속도 500%, Active, 7성) : 번개의 기운을 마력으로 치환시켜 주는 신공. 마력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
― 무한보(마력 0.1%미만 사용 불가, 이동속도 400%상승, Active, 8성) : 남궁세가의 직계자손만 익힐 수 있는 보법, 현란한 가운데 단아함이 일품이다.
나타난 정보는 이선우의 정보가 아닌 남궁추의 정보였다. 소설 속 이 당시 남궁추의 무력이 수치화 되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궁추의 종합 능력치는 선우보다 월등히 높았다. 구간에 따라 얼마나 능력이 달라지는지 모르겠지만 선우 정도의 사람은 10명이 덤벼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우는 남궁추의 정보를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궁추의 능력을 쓸 수 있는 건가?”
남궁추가 아닌 선우로써 활동하게 될 꺼라 생각했다. 리치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그런 걱정할 필요 없지만 그건 테스트 버전이었다.
남궁추 본인이 아니기에 남궁추 본신의 능력을 100% 끌어올릴 수는 없겠지만 50%만 끌어와도 대박이다. 남궁추의 50%는 선우의 500% 그 이상이니까.
선우는 이것이 대박인지 쪽박인지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속으론 대박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는 거였다.
확인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테이블을 잡았다. 선우가 잡은 테이블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나는 못 하지만… 남궁추라면 할 수 있겠지?’
테이블은 딱 봐도 단단해 보였다. 남궁추가 아닌 선우라면 절대 저것을 손목 힘만으로 부수지 못 할 것이다.
선우는 아귀와 손목에 힘을 줬다. 사과를 반으로 쪼개듯 테이블을 반으로 쪼개봤다.
와지끈!
테이블은 너무나 손쉽게 반으로 쪼개졌다. 너무 손쉬워서 테이블이 가품이 아닐까 도리어 의심이 들 정도다.
선우는 금세 그 의심을 거뒀다. 그러고는 희열에 찬 얼굴을 했다.
“됐어. 살았어!”
그때, 선우의 방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선우는 환희를 급히 감추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파악하기 위해 고민했다.
‘누구지? 아! 이학천.’
소설 속에서 남궁추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남궁세가의 총관인 이학천밖에 없다. 저 사람은 분명 이학천이다.
선우는 급히 총관 이학천에게 말하는 남궁추를 흉내내어 대답했다. 한껏 떠올렸던 미소를 깔끔히 지웠다.
“예, 총관님.”
“가주님이 찾으십니다.”
“예, 나가겠습니다.”
선우는 처소에서 나와 남궁백의 처소로 향했다. 500년 성세를 자랑하는 남궁세가답게 남궁백의 처소로 향하는 길은 굉장히 멀었다.
선우는 소설 속 남궁백에 대해 생각하며 걸었다. 남궁백과 만나기 전에 남궁백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총관 이학천은 그런 선우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고는 선우에게 은근슬쩍 물어왔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사실 총관 이학천은 숨겨진 사람 중 한 명이다. 총 10권 완결인 소설에서 8권까지는 남궁백의 사람인 척 한다. 그러다 9권쯤에 남궁백을 배신하고 정체를 밝힌다. 그는 사실 혈교의 부교주였다.
선우는 그래서 이학천에게 어떤 정보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혈교의 부교주라는 건 한참 나중에 밝혀지는 문제니 상관없지만 어쨌든 현재는 가주 남국백의 귀 노릇을 하는 양반이기 때문이다.
“별생각 안 합니다.”
선우가 감추는 듯하자 이학천은 섭섭한 척 연기했다.
“이거 굉장히 섭섭하군요. 저한테 감추는 것 없으시던 분이셨는데.”
선우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말 별생각 안 했습니다.”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이라니까요?”
“네∼ 네∼”
목표한 가주 남궁백의 처소에 곧 도착했다. 남궁백은 처소는 다른 곳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돌 하나조차 예사롭지 않다. 곳곳에 돈과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총관은 남궁백의 처소에 도착한 순간 어딘가로 갔다. 선우만 당랑 남겨두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선우는 그런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잡고자 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만 잡아서 뭐라 하겠는가? 아버지가 누구인지 소개시켜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선우는 홀로 남궁백의 처소에 들어갔다. 크고 화려한 처소 안에는 다행히도 문이 하나만 있었다.
선우는 그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똑똑!
노크한 순간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봐도 비디오다. 가주 남궁백이다.
“들어와라.”
선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소 내부를 확인했다.
‘남궁추의 형들인가?’
남궁백의 처소 한쪽 직사각형 테이블에는 총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넷은 남궁추 또래로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한 명은 서른 살 터울의 중년 남성이었다.
넷은 남궁추의 형들일 것이다. 당연히 중년 남성이 남궁백일 거다.
선우는 남궁백으로 추청 되는 이에게 짧게 목례했다.
“왔구나.”
“예.”
“앉아라.”
남궁백의 지시에 따라 선우는 빈자리에 앉았다. 가주 남궁백과 마주보는 자리였다.
남궁백은 선우가 자리에 앉은 순간 말을 시작했다.
“요즘 중원이 시끄럽다는 건 다들 알 것이다. 세외 무림이 곳곳에서 준동하고 있는 것도 눈과 귀가 여러 곳에 있는 너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 안휘성도 요새 들어 굉장히 시끄럽다. 우리 대 남궁세가가 버티고 있는 안휘성을 분탕질 하려는 세력이 여럿 등장했다.”
소설에서는 3권까지 남궁추 개인의 성장을 다룬다. 4권부터 남궁세가와 무림을 전반적으로 다룬다.
선우가 들어온 소설 속 세상은 4권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주 남궁백은 자신들의 터전 안휘성부터 시작하여 무림을 관여하고자 했다.
선우는 소설을 봤기에 그가 할 다음 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무력단체를 맡게 하지.’
남궁백은 다섯 자식들에게 남궁세가의 무력 단체를 각각 한 개의 대씩을 맡게 한다. 근거지 내의 적을 척결한다는 핑계로 후계자 경쟁을 촉발시키려는 거다.
남궁백의 이 선택 때문에 5일 후 있는 마교의 공격을 남궁세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후계자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자 여섯 개 무력 단체 중 무려 네 개 단체나 남궁세가 밖으로 나간 것이다.
선우는 이를 알릴까 하다가 말았다. 소설 속 남궁추는 이 상황에서 조용히 있었다. 게다가 조금 두려웠다. 눈치 빠른 남궁백에게 정체를 들킬 것만 같았다. 선우의 속을 모르는 남궁백은 계속 말했다.
“난 너희들이 그 세력들을 말소하는 데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구나. 내 자식들인 너희들이 직접 그 세력들을 말살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
“너희에게 우리 남궁세가 보유한 무력 단체들을 각각 하나씩을 맡기고자 한다. 너희들의 생각을 말해 보거라.”
중국 중앙부 양쯔강 하류 유역에 위치한 안휘성 천주산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세가가 하나 존재한다.
중원에 자리한 수많은 세가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성세를 자랑하는 세가이다.
그 세가는 주로 검법을 사용한다.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검법 중 하나가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이고 또 다른 하나가 대연검법(大衍劍法)이다. 이 세가의 이름은 남궁세가다.
대 남궁세가(南宮世家).
남궁세가의 외곽, 수많은 집채들 속 한 침상에 한 남자가 누워 자고 있다. 그는 곤히 자는 듯하더니 갑자기 앓는 소리를 내며 조금씩 깨어난다.
“으음…….”
그는 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백의 다섯 자식들 중 한 명인 남궁추였다. 한때는 망나니 소리를 듣고 내놓은 자식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현재는 잠룡 소리 듣고 있었다.
남궁추는 스르륵 눈을 떴다.
“들어왔나?”
사내는 겉은 남궁추지만 속은 남궁추가 아니었다. 남궁추의 몸에는 현재 이선우가 들어가 있었다.
선우는 깨어난 즉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처음 판타지 세계에 갔을 때, 밑도 끝도 없이 도망쳐야 했던 걸 상기한 탓이다.
“아무도 없네?”
선우 주위에는 현재 아무도 없었다. 딱히 주인공의 적대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무협 소설인 만큼 암살자를 특히 걱정해야 하지만 다행히도 남궁세가 4권에서 암살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선우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말했다.
“라라, 내 말 들려?”
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라 안 들려?”
재차 불러 봐도 소용없다. 아무래도 소설 속 세상에선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모양이다. 운영자라 개입하지 않겠다는 건가?
선우는 라라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거울을 찾았다.
‘없나?’
남궁추가 남자라 그런 건지 남궁추의 방에는 제대로 된 거울이 없었다. 시대적 배경이 한참 전의 과거라 제대로 된 거울이 없는 걸 수도 있다.
선우는 일어서 거울 대용으로 삼을 만한 걸 찾았다. 반들반들한 대리석 벽이 보인다.
벽에 얼굴을 비춰봤다. 왠지 벽으로 얼굴을 비추는 일이 습관될 것 같다.
‘잘생겼네.’
소설 속 남궁추는 미남으로 표현된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많은 여자들이 그를 따랐다. 망나니 행동을 사서 하는 극 초반에도 그를 따르는 여자들이 있었다. 속된 말로 얼빠들이었다.
벽에 비친 남궁추의 얼굴은 매우 잘생겼다. 날카로운 턱선, 붉은 입술, 짙은 눈썹은 CF속 미남 배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둠으로 물들어 있던 리치의 얼굴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선우는 만족한 듯 웃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남궁추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오우…….”
남궁추는 몸도 매우 좋았다. 남자의 표상 같은 몸이었다. 그러나 흠이 좀 있다. 군데군데에 흉터가 있다.
역시 무림인다웠다. 무림인이라 그런지 그 흉터들이 모두 흉터 같지 않고 훈장 같게 느껴졌다.
선우는 한동안 자신의 몸을 살피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했다. 시야 한쪽에 자리 잡은 아이콘들을 터치하는 일이었다.
‘세 가지나 있네.’
시선 가장자리에는 세 개의 아이콘이 있었다. 하나는 처음 소설 속 세상에 갔을 때도 본 ‘07’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새로 생긴 ‘미션’이라는 이름의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인포메이션’, 즉 ‘정보’라 적혀 있다.
첫 번째야 무슨 의미인지 이제 잘 알고 있었다. 1주일 중 아직 하루도 안 지났다는 의미다. 선우는 곧장 ‘미션’을 확인해 보았다.
“미션!”
그새 말로 하는 게 익숙해졌다. 누르는 대신 순간적으로 말로 해버려서 아차 하고 다시 누르려 했는데, 미션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말로 해도 되는 모양이다.
선우는 미션을 살폈다.
〈 미션 〉
1, 습격
마교의 교주 천마는 남궁세가를 눈엣가시로 생각합니다. 이런 남궁세가를 멸하기 위해 흑풍대 정예 고수 500명과 3명의 장로를 보냈습니다. 5일 후에 있을 마교의 공격으로부터 남궁세가를 구원하십시오. 많은 이들을 구원할수록 보상의 질이 올라갑니다.
* 미션 성공 조건 – 남궁세가의 구성원 50% 이상 생존.
* 미션 실패 조건 – 남궁세가의 구성원 50% 미만 생존.
사용자의 사망 혹은 행동 불능 상태.
2, 동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백은 가족도 믿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조차 감시자를 붙이고 감시합니다. 남궁추 또한 감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남궁백의 의심으로부터 살아남으십시오.
* 미션 성공 조건 – 7일 동안 정체 숨김.
* 미션 실패 조건 – 복귀 전에 정체 발각.
나타난 미션창에는 2개의 미션이 적혀 있었다. 뭔 뜻인지 알기 어려웠던, 소 뒷걸음질로 겨우 클리어했던 테스트 버전과는 달리 미션의 내용과 미션 성공, 실패 조건 등이 세세히 나와 있었다.
첫 번째 미션은 소설 남궁세가 4권의 주요 내용인 마교의 습격을 막는 것이다. 두 번째 미션은 의심병 환자인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백으로부터 정체를 발각당하지 않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미션 모두 엄청난 난이도였다.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주인공도 30%만을 겨우 살렸는데…….’
소설 속의 남궁추는 마교의 습격을 막아냈다. 남궁추 본인의 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흑풍대의 공격으로부터 세가를 살려냈다. 하지만 살아남은 남궁세가의 식솔은 반도 되지 못했다. 대피한 인원까지 포함하여 약 30% 정도만 삼아 남았다. 그런데 50% 이상을 살려야 한다. 거기다 남궁백으로부터 정체도 발각되지 않으면서.
불가능한 미션을 받은 것처럼 막막했다. 소설 주인공과 달리 선우는 무공을 알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종합격투기라도 배울 걸 그랬다. 그럼 시간이라도 끌 수 있을 텐데…….
선우는 참담한 얼굴로 다음 아이콘을 선택했다.
“정보!”
정보라 외치자 사용자 정보창이 나타났다. 선우에게 라라가 보상으로 준 사용자 정보창과 큰 틀은 같았다.
〈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
1, 이름(Name) : 남궁추(이선우)
2, 나이(Age) : 28세
3, 성별(Sex) : 남자
4, 국적(Nationality) : 당나라
5, 신장(Height)⁕체중(Weight) : 185cm, 89㎏
6, 종합 능력치( Comprehensive Ability )
[근력 : 54]
[내구 : 65]
[민첩 : 72]
[체력 : 70]
[마력 : 56]
[행운 : 10]
7, 보유스킬( Possession Skill )
― 창궁무애검법(마력 0.5%미만 사용 불가, Active, Master) : 남궁세가의 기초검공.
― 제왕검법(마력 20%미만 사용 불가, Active, 6성) : 남궁세가의 직계자손만 익힐 수 있는 검법으로 매우 패도적이며 적을 갈갈이 찢어 살육하는 것이 목적인 검법이다.
― 섬전십삼검뢰(마력 5%미만 사용 불가, Active, 9성) : 어느 날 나무에 떨어진 번개를 보고 남궁세가의 사조가 만들었다는 전설적인 쾌검. 남궁세가의 기품이 담겨 있다.
― 천뢰제왕신공(마력 회복 속도 500%, Active, 7성) : 번개의 기운을 마력으로 치환시켜 주는 신공. 마력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
― 무한보(마력 0.1%미만 사용 불가, 이동속도 400%상승, Active, 8성) : 남궁세가의 직계자손만 익힐 수 있는 보법, 현란한 가운데 단아함이 일품이다.
나타난 정보는 이선우의 정보가 아닌 남궁추의 정보였다. 소설 속 이 당시 남궁추의 무력이 수치화 되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궁추의 종합 능력치는 선우보다 월등히 높았다. 구간에 따라 얼마나 능력이 달라지는지 모르겠지만 선우 정도의 사람은 10명이 덤벼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우는 남궁추의 정보를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궁추의 능력을 쓸 수 있는 건가?”
남궁추가 아닌 선우로써 활동하게 될 꺼라 생각했다. 리치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그런 걱정할 필요 없지만 그건 테스트 버전이었다.
남궁추 본인이 아니기에 남궁추 본신의 능력을 100% 끌어올릴 수는 없겠지만 50%만 끌어와도 대박이다. 남궁추의 50%는 선우의 500% 그 이상이니까.
선우는 이것이 대박인지 쪽박인지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속으론 대박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는 거였다.
확인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테이블을 잡았다. 선우가 잡은 테이블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나는 못 하지만… 남궁추라면 할 수 있겠지?’
테이블은 딱 봐도 단단해 보였다. 남궁추가 아닌 선우라면 절대 저것을 손목 힘만으로 부수지 못 할 것이다.
선우는 아귀와 손목에 힘을 줬다. 사과를 반으로 쪼개듯 테이블을 반으로 쪼개봤다.
와지끈!
테이블은 너무나 손쉽게 반으로 쪼개졌다. 너무 손쉬워서 테이블이 가품이 아닐까 도리어 의심이 들 정도다.
선우는 금세 그 의심을 거뒀다. 그러고는 희열에 찬 얼굴을 했다.
“됐어. 살았어!”
그때, 선우의 방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선우는 환희를 급히 감추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파악하기 위해 고민했다.
‘누구지? 아! 이학천.’
소설 속에서 남궁추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남궁세가의 총관인 이학천밖에 없다. 저 사람은 분명 이학천이다.
선우는 급히 총관 이학천에게 말하는 남궁추를 흉내내어 대답했다. 한껏 떠올렸던 미소를 깔끔히 지웠다.
“예, 총관님.”
“가주님이 찾으십니다.”
“예, 나가겠습니다.”
선우는 처소에서 나와 남궁백의 처소로 향했다. 500년 성세를 자랑하는 남궁세가답게 남궁백의 처소로 향하는 길은 굉장히 멀었다.
선우는 소설 속 남궁백에 대해 생각하며 걸었다. 남궁백과 만나기 전에 남궁백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총관 이학천은 그런 선우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고는 선우에게 은근슬쩍 물어왔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사실 총관 이학천은 숨겨진 사람 중 한 명이다. 총 10권 완결인 소설에서 8권까지는 남궁백의 사람인 척 한다. 그러다 9권쯤에 남궁백을 배신하고 정체를 밝힌다. 그는 사실 혈교의 부교주였다.
선우는 그래서 이학천에게 어떤 정보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혈교의 부교주라는 건 한참 나중에 밝혀지는 문제니 상관없지만 어쨌든 현재는 가주 남국백의 귀 노릇을 하는 양반이기 때문이다.
“별생각 안 합니다.”
선우가 감추는 듯하자 이학천은 섭섭한 척 연기했다.
“이거 굉장히 섭섭하군요. 저한테 감추는 것 없으시던 분이셨는데.”
선우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말 별생각 안 했습니다.”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이라니까요?”
“네∼ 네∼”
목표한 가주 남궁백의 처소에 곧 도착했다. 남궁백은 처소는 다른 곳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돌 하나조차 예사롭지 않다. 곳곳에 돈과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총관은 남궁백의 처소에 도착한 순간 어딘가로 갔다. 선우만 당랑 남겨두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선우는 그런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잡고자 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만 잡아서 뭐라 하겠는가? 아버지가 누구인지 소개시켜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선우는 홀로 남궁백의 처소에 들어갔다. 크고 화려한 처소 안에는 다행히도 문이 하나만 있었다.
선우는 그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똑똑!
노크한 순간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봐도 비디오다. 가주 남궁백이다.
“들어와라.”
선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소 내부를 확인했다.
‘남궁추의 형들인가?’
남궁백의 처소 한쪽 직사각형 테이블에는 총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넷은 남궁추 또래로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한 명은 서른 살 터울의 중년 남성이었다.
넷은 남궁추의 형들일 것이다. 당연히 중년 남성이 남궁백일 거다.
선우는 남궁백으로 추청 되는 이에게 짧게 목례했다.
“왔구나.”
“예.”
“앉아라.”
남궁백의 지시에 따라 선우는 빈자리에 앉았다. 가주 남궁백과 마주보는 자리였다.
남궁백은 선우가 자리에 앉은 순간 말을 시작했다.
“요즘 중원이 시끄럽다는 건 다들 알 것이다. 세외 무림이 곳곳에서 준동하고 있는 것도 눈과 귀가 여러 곳에 있는 너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 안휘성도 요새 들어 굉장히 시끄럽다. 우리 대 남궁세가가 버티고 있는 안휘성을 분탕질 하려는 세력이 여럿 등장했다.”
소설에서는 3권까지 남궁추 개인의 성장을 다룬다. 4권부터 남궁세가와 무림을 전반적으로 다룬다.
선우가 들어온 소설 속 세상은 4권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주 남궁백은 자신들의 터전 안휘성부터 시작하여 무림을 관여하고자 했다.
선우는 소설을 봤기에 그가 할 다음 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무력단체를 맡게 하지.’
남궁백은 다섯 자식들에게 남궁세가의 무력 단체를 각각 한 개의 대씩을 맡게 한다. 근거지 내의 적을 척결한다는 핑계로 후계자 경쟁을 촉발시키려는 거다.
남궁백의 이 선택 때문에 5일 후 있는 마교의 공격을 남궁세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후계자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자 여섯 개 무력 단체 중 무려 네 개 단체나 남궁세가 밖으로 나간 것이다.
선우는 이를 알릴까 하다가 말았다. 소설 속 남궁추는 이 상황에서 조용히 있었다. 게다가 조금 두려웠다. 눈치 빠른 남궁백에게 정체를 들킬 것만 같았다. 선우의 속을 모르는 남궁백은 계속 말했다.
“난 너희들이 그 세력들을 말소하는 데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구나. 내 자식들인 너희들이 직접 그 세력들을 말살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
“너희에게 우리 남궁세가 보유한 무력 단체들을 각각 하나씩을 맡기고자 한다. 너희들의 생각을 말해 보거라.”